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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1세기 과학, 낙관과 비관 사이

 

새만금 문제와 과학기술의 정치경제

 

 

고철환 高哲煥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해양학) 교수, 해양생물학. 저서로 『해양생물학』 『한국의 갯벌』 등이 있음.

 

 

1. 들어가는 말

 

일찍부터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모한 나라들이 세계의 강국으로 군림하여 경제와 문화 전반에 걸친 세계화의 물결을 주도하는 엄연한 현실은, 후진국가들로 하여금 하루빨리 선진적인 과학기술을 도입하여 강국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제 과학기술의 발전은 무조건 승인하고 따라야 하는 이 시대의 주도적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 과학기술 진보의 주역이었던 선진국가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아직 과학기술의 결실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국가들은 다시금 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과 기술은 정확히 진술되기 어려운 모든 인간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가정된 공리들에 의해 분석·수치화할 수 있는 물질세계의 한 면만을 대상으로 했고, 일단 기초가 정립되자마자 거침없이 빠른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리하여 물리학과 기하학같이 엄밀한 수학적 사유체계를 가진 학문들이 학문의 모범적 형태로 찬양되었고, 급기야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수학적·논리적 언어로 기술될 수 있는 자연과학만이 학문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논리실증주의’가 영미의 사상계를 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합리적 사유를 지향하는 인간 이성의 한 단면에 불과해 여러 복합적인 사유체계를 가진 인간의 속성에는 접근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대상으로 삼은 자연세계에 대한 설명과 응용체계로서도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지적되고 있다. 자연탐구를 이론화하고 실생활에 접목한 과학기술은 실로 인류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지만, 그만큼 심각하게 자연을 황폐화하고 인간의 기본 생존환경인 물과 공기와 대지를 오염시켜 이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등장했다. 이는 자연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지적 욕망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거나 자연에 대한 연구를 실생활에 응용하려는 인간의 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인간의 자연관이나 자연탐구가 어떤 한 면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자연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오히려 불가능하게 하였고, 이로 인해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한 자연재해가 과학기술의 결과로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실을 올바로 직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껏 우리가 자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 부분들이 사실은 얼마나 부족한 것이었는지는 자랑스러운 자연개발의 현장이 자연파괴의 현장으로 되고 만 현실에서 깨달을 수 있다. 그동안 자연은 우리의 생존조건이라는 사실을 망각해도 좋을 만큼 무제한인 듯 보였고 한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더이상 깨끗한 ‘환경’으로서가 아니라 자정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모습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안되는 병든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싯점에서 과학기술의 결과로 나타난 문제를 논해야 한다면, 새만금갯벌을 둘러싼 환경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넓은 갯벌을 메워 논으로 만들려는 거대한 자연변형 사업이다. 문제는 이 사업이 우리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자연개발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무런 잘못도 아니고 자연을 무한정 이용하는 것을 힘의 원천으로 삼은 지난 세기의 발상을 가지고 일정지역 주민의 민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허욕이 빚어낸 이 엄청난 사업은 어느 면으로 보나 문제가 많은,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는 개발사업이다. 이는 ‘자연’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고수준을, 달리 말해서 아직도 환경문제를 도외시하고 과학기술의 이용만을 발전의 척도로 삼는 우리나라 행정부의 수준을 그대로 가늠케 하므로, 환경과 과학기술 문제에 대한 각성의 한 계기로 새만금 간척사업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새만금 간척사업 문제의 대두

 

우리가 이제까지 잘 몰랐기 때문에 ‘쓸모없는 땅’ ‘버려진 땅’으로만 인식했고, 그래서 ‘제대로 된 땅’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믿어온 것이 갯벌이다. 바다와 땅이 만나 그대로 한참 어우러지는 곳, 끝없이 넘나드는 바닷물결 때문에 물러질 대로 물러진, 한없이 부드러운 땅 갯벌을, 우리가 갯벌로서 인식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부끄럽게도 불과 몇년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한눈에 바라볼 수 없을 만큼 광활한 새만금갯벌(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면 자연의 신비로움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아직 우리는 갯벌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바다도 땅도 아닌, 바다와 땅 사이의 어중간한 회색지역으로서의 갯벌은 그 고유한 가치를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갯벌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실로 희귀한 자연이다. 독일은 자국의 아름다운 갯벌을 다른 자연경관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인정해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지난 몇년간 정부와 환경단체 간에 새만금갯벌 간척사업 문제를 놓고 심각한 대결양상이 있어왔다. 이 간척사업은 무엇보다도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한다는 정당의 기본 생존원리에 매여 더이상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정부에 의해 자연개발의 원대한 사업으로 낙착되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만경강·동진강 하구인 군산·김제·부안 앞바다를 거대한 구조물로 막아 그 안의 갯벌을 논으로 만드는 사업으로, 내부 개발면적은 4만 헥타르 규모이다.1 육지에서 멀리 십수 킬로미터까지 드러날 만큼 광활한 새만금갯벌을 34킬로미터의 방조제로 돌아가며 막고 그 안에 다시 둑을 겹겹으로 쌓은 후 수로를 만들어가며 개답공사를 하면서, 갯벌의 소금기가 다 빠질 때까지 20여년을 기다려 농토를 만들어 쌀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방조제 설치 작업은 현재 19킬로미터가 진행되었다. 물론 새만금 간척사업 이전에도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간척사업이 도처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곳은 전라남도의 목포 근처인 영산강 유역이나 인근의 영암, 해남지역 등과 천수만의 서산지구, 아산만의 대호지구가 있다. 그런데 왜 새만금 간척사업의 문제만이 크게 부각되었을까?

이 사업은 아주 거대한 규모의 사업인데도 초기단계에서 사업타당성 검토가 면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업비 조달계획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었으며, 정부내 이견으로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 등 처음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간척사업은 1991년 기공되어 2011년에 완공할 예정인 대형사업으로, 총공사비를 농림부가 3조원, 감사원이 6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논으로 개간하지 않고 복합사업단지로 개발할 경우 28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너무 거창한 사업규모 때문에 발표됐을 당시에도 사업 시작 자체가 의문시되었고, 기공 후에는 ‘기공식만 있고 준공식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2 정부 부처 내에서도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 처음부터 제기되었다. 경제기획원의 회의적인 시각 때문에 예산배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공기도 4〜5년 늦추어질 정도였다. 지금까지 어업보상비가 4천여억원, 방조제 공사비가 8천여억원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화호가 1994년에 1만7천 헥타르 규모의 갯벌을 막는 12킬로미터 방조제 공사가 완료된 후 오염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96년 4월에는 그 오염된 시커먼 물이 수문을 통해 방류되는 장면이 SBS방송을 통해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시화호 간척사업의 실무를 맡았던 수자원공사는 5천억원을 투입하여 시화호 오염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그후에 실은 시화호의 물을 바다로 빼내고 바닷물을 받아들여 섞는 방법으로 시화호 오염을 해결해버렸다. 97년 이후 지금까지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계속 바닷물을 섞고 있으며 정부는 올해 2월에 시화호 담수호 작업을 아예 포기한다고 발표하였다. 96년 시화호 오염이 국민적으로 알려지면서 환경단체들의 간척사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시화호에서 진행된 일련의 과정에서 간척사업이 지닌 문제점들이 좀더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 갯벌의 가치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인식도 함께 높아지면서 이들이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97년 후반기이다.

환경단체들의 반대운동은 감사원으로 하여금 98년에 특별감사를 실시하게 하였고, 99년에는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에 대해 민관합동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민관합동조사의 최종보고서가 2000년 8월에 제출되면서 보고서를 놓고 진행된 여러 형태의 토론회는 많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새만금 간척사업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게 하였다. 또 2001년에는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주관하는 토론회도 있었다. 이들 일련의 토론회를 통하여 ‘새만금 문제의 쟁점’들이 부각되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근본문제는 대형 국책사업으로서 처음부터 전북지역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적인 의도로 기획되고 진행되었다는 점이다.3 8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노태우 후보가 이 사업을 전라도 지역을 위한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자 91년 김대중 신민당 총재가 노태우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이 간척사업의 실시를 촉구하여 그해 11월에 착공되었다.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다시 새만금 간척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했고, 정주영 후보는 심지어 2년 내에 완공하겠다고 공약하였다. 95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유종근 도지사 후보는 새만금지역을 복합산업단지로 만들고 다우코닝사를 유치하겠다는 안을 발표함으로써, 전북도민에게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기대감을 유포시키는 데 일조했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인제·이회창 후보가 모두 새만금지역을 공업단지로 발전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3. 농림부와 환경단체의 논의들

 

민관공동조사단은 수질보전분과, 환경영향분과, 경제성분과로 구성되었고, 결과보고서 역시 이 세 분야로 집약되어 씌어졌다. 민관공동조사단은 정부측 학자와 환경단체측 학자로 구성되었는데, 이후 열린 토론회에서 의견이 서로 대립되었다.

우선 수질과 관련해서 농림부측은 간척사업 후에 새로 만들어지는 새만금호의 수질이 농업용수기준을 만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경부는 생활환경에서 사용할 호숫물의 수질기준을 5등급으로 나누고 있는바, 4등급 수질이 농업용수이다. 농림부측에서 제시한 수질 예측값들은 대부분 4등급 수질기준인 총인 0.1ppm을 맴도는 0.09, 0.10, 0.12ppm 등이다.4 이는 몇가지 가상 씨나리오에 따라 계산된 값들로, 2012년의 새만금 호수 수질을 예측한 것이다. 이때 가상 씨나리오란 새만금호의 수질을 좋게 하기 위한 조치(수질개선대책)들을 일컫는 말로, 오염총량제를 도입하고 주변지역의 개발을 억제하며 또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비료의 양을 약 30% 줄여서 오염원으로부터의 배출량을 줄이는 계획과, 하수관이나 하수처리장, 축산분뇨 처리시설을 확충하여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계획, 그리고 일단 새만금호로 들어온 오염물질은 수로를 통해 금강의 물을 끌어들여 희석한다는 계획을 포함한다.

환경단체측은 총인 0.1ppm을 달성하기 위하여 취해야 할 수질개선대책들이 경제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투자가 우리나라 현실에서 타당한가를 따지고 있다. 이들 대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투자해야 할 돈이 1조 4천억원이 넘으니5 재원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고, 또 행정적으로 오염총량제나 주변지역의 개발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면 주민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윤제용 교수의 지적처럼 갯벌 위에 새로 호수를 만들고 이 호수가 오염될 것을 예상하여 막대한 예산을 들여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농림부의 발상에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6

경제성 분야에서 가장 치열한 쟁점은 비용/편익 분석에 쓰인 계산항목의 타당성 여부와 이중계산의 문제이다. 충남대 임재환 교수 등의 정부측 학자들이 제시한 비용/편익의 비율은 3.4로, 이는 새만금갯벌을 간척하면 투자한 액수에 비해 최대 3.4배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뜻한다.7 게다가 흥미로운 것은 새만금 간척사업의 부가가치(시장경제적 사업편익)로 연간 약 9600억원을 제시하고(비시장 재화가치 총액으로는 연간 4천여억원을 제시했다), 그중에서 약 75%인 7200여억원을 국토확장 효과에서 오는 것으로 계산했다는 사실이다.8 이와 함께 새만금 간척사업의 국토확장 효과를 평가한 환경단체측 연구자인 고려대 곽승준 교수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농지가격을 이용하여 국토확장 효과를 계산하고 쌀의 시장가격을 이용하여 간척농지의 농업편익을 계산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이중계산의 오류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쌀의 시장가격에는 이미 농지가격, 즉 지대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농지가격이라고 하는 것은 농지가 매년 제공하는 써비스의 가치를 현재가치화하여 합한 것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농지가 제공하는 써비스는 쌀 생산이며, 이 가치는 쌀의 시장가격으로 반영된다. 물론 쌀의 시장가격이 쌀의 잠재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더라도 쌀의 시장가격에 지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어떻게 보더라도 이중계산이다. 물론 이때 작위적으로 사용한 국제가보다 5.74배 높은 안보미가도 경제적으로 전혀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이중계산 부분을 고려하면 사업시행의 편익 항목과 계산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본 보고서가 제시한 편익은 의미없는 숫자일 뿐이다.9

 

환경영향분석은 갯벌을 모두 없애면 어떤 영향이 있겠는가를 다루는 내용이어야 한다. 우선 농림부의 논리를 살펴보자. 농림부는 대체로 새만금갯벌 대신에 다른 곳의 갯벌로 대치하면 된다거나 갯벌의 수산물, 갯벌의 정화능력 등이 크지 않다는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래서 새만금 이외의 지역에서 갯벌 보전을 철저히 해야 한다거나, 새만금에서는 갯벌이 방조제 밖으로 새로 만들어져서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갯벌의 수산물은 이미 어업보상이 이루어졌고, 또 방조제 축조 이후에 새로운 어장이 형성될 것이므로 수산물 생산도 큰 문제가 없으며, 어패류 피해면적 자체가 서해연안 생태계 면적의 2.9%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역시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다. 백합조개가 새만금갯벌의 특산물이긴 하지만 강원도와 전라남도 해안에서도 생산된다고 주장하며 새만금갯벌의 중요성을 축소하려는 의도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구차한 논리들을 나열하고 있어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요컨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없어지긴 하지만 다른 갯벌이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고, 새로 만들어지는 새만금호도 농업용수로 적당하며 경제성도 충분하니 갯벌을 개간하여 쌀을 생산하자는 것이 농림부의 주장이다. 이에 비해 인위적으로 34킬로미터나 되는 방조제를 쌓아 호수를 만들어봐야 수질관리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갯벌을 논으로 바꾼다 해도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 없고, 게다가 우리나라 갯벌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것으로서 어민들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으니 갯벌을 갯벌로 있게 하자는 것이 환경단체측의 주장이다. 세계적으로는 갯벌을 국립공원이나 ‘람사(ramsar)습지’10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데 비해, 4만 헥타르나 되는 갯벌을 방조제를 쌓아 논으로 만들겠다는 논리는 억지 정치논리가 아니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4. 새만금 간척사업의 추진세력

 

새만금 간척사업의 계획이나 시행과정을 들여다보면 정부부서와 학계가 종횡으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횡적이란 새만금 간척사업의 결정과 시행이 여러 분야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고, 종적이란 이들 분야가 각각 나름대로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관점을 살려서 보지 않으면 새만금 문제의 실제를 알기 어렵다. 그 거대한 갯벌을 갈아 엎어서 논으로 만드는 구조를 국가가 가지고 있으며, 그 구조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기능해왔다는 사실을 분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새만금사업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부서로서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가 존재하고, 새만금사업의 이론을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농공학이나 농경제학 관련 학과가 존재한다. 그리고 환경문제가 대두된 요즘에는 해양관련 학과들이 연결되어 있다. 농림부는 간척공사를 계획에서부터 시행까지 총괄하며, 설계를 포함한 토목공사의 실질적인 업무는 농업기반공사가 맡는다. 농공학이나 농경제학 관련학과는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에 간척공사 관련 전문인력을 공급하고, 간척공사가 있을 때에는 계획·설계·시행과 관련한 이론적 작업을 수행한다. 해양관련 학과는 간척공사 이전의 허가관련 업무나 또는 공사 도중이나 공사 후에 수행되는 환경영향평가와 모니터링에 주로 관여한다. 산학협동이라기보다는 관학협동의 체제라고 하겠다.

간척사업을 위한 이러한 관학협동체제는 오랜 역사성을 가진다. 원래 간척사업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자국으로 쌀을 가져가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수행한 사업으로, 1918년 공유수면매립법을 제정한 후 1920년대와 3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보통은 단위 간척사업의 크기가 100헥타르 미만의 규모로 군산과 김제, 전라남도의 서남해안 연안에서 육지와 평행한 방향으로 바닷쪽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논의 면적은 일제시대 통틀어 약 4만 헥타르 정도로서 이제 방조제로 둘러싸일 새만금지구의 크기와 비슷하다. 어쨌든 일제시대에 여러 장소에서 여러 개의 단위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간척을 위한 노동력 동원, 자금마련, 제방쌓기 기술, 간척 후 개간과 관개사업 관리 등이 발달하였고, 간척이 하나의 사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행정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자금과 인력, 기술이 합쳐지면서 명실상부한 국가사업이자 경제활동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농공학 분야와 농경제학 분야들이 먼저 결합하였고, 해양관련 학과가 간척이론을 뒷받침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군산대 해양관련 학과는 한국과학재단과 전라북도에 요청하여 특별연구소를 개소하고 간척사업을 위한 제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해양관련 학과가 최근에 이런 방법으로 기여하고 있지만 원래 간척은 일제시대부터 농학의 한 분야였고, 그래서 지금도 농과대학을 중심으로 인력이 배출되며 그 인력은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에 포진하고 있다.

사실 간척은 국가사업의 하나이기 때문에 강력한 추진체계를 가진다. 매 10년마다 법에 따라 간척계획을 세우고 국회에 예산을 신청하여 이 계획을 수행하고 있다. 1998년에 농업기반공사의 전신인 농어촌개발공사가 발간한 『한국의 간척』이라는 책자에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어디를 막을 것인가가 표시되어 있다.

농림부가 조사한 간척가능 면적은 60년대 약 22〜27만 헥타르, 70년대 63만 헥타르이다. 이러한 통계수치들은 문경민의 『새만금 리포트』와 『한국의 간척』에 잘 정리되어 있다. 85년에 건설부가 발표한 간척가능 면적은 약 44만 헥타르이고 95년에 농림부가 발표한 매립대상 면적은 약 30만 헥타르이다. 매립대상 면적의 크기가 연대별로 변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수십만 헥타르로서, 새만금의 크기 4만 헥타르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간척계획 규모를 짐작할 수 있고, 가히 서해안을 일직선화하는 계획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98년에 김성훈 농림부장관이 새만금에 버금가는 영산강 4단계사업을 포기한다고 직접 발표한 이후에 간척사업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그간의 역사를 보나, 법체계와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의 행정구조를 보나, 이를 뒷받침하는 대학을 통한 전문인력의 수급을 보나 간척사업은 국가사업임에 틀림이 없다.

97년 이후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은 나름대로 그 세력을 규합해가고 있다. 환경단체들에서 시작한 운동이 작년과 올해에 걸쳐 농민단체·노동단체·종교계·전문가·학계가 참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수산학회 같은 전통적인 학회들도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한국해양학회도 회원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반대견해를 발표하였다. 반대입장을 표명한 학회에는 조류학회처럼 새만금에 찾아오는 철새를 구심점에 놓고 활동하는 학회도 있었다. 지금은 전문가나 기타 관심있는 일반인이 참여하는, 새만금을 보전하기 위한 특별한 학회를 제안하여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가칭 ‘새만금 생명학회’라는 이름으로 10월에 창립할 계획이다.) 이들 집단이 새만금 간척사업의 강행을 주장하는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 그리고 간척사업의 타당성을 이론적으로 지원하는 학계 전문가, 또 전북도지사와 전북출신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과 맞서 ‘결국 정치라는 형태로 집약되어 결정되고 추진된’ 새만금사업을 얼마나 저지할 수 있을는지 그 결과가 궁금하다.

 

 

5. 맺는 말

 

새만금 간척사업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간척을 진행해오면서 형성된, 농림부를 중심으로 한 간척 기득권세력의 집요한 공작과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극심한 소외를 경험한 전북도민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수그러들지 않는 야심으로 결국 강행이 결정되었다. 민관공동조사단이 팽팽한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조사결과 보고서를 단일안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고, 농림부는 ‘순차적 개발’ 방식에 따른 새만금 간척사업의 강행을 결정한 것이다. 순차적 개발이란 동진강유역을 먼저 개발하고 그후에 만경강유역을 개발하겠다는 안으로, 일종의 내부개답 순서, 즉 갯벌을 논으로 만드는 토목공사의 순서를 제시한 것이다. 이는 만일 새만금 간척사업을 계속하게 되면 당연히 그런 순서로 할 것이고, 따라서 개답순서를 하나의 안으로 내어놓을 필요가 없다. 환경단체와 종교계, 그리고 일련의 전문가그룹이 요구한 것은 모든 환경문제의 원인이 되는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라는 것이었으나, 농림부는 이러한 요구를 내용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결국 많은 토론회와 평가회는 그들의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요식회의에 불과하였다. 농림부는 농지확장과 식량공급을 위하여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경제적 채산성의 문제로 농업을 포기하는 농민이 늘어나 유휴농지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전북도민들이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11 만경강과 동진강의 수질보전을 위해 그린벨트와 같은 개발제한을 시행해야 하고, 축산·산업폐수 및 생활하수를 감소시키기 위하여 내륙지방의 개발을 엄격히 동결해야 하는 사태로 인하여, 전북도민은 온갖 규제로 묶이게 될 상황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투입되는 6조원이 전북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정치가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수 있다. 시화호에서 보듯이 수질오염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 간척사업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전북도민이 되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전북도민이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 한, 새만금사업 반대운동은 크게 진척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간척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곧 자신의 업무인 거대한 국가조직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개발을 고수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기본구조를 갖고 있음을 말한다. 이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근본문제는 우리나라의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환경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래서 사실 새만금 간척사업의 본질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대의사를 표명한 부서가 해양수산부 하나에 불과하고, 그것도 당시 장관의 강한 의지의 소산임에 비추어볼 때, 행정가들로부터 미래지향적 사고를 기대하기는 힘들 듯하다. 정치인이라면 국회의원이 대표적일 터이지만 열린 생각을 한다고 여겨지는 국회의원조차도 선거의 유불리를 따라 입장을 표명할 뿐이지 문제의 근본을 짚으려 하지는 않는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문제를 그대로 안고 계속 떠밀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논리에 급급해 민주사회의 필수덕목인 환경의식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버리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 우리 국민 모두의 지난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새만금 간척사업에 투입될 돈이 얼마나 될지 그 수렁의 깊이를 누구도 알 수 없다. 방조제 공사가 60% 진척되었다고 하지만 막대한 전체 공사비에 비하면 아직도 작은 수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뭉쳐서 투쟁해야 새만금 간척사업은 다시 공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새만금사업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학기술의 미래는 과학기술 외적요인, 즉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어떤 목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가에 따라 과학기술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삶의 질뿐 아니라 온갖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과학지식으로 너무 섣불리 어떤 자연은 쓸모있고 어떤 자연은 쓸모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자연파괴를 불러오지 않는, 적어도 자연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자연개발의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바, 이는 근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제까지의 과학기술과는 다르게 자연을 볼 수 있고 자연을 알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의 모색은 먼저 과학지상주의를 탈피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세계와 감성세계를 포괄하는 문화적 가치들이 과학기술에 따르는 부차적·주변적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기술의 한계를 알고 그 일면성을 보완해서 인류세계와 자연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끄는 중추적 요소로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문제가 ‘문제’로서 표출되고 논의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이 몰고 온 자연파괴의 여파가 심상치 않은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변형시키고 이용하면서 생존해왔고 동시에 삶의 질을 향상시켜왔지만, 이제는 더이상 자연을 변형시킬 수 있는 인간의 권리가 무제한 허용될 수 없는 싯점에 이르렀음을 정직하게 시인하는 환경의식과 과학과 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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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림부 『새만금사업 추진상황─새만금사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 2001, 3면.
  2. 문경민 『새만금 리포트』, 중앙M&B 2000, 193면. 이 책은 지금까지 출간된 새만금 관련 책들 중에서 가장 내용이 풍부하다.
  3. 이시재 「대형 국책사업의 의사결정구조와 시민참가─새만금 간척사업을 사례로」, 미발표 논문, 2001.
  4. 수질기준은 보통 COD(화학적 산소요구량)와 총질소·총인 등 화학물질의 농도로 표시하는데, 이때 총질소와 총인은 이온 상태로 물속에 녹아 있는 질소나 인의 총량이라는 의미이다. 민관공동조사에서 새만금호의 수질을 총인 항목을 기준으로 예측하자는 합의가 있었으리라 예상한다. 질소와 인은 보통 축산폐수·생활하수·논물 등에 많이 녹아 있다.
  5. 농림부 『새만금사업─세계적인 친환경간척의 모델로 개발됩니다』, 2001, 9면.
  6. 윤제용 「새만금사업 수질분야 평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새만금 공개토론회 주제발표 자료(환경영향, 수질, 경제성 분야)』, 2001.5, 91면.
  7. 임재환 외 「새만금사업 경제성 평가」, 같은 책 121면.
  8. 그 외에 쌀의 가격을 계산하는 데 식량안보가치를 고려한 것이나 갯벌이 새로 만들어져서 생기는 효과를 계산한 것 등 논의해야 할 항목들이 더 있으나, 어떤 항목이 계산되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같은 글 120면을 참조하기 바란다.
  9. 곽승준 「새만금사업 경제성 평가」, 같은 책 140면. 곽교수는 환경단체측 학자들이 갯벌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도 함께 비판하였다.
  10. 1971년 이란의 람사라는 도시에서 국제간에 이동하는 철새의 도래지를 보호하기 위해 채택된 ‘람사협약’에서 정의한 습지이다. 람사협약 당사국들은 람사습지를 지정하여 보호하고 이를 3년에 한번씩 열리는 당사국 회의에서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① 대표적인 또는 특이한 습지이거나, ② 동식물 서식처로서 중요하거나, ③ 물새 서식처, ④ 어류의 서식처로서 중요한 습지 등이 람사습지로 지정된다. 1997년 람사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갯벌이 람사습지의 기준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찍이 람사습지로 지정됐어야 하지만, 갯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오히려 갯벌을 간척대상으로 여기고 있어 람사습지의 지정이 지금까지 불가능했다. 환경부는 서해안 갯벌 대신에 대암산 용늪이나 창원의 우포늪을 람사습지로 지정했으나, 습지의 규모나 중요성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지정하기 편리한 정도, 즉 주민과의 마찰이나 행정편의 등에 따른 지정으로 국제적인 체면 유지용에 불과한 것이었다.
  11. 새만금사업 즉각 중단을 위한 전북사람들 「새만금 간척사업은 전북도민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나?」, 미발표 논문,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