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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한반도 통일에 얽힌 4강의 이해

 

 

지영선 池永善

『한겨레』 논설위원. ysji@hani.co.kr

 

 

1

 

‘한반도 통일에 얽힌 4강의 이해’,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 내가 붙잡고 씨름했던 화두다. 하바드대학 국제문제연구소(Weatherhead 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 CFIA)에 펠로우(방문연구원)로 1년 동안 연수하며 써내야 했던 작은 논문의 제목이 이것이다.

CFIA의 펠로우즈 프로그램은 경력이 20년 정도 되는 각국 국제문제 실무자들로 하여금 1년 동안 하바드에 머물며 이들의 실무경험과 하바드의 학문적 지식을 교류하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방문연구원 대부분이 외교관이지만, 정치인과 군인, 시민운동가, 성직자, 그리고 나 같은 언론인도 섞여들곤 한다. 역대 연구원 중엔 알 만한 인물들도 꽤 있다. 암살된 필리핀의 정치인 베니뇨 아끼노(Benigno Aquino), 그리스의 외무장관 게오르게 빠빤드레우(George Papandreou), 그리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이 연구소를 거쳐갔다. 미국에서는 특이하게 이 프로그램에 꼬박꼬박 군인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도 육·해·공군 대령이 한 명씩 왔다. 사무실을 함께 쓰게 된 공군조종사 제프에게, 왜 미국에선 군인만 세 명이나 왔느냐고 언젠가 물었더니, “군의 목소리가 시민사회에 들리도록 하려는 노력 아니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 군부의 그런 노력은 다른 기회에도 느낄 수 있었다.

 

 

2

 

남북정상회담의 열기가 아직도 뜨겁던 지난해 8월 미국에 도착한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앞에서 말한 제목으로 논문주제를 정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 그중에서도 미국이 우리의 통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아볼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를 잘했던 것 같다. 나 자신 간략하게나마 4강의 이해를 들여다보았을 뿐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우리의 상황을 남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회도 되었으니 말이다.

지난 3월 16〜18일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연례 동북아시아안보회의가 바로 그런 자리였다. 그곳 사회과학부가 주최한 ‘한반도 화해가 동북아시아 안보에 갖는 의미’를 주제로 한 이 회의에 생각지도 않게 내가 패널리스트로 초청된 것이다. 영화에서 가끔 본 허드슨 계곡의 그 수려한 캠퍼스 안에 자리잡은 사회과학부장 러쎌 하워드(Russell Howard) 대령의 집에서 회의 전날 밤 참석자들을 위한 리쎕션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CFIA의 연구원이었던 하워드 대령이 나를 초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CFIA 웹싸이트에 뜬 내 이력과 연구제목을 보고 내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회의에는 나 외에 중국·일본·러시아·타이완의 학자들과 이들 지역을 연구하는 미국 학자들, 그리고 해당지역 주둔 미군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작년말 처음 회의 참석 요청을 받았을 때는 회의주제가 ‘한반도 통일이 동북아시아 안보에 갖는 의미’였는데, 정작 회의 때는 ‘통일’이 ‘화해’로 바뀐 것이다. 부시행정부 출범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참석자들은 모두 ‘한반도 통일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한국에 통일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분단이라는 왜곡으로부터의 ‘정상화’이며, 전쟁과 불안으로부터 ‘평화와 안정’으로의 이행이며,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더니, 하워드 대령은 날보고 “미스 지는 웅변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참석자들이 바라보는 한반도 현실은 참으로 냉엄하고도 복잡한 것이었다.

뻬이징 칭화(淸華)대학 국제학연구소의 옌 쉬에퉁(閻學通) 교수는 한반도 통일의 의미가 세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 평화통일인가 무력통일인가. 둘째, 흡수통일인가 협상통일인가. 셋째, 통일 한반도의 정치체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 이 중 어느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겠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당사자들의 협상에 의해 통일되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통일되는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자주적인 중립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남북이 협상을 통해 통일한다면 북쪽의 입장이 무시될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미국과 통일 한반도의 관계가 현재의 미국과 남한의 관계처럼 밀착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터프츠(Tufts)대학의 앨런 웨크먼(Alan Wachman) 교수는 중국이 한반도 자주통일을 지지한다는 데 의문을 표시했다. 한반도에 대한 이해가 상충하는 미국과 중국이 현재는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는지 의문이며, 미국 영향하의 통일을 우려하는 중국은 한반도가 긴장은 완화되되 분단된 채로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또 과거 미국과 소련의 얄따협정이 한반도에 분단이라는 재앙을 가져왔듯이, 중국과 미국의 협력이 한반도의 앞날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 평화안보연구소의 와따나베 아끼오(渡邊昭夫) 교수도 한반도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긴 마찬가지였다. 한반도의 화해에 통일이라는 결론이 보장돼 있는 것은 아니며, 통일이 된다 해도 다양한 경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통일은 단기간 또는 장기간에 걸쳐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외부의 간섭을 불러오는 대규모 정치적 격변을 수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붕괴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평화유지군 등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게 될 것이며, 이때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그는 예상했다. 또 그 과정에서 미국, 중국 및 일본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주목할 일이라는 것이다.

랜드 아로요 쎈터(RAND Arroyo Center)의 토머스 맥노퍼(Thomas McNaugher) 부원장은 아예 직설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우려했다. 한반도의 자주적인 통일은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중국에 기운 한반도는 일본과 대항하게 될 것이며,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동북아시아 안보를 주일미군이 떠맡게 되는데, 그에 따른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미국 후방기지로서의 일본의 역할을 확실히하고, 중국의 전략적 핵무기에 대처해야 하며, 남북한의 군축과정에 주한미군을 연계시켜서는 안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 외교관 출신으로 워싱턴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만쑤로프(Alexandre Mansourov)는 뿌찐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아시아시장 진출. 둘째, 중국과 한반도의 정치적 안정. 셋째, 군사적 균형 유지와 긴장완화. 넷째, 약한 쪽을 이용하고 강한 쪽을 편들어 이득을 최대화한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한반도가 평화적·점진적·민주적·인도적으로 통일되기를 바라며, 남북 양쪽 가운데 우세한 쪽을 편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통일 한반도가 핵 무장을 하는 것엔 반대한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프린스턴대학의 길버트 로즈만(Gilbert Rozman) 교수는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는 데 강한 회의를 표시했다. 러시아는 한반도가 분단된 가운데 중국과 협력해 지역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 확대와 이익의 최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극동으로 연장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남한에서 생각하듯 남북한 철도를 연결해 부산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호뜨까나 블라지보스또끄와 연결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주변의 4강은 한반도가 ‘조용히 분단되어 있기를’ 바란다는 얘기였다. 우리에겐 삶과 죽음이 걸린 문제를, 남북의 충돌이네 북의 붕괴네 흡수네 협상이네 씨나리오를 늘어놓고, 자신들의 이해를 따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한편 곤혹스럽고 한편 치욕스럽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논리를 공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 영어가 너무 답답했다.

그런데 웨스트포인트 회의에서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정식으로 개진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당사자’로,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면서도, 마치 가장 객관적인 심판관인 양 다른 나라들의 입장을 듣고 훈수만 한 것이다.

 

 

3

 

사실, 하바드와 MIT, 터프츠 등 케임브리지 일원의 모든 대학의 강의가 방문연구원들에게 개방되어 있었지만,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강의나 전문가를 찾아보긴 쉽지 않았다. 반면 중국에 대한 하바드, 아니 미국의 관심은 가히 열광적이라 할 만했다. 중국에 관한 강의, 중국 전문가가 넘쳐났다. 중국에서 온 인민해방군 대령 쳔 져우(陳舟)는 우리 연구원들 중에서 영어가 가장 서툴렀지만 크게 외로움을 타지 않아도 되었다. 어디를 가든 중국어를 하는 중국 전문가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력이 한창 미국을 능가한다고 하던 80년대 미국에 온통 ‘일본 바람’이 불었던 것처럼, 최근 중국이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중국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하바드를 압도하고 있는 듯했다. 한반도의 미래는 그 미·중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바드 내 아시아쎈터가 마련한 케네디스쿨의 애슈턴 카터(Ashton Carter) 교수 초청 쎄미나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들어볼 드문 기회였다. 작년 10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던 그날은 우리 연구원들이 뉴잉글랜드의 단풍을 즐기기 위해 메인 주의 화이트 산으로 등산을 가기로 한 날이었지만, 모처럼의 등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으며 페리보고서에 깊이 관여했던 그는 보고서의 작성과정을 들려주었다. 보고서의 결론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제안하기에 앞서, 연구팀은 북한을 봉쇄하는 현상유지 정책에서부터, 김정일정권을 개혁하거나 그 붕괴를 부채질하는 방법, 경제적 보상을 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시키는 방법까지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에게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물어보았다. 그는 “북한을 위험하지 않은 나라로 관리하는 것이 포용정책의 목표다. 그 이상의 것은 역사에 맡기자는 생각이다. 통일을 하고 안하고는 한국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한반도 민중들의 손에 맡겨줄까?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웹싸이트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다룬 보고서를 하나 찾아냈다. 과거의 정책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정책을 제시한 드문 자료였다. ‘2010년의 미국과 동아시아’라는 제목으로 미 정보협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가 2000년 2월 17일 개최한 회의에서 로버트 매닝(Robert Manning)이 발표한 내용이었다. 제목은 ‘넘버원으로서의 모험: 2025년까지의 동아시아 상황과 미국의 정책’(The Perils of Being No.1: East Asian Trends and U.S. Policies to 2025)이라고 돼 있다.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 벌어질 가장 중요한 상황으로 중국의 부상, 일본 민족주의의 대두, 타이완해협 문제와 함께 한반도 통일문제를 검토한 것이다. 다만 이 보고서는 클린턴행정부가 한창 포용정책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작성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매닝은 ‘임박한’ 한반도의 통일은, 20세기초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이 그랬던 것만큼이나, 21세기 아시아의 지정학적 판도를 좌우할 결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보았다. 한반도 통일을 ‘임박한’ 기정사실로 본다는 것이 괜히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매닝은 한반도 통일이 미·중 관계와 미·일 동맹의 상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현재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이나 북한의 붕괴, 핵 확산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일치하지만, 통일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이 다가오면 두 나라의 이해는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중국이 강력하면서도 유연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미군을 철수시킨다면, 일본에서도 미군 주둔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고, 미·일 동맹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고 그는 보았다. 반면 중국이 한·미 관계를 무리하게 떼어놓으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서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과의 안보유대를 강화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일 동맹이 공고해서 일본의 군사적 역량이 제한을 받으면, 통일 한반도는 전략적 노선과 군사력 규모 면에서 덜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 있겠지만, 미·일 동맹이 약화되거나 흔들려서 일본이 독자 군사화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동북아시아 각국의 군비경쟁 속에 한반도도 안보역량을 강화하려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매닝의 보고서는 통일 한반도의 핵무장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1970년대에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바 있는 남한에서 관리·과학자·군관계자들이 지금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것은 최소한 기술적으로라도 핵무기 개발능력을 갖추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 한반도의 핵무장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데는, 미국의 핵우산 보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보고서는 통일 한국의 안보 선택을 네 가지로 상정했다. 스위스식 중립, 전략적 자주노선, 한·중 협력(entente), 미국과의 동맹 지속이 그것이다. 그러나 중립과 자주는 그리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미국에 있어 한반도와 중국의 협력은 당연히 가장 반갑지 않은 상황이겠다. 자주노선과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합한 것을 이 보고서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규정했다. 이 경우 안보조약을 개정해 한반도에는 소규모의 병참부대만을 두고 유사시 접근권을 보장받는 한편, 장비 제공 및 합동훈련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닝의 보고서도 그렇고, 웨스트포인트에서의 논의를 보면서도, 남들이 우리의 미래를 놓고 해부하듯 여러 가능성과 씨나리오를 분석하는 데 비해, 정작 우리 자신은 얼마나 냉철하게 미래를 연구하고 대비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내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북한과의 관계, 남한 내 보수파의 매카시즘적 시각,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도, 우리의 통일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크게 제한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4

 

지난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싸우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열린 연례 한국학회의도 올해의 주제는 ‘한반도와 4강’이었다. 토론자로 초청된 러트거즈대학의 유영미(劉永美) 교수가 주선을 해서 그녀의 호텔방에 같이 머물기로 하고 나도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전두환정권 시절 한국대사를 지낸 리처드 워커(Richard Walker) 교수가 이 대학에 설립한 ‘리처드 워커 국제학연구소’에서 8년째 한국학회의를 열고 있다고 했다. 정치분야에서는 국방분석연구소(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의 오공단(吳公丹) 박사와 노스웨스턴대학의 박동환(朴東煥) 교수, 그리고 미 국무부의 한국문제 분석관 존 메릴(John Merrill)이 발표를 했다.

메릴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과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정상외교, 유럽과의 외교관계 수립 등을 통해 종전의 ‘벼랑끝 외교’ 때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며, 북한의 개방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을 단순히 원조를 더 많이 얻기 위한 방편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자신이 보기에 이는 생존과 안정을 위한 북한의 ‘포괄적 안보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자 해결책을 쥐고 있는 미국이 자신들의 보증인(guarantor)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공단 박사와 박동환 교수의 발표는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로웠다. 오박사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한반도의 통일은 한반도 민중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하지만, 통일과정에서 이른바 외세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면서, 우리가 통일문제에 대처하는 데는 돌고래와 같은 지혜와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흔히 한국인들은 자신을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 비유해왔지만, 이제 한국은 경제적·정치적으로나 국제적 위치로나 돌고래 정도로는 성장했으며, 강대국들의 상충하는 이해를 기민하고 유연하게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국제 관리에서 자결로’(Koreanizing the Korean Problem: Challenges of Transition from International Management to Self-determination)라는 박교수의 발표 역시 비슷한 논지였다. “주변 강대국들은 과연 남북한이 추구하는 평화공존과 상호협력을 그대로 허용할까?”라는 자문(自問)에 박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자답(自答)한다. 현재로서는 주변 4강 중 누구도 한반도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초래될 불확실성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상유지를 바라는 4강이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한반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한국인들에게 불리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박교수의 시각이다. 한반도 문제를 한국화하라는 것이다. 신고립주의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역관계를 한반도에 유리하게 이용하라는 것이다. 주변 강대국들 대신,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으라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위한 박교수의 제안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들도 알고 있는 일들이다. 남북한의 화해를 가속화한다. 경제협력에 이어 군사적 긴장완화를 추진한다. 강대국들과의 문제에서 남북이 협력한다. 예컨대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공동대처, 북·일교섭에서 북한의 입장에 대한 남한의 지원 등. 중국에 대해서는 3각 경제협력과 함께 역사적인 유대관계를 존중하는 제스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중국·일본·러시아 등 지역 내 강국들과는 다른, 힘의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과 다른 나라들도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는다. 국제사회에 스포츠·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이 협력한다는 것을 보여주라……

 

 

5

 

이렇게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간단한 논문으로 정리하기 전에 동료 연구원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매주 수요일 교수회관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겸한 발표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올 3월 14일에 발표를 하게 되었다.

외교관이라 해도 일본과 중국, 타이완에서 온 친구들을 제외하곤 한반도 사정을 거의 모르는 터라, 나는 한반도가 어떻게 미·소에 의해 분단되었는지, 지난 반세기 동안 얼마나 지독한 분단이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이해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설명했다. 대부분의 동료 연구원들은 한국이 급속한 경제개발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데 이어 극적으로 남북화해를 진전시킨 데 대해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 미 공군 조종사 제프와 해군 조종사 케빈은 미국이 한반도 분단의 원인제공자이자, 통일의 걸림돌이라는 나의 시각에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별다른 코멘트를 않던 그들은 주한미군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동료들 앞에서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은 3월 24일부터 4월 1일까지 일본과 한국을 방문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1년 동안 세 번의 수학여행을 하는데, 캐나다 여행과 미국 남부 여행에 이은 세번째 여행이었다. 일본에 이어 만 이틀 반 동안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들은 한국 국제교류재단에서 마련한 프로그램 외에, 판문점을 관광(!)하고 용산 미8군 사령부에서 유엔사 부참모장 마이클 던 소장의 브리핑을 들었다. 미국 내 여행과 일본에서도 미군기지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 군부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아주 열심이었다. 던 소장은 북한이 얼마나 호전적이며, 주민들을 굶기면서도 얼마나 막강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강조하면서, 이런 사정은 남북정상회담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북한은 휴전선 이북에 전력을 전진배치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요컨대 남북화해 같은 건 없다는 투였다. 그리고 미군병사들이 가족과 떨어져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동료 연구원들을 별로 감동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프랑스 외교관인 도미니끄는 “그런데 북한은 왜 남한을 공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핀란드 외교관인 에르키는 소장에게 브리핑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하면서 알쏭달쏭한 소리를 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떠돈다는 점에서 외교관과 군인은 공통점이 있다. 우리들의 미국과 아시아 여행일정에 다섯 번이나 군부대 방문이 포함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판문점에서, 그리고 이곳 용산에서 한반도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이번 설명이야말로 결정적인 것이었다……” 에르키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 어떤 결정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한국여행 전에 내가 동료 연구원들에게 ‘한반도 통일에 얽힌 4강의 이해’를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