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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TV 사극, 역사의 행간에서 벌이는 게임

드라마 「태조 왕건」 「여인천하」를 중심으로

 

 

손병우 孫炳雨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sohn@cnu.ac.kr

 

 

바야흐로 텔레비전 사극의 전성시대인가 보다. 「태조 왕건」과 「여인천하」가 7월 현재 40% 안팎의 시청률로 인기 1위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고, 4위에 「명성황후」가 있다. 한참 처지지만 「홍국영」도 있고 또, 지금은 막을 내린 「천둥소리」 「목민심서」 등도 비슷한 시기에 편성된 사극들이다. 그전에도 사극이 최고 인기를 누린 적은 여러번 있었지만, 요즘처럼 동시에 여러 편이 기획되어 대부분 성공을 거두기는 참으로 드문 일인 듯싶다. 「질투」와 「종합병원」 이후 드라마의 주류를 이루어온 ‘전문영역을 소재로 한 트렌디 드라마’들에 시청자들이 식상해할 무렵 해서 새로운 돌파구로 등장한 장르가 그 정반대 성격의 사극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여기에는 「용의 눈물」(1996)과 「허준」(1999)의 큰 성공이 직접적인 자극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임꺽정」이나 「홍길동」도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다른 파급효과는 없는 단발성 인기였다. 그런데 「용의 눈물」과 「허준」은 역시 ‘되는 이야기가 된다’는 속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면서 드라마 전반의 구도를 사극 중심으로 이끄는 힘을 발휘했다. 「허준」은 1972년과 1991년에 이은성의 같은 대본으로 모두 큰 인기를 끈 바 있으며, 불과 8년 만에 다시 드라마화되었는데도 사극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 기록을 세우는 놀라운 흡인력을 보여주었다. 「용의 눈물」은 속편 격인 「왕과 비」로 이어졌는데, 그 사이에 있어야 할 세종의 치세는 건너뛰고 이방원과 수양대군 이야기만을 다룬 셈이다. 여기서 사극의 인기몰이의 핵심이 권력투쟁과 모략에 있다고 보는 방송사의 인식을 알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여인천하」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인천하」는 중종조를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정난정 이야기라고 하면 더 빨리 이해된다. 장희빈·장녹수와 함께 정난정은 사극의 3대 흥행 보증수표가 아니던가 말이다.

이와같은 사극의 흥행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스펙터클한 전투장면, 무협, 권력 암투, 순정한 사랑, 현실 비유, 영웅의 표상(인간 승리) 등 사극이 가지는 재미의 요인들은 제법 여러가지지만 또한 특화되어 있다. ‘특화되어 있다’ 함은 이런 재미의 요인들이 사극이기 때문에 허용되고, 또 사람들이 사극에 특히 기대하는 바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사극의 주인공들은 모두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허준이나 정난정처럼 사회의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온갖 역경을 극복하는 영웅도 있고, 왕건이나 세조처럼 군사적·정치적 영웅도 있다. 현대극이라면 그런 영웅의 표상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문이 제기되고 따라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지만, 사극에서는 기록된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작가가 창작한 에피소드들에서는 현대극보다 더한 과장도 허용된다.

예전에는 사극 하면 멜로 사극을 일컬었다. 여인의 순정과 기다림, 그리고 그런 사정을 더욱 애틋하게 만드는 신분의 장벽이 주요 모티프로 제시되었는데, 이를테면 한국형 쏘우프 오페라(soap opera)라고나 할까, 편성도 주로 일일연속극 형태였다. 「사모곡」 「임이여 임일레라」 「하늘아 하늘아」 등 제목만 떠올려보아도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사극 하면 여성 시청자를 주요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했고, 오죽하면 다른 분야와 다르게 사극 쪽에서만 유독 ‘남성’을 수식어로 하는 남성 사극이라는 장르 명칭이 다 나왔을까.

멜로 사극들이 80년대 후반 그 인기 수명을 다하면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남성 사극이다. 무협과 스펙터클을 가미하고 권력 암투를 내용의 주조로 삼으면서 멜로 사극을 외면했던 남성 시청자들까지 텔레비전 화면 앞으로 끌어들이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정통 무협물은 미약한 영역이지만, 무협적인 표현들은 부분적으로 가미된 경우가 많다. 이제는 드라마의 폭력 표현이 아주 세져서 각목이 예사로 등장하고, 스턴트맨이 유리창을 깨며 날아가는 장면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곡예 같은 액션이 허용되는 유일한 공간이 사극이었다. 시간 거리가 먼만큼 어느정도의 비현실성이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스펙터클한 장면을 담을 수 있는 것도 사극의 특성이다. 「임진왜란」이나 지금의 「태조 왕건」처럼 국가 사이의 전쟁을 다루는 경우, 더 볼만한 전투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미니어처를 만들거나 촬영용 쎄트장까지 짓고 있다. 이런 시도를 두고 한국 방송의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1992년에 방영된 삼국시대를 다룬 「삼국기」처럼 물량 투입의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한 경우라면 몰라도 「태조 왕건」의 경우 비용만큼의 효과는 내고 있어, 제작비 절감을 작품 의욕에 앞서는 절대요건으로 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극의 가장 핵심적인 재미는 역시 정치세력들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암투이다. 여기에서 대본과 연출 역량이 드러나고, 이 부분이 인기의 차이를 가르는 지점이다. MBC ‘조선왕조 500년’ 씨리즈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던 「설중매」에서 탤런트 정진은 한명회 역을 통해 일약 일급 연기자로 도약했고, 뒤이은 「풍란」에서 맡은 유자광의 “(모든 책략은) 이 손 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또 「여인천하」는 매회 “중전마마를 살려드릴 비책이 있습니다”라는 정난정의 대사로 끝을 맺고 있다. 「여인천하」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면 문정왕후의 회임이 사실이냐 거짓이냐를 놓고 시청자들 사이에 예측이 분분했는데, 그만큼 드라마에 대한 몰입이 강함을 알 수 있다. 화면의 크기가 작다는 점에서 텔레비전 사극은 영화의 스펙터클을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화면이 작기 때문에, 모략이 준비되고 진행되는 스튜디오 촬영 부분에서 텔레비전은 오히려 영화에 앞선다. 이것을 일컬어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행간을 채우는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온갖 드라마가 연출되고, 시청자들은 거기에서 매혹을 느끼게 된다. 「여인천하」를 두고 중종이나 조광조 이야기가 아니라 정난정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정난정이 그 행간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태조 왕건」에서도 궁예의 죽음과 더불어 정사와 야사에서 알려져 있던 극적인 큰 구도가 사라지게 됨으로써 점차 왕건의 후계 결정을 고리로 한 권력다툼 쪽의 줄거리를 부각하려고 애쓰는 걸 보더라도 사극의 이런 생리를 짐작하게 한다.

드라마 「여인천하」

드라마 「여인천하」

이처럼 권력 암투 부분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기 때문에 사극은 현실 비유의 효과를 갖는다. 즉, 사람들은 사극을 통해서 당대 현실의 맥락을 읽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양면성을 갖는데, 한편으로 현실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1984년의 「설중매」나 1998년의 「왕과 비」를 보면서 사람들은 수양대군 세력이 왕위를 찬탈하는 장면 위에 1980년 군부쿠데타 세력의 모습을 겹쳐 보기도 했는데, 한명회가 구사하는 주도면밀한 계략들이 드라마 속에서 발휘하는 매혹성으로 인해 시청자들이 그것을 현실 비판적인 쪽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에 반해 병자호란을 다룬 1986년의 「남한산성」 등 다른 많은 경우에 사극은 당시 현실을 비판적으로 비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정보기관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외압을 받아 중도하차하기도 했다. 또 「태조 왕건」은 그의 후사를 정하는 문제로 의형제와 공신 들이 대립하는 상황에 접어들고 있는데, 이로부터 한국정치의 한 특징인 가신과 공신 사이의 주도권 다툼을 읽어낼 수도 있다. 심지어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 사이에 서로 상대방을 가리켜 ‘아지태’ 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했다고 하니, 이런 사례들은 시청자들이 사극을 현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짓고 있는가를 알게 한다.

그러면 이런 현상을 두고 온고지신(溫故知新), 곧 옛일을 거울삼아 현재의 나아갈 바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 정치의 행간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주는 준거 텍스트 구실, 다시 말해서 신문 가십란과 같은 기능을 사극이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태조 왕건」이나 「여인천하」에서 나타나는 세력들 사이의 대결은 눈앞의 이권을 두고 벌이는 이해당사자들의 게임과 같다. 아지태와 종간, 종간과 왕건이 벌이는 게임 속에서 농민세력에 기반을 둔 궁예와 호족세력의 대표자로서의 왕건 사이의 대결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읽기는 참으로 어렵다. 더구나 그토록 매력적인 전인화와 강수연을 보면서 문정왕후와 정난정의 권력 농단으로 당시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추측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모략과 술수 쪽의 풍부한 상상력에 비해 역사의식 쪽은 너무도 빈약한 것이 사극의 현단계이다. 이는 결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갖는 한계인가? 그보다는 다양성의 층이 얇은 텔레비전 문화의 한계라고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