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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영화, 자본의 파시즘에 대항하기
백문임 『줌-아웃』,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1
심은진 沈銀珍
영화평론가·문학평론가 ejinshim@hanmail.net
영화의 이미지들은 스스로 움직인다. 영화는 움직이는 이미지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이미지들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영화는 그 어느 예술보다도 우리 정신의 수동성을 요구한다. 움직이지 않고도, 우리가 세계를 지각할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편안함에 대한 얼마나 큰 유혹인가. 움직이는 이미지들은 우리의 의식을 사로잡고 우리의 눈을 구속한다. 우리의 시선이 영화의 이미지들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이미지들이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영화 이미지의 능동성과 그 능동성이 끌어낸 우리 정신의 수동성은 영화를 초기부터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국가의 통제도구로 사용하게 만들었다.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유럽 제국주의의 문화정책 도구로 영화가 사용된 것, 영화광 히틀러가 파시즘의 선전도구로 영화에 대해 맹렬한 애착을 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신을 기꺼이 무장해제시킨 관객들 앞에서 영화는, 이념의 전파나 권력의 통제를 위한 더없이 훌륭한 수단이 된다. 영화와 정치의 관계는 이러한 토대 위에 출발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제 개인의 소외나 왜곡이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대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일상의 파시즘, 생산의 파시즘이다. ‘파시즘’이라는 동일한 근성에 의해 히틀러와 할리우드는 연결된다. 영화제작의 파시즘, 자본의 파시즘, 그 파시즘이 낳은 수많은 조악한 생산물들. 할리우드는 돈의 생리 앞에 무릎을 꿇은 영화 파시즘의 본산이고,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그 파시즘의 결과물들이다.
백문임(白文任)이 영화를 정치와 연결시켜 바라보는 것도 이러한 관점과 멀지 않다. 백문임은 『줌-아웃』에서 최근의 한국영화들에 나타난 이념과 탈이념의 문제, 성 이데올로기의 문제, 폭력의 문제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한국영화의 현상황에 대해 신랄하게 점검한다. 영화에 대한 열광을 돌림병처럼 번지게 하고, 무수한 사람들을 유혹해 극장 안을 가득 채우게 만드는 한국영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1부에서는 최근에 대유행한 한국영화들을 분석한다. 백문임이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최근의 한국영화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한국적 특수상황,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적 대치상황을 상품화해 성공한 작품들, 자본주의적 일상이 만들어내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들(그 안에는 치정과 멜로의 드라마, 포르노보다도 더 지루한 상투적인 성적 욕망의 이야기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욕설과 피가 스크린 위에서 난무하는 폭력물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멜로와 액션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들이다. 백문임은 이러한 영화들이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번복하고 또 재구성하는가, 우리의 욕망들이 어떻게 뒤틀려 영화 속에서 재생산되는가, 어떻게 이미지들이 자신의 조악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의 또다른 표현이다. 애정이 없다면 어떻게 그처럼 진지한 비판이 가능할까?
이 책의 2부는 사랑의 고백이다. 홍상수·이창동·박광수에 대한 작가론을 통해 백문임은 한국영화의 긍정적인 미래를 읽는다. 그것은 자본의 파시즘 속에서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한 전략을 읽어내는 일이다. 우리의 현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저장된 창고, 영화를 위한 메타 씨네마이다. 영화는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낯익은 이미지들을 꺼내와 수많은 조합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든다. 무한한 이미지들의 무한한 조합의 가능성, 이것이 영화가 지닌 창조의 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길어온 낯익은 일상의 이미지들이 스크린에서까지 낯익은 그대로 나타난다면, 그 영화의 세계는 현실의 일상보다 더 비루하고 초라한 모습이 된다. 영화는 현실 이미지들의 단순 재생산이 아니다. 영화는 삶의 위안이 될 수 없고, 삶의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해답이 될 수 없다. 영화는 낯익은 이미지들로 낯선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세계의 모습,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일상의 이미지들로 만드는 놀라운 신세계! 그러므로 영화는 이 세계의 모습을 잠시 유예해, 우리가 일상의 틀 속에서 생각하지 말도록, 일상의 모습으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문제적인 창조이며, 문제의 창조여야 한다. 백문임이 위의 세 감독의 영화 속에서 발견한 가치는 낯익은 일상의 이미지들로 만들어낸, 낯선 세계의 모습들이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삶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소중한 미덕을 지닌’ 감독들이다.
몇몇 외국의 영화를 고찰한 3부에서도 외국영화에 대한 비판과 애정은 1,2부와 맥을 같이한다. 이 글들은 미국영화 속에 감추어진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고발하고, 이러한 파시즘적 본성에 저항하는 창조적인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 4부는 시론으로 식민지 시대 프로영화들에 대한 글과 영화에서의 소리의 문제를 다룬 비교적 학문적인 글들이다. 대중영화·통속영화에서 작가주의 정신이 담긴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를 섭렵하고 냉철하게 비판한 백문임의 글들은 영화와 정치의 관계를 진지하게 논한 흔치 않은 글이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그녀의 ‘줌 아웃’이 너무 멀리까지 나아가서, 중심이 되는 대상이 모호해지는 모습을 본다. 영화는 소설이 아니고, 사진의 모음도 아니다. 영화는 나름의 고유한 장르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이 견지되지 못한 채 전개되는, 영화에 대한 논의들은 쉽게 다른 길로 빠지게 된다. 백문임의 글들이, 간혹 이야기를 분석하는 소설의 평문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영화에 대한 단순한 인상비평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등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줌 아웃’이 되어도 그 중심, 촛점은 영화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잘 지어진 따뜻한 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다 갑자기 씹게 되는 돌처럼, 목에 걸려 삼키기 힘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용어들을 발견한다. 그것들이 들뢰즈의 것이든, 알뛰쎄르나 라깡에게서 빌려온 것이든, 중요한 것은 그 용어의 사용이 아니라, 정확한 개념의 이해와 그것을 토대로 한 구체적인 분석일 것이다. 구체성이 결어된 채 사용되는 전문용어들은, 그저 추상의 깃발만 허무하게 날릴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미지의 표면을 지나 그 내부를 살필 수 있는 눈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적 장치들, 파시즘의 전략은 매우 교활한 것이어서, 영화 이미지의 표면 위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백문임은 현란한 몸짓으로 자신을 미화하는 이미지들, 자본의 파시즘이 만든 영화들의 정체를 간파할 줄 안다. 그리고 그러한 교활함에 대해 전략을 짤 수 있는 ‘밝은 눈’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