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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옥시덴탈리즘의 두 얼굴

샤오메이 쳔 『옥시덴탈리즘』, 강 2001

 

 

이종민 李琮敏

한밭대 중국어과 교수 jmlee@hanbat.ac.kr

 

 

에드워드 싸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이 중국에 수용된 싯점은 공교롭게도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서구의 제재가 지속되고,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티벳문제를 거론하면서 ‘황화론(黃禍論)’ ‘중국봉쇄론’이 유포되며, 전중국의 염원이었던 올림픽이 미국과 영국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중국인들의 반서구적·민족주의적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시기였다. 이러한 정서적 분위기 속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문화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넘어 서구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정한 중국문화의 본질(중화성)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담론으로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대내적으로 중국문화의 정체성 확립을 통한 민족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고 대외적으로 중국 중심의 대중화문명권을 건설하자는 논의로 나아감으로써 관변의 애국주의 담론과 공모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쳔 샤오메이(陳小眉)의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정진배·김정아 옮김)은 중국의 오리엔탈리즘 ‘오독’과는 한차원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이것은 물론 중국의 현실문제를 고민하면서도 그 현장의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서구의 지적 풍토 속에서 공부하면서도 그 개념 속에 파묻히지 않은 저자의 위치(중국 뻬이징 출생,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와 치열함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저자는 싸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분석하고 있는, 서양에 의해 구성된 식민지 타자에 대한 이미지들이 어떻게 제국주의 지배의 도구로 이용되고 피식민지인의 관점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싸이드 이론에 내재하고 있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일방적 지배 및 지역적 국한성 등을 비판하면서, 옥시덴탈리즘이라는 개념을 통해 동양에 의한 서양의 주체적 전유 가능성을 암시하고 마오 쩌뚱 이후 시기의 중국 정치·문화를 대상으로 삼아 그 이론의 현실성을 검증한다.

113-382옥시덴탈리즘은 서양의 문화제국주의 지배 속에서 동양이 어떻게 자기창조성을 가지고 서양을 정치·문화적으로 활용하는가에 주목한다. 그래서 옥시덴탈리즘의 관심은 서양의 제국주의적 동양 지배방식이 아니라 정치·문화적 목적을 위해 서양이라는 타자를 ‘오독’ 혹은 ‘조작’하는 동양(중국)의 담론방식으로 향한다. 저자는 서양을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중국의 옥시덴탈리즘을, 정권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목적으로 서양을 조작하는 ‘관변 옥시덴탈리즘’과 전체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서양을 정치적 해방의 은유로 사용하는 ‘반관변 옥시덴탈리즘’으로 구분한다. 저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두 가지는 서양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목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 서양을 ‘오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서양 ‘오독’을 통해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관변 옥시덴탈리즘과 반관변 옥시덴탈리즘의 본질적 차이나 대립이 아니다. 옥시덴탈리즘은 오리엔탈리즘의 역설이며, 반관변 옥시덴탈리즘이 관변 옥시덴탈리즘과 공모하는 현상을 저자가 통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의 궁극적 관심은 “동양/서양, 자아/타자, 전통주의/현대주의 그리고 남성/여성 등 서로를 갈라놓는 이항대립을 조장하기보다, 모든 ‘진리’들의 다양성을 찬양하면서 한 종류의 ‘진리’만을 주장함이 없이 이러한 이항대립적 대립들을 끊임없고 지속적인 대화 속에 참여시키는 것”(237면)에 있다.

그러나 쳔 샤오메이의 옥시덴탈리즘이 중국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세계사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오리엔탈리즘의 대안담론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문제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먼저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관계의 문제이다. 사유방식의 면에서 타자의 이미지를 자아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한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의 식민화를 정당화하는 서양의 문화제국주의 이론체계로서 그 자체 배타적·우월적 속성을 지니는 반면, 옥시덴탈리즘은 동양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일국적 담론으로 기능하는, 동일시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 자신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상호간의 문화 ‘오독’의 동일성 혹은 이항대립의 극복 문제에 더욱 주목한다. 그러나 중국의 옥시덴탈리즘이 서구 중심의 진화론적 세계관에 의해 배태된 근대화 담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것은 오리엔탈리즘과 맞먹는 타자의 ‘날조’라기보다는 서양 따라잡기를 위한 실용주의적 이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옥시덴탈리즘을 통해 서양은 식민화되지 않고 환상 속의 타자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국가간 문화교류의 ‘오독’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근대 중국인의 사유방식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중국/서구, 전통/근대의 이분법 속에서 사유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중국의 근대가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민족의 위기에서 시작되어 중국의 전통에서 벗어나 서구의 근대성을 따라가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틀 속에서 중국과 서구는 상호 대비적인 관계 속에 존재하는 유기물이 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러한 대비가 사유공간의 확장과 문화 창조를 위한 소통의 원리로 기능하지 않고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실용화된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서구와의 관계가 우호적일 때 서구는 중국이 따라가야 할 대상으로 설정되어 전반서화론(全般西化論)과 반전통주의가 득세하며, 반서구적인 분위기가 주도적일 때 서구는 중국이 저항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어 중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담론이 흥기한다. 이러한 사유 속에서 서구는 구체적인 역사가 탈각된 ‘이해되어진’ 서구에 가깝다. 이것은 주체의 성숙과 확장을 위한 타자와의 소통적 관계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사회·역사적인 조건과 주체의 정치적 관심에 따른 실용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간 문화교류에서 ‘오독’은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상호간의 소통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창조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권력적이고 실용적인 이해방식을 통해서는 새로운 문화 창조의 가능성이란 없기 때문이다.

쳔 샤오메이의 이론은 동양의 주체적 전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선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죽어버린’ 동양을 무덤 밖으로 되살려내어 이미 굳어버린 근대적 틀을 깰 수 있는 생명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생성원리’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작업과 연결되지 않을 때, 옥시덴탈리즘은 역설적으로 서구담론의 경계를 확장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변형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