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만해문학상 발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만해문학상의 제16회 수상자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11월 30일(금) 오후 6시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16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정희성(鄭喜成) 시집 『詩를 찾아서』
심사위원 고은 김병익 염무웅 최원식
2001년 7월
만해문학상 및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
◼ 수상자 약력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답청(踏靑)』(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詩를 찾아서』(2001)가 있음. 제1회 김수영문학상(1981), 제2회 시와시학상(1997) 수상.
심사경위 및 심사평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제16회 만해문학상 심사위원으로 고은(시인)·김병익·염무웅·최원식(이상 문학평론가)을 위촉하였다. 6월 22일 1차로 회동한 심사위원회는 실무진이 마련한 목록을 검토, 그 가운데 장편 한 권, 중단편집 한 권, 그리고 시집 세 권을 집중해 읽기로 하였다. 7월 18일 2차모임에서 심사위원회는 특히 중견문인들의 문학적 성과가 빛난다는 점을 기뻐하면서 여섯 권의 작품들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에 들어갔다. 그 결과, 만해의 문학정신, 빼어난 예술적 성취, 문단 경력, 그리고 이번에는 시집에 더 무게를 둔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희성의 『詩를 찾아서』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과작의 시인 정희성의 네번째 시집 『詩를 찾아서』에서 시인은 90년대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눈물겨운 시적 고투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다. 단아한 선비적 풍모로 독특한 고전적 시세계를 구축한 첫시집 『踏靑』(1974)으로 출발한 정희성은 70년대 민족문학운동에 동참, 자신의 시적 원천인 고전에의 매혹과 투쟁하면서 민중시로 나아갔다. 민중적 정향을 통해 고전적인 것을 재해석함으로써 독자적 민중시의 길을 개척한 두번째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는 그 눈부신 정화(精華)다. 그런데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꾸어버린’ 80년대에 시인은 밑모를 눌변으로 침잠하였다. 신군부의 폭력적 등장과 그에 대응하여 더욱 급진적 경향성으로 질주한 혁명시 사이에서 그의 내적 혼돈은 깊어만 갔던 것이다. 90년대는 또 어떠한가. 현존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자본의 무한한 탈주가 파노라마적으로 변주되는 우리들의 시대에 시인은 결곡하다,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 캐먹다 아사한 백이·숙제의 고사가 상기될 만큼! 이런 시인이 마침내 새로운 말길[言路]을 잡고 하산하였다.
정희성의 시적 귀환이 경이로운 것은 부정의 언어에 길든 민중시의 한 기울기를 타고 넘어섰다는 점에 있다. “공격적인 언어의 화살이 적들의 가슴에 꽂히기 전에 먼저 선량한 독자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히”고 급기야 부메랑으로 자신의 심성마저 황폐하게 만드는 이 부정의 폐쇄회로에서 유턴하여 시인은 시의 본향(本鄕), 그 어린애같이 오랜 낙원으로 돌아간다. 그 돌아감은 ‘고전의 숲’으로 복귀하는 것을 단순히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항이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겐 권력이 되”는 바람에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하는 이 묘한 세상,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긴 이 독한 해학 앞에서 시인은 오히려 “부드러운 눈매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고즈넉이 바라보는” 것이다. 그 자리는 초기시의 서늘한 관조도 아니고, 중기 민중시 시대의 치열하지만 성마른 갈애도 아닌, 무사기(無邪氣)한 대긍정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깊은 내적 고통 속에 마음의 밭을 경작함으로써 마침내 두 변을 여의고 아슬하게 평형에 도달한 시인의 따듯한 눈매에는 어느 틈에 어떤 종교적 아우라까지 은은히 배어나오는 것이다.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눈매로 구원(救援)의 詩를 찾는 새로운 도정에 오른 시인의 행보가 자욱자욱 아름답다.
[高銀 金炳翼 廉武雄 崔元植]
수상소감
詩가 있을 자리
정희성
어느 시절에 또 시집을 내게 될지 기약하기 어려운 터에 수상 소식을 전해듣고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20년 전 김수영문학상을 받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행적이 뚜렷한 선배문인들의 이름이 얹힌 문학상을 받으면서 영광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무거운 이름을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이 안된다면 그도 염치없는 노릇일 터이다.
이규보의 「백운소설」에 “한편의 작품에 옛 사람들의 이름을 많이 인용하는 것은 ‘귀신을 수레에 하나 가득 실은 체(體)’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나의 말로부터 해방되고 싶고 가능하다면 나 자신으로부터도 해방됐으면 싶다”고 쓴 적이 있는데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나는 또다른 이름 하나를 짊어지고 다녀야 할 형편이 되었다.
오래 간직해왔던 만해 시집을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펼쳐든다.
마치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세상을 경계하는 시구가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이 시구는 어느 때보다 지식인들의 자세가 문제가 되는 요즈음 문인들이 서 있을 자리가 어디인가를 되짚어보게 하는 바 있다─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어떤 모임의 자리에 갔는데, 거기 참석한 한 연사가 “사랑이 없는 정의는 폭력이 되기 쉽고 정의가 없는 사랑은 맹목이라 길을 잃기 쉽다”는 요지의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묘하게도 이 두 장면이 내 머릿속에서 겹쳐지면서 나를 건드리는 걸 느꼈다. 이 느낌은 곧바로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의 화살이 되어 꽂혀왔다. 너는 정말로 네 자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믿는가? 나는 고개를 젓고 있는 자신을 의식했다. 세상이 타락해 있을 때, 그리하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사람은 현실에서의 어려운 싸움을 통하지 않고는 어디에도 다다를 수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번 내 시집에서 사랑을 읽고 가고 어떤 이들은 저항을 읽고 안도하고 또 어떤 이들은 시를 찾아나선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우려의 표정을 짓기도 하는 것을 나는 안다. 실제로 이번 시집은 보는 이에 따라 달리 인상지어질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점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 시집을 구성하고 있는 몇가지 요소들이 이질적인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된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읽어내는 독자는 많지 않았다. 나의 의도와 독서현실 사이의 괴리가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내가 표현이 미숙한 탓일 듯싶다. 그런 가운데 이번 시집을 내고 어느 때보다 많은 엽서를 받았는데 그 훈훈한 우정이 눈물겨웠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나 할까. 변변찮은 시집에 좋은 글을 붙여 빛내주신 분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숙여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