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신동엽창작기금 발표
고 신동엽(申東曄) 시인의 문학과 정신을 기리고 역량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공동제정한 신동엽창작기금의 제19회 수여대상자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수여금은 1,000만원이며, 수여식은 11월 30일(금) 오후 6시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19회 신동엽창작기금 수여대상자
소설가 김종광(金鍾光)
심사위원 이선영 최인석 임규찬
2001년 6월
만해문학상 및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
◼ 수여대상자 약력
1971년 충남 보령 출생.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2000)이 있음.
심사평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로부터 금년도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은 이선영(문학평론가)·최인석(소설가)·임규찬(문학평론가) 세 사람은 2001년 6월 20일 창비사 회의실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은 신동엽창작기금의 선정원칙을 감안하며 소설가 세 사람과 시인 세 사람으로 심사대상을 압축하였다.
이후 심사위원들은 각자 대상 작품을 꼼꼼히 읽고 6월 27일 두번째 모임을 가졌다. 먼저 심사위원들은 세 시인도 만만찮은 개성과 역량을 가졌으나 거론된 소설가들보다 월등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편 소설 쪽의 세 사람을 놓고는 심사위원간에 여러 상이한 생각들이 오고갔는데 쉽사리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후보로 오른 한 작가는 소설이 갖추어야 할 여러 속성을 비교적 두루 만족케 하는 신뢰성을 주었지만 이후에 발표된 작품성과가 답보상태여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두 사람을 놓고는 다소 의견이 팽팽했다. 정통 리얼리즘 기법에 충실하게 기반하여 ‘월남전 고엽제’라는 역사적 주제를 오늘의 산 현실에 밀착시켜 그려낸 점이나 해당 작가가 지금까지 보여준 문학적 성과에서 진일보한 점 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신예인 또다른 작가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현실을 가볍게 다루는 듯 보여지지만, 그 속에서 보여지는 신선한 문학적 기운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장점과 약점이 상호 교차되는 대조적인 성격 탓에 쉬 한 작가로 의견을 모으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오늘의 다소 지리멸렬하고, 또한 새로이 변화되어가는 문학상황 속에서 신동엽의 문학정신을 단순히 현실성의 강도가 아닌 새로운 도전과 실험 성에 적극 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심사위원들의 고심어린 판단하에 후자에 낙점키로 의견을 모았다. 그가 바로 김종광이다.
1988년에 경찰서 안의 전경 등 여러 인물들을 익살스러운 화법으로 그린 화제작 「경찰서여, 안녕」을 발표하며 등단한 김종광은 이후에도 「많이많이 축하드려유」 「중소기업 상품설명회」 「분필 교향곡」 등 서민적 삶의 여러 양상을 능청스럽게 그린 수작들을 연달아 발표하였고 지난해 펴낸 첫소설집『경찰서여, 안녕』으로 이미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신예작가이다. 김종광은 마치 이문구의 뒤를 잇듯 충청도 사투리와 해학적인 문체로 소외된 우리의 삶을 그리되, 또한 직설적이지 않고 의뭉스럽게 에둘러 표현하는 독특한 문학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이문구식 문학세계와는 구별되는 자기만의 개성적인 문학세계를 일궈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 작가들의 경쾌한 문학적 탈주와 일견 흐름을 같이하면서도 손쉬운 현실 일탈 대신 현대적 감수성으로 색다르게 현실을 포착하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리얼리즘의 현대적 모색이라는 실험성과 변별력 면에서 한국문학의 쇄신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물론 전체적으로 문학적 현실 자체가 해학이나 위트에 종속되는 듯하고, 또한 서사의 무게가 가볍다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일반적인 우려를 그 역시 완전히 불식할 수준은 아니지만, 시류에 이끌려 독자적으로 자기세계를 구축하는 데 소홀한 이즈음의 문학풍토에서 그가 보여준 가능성은 위태로우면서도 그만큼 발전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엄정한 자기 관리를 통해 대도(大道)를 걷는 큰 작가로 성장하기를, 그리고 신동엽의 정신이 깃들인 기금이 그 길을 가기 위한 좋은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李善榮 崔仁碩 林奎燦〕
수혜소감
의무이자 권리에 충실하겠습니다
김종광
제가 하고 있는 것이 문학이라는 확고한 전제 아래, 투혼으로써 향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어떤 방향, 그 어떤 방향에 횃불로 서 계시는, 그리하여 저에게는 나침반으로 영원히 살아계시는 신동엽 선생님, 그분의 크나큰 이름이 붙은 기금을 저는, 염치불구하며 후안무치하게도 덜컥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학에 대한 경외와 찬탄을 바탕으로 문학을 향해 이 한몸을 바치려고 합니다. 제가 이 왜소한 몸뚱이를 바친다 한들, 저 장대한 문학의 바다에, 한 볼만한 지류를 형성할 수 있다면 영광이겠고, 아류에 머무를 수만 있어도 그중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제가 저의 인성을 바탕으로 글쓰기에 투신한다면 그 자체로서, 위대한 문학의 바다를 형성하는 작은 방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신해봅니다.
저는 제가 소설이라고 믿는 형태에, 제가 소설이 담아야 되는 내용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바들을, 조화한, 제가 소설이라고 믿는 그 소설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갈 것입니다. 이것이 저에게 주어진 고마운 기금에 대하여 제가 당연히 나아갈 바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문학보다 훨씬 폭넓은 깊이로 항상 저를 짓누르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언젠가는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바람부는 들판에 서 계시는 아버지. 아버지가 들판에서 이룬 도를 나도 소설에서 이루고 싶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시건방진 것인지 알게 되었으면서도, 아버지가 들판에 계시다는 자체만으로, 저는 아버지 앞에 고개를 똑바로 들 수 없었는데, 그런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선배작가님들이 아름다운 작품과 더불어 한국문학사에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저는 한국문학 앞에서 허리를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세대가 이루지 못한 것, 간과한 것, 통찰하지 못한 것, 볼 수 없었던 것, 그런 것들을 향해 새로운 촉수를 드리우고, 투혼의 문학을 전개해야 한다는 당위는, 젊디젊은 저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의무와 권리에 충실하겠습니다. 그것이 외람되게도 신동엽 선생님을 기리는 기금을 받게 된 저의 마땅한 향후라고 믿습니다.
많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