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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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목소리

 

 

진정한 언론개혁의 길 외

 

 

진정한 언론개혁의 길

올해 언론사 세무조사와 신문사주들에 대한 구속사태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었다. 정부의 조치가 순수한 언론개혁이냐 아니면 보복성 언론탄압이냐에 대해 해당 언론사들은 물론이고 정치권, 지식인 사회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과비평』 가을호가 마련한 좌담 「언론개혁, 어디로 갈 것인가」는 매우 의미있는 기획이었다. 정부의 조치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반영하듯이, 이 좌담에서도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엇갈리게 나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언론개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언론사 경영의 투명화, 편집권의 독립 같은 과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통된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정치권에 몸담은 입장에서 언론개혁을 위한 몇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먼저, 언론기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정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좌담에서도 몇몇 참석자가 지적했듯이,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의 시기와 방법에서 드러난 정부의 태도는 보복성 언론 길들이기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대통령의 언론개혁 언급 직후에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들어간 점이라든가, 언론사 세무조사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정도의 규모로 진행된 점은 비판적 언론에 대한 탄압이라는 의혹을 초래하였다. 우리가 그동안 ‘기업으로서의 언론’에 대한 세무조사가 일상화·관례화되어 있었다면 피할 수도 있었던 소모적 다툼이, ‘최초’라는 이유로 파문이 확대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세무조사가 기업활동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가치중립적 수단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언론사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 ‘편집권의 독립’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현싯점에서 어렵다면 단계적 접근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여러차례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번번이 처리가 무산된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편집권의 독립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되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언론기업의 기업공시 의무, 사원지주제 확대 등의 제도적 개선 없이는 소위 ‘족벌언론’ 또는 ‘언론사주’의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언론개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언론사의 내부구조를 개선해나가며 단계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언론개혁 문제는 우리나라의 전반적 개혁의 성패를 가늠하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인만큼 어떠한 정략적·정파적 의도도 배제한 채, 공익과 진실의 원칙 앞에 당당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언론개혁을 위해 필자 또한 정치의 현장에서 가능한 노력을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

한나라당 부총재 국회의원 이부영

bylee@assembly.go.kr

 

신대철·서정춘·송기숙의 작품

가을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중견 시인들의 시였다. 신대철 시인의 「실미도」는 아름다운 풍광에 바쳐지는 노래에서 한 섬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갑오징어 뼈’와 ‘수류탄 껍데기’가 떠밀려와 있는 실미도의 모래밭과 그곳에서 북파(北派) 훈련을 받다가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그의 시는 역사적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언과 충실한 문학적 형상화 사이에서 시는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정춘의 시들은 거짓말처럼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시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농밀하고 따뜻한 시의 행간을 지닌 시인을 찾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호흡은 일상의 속도를 정지시킬 만큼 느리고 마침표를 넘어서서 오래도록(그러고 보니 그의 시에는 마침표가 없다) 여운을 남겼다.

송기숙의 소설을 읽는 동안 편안했다. 작가가 독자를 차근차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를 다그치지도 거스르는 일도 없거니와 어떤 부분만을 특별히 강조하거나 그냥 지나치는 일도 없다. 독자는 그의 문장을 즐겁게 따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소설의 내용은 오래 전의 전쟁 때 이야기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그 일은 마치 주위에서 일어난 일 같았고 구체적인 실감을 주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4동 1465-23번지 김선형

 

좌담 「언론개혁,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읽고

나는 ‘개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변화되어야 할 현실이 없다고 여기거나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혁’이라는 이름이 마치 ‘무한정의’처럼 현실을 난타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3대 개혁이든, 교육개혁이든 또는 좌담에서와 같은 언론개혁이든 모두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았기 때문에, 정부에 의해 추진되는 정책이 절대선일 뿐만 아니라 절명의 과제로 여겨진다.

나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탈세혐의 사주들에 대한 구속을 지지한다. 그런데 그것이 ‘언론개혁’과 무슨 상관인가? 편집권, 기사의 질, 기자의 수 등 우리 언론은 좌담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구조적 ‘개혁’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점진적이고 시간이 요구되는 과정이며, 조세정의를 수호하는 국세청이나 법적 정의를 수호하는 사법기관의 일과는 무관하다. 아마도 ‘언론개혁’의 가장 큰 잘못은 ‘당장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조세정의, 법적 정의와 혼재시켜버린 것일 것이며,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현재 우리 언론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역사과정과 사회구조의 산물이다.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또는 독일이나 프랑스 언론 등의 사례는 그들의 역사과정의 산물이다. 그들의 사례가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의 모델이라면, 우리가 그들을 통하여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구체적인 소유형태나 편집제도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의 신장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와 알 권리의 신장이 다른 나라에서 오랜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낸 것이라면, 우리 역시 그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을지언정 한순간에 이루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점은 과감히 드러내되 해결은 점진적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좌담이 문제점을 과감히 드러내는 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안치영 ahncy@netian.com

 

논단의 주은우 글을 읽고

주은우의 「슬라보예 지젝의 라깡-헤겔-맑스주의」는 최근 구조와 주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여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지젝의 이론을 매우 포괄적이고 압축적으로 정리한 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지젝 이론의 정치적 배경에서부터, 흔히 관념론적 일원론자로 이해되는 헤겔에 대한 재해석, 라깡의 주체개념에 대한 계몽주의적 전유에서, 경쾌하고 도발적인 대중문화 분석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발표된 지젝 이론의 다이제스트판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난해한 지젝의 이론을 이만큼 압축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필자가 들였을 노고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아쉬움을 느꼈다. 우선 지젝과 라깡 이론의 낯선 개념과 용어, 공식 등을 친절한 설명이나 해설 없이 나열하고 있어 논의전개를 쫓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계간 『창작과비평』이 학술전문 잡지는 아닌만큼 이 글을 읽게 될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글을 청탁했더라면 좀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글의 주제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들고 싶다. 필자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글의 제목이며 아마도 주제일, ‘지젝의 라깡-헤겔-맑스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지젝이 라깡과 헤겔 그리고 맑스와 공유하는 부분이 무엇이고 갈라서거나 넘어서는 지점은 어디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지점에의 명시야말로 구조와 주체에 관한 지젝 이론의 핵심적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니만큼, 암호 같은 용어들과 생소하기만 한 공식들의 나열 뒤로 정작 ‘지젝에 관해 우리가 항상 알고 싶어했던 모든 것’은 묻혀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창비에서 잘 소화되고 되새김질된 이론소개를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1431동 1501호 정은서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는 내가 겪은 ‘미당 선생’을 말하고 싶다. 전두환이 구속돼 처음 법정에 서던 날, 나는 일면식도 없던 ‘미당 선생’에게 전화를 드려서 “선생님, ‘단군 이래 오천년 만에 처음 만나는 미소의 사람’이며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아야 할 사람’이 오늘 법정에 섰는데 선생님 소감이 어떠십니까?”라고 했다. 미당 선생이 “누구 말이오?”라고 하기에 “그야 전두환이지요. 선생님의 전두환에 대한 극도의 찬양이 옳았다면 전두환 구명운동을 하시든지 아니면 수많은 선생님의 독자들에게 사과를 하십시오”라고 했다. “기억에 없소”라는 말에 “그러면 제가 그 기억을 되살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한강을 넓고도 깊게 만드신 이여…… 우리 역사 또한 그렇게 만드신 이여……” 어쩌고 하는 이른바 ‘시’라는 것을 읊었더니 미당 선생은 “딱”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 두고 받으소서……”라는 ‘절창’까지 읊기 전에! 이것이 내가 겪은 미당의 모습이었다. 어째서 ‘미당 선생’은 ‘창씨개명’으로 성과 이름을 갈았던 시절부터 일제 찬양, 이승만 찬양, 박정희 짝사랑, 월남참전 찬양, 전두환 찬양에 이르기까지 ‘찬양’으로만 일관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까? 일제시대건 독재시대건 시인에게 완전하게 보장되는 단 하나의 자유가 있었다. 침묵의 자유! 그렇게도 ‘전두환 장군’에게 낯 뜨거운 찬사를 바치던 시인들 가운데 단 한사람도 구명운동을 하거나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순수시인’들의 모습이 서글퍼서 당시 『한겨레』에 이를 통탄하는 글을 보낸 적이 있다.

백담사 만해기념관 김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