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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행복한 페미니즘

달과 입술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동녘 2000

 

 

이박혜경 李朴惠暻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 수료

 

 

최근 우리는 한국 여성운동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한권을 가지게 되었다. 제목은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실천의 장에서 여성주의이론의 성숙까지도 보여주는 이 책은 90년대 대학에서 여성주의자로 성장해간 여성들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이 90년대 대학내 여성운동 전반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이 시대의 새로운 문제제기의 파격과 열의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해갈을 경험하게 한다. 대학내 여성운동의 확산은 여성운동의 저변 확대와 의식 심화의 반영이자 배경이기에 활자로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어주는 이들의 부지런함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나의 아름다운 전쟁」은 연세대 93학번인 글쓴이가 성정치(sexual politics) 문화제와 총여학생회장 선거전을 통해 성(sexuality)을 정치 의제로 제출했던 경험을 적고 있다. 「축제의 정치, 저항의 페스티벌」은 90년대 대학 여성운동의 중요한 형식이었던 문화제를 통한 저항의 활기를 증언해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대학내 성폭력 저지를 위한 투쟁을 기록한 글로, 성폭력 사건들을 통해 여대생이 성별(gender)적 지위를 자각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립 프로젝트 No.1」은 여성주의 자치질서 구축을 위한 노력을 소개한 글로, 학생회 조직의 위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을 학내와 대학간 여성주의 연대틀로 이어간 과정을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를 넓게 정의하면 여성의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여성다움을 힘이나 투쟁보다는 연약함·수동성·희생으로 구성해온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여성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여성임’을 둘러싼 갈등을 내포한다. 하여, 여성은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 순간부터 여성의 권리를 저해하는 사회적 권력뿐 아니라 자신의 성별화된 욕망을 성찰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남녀평등은 지지하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말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은 정확하게 이러한 현상을 꼬집고 있다.

109-384필자들은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페미니즘을 행복과 연관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다. 흔히 보수적인 일신의 안위가 질긴 유혹으로 작용해온 현실을 생각하면 보수적이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통쾌한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의 한 글쓴이가 말하듯 “‘즐겁다’는 말은 ‘쉽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68면) 이들의 재미 타령은 진지한 비판에서 비롯한 것인데, 여태까지 여성운동가는 자신의 문제는 간과한 채 다른 여성들을 계몽하고 구원하는 데 촛점을 두어왔고 또 지나치게 사명감과 희생을 강조해 운동가 개인의 소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등 다른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페미니즘의 가치를 믿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일차적으로 가족 내의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주어지기 때문에, 공적 발언을 하는 여성은 민족의 딸이나 어머니로 표상되어왔다. 따라서 집단으로서 여성독자의 이해에 충실한 발언은 정당화되기 어려웠으며, 곧장 이기적 행위로 개인화되고 그 정당성이 부인당했다. 이것은 한국 여성운동의 질곡이기도 했다.

내가 믿기에, 페미니즘은 새로운 지식이고, 새로운 정치이며, 새로운 생활양식이다. 지식으로서의 페미니즘은 기존 지식의 목록에 단지 첨가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에서 앎과 삶의 관계를 묻고자 한다. 그래서 여성운동이 다른 가치에 기반한 정치투쟁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새로운 정치로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전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은 한국 여성운동이 독자성을 키워오면서 얻은 인식이자 앞으로 구체화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것이 삶의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에서 일상은 앎의 재료이자 정치의 장이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도 사적인 행위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자각을 일깨운다.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여성운동이 나로부터 출발하고 나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필자들의 주장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일 것이다. 그래서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 은폐되어 있던 성을 정치 의제로 만들고 구조만이 아니라 일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으로 문화변동을 주도하려 한 필자들의 열정적인 경험을 읽을 때 한국 여성운동의 발전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일상을 정치화한다는 원칙은 페미니즘 실천을 유난히 어렵게 한다. 『여성과사회』(제6호, 1995)에 7,80년대 여성운동가들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이 여성운동가들은 대개 여성운동의 대의를 자각하고 운동에 참여했으면서도 페미니즘을 여성으로서의 개인의 삶과 연결시키는 힘은 적었다는 점을 성찰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는 결혼과 그러저러한 ‘여자의 일생’으로 구질구질해졌다. 개인사와 여성운동의 경험을 결합시키는 『나는 페미니스트이다』의 필자들도 이러한 구질구질한 이야기까지 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누구랄 것 없이 사적인 공간은 여전히 성별화된 체계에 침윤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가 계속 일상을 문제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으로부터’ 다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기정체화 과정에서 성별화된 주체로서 자기와의 고통스러운 직면이 드러났더라면 훨씬 성찰적인 기록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얘기다.

이 책의 각각의 글들은 나름의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성정치 논의를 공통의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성정치와 페미니즘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최근 논의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 책이 가진 장점의 이면이기도 한 이것은 필자들만의 한계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원적 성별구조의 해체와 남녀평등 의제를 연결하는 것이 한국 여성운동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이 보여주듯이 개인과 시대의 역사를 연결시키는 역사 쓰기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선 시대의 여성운동사도 조직운동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뼈와 살이 있는 이야기로 보충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이 가진 또다른 미덕은 이러한 작업을 은근히 독려한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어느새 평자도 힘있는 페미니즘의 즐거움에 감염되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