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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권채운 權彩運
1950년 충북 진천 출생. st_625@hanmail.net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겨울 선인장
길은 온통 반들반들한 얼음판이다. 희끔하던 하늘이 또 눈발을 뿌린다. 노파는 허리를 펴고 원망스런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점점이 흩어져 내리던 눈송이가 목화송이만큼이나 커진 것 같다. 그만큼 왔으면 됐지 얼마나 더 오려고 그러나. 노파는 중얼거리다가 누가 입을 틀어막기라도 한 양 얼른 입을 다문다. 요즘 들어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 노망기가 아닌가 생각되어 더럭 겁이 난다. 저만치 앞에 비디오가게 간판이 보인다. 비디오가게가 있는 모퉁이만 돌면 바로 집이다. 빙판길만 아니라면 까짓것 한달음에 가겠지만 지척이 천리라는 말이 꼭 이를 두고 한 말이지 싶다. 발에 얼마나 힘을 주고 걸었던지 발목이 시큰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괜한 걸음을 한 게야, 늙은이를 누가 반긴다고. 빙판에 넘어져 어디 부러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지청구를 어쩌려고…… 집을 나와 열 발짝도 못 떼어놓았을 때부터 노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후회였다.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인집 할멈의 말에 마지못해 따라나서기는 했지마는 빈소에 향이라도 피워주고 싶은 마음은 주인집 할멈 못지않았다. 이 눈 속에 저승길은 얼마나 막막할꼬. 택시를 불러서 휑하니 다녀오면 될 텐데 무슨 걱정이냐던 주인집 할멈은 길을 나선 김에 딸네 집까지 들렀다 오겠다면서 그녀를 큰길가에 내려놓고 달아나버렸다.
아침마다 며느리가 집을 나서면서 노파에게 하는 당부는 꼼짝 말고 집안에만 있으라는 거였다. 이번 겨울 내내 집안에 갇혀 있는 셈이다.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도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울 생각조차 않는 사람들이 오글오글 모여 사는 골목 안쪽의 다세대주택에 노파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쌓인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또 눈이 내리기를 거듭하더니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는 골목길은 두꺼운 얼음장으로 포장이 되어버렸다. 올 겨울에는 웬 눈이 그리 흔한지 텔레비전의 뉴스는 눈더미에 깔려 폭삭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며 얼어죽은 가축들을 보여주기에 바빴다. 19년 만의 폭설이라더니 금세 32년 만의 폭설이라며 야단들이다. 뜨듯한 집안에 들어앉아 텔레비전으로 보는 눈 내린 풍경은 그림같이 예쁘기만 했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졌으니 나라에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을 보며 노파는 울화가 치밀었다. 제집 눈을 제가 안 치우고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우는 게야. 한꺼번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와서 기막힌 일을 당했다고 해도 아무려면 그때만큼이야 할라구. 정처없이 나섰던 피난길에 들이퍼붓던 함박눈은 새까맣게 몰려왔다던 중공군처럼 꾸역꾸역 쏟아져서 그러잖아도 낯선 길에 천지 분간을 못하게 했었다.
노파는 머리를 흔들어 바로 어제 일처럼 눈앞을 가로막는 눈보라를 털어버린다.
가도 가도 눈밭이었다. 가기는 가지마는 가고 싶어 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꾸 뒤돌아보다가 앞서 가는 시부모를 놓치고 말았다. 등에 업힌 어린것이 계속 칭얼거렸다.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그녀를 앞질러갔다. 그녀는 길가에 퍼더버리고 앉아 아이를 돌려안았다.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방실 웃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렸지만 아이는 빨 생각도 않고 놀자고 들었다. 이 길로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일어서는데 무릎이 꺾였다. 다리가 꼭 남의 다리인 듯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겨우 서너 걸음이나 떼어놓았을까. 벽력같은 호통이 그녀의 덜미를 잡아챘다. 니가 우리 집안 씨를 말리려고 작정을 했냐? 시어머니였다. 피난가지 않고 남편을 기다리겠다고 버티는 그녀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업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앞장을 섰던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의 눈에는 오직 손자만 보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빨리 의용군 나간 아들을 포기하고 손자에게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지금까지도 남편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생각만 해도 기가 질린다.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시어머니보다 열두 해나 더 산 지금도 매한가지다. 빌어먹을 할망구. 노파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구시렁거린다. 얼음장 위에 살포시 눈이 덮여서 움쩍하기만 하면 쭉쭉 미끄러진다. 노파는 한 발짝 떼어놓기를 바둑돌 놓듯이 한다. 누가 좀 붙잡아주었으면 좋으련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들고 날 좀 잡아주슈, 할 만큼 반죽이 좋은 것도 아니다. 노파는 눈뜬봉사나 다름없이 더듬대며 어기적거린다. 차라리 엉금엉금 기어가는 편이 수월할 성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두어 번 미끄러지는 바람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축축하고 허리를 삐끗한 것 같다. 근근이 골목길을 지나 다세대주택의 현관 문고리를 잡고 나자 휘파람 같은 한숨이 다 나왔다. 노파는 계단을 내려가 101호의 문을 열고 털신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채 벌러덩 드러눕는다. 천리 길도 걸어갔다 걸어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엎어지면 코 닿을 데를 진땀 흘려가며 걸어온 걸 생각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은 화분에 눈이 간다. 줄긴지 이파린지 끝에 생일케이크 양초만한 빨간색 꽃봉오리를 달고 있다. 한겨울에 선인장 꽃이라니, 희한하기도 하지. 하기사 요새 세상은 겨울에 꽃피는 게 별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지금쯤 영안실에 뻣뻣하게 굳어 있을 307호 할멈이 한달 전에 노파에게 선물한 화분이었다.
이게 꼬락서니는 이래 봬두 아주 이쁜 꽃이 숨어 있어. 그저 비썩 마르지 않을 정도로 잊어버릴 만하면 한번씩 물을 주고 햇볕이나 쬐어주면, 요 이파리 끝마다 빨간 꽃이 쏘옥 나온다니까. 꽃이 죽 둘러가며 피면 꼭 촛불을 켜놓은 것 같아. 이게 뭐라는 선인장인데? 몰라 나두. 예전에 어디서 한 쪽 얻어다 심었던 거라서. 귀한 거라며 왜 날 주는 게야? 애들이 자리 많이 차지한다고 내다버리래. 선인장처럼 생겼어두 그 흔한 가시 하나 없는데 어때서? 하기는 13평에 다섯 식구 살기는 비좁지.
그게 마지막 선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동갑내기라 ‘매장’에서 만난 친구 중에 유달리 마음이 가던 친구였는데, 이리도 허무하게 떠나다니…… 참, 그 할멈 대단해, 대단하구말구. 아무래도 그 할멈이 스스로 곡기를 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그만한 일에 마음을 상해서 그이답지 않게 두고두고 고시랑거리더니 그예 일을 내고 만 것 같았다. ‘매장’에 들락거리는 늙은이치고 여기저기 한두 군데 아프지 않은 이가 없었지만 307호 할멈만큼은 정정하기가 환갑쟁이와 맞먹을 정도였다. 13평 아파트를 혼자 통째로 차지하고 사는 207호 할멈 집에 늙은이들이 모여서 부침개를 해 먹거나 칼국수를 해 먹을 때도 노상 부엌일을 도맡아서 해내던 이가 307호 할멈이었다. 입 바지런한 사람이 손도 바지런한 법이라지만 그 할멈은 군소리 한번 없이 솜씨를 발휘하여 늙은이들의 군입질 거리를 대령하곤 했다. 자리보전했다는 소리를 듣고 늙은이들 몇몇이 요구르트 한 봉지를 사들고 문병갔을 때도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하게 누워 있었다. 밥풀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게 아마도 갈 때가 다 된 모양이라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곡기를 끊었다고 한 지 딱 열흘 만에 307호 할멈은 저승으로 갔다. 명이 그뿐이었을까. 저승길이 무섭다는데 동무해서 가자더니 어째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갔을까. 유난히 신명이 많았으니 어깨춤이라도 추면서 갔으려나. 307호 할멈은 ‘매장’에서도 주인집 할멈과 나란히 맨 앞줄을 차지하고 앉아 있곤 했다.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참지 못하고 제일 먼저 무대로 뛰어올라가던 할멈이었다.
웬수놈의 매장.
텔레비전의 ‘뉴스 추적’ 같은 프로에까지 나왔던 매장은 홍길동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늙은이들을 유혹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여름, 이 동네에 왔던 ‘제일아스트라’는 백평이 넘는다는 넓은 공간에 대형 에어컨을 세 대나 틀어놓아서 30도를 웃돌던 더위를 피한다는 핑계로 늙은이들을 여름 내내 거기서 살다시피 하도록 했다. 세제니 식용유니 생활필수품에서부터 온갖 건강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시계며 액을 막아준다는 금으로 그린 달마상 열쇠고리에 특수 건강속옷에다 가전제품까지, 매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매장에서는 흘러간 노래뿐만 아니라 신식 노래도 신명나게 가르쳐주었고, 씰버 에어로빅이라는 새로운 춤까지 가르쳐주었다. 거기에는 아무리 수줍음을 타는 늙은이도 함께 일어나 몸을 흔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본부장이 어쩌면 그렇게 늙은이들의 가려운 데를 기막히게 알아내서 긁어주는지, 늙은이들은 지금까지도 모여앉기만 하면 서로 질세라 침을 튀겨가며 그의 손짓 하나 눈짓 하나까지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머니, 오늘도 이 아들의 재롱이 그리워서 허둥지둥 달려오셨지요? 먼저 어머님들께 노래 한곡 올리겠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한바탕 신바람을 일으키며 서너 곡 불러젖힌 본부장은 어머니— 하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간절하게 그녀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한사람 한사람 눈을 맞추며 매장 안에 꽉 들어찬 할머니들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돈? 돈은 뒀다 뭐합니까? 손톱이 닳도록 자식들 뒷바라지해서 웬만큼 살게 해놨으면 됐지, 얼마나 더 자식들한테 남겨주려구? 아유 그런 구닥다리 노친네는 육이오 때 다 죽은 걸로 아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나?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문안 인사하는 아들이 몇이나 됩니까? 자, 여기 혼자 사는 어머님들 손 한번 들어보세요. 저런, 저런, 반이 넘네. 그래 자식들이 한달에 몇번이나 어머니를 보러 옵니까? 일주일에 한번 오면 큰 효자지. 에라, 인심썼다. 월급날이면 생활비랍시고 통장으로 돈 십만원 부치고는 자식노릇 다 했다고 입 싹 닦는 아들도 효자 축에 넣어주지 뭐. 그나마 손 안 벌리는 것만도 어딘데. 자, 그런데 어머님들 행복하십니까? 아니, 어머님들 어디 가셨나? 얼굴이 웃기는 웃는데 왜 찡그리고 웃나? 아이구, 허리가 아파? 신경통에, 관절에, 밤이면 밤마다 잠이 안 와. 일어났다 앉았다 엎드렸다 뒹굴었다 별짓을 다 해봐도 밤은 또 왜 그리 긴지. 죽은 영감 아무리 불러봐야 소용없고 아들한테 전화해봤자 그만한 일로 바쁜 사람 오너라 가거라 한다며 툴툴거릴 게 뻔하고. 어째야 쓰꺼나. 바로 그때 생각나는 ‘키토산’. ‘키토산’을 진작에 먹었더라면 하고 땅을 치면 이미 늦은 거야. 오늘 한정 판매로 열 분만 모십니다. 오늘 구입하시는 어머니께는 티켓을 서른 장씩 드립니다. 벌써 백 장 모아서 압력솥을 타가신 어머니가 열다섯 분입니다. 이제 압력솥이 다섯 개밖에 남지 않았어요. 자, 줄 서요 줄. 딱 열 분입니다.
존댓말을 했다 반말을 했다 가락을 실어 설레발을 치는데, 넘어가지 않는 늙은이는 단단히 각오를 했거나 주머니에 동전 한닢도 없는 이뿐이었다. 한달이 넘도록 잘 참던 307호 할멈이 열번째로 가서 줄을 섰다. 아니, 저 할멈이 왜 저래? 50만원이면 큰 돈인데, 돈이 어딨다구? 마음 같아서는 할멈을 줄에서 끄집어내고 싶었지만 어느새 팡파르가 울리고 무대에서는 덩더쿵 춤판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번에 무좀 때문에 고생한다는 아들 준다고 양말 두 켤레를 사서는 이게 3만원짜리라고 눈치없이 아들한테 실토하는 통에 한동안 매장 출입조차 못했던 할멈이었다. 망할 놈의 ‘키토산’. 그놈의 게 좋다는 바람에 ‘키토산’이 들어갔다는 3만원짜리 양말에, 5만원짜리 무릎보호대에, 7만원짜리 속바지까지 가당찮은 호사를 부렸지만 신경통은 신경통대로 관절은 관절대로 조금도 낫는 기색이 없었던 것이다. 주인집 할멈이 참 신통하더라고 앞에 나가 너울너울 춤까지 추어가며 선전하는 데 솔깃해서 며느리 몰래 꿍쳐두었던 쌈짓돈을 털어 샀던 것인데, 주인집 할멈한테는 효과가 있었던 그놈의 ‘키토산’이 노파에게는 도무지 시늉도 하지 않았다.
주인집 할멈은 매장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다. 일등고객으로서 하루에 한번씩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본부장의 넓적한 등에 업혀 둥실둥실 춤을 추며 무대를 한바퀴 도는 동안 거기 모인 늙은이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을 뿐만 아니라, 새 상품이 나올 때마다 무턱대고 사서는 앞장서서 선전까지 하느라고 그 멋진 본부장과 무대에 나란히 서서 손잡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날이면 날마다 환갑 잔칫날 같았던 것이다. 매일 한가지씩 나눠주는 화장지나 구운 김도 다른 사람보다 갑절로 탔으며, 매장이 철수하기 전에 티켓을 5백장이나 모아서 김치냉장고까지 탔다. 매장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늙은이들간에도 미쳤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뒷소리가 있었지마는, 그렇게 마음놓고 돈을 쓸 수 있는 주인집 할멈을 부러워하지 않는 늙은이는 한사람도 없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변호사인 큰아들을 필두로 ‘사’자 돌림의 아들이 넷에다가 큰 식당을 한다는 딸까지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월세만으로도 얼마든지 으스대며 살 수 있는, 죽은 영감이 물려준 다세대주택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늙은이들간의 인기로 치자면 307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재바른 음식솜씨며 구수한 입담에다 한가락 구성지게 넘어가는 유행가는 그네들의 심금을 울렸고, 어디에 새로 매장이 생겼다는 정보나 ‘마씨세븐’이니 ‘쎄라젬’이니 ‘미건’ 같은 최신식 기계로 물리치료를 공짜로 해주는 데를 알아내는 것도 누구보다 먼저였으며, 찜질방의 무료티켓을 구해오는 데도 선수였던 것이다. 그러니 무슨 재미난 일이 없을까 했을 때 으레 바라보게 되는 이가 307호 할멈이었다. 307호는 그런 늙은이들의 기대를 한번도 저버리지 않았다. 늙은이들끼리 무료하게 둘러앉아 어깨가 쑤시네 등이 결리네 하고 궁상을 떨다가도 307호가 들어서면 금세 활기를 찾곤 했다. 그녀는 별것도 아닌 얘기를 가지고도 늙은이들을 웃음바다로 몰고 가는 재간이 있었다. 잘산다는 작은아들네서 편히 모시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가난한 큰아들네서 살았던 것은 고생하는 며느리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요량이었던 것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빌딩 청소부로 일하는 며느리와 손자들의 도시락을 쌌고, 다 큰 손자들과 한 방에서 복닥거리고 살면서도 얼굴에 웃음기가 가신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젊은것들도 귀찮아하는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자니 아무리 나이답지 않게 정정하다고는 해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드러내놓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여기저기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307호는 남들이 다 사는 걸, 그걸 하나 못 사고 허구한 날 맨 앞에 앉아 촐싹거리기만 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거기 앉은 늙은이들 누구나가 소원하는 본부장의 넓적한 등에 업혀 들썩거리며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앞뒤 재보지도 않고 덜컥 ‘키토산’을 샀을 것이다. 내남없이 제 몸 위하자고 정체불명의 약을 덥석덥석 사들이는 늙은이를 좋아할 자식들은 한명도 없었다. 307호는 그걸 가지고 아들이 몇마디 한 것을 그렇게 섭섭해했다. 평소의 그이 같으면 저도 늙어보면 알 테지, 안 늙는 장사 있어? 하고 대수롭잖게 넘어갔을 터인데, 그리 되려고 그랬는지 두고두고 마음을 풀지 못하고 옹크리고 있더니 그예 숟가락을 놓아버리고 만 것이다.
자식들 앞에서는 어서어서 죽어야지 하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늙은이들도 끼리끼리 모여앉았을 때는 빈말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좋은 세상에 먼저 가는 놈만 억울하다는 소리를 내놓고 하는 축들이 더 많았다. 노파는 이런 말도 저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살아온 것에 비추어보면 앞으로도 무슨 대단한 영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몸을 구구하게 이끌고 혼자 된 며느리에게 얹혀사는 나날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이제라도 그만 팍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구치고는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밀치고 따라붙는 것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며느리나 손녀가 그녀를 필요로 할 거라는 구차하기 짝이 없는 구실이었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옛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남편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평생 동안 그녀의 속에 단단히 뭉쳐 있는 간절한 소망이 그녀로 하여금 삶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지도 몰랐다. 이십년 전, 생때같은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아들과 함께 묻어버렸던 그 소망이 요즈막에 들어서 슬금슬금 그녀의 속에서 꿈틀대는 것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기적이 일어나고부터였다. 아니겠거니 하면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북에서 보내온 명단이라는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한 신문을 눈앞이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고 했던 것이다. 그들은 거의가 남편처럼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북으로 간 사람들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언젠가는 그들처럼 만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5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아무런 할말을 갖지 못한 늙은 내외가 데면데면하게 서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제 와서 만나봤자 만나지 않느니만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텔레비전에서 남북이산가족 얘기만 나왔다 하면 노파는 저도 모르게 그 앞으로 다가앉는 것이었다. 첫번째 상봉이 있었을 때, 며느리가 우리도 상봉신청을 하자고 했지만 노파는 펄쩍 뛰며 만류했었다. 혹시 그쪽에서 찾는다면 모를까 무슨 낯으로 남편을 찾아나선단 말인가. 지금의 꼬락서니는 어디다 내놓고 자시고 할 주제가 못되었다.
무어 대물림할 것이 없어서 못된 팔자나 대물림하는 것인지…… 노파는 한번도 떳떳하게 며느리 얼굴을 마주보지 못했다. 청상과부로 늙을 팔자는 한 집에 하나도 많다며 손녀딸을 맡아 키워줄 테니 팔자를 고치라고 며느리를 내몰다시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정해진 팔자를 거스른다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봐, 이봐. 큰일났어, 큰일.”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하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노파는 부스스 일어나 호들갑떠는 주인집 할멈을 멀뚱히 바라본다.
“이러구 태평으루 있을 때가 아녀. 정신 차려, 이 할망구야. 문두 안 잠그구 늘어지게 잠이나 퍼대구 있을 처지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주인집 할멈은 붉으락푸르락 난리도 아니다.
“웬 수선이여, 수선이. 난리라도 났대?”
“아, 지금 이렇게 한가할 때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 집 며느리 바람났어, 바람이 났다구.”
“무슨 소릴 하는 게야? 어디서 무얼 보구 와서 헛소리를 해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두?”
주인집 할멈은 속이 타 죽겠는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켠다. 겨우 숨을 돌린 할멈은 혀부터 찼다.
“세상에 별일두 다 있지. 그게 말야, 그 사람이더라구. 제일아스트라 본부장. 아유, 세상에, 이 집 며느리를 감싸안듯이 하고 걸어오는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내가 아주 그 자리에 오금이 저려서 꼼짝두 못하겠더라니까. 어, 하는 사이에 둘이 차를 타고 내빼더구만.”
“잘못 본 거지. 우리 며늘애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어.”
“아니, 이 할멈이 생사람 청맹과니 만들구 앉았네. 다른 사람두 아니구 그래, 내가 제일아스트라 본부장을 못 알아보겠는가?”
“아, 그 사람이라면 할멈을 못 알어보구 그래 인사두 없이 내뺐겄는가? 말두 안되는 소리 하덜 말어. 오매불망 본부장을 그리워하더니 이제는 세상 남자가 다 본부장으로 보이남? 아녀, 세상에는 쌍둥이처럼 꼭 닮은 사람두 있는 벱이니까. 테레비두 못 봐? 너훈아두 있구, 조용팔이두 있구. 아주 판에 박은 것만치 똑같던걸.”
“글쎄, 할멈 말을 듣구 보니 그런 것 같기두 하구. 하긴 지가 날 그리 외면하면 사람두 아니지. 아무려나 이 집 며느리는 틀림없었어. 날 보더니 깜짝 놀라서 고개를 홱 돌리고 냉큼 차에 올라탔으니까.”
“그래? 그렇담 잘된 일이네. 큰일은 무슨 큰일이라구 오두방정이야?”
“할멈 하구는…… 그래, 아무렇지도 않어?”
“더 나이 먹기 전에 좋은 사람 만났으면 잘된 일이지. 그외에 더 좋은 일이 어딨나? 걔도 곧 쉰을 바라보는데……”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서두, 할망구가 걱정이 돼서……”
“나?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무얼 더 바래? 이제 그만 어서어서 가야지.”
“그게 그리 맘대로 돼?”
“왜 안돼? 307호 봐. 훌쩍 떠나니 그걸루 그만이더구먼.”
“그야 명이 그뿐이니 그런 거지 뭐.”
“팔자 드런 년이 웬 명은 이리 길게 타고났는지 원……”
“백수 노인이 수두룩한 세상에 칠십이면 안적두 멀었어.”
서너 시나 됐을까, 짧은 겨울해에 불을 켜지 않은 반지하의 거실이 어둑어둑하다. 어두운 걸 싫어해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불부터 켜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오늘은 불도 켜지 않았나보다. 노파는 일어나서 불부터 켜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느닷없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하는 가락이 멈칫하고 있는 두 늙은이 사이를 가른다. 주인집 할멈은 목에 걸고 있던 휴대폰의 폴더를 기세좋게 열어젖힌다.
“여보세요. 그래, 잘 왔다. 모범택시가 집앞까정 척하니 모셔다줬는데 뭔 걱정이냐? 됐다. 바쁜데 어서 끊어라.”
“아니, 또 뭐가 틀어져서 그렇게 퉁명을 떠누? 딸내미가 잘 갔나 하구 전화했으면 됐지. 하여간에 끝도 없다니까. 에구 저 비위를 누구라 맞추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 하덜 말어.”
“모르긴 뭘 몰러? 이젠 효자 자랑하기도 지쳤남? 택택한 아들 넷이 한달에 이십만원씩 따박따박 통장에 넣어줘, 철 바뀌기 무섭게 백화점에 모시고 가 옷 사주는 딸이 없나, 어디가 찌뿌드드하다고 전화만 하면 며느리가 득달같이 모시러 와. 얼마나 더 호강을 해야 성이 찰꾸?”
“내 통장? 요전번에 큰애가 뺏어갔어. 지난 여름에 제일아스트라에 죄다 갖다바쳤다구 이제 일일이 저한테 타서 쓰래. 말두 마. 지난달 내 생일에 죄 모여서는 얼마나 찧고 까불고 해쌓던지 그럴려면 생일이고 뭐고 다 관두라고 한소끔 했잖여. 그래두 어렵게 사는 막내가 그중 살갑드라구. 어머니가 여름 내내 거기 가서 즐겁고 행복했으면 그만 아니냐구, 저희들이 언제 어머니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었느냐고 하면서 어머니가 십년은 젊어진 것 같다구, 그런 재미난 데가 있으면 또 가라더구먼. 그 말 한마디 했다가 즈이 형들한테 몰매 맞을 뻔했지. 그 모양이니까 아파트 평수 하나 못 늘린다느니 만년 차장이라느니. 그뿐인가, 둘째는 못할 소리까지 하데. 너, 어머니 집 노리고 그렇게 어머니한테 입에 발린 소리 하느냐구. 잘살면 뭐하나. 골프다 모임이다 바쁘게 돌아가느라구 언제 에미랑 놀아줄 틈이 있어야지. 누가 돈 달래? 가끔씩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주들 얼굴이나 봬주면 될 텐데두 그것들은 또 뭐이가 그리 바쁜지, 지난번에 보니까 훌쩍 커버려서 어떤 놈이 둘째네 앤지 어떤 놈이 셋째네 앤지 분간을 못하겠더라구. 킷배기만 커갖구는 그저 꾸뻑하면 그만이구, 즈이들끼리 어울려 컴퓨터에 붙어앉으면 아무리 불러도 들은 체도 안해. 이 집 손녀들 보면 부러워 죽겠어.”
“하다 하다 별소릴 다 하는구먼.”
“아녀, 진심이여. 어제도 은행에 다니는 큰손녀가 할멈 안마해주는 거 보구 집에 올라가서 한참을 훌쩍거렸다니까. 그까짓 안마기계 백개가 있으면 뭐해? 나긋나긋한 손으로 통통통통 두드리면서 할머니, 시원해? 하며 눈 맞추고 방실방실 웃는 게 훨씬 낫지. 어쩌니저쩌니 해도 101호는 복 있는 할멈이라구.”
“부잣집 할멈이 그렇다면 그런 중 알아야지 뭐.”
노파는 선인장 쪽으로 눈을 돌리며 피식 웃고 만다. 그새 꽃봉오리가 조금 커진 것 같다. 테레비 할 시간 안됐어? 주인집 할멈이 텔레비전을 켠다. 화면조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할멈이 그만 올라가봐야겠다며 일어난다. 다른 때 같으면 저녁 먹고 가라고 붙들었을 것이지만 오늘은 만사가 귀찮다. 혼자 밥 먹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줄 서로 빤히 아는 까닭에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서로 불러서 같이 먹을 때가 많았다.
“제일아스트라는 또 안 올래나? 돈은 날렸어두 그때만큼 재미난 때가 없었는데…… 이상하지? 그때는 감쪽같이 아픈 데두 없었다니까. 거기 갈 생각만 하면 그냥 엉덩이가 들썩거리구 신바람이 나설랑 밥두 못 먹구 돌아쳤던 걸 생각하면 홀리긴 홀렸던가벼. 애들은 그래싸두 나는 돈 아깝다는 생각이 통 안 들어.”
“그렇게 혼찌검이 나구두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먼.”
“에구 에구, 사돈 남말 하네. 101호두 쌈짓돈 다 털렸지?”
“나야 뭐, 털리고 자시고 할 거나 있나?”
말을 안해 그렇지 그때 거기 드나들던 늙은이치고 일이백만원 털리지 않은 이가 없을 거였다. 두 눈 번히 뜨고 바가지를 홈빡 썼으면서도 무슨 활수나 되는 것처럼 한여름 한바탕 잘 놀았다고 대수롭잖게 여기게 된 것 역시 본부장의 단수 높은 판매전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어머니들 덕분에 회사에서 판매왕이 되었다면서 그 상금으로 걸판지게 한턱을 냈던 것이다. 본부장은 많이 팔아준 늙은이나 적게 팔아준 늙은이나 가리지 않고 관광버스 다섯 대에 늙은이들을 몽땅 싣고서 설악산으로 백암온천으로 이박 삼일 동안 그야말로 끝내주게 놀린 다음 매장을 철수했다.
“어서 어서 눈이 녹아야 ‘쎄라젬’에라도 갈 텐데, 이런 징역살이가 따로 없다니까. 나, 가네.”
주인집 할멈이 가고 나니 참았던 벌떡증이 올라온다. 휑하니 나가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가라앉으련만 날이 저문 뒤에 바깥출입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노파는 문이란 문은 다 열어젖히고 불이란 불은 다 켠다. 공연히 장식장 위에 얹어놓은 화분을 들었다 놓았다 해보지만 달리 둘 데도 마땅치 않다. 또 한바탕 광풍이 지나갈 텐데, 다 늙어서 견뎌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벌써 몇번짼가. 지지리 복도 없는 년.
며느리가 장사 수완은 있어서 마음잡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돈을 꽤 만졌다. 그러나 전셋거리라도 모여서 셈평이 편다 싶으면 누군가의 꾐에 빠져서 밖으로 나돌았다. 인물값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팔자가 그래서 그런 건지, 이번에는 재혼을 하는가보다 하면 돈만 쓸어넣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노파는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젊은날이 하도 속절없어서 며느리만큼은 팔자 고쳐서 잘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먹은 대로 되어주지 않았다. 저도 이제 산전수전 겪을 만큼 겪었으니 사람 보는 눈이 생겼을 만도 한데 도무지 믿음성이 가질 않는다. 주인집 할멈이 제대로 본 거라면 이번에도 애저녁에 글러먹었다. 그렇게 사람 볼 줄을 모르는가. 어디서 천하에 사기꾼같이 겉만 번지르르한 놈한테 눈이 멀어가지구. 아니겠지. 본부장이었으면 다른 사람도 아닌 주인집 할멈을 그렇게 모르쇠할 리가 있나. 어쩌면 이번에는 제대로 짝을 만났을는지도 모른다. 머잖아 손녀들도 짝을 찾아 떠날 테고, 노파는 혼자 남겨질 것이다. 그동안 서로 의지하고 살았다고는 해도 시어미는 시어미일 따름이다. 하기는 자식들이 짱짱한 늙은이들도 혼자 사는 이들이 태반이다. 다시 시장바닥으로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수족이 쓸 만하고, 시장 한 귀퉁이에 늙은이 하나쯤 비집고 앉는다고 누가 밀어내기야 하겠는가. 하다 못해 쪽파를 다듬어 팔더라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 하나 가르쳐보겠다고 해보지 않은 장사가 없었다. 제일 손쉽다는 떡장사를 시작으로 건어물장사에, 포목장사에, 목이 휘도록 임을 이고 산골짝 골짝까지 숨은 동네를 찾아다녔다. 김장철에는 새우젓을 여 날랐고, 한겨울에는 약 보퉁이를 이고 눈길을 걸었다. 뇌신이나 활명수, 금계랍, 됴고약에 기응환 따위였지만 눈 덮인 산골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젊으나젊은 것이 보따리장사로 떠돌자니 여간한 결심이 아니고는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고역이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잠자리부터 말을 해놔야 했다. 대개는 인심 후한 할머니들이 자리를 내주어 하룻밤 묵어가게 했지만, 그도 안되어 내외가 사는 윗방에서 어렵사리 새우잠을 청할 때면 아랫방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소리에 후끈 달아오르는 몸을 뒤척여야 했고, 어떻게 해보자고 덤벼드는 불한당을 피해 보퉁이도 내버리고 산길을 내달은 적도 있었다. 약 도매상의 주인영감이 은근히 첩으로 들어왔으면 했을 때는 슬그머니 주저앉아버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곧 통일이 될 거라고 했다. 라디오에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노래했고, 아들의 소원도 그녀의 소원도 오직 ‘통일’이었다. 통일이 되면, 그날이 오면, 남편은 돌아올 것이다. 점쟁이마다 남편이 살아 있다고 했다. 행여나 간첩이 되어서라도 내려오려는가. 그녀는 금시라도 남편이 삽짝문을 밀고 들어오는 환영을 안은 채 청춘을 넘겼다.
지금까지 호적에는 남편이 버젓이 살아 있다. 예전에 아들이 실종신고를 해서 호적을 깨끗이 해놓자고 했지만 내키지가 않아서 이냥 입때껏 그대로 지내왔다. 열아홉에 시집와서 그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고, 아들이 백일도 되기 전에 남편은 갔다. 일년 남짓이나 같이 산 것일까? 지금 만난다고 해도 서로 알아볼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만약에 살아 있다면 그쪽에서 새장가를 갔을 터인데 그쪽 세월은 50년이요, 이쪽은 일년 남짓이니, 살아 있다고 해도 남쪽의 아내를 찾아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뭔가. 노파는 한평생 꼭 허방다리를 짚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는 해도 아들이 살아 있다면 이토록 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들, 아까운 내 아들, 근동에서 수재라고 뜨르르했던 잘난 내 아들. 아들의 얼굴만 떠올리면 밤길도 무섭지 않았고, 고개를 짓누르는 곡식자루도 무겁지 않았다. 아들이 서울에서도 제일 가는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을 잡고, 장가들어 손녀까지 턱하니 안겨줬을 때 이제 고생은 끝이구나 싶었다. 작은손녀를 봤을 때는 조금 섭섭했지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행여 마가 낄까봐 쓴소리 한번을 않고 조심조심했는데 야속한 하늘은 아들마저 데려갔던 것이다. 아들이 죽었을 때 노파는 거반 죽은 목숨이었다. 곧 죽을 것 같더니 어느새 이십년이나 살았다. 질긴 목숨이다.
노파는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저리 방정맞게 초인종을 눌러대는 건 올해 대학 졸업반인 작은손녀다. 애비를 닮아 공부는 늘 첫째다. 졸업만 하면 초등학교 선생으로 나가게 되어 있어서 요새 살판났다고 놀러만 다닌다.
“할머니, 다녀왔습니다. 짠—”
눈을 흠뻑 뒤집어쓴 손녀가 주먹만한 눈덩이를 노파의 코앞에 들이민다.
“이그, 저리 치워. 눈이라면 지긋지긋해.”
“왜? 나는 좋기만 한데. 할머니, 지금 밖에 눈이 펑펑 와. 밤새 오면 온 세상이 폭 파묻힐까?”
“어여 나가 눈이나 털구 들어와.”
“할머니, 어째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어디 아파?”
“아프기는, 눈이나 털구 들어오라니까 자꾸 말 시키구 섰네.”
손녀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노파는 저 혼자 떠들어대는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린다. 요새는 연속극보다 선전이 더 재미있다. 도대체 무얼 선전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퍼뜩퍼뜩 지나가면서도 항상 새롭다. 옷을 갈아입은 손녀가 노파 옆에 와 앉아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노파는 어서 씻으라는 둥 왜 여기저기 자꾸 돌리느냐는 둥 잔소리를 한다.
화면에는 한 젊은 남자가 휴대폰을 들고 생선가게에 와서 어릿댄다. 휴대폰의 화면에 생선이 비친다. 그 옆엣 거. 이 옆엣 거 사라구? 남자가 자기 아내와 통화를 한다. 다 싱싱하다니까 그러네, 그게 뭐유? 생선가게 할멈이 묻는다. 디지털 세상이잖아요. 뭐? 돼지털? 도무지 모르겠다는 할멈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얘, 디지털이 뭐냐?”
“음, 아날로그와 반대되는 개념이에요.”
“아날로그는 또 뭔구?”
“그건 디지털하구 반대…… 헤헤……”
“인석아, 서울역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촌놈한테 남대문이 서울역 옆에 있다고 하면 알아듣냐?”
“응, 그러니까 좋은 세상이라는 거죠 뭐.”
“좋은 세상? 뭐가 좋은데?”
“다요.”
“다?”
그래 좋은 세상이다.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져, 전화만 하면 먹을 걸 척척 대령해, 앉아서 천리 아니라 땅끝까지도 내다봐, 영국에서 소가 병이 났네 하면 한국에서도 쇠고기가 안 팔린다구 아우성이구, 성질 개떡 같은 것도 개성이라서 좋아, 더 말할 거 있나? 삼팔선도 넘나드는 판국이니. 노파는 공연스레 심통이 난다. 하도 답답해서 뭘 좀 물어보면 누구 하나 자세히 가르쳐주려고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다. 늙은이는 그저 주는 밥이나 먹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어야지. 새삼스레 그따윌 알아서 뭐에 쓰려구. 디지털이면 어떻구 돼지털이면 또 무슨 상관이랴. 텔레비전 볼 맛이 뚝 떨어진다. 노파는 방으로 들어가 팔을 베고 모로 눕는다. 다리를 배 쪽으로 오그려 붙이고 한쪽 팔로 눈두덩을 꾹 누른 자세다.
“할머니, 또 삐졌구나?”
손녀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기척이지만 노파는 몸도 마음도 잔뜩 오그린 채 미동도 않는다. 손녀가 이불을 꺼내 살짝 덮어주고는 이불 위로 노파를 꼭 끌어안는다. 나, 첫 월급 타면 할머니 뭐 사드릴까? 빨간 속옷? 휴대폰? 할머니, 휴대폰 갖고 싶지? 노파가 아무 대꾸도 않자 손녀는 불을 끄고 나간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낮에 시뻘건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육개장에다 홍어회니 북어찜이니 초상집마다 거의 똑같이 내놓는 음식상을 받았지만, 주민등록사진을 확대해서 영정으로 썼는지 307호 할멈의 허옇게 부푼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혀서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나 나왔던 것이다. 배는 고프지만 일어나서 무얼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조금 지나면 뱃속은 잠잠해질 것이다. 307호는 어떻게 배고픈 걸 견뎌냈을까. 늙은이들끼리 모여앉아 신세타령을 하다보면 언제나 죽는 얘기가 나온다. 하기 쉬운 말로 열흘만 굶으면 바로 저승문인데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한 열흘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간단하다고들 했다. 그러나 그건 괜히 내세우는 자존심일 뿐이었고, 대개는 아프지 말고 자다가 그림같이 죽기를 소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노파를 옥죄어서 뒤척이는 밤이 많았다. 노파는 이대로 잠이 들어서 영원히 눈을 뜨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꽃상여다. 온통 흰 꽃으로 뒤발을 한 꽃상여가 사뿐사뿐 나는 듯이 산모롱이를 돌아간다. 꽃상여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흰 조팝꽃이 무더기 무더기 피어난다. 아니, 그윽한 향기로 보아 찔레꽃인가 보다. 찔레꽃뿐 아니라 눈길이 가는 곳마다 풀꽃들이 피어난다. 노란 민들레, 흰 냉이꽃, 보랏빛 제비꽃. 흰 옷을 입은 아이가 나풀나풀 춤을 추며 상여 뒤를 따라간다. 맨발이다. 아이가 뒤돌아본다. 낯이 익다. 누구더라?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속으로 삼키는 울음이다.
노파는 가까스로 눈을 뜬다. 팔이 저리고 온몸이 뻐근하다. 어둠에 눈이 익자 바로 옆에 이불뭉치가 보인다. 이불뭉치가 가만가만 들썩인다. 며느리다. 또 틀린 모양이다. 속으로 욱여넣는 들릴락말락하는 울음소리지만 그 진동을 느낄 수가 있다. 며느리의 설움이 뼈에 사무친다. 혼자 삭여내야 할 설움이라는 걸 노파는 안다. 울다 지치면 잠이 들 것이고, 아침이 되면 슬픔은 저만치 물러나 있을 것이다. 노파는 며느리가 울다 지쳐 잠들기를 기다린다. 마음놓고 울지도 못하던 때가 있었다. 사위스럽다고, 어디서 새파란 젊은것이 청승을 떠느냐고, 너 때문에 될 일도 안된다며 다그치던 시어머니도 거진 흙이 다 되었을 것이다. 시어머니가 죽었을 때, 정말로 마음놓고 울었다. 울다 울다 몇번이나 기함을 하기도 했다. 그때 가슴속에 고여 있던 눈물을 다 쏟아버렸는지 이제는 웬만해선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며느리는 여간해서 울음을 그칠 것 같지가 않다. 마음 같아서는 등을 토닥이며 얼싸안고 같이 울어주고 싶지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노파는 숨을 죽인다. 며느리와 한 방을 쓰고 산 지 벌써 십년이 넘었다. 그러니 숨소리만 듣고도 며느리의 형편을 대강 알 수가 있다. 지난 세월 동안 노파의 모든 촉수는 며느리를 향해 있었다. 흐렸는지 갰는지 그 얼굴빛에 따라 그녀의 일진이 바뀌곤 했다. 화장실이 급한데도 기척을 낼 수가 없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되자 그녀는 소리죽여 방을 나온다.
볼일을 본 노파는 손녀 방 문을 열어본다. 불이 켜 있고 라디오에서는 소리가 난다. 잠든 큰손녀의 얼굴은 제 할애비를 빼다박았다. 남편은 스무살 청년의 모습 그대로 노파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노파는 큰손녀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겨준다. 남편이 그랬듯이. 이상하게도 다른 것은 다 잊었는데 유난히 잔머리가 많았던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던 남편의 손길만은 잊히지가 않는다. 큰손녀는 꿈이라도 꾸는지 몸을 뒤척이더니 제 동생께로 돌아눕는다. 노파는 작은손녀가 둘둘 말아 다리에 끼고 자는 이불을 잡아빼서 잘 덮어주고 라디오와 불을 끈 뒤 방에서 나온다.
썰렁한 거실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다. 아마도 속이 비어서 그럴 것이다. 처량한 생각이 들 때는 무얼 먹는 게 상책이다. 노파는 전기밥통을 열어본다. 한 공기가 조금 넘어 보이는 밥이 남아 있다. 그녀는 전기코드를 빼고는 밥통째 끌어안고 밥통 안에 있던 주걱으로 밥을 떠먹는다. 맨밥이 목에 걸린다. 물에 말아 먹어야겠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고 김치보시기를 꺼내다가 그만 떨어뜨리고 만다. 그 소리에 그녀는 기겁을 하고 주저앉는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아무도 못 들은 모양이다. 한 숟갈 맛을 본 뱃속에서 회가 동하는지 야단이 났다. 그녀는 밥에 물을 부어 한 숟갈 푹 뜬 다음 그 위에 손가락으로 쭉쭉 찢은 배추김치 한 가닥을 척 걸쳐서 우적우적 씹는다. 아주 꿀맛이다.
“어머니, 이 밤중에 거기서 뭐하세요?”
며느리가 어느 결에 나와 섰다. 노파는 엉겁결에 밥통 뚜껑을 탁 닫고 시치미를 뗀다.
“나, 아무 짓도 안했다.”
벽시계가 세시를 친다. 시계 소리에 놀라 선인장의 꽃봉오리가 배시시 벙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