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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표명희 表明姬
1965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독문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재학중. PYO7788@hanmail.net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야경(夜景)
엄마는 텔레비전을 켜둔 채 잠이 들었다. 엄마의 등을 받치고 있는 겹겹의 짓눌린 베개를 보면서 Y는 안방 문을 닫는다. 비로소 하루 일과가 끝난 셈이다. 오늘도 집안 구석구석의 곰팡이와 엄마의 살갗을 파먹어들어가는 세균과 끈질기게 씨름한 하루였다. Y는 목욕탕으로 가 수영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엄마의 등에 욕창이 번져가기 시작한 건 장마 중반 무렵이었다. 욕창 방지용 매트리스와 에어컨 덕에 그동안 별탈 없이 지내왔건만 폭우가 빚은 몇시간의 정전이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몸속 어디서 그렇게 물이 생겨나는지 반투명의 수포막이 연신 부풀어올랐다. 얇은 막을 터뜨리면 희부옇게 곪은 물이 기다린 듯 흘러나왔다. 곪은 물을 닦아내고 허옇게 가라앉은 부위를 알코올로 닦아내고 수시로 마싸지를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팔꿈치나 발꿈치, 엉덩이 쪽에 생겼는가 하면 곧 어깨, 등 쪽으로 욕창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처음엔 피부가 창백해지는 조짐을 보이는가 싶더니 장밋빛 반점으로 붉어지다 차츰 물집으로 발전해나가는, 색과 모양의 기묘한 변화를 보이며 그것은 끈질기게 나고 자랐다. 놀라운 번식력하며 부패해가는 단백질의 퀴퀴한 냄새까지 곰팡이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장마철 낡은 반지하 집은 구석구석 곰팡이의 세력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손이 잘 닿지 않는 씽크대 구석 쪽을 닦고 나면 바닥의 곰팡이가, 그걸 없애고 나면 찬장 주변 곰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벽지의 꽃무늬처럼 바닥, 천장, 벽 가릴 것 없이 면이란 면은 모조리 곰팡이 얼룩이 장악해갔다. 장마철 내내 Y의 생활이란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잡균들과의 지긋지긋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진저리나던 장마가 오늘로 막을 내린 것이다. 9시 뉴스 기상캐스터는 편안하고 믿음직한 목소리로 장마의 종말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수영가방을 챙겨든 Y는 현관을 나선다. 모서리마다 녹으로 얼룩진 철제 현관문이 신경을 긁는 소리를 내며 닫힌다. 독가스실에서 빠져나오듯 Y는 계단을 서둘러 오른다.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설 때마다 지하층의 무겁고 눅눅한 공기가 허물처럼 벗겨져나가는 느낌이다.
보름달이 선명하게 걸린 밤이다.
창덕궁 돌담길로 접어들자 숲의 짙은 풀내음이 물씬물씬 담장을 타넘어온다. 온몸의 수천만개의 모공 속으로 풀향기가 파고든다. 단조롭고 지루한 노역에서 비로소 풀려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과 활력이 샘솟는 시간. Y에게 밤은 밝아오는 새벽처럼 생기 넘치는 시간이다.
어렴풋이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돌담 옆 가로등 아래로 사람이 나타난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돌담길을 따라 조깅을 하면서 다가온다. 근처 공원을 돌아오는 모양이다. 금실을 과시하는 듯 발자국 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가 화음을 이루어 Y 곁을 스쳐간다. 밤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새로운 설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다음부터 도시의 밤은 한동안 운동하는 사람들로 술렁거렸다. 이 돌담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Y가 다니는 수영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원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수영장은 지난 봄부터 심야시간에 개방했다.
발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테크노 음악으로 쿵쾅거리는 빨간 스포츠카가 밤공기를 뒤흔들어놓으며 지나간다. 소리의 파장이 Y의 몸을 훑고 간다. 그 생생한 소리의 결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에 또다른 굉음이 밀려든다. 다다다다다다─ 헬멧도 쓰지 않은 노랑머리의 폭주족이 오토바이 모터소리를 거침없이 토해놓으며 어둠속을 질주해간다. Y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도심의 밤이 이따금 연출하는 돌발적이고도 강한 에너지의 분출을 접할 때마다 Y는 한번씩 숨통이 틔는 느낌이다. 밤은 약간은 과장되고 거친 듯하면서도 울울한 영혼을 일시적이나마 해방시켜주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대문 밖을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사람들로 밤은 언제나 새롭게 태어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들은 세상의 절반이 어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 같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수영장 입구가 보인다. 그 빛을 휘적이며 누군가 걸어나오고 있다. 언제나 이 시간쯤 수영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여자다.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짙고 윤기 흐르는 머리칼과 매끄러운 피부로 건강미를 물씬 풍기는 여자. 이따금 자신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떠올려보게 하는 여자다. 그럴 때마다 기억은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린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유월의 이파리 같은 스무살.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없지는 않았다, 그저 그 시기에 걸맞은 생생한 기억이 없을 뿐…… 샴푸광고 모델을 연상시키는 여자는 수영가방을 둘러메고는 젖은 머리를 찰랑이며 언제나처럼 경쾌한 걸음을 옮겨놓는다. 젊음의 기운이 뚝뚝 듣는 걸음걸이다. 담장 옆에 기대놓은 자전거를 일으켜세우고 여자는 그 위에 사뿐히 오른다. 몇번 휘청이다 앞뒤 바퀴의 균형을 잡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멀어져간다. 안정된 바큇살의 움직임을 따라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여운처럼 흩날린다. 여자의 자전거는 이내 모퉁이 포장마차를 지나 시야에서 사라진다. 저 모퉁이만 돌면 여자의 자전거는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환상에 Y는 사로잡힌다.
Y는 수영장 입구 회전문을 밀고 들어선다.
회전문에 실려온 바깥 공기와 문소리가 로비의 고요를 일시에 흩뜨린다. 꼬박꼬박 졸고 있던 카운터 데스크 속의 여자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몸을 움찔한다. 여자의 등 뒤쪽에 걸린 벽시계가 정확히 자정을 가리키고 있다. 여자는 들고 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전화기 옆에 내려놓고 엉거주춤 일어선다. 한달이 넘도록 여자가 붙들고 있는 그 책은 누렇게 바랜 종이에 깨알같은 활판인쇄 글자에다 더욱이 세로읽기다. Y는 회원증을 내민다. 여자는 수백개의 작은 붙박이 칸막이 중 하나에 Y의 회원증을 밀어넣고 열쇠를 꺼낸다.
“36번이에요.”
부스스한 얼굴에 토끼처럼 충혈된 눈일지라도 직업의식만큼은 잊지 않고 있다는 듯 여자는 목소리에 날을 세우며 열쇠를 건네준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수면제 역할을 할 게 분명한 그 책을 집어든다. 사막을 굴러다니는 검불더미 같은 여자의 파마기 풀린 머리가 다시 카운터 데스크 아래로 박힌다. 여자는 빽빽한 수백개의 붙박이 열쇠함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짜맞춰진 듯 앉아 있다. Y가 수영장을 드나들기 시작한 게 5년 전이었으니, 여자가 그 자리에 들어박힌 지도 최소한 5년은 넘었을 터였다. 어쩌면 10년이 넘었을지도 모른다. 권태로 똘똘 뭉쳐진 게 바로 삶이 아니냐는 진실을 코앞에 들이밀듯 여자는 늘 그 자리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다.
“아 참, 그 남자 말이에요. 바닥에 거꾸로 처박힌……”
여자는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듯 다급하게 고개를 쳐들며 Y를 돌려세운다.
“아직도 병원에 있대요.”
얼마 전 다이빙하다 사고당한 남자 얘기다. 남자는 거의 수직 상태로 물속에 뛰어들었는지 바닥에 거꾸로 박히면서 척추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평생 못 일어날지도 모른대요.”
Y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런 삶이란 죽음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조금 전까지 풀려 있던 여자의 눈이 어느새 반짝인다.
“젊은 사람이 참 안됐어요. 더구나 신혼이라던데.”
여자는 연거푸 혀를 차지만 안쓰러움 따위는 전혀 배어 있지 않은 목소리다. 여자는 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펼쳐들면서 흥얼거리듯 한마디 더 덧붙인다.
“그 새댁은 인제 어떡하나, 한창 깨가 쏟아질 땐데……”
여자의 말에서 묘한 쾌감이 묻어난다. 그럴 때만큼은 여자의 표정과 목소리에도 생기가 돈다. 회원 누구와 누구가 놀아났다는 이야기, 어떤 강사가 뭘 잘못해서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 청소 아줌마가 곗돈을 떼였다는 이야기…… 그런 활기 넘치는 얘기들이 여자를 이곳에 붙들어놓는 힘인 것 같기도 하다. 여자가 Y를 맞을 때마다 짓는, 이 시간에 혼자 수영하러 오는 치들의 속사정쯤이야 훤히 꿰고 있다는 듯한 표정과 눈빛은 마치 Y를 자신의 내밀한 유희의 공범자로 여기는 것처럼 끈적거렸다. 여자는 Y에게서 어떤 끈끈한 유대감 혹은 연민 따위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젊은 남녀 회원들을 심심찮게 골탕먹이는 것으로 악명높은 여자의 히스테리가 Y에게만큼은 쏟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이 심야시간대에 수영장을 드나드는 사람은 그녀의 공격대상이 아닌 게 분명하다. 마흔을 넘긴 고아원 출신 노처녀라는 둥 결혼 석달 만에 소박맞은 이혼녀라는 둥 여자의 신상에 관한 얘기가 간간이 청소 아줌마들의 수다를 통해 흘러나왔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한번도 자신의 얘기를 내비치지 않았다. 체념과 달관이 적당히 뒤섞인 무기력한 중년의 모습으로 그저 같은 자리에 끈질기게 머물러 있을 뿐이다.
풀은 예상대로 비어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바람도 조류도 물풀의 흐느적거림이나 물고기의 게으른 유영조차 없는 순수한 물의 세계. 넓은 사각의 풀에 감도는 익숙한 클로르칼크 냄새가 Y를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빛의 굴절은 푸른 바닥을 수면으로 성큼 끌어올려놓고 투명한 풀은 그림처럼 고요하다.
매끈한 타일로 둘러싸인 사각의 거대한 수조 속으로 조명이 깊숙이 흘러든다. 불빛은 너무도 자연스레 물속에 잠겨 있다. 하지만 빛이란 그지없이 명료하고 차가운 법이어서, 사라질 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감쪽같이 자신의 존재를 거두어간다. Y에겐 빛의 그러한 성질이 늘 매혹적이다. 시간의 무게 앞에서도 결코 미련을 갖거나 집착하지 않는, 순간적으로 자신을 거둘 줄 아는 너무도 담백하고 깔끔한, 그러한 관계의 방식을 빛은 지니고 있다.
경주의 출발선에 서듯 Y는 다섯 레인 중 맨 가운데 자리에 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타트 발판이 있던 자리였다. 사고가 나자 발판은 곧바로 철거되었고 벽과 바닥에 ‘다이빙 금지’라는 문구가 크게 나붙었다. 삼십대 초반의 그 남자는 지나치게 용감하거나 요령이 없는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그는 흐르지 않는 물의 성질을 몰랐던 모양이다. 거친 자연에 단련되지 않은, 수조 속의 물은 정면충돌 같은 건 달가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물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세를 낮추는 게 중요하다. 낮추되 수면과의 마찰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각도를 유지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원칙의 무시가 때론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Y는 다이빙 준비를 한다. ‘다이빙 금지’라는 문구는 적어도 이 심야시간대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시간대의 유일한 관리자이기도 한 카운터 데스크 여자 역시 기꺼이 방관자 역을 맡음으로써 일탈은 자연스러워진다. Y는 무릎을 쭉 펴고 허리를 굽히면서 입수(入水) 지점을 눈으로 확인한다. 절벽에 선 것처럼 짜릿한 순간이다. 무수한 뛰어내리기의 반복도 이 순간의 두려움을 없애진 못했다. 딛고 있는 발을 바닥에서 떼는 것부터 허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것까지 무섭긴 마찬가지다. 더욱이 마지막엔 물속 깊이 처박힌다는 생각까지도…… 넉넉한 물의 깊이와, 날카로운 바위나 몸을 휘감을 수초도 없는 매끄러운 바닥과 물의 부력까지 떠올리며 스스로 최면을 걸지만 그런 노력도 물을 내려다보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결국은 몸을 던져야 한다. 이곳에 선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발끝에 힘을 주고 바닥을 힘껏 박찬 Y는 허공을 향해 몸을 날린다. 공중 자세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몸은 세찬 마찰음과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을 비집고 든다. 모든 의심과 공포를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며 물은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Y를 받아들인다. 수면을 지나 바닥을 향해 치닫던 몸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서서히 상승 흐름을 탄다. 잠에 빠져들 때와 같은 나른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가벼워진 몸만큼이나 삶의 고단함도 물속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행복감에 사로잡히는 순간이다. 은은하게 일렁이는 빛과 고요가 깃들인 물속에서, 가지런히 뻗은 두 다리와 허리의 부드러운 반동으로 물을 헤치고 나아가면 Y는 잠시 물고기가 된 듯한 환상에 젖는다. 황금비늘로 감싸인 몸과 하늘거리는 지느러미와 살랑대는 꼬리가 만들어내는 한가로운 유영. 하지만 가빠오는 호흡은 그런 환상을 오래 지속시키진 않는다. 환상이란 현실에 비하면 언제나 찰나에 불과하다. 찰나인만큼 강렬하다. 상승곡선을 그리며 Y는 수면 위로 솟구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고른다. 거칠고 빠른 숨소리가 한동안 수면을 떠돌더니 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조용해진다. Y는 사방을 휘둘러본다. 수영장 벽면과 바닥, 수조 속 모두 빈틈 하나 없는 매끈한 사각형 타일의 행렬이다. 그 정연한 사각의 틀 속에 고요가 마치 젤리처럼 응고되어가는 듯하다.
숨막히는 정적을 뚫고 물 휘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철버덕─철버덕. 옆쪽 B풀에서다. 강습이 끝난 후에는 A풀만 남겨놓고 B풀 사용은 금하지만, 반드시 지켜지는 건 아니었다. 규칙의 파괴자는 어떤 남자다. 유리 칸막이를 통해 희미하게 흘러드는 A풀 불빛에 의지해 그 남자는 언제나 어두운 B풀에서 수영을 한다. 카운터 데스크 여자는 이 일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회원들을 대하는 그녀의 평소 성격에 비추어본다면 꽤나 너그러운 처사다.
처음 그 남자와 맞닥뜨렸을 때 Y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B풀의 어둠을 등에 지고 남자는 목발을 짚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수영복 하나만 걸친 남자의 알몸은 괴기스러웠다. 유난히 검고 야윈 몸에 성치 않는 한쪽 다리가 빨랫줄에 걸린 커피색 스타킹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성한 다리 절반 굵기밖에 되지 않는 그의 병든 다리는 무릎과 복숭아뼈 관절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점점 가까워올수록 남자의 다리는 기형적으로 마디가 튀어나온 대나무 장대 같아 보였다. 조류의 물갈퀴 같은 그의 퇴화된 발은 바닥에서 한뼘 정도 공간을 둔 채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그의 병든 다리는 목발과 성한 다리 사이에서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렸다.
모두들 잠든 밤, 현관문을 살짝 열고 나올 때의 짜릿함과 함께 시작되는 밤외출의 마력을 그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남자가 내는 물소리는 번번이 Y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나무 같은 그의 한쪽 다리와 물갈퀴 같은 발이 물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런 몸으로는 헤엄을 어떻게 치는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 호젓한 어둠속을 들여다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저 물소리로 가늠할 뿐이다. 다이빙이나 접영을 할 때처럼 세찬 마찰음이나 역동적인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남자가 내는 소리는 그저 손으로 물을 휘휘 휘적이거나 낮게 철벅거리는 정도다. 그럼에도 수영장 내의 분위기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그 소리의 결을 Y는 너무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울울하고 메마른 영혼이 젖어드는 소리……
Y는 자유형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타일벽의 서늘하고 매끈한 감촉을 느끼며 힘껏 벽을 박찬다. 몸은 견고한 반동에 힘입어 물을 가르며 앞으로 쭉 뻗어나간다. 자유형, 말 그대로 ‘물속에서 맘껏 자유를 누리는’ 영법이다. 초보자 시절엔 그 말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우선은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해요.” 노란 보조판을 꼭 껴안은 채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신입회원들을 향해 강사가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물에서 났어요.” 그는 희부연 양수 속에서 비대한 머리와 균형이 맞지 않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태아의 시절까지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오래 전에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호흡은 서툴렀고 울컥 물이라도 먹으면 죽음의 공포가 덮쳤다. “죽는 거 그거 하루아침에 등돌려 눕는 것처럼 간단한 거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죽음에 대한 말을 남의 집 고양이 얘기하듯 하기 시작했다. 암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회복기에 들 무렵, 퇴원하라는 담당의사의 말에, 흰 가운을 와락 붙잡으며 병원에 더 남아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던 일 따윈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의사가 돌아가고 난 뒤 눈물로 범벅이 된 엄마의 손에는 가운에서 떨어져나온 단추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감전사라는 게 말이다. 겉은 멀쩡하지만 내장은 숯덩이처럼 된다더구나.” 엄마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소울음처럼 느리고 둔중한 말을 늘어놓았다. 온종일 텔레비전과 2미터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삶을 엄마는 십년째 이어오고 있다. 엄마에겐 Y도 그 낡은 텔레비전과 마찬가지 존재였다. 카메라는 흙탕물이 콸콸 흘러드는 지하도와 가로등, 전봇대를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었다. 올 장마철 최대의 사고였다. “야심한 밤에 뭐하러 나다니누, 비까지 퍼붓는데.” 자신이 잠들고 나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는 딸에게 에둘러 하는 불평 같기도 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엄마에게 Y의 부재는 상당한 스트레스인 게 분명했다. 몸 한쪽이 부패해가고 있다는 사실에는 정작 무감각하면서도 간병하는 이에 대해서는 거의 동물적으로 예민한 감각을 보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불평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매일 거의 정확한 시간에 잠들었다.
두 다리와 팔의 연속된 동작으로 Y는 천천히 물을 헤치며 나아간다. 물갈퀴 같은 손으로 당겨진 물은 뒤로 밀려나며 작은 흐름을 이룬다. 당김과 밀어내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물을 흘려보내는 것에 다름아니다. “물은 늘 흐르려고 하지요. 수영의 지름길은 바로 물의 성질을 이용하는 거예요.” 강사는 오랫동안 물을 연구해온 학자처럼 말했다. 발차기를 빨리하며 Y는 끌어당긴 물을 허벅지까지 힘껏 밀어낸다. 물의 흐름이 거세지고 추진력은 더 빨라진다. 한때는 Y도 속도의 마력에 사로잡혀 수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정지해 있는 물을 세차게 흘려보내면서 옆 레인의 사람보다 빠르게 휙휙 나아가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강하게 부딪치는 물과의 마찰도, 그 역동적인 소리와 하얗게 일어나는 포말도, 온몸으로 밀려드는 물의 압력도 좋았다. 거친 호흡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과 그 열기를 가라앉혀주는 물과의 교류만이 있고 마음을 갉아먹는 생각 같은 건 끼여들 틈이 없는,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순간이었다.
한동안의 세월을 Y는 그렇게 물처럼 흘러왔다. 아니, 흘려보냈다.
흐르는 것은 세월이나 물만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모든 영법에 능숙해지면 이곳을 떠나 강이나 바다로 갔다. 누구는 스킨 스쿠버를, 또 어떤 이는 수상스키를 하겠다고 나섰으며, 또 누구는 더이상 배울 게 없다는 이유로 떠나기도 했다.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옮기거나 이사를 하는 등의 현실적 이유로 사라지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한번 흘러간 사람은 좀체로 돌아오지 않았다.
“멀리 가지 말아라.” 예전에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엄마 원피스의 숨막히는 장미향에서 풀려난 어린 Y는 힘껏 백조의 페달을 밟았다.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백조는 반짝이는 강물 위를 신나게 헤엄쳐갔다. “멀리 가지 말아라.”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것은 “어디든 제발 멀리 좀 갔다오렴” 하는 말 같았다. 아이보리색 원피스 차림의 엄마 옆에는 안경 낀 낯선 아저씨가 바싹 붙어앉아 손을 흔들어 보였다. 백조가 옆으로 방향을 틀 때 아이는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엄마와 낯선 아저씨가 나무 뒤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어린 딸을 떠나보내려 한 게 분명했다. 현기증이 나고 숨이 찼지만 어린 Y는 더 힘껏 페달을 밟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먼 곳으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자신도 엄마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통쾌하게 복수하고 싶었다. 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달콤하게 상상하며 어린 Y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어느새 푸른색의 매끈한 타일벽이 Y의 눈앞에 버티고 있다. 건너편 벽에 다다른 것이다. 이제 턴을 할 차례다. 공벌레처럼 몸을 말면서 Y는 힘차게 회전한다.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다. 완전히 방향을 바꿔야 할 때, 첫 탈출에 실패하거나 완전한 결별을 하거나, 혹은 한 사람의 여생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엄마 쓰러지셨다.” 스무살 무렵,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려 할 때였다. 엄마의 마지막 연애 상대는 다시 Y에게 엄마를 넘겨주었다. 좀더 서둘렀어야 했다. 그 남자의 삶 속으로 엄마가 자연스레 미끄러져 들어갔을 때 곧바로 떠났어야 했다. 떠나는 데 준비 같은 건 전혀 필요치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다. 떠날 거라면 뒤돌아보는 일 따윈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삶에서 남자가 목적인 적이 한번이라도 있은 줄 아니?” 이십년이 넘도록 Y를 소외감에 떨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엄마는 한마디로 부정했다. 엄마는 Y의 떠남이 어쩌면 영원한 이별이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네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삶이었어.” 엄마는 끝까지 딸을 삶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 사춘기 때부터 Y는 가끔씩 자신의 존재가 마치 엄마 삶의 명분이 아닌가 의심해왔다. 하지만 Y는 엄마가 오롯이 자신의 삶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는 사실에 조금씩 마음이 기울었다. 묘한 이율배반이었다. 빠리행 비행기표와 비자는 결국 서랍 속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막 날아오르려던 스무살은 날개를 접었다.
엄마가 Y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들먹인 적은 한번도 없다. 일찍부터 Y는 남자란 자신의 삶과는 별 연관이 없는 그저 반대의 성을 가진 생물체로 여기는 데 익숙했다. “넌 정말 남자에 관심 없니?” 사춘기와 이십대를 거치면서 잠깐씩 사귀었던 친구들은 의아해하며 Y에게 그런 질문을 해오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한번도 그런 걸 문제삼지 않았다. 정작 엄마 자신은 달랐다. 자존심 강하고 여성스러우며 예민한 성격의 엄마는 외모를 가꾸는 데도 유별났다. 철저한 관리 덕에 엄마의 몸매와 피부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늘 10년은 젊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녀지간으로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엄마가 투병생활 내내 두려워한 건 어쩌면 죽음보다는 일그러져가는 육체의 처참한 몰골을 보는 일이 아니었을까. Y는 이따금 그런 의심이 들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은 야채 팩을 해야 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꼭 화장을 했다. 엄마의 외모를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 Y는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아름다움을 지속시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고달픔과, 언젠가는 속절없이 스러져갈 육신의 덧없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Y에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관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갈고리쯤으로 보였다. 담당의사가 회진을 돌 때쯤이면 엄마는 환자복만 걸쳤을 뿐 마치 외출 직전의 여자 같았다. 엄마는 은근히 담당의사와의 불륜을 꿈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의 몸 속에서는 교태를 유발하는 성적 호르몬이 암세포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리라. 하지만 싸움은 이내 결판이 났다. 항암제 투여 이후, 엄마의 희고 매끈하던 피부는 이내 짙은 병색을 띠어변해갔다.
물속에서 몸을 완전히 뒤집은 Y는 발바닥으로 세게 벽을 차고 몸을 앞으로 쭉 뻗는다. 운동의 방향은 다시 반대쪽으로 바뀐다.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25미터 풀에서의 수영은 순간순간 벽을 확인하는 것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것이 벽이 아니라 안전한 울타리로 깨닫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벽의 불가항력을 절감한 사람일수록 그런 깨달음은 더 빠른 법이다. 엄마는 딸의 그러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너, 나 때문에 속에서 천불이 나는 모양이구나.” 엄마는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잦아졌다. “왜 맨날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게냐.” 여름이 시작되면서 Y는 밥을 물에 말아 먹기 시작했다. 반찬은 늘 풋고추와 된장이었다. 30년 전 어린 Y와 엄마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가시를 발라낸 하얀 생선살을 엄마는 어린 딸의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단백질을 많이 섭취해야 키가 크고 건강해진단다.” 그러면서 엄마는 아이의 숟가락에 계란말이며 고기볶음, 생선살을 번갈아가며 올려주었다. 아이가 밥을 다 먹고 나면 엄마는 늘 밥을 찬물에 말아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었다. “입맛 없는 여름엔 이게 최고지 뭐.” 대답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럴만한 속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자리에 눕고는 2년에 한번씩 올려받는 전세 차익이 고정 생활비였다. 어쩌다 집에 문제가 생겨 수리라도 한번 하는 달이면 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한참을 허덕였다. 작년에는 급기야 전세 차익을 더 챙기기 위해 집의 맨 아래층인 반지하로 옮겨야 했다. 번듯한 집은 세입자들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4층짜리 다세대주택의 주인이던 그들 모녀는 지난 십년간 맨 위층에서 계속 한층씩 내려앉았다. 넓고 전망 좋던 꼭대기층에서 그 절반 면적인 3층으로, 3층에서 다시 옆건물의 그늘에 가려지기 시작하는 2층으로, 또다시 2층에서 받던 빛의 절반만 들어오는 1층으로, 그리고 어둡고 눅눅한 지하로…… 어느 순간부터 삶이란 내려앉기의 연속이었다. 집을 옮길 때마다 심한 우울증을 보였던 엄마는, 급기야 지하층으로 옮길 때는 그것이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임을 절감하는 듯했다. “다음에 갈 곳이 어딘지 알겠다.” 체념과 절망의 바닥에 닿아 있는 엄마의 목소리는 오히려 담담했다. “이젠 무덤밖에 더 남았겠니?” 그때 엄마의 가슴 깊숙이 직사각의 튼튼한 관이 하나 들어박히는 걸 Y는 보았다.
건물은 점점 낡아가고 앞으로 전셋값을 더 올려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던 그 집이 언젠가는 한순간 공중분해되리라는 걸 엄마도 모를 리 없다. “제발 내 앞에서 그런 궁상 좀 떨지 말아라.” 욕창과 곰팡이와 날마다 씨름해야 하는 Y는 물기 없는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기 힘들었다. 엄마도 그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엄마의 불평은 오히려 딴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빠듯한 살림에도 몇년째 수영장 출입을 거르지 않는 Y의 생활방식에 심사가 뒤틀려서인지도 모른다. 꼼짝 못하는 환자를 재워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외출을 나서는 그 뻔뻔스러움을 꼬집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딸에게 대놓고 불평한 적은 없다. Y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마저 빼앗을 경우 엄마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각자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라는 걸 엄마가 모를 리 없다. 엄마는 날마다 정확한 시간에 일부러 잠드는 척하는지도 모른다.
삶에의 집착은 섬뜩할 만큼 교활한 얼굴을 수시로 들이민다. 물기와 단백질을 숙주로 한 세균은 흉측스런 몰골로 호시탐탐 건강한 살을 노렸다. 크고 작은 수포들이 여기저기 분화구처럼 생겨나는가 하면 붉은 얼룩이 살갗을 야금야금 파먹으며 번져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등 뒤편에서 일어나는 육체의 참상에는 무감각했다. 소독약의 세례에 허옇게 거품을 토해놓으며 발버둥쳐대는 세균들의 몸부림. 생명은 몸서리쳐지도록 집요했다. 한때는 뭇 남성들을 사로잡았고 어린 딸의 자랑이기도 했던 매혹적인 엄마의 몸은 어느새 온갖 병균의 숙주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를 일으켜세워 잡균들이 파먹어들어가는 그 심란한 등을 들여다보노라면 Y 자신의 몸도 어느 순간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근질거리고 스멀거리는 몸을 염소 소독물에 담그지 않는 생활이란 Y에게 불가능했다.
침대에 드러눕듯 몸을 수면에 뉘며 Y는 배영을 시작한다. 서서히 발을 차면서 팔로 물을 밀어낸다. 천장의 조명이 하나씩 흘러간다. 이때만큼은 호흡도 자유롭다. 매끈하면서 포근한 느낌을 주는 물의 표면장력이 놀랍도록 편안하다. “남들이 어떻게 살든 그건 그 사람들 삶이야. 그리고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어. 우린 우리 식대로 살면 되는 거야.” 어릴 적부터 엄마는 귓불이 닳도록 딸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었다. 남의 삶에 끼여들거나 기웃거리지 않는 것, 그것이 타인의 삶에 대한 예의라고 Y는 생각해왔다. 부담스러운 비용을 감수하고 엄마가 1인실로 병실을 옮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여러 사람과 얽혀드는 6인 병실은 엄마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친척도 없어요?” 늘 뭔가 얘깃거리를 갈망하는 눈빛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문안 오는 손님 수로 자신들의 인간됨을 과시하려 들었고, 환자답지 않은 엄마의 태도를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한 사람들의 태도는 모녀에겐 사실 일찍부터 익숙한 것이었다. 사생아라느니 늙은 부자의 애첩이었다느니, 엄마와는 확연한 이해관계에 놓인 세입자들이나 이웃의 쑤군거림에 Y는 일찍부터 단련돼 있었다. 그럼에도 병이 악화되면서 엄마는 점점 예민해졌다. “모이면 남의 험담이나 늘어놓는 몰상식한 인간들하고는 도저히 한 방을 못 쓰겠어. 일인실로 옮겨가야겠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유롭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 역시 그들 모녀에겐 늘 만만치 않았다. 맨 꼭대기에서 지하층까지 끊임없이 내려와야 했던 데는 그런 이유도 한몫 했다.
타일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면서 Y는 생각에서 깨어난다. 반대편 벽에 다다른 걸 몰랐던 것이다. 배영을 할 때 흔히 있는 일이다. 아무리 수영에 익숙해도 이런 일은 곧잘 일어난다. 흐름을 잘못 타서 물을 먹거나 맞은편에서 오는 상대방과 심하게 충돌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 사고다. 그건 수영 실력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을 공유한 가까운 관계일수록 충돌은 더 잦다. 세상에서 유일한 친족인 엄마와도 그랬다. 크고 작은 충돌의 씨앗이 순간순간 급속하게 발아했다. “너, 내가 빨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지?” 항암치료의 후유증에 시달릴 때면 엄마는 어김없이 황폐해진 영혼을 드러냈다. 물론 엄마의 눈은 적중했다. 그즈음엔 Y 역시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었다. 간호하다 한번씩 Y는 그 병원 정신과 의사에게 달려갔다. “잠만 들면 엄마 목을 조르는 꿈을 꾸어요.” 의사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떨면서 뭔가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오히려 맘껏 상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죠.”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가에는 묘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환자를 들여다보는 그의 눈빛이 언제나 집요하다는 생각을 Y는 진료시간 내내 떨치지 못했다. “안 그러면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여전히 다리를 떨면서 내뱉는, 확신에 찬 듯하면서도 불안감이 뒤섞인 그의 목소리에 Y는 번번이 소름이 끼쳤다. 상담을 거듭할수록 Y는 환자와 의사가 뒤바뀐 것같이 혼란스러웠다. 그의 의술은 정신의학적 지식이나 임상경험보다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편집증과 분열증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의 눈빛과 목소리, 끊임없이 다리를 떠는 버릇이 여실히 그걸 증명했다. 그 의사야말로 중증 환자라는 진단을 내림으로써 Y는 자신의 강박증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때만 해도 젊음의 에너지가 솟구치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그 상실감을 도저히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엄마의 존재는 Y의 삶에 너무도 깊숙이 틀어박혔다. “죽는다는 거, 그거 하루아침에 등돌려 눕는 것처럼 간단한 거다.” 엄마의 말은 한번씩 Y를 위협하듯 들렸다. 그 일이 언제부턴가 Y에게는 이 거대한 수조의 물이 완전히 바닥나는 것 같은 휑한 상실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엄마도 차츰 깨달아가고 있는 것일까. 메말라버린 콘크리트 바닥을 향해 뛰어들어야 하는 순간. 아무리 회피한다 해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는 걸 Y도 알고 있다. 물이 완전히 말라버리는 날, 최후의 한번은 메마른 바닥을 향해 몸을 날려야 하는 때가 오리라는 걸.
불현듯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Y는 풀을 한바퀴 둘러본다. 수조 어느 한쪽에서 꼭 물이 새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물에 몸을 오롯이 담그고 있어도 이 넓은 수영장은 한번씩 사막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Y 자신은 마치 아득한 사막 한쪽 귀퉁이에 나뒹굴고 있는 모래 알갱이 같은 느낌이 든다. 삼십년 혹은 오십년에 한번씩 내리는 비를 기다리며 마르고 거친 바람을 오래도록 견뎌야 하는 사막의 모래 알갱이……
철버덕─철버덕─ 다시 물소리가 들려온다. 서걱거리던 Y의 마음이 일시에 젖어든다. 남자가 내는 물소리는 제법 여유있고 한가로이 들린다. 남자는 지금쯤 나무다리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수영장 바닥에 뉘어져 있을 목발 두 개가 Y의 눈에 어른거린다. 어쩌면 남자는 그 구속을 더 절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방 25미터 공간 속에서 누리는 자유도 누군가에게는 벅찬 것일 수 있다. 사람 키를 조금 넘는 물의 깊이가 심연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유도 그 이상을 넘어서긴 힘들다는 것도 Y는 잘 알고 있다. 집과 수영장을 시계추처럼 오가듯 누구든 학교와 집, 직장과 집을 헉헉대며 왕복달리기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어느덧 수영을 끝낸 남자가 B풀에서 걸어나온다. 두 개의 목발과 그의 성한 다리와 병든 다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앞을 향해 나간다. 한뼘의 결핍이 마치 그의 다리를 땅의 구속에서 풀려나게 한 것처럼 그의 병든 다리는 허공에서 편안하게 흔들린다. 그의 걸음은 언제나 정확했다. 남자와 처음 맞닥뜨렸을 때 당황한 것은 Y 자신이었다. 남자에게 길을 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Y는 잠시 허둥대었다. 하지만 남자는 한치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그의 걸음은 언제나 물속의 빛처럼 명료했다. 그 명료함만큼이나 그림자는 길고 짙었다. 유난히 길고 짙은 그림자를 거두며 남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다음엔 기필코 남자가 수영하는 모습을 훔쳐보리라. 남자의 그림자가 마지막으로 머물던 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Y는 습관과도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
풀은 다시 숨막힐 듯한 정적에 휩싸인다.
Y는 접영을 하기로 한다. 수영의 마무리는 언제나 그 영법이다. 두 팔과 어깨의 힘찬 전진, 다리와 허리의 반동으로 물속과 허공을 번갈아 넘나들며 이루어내는 몸의 매혹적인 S자 곡선이 단연 수영의 꽃이라 일컬을 수 있는 영법이다. 힘있는 물의 일렁임과 하얀 포말, 경쾌하고도 세찬 물소리…… 힘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돋보이는 그 영법의 매력은 무엇보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날개라도 펼치듯 Y는 몸의 씰루엣을 화려하게 살려내며 접영을 한다.
고요하던 풀이 순식간에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수영을 끝내고 나오자, Y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분명 서너 페이지 이상은 넘어가지 못했을 책이 데스크 위에 납작하게 엎어져 있다. 책제목이 상황을 설명이라도 해주듯 여자는 온데간데없다. 의자는 비어 있고 한쪽 로비 등은 이미 꺼져 실내는 희미하다. 몇분을 기다리지만 여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Y는 몸을 잔뜩 수그리고 안내 데스크 안으로 들어간다. 붙박이장에서 직접 회원증을 꺼내고 열쇠를 밀어넣는다. 여자는 도대체 어딜 간 걸까. 주인 잃고 엎어져 있는 책에 Y의 눈길이 한참이나 머문다. 어쩌면 여자는 영영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엉뚱한 상상이 Y의 맘속에 단단히 자리잡는다. 하기야 세상에 못 일어날 일이 어디 있던가. Y는 텅 빈 데스크를 뒤로 하고 입구로 향한다.
회전문으로 막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이다.
“내일 봐요.”
바람처럼 나타난 여자의 목소리가 Y의 등으로 끈끈이처럼 달라붙는다.
여자가 구겨진 치맛자락을 추스르며 화장실 쪽 모퉁이에서 나오는 모습이 언뜻 Y의 눈에 잡힌다. 대꾸도 하기 전에 Y는 회전문에 떠밀려 밖으로 나온다.
밤바람이 Y의 젖은 머리를 시원하게 어루만지고 간다.
보름달은 하늘 꼭대기에 여전히 선명하게 박혀 있다.
Y는 집으로 향한다.
멀리 폭주족의 오토바이가 밤의 심장 깊숙이 질주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