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창비신인시인상 발표
우리 시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올해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제1회 창비신인시인상’의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소설상‧창비신인평론상과 함께 11월 30일(금) 오후 6시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1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최금진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외 4편
심사위원
예심: 박영근 김기택 나희덕
본심: 이시영 김사인
2001년 10월
(주)창작과비평사
시 | 심사평
신인공모 제도가 소수의 입선자를 배출하는 언론·출판 매체의 요식절차로 비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뜻은 시에 대한 모든 이들의 관심과 애정을 치하하고 북돋는 데 있을 터이다. 따라서 공모에 응해주신 850여 투고자분들께 먼저 감사드리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많은 분들의 열정으로 미루어보건대, 우리 시의 잠재력은 아직 건재하며, 오히려 ‘참다운 시’에 대한 사회적 갈증은 깊은 곳에서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열정에 기대어 우리는 시와 세상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믿는다. 입선 여부를 떠나 투고해주신 모든 분들의 정진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예심위원(박영근·김기택·나희덕 시인)들의 수고를 거쳐 본심에 오른 분들은 모두 열일곱 분이었다. 모두 일정수준 이상의 기량을 갖춘 분들이었으나, 다수의 작품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두 경향에 대해 우리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첫번째는 언어의 ‘과소비’ 또는 언어에 대한 가학적 태도였다. 충분한 내면의 절실성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하는 언어와 이미지는 충분히 제 빛으로 서지 못한 채 ‘소비’되어버리며, 그러한 언어를 몸으로 삼는 시에 힘이 깃들이기란 더욱 어려운 것이다. 두번째는, 시란 대상─그것이 고통이건 아름다움이건 또는 사물이건─에 ‘대한’ 보고나 설명의 방편이 아니라 어떤 수준에서건 그 대상을 실천하는, 앓는 형식이기를 겨냥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어서는 범속한 산문과 시의 구별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열일곱 분 가운데 권정현·성향숙·김성환·문성해·최금진 다섯 분을 1차 후보로 선정하고 재독에 임했다. 검토과정에서, 권정현씨의 경우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어법과 의욕은 매력적이었으나, 그에 상응하는 내적 숙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지적이 있었다. 성향숙씨는 억압된 중년의 의식과 삶의 내밀한 결들을 설득력있게 포착하고 있었지만, 그의 문장과 시어들은 차분한 만큼이나 다소간 이완되어 있었다. 김성환씨의 언어와 이미지들은 거의 군더더기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정갈하고 견고했으며, 그의 시적 명상은 적정한 수위에서 잘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움츠린 자의식으로 인하여 그의 시들이 다양함과 유연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결국 문성해·최금진 두 분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으나, 마지막 판단이 쉽지 않았다. 다시 우리는 두 분의 시를 놓고 며칠의 말미를 가졌다. 모든 산 것들의 불우와 외로움의 낮은 기척들에 다가가고자 하는 문성해씨의 손길과 탄식들은 일견 어둡고 쓸쓸해 보이지만, 실은 은근하고 따뜻한 것이었다.그리고 그것은 시의 소중한 힘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편들은 시인과 시의 화자로부터 좀더 독립하여 명료한 제 얼굴을 가질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최금진씨의 시들이 담고 있는 세상의 풍경과 삶의 단면들 역시 침통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 음울함에도 불구하고, 풍경과 삶의 절망적 형상을 각떠내는 그의 시적 조형능력은 매우 자유롭고 균형잡힌 것이었으며, 그에 힘입어 그의 시편들은 높은 수준의 완성도에 도달하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최금진씨를 선택하기로 합의했다. 새 시인의 앞날을 애정으로 지켜봐주실 것을 많은 독자들께 부탁드린다. 노파심일 뿐이라 여기면서도 최금진씨의 몇몇 태작들을 빌미삼아 한마디의 고언(苦言)을 덧붙이고자 한다. 대부분의 시적 재능이 봉착하는 위험은 대개 부지중의 교만과 그로부터 초래되는 자기답습의 함정이다. 삼가고 또 삼가서 귀한 시인이 되어주시기를 당부한다.
〔李時英 金思寅〕
당선소감
최금진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재학중.
나는 내 시를 믿지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욕망과 좌절, 까닭모를 열정에 사로잡혀
걸어온 대부분의 날들은 분노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시를 쓴다.
그리고 아주 오래 살아남을 생각이다.
언젠가 내가 걸어온 뒤를 돌아보게 될 때
거기 황망한 얼굴로 웃고 있는 나를 부추겨
또 얼마쯤의 길을 더 걸을 수도 있으리라.
내 스스로 저질러버린 이 모순을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중얼거리는 날들이
무수히 반복될 것이고,
나는 오래오래 글을 쓸 것이다.
긴 밤과 씨름하면서 글을 썼을
무수한 익명의 형제들에게 죄송스럽다.
같은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겠지만
안 보이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밝히는
촛불은 원래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
뽑아주신 분들의 존함을 기억한다.
떠오르는 몇몇 고마운 얼굴들이 있다.
부끄럼이 많아서 일일이 밝히지는 못한다.
앞으로 남은 긴 문학의 여정을 생각한다면
나는 이제 겨우 대문을 나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서 조용히 이 불편한 열기가 식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한번 창비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경희사이버대학의 박주택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 발표
우리 소설계를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창비신인소설상’의 제4회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시인상‧창비신인평론상과 함께 11월 30일(금) 오후 6시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권채운 「겨울 선인장」
표명희 「야경(夜景)」
심사위원
예심: 성석제 김인숙 진정석 방민호 백지연
본심: 송기숙 최원식
2001년 10월
(주)창작과비평사
소설 | 심사평
이번에도 총 550편이 답지하였다. 방대한 분량의 응모작 가운데 옥석을 분간하느라 예심위원(성석제·김인숙·진정석·방민호·백지연)들의 노고가 컸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5편. 권채운의 「겨울 선인장」, 김한종의 「겸손한 제안」, 신이정의 「그녀의 발꿈치」, 조준호의 「일상」, 그리고 표명희의 「야경(夜景)」, 일별컨대 작품의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골라서 반가웠다. 주제의식도 살아나서 우리 소설이 새 기운을 받는가 싶어 더욱 기뻤다.
5편 가운데 우선 3편은 손색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회원제 식당에서 이루어지는 한국 지배계급의 회식 장면을 상상적으로 포착한 김한종의 작품은 어느 유력인사의 긴 연설로 시종하고 있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연설체가 끝까지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은 평가할 일이나 역시 일면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채만식(蔡萬植)의 「치숙(痴叔)」을 지배계급판으로 뒤집은 이 작품의 형식도 반드시 새롭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이정의 작품은 미국입양아의 한국찾기 체험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A, 생모 문여사, 그리고 또다른 입양아 K의 이야기를 복잡한 구성으로 짜나간 솜씨가 만만치 않지만 그 탓에 작품이 어수선해졌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촛점을 더 분명히하는 훈련에 집중했으면 한다.‘일상’이란 제목 그대로 조준호의 작품은 지하철로 유동하는 영업사원의 어느 하루를 정밀히 추적함으로써 대도시의 잿빛 일상을 탐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매우 안정돼 있어 도시의 악령에 지핀 현대인의 내면적 황폐성을 잘 포획했으나, 사건의 연결도 더러 부자연스럽고 결정적으로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점이 걸린다.
우리는 권채운과 표명희를 집중적으로 토론하였다. 그 외로움을 파고들어 노파들을 등치는 ‘매장’의 행태를 통해 다세대주택 노인들의 세태가 생생히 묘파된 전자는, 남편은 6·25 때 의용군으로 실종되고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은 주인공 101호 할멈을 축으로, 잘생긴 젊은 사기꾼을 그리워하는 팔자 좋지만 외롭기는 마찬가지인 주인집 할멈과, 결국 사기에 쌈짓돈을 잃고 괴로워하다 죽음에 이른 307호 할멈을 좌우에 배치하여, 우리 시대 노인들의 신산한 삶을 따듯한 필치로 그려낸 가작(佳作)이 아닐 수 없다. 성격묘사나 구성이나 문체나 단편의 묘미를 잘 발휘하였다. 그런데 신인으로서는 그 세계가 노성(老成)한 게 흠이다. 표명희의 단편은 감각이 상쾌하다.“늙은 부자의 애첩”이라는 소문이 가리키듯 아름다웠던 엄마, 이제는 암 수술의 후유증으로 서서히 멸망해가는 엄마를 둔 노처녀 딸이 병든 엄마가 잠들면 스포츠쎈터로 밤 수영을 나가는 일상의 모험을 짐짓 냉정한 문체로 그려낸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아 유학이 좌절된 딸의 고된 간병생활을 낯선 아저씨들로부터 엄마를 탈환한 어떤 소유의식으로 전복적으로 파악한 심리분석도 흥미롭거니와 수영 장면의 리얼리티도 일품이다. 다만 소설로서는 곁가지를 너무 쳐내서 단조롭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두 작품 모두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어 논의 끝에 두 작품을 공동당선작으로 삼는 데 합의하였다.
[宋基淑 崔元植]
당선소감
권채운
1950년 충북 진천 출생.
움츠린 제 손을 잡아 번쩍 치켜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을 눈여겨봐주시고 뽑아주신 창작과비평사와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지만 제게는 영영 올 것 같지 않던 기쁜 소식을 듣는 순간, 고마운 얼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소설로 이끌어주신 유재용 선생님, 초등학생 작문보다 못한 어설픈 원고를 깨알 같은 빨간 글씨로 빼곡하게 채우시며 토씨 하나까지 바로잡아주신 이문구 선생님, 엄하셨지만 깨우침을 주신 김원우 선생님, 용기를 주신 정종명 선생님, 선생님들께 큰절을 올립니다.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과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과 해주, 화천, 미령, 향란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너무도 기쁩니다. 여러가지 불편함을 잘 참아준 우리 식구들에게도 사랑을 전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이제 그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자전거와 수영은 한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만 믿고 십년 만에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위태위태했지만 자전거는 금세 앞으로 쑥쑥 나아갔습니다. 한강 둔치를 신나게 달렸지요. 그런데 웬걸요. 제 몸이 멈추는 방법을 잊었나봅니다. 자전거가 서기도 전에 땅을 밟으려던 저는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지만 멈추는 게 두려워서 밑도끝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아니, 넘어지는 게 두려웠겠지요.
그때처럼 두렵습니다. 떨립니다.
오늘의 이 떨림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당선소감
표명희
1965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독문과 졸업.
현재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재학중.
같은 동네 살다 얼마 전 먼 나라로 간 선배가 축하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왕 소설가 된 거, 평론가들이 집적거리고 싶어하는 그런 작품 써라. 무참히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낫다. 그리고 끝까지 자중자애.”
패기있는 작품, 결코 무뎌지지 않는 작가정신을 염두에 둔 따끔한 당부였다.
앞으로 내가 쓸 작품은 한동안은 의도적으로라도 젊어질 것이다. 젊되 가볍지 않고 치열하되 차갑지 않은 작품을 쓸 것이다.
당선은 그동안 소설에 대한 나의 처량했던 짝사랑을 청산하고 합법적인 결합을 가능케 해주었다. 이 결합을 만인에게 선언하고 축복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우선 감사드린다.
빈집에 새 식구가 하나 들어앉은 기분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 ‘소설’이라는 작자가 아무래도 미심쩍기만 하다. 평생 동고동락해야 할 식구가 동반자라기보다는 ‘적’의 냄새를 풍긴다. 장밋빛 삶일 거라고는 애당초 생각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기나긴 ‘적과의 동침’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적 때문에 밤잠은 얼마나 설칠 것이며 피 튀기는 칼부림과 배반의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결별을 꿈꾸며 보따리를 쌀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나는 이 ‘웬수덩어리’와 끝까지 살아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든다.
축복받은 만큼 감사드릴 분이 무척 많다. 소설의 기본을 가르쳐주신 이남희·방현석 선생님, 작가정신을 늘 일깨워주신 송기원·김형수 선생님, 그분들의 가르침이 오늘을 있게 했다. 쓸쓸한 길에 동행해준 문우들께도 이 당선이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영광이 혹 누군가의 기회를 대신한 결과가 되었다면 그분에게도 미안함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 여러차례의 좌절이 결국은 ‘준비된’ 작가를 만든다는 진실을 그분과 내 문우들이 기억해주면 나의 당선도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제8회 창비신인평론상 발표
우리 비평계를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젊은 문학비평가를 발굴하기 위해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창비신인평론상’의 제8회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시인상‧창비신인소설상과 함께 11월 30일(금) 오후 6시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8회 창비신인평론상 당선작
이재영 「상실의 세계와 세계의 상실─신경숙론」
심사위원
구모룡 김영희 임규찬
2001년 10월
(주)창작과비평사
평론 | 심사평
이번 창비신인평론상 투고작은 예년에 비해 좀 늘어난 편이다. 제가끔 공들인 기색이 역력한 글들을 읽고 한 편을 추려내기란 여러모로 조심스럽고 애도 쓰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는 일이다. 비평이란 결국 작품과 평자, 독자 사이의 대화임을 심사과정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으니, 설령 이견이 있는 대목일지라도 읽는이에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망외의 자극이 됨을, 한편 한편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심사위원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투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계속 정진하시길 바란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다. 단순한 해석이나 분석을 넘어서 작품들의 높낮이를 따지거나 개개의 성과를 좀더 큰 시야에서 가늠해보는 비평적 시선을 기대했으나 미치지 못한 때가 많았으며, 생경한 개념이나 틀이 사고 전개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기왕의 비평적 견해들에 대한 패기어린 도전도 어쩐 일인지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러나 미흡한 대로 가능성을 보여주는 글만도 여러 편 되었고, 대개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심사위원간에 의견이 상충될 때는 다시 해당 작품을 숙독하고서 협의하는 절차를 거쳐 2차 심사대상으로 추려진 것이 총 다섯 편. 강계숙의 「“아름다운 폐인”의 연금술, 혹은 내통의 기록─황지우론」, 김유경의 「리얼리즘, 그 상상계적 욕망─황석영 『오래된 정원』 읽기」, 남용순의 「김기택론─『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을 통해 본 아방가르드의 가능성」, 이동희의 「일상을 떠도는 죽음─황지우론」, 이재영의 「상실의 세계와 세계의 상실─신경숙론」이 그것이다. 이 다섯 작품을 가지고 9월 21일 창작과비평사에서 모여 최종 선정에 들어갔다.
김유경, 남용순, 이동희의 글은 차분한 분석이 돋보이나 개념 구사나 논지 전개에서 무리를 드러낸다든가 하는 이유로 먼저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강계숙과 이재영의 두 평론은 그중 하나를 선뜻 골라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강계숙의 ‘황지우론’은 작품에 밀착된 꼼꼼한 분석이라든가 무리없는 문체, 그리고 주제를 몰아가는 힘 등이 주목되었고, 이재영의 ‘신경숙론’은 작가에 대한 탁월한 장악력과 성실한 작품읽기, 성과와 한계를 두루 아우르는 균형잡힌 시각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는 문학적 성취보다는 작품의 문제의식 추적에 주력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이 아쉬웠고, 후자의 경우는 특히 여러 작품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논의를 전개하는 앞부분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런 방식으로는 작품들간의 질적·주제적 차이나 개개 진술의 맥락이 지워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짚어보자는 취지와 성과는 그것대로 인정할 만했고, 『외딴 방』 이후 근작들을 세심하게 읽으면서 그 공과를 짚어보는 작업으로 이어짐에 주목하며, 신진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사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자 이재영씨께는 축하를, 아쉽게 탈락한 강계숙씨께는 격려를 보내며, 두 분 모두의 건필을 기원한다.
〔具謨龍 金英姬 林奎燦〕
당선소감
이재영
1963년 대구 출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현재 베를린자유대학 독문학 박사과정.
학부 초년 시절, 도서관의 한 구석에 앉아 여러 평론집들을 읽으며 숨막히는 긴장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깊이있는 통찰이 번득이는 수려한 문장들과 광활한 지성의 영역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교양이 내뿜는 위력에 탐닉하던 그때, 언젠가는 문학평론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처음으로 가슴속에 새겼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소망을 유보한 채 살아오다가 이번에 이 상을 수상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오래 모국어 환경을 벗어나 살면서 한국의 문학작품들을 긴밀하게 읽어오지도 못한 제가 쓴 글이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많을 터여서, 제게는 이 상이 당장의 성과에 대한 평가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에 더 큰 의미가 주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만큼 앞으로 제가 짊어져야 할 책무에 온전한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무릇 문학평론가의 일차적 과제는 당대의 문학작품에 대한 신뢰할 만한 평가를 함으로써 창작과 수용의 과정에 가치있는 기여를 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인문학적 학습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장에 대한 타협 없는 책임감과, 문학의 경계 안에 안주하지 않는, 시대의 전모에 대한 비판정신이 요구될 것입니다. 더욱이 현실의 복합성과 가변성이 날로 증가되어 명확한 가치판단이 한층 어려워지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기존의 지배적 관념을 벗어나는 비판적 사색의 기제로서 문학이 수행해야 할 과제는 오히려 더욱 중대해지고 있으며, 이와 함께 이러한 문학의 힘을 강화해야 할 문학평론가의 책무도 더 커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되 사고의 깊이와 폭을 잃지 않고, 시대 전체에 대한 시야를 지니되 문학의 고유한 미적 성질에 소홀히하지 않으며, 창작자를 옹호하고 존중하되 작품의 장단점에 대한 판단에서 엄격함을 고수할 줄 아는 것이 올바른 평론가의 자세일 것입니다. 이런 자세에 이번의 제 글이 한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다시 대학시절을 돌이켜봅니다. 창비 영인본을 한번 펼쳐들면 창밖이 희부옇게 밝아오기까지 손을 놓지 못하던 여러 밤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문학에 관심을 지녔던 제 세대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우리 문학사에 오래도록 빛날 탁월한 작품들이 담겨 있던 그 창비가 마련해준 문을 통해 이렇게 평론가로서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을 각별하게 생각하며, 제 글을 좋게 보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