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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 테러, 전쟁 그리고 그후

 

위기에 처한 7백만의 인명

 

 

조너선 셸 Jonathan Schell

『네이션』지 평화·군축 문제 통신원. 네이션연구소 해럴드 윌런즈 평화 특별연구원. 원제 “Seven Million at Risk”(The Nation 2000.11.5).

The Nation 2001/한국어판 ⓒ창작과비평사 2001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the November 5, 2001 issue of The Nation

 

 

9월 11일 이래 세계를 덮친 공포는 합리적인 정책의 틀을 마련할 정부의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상상력이 반응할 수 있는 능력마저 압도할 정도로 급속히 닥쳐왔다.

세계무역쎈터가 무너지고 펜타곤이 공격받자마자 미국은 전쟁을 선포했고,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전쟁에 돌입했으며, 미국이 전쟁에 돌입하자마자 누군가 ‘무기 수준’의 탄저균으로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 위기의 다섯째 주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탄저균이 미국 방방곡곡의 우편함에 도착하자마자 또다른 공포—이 사태의 가장 큰 공포일 수도 있는—가 우리에게 닥쳐왔다. 아프간의 수백만 인구가 이번 겨울에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그것이다. 10월 12일 아일랜드의 전 대통령이자 현재 유엔인권위원회 판무관인 메어리 로빈슨(Mary Robinson)은 예리하고도 분명한 경고를 했다. 그녀는 눈이 와서 주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되기 전에 인도주의적인 원조물자—무엇보다도 식량—를 아프가니스탄에 보낼 수 있도록 아프가니스탄 폭격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상황이 너무도, 너무도 위급합니다”라고 그녀는 특별히 언급했다. “군사작전이 진행되는 때에는 식량을 수송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수백만이, 그들의 말에 따르면 7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질문했다. “우리가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를 놓침으로써 이번 겨울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는 사태를 용인할 작정입니까?” 그녀의 발언은 세계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인용되었지만 미국에서는 보도된 바가 거의 없었다. 다음날, 렉씨스/넥씨스(Lexis/Nexis) 신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주요 신문으로 꼽는 30개 가량의 신문 가운데 『쌘프란씨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 단 한곳만이 이 발언이 언급할 만하다고 보았고, 주요 텔레비전 방송사는 어느 곳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스티븐 얼랑거Steven Erlanger는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에서 폭격에 대한 독일의 지원 축소를 다루면서 로빈슨의 논평을 간략히 언급했다.) 나흘이 지나 미국의 폭탄이 카불의 적십자사 창고를 파괴하고 인도주의 단체들이 폭격을 중지하라는 로빈슨의 요청에 동참하고서야, 미국에서 이 호소는 주의를 끌기 시작했다.

대재난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뉴스거리가 아니었거니와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소련에 대항한 아프간 전사들의 10년 전쟁과 소련의 패배에 뒤이은 내전, 그 전쟁의 승자인 탈레반의 극심한 실정, 그리고 4년간의 가뭄, 이 모든 것들이 결합하여 아프가니스탄이 자신의 힘으로 국민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스스로를 돌볼 능력을 파괴했다. 원조를 통해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을 살려내고 있던 인도주의 단체들은 사태가 전개됨에 따라 재난이 점차 증대하고 있음을 경고해왔다. 9월 11일 이후 탈레반으로부터 더이상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은 외국의 원조요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 인접국가들은 난민들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했다. 9월 19일, 구호단체인 크리스천 에이드(Christian Aid)의 비상요원인 도미니크 넛(Dominic Nutt)은 『가디언』(Guardian)지에서 “수백만의 사람들 뒤에 공동묘지를 파놓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거기서 끌어낼 수도 있고 거기로 밀어넣을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군사작전이 개시되기 2주 전인 9월 24일, 유엔은 한 보고서에서 “엄청난 규모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경고했고, 사무총장 코피 아난(Kofi Annan)은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원조를 호소했다. 10월 5일 20개의 구조단체들은 아프가니스탄이 “재난의 벼랑끝”에 몰려 있다고 세상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이 잠재적인 난민들이 현재 봉쇄된 나라 안에 꼼짝할 수 없이 갇혀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틀 후 폭격이 시작되었고, 아프가니스탄의 도시로부터 접근이 어려운 시골지역으로의 거대한 국내 이주가 시작되었다. 로빈슨의 호소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겨울이 임박하여 원조를 서둘러야 하는 견지에서 볼 때 폭격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지 묘사한 부분이다.

물론 아프간의 인명을 구하는 기본적인 동기는 그들의 생명 자체여야 한다. 수천의 무고한 미국인들이 사망한 데 대한 복수가 수백만의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구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도덕적 정당성을 밝히려는 것이지만, 이는 도덕적 문제 이상이기도 하다. 물론 인도주의적 위기는 전지구적인 군사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가 한창일 때 일어난다. 군사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그리고 양자간의 관계—가 미국에서 대중의 관심과 정책을 주도했다. (이 점은 〔필자 자신의─옮긴이〕 이 주간 칼럼난 ‘테러현장에서의 편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음을 인정해야겠다.) 우리가 여태껏 의문을 품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군사적 성공의 전망이 어떠한가? 탈레반을 전복하면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이 줄어들까 늘어날까? 탈레반이 전복되면 이후에 누가 정권을 잡을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적 성공은,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고 있는 파키스탄이나 싸우디아라비아의 취약하면서도 억압적인 정권들에 정치적 패배를 안겨줄 것인가? 베트남전에서 제기된 쟁점을 되풀이하는 이러한 질문들은 중요한 것들이지만, 개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대적인 아사 사태를 막을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지금 문득 깨닫게 된다. 미국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내기 위해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의 땅을 샅샅이 뒤지는 광경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소행인 동시에 터무니없는 정책명령의 소치인 것이다.

미국 정책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정치적 목표는 군사적 목표에 붙은 각주처럼 다루어져왔고(부시는 폭격을 명령한 지 1주일이 지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의 국가건설에 대한 반대의사를 철회하지 않았다), 인도주의적 목표는 정치적 목표의 각주로 취급되었다. (애처로울 정도로 불충분한, 미 항공기의 식량투하가 이 각주의 구현물이다.) 이런 정책은 정반대로 바뀌어야 한다. 작전상의 세부상황이 어떠하든 인도주의적 위기가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폭격을 중지하고 새로운 정책—아마도 무장한 인도주의적 중재단의 지상투입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인도주의라는 벨벳장갑을 낀 지금의 강철주먹을 철장갑을 낀 인간적인 구호의 손길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국가건설이 아니라 국민의 구호—아프간의 인명을 구원하는 일—가 주된 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노력이 성공해야만 정치적 정책—아프가니스탄에서건, 이슬람세계의 여론에서건, 세계 여론에서건—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도주의적이고 정치적인 목표가 완수되어야만 테러와의 전쟁—탄저균의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의 세계에서 그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더 커졌는데—이 잘 풀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

〔姜美淑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