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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노향림 盧香林
1942년 전남 해남 출생. 197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눈이 오지 않는 나라』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등이 있음.
절두산 성지
긴 수해의 잇자국들이
수런거리는 햇살 아래 몸 누이고 있다.
103위 성인들이 전세 사는
지하묘지 가파른 돌계단에
정체 모를 그림자들이
말없이 꿇어앉았다.
참형으로 목이 없는 그들
아직 죄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몇몇은 낙백한 정신으로
떨어져 뒹군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으라
큰 목소리로 어석거리는 풀들의
종아리를 친다.
둥근 돔 위에 봉분을 개축하던 어스름들
희끗희끗 미끄러져 어느덧 흩어져
잠적하고 절두산 성지
삭은 초겨울 몇척이
스스로 깊어진다.
종점
폐기된 주차장 끝에
하늘이 모니터 화면처럼 껌벅이며
걸쳐 있다.
몇 트럭씩 운무가 대신 주차한 사이
어디론가 출근버스에 줄지어 몸 싣고
달리는 사람들의 선명한 가을아침이
번쩍인다.
낚시꾼 두엇만이 세월 뒤에서
할일없이 릴 낚싯대를 휘두른다.
미늘에 눈부시게 걸릴
그것은 무엇인가.
제 근심으로
누렇게 말라가는 고수부지
산발한 머리채로 흔들리는 풀잎들이
벌레 튀는 소리를 먼 지상으로 타전한다.
늦시간들이 한가하게 살과 뼈를
부비는 종점, 키를 낮춘 윤중로 벚나무들
짚으로 싸맨 하반신이 아직 늠름하다.
유난히 배가 부른 외투 속에는
은빛 칼이 男根이 숨겨져 있는지
갈밭에서 부리 붉은 쇠오리떼
툭툭 겁없이 마음 베어 튀어나온다.
누가 일일이 검색하는가
작동을 끄지 못한 가을이 깊다.
烏石
좀더 낮은 곳으로 꿇어앉기 위해
마음과 살 속을 다 털어낸 그 여자
토방마루 건너듯
水鐘寺 기척 없이 은거하듯 숨어 있는
남한강 끝자락 물가에 나와 앉아 있네.
입에 거품을 문 채
내부 환한 망각의 방 한칸 세내어
와선하듯 누워서
온몸을 열어 헤치고 부서지기만 하는……
그리움 모두 썰물로 빠지고
송송 구멍이 난 뒤에도
허전함에 끝없이 마음 닳아빠진 그 여자
캄캄한 돌 속에 들어앉아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