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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 대학강사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강사는 교육자다

 

 

김남두 金南斗

서울대 철학과 교수. ndk21@snu.ac.kr

 

 

1. 교육인적자원부의 위촉에 따라 대학교육협의회가 조사하여 지난 9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도 전국 180개 대학의 교원 가운데 시간강사의 숫자가 5만 6412명으로 전체 대학교원 11만 3461명의 49.7%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40.2%를 차지하는 전임교원 숫자 4만 5652명보다 1만명 이상 많은 숫자이며, 또한 지난해 4월의 조사 수치 3만 547명보다 2만 6천명 가량 늘어난 숫자이다. 이 통계들은 전체 대학교원 가운데 50% 정도가 시간강사이며, 강사의 숫자와 전체 교원 대비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체 대학교원의 절반이 시간강사라는 이 통계가 말해주는 바는 무엇일까? 우선 그것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이 이 강사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실제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서 밝혀진 대학강사의 대학강의 담당비율은 교양과목 63.5%, 전공과목 36.5%로 전체 강좌의 45.1%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시간급으로 2만원 남짓하며 3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강사료를 받고, 월 50〜60만원에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에 의해 우리 고등교육의 절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 강사문제는 박봉과 열악한 조건 아래 삶을 영위해야 하는 강사들의 어려운 처지가 문제되는 사적 성격의 것으로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앞의 자료들이 새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강사문제가 더이상 강사 개인들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구조와 질 전체가 걸린 공적 성격의 문제라는 점이다. 강사문제가 최고급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인력들의 사회적 활용에 관한 문제요, 강사들의 법적·경제적 처우의 개선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강사들의 어려운 사정의 완화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고등교육의 질 향상이라는 교육개혁의 핵심목표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단계 한국 고등교육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강사문제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교육의 질은 현격히 향상되어야 하겠지만 교육담당자들의 사정은 교육의 질 향상 문제와 무관하다는 식의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바로 고등교육의 50%에 이르는 부분을 담당하는 강사들의 처우와 지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2. 근년에 강사문제가 비교적 자주 제기되고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대통령도 이 문제에 관해 직접 언급하며 그 해결을 지시한 것이 언론매체를 통해 여러번 보도된 바 있다. 이런 증가하는 사회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다만 내년도 국·공립대학들의 강사료를 2만 6천원에서 3만원으로 올리는 안이 예산안에 포함되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예산안이 통과된다면 강사료가 약간 인상되는 선에서 문제의 해결이 다시 미루어질 것 같다. 강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1천명씩 국립대학 교원 숫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은 IT, BT, NT, ET 등의 첨단인력 증원계획으로 둔갑되었다. 첨단분야의 박사인력들이 대학에 채용되는만큼 학문후속인력의 교수 채용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 첨단분야들이란 강사인력과는 큰 관련이 없는 분야인만큼 강사문제의 해결과는 무관한 시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방식은 지금까지 강사문제를 다루어온 정부당국이나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해결 방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강사문제는 지난 30년 사이에 이미 몇차례 제기되고 그 시정이 요구되어왔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얼마간의 강사료 인상으로 문제가 마무리되곤 했다. 이런 패턴의 반복은 강사문제에 접근하는 정부당국이나 사회의 문제인식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사실 지금까지 강사문제는 앞서 말한 대로 최고급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인력인 강사 개인들의 열악한 생존조건의 문제 혹은 학문후속세대의 문제라는 맥락에서 파악되어왔다. 이런 문제파악 방식이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사안의 핵심을 얼마간 벗어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한발짝 다가가는 것일 수 있다. 강사들이 고급인력이며 아직 확실한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학문후속세대인 면이 틀림없이 있지만, 그들은 강사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 대학의 강의를 담당하는 인력이다.

실제 그들에 의해 교육이 이루어지며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할 지식과 능력이 그들을 통해 교육현장에서 전수되고 있다. 그들이 고등교육의 절반에 해당하는 교육담당자라는 점이 확실히 인식되어야 강사문제의 핵심사안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드러날 수 있다. 강사가 실제 대학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현역 교육자이며, 그것도 전체 고등교육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 이 문제에 대한 미봉적 해결이 지니는 함축과 결과를 분명히 볼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강사문제 해결의 미봉이나 방기는 바로 대학교육의 질적 개선을 미봉, 방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중등 교육현장이나 고등교육 부문을 막론하고 오늘날 여러 측면에서 개혁의 이름으로 제도의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이 모든 작업들이 지향하는 바는 좀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종국에는 공동체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육 현장에서 진행되는 학부제나, 연봉제, 업적 및 수업 평가제 등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도입되고 있는 제도들이다.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이런 제도들의 도입은 강행하면서 실제 교육의 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안들은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들도 많다. 200〜300명이라는 수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나의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대형 강의는 오히려 더욱 많아져가고, 과제가 많이 나가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학점을 받을 수 있는 내실있는 강의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 경우가 그런 예가 될 것이며, 아직도 50년대 6·25사변 후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강사제도도 또다른 예가 될 것이다.

‘사변체제’라고 말했지만 그사이 우리 사회의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50년대 제도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강사제도가 아닌가 한다.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여 대학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막중해졌다는 말들이 매일 정부에 의해 강조되고 연일 신문의 지면을 덮고 있지만, 도래할 지식기반사회를 이끌어갈 지식의 전수자들은 50년대 제도와 체제 아래서 탐구자로서의 꿈을 접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전반적인 개혁을 위해 필요한 수많은 개혁의 청사진을 담은 두툼한 고등교육 개혁방안이나 대학발전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교육현장에 투입되어 교육을 담당하는 인력의 절반에 대한 어떤 제도적이고 체계적인 정책도 찾아볼 수 없다면, 그 개혁프로그램의 신뢰성은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 강의를 통해 법정 기본생활비조차 조달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교육담당 인력을 채용하고, 연금이건 의료보험이건 또는 어떤 것이건 오늘날 정당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누리는 어떤 사회보장의 혜택에서도 제외된 젊은 인력들에게 학생들의 교육을 맡긴 채 대학교육의 질과 대학개혁을 논의하는 정부와 사회는 교육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낫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3. 강사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본격적이고 획기적인 제도개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이들 교육을 담당하는 인력들에게 교육자로서의 지위와 품위를 확보해주는 일이다. 이 일은 전체 고등교육 교원의 50%에 이르는 강사들이 우선 일용잡급직의 지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이들에게 고등교육법상 정식교원의 지위를 부여하는 규정 개정작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정식교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교원들이 받는 제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모든 대학교원들을 계약직으로 바꾸는 것이 교육부 당국의 기본정책이라면, 강사에게도 1년이라는 단기의 계약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교원 계약체계 자체의 일관성을 부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전임교원들의 계약직으로의 지위 변경이 연구, 교육 질의 고양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계약의 바깥에서 교육자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교육을 수행하고 있는 교육인력들의 교육여건 개선 작업도 같은 정책적 목표의 테두리 내에서 함께 시행해야만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조건을 갖춘다면 강사들도 단기적으로 매년 경신 가능한 계약직의 범위로 포함시키는 일이 바로 그것이며, 이를 통해 5만이 넘는 실제 교육인력의 지위의 안정화가 일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1년 계약직이라는 지위가 부여됨으로써 그들이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연금이나 의료보험 등의 혜택을 받는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외국인 채용에서는 이미 시행되는 제도인만큼 우리 강사들에게도 당연히 그리고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제도이기도 하다. 이들의 처우개선은 제도적으로 여타 대학교원들의 처우개선과 연동하여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강의교수 혹은 외래교수의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강사’라는 일제시대의 유제를 떨쳐버리고, 아울러 각 대학들이 이들을 강의인력으로서 얼마나 적절히 처우하는지 여부를 대학평가의 핵심항목으로 채택해야 할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어지는 일이요, 이 만남을 통해 한 사회는 자라나는 세대를 성인으로, 다음 세대 그 공동체의 삶을 짊어질 일꾼으로 그리고 종국적으로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시킨다.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부인되고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 아래서 사람을 기르는 교육 작업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사실에 동의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오늘날 반세기 넘게 유지되어온 강사제도를 현재의 상태로 지속시킬 수 없다는 것도 또한 분명한 일이다. 자신의 일과 직책을 자부심과 열정 그리고 책임감을 지니고 수행하는 젊은 인력들에 의해 좀더 좋은 강의가 가능하고,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강사제도의 개선은 정부 당국이나 우리 사회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교육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오늘날 정부의 수많은 교육정책이 교육현장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왜 그럴까? 교육받는 사람이건 교육하는 사람이건 사람이 사라진 곳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 속에서 사람을 놓치지 않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 있도록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교육정책의 성패를 가름하며, 교육의 성패를 좌우한다. 강사라는 젊은 교육자군을 제대로 교육자로서 세우고 대접하는 일, 그래서 교육의 현장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된 품위있는 인간으로서 교육받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을 정부 당국이나 우리 사회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