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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직관과 예지가 번뜩이는 미술사 서술

유홍준 『화인열전』 1·2, 역사비평사 2001

 

 

김홍남 金紅男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hnkim98@hotmail.com

 

 

예술사는 전기(傳記)적 역사쓰기가 그 빛을 발하는 분야이다. 예술은 한 사회의 산물이며 각 예술가의 일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기 때문에,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예술의 생산자인 예술가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 모짜르트의 인생역정을 모르고 「돈 죠바니」를 이해하기 힘들고, 미껠란젤로를 모르고 씨스띠나성당의 벽화를, 조맹부를 모르고 「작화추색도」를, 정선을 모르고 「인왕제색도」를 진실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익명의 작품과 기명의 작품 차는 그렇기 때문에 엄청나게 크다. 이후 현대의 전기적 역사쓰기의 묘미와 생명력은 전통적 열전과 달리 작품의 데이터가 있어 이를 토대로 작가의 일생과 예술적 개성을 검증할 수 있고, 검증된 결과를 삽도(揷圖)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현대 미술사학에서 가장 기초적인 연구, 즉 각 작가당 필히 거쳐가야 할 연구의 제목은 예술가들의 ‘생애와 예술’이다. 지난 20여년간 조선시대 화가들의 생애와 예술을 다루는 석사·박사학위 논문들이 쏟아져나왔고 저자 유홍준(兪弘濬)의 석사논문도 그중 하나이다. 『화인열전』은 이러한 학문적 업적을 소화하고 재해석하여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여덟 명의 생애와 예술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저자의 부단한 노력의 성과물임에 틀림없다.

114-450『화인열전』은 대중적인 미술역사책과 학술적인 미술사로서의 양면성을 다 가지고 있다. 어느 한쪽을 택하기가 힘들거나 곤란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유홍준의 『화인열전』은 여느 ‘생애와 예술’류 논문과 다르다. 이 점은 그의 베스트쎌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여느 문화유적답사기와 구별되는 것과도 상통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훌륭한 재담가이다. 하물며 유적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일진대 그의 이야기는 더욱 구수해진다. 이것은 또 그의 타고난 글재주와 직결된다. 둘째는 그의 풍부한 정서와 감정이입이다. 논증을 중시하는 학문이 불가피하게 갖는 무미건조함을 그는 자신의 풍부한 감성으로 탈피하고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을 지니고 있다. 셋째로는 그의 재담력이 ‘고전적’ 박식함과 총기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 세대의 학자들과 달리 구식학문을 한 학자를 연상시키는 박식함을 갖추었고, 아마도 이는 그의 스승 고 김정록 선생과 이동주 선생의 가르침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학술적 저서로서 『화인열전』은 양지와 음지를 다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전기적 미술사는 작가와 작품이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가정하고 작가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다룬다. 많은 ‘생애와 예술’류의 논문들이 생애 따로 예술 따로 나열식 전개를 하면서 실제로 작품과 작가를 연결짓지 못하는데, 유홍준은 이 점에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서술방법은 작품이 자화상적 이미지라고 하는 가정하에 그 힘을 발하게 된다. 『화인열전』의 힘은 바로 이 가설에서 나오고 또 바로 그러한 가설이 덕목임과 동시에 함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유홍준이 이러한 가정을 독자들이 ‘감동적으로’ 믿도록 하기 위해 가끔 무리수를 두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한 작가의 행·불행을 작품에 직접 대비하는 쎈티멘털리즘은 그의 저서에서 학문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그 학문적 손실은 더욱 넓은 독자층으로 보상받는 종류의 것이리라.

심사정의 전기에서, 예를 들면, 생애의 비극성을 강조하면서 전작품을 비애와 고독의 표현으로 끌고 가는 것은 자제를 요하는 부분이다. 심사정은 ‘관념산수화’의 양식화가 심화된 전통 속에서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각 작품의 양식과 그 양식의 표현에 가상된 작가의 감정을 바로 직결시키려는 노력 또한 또하나의 감상주의적 함정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렇게 저자가 8인의 작품들을 대부분 자화상적 이미지로 보려고 하면서 범하는 우가 여실한 예를 더 들자면 김명국의 「달마도」와 윤두서의 「자화상」에 대한 아래의 서술이다.

연담 김명국의 「달마도」에 대해서 저자는 “선종의 시조라기보다 차라리 산적의 얼굴에 가깝다.(…)말술을 마시고 통쾌하게 웃을 줄 아는 그런 호인(豪人), 세상에 대한 불만을 몸으로 녹여낸 자기 자신의 모습에 다가선 것이 아닐까. 제어할 수 없는 분노,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억울함이 그의 눈빛에 어려 있다”(1권 46〜47면)라고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달마도」를 김명국의 자화상적 이미지로 끌고 가지만 이 「달마도」의 표정은 한·중·일의 많은 수준급 달마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표현력의 차이가 다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직접적인 감정이입은 미술사에 문외한인 독자들을 사로잡는 무기로 변한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에 대해서는 “그가 낙향하던 바로 그해, 45세 때 그린 「자화상」은 공재의 그러한 풍모와 고독을 남김없이 보여준다.(…)범의 상을 한 준수한 얼굴”(1권 58면)이라고 기술한다. 하지만 필자는 김명국의 달마도가 초인적인 힘의 서역인을 훌륭히 묘사한 반면, 윤두서의 얼굴은 ‘준수한’ 선비보다 산적의 얼굴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하물며 윤두서의 절친한 벗 이하곤이 이 자화상에 부친 시에서 “긴 수염 길게 나부끼고 얼굴은 기름지고 붉으니/바라보는 자는 신선이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하지만”(1권 60면)이라고 묘사하는 마당에 굳이 사대부의 신분에 맞는 얼굴을 읽어내려는 저자의 의도는 무리이다. 또 한 예는 윤두서의 전형적인 화원화풍의 공필설색화 「마상처사도」에 대해서 “말의 묘사가 정확하고 인물의 자세는 의연하기만 하다. 혹 공재가 자화상적 이미지를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1권 86면)라든지, 같은 화풍의 「낙마도」에서 “왜 말에서 떨어졌을까? 이 또한 인생에서 좌절을 겪은 공재가 자전적 기분으로 그린 것이 아닐까?”(1권 87면)라고 하는 종류의 그림읽기가 곳곳에서 나타나 이 책의 대중성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학문성을 격하시키고 있다. 또 저자는 굳이 공재가 평생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그의 아들이 쓴 행장에 나오는 “가세가 기울어 여러 식구를 먹여살릴 계책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낙향하게 되었다는 내용도, 친우 이서(이익의 형)의 유사한 진술도 무시한다. 반론의 근거로 남태응의 『청죽화사』를 인용하나 그 내용은 실제로 이와 거의 무관한 것이다. 또 하나는 윤두서의 「자화상」이 정말로 낙향 직후 그려졌는가 하는 의문도 아직 남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윤두서는 사대부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왜 궁중화사의 화격을 보일까라는 의혹이 생기게 되면서 저자가 세운 윤두서의 생애와 예술의 관계는 다시 한번 불투명해진다는 것이다.

윤두서의 전기가 각본에 꿰맞춘 듯한 인상을 준다면, 능호관 이인상의 전기는 지금까지 한국미술사의 전기류 중 학문적으로나 문장력으로나 가히 일품에 속한다고 본다. 단 19세 때의 서예관을 소개하고 있으나(2권 68면) 이 글은 여러 면에서 이인상 자신의 것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서예관을 그대로 옮겨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곳에서는 중국회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 중국에는 절파풍(浙派風)과 다른 맥락에서 회화의 신경지를 개척한 오파(吳派)가 있었다”(1권 77면)라는 기술에서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초까지 성행한 오파의 시기를 18세기 초의 윤두서와 동시대로 알고 있는 듯이 쓰고 있다. 그리고 심주와 문징명은 명 말기가 아니라 명 중기의 화가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기적 미술사의 한계는 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엮기에는 단편적이고 당대에 제한되기 쉽다는 데 있다. 『화인열전』은 이러한 한계를 많은 부분 극복하고 있다. 김명국 전기에서 ‘인조 연간의 화단’, 윤두서 전기에서 ‘시대의 한계와 선구의 사이’, 그밖에 ‘단원의 천재성에 대하여’ ‘능호관 예술을 다시 생각한다’ ‘겸재·현재 비교론’ 등의 글은 저자의 역사적 관점, 직관력과 예지가 번뜩거린다. 앞으로 엄밀한 고증과 정밀한 분석이 필요한 부분, 그리고 무리한 해석의 오류 부분만 보완한다면 그의 열전들은 한국 미술사를 빛낼 학문적 업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