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한국현대문학 연구의 두께와 무게
이선영 편 『한국문학논저 유형별 총목록』 5〜7, 한국문화사 2001
김윤태 金允泰
서울대 강사·문학평론가 windor2@hanmail.net
근자에 연구자들이 기초자료 조사를 등한시한다거나 연구사 검토를 미흡하게 한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무릇 연구를 행함에 있어 대상작품에 대한 검토와 더불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은 선행 연구업적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평가이다. 연구과정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일임에도 이 기초작업들이 부실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연구자의 태도로 보자면 아주 불성실한 자세일 뿐만 아니라 연구성과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칫 선행연구를 도외시함으로써 선행업적이 이미 도달한 결론을 되풀이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그릇된 자세이다. 즉 기초의 부실은 논문으로서의 함량 미달에 이를 위험성을 애초부터 내재하고 출발하는 것이 된다. 사실 연구사를 정리하고 서지목록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일은 여간 성가신 작업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료를 찾아 모든 도서관을 섭렵하고 심지어는 개인의 서재까지 뒤져야 하는 발품도 만만찮을뿐더러, 일일이 자료카드를 작성하거나 컴퓨터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흔히 연구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논문은 발바닥으로 쓴다’라는 속설도 이를 말하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일들이란 연구과정에서 어쩌면 비본질적인 사소한 일이라 치부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연구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인지라, 함부로 생략되거나 소홀히해서는 곤란하다.
마침 이런 성가신 일을 손쉽게 해결해줌으로써 연구자가 연구주제 자체에 더욱 매진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만한, 소중한 자료정리 작업이 완결되어 이제 우리 앞에 나왔다. 이선영(李善榮) 교수에 의해 10여년에 걸쳐 정리·편찬된 『한국문학논저 유형별 총목록』은 한국현대문학 연구의 현주소를 간명한 형태로, 그러나 방대한 규모로 보여주는 노작이다. 1990년에 제1〜3권(1895〜1985년)이, 1994년에 제4권(1985〜90년)이 간행된 데 이어 이번에 제5〜7권(1991〜99년)이 나옴으로써, 전7권으로 꾸며진 이 책은 100여년 동안 이루어져온 한국현대문학 연구의 성과를 목록화하여 그 연구 결과물들에 대한 기본적인 서지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끔 하였다. 1895년에서 1999년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의 연구성과를 이 책에서 수집·조사·분류한 양만 해도 무려 7만 3541편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5권의 분량만도 무려 1340면에 이를 만큼 이 책의 두께와 무게는 이 땅에 근대적 학문이, 다시 말해 한국현대문학에 대한 연구와 비평이 뿌리내린 근 100년의 두께와 무게에 비례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한국현대문학 연구서지목록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저서·논문·평론·서평·감상 등의 온갖 다양한 형태로 씌어진 문학연구의 문헌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한 이 책이 서지자료 목록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란 점을 먼저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연도별로 문헌자료들을 정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일반론과 문학이론으로부터 각 세부 장르들에 이르기까지 장르별 세분을 첨가해두고 있다(제5권). 또 필자 및 저자별로도 별도의 색인을 작성하였으며(제7권), 주된 연구대상이 된 작가별로도 따로 정리해놓고 있어 독자들이 이용하기에 여러모로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제6권). 그리고 이 책의 편찬을 위해 수많은 문학연구자들에게 미리 설문조사하여 그들이 직접 작성한 연구성과들을 받아 수합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이 책은 자료근거의 정확도나 신뢰도에서도 비교적 안정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책에서 특기할 대목은 남한에서의 연구성과만을 모은 데 그치지 않고, 비록 『조선문학』과 『문학신문』에 한정되긴 하였지만 북한에서의 연구성과도 함께 싣고 있다는 점이다. 제한된 범위이기는 할 터이지만, 이를 통해 북한에서의 현대문학 연구의 조류나 경향을 어느정도는 짐작해볼 수도 있으려니와, 남북한의 연구경향이나 방식 등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감안할 때, 이 책은 대상의 규모나 범위, 혹은 편의성이나 신뢰도 면에서 이미 공간된 바 있는 이와 유사한 자료집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라 본다.
물론 이러한 엄청난 작업이 한 사람만의 힘으로 이루어지기란 매우 어렵다. 편찬자가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해 서문에서 일일이 감사를 표하고 있듯이,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조력이 밑받침되었을 것임은 틀림이 없다. 이같이 방대한 규모를 데이터베이스화해내는 작업은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90년대에 와서야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만큼, 간접적으로는 과학기술력의 도움 또한 컸음도 부인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지난하고도 수고로운 작업을 10여년에 걸쳐 기획하고 추진하여 마침내 이 책들을 완간하도록 힘쓴 편찬자 이선영 교수의 공로는 충분히 상찬되어야 할 일이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가령 현대문학 연구사 100년에서 어떤 문인이 가장 많이 연구되었는가라든지, 아니면 어떤 작품이 가장 주목을 받았는가라든지 하는 것들을 쉬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한 기사에 의하면(『동아일보』 2001년 10월 29일자), 이 논저목록집의 완간을 통해 춘원 이광수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뒤를 이어 이상·김소월·염상섭·채만식·한용운·서정주·정지용·김동리 등의 순으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더구나 분단과 전쟁을 거치는 동안 금기시되어오다가 1988년에 해금되어 비교적 늦게 본격적인 연구대상에 합류했던 정지용·이태준·박태원 등이 20위 안에 들 만큼 활발하게 연구되었음도 주목된다. 또 작품으로는 만해의 『님의 침묵』, 박경리의 『토지』, 염상섭의 『삼대』, 이상의 「날개」, 청록파의 『청록집』, 이광수의 『무정』, 이기영의 『고향』, 최인훈의 『광장』, 김동리의 「무녀도」, 채만식의 『탁류』 『태평천하』 등이 연구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많이 받아온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현재도 여전히 문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최인훈과 박경리나 그들의 작품이 연구대상으로서 높은 관심을 받은 것 역시 이채롭다. 장르별로 보자면 시보다는 소설이 더 많이 연구대상으로 선택되었음을 알 수 있고, 문학사적 시기별로는 주로 식민지 시대의 작가와 작품이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 논저목록집은 한국현대문학 연구사의 동향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고, 나아가 향후 문학연구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선영 교수도 이 논저목록의 통계를 분석하여 한국현대문학 연구의 전반적인 흐름을 총괄하는 「20세기 한국문학에 대한 전문가의 반응」이란 논문을 준비중이라고 하니, 문학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 또한 기대하는 바 자못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