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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기인·애국자 이수인(李壽仁)

이수인 『국운 100년의 대장정』 외, 실천문학사 2001

 

 

최원식 崔元植

문학평론가·인하대 인문학부 교수 cws919@inha.ac.kr

 

 

청천벽력의 부음을 듣고 아내와 함께 빈소에서 통곡한 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흐르는 물이라 어느덧 1주기가 훨씬 지났다. 남의 일에는 그처럼 다감한 이가 자신의 건강에는 어찌 그리 무심했던가? 그의 말투를 흉내낸다면 참으로 ‘기관지가 막히고’ ‘대책이 안 선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십리에 뻗친 안갯속 같은 요즘, 그의 경륜이 기룹다.

1주기에 맞춰 ‘이수인 선생을 생각하는 모임’의 헌신적인 노고로 세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한 권은 추모문집이요, 두 권은 유고를 수습한 것이다. 머리맡에 두고 틈틈이 읽는다. 그의 음성과 몸짓의 흔적이 물씬 밴 그 활자들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놓인 끊어진 다리를 더듬는다.

추모문집 『이수인, 신의와 헌신으로 살다』(실천문학사 2001)를 읽으면서 새삼 그의 기이한 성품을 다시 생각한다. 남의 기쁜 일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사람은 뜻밖에 적다. 남의 슬픈 일을 충심으로 슬퍼해주는 사람은 더욱 적다. 여자들을 흔히 투기적이라 일컫지만 남자들의 질투는 다랍다. 남의 기쁜 일에 기뻐하고 남의 슬픈 일에 슬퍼하는 사람, 형님은 그런 분이다. 세상이 온통 자기를 앓는 천박성에 물든 때, 그는 홀로 남을 세우는 일에 일생을 헌신했다. 존경하는 선배에게는 절대적 충성을, 벗들에게는 일생의 신의를, 아끼는 후배에게는 절대적 사랑을! 공자는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우라(己欲立而立人)”고 했다. 그에게 ‘자기’는 ‘조국’이다. 나는 감히 그를 ‘애국자’라고 부른다. 요즘은 덤썩 쓰기 어려울 정도로 고색창연한 이 말이 그에게는 딱 맞다. 그래도 다 풀리지 않는다. 내가 영남대로 자리를 옮긴 1979년 여름, 비 내리는 쌍송정(雙松亭)에서 개장국 연회를 가진 이후, 20여년간 그와 함께한 무수한 모임의 경험에 의하건대, 그는 천하의 인재들과 사귀는 일 자체를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다. 형수님 말씀도 그렇다. 젊은 시절, 벗할 만한 인물을 만나면 같이 자고, 같이 먹고 마시고, 같이 바둑 두고, 같이 얘기하기를 일주일을 묵새긴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무사기(無邪氣)한 애정이 첫째지, 동사(同事)가 우선이 아니다. 고전시대에서 현대로 돌출한 이 기인(奇人) 가까이에서 훈도를 받았던 일은 내 일생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114-476그는 사람을 목적으로 삼는 깊은 사귐의 과정 속에서 그를 바탕으로 ‘큰일’을 도모코자 하였다. 탈냉전시대의 도래 속에서 마침내 분단체제가 균열의 조짐을 보이는 이 세기의 전환기야말로, 주변 4강의 기미(羈)에 놀아난 분열을 딛고 통일을 성취할 한반도의 절묘한 기회로 판단함으로써, 큰 벼리로서 3통노선을 그는 주창한다. “지역통합과 민주통합 그리고 민족통일이라는 3통노선은 나의 변함없는 정치노선이다. 국운 100년이 결정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대통합을 통해 21세기와 통일을 이끌어갈 새로운 추진력을 만들어야 한다.”(『국운 100년의 대장정』 18면) 그런데 그의 독창점은 원칙의 천명보다 투철한 현실주의에 입각해 그 구체적 방략을 모색한 데 있다. 그 압권은 『국운 100년의 대장정』에 실린 두편의 글, 「『삼국지』를 통해 본 김대중 정치학」(1998) 「제2인자론의 정치학」(1998)이다. 동서고금을 왕래하며 도도한 언변을 사자후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정치적 상상력의 근원에 자리한 『삼국지』의 책사(策士)들, 아니 위대한 경세가 공명(孔明)을 방불케 한다. 그는 우선 ‘3김 청산론’을 비판한다. 지난 대선에서 DJP연합의 승리로 청산론은 현대판 ‘원술칭제(袁術稱帝)’로 떨어졌다고 판단함으로써 그는 ‘3김’을 안고 ‘3김 이후’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왕의 DJ·JP연합에 YS를 더한 ‘신3김대연합’을 꾸려 범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새 시대를 추동할 기관차로 삼자는 것이다. 그는 왜 일반적인 JP부정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가? “전일적 개혁세력의 형성이 어려운 오늘날의 정치지형은 급진세력을 제외한 개혁세력과 극우적 수구세력을 제외한 보수세력이 연합하여 개혁시대를 함께 추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200면) ‘개혁세력’이 반개혁세력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냉철한 판단 아래 그는 JP를 껴안은 현대판 신간회를 구상하였다. 이 비범한 발상은 특히 중국정치사에 대한 통투한 요해에 기초한 것이다. 제(齊) 환공(桓公)의 적이었다가 그를 도와 새 시대를 연 관중(管仲), 당 태종의 반대자로서 오히려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룩한 명재상 위징(魏徵), 그리고 마오 쩌뚱(毛澤東)의 비판자였던 져우 언라이(周恩來) 등의 예를 거론하며 그는 JP부정론을 일축한다. 이 대목을 음미하노라니, 새삼, 적방도 아방으로 끌어들이지는 못할망정 동지들도 분열을 거듭하는 한국정치, 아니 한국사회의 현실을 탄식하던 그의 침통한 고리눈이 눈에 선하다. 이 두 글은 김대중정부 출범에 헌정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킨 두 지도자, DJ와 JP에게 보내는 충정의 공개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연합을 위해 뛰었다. 마침내 쓰러졌다. 요즘 한국정치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이 방책이 그저 도도한 담론의 하나로 망각되어가는 현실이 슬프다. 과연 그들은 이 천하의 방책을 읽기나 한 걸까?

한국정치가 좀체 품격을 높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젠가 우리 국회위원들의 국회도서관 이용률이 아주 낮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나라일을 제대로 꾸리기 위해서 정치인에게 넓은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의 참담한 고백에 눈길이 간다. “교수 출신인 내가 마음과는 달리 아직 도서관에 한번밖에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정치초년생 이수인의 국회비판서」 1991, 32면). 그 누구보다도 대단한 독서인인 그가 이 지경이면 여타는 말할 것도 없다. 정치판으로만 들어서면 책과는 담을 쌓게 만드는 우리 정치풍토가 전면적으로 혁신되지 아니하고는 한국정치의 미래는 없다. 말이 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는 어린시절부터 몸에 밴 독서광이다. 글과 글쓰는 사람에 대한 겸허한 존중심을 바탕으로 한 광범한 지적 편력에 그만큼 헌신적인 분을 나는 별로 만나지 못했다. 그는 책 속에서 나라를 구할 길을 찾는다. 알려지지 않은 과거는 알려지지 않은 미래다. 그는 과거의 지혜에서 현재를 돌파할 가장 구체적인 방책을 마련하는 귀신 같은 눈을 가졌다. 예컨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정치학』(실천문학사 2001)에 실린 두편의 논문, 「한국신탁통치안의 세계사적 배경구조」(1988) 「모스크바 3상협정 찬반운동의 역사적 성격」(1989)을 보자. 해방 직후 정치사의 분수령이 된 ‘탁치안’을 둘러싼 좌·우익 투쟁을 검토한 이 글들에서 그는 “5년 후의 통일·독립”을 골자로 한 ‘3상협정’을 “극우세력〔이〕 민중의 정치문화 수준이 낮은 것을 이용하여(…)‘탁치안’으로 선전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기사회생의 기틀을 잡”은 점을 정치하게 분석함으로써 “‘찬·반탁운동’은(…)‘3상협정 찬·반운동’으로 올바로 고쳐져야 한다”(117면)고 주장한다. 나는 여기서 미국의 정책을 읽는 눈을 배운다. 유럽을 중시하면서 문호개방정책을 취하는 국제주의와 아시아를 중시하면서 보호무역정책을 취하는 국가주의, 미국 안에서 경쟁하는 두 흐름을 시야에 넣고, 미·소 협조를 상징하는 탁치안의 성립과 미·소 대립을 예고하는 탁치안의 소멸, 즉 남북분단의 현실화를 국제주의자 로즈벨트 시대로부터 국가주의자 트루먼 시대로의 이행에서 찾았던 것이다(134면). 이 뛰어난 미국론은 나에게 당장 유효하다. 부시 행정부가 유럽을 중시하는 윈-윈 전략을 폐기하고 태평양을 위주로 한 본토방위에 주력한다는 국방백서를 발표하였다. 클린턴으로부터 부시로의 이행은 혹 로즈벨트로부터 트루먼으로의 이행에 준하는 것이 아닐까? 한반도의 운명에 미묘한 파장을 그을 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향방을 가늠할 유효한 참조점이다. 형님은 돌아가신 뒤에도 여전히 나의 교사다.

일 많은 시대에 형님의 잠은 편할까? 그러나 이젠 편히 쉬소서, 나머지는 결국 산 자의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