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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진초 金眞初

1955년 경기 송추 출생. 1997년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프로스트의 목걸이』가 있음. yoondangk@hanmail.net

 

 

고수 먹는 여인

 

 

왜 갑자기 여길 오고 싶었을까?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곳이 갑자기 생각난 건 노파의 쪽머리 때문이었을까, 비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간밤의 꿈 때문이었을까. 며칠 동안 녹을 새 없이 쌓인 눈이 다져지면서 길이 얼어붙어 발을 내딛기가 조심스러웠다. 서울 언저리라고는 해도 산세가 깊은 마을엔 행인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초입으로 꺾어들자 제일 먼저 가겟집이 눈에 들어왔다. 壽福商店. 거기 그 자리에 이름도 바뀌지 않은 채 서 있는 가겟집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직 그대로 있구나, 집들도 오솔길도 소나무들도. 삼십년 전 마나님과 엄마의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짧은 겨울 햇살이 만드는 설핏한 산그늘 속에 잠겨들고 있었다.

며칠 전, 아침을 굶은 것도 아닌데 왠지 허기가 져 이른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햇살이 설 전과는 사뭇 달라 보여 차 한잔을 들고 베란다에서 해바라기를 하는데, 앞동(棟) 쪽으로 화사한 한복 차림에 조바위까지 쓴 자그마한 노파가 지나갔다. 베란다 문을 열고 좀더 자세히 보았다. 조바위 아래로 드러난 쪽에 눈길이 멈췄다. 숱이 적어 가까스로 튼 작은 쪽을 가로지르는 누르스름한 빛깔. 금비녀.

마을에서 금비녀를 한 사람은 기와집 마나님 딱 한사람이었다. 다른 여자들은 고작해야 은비녀였고 보통은 나무비녀였다. 반듯한 앞가르마에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지지 않게 동백기름을 바르고 빤빤하게 빗어서 쪽을 튼 마나님은 머리숱도 많아서 쪽머리가 아주 잘 어울렸다. 게다가 칠보 장식이 붙은 금비녀까지…… 머리를 빗을 때마다 신세타령을 하던 엄마는 어느날 장에 갔다가 파마를 해버리고 말았다. 무용지물이 된 엄마의 은비녀는 한동안 경대 서랍에 모셔져 있다가 쌍가락지로 변해 손가락으로 자리를 옮겼고.

가게채는 소년 혼자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이 집 손자가 아닐까 싶다. 난로 위 양푼에선 보일 듯 말 듯 김이 올랐다. 저거 하나 마실까? 나는 캔커피를 가리켰다. 중탕한 것이라서 그런지 마시기 적당하게 따듯했다. 아끼듯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에구머니나!”

누군가 눈길에 미끄러진 것 같았다. 소년이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난롯가에 서 있던 나는 돌아서서 유리창 밖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머리에 싸구려 머플러를 단단히 여미고 털신을 신은 노파가 무릎을 잡고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길도 사나운데 노인네가 왜 외출을 하였을까? 노파를 부축해 일으킨 소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저만치 떨어져 있는 지팡이를 집어다 노파의 손에 쥐여주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소년이 걱정스런 빛으로 물었다.

“괜찮아. 다 와가지고 남우세스럽게…… 걱정 말고 어여 들어가.”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노파가 도망치듯 지팡이를 앞세웠다. 불안한 걸음걸이였지만 허리는 꼿꼿했다.

“아 참, 할머니. 잠깐만요.”

뭔가 중요한 게 생각났는지 소년이 노파를 불러세웠다.

“손님이 왔었어요.”

마을을 드나들자면 이 가게 앞을 거쳐야만 한다. 아마 저 노파를 찾아왔던 손님도 이 가게에 들러 수소문을 했나보다.

“손님이라니?”

“어떤 아줌마였는데…… 아, 맞다. 기와집 수양딸 같다고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요.”

“뭐이?”

“할머니가 안 계셔서 그냥 갔대요.”

순간적으로 흔들리던 표정을 감춘 채 노파는 돌아섰다.

그렇담 저분이 기와집 마나님? 그러나 기품있고 우아하던 마나님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월의 틈, 세월이 만든 까마득한 거리의 낯섦에 나는 잠시 현기증을 느끼며, 멀어져가는 마나님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니다. 아직 있다. 저 꼿꼿한 허리.

윤주?

길쭉하게 앞으로 빨았던 하관, 아 그래, 합죽이. 윤주의 별명은 합죽이였다. 윤주는 아이들이 뭐라고 놀리든 개의치 않았다. 야, 합죽이. 니네 아버지는 짼 붕알이라며? 붕알 병신, 붕알 병신…… 윤주는 짓궂은 아이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그저 합죽한 입 사이로 유난히 흰 이를 보이며 샐샐 웃고 지나칠 뿐이었다. 윤주는 일곱살 때쯤 우리 마을에 왔다. 그녀가 어떤 경로로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와집에 수양딸로 왔다는 사실밖에는. 마을에는 기와집이 오로지 정내시 댁뿐이었다.

정내시에게는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박꽃처럼 환한 아내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옷맵시도 좋아서 나들이를 하느라 우리집 앞을 지나칠 때면 나는 대문 밖까지 뛰쳐나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선망의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좇곤 했다.

차암 예쁘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윤이 나는 양단 한복에 자잘한 꽃무늬 배자. 배자 가장자리로 하늘거리는 하얀 여우털. 부잣집 마나님이란 저런 것이구나. 나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스르르 눈을 감고 방금 본 마나님의 입성을 내게 입혀보았다. 그러면 눈앞에 검푸른 물감이 확 뿌려졌다. 그러고는 검푸른 천에 구멍을 뚫듯 하얀 별똥이 하르르 쏟아졌다. 눈을 뜨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해가 잠시 구름에 가려진 것을. 햇빛 아래 눈을 감으면 빨간색 물감이 눈시울을 훑어내듯 진해졌다가 그늘이 지면 이내 검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눈감고 있기를 좋아했다. 눈만 감으면 나를 들뜨게 하던 그 오색 빛깔의 환영. 빛깔은 햇빛이나 그늘의 농도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눈을 감는 세기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눈만 감으면 빛깔이란 빛깔은 모두 내 차지였고 세상이 온통 화려해졌다. 누추한 우리집 살림살이도, 허구한 날 술냄새를 풍기며 눈물을 짜는 엄마도, 내가 걸친 남루한 옷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나는 세상 밖으로 둥둥 떠다녔다. 내 눈시울 속의 화려한 세상을 깨는 건 늘 엄마였다.

해 넘어가기 전에 어여 뜨물 거둬와.

우리집은 돼지를 키웠다. 나는 지금도 가끔 돼지우리 앞에 서 있는 꿈을 꾼다. 남들은 돼지꿈을 길몽이라고 좋아하지만 나는 돼지꿈을 꾼 후 유쾌했던 적이 별로 없다. 꿈속의 나는 어쩐 일인지 툭하면 돼지죽 주는 걸 잊어먹었다. 문득 몇끼 혹은 며칠 동안 돼지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부리나케 돼지우리로 달려가곤 했다. 돼지는 죽은 듯 꼼짝도 않고 모로 누워 있고, 나는 그런 돼지보다 엄마에게 두들겨맞을 일이 더 끔찍했다. 이런 돼지꿈을 꾼 날은 번번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도 그 비슷한 꿈을 꾼 듯하다. 돼지꿈 때문에 느닷없이 집을 나섰던 걸까?

엄마는 술만 마시면 울었다. 우는 데 진력이 나면 지나간 내 실수나 잘못을 끄집어냈다. 그 다음은 매질이었다. 부지깽이로 두들겨맞는 건 약과였다. 머리칼을 휘어잡아 엎어놓고 등을 펑펑 내리치기도 하고, 때로는 비틀거리며 닥치는 대로 걷어차다가 아구구 하면서 제풀에 넘어지기도 했다. 엄만 내가 없어지면 좋겠어? 왜 그래, 왜 그래 엄마! 참다 못한 내가 악다구니를 쓰면서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방구석에 모로 쓰러졌다.

돼지 두어 마리를 키우던 우리는 집집마다 다니며 수챗구멍 앞에서 쌀뜨물을 거둬왔다. 허구한 날 술에 절어 있는 엄마 대신 쌀뜨물 거둬오는 건 당연히 내 몫이었다. 집집마다 저녁쌀을 씻고 난 무렵, 나는 뜨물 지게를 지고 마을을 돌았다. 수챗구멍 앞에는 쌀뜨물을 비롯하여 음식물 찌꺼기가 담긴 통이 하나씩 있었다. 기와집은 항상 뜨물통이 푸짐했다. 생선 대가리 따위의 음식물 찌꺼기가 그대로 뜨물통에 부어져 건더기가 퍽이나 많았다. 나는 뜨물통을 가만히 기울여 윗물을 따라 내버리고 진국을 옮겨담으면서 비린 것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기와집에 들어설 때면 왠지 주눅이 들어 나도 모르게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졌다. 요란한 장식이 붙은 우람한 대문을 밀고 들어가서 담장을 끼고 돌면 우물이 있고 그 수채 곁에 뜨물통이 있었다. 양철로 된 빈 초롱은 조금만 부딪쳐도 잔망스런 소리를 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어깨를 기울여 초롱 손잡이를 한쪽씩 잡고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부엌문이 벌컥 열려도 모르는 척 뜨물을 옮겨담았다. 꼬마아줌마가 문지방을 넘을 때는 그러는 게 옳았으니까. 기와집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식모가 있었다. 그 식모를 사람들은 꼬마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녀는 난쟁이였다. 꼬마아줌마는 다리가 짧아서 부엌 문지방을 넘을 때마다 엉덩이가 심하게 실룩거렸다. 문지방에 가랑이가 빠듯이 걸칠 지경이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체가 짧고 안짱다리인 그녀는 넘어지기도 잘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끝이 맵고 바지런해서 주인 마나님은 물론 드나드는 사람들에게도 늘 칭찬을 들었다.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데 꼬마아줌마가 아닌 낯선 여자아이가 불쑥 나타났다. 여자아이의 손에는 노란 양은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못 보던 앤데 누구지, 손님인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아이의 눈은 초승달이 되었다. 숫기도 좋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눈웃음을 치고. 나는 음식찌꺼기를 거두러 다니는 것이 창피해서 그 아이의 미소를 피하고 말았다.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허둥댈수록 출렁거리는 초롱 때문에 걸음이 더뎌졌다. 대문 문지방을 넘으면서 결국은 뜨물에 옷을 적시고 말았다.

언 밥에 물을 잔뜩 넣고 끓인 멀건 죽과 간장 한 종지. 저녁 밥상 앞의 엄마는 또 술생각이 간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밀린 외상값 때문에 가게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외풍이 심한 방, 시린 코끝을 죽그릇이 피워내는 더운 김이 얼렀다. 간장 한 숟갈을 떠 멀건 죽에 끼얹으면서 엄마가 말했다.

기와집에 수양딸을 들였다는데 못 봤니? 나이는 어리지만 애가 아주 음전하다고 하던데.

초승달 눈이 음전한 건가? 음전이란 어감이 아무튼 칭찬인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깨바가지에 짱구 마빡,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애는 웃는 모습이라도 예쁜데 나는 이게 뭐야? 자주 거울 앞에 서서 그애의 눈웃음을 흉내내었다. 기와집 마나님의 사랑을 그애에게 빼앗길 것만 같아 불안하기까지 했다. 기와집 마나님은 뜨물을 가지러 가는 내게 가끔 손짓을 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눈깔사탕이나 유과를 말없이 쥐여줬다. 어쩌면 그 맛 때문에 군소리 없이 뜨물을 거두러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었다. 때로 마나님은 댓돌에 우두커니 앉아 하염없이 먼산을 바라보기도 했다. 마나님의 희고 긴 목과 매일 갈아대는 듯 눈부신 동정의 날카로운 선, 그 묘한 서늘함엔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마나님은 언제까지고 흐트러지지 않을 자세로 그렇게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있었다. 그럴 때의 마나님은 삐걱대는 대문소리도, 뜨물을 초롱에 옮겨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뭐가 걱정일까?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호사스럽게 사는 마나님이.

엄마는 가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대보면 그게 그거다. 그 팔자나 내 팔자나 퉁그러지긴 매일반이니까. 빛 좋은 개살구인 그 마나님이 어쩌면 나보다 못한 건지도 모르지. 후사는커녕 구실 한번 못했으니……

엄마는 흐뭇한 눈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나님 이야기를 할 때 엄마는 가끔 그렇게 변덕을 부리기도 했다.

마을에는 유난히 내시가 많았다. 정내시뿐 아니라 건넛마을에 김내시 윤내시, 그리고 재 너머에 사는 대여섯 명의 내시.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한양과 가까웠던 게 그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박석고개를 넘고 구파발을 지나 북한산 북쪽 끄트머리쯤에 군데군데 터를 잡은 마을이었으니까. 따라서 내시 중에서도 힘깨나 쓰는 이들이 살림집을 들이기에 맞춤한 거리였으리라. 그곳의 대지주가 거의 내시들이었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만들어진 제3의 성, 내시. 생계를 위해 스스로 선택하거나, 혹은 형벌이나 사고에 의해 남성을 상실한 그들은 유달리 물욕이 강했다고 한다. 물욕이야말로 그들이 온전하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욕망이었다. 왕과 가까운 거리에서 상당한 권력과 부를 쌓았던 이들. 늘 조아린 머리와 잔뜩 좁힌 어깨 뒤로 엿보이는 달콤한 보상. 그 보상은 성을 판 댓가였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그러나 내가 아는 내시들은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왕과도 궁중과도 별 상관이 없었다. 대지주였던 부친의 유산 덕에 가세만은 넉넉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신체적 결함을 지닌 내시들의 권세 없는 부는 무력했다. 그들이 따돌림당하지 않고 이웃과 함께 사는 길은 덕을 베푸는 일이었다.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곧잘 선심을 썼고 어려운 이웃에겐 곳간을 열기도 했다. 내시들은 수염이 없고 피부가 여자처럼 고왔다. 그리고 듣기 거북할 정도로 갈라진 고음의 목소리를 냈다. 새가슴처럼 어깨가 다소 들리고 허리가 짧은 대신 다리가 껑충했다. 여느 사람들보다 키는 큰 편인데 젊어서는 비대했다가 나이가 들면 깡마른 체형으로 변했다. 궁중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지 종종걸음은 치지 않았고 자세가 굽지도 않았다. 내시들은 꼭 고자 양자를 들였다. 그건 대를 물리는 환관 가계의 풍습이기도 하려니와,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르는 모자간의 불미스러움을 막으려는 예방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와집도 고자 양자를 들였었다. 양자는 스무살도 넘은 성인이었다. 귓결에 들은 말로는 어릴 때 밭에서 용변을 보다가 개한테 고환을 물려서 그리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양자는 처음부터 딴 생각이 있었는가보다. 일년 남짓 농사일도 거들고 마당도 깨끗이 쓸면서 양아버지의 눈에 든 다음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안방 보석함에 있던 마나님의 패물을 송두리째 챙겨가지고.

잃어버린 패물을 다시 마련하느라 한동안 기와집 마나님의 외출이 잦았다. 덕분에 나는 한껏 차려입은 마나님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한쪽 치마 솔기를 옆구리에 끼고 사뿐사뿐 걷는 마나님은 마치 발이 땅에 닿지도 않는 것 같았다. 특별히 마나님한테만 세월이 비켜가는지, 언제 봐도 마나님은 아름다웠다. 엄마도 저렇게 차리고 나서면 근사할까? 나는 처음으로 마나님의 입성을 엄마에게 입혀보았다. 아니, 어림없어. 어디를 봐도 비교가 안돼. 나 역시 이담에 아무리 멋을 부린들 마나님 근처에도 못 가면 어떡하지?

그날은 봄비가 내렸다. 나는 아랫목에 배를 깔고 만화책을 펼쳤고, 엄마는 담요를 깔아놓고 재수패를 떼었다. 화투짝 떼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사이로 지나가는 빗소리가 끼여들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술냄새가 낮게 가라앉았다. 화투짝을 팽개친 엄마가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무릎걸음으로 가 방문을 밀었다. 문지방에서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보는 엄마의 머리카락이 눅진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비가 잠깐씩 그을 때마다 엄마의 노래도 끊어졌다가 빗발이 세어지면 다시 이어졌다. 나는 『마의태자』에 빠져 있었다. 나라가 망하자 넝마 같은 옷을 입고 금강산에 들어가 고생하는 마의태자가 안쓰러워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홀엄마의 청승엔 마음이 가지 않았다. 엄마의 처량한 노래는 내가 만화책을 덮은 다음 붉어진 눈을 감고 잠에 빠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그 밤 내내 내렸다.

사실 엄마를 술에 절게 만든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목수일을 하면서도 됫병 막소주를 대접에 따라 마셨다. 그렇게 취한 채로 어느 집 서까래를 얹다가 떨어져 죽었다. 술 취해 간 술꾼, 서까래를 얹다 간 목수. 그만하면 아버지는 잘 살았고 잘 죽은 편일까. 원래 엄마는 술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는 술이라면 치를 떨던 엄마한테서 언제부턴가 술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 술 마셨어? 그래, 그 웬수가 없으니 술냄새도 그립다. 아버지의 빈자리엔 술이 있었다. 저승에도 술이 있을까? 만일 술이 없는 저승이라면 아버지와 엄마 중 누가 더 불행할까? 엄마를 묻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부창부수라고 어쩜 그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엄마 역시 취해서 갔다. 여고 2학년 가을, 수학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집이 보이지 않았다. 불이 나서 폭삭 주저앉아버린 흙벽돌 집. 아버지는 남의 집만 지어주었지 우리집엔 도통 손을 대지 않았다. 내 머리가 커가면서 엄마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도 안 마신 척하느라 꽤나 애를 썼다. 나는 짐짓 속는 척했다. 내가 수학여행을 안 갔다면 엄마가 죽지 않았을까? 빤한 살림살이, 까짓 수학여행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엄마한테 말도 안 꺼냈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엄마가 선뜻 돈을 내놓았다. 오늘 돼지를 팔았다. 너만 추억에서 빠지는 것 엄마는 싫다. 나는 생전 처음 엄마한테 감동했다. 그렇게 기분좋게 나를 수학여행에 보낸 다음 엄마는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마치 계획했던 것처럼.

모처럼 마음놓고 술을 마신 엄마가 잠결에 머리맡의 남포를 쓰러뜨렸나보다. 불길이 허술한 초가지붕을 집어삼킨 건 삽시간이었다고 한다. 불이야, 불이야! 사람들이 우왕좌왕 물을 들고 나오기가 무섭게 거대한 짐승의 등뼈가 부러지듯 지붕이 내려앉고 말았단다. 우리가 몰라라 한 게 아니고 어떻게 손쓸 새가 없었다. 집이 우는 소리는 난생 처음 들었다. 쩌엉, 하는 비명소리가 건넛마을까지 들렸다지 뭐냐. 죽은 엄마의 모습을 나는 끝내 보지 못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염이 끝난 다음이었다. 그 또한 마을 어른들의 마음씀이었으리라. 엄마의 험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엄마는 집을 가지고 갔고, 나는 마을을 떠났다. 꾸릴 짐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구차한 자취를 알뜰히 거두어간 엄마. 엄마가 삶의 흔적으로 남긴 건 나뿐이었다. 불탄 집 담장에 기대 멀리 신작로를 바라봤다. 막막했다. 마을 아낙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동구 밖까지 따라왔을 때, 저만치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기와집 마나님이었다.

힘들면 오너라.

고맙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게 노잣돈을 쥐여주곤 급히 돌아서던 마나님. 마나님이 쥐여준 그 돈은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노잣돈치고는 꽤나 커서 사글세 보증금을 내고도 다섯달치나 되는 월세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마나님은 내가 건너갈 징검다리를 놓아준 셈이었다. 학교측의 배려로 야간으로 옮기고 급사생활을 시작했다.

너만 추억에서 빠지는 것 엄마는 싫다.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참으로 엄마답지 않은 말이었다. 딸이 추억에서 빠지는 걸 꺼린 엄마, 엄마를 추억에서 지워버린 딸. 지워진 자신이 서러워서 유난히 하얀 겨울 딸을 불쑥 불러낸 걸까? 엄마는 누가 부르기만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서곤 했다. 대부분은 마을 아낙들의 귀빠진 날이라든가 잔칫집 뒤풀이였지만.

알아서 챙겨먹어.

나는 돼지죽부터 먼저 준 다음 벽장에 있는 덕용 포장 라면을 하나 꺼냈다. 그런 날은 내가 라면을 먹어도 좋은 날이었다. 부드러운 라면의 고소한 맛, 혀에 착착 감겨 삼키기조차 아깝던 느끼함. 라면은 별식이 아닌 특식이었고, 엄마의 외출은 곧 나의 특식과 연결됐다.

 

길가에서 서성대다가 다시 가게에 들어가 정종과 포를 샀다.

보고 가야지. 날 버리고 갔지만 날 남긴 엄마. 거울 속에서 문득 만나곤 하는 엄마. 나는 엄마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 늙은 딸이 젊은 엄마를 만나러 간다. 젊어서는 못 가고 엄마보다 늙은 모습으로.

비닐봉투 속에서 술과 포를 꺼냈다. 하나의 봉분 안에 나란히 누운 엄마와 아버지. 유택(幽宅)은 쉽게 나를 맞아주지 않았다. 발이 시린 건 둘째치고 종아리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걷기가 여의치 않았다. 더구나 감춰진 깊숙한 허방은 왜 그리 많은지?

눈 덮인 산소는 밋밋하기가 이를 데 없어 눈앞에 두고도 계속 주변을 뱅뱅 돌았다. 차바위에서 십여 미터 아래, 왼쪽엔 수십 그루의 밤나무밭이 있고…… 차바위는 지프차같이 생긴 바위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눈 때문에 형체가 사라진 차바위를 찾느라 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근 한시간을 헤맸다. 꼭 삼십년 만이다. 오고 싶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에 대한 원망 때문이라기보다 다 잊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애써 기억을 지워버렸다. 엄마처럼 ‘애수의 소야곡’이나 부르면서 과거에 매여 살기는 정말 싫었으니까. 연애시절, 남편에게는 부모님 모두 화장으로 모셨기에 찾아갈 산소조차 없다고 했다. 남편은 아무런 의심 없이 나를 믿었다. 난 복잡한 사람이 싫어. 당신은 단출해서 좋네. 내가 챙길 것은 오로지 당신 하나지? 영악한 노총각과 기운이 빠진 노처녀는 오래 뜸들일 것도 없이 의견일치를 보았다.

겨울날 해거름의 어둑신함 속에서도 묘 자리는 아늑했다. 골짜기마다 나무들 우는 소리가 요란한데, 유독 내가 서 있는 곳은 잠잠했다. 그지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잔을 드렸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요,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그만하게 살고 있어요. 언제 또 찾겠다는 약속은 드릴 수 없지만 여태까지처럼 그만하게 살 자신은 있어요. 엄마 아버지, 저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요? 눈을 감고 부모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어렴풋한 두 얼굴. 생각하면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아릴 뿐이었다. 그다지 뿌듯한 삶을 살 분들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이쪽을 마감하고 저쪽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그리 나쁠 건 없지 싶기도 했다. 나 역시 분복(分福)이 이만큼밖에 안되니 시비걸 것 없이 엎드려 살면 그뿐이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돌아보았다. 옛날 우리가 살던 집터, 아버지가 쌓았다는 낯익은 돌담 가에 섰다. 흔적처럼 담쟁이덩굴이 감고 올라간 돌담은 조금 기우뚱해졌다. 나는 집 없는 담장 가에서 잠시 서성였다. 안에는 누군가 밭을 일궜는지 지스러기 배추가 때를 놓치고 눈 속에 방치돼 있었다. 지스러기, 부실하기 때문에 손을 안 타고, 때문에 더 오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어쩜 부모님에 비해 나는 지스러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담을 끼고 돌자 은행나무가 나타났다. 수나무가 없어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암나무는 여전히 혼자였다. 은행나무를 지나면 기와집 앞마당이다. 눈 덮인 마당엔 같은 자리만 디딘 듯 외줄기 발자국이 나 있었다. 농기계를 보관하던 창고는 반쯤 무너져 있다. 한쪽 발을 뒤로 뺀 채 시신의 입속처럼 컴컴한 안을 살폈다. 녹슨 탈곡기와 풍구가 먼지 더께 속에서 거미줄을 매단 채 풍화되어가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넓고 평평한 기와집 앞마당과 농기계를 빌려 교대로 탈곡을 하곤 했다. 하지만 기와집은 마당과 농기계를 선뜻 빌려주면서도 대문만큼은 평소와 달리 꼭 빗장을 질렀다. 팔뚝 굵은 남정네들이 소매 걷어붙이고 왔다갔다하던 추수마당. 아마 마나님은 집안에서 한걸음도 나설 수 없는 추수철이 가장 괴로웠으리라.

기와집 대문이 마치 폐가처럼 을씨년스럽다. 녹슬고 떨어져나간 장식, 점점 썩어들어가 모서리가 사라진 문짝…… 죽은 엄마보다 줄잡아 십년은 연상이었으니 마나님의 연세도 어언 팔십을 바라볼 텐데. 좀전의 그 털신이 마나님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 속의 마나님은 언제나 새하얀 고무신을 정갈하게 신고 있었다. 코에 까만 줄이 선명하게 나 있고 양쪽으로 눈이 찍힌 하얀 고무신. 바닥에 밀착해 땅의 기운이나 변화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고무신. 얇다는 건 많이 느낄 수 있다는 거다. 마나님은 한겨울에도 털신 따위를 절대 신지 않았다. 방금 바느질을 마친 듯 희고 날카로운 저고리 동정과 하얀 고무신. 기와집 대청마루 끝엔 언제나 깨끗이 닦아 엎어놓은 고무신 대여섯 켤레가 가지런히 있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면서 한기가 몰려왔다. 심호흡을 하고 나서 대문을 두드렸다. 문짝이 떨어질까봐 세게 두드릴 수도 없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대청마루 미닫이문 여는 소리가 힘겹게 들렸다.

“게 누가 왔수?”

“네 저예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윤주냐? 윤주가 다시 온 게냐?”

잘못 왔구나. 어떡하지. 마나님의 신발 끄는 소리가 빨라졌다. 도망치지도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문설주에 기대 있었다.

“그래, 니가, 윤주 니가…… 오늘 누가 왔었다고 하더니, 니가 오려고 그랬구나. 내 언제고 올 줄 알았다. 암 그렇고말고.”

마나님의 뜨거운 눈물이 내 볼을 번갈아 비볐다. 아무 말도 못하고 마나님께 나를 맡겼다. 외로움과 외로움이 찌르르 맞닿았다. 윤주면 어떻고 또 다른 누구인들 무슨 상관이랴. 나는 마나님의 품에 가만히 들어 있었다. 한참을 부둥켜안고 눈시울을 적시던 마나님이 문득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나님의 팔이 스르르 풀어져나갔다.

“뉘신가?”

 

윤주로 착각한 게 무안했던지 마나님은 나를 방으로 떠밀고 부엌으로 갔다. 절부터 받으셔야죠, 마나님을 붙들었지만 어림없었다. 부엌에서 딸그락대는 소리가 어색하게 들렸다.

안방 아랫목에 꼬질꼬질한 이불 한 채가 깔려 있을 뿐, 어디에도 사람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절해고도가 따로 있을까. 요밑에 손을 넣어보니 냉골이었다. 불을 넣은 지 얼마나 오래된 걸까? 코드가 꽂혀 있는 전기밥통을 열자 뜬내가 확 달려들었다. 아마도 지은 지 이틀은 되었을 성싶다. 윗목엔 비틀어진 걸레가 나무토막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어떻게 여길 다 오고. 그래 무슨 볼일이라도 있었던 게야?”

반가움이 뚝뚝 듣는 마나님 목소리에 목이 메었다.

“그냥, 문득 오게 됐어요……”

마나님이 물끄러미 나를 건너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할 텐데 한술 뜨려무나. 어여 먹어, 차시간 늦지 않게.”

어서 수저를 들라는 마나님의 시선에 떠밀려 밥상 앞에 다가앉았다. 명절 끝, 뉘 집에서 건너온 듯한 뻐드러진 저냐와 동치미, 그리고 고수장아찌가 놓여 있었다. 어디로 봐도 누구 앞에 내놓기 위한 상이라곤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마나님은 그걸 잘 깨닫지 못하는 눈치였다.

“저 오늘 여기서 묵어갈 거예요.”

낯선 기와집, 낯선 마나님이 나의 현실을 잠시 뒷전으로 밀어냈다. 비록 하룻밤일지라도 체온을 나누고 가야, 사람 냄새를 남겨놓고 가야, 발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마나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 마음을 다 읽었다는 듯 조금은 그늘진 표정으로. 마나님을 뵙고 갈 생각이었다면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서 하다못해 고기 몇 칼이라도 샀으련만…… 얼떨결에 빈손으로 찾아뵙는 게 죄송스러웠다. 마나님이 주전자에서 물을 따르려다 당황한 표정으로 동작을 멈췄다.

“이런, 물이 얼어붙었네.”

주전자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얼음을 깬 다음 대접에 물을 따랐다. 잊었던 그 지긋지긋한 옛날의 추위가 기와집에 남아 있었다. 자리끼가 얼고, 방문 밖 요강이 얼어터지고, 세수를 하고 들어설 때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던 그 추운 겨울들. 남들 추울 때 따뜻하게 지내던 마나님이었는데 이제 세월이 좋아 다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보내는 이 시절에 거꾸로…… 나는 물부터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선뜻 고수장아찌를 한 젓가락 집었다.

엄마는 고수 씨를 얻어다 텃밭에 뿌렸다.

이건 내시들이 퍼뜨린 채소란다. 엄마도 처음엔 빈대 냄새가 나서 입에 대지도 못했는데 어느샌가 이렇게 인이 배고 말았구나.

고수는 잎이 가늘고 꼬불꼬불했다. 그리고 서양인들 체취처럼 노린내가 났다. 엄마는 고수에 무채를 섞어 양념에 버무린 다음 부뚜막에 하루쯤 두어 익혔다. 엄마가 아무리 맛있다, 맛있다 하며 같이 먹자고 꼬드겨도 나는 고수와 친해질 수 없었다. 요즘으로 치면 고수는 향이 독한 허브였다. 그러나 내겐 그 향이 그저 나무젓가락 썩는 냄새 같기만 했다. 이런저런 음식맛이 오래도록 겹쳐 밴 나무젓가락의 역한 냄새.

“용케도 배웠구나.”

마나님의 입가에 번지는 반가움과 흐뭇함 때문에 나는 다시 고수장아찌를 집어야 했다.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몇번 입에 대보긴 했으나 아직도 역하기는 매일반이다. 눈길 한번 안 돌리고 지켜보는 마나님, 내 젓가락은 수시로 고수장아찌를 드나들었다.

“엄마한테 배웠어요. 어렸을 땐 잘 못 먹었는데 지금 먹어보니 좋네요.”

“나도 시집와서 그 맛을 익히느라 꽤나 애를 먹었지……”

마나님의 시선이 천장으로 간다. 우두커니 먼산을 바라보던 바로 그 모습이다. 먼산바라기를 하면서도 견딜 만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자신을 접었던 걸까? 가세가 기운 친정을 돕기 위해 스스로 팔려왔다는 마나님. 천장에 쥐오줌 자국이 어지럽다. 도배를 한 지는 얼마나 오래된 걸까?

“느이 엄마한테 고수를 가르친 건……”

“………”

“과부한테도 좋지 않을까 해서였지.”

고수가 어떤 욕정을 잠재우는 비방이라는 이야기였다. 사찰 음식에도 고수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하여튼 나는 까마득히 잊었던 고수장아찌를 먹으면서 마나님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나님은 연세에 비해 아직도 화대가 고운 편이었다. 고수가 혹 미용식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시들어도 남달리 맑고 고운 것일까. 고여서 썩고, 썩은 것이 자정되어 다시 맑아지듯 그렇게.

“같이 먹으니까 밥맛이 한결 나는구나.”

그러면서도 마나님은 몇 수저 안 떴다. 낮에 가룻것을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다면서. 나라에서 주는 생계비를 찾으러 우체국에 갔다가 재 너머 김내시댁을 만났는데 따끈한 국물을 대접하겠다면서 중국집에 끌고 갔다고 했다. 성의가 고마워서 우동 한 그릇을 남기지 않고 다 든 게 화근인 듯했다. 집안이 기울면 몸이 받쳐준다고 고뿔 한번 안 걸리고 잘 지냈는데 오늘따라 왜 이러나 몰라…… 마나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먼저 쉬세요.”

“그런데 참, 오늘 정말 안 가도 되는 게냐?”

걱정스러우면서도 다짐하는 눈길이었다.

“그럼요. 미리 허락받고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마나님과의 하룻밤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고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남편은 지금쯤 이 여자가 어디 갔지? 하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넣으리라. 하지만 여기에 온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나, 어디 좀 가야겠어요. 다녀와서 얘기할게요. 메모를 남겨두고 왔다. 처음 있는 일이라 좀 당황했으리라.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분명 어물대는 통화내용으로 마나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만 같았기에.

상을 우선 마루로 물리고 자리를 봐드렸다. 두 장의 요 위에 밍크담요를 깔고 이불을 내렸다. 이불이 몹시 무거웠다. 군데군데 솜이 치인 것도 느껴졌다.

베란다에서 보았던 조바위를 쓴 단아한 모습의 노파가 떠올랐다. 그 조바위 노파로 인해 내 발길이 이곳으로 향한 건 아니었는지. 그렇다면 나를 불러낸 건 엄마가 아니라 마나님일지도 모르겠다. 내내 머플러를 쓰고 있는 마나님의 머리가 문득 궁금하다.

파마를 하기 전의 엄마는 머리를 빗을 때마다 아주 진지하면서도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빗살이 굵고 성근 얼레빗으로 초벌 빗질을 한 다음 촘촘한 참빗으로 정수리부터 목덜미까지 빗어 내렸다. 그런 다음 왼쪽 어깨로 넘겨 앞으로 빗질을 할 때는 한 손으로 머리카락 끝을 저만치 받들었다. 엄마의 머리는 엉덩이까지 내려왔다. 눈길은 경대에 둔 채 몇번이고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 다음이 절정이었다.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틀어쥔 엄마는 하얀 무명끈을 입에 질끈 물었다. 그 끈이 서너 바퀴 돌 무렵 엄마의 얼굴은 왼쪽 꼬리부터 볼을 타고 뒷목까지 끈에 짓눌려 괴상한 모습이 되었다. 엄마는 끈을 놓치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있었다. 비뚤어진 채 분할된 엄마의 얼굴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비장했다. 머리를 땋을 땐 차라리 여유가 있어 보였다. 팔을 돌려 뒷머리를 땋다가 머리를 앞으로 돌려 왼쪽 가슴에서 땋아 내렸으니까. 가늘고 까만 무명끈으로 머리카락 끝을 마무리한 후, 엄지손가락을 뺀 나머지 네 개의 왼손가락을 지렛대 삼아 땋은 머리를 한 바퀴 돌리고 나머지로 꽁꽁 여민 엄마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비녀를 꽂았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양손바닥에 물을 묻혀 이마부터 쪽까지 머리를 쓸어 점검했다. 그렇게 공들여 쪽을 찌었으니 비녀에 욕심을 낼 만도 하지 않았을까. 비어진 머리 하나 없이 반듯하게 쪽이 틀어진 날 엄마는 종일토록 얼굴이 환했고, 그렇지 않은 날은 괜스레 퉁퉁거렸다. 때로는 일껏 만진 머리에서 비녀를 뽑고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하기도 했다. 마나님도 더하면 더했지 엄마보다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엄마는 일찍이 비녀를 뽑았지만 내 기억 속의 마나님은 여전히 비녀를 꽂은 모습이다. 만일 마나님 역시 비녀를 뽑았다면 저 머플러를 끝내 벗지 말아주었으면 싶다. 다행히 마나님은 머플러를 풀지 않은 채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마루의 상을 부엌으로 물리면서 마나님의 털신에 살그머니 발을 꿰었다. 헐떡거렸지만 편했다. 벗을까 하다가 그냥 신은 채 부엌으로 향했다. 남루한 만큼 가볍고 포근한 털신의 감촉이 문득 마나님이 머리의 비녀를 뽑았을 것만 같은 예감으로 연결된다. 부엌은 방보다 더 엉망이었다. 대강 설거지를 했다. 옛날 그대로의 재래식 부엌, 게다가 오래 손을 보지 않아 주저앉고 파인 부뚜막에 오두마니 있는 석유곤로. 마나님은 일을 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평생 손에 물을 묻히지 않았던 마나님. 그것은 마나님이 여자임을 포기한 댓가였다. 그렇지만 그 보상이 평생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우두커니 댓돌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던 마나님. 그렇다,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에게 먼산은 끝내 먼산일 뿐이다. 그렇담 차라리 비녀를 뽑아내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무거운 솜이불을 두 채나 겹쳐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언 발은 내내 녹지 않았고 마나님 때문에 마음까지 시려왔다. 윤주 소식을 물었을 때, 마나님은 편치 않은 한숨을 쉬었다.

“욕심 같아선 곁에 오래 두고 싶었지. 내 속내를 눈치챘는지 그애는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남자를 알아버리더구나.”

그랬구나. 두살 아래인 윤주는 나와 함께 읍내 여학교에 다녔다. 나보다 수업이 빨리 끝나는데도 불구하고 윤주는 늘 버스 종점에서 나를 기다렸다. 혼자 가기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날, 튀김집에서 윤주가 남학생과 함께 나오는 걸 보았다. 유도부 앤데 나더러 시합 때 응원 오래. 갈 거야? 언니도 같이 구경 가자. 시합이 있던 날, 나는 윤주 때문에 막차를 타야 했고, 그 댓가로 윤주는 내게 짜장면을 사줬다. 그리고 그해 가을, 어디서 본 듯한 남학생이 우리 마을 뒷동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여느 날처럼 뜨물을 가지러 기와집에 가자 마나님이 물었다. 윤주랑 같이 안 왔니? 네에, 피아노 연습이 늦는가봐요. 그때 나는 마나님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윤주 편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모르는 복잡함을 비켜가고 싶었을 뿐이다. 솔직히 윤주의 사생활에 호기심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입으로 물을 만큼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엄마와 나를 감당하는 것도 버거웠으니까.

“괘씸하다는 생각에 그냥 내치고 말았구나. 참하게 기다리면 번듯하게 시집보낼 요량이었는데……”

혹시 마나님의 무의식에 딸이 여자가 된 걸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해서 마나님답지 않게 가혹했던 건 아니었을까.

언니는 좋겠다. 뭐가? 이상한 사람들이랑 안 사니까. 그러고 나서 윤주는 입을 다물었다. 뭘 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제 발등만 보며 걸었다. 기와집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기집애, 어디서 굴러 들어와가지고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래? 나는 내겐 없는 윤주의 혜택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나도 심했지만 그애도 여간 독한 게 아니었다. 단 한번도 연락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왔었다지 뭐냐? 정말인지는 몰라도 하필이면 내가 없을 때.”

이젠 윤주가 다시 와도 마나님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마나님은 어쩌면 윤주와 엇갈린 걸 다행으로 생각할는지도 모르겠다. 마나님이 전등을 끄고 텔레비전을 켰다. 소리를 죽인 텔레비전이 어두운 방안을 정신사납게 기웃거렸다. 이제 더이상 마나님의 표정은 볼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서 영감님은 점점 정신이 흐려졌고 큰살림을 도맡아서 야물게 할 젊은이가 필요하던 차에 우연찮게 시조카가 양자로 들어오게 되었단다. 첫번째 양자에게 배신을 당한 터라 다 부질없는 짓이라며 영감님이 반대했지만 마나님이 우겼다고 한다. 이번엔 생판 남도 아니고 같은 핏줄인데 서로 의지하고 살면 좋지 않느냐면서…… 시조카가 양자로 들어오자 마나님은 마음이 턱 놓였다. 마나님은 오로지 영감님 간병에만 매달렸다. 젊어 한때는 영감님이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영감님이 드러눕자 안됐다는 생각이 앞섰다. 구실 못하는 죄로 평생 안사람한테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마나님은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도 이 댁이 몰락한 이유가 궁금했다. 줄잡아 면내 땅의 3분의 1이 이 댁 소유가 아니었던가.

“살림 불린다고 증권에 손을 댔다가 그만. 젊은이가 욕심부리는 것 꼭 나무랄 일도 아니라서 구경만 했지. 벌써 오래 전 일이야. 그애는 지금 도피중이고, 식구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지. 어디서 때는 찾아먹는지……”

마나님은 지금이 좋다고 했다. 궁색하긴 하지만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이 넓은 집에서 혼자 활개치고 사니까 지금이야말로 사는 것 같다고. 더구나 할망구가 되니까 호기심으로 더듬는 징그러운 눈빛도 없고, 애먼 소문 때문에 몸 사릴 필요도 없고, 참말로 더없이 좋다면서……

그 엿장수. 조무래기들은 극성스럽게 엿장수의 가윗소리를 따라다녔다. 얘들아, 저기 기와집이 제일 부자냐? 네. 저 집엔 누구누구가 사는데? 내시 아저씨랑 아줌마, 또 식모 아줌마, 셋이 살아요. 왜 그러는데요? 아나, 이거 한쪽씩 맛봐라. 엿장수는 엿 한쪽으로 아이들의 입을 막아버렸다. 침이 돌기가 무섭게 입안을 점령하는 달콤함. 입천장에 쩍쩍 달라붙는 엿을 빨면서 약간은 켕기는 기분이었다. 외지에서 들어온 장사치들이 도둑질을 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저 엿장수도 혹시 기와집에서 뭘 훔쳐가려고 꼬치꼬치 물은 건 아닐까.

그리고 얼마 후, 마나님은 해괴한 소문에 휘말렸다. 엿장수와 그렇고 그런 사이래. 마나님이 나들이갔다 올 때마다 그놈이 뒤따라오더구먼. 그놈이 기와집 앞에서 가새 장단을 치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걸 똑똑히 들었다니까. 뭐라 그랬는데? 곰팡이 핀 구녕도 삽니다, 하더라니까. 어린 나이임에도 난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다. 엿장수가 훔치려 한 건 어여쁜 마나님이었구나. 소문이란 늘상 바깥으로 휘돌다가 당사자에게는 가장 늦게 닿는 법. 어느날 엿장수는 기와집 마당에서 치도곤을 당하고 동구 밖에 내던져졌다. 정내시의 눈에 파란 불이 이는 걸 보았다는 둥, 마나님은 안방에서 꼼짝도 않고 수틀만 붙들고 있었다는 둥 뒷말도 많았다. 그러나 기와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했다. 내외가 큰소리로 다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꼬마아줌마만 보면 이것저것 캐물었다. 아 글쎄 별일 아니라니까요. 버스에서 내린 마나님을 보고 그놈이 따라왔던 게지요. 우리 마나님 정숙하신 거 그렇게 겪고도 모르시남요? 너무 고운 게 죄라면 죄지.

정말 지금이 좋은 것일까? 나는 마나님의 표정을 꼼꼼히 살폈다. 탐심이라곤 티끌만치도 없는 얼굴이다. 다 놓아버리고, 아무도 탐내지 않을 불편함만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편히 여기는…… 마나님의 허리가 굽지 않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실은 이 집도 압류가 들어와 있어. 늙은이 불쌍타고 내쫓지는 않지만 비워달라면 언제고 비워줘야지.”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집게손가락으로 방바닥에다 별무늬만 그리고 또 그렸다.

얕게 코를 고는 마나님 곁에서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방안의 기온이 성큼성큼 떨어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체에 밭이는 느낌이었다. 콧속에도 서리가 내렸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깜빡 잠이 들었던가? 어느새 동창이 밝고 있었다. 옆자리를 돌아보니 마나님은 보이지 않고 뭔지 모르지만 낯익은 향이 은은히 흘렀다. 아, 이 향기! 윗목에 고요히 앉아 머리를 매만지는 마나님의 얼굴 한쪽이 일그러져 있다. 종아리까지 내려올 만큼 긴 머리, 마나님이 땋는 은발은 어느새 세운 무릎을 돌아오는 중이었다. 칠보 금비녀는 흑발보다 은발에 더 어울릴 성싶다. 마나님의 쪽에 과연 무슨 비녀가 꽂힐 것인가. 마나님을 훔쳐보는 내 가슴이 숨가쁘게 뛰었다. 동백기름을 발라 빤빤하게 빗어넘긴 은발은 여명 속에 더욱 빛났고, 정수리를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가르마의 완강함은 서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좌와 우, 마음과 육신, 어제와 오늘, 너와 나를 가르듯 타협을 거부하는 정중앙의 직선. 동백기름의 눈부신 윤기와 서늘한 가르마를 눈에 찍어둔다. 드디어 마나님이 쪽을 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바짝 긴장했다. 갈무리한 머리를 왼손으로 누르고 오른손으로 비녀를 꽂는다. 금빛인가 은빛인가, 언뜻 가늠되지 않는다. 바투 있던 얼굴을 뒤로 조금 물리면서 거울을 보는 마나님의 동작이 흡족해 보인다. 아! 나는 짧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마나님이 고개를 돌렸다.

“고단할 텐데 좀더 쉬려무나.”

“그, 그 비녀, 아직도……?”

마나님이 아 이거, 하는 표정으로 양손을 뒤로 돌려 비녀를 어루만진다.

“다른 건 다 내줘도 이건 죽어도 가져갈란다.”

칠보 금비녀는 영감님이 사주단자와 함께 보낸 것이라고 했다. 패물 욕심이 많던 마나님이지만 비녀는 한번도 사지 않았다. 중요한 것, 귀한 것은 단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에. 집안이 몰락하고 운신이 힘겨워지자 마나님은 몇번이나 미장원 앞에서 망설였단다. 그러나 비녀는 쪽에 꽂아두는 게 가장 안전한 보관방법이었다. 갈등을 느낄 때마다 마나님은 주문을 외웠다고 한다. 머리를 자르면 비녀를 잃어버린다. 머리를 자르면 비녀를 잃어버린다.

“여하간에 팔려온 여자로는 살기 싫었다. 해서 뭐든 하날 붙들어야 했지…… 사실 이 비녀는 우리 영감이 특별히 주문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비녀란다.”

굳이 마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방을 나섰다. 무릎을 잡고 일어서는 마나님을 만류하고 나서는데 잠시 승강이가 있었다.

“늦었지만 제 손으로 한끼라도 대접하고 싶어요. 가만히 앉아서 차려드리는 상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러고 싶어요. 이해하시죠?”

마지못해 주저앉는 마나님의 얼굴에 서린 흐뭇함을 나는 보았다. 잘 왔어, 정말 오길 잘했어.

가마솥에 물을 잔뜩 길어다 붓고 땔감을 찾았다. 다행히 뒤꼍 처마밑에 썩은 장작이 쌓여 있었다. 십년도 넘었을 부석부석한 장작을 한아름 안아다 불을 지폈다. 구들이 막혔는지 연기가 냈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연기가 집어삼킨 부엌은 금세 모든 형태가 사라졌고, 불똥 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형태가 사라진 공간에서 매운 눈물이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뭘 몰라도 이렇게 모르실까, 딱한 마나님. 마나님은 혼자 사는 게 좋다고 했지만 혼자 사는 방법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 그런지 그것이 얼마나 불편한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끓는 물을 퍼다가 얼어붙은 눈을 녹였다. 한 사람이 걸어다닐 길이면 충분했다. 마나님이 찍어놓은 발자국을 따라다니며 길을 뚫었다. 눈이 녹으면서 폐허에 찍혀 있던 마나님의 흔적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부지런히 부엌을 들락거리며 뜨거운 물로 차갑게 얼어붙은 마나님의 발자국을 지워나갔다. 수돗가로, 광으로, 뒤꼍으로……

찬거리 몇가지를 사다가 손질을 하고 곤로 심지에 불을 붙였다. 곤로에서는 석유냄새가 심하게 났다. 냄비엔 불길이 핥은 자리마다 시커먼 그을음이 앉아 있었다. 석유냄새도 그을음도 고적하고 꼿꼿하기만 한 마나님의 체취 같았다.

마나님은 동태찌개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속이 몹시 허했던 모양이다. 마나님의 삶은 대체 뭐였을까. 명도의 차이만 있고 색상과 채도가 없는 무채색, 그 단순 지루한, 마치 저 천장의 낡고 찌든 벽지 같은, 그마저도 이젠 끝에 와 있는, 참으로 막막하고 허공 같은 인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하나는 붙들어야 지탱할 수 있는……

돌아갈 차비를 뺀 나머지 돈을 마나님 몰래 문갑 위에 올려놓았다. 지갑을 좀 채워서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예전에 마나님이 주셨던 노잣돈을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러운 액수였다.

“늙으면 다리부터 힘이 빠져서……”

마나님이 지팡이를 앞세우고 대문을 열었다. 길이 미끄러우니까 들어가시라고 만류해도 굳이 동구 밖까지 따라나왔다. 마나님과 팔짱을 끼고 느릿느릿 걸었다. 스웨터 속의 깡마른 팔이 자꾸만 내 걸음을 붙들었다. 또 오면 되지, 다음엔 곰국 한솥 끓여놓고 가야지. 삼십년 만에 다시 받게 되는 마나님의 배웅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마나님을 배웅해드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기억나세요? 저한테 힘들면 오라고 하셨죠, 잘 쉬었다 갑니다.”

마나님이 불안한 기색으로 발을 멈췄다.

“네가 힘든가보구나.”

“아녜요. 힘이 들었다면 오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아주 좋아요.”

“됐다, 그럼.”

마나님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맨손이 왜 이리 시린 걸까. 가다가 돌아봐도 또 가다가 돌아봐도 마나님은 그 자리에서 손을 내젓고 있었다.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서 들어가세요 어서 들어가세요, 나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눈발처럼 흩날리다가 내 속에 잦아들 뿐이었다.

 

다시 마나님을 찾았을 때 기와집 대문엔 큼직한 새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정월 그믐께 장사를 지냈는데 정확한 사망일은 아무도 모르며, 명절 며칠 후 수복상점 손자가 가게 앞에서 마나님을 본 이후로 마을 사람 누구도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는 말만 전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