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한국현대사의 빛과 그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창작과비평사 2001
주진오 朱鎭五
상명대 인문사회대 교수, 한국사 cchu@sangmyung.ac.kr
이 책의 원제목 Korea’s Place in the Sun은 그동안 『한국의 양지』 또는 『양지의 한국』으로 통용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양지’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되기 어려웠다. 심지어 “혹시 ‘태양’이 김일성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는 학자까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Sun’이란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일컫는 말로서 이 책의 제목은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는 이 책에서 서구중심의 논리로 한국을 바라보지 말라고 일관되게 경고하고 있다. 한국에는 고유한 미덕이 있으며, 그것은 목숨을 걸고 권력자에게─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간에─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세로서, 이를 가능케 한 것으로 성리학적 전통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미덕이 남한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서 재현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한국인들 가운데서도 개화파나 지주, 재벌 등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열강을 충실히 따르려고 한 세력들에 대해 그는 인색한 평가를 내린다.
그는 세계체제론의 이론적 기반 위에서 근대화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이룩한 주체가 누구이든, 그들이 수탈을 위한 근대화를 수행했든간에 역사적으로 근대화의 프로젝트가 수행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점이 자칫 그가 식민지 근대화론에 기울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받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바로 일제에 의해 국가자본주의적인 근대화가 수행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일 뿐, 그 기간에 이루어졌던 수탈을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남한의 경제성장과 민주화운동을 설명하면서도 경제성장의 결과에 대해서는 의의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 기간에 나타났던 극우반공정권의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의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은 세계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좁게는 동아시아 특히 일본자본주의와의 연관성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그의 시야가 사실 대단히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거시적 분석이 자칫 구체적인 조건과 만났을 때, 한국의 역사가 단순히 대상이 되어버리는 문제점을 한국인 연구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다. 한편 이 책에서 식민지배에 한국인들이 협조하였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가면서도, 그것이 지나쳐서 일제 지배의 본질이 가려질 정도가 되어버린 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에 관한 서술은 이른바 수정주의에 일관되게 입각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수정주의자들이 주로 외교사에 치중했던 반면에 커밍스는 세계체제론과 정치경제학을 접목시켜 한 차원 높은 서술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입장이 반미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커밍스 역시 미국의 양심과 이성이 존재함을 믿고 있으며, 그러한 가치들이 미국의 정책으로 자리잡기를 희망하기에 학문활동을 하면서도 현실정책에 직접 간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커밍스가 이 책에서 기밀문서를 동원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는 미국은, 사려깊지 못한 극우 정치인들과 군부 및 CIA 등이 아시아 민중의 의지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하여 반공을 내세운 보수세력을 옹호하고 민간 및 군부독재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을 방치해온 미국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남한의 극우반공, 군부독재 세력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커밍스는 반한(反韓) 인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인의 전부가 아니며, 그들에 대한 비판이 한국 전체에 대한 비판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북한을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북한의 지도자를 정신병자이자 전쟁범죄자로 보며, 흡수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커밍스는 친북주사파로 보일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 책에서는 북한에 대한 긍정적 서술이 상당히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북한을 찬양하거나 동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극단적 편견을 지닌 미국인들에 대하여 객관적 이해를 촉구하기 위하여 씌어진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가 김일성을 ‘태양왕’이라고 부르고, 계속해서 성리학적 전통과 연결해 영조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옹호하고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공산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왕조와 다름없는, 전통적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북한체제의 후진성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용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미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북한체제를 그렇게 몰고 간 데에 미국의 보수강경정책도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북한체제를 좀더 민주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정책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북한 지도부에 대해서도 시대착오적이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결여하고 있다며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식량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묻고 있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경고를 보낸다.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북한체제의 현상유지가 아니라 북한 스스로가 세계정세와 시장경제의 필요성에 눈을 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사실 그 자신이 인정하듯이, 커밍스가 한국역사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학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그가 1,2장에서 언급하는 내용들은 다른 영어권 연구자들의 성과와 영어로 번역된 몇권의 책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서술 분량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역사적 사실과 다른 서술도 상당히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김일성이 수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고구려와 연결시키면서, 이 부분을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영역한 A New History of Korea의 89면에서 인용하였다고 하였는데, 막상 그 책에서는 수령이라는 용어가 고구려가 아니라 발해의 족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밖에도 지면관계로 일일이 언급하지는 못하지만, 한국의 독자들은 전근대 부분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나타나는 오류는 그 자신이 초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책의 저자로서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특히 그가 한국의 전근대사를 서술하는 데 기반으로 삼고 있는 제임스 팔레(James Palais)의 주장, 즉 농업관료제론과 노비제사회론은 한국학계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증적 자료에 입각한 논저들이 영어권 학계에 널리 보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이 책은 번역하기가 아주 어려웠을 것으로 충분히 추측된다. 그래서 그런지 부분적으로 뜻을 파악할 수 없는 대목도 눈에 띄어 원본과 대조해가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검토하였는데,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원래의 뜻과 거의 다른 번역이 이루어져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만 두 가지 지적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8장의 제목 ‘Nation of the Sun King’을 ‘태양의 왕국’으로 옮긴 것이다. 이는 ‘태양왕의 나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 38도선의 결정에 관한 부분에서 ‘루즈벨트의 노련한 수완이 결여되었음을 반영한다’는 식으로 번역되어 루즈벨트가 38선의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읽힐 소지가 있는데, 이는 ‘루즈벨트였다면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가 올바른 번역이 될 것이다.
그밖에도 번역본을 내면서 새로 삽입한 부분의 위치가 적당치 않은 점, 미국인들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온 표기가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미국식 발음과도 맞지 않는 어색한 경우 등이 눈에 뜨인다. 하지만 이 방대한 책을 번역하면서 이만한 오류 정도는 그렇게 커다란 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미국의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1년간 한국사를 강의하면서 이 책의 원본인 Korea’s Place in the Sun: A Modern History(W.W. Norton & Company 1997)를 고생고생 읽어가며 교재로 사용하였다. 사실 커밍스가 이 책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미국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었지만, 그들에게 한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어느 대학도서관을 가보아도 한국사에 대한 영어문헌은 극히 빈약하고 실제로 수준도 높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한국학은 동아시아지역학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중국학과 일본학에 눌려 그 위상이 아주 낮은 실정이다.
미국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은, 오랜 동안 중국의 종속국이었다가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향력하에 들어갔으며 2차대전 이후 독립해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로, 그것도 짤막하게밖에 기술되어 있지 않다. 내가 만난 미국의 대학생들 가운데는, 그나마 이 정도라도 배웠다는 학생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사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 인식할 것이며, 또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미덕에 대하여 이만큼 긍정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씌어진 책이 없었음을 알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영어로 출판된 한국사 개설서들은 대부분이 이미 한국사 교육을 받은 바 있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출판된 것을 영문으로, 그것도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지루하게 번역한 것이 몇가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무언가 한국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도 읽을 만한 책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이 미국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팔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또는 이 책에 나타난 결점(특히 전근대 부분에 대한)을 극복하려고 미국의 여러 학자들이 한국사관련 개설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이 번역된 것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미국인 한국학 연구자가 바라본 한국사의 상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올해의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단정했다. 한반도는 부시가 마음먹기 따라서는 전쟁터로 변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한편 영국의 BBC에서는 한국전쟁 기간중 벌어진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을 입증하는 증언과 자료를 확보하여 방영했다고 한다. 우리 국내에는 부시를 열렬히 지지하는 한편, 그를 비판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나 BBC를 친북·반미로 매도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의 보수우익보다 더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의 행위나 입장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을 곧 편향된 친북주사파나 반한세력으로 단정하는 바로 그들에게는 커밍스가 매우 불편한 학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