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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젠더정치와 쎅스의 역사

토머스 라커 『섹스의 역사』, 황금가지 2000

 

 

하정옥 河政玉

서울대·산업대 강사, 과학사회학

 

 

최근 한 주간지는 「암수가 맞서는 ‘자궁전쟁’」이란 제목으로 수컷정자와 암컷난자가 수정란의 착상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는 과학기사를 실었다(『한겨레21』 2000.10.5). 단순하게 생각해보아도 정자와 난자는 단수체(haploid)이므로 성별이 없는데(어떤 단수체와 결합되느냐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 생식세포에까지 어떻게 성별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정자/난자의 공격성/수동성 대조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이다. 결국 그것은 남녀의 몸을 대조적인 것으로 보는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토머스 라커(Thomas Walter Laqueur)의 『섹스의 역사』(Making Sex, 이현정 옮김)는 남녀의 성을 이렇게 대립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두 가지 성모델’(two-sex model)이라고 부르며, 이 모델이 생명의학을 지배한 것은 200년도 채 안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대부터 대략 18세기 중반까지는 남녀를 동일한 종류로 파악하는 ‘한 가지 성모델’(one-sex model)이 지배적이었다. 오늘날 성차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인식되는 생식기조차, 마치 엄지와 검지 손가락의 차이처럼 돌출과 함몰의 차이 정도로만 보았다는 것이다. 당시 해부도를 보면 질 내벽의 묘사를 마치 남성의 음경처럼 묘사하여 여성의 해부도라는 제목이 없다면 남성의 몸을 그린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남녀 생식기관에 많은 유비관계가 설정되어, 함몰되어 있는 질과 자궁을 밖으로 뒤집으면 질은 음경이 되고 자궁은 여자고환(난소)을 감싸는 음낭이 될 것이라고 기술된다.

110-428그렇다면 남녀의 신체를 동일한 종류로 파악했으므로, 즉 생물학적 본성을 같다고 여겼으므로 당시의 남녀관계는 평등했는가? 이런 질문이야말로 오늘날과 같은 과학시대에 걸맞은 물음이다. 즉 신체가 갖는 인식론적 중요성 또한 큰 변화를 겪은 것이다. 오늘날에는 자연과학이 진리를 설교하는 사제이며, 이럴 때 몸의 생물학적 조건은 운명이고 제반 사회적 관계의 인식론적 근거로 간주된다. 이른바 생물학적 쎅스가 문화적 젠더의 토대인 것이다. 그렇지만 인류 역사의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은 운명의 비밀창고가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보여주는 표징에 지나지 않았다. 그 질서란 조화로운 세계관 속에서의 유비관계로서, 그 속에서 남녀는 (마치 시민과 노예의 관계처럼) ‘조화로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신체는 위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동일하다. 이를 현재의 개념으로 표현한다면 젠더가 선행하고 쎅스는 그것의 예증에 지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라커에 따르면 몸에 대한 해석방식의 전환은 개별 과학지식의 축적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돌발적으로 출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가지 성모델과 두 가지 성모델은 푸꼬의 에피스테메이고 쿤(T.S. Kuhn)의 패러다임이다. 두 가지 성모델이 자리잡은 후에도 이전의 한 가지 성모델을 두둔하는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지만 그 발견이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발생학과 성내분비학이다. 19세기에 본격화된 발생학은 태아 발생시 남녀의 생식기가 같은 기원을 갖는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그것이 한 가지 성모델을 부활시키지는 못했다. 또한 저자의 작은할아버지인 에른스트 라커(Ernst Laqueur)는 남/여성 호르몬이 남녀 모두에서 발견되었을 때 이미 양성성을 언급한 바 있지만, 성내분비학에서 충분히 가능했던 남녀의 스펙트럼 모델(성호르몬 양에 따라 남녀를 연속선상에 배열하는 것)은 더이상 연구되지 않았다.

라커의 방대한 인용과 깔끔한 해석은 매력적이다. 한 가지 성모델에 대한 치밀한 서술을 읽다보면 어느새 독자는 한 가지 성모델에 설득되어 돌발적으로 출현한 현대의 두 가지 성모델에 오히려 생경함을 느끼게 된다. 두 가지 성모델이 그리 견고한 요새가 아니라는 라커의 주장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는 편견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그렇다면 항상 이분법적 성차에 시달려온 페미니스트에게도 라커의 주장이 전유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로서는 긍정적인 대답을 찾기 힘들었다. 물론 본질적인 성차 담론이 끊임없이 젠더정치를 위협하고 있지만, 두 가지 성모델의 돌출성 주장이 그 해결책일 수는 없다. 라커는 두 가지 성모델을 낳은 주요 동력으로 인식론과 정치를 들고 있다. 그런데 책 전체에 걸쳐 자세히 설명되는 인식론적 변화에 비해,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그것이 중요했다는 지적만 있을 뿐 구체적 설명이 없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자 페미니스트의 이론화에 전유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미 20여년 전에 페미니스트 생물학자인 루스 허버드(Ruth Hubbard)는 생물학적 성차가 부각된 시기로 18세기말과 1970년대를 들면서 두 시기의 공통점이 여성의 삶이 급격한 변동을 겪는 때임을 지적한 바 있다. 18세기말은 거대하게 확장된 정치적 영역에서 여성들이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이고, 1960년대말은 제2의 물결로 알려진 새로운 여성운동이 일어난 때이다. 특히 1970년대 사회생물학으로 대표되는 성차의 진화론적 기원이론은 여성운동이 왜 잘못인지 여성의 생물학적 운명을 들어 설교했다. 이렇듯 생물학적 성차는 젠더정치의 첨예한 정국과 함께한다.

라커는 이 책에서 한 가지 성모델과 두 가지 성모델만을 대비시키지만 두 가지 성모델이 지배적일 때에도 언제나 성차가 강조되는 것은 아님을 잊고 있다. 라커가 조금이라도 젠더정치에 민감했더라면 그의 작업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지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과학에 대해 서술한 것을 빌려 말하면, 『섹스의 역사』가 젠더정치를 다 설명해낼 수 없다 해도 그 이론화의 기초는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자와 난자의 전쟁’은 단지 두 가지 성모델의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출생률의 저하를 우려하는 야단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 기사는 수정란의 착상을 막으려는 암컷난자의 이기성을 강조한다. 젠더관계의 평등한 변화야말로 출생률의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한 암컷유전자의 이기성이라는 싸늘한 대답이 바로 젠더정치와 쎅스모델이 만나는 구체적 현실이며, ‘쎅스의 역사’가 문제삼아야 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