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신인문학상
제2회 창비신인시인상 발표
우리 시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창비신인시인상’의 제2회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소설상·창비신인평론상과 함께 11월 27일(수)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2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안주철 「흉측한 길」 외 4편
심사위원
예심: 이진명 이재무 박형준
본심: 황현산 이시영
2002년 10월
(주)창작과비평사
심사평
김수영이 남긴 평문을 읽다보면, 좋은 시를 선별하는 자리에서 보기 좋게 완결된 작품에 점수를 주어야 할지 의욕이 꿈틀거리는 작품을 뽑아야 할지 고민했던 흔적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각종 문학상의 수상작을 심사하거나 신인을 선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붙들고 있어야 할 고민이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한사람의 신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가라앉으려는 것을 들어올리고 막힌 것을 열고 주눅든 것을 불러 일으켜세울 수 있는 새로운 활력이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신인상의 시부문 응모작들은, 총 602인 중에서 예심을 통과한 20인의 작품만을 놓고 볼 때, 그 수준이 매우 높았다. 이는 문학활동이 여러 각도에서 의혹을 받는 이 시대에도, 문학에 자신의 삶과 미래의 세상을 걸려는 열정들이 결코 줄거나 식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새로운 활력들이 지레 낡은 허울을 쓰고 나타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심사위원들이 오래 주목했던 작품은 김영미·양해기·주향호·한용국·김성규·안주철 등 여섯 응모자들의 작품이었다.
김영미의 시는 감정이 깊고 필력도 만만치 않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에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게다가 깨끗한 말들을 만들려다 자주 상투적인 구절을 얻게 되고, 그래서 주제를 더욱 빈약하게 만들고 있다. 양해기에게도 튼튼한 문장력과 시상을 붙잡는 힘이 있다. 그러나 응모작이 모두 산문시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실제로 이들 산문시에서는 시에 걸 수 있는 일탈과 도약의 힘을 미리 포기하고 있다고 여길 만한 대목이 간간이 눈에 띈다. 주향호는 사실들을 초현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특이한 작품들을 응모했다. 재주가 있다. 그런데 그 초현실적 이미지들이 이상하게도 상투적인 느낌을 준다. 과장된 어조에 너무 쉽게 의지하는 게 문제일 것 같다. 한용국은 필력이 뛰어나고 언어의 선택이 훌륭하다. 문제는 그의 작품에서처럼 주제가 암울할 때는 말의 활력이 그만큼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족사를 다룬 시가 너무 많다는 점도 이 응모자가 너무 늦게까지 자기정체성 확인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김성규의 응모작은 당선작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다. 시의 짜임이 좋고 언어가 적확하며 이미지가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다. 그러나 기존 문학의 틀을 깨뜨리고 나가는 힘에 의심을 갖게 된다. 잘 만든 작품이지만 비슷한 주제, 비슷한 방법의 작품을 다른 시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응모된 다섯 편 시의 수준이 고르지 않았다는 점도 덧붙여두고 싶다.
심사위원들이 안주철을 당선자로 선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미래의 작품에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의 응모작들은 외양이 다소 거칠지만 주제와 방법이 다양하고 말을 활발하게 밀고 나가는 저력이 확연하다. 일상의 사물에서 감정의 깊이를 짚어내는 시선도 비상하다. 자기가 쓰는 글에 심리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자신감 또한 높이 평가된다. 우리는 이 당선자가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할 것을 굳게 믿는다.
심사위원들은 좋은 신인을 또 한사람 만나게 된 것이 기쁘다. 그러나 그의 당선을 축하하기 전에, 응모자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정진을 빈다. 글쓰기가 평생의 과업인 사람들에게 등단의 늦고 빠름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黃鉉産 李時英]
당선소감
안주철
1975년 강원도 원주 출생.
배재대 국문과 졸업.
우연, 그 신비로운 폭력 덕분에 나의 삶에는 목적이 없다. 중간층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 대부분이 겪는 우연은 개인에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다. 그리고 긍정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일시적인 해프닝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때 긍정적인 우연은 개인적이며 정서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지는 데 반해, 부정적인 우연은 대부분 사회적인 영역에서 발생한다. 개인이 그 전체의 씨스템을 바라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도 부정적인 우연에 노출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목적이 있고, 목적을 획득할 만한 힘이 남아돈다. 그들은 부정적인 우연을 미연에 방지할 만한 노하우나 이미 발생한 부정적인 우연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좀더 공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기 어렵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서, 유행이 지나 관습처럼 딱딱해진,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슬픔에 대해서 말이다.
사회에는 언제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늘 불행하지는 않다. 사회적인 불행이 개인적인 불행과 비례한다는 계량적인 사유, 그동안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인 문제들에 괄호를 치는 행위는 새로운 유행, 새로운 슬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다. 물론 필요한 일들이지만 불행한 한 개인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늘 사회적으로 불행하고, 개인적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중 한 사람인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다만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글쓰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내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김영석 교수님과 이만교 형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작은 지면이나마 내게 허락해준 창비와 심사위원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 발표
우리 소설계를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창비신인소설상’의 제5회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시인상·창비신인평론상과 함께 11월 27일(수)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이상섭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
심사위원
예심: 이혜경 성석제 하성란 진정석 백지연
본심: 이문구 윤지관
2002년 10월
(주)창작과비평사
심사평
총 551편 중 본심에 넘겨진 10편(단편 6편, 중편 4편)의 작품을 읽고 나서, 솔직히 말해 투고자들이 창작과비평사가 마련한 신인문학상의 존재를 좀 안일하게 인식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백편의 투고작들 가운데 엄선되었음에도, 소설로서의 기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소설가로 이름을 올리고 활동을 하려면, 무슨 특별한 면모를 보여주고자 하기 이전에 구성력과 문장력이라는 기본이 다져져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작가로서의 자질과 그 훈련 여부가 확연히 판가름되는 단편들의 경우, 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여섯 편의 본심대상 단편 가운데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될 만한 수작이 한편도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그나마 읽을 만한 두 작품 「선물」(김영주)과 「소풍」(채영신)도, 전자는 주된 인물의 설정과 형상에서부터 무리가 많고, 후자는 섬세한 심리묘사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용 자체가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상대적으로 중편들이 문장에서나 구성에서 더 수준이 높았다. 그 가운데 「너의 방을 노래하라」(이민형)는 어느정도 숙련된 솜씨가 엿보이나, 이야기가 별로 없고 도무지 진행이 안되는, 요즘 소설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른바 답보형의 작품이라 진작 제외되었다. 또 나머지 세 작품 가운데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김개영)는 문장도 되고 한편의 소설로서도 무난하게 엮어진 작품이나, 바로 그 무난함이 문제인 경우다. 인물이든 문체든 살아 있음으로써 발현되는 소설의 맛이 거의 없어서 억지로 지어낸 규격품을 보듯 아무 감흥을 주지 못했다. 결국 「전사들의 행진곡」(최화성)과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이상섭) 두 중편이 마지막까지 선자들의 손을 떠나지 않은 최종 후보들이었다. 이 둘은 내용에서나 문체에서나 크게 대조되기도 하거니와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어느 한쪽을 버리기도 아쉽고 선뜻 한쪽을 택하기도 미진한 어려운 선택을 요구하였으나, 선자들은 후자를 당선작으로 추천하는 데 기꺼이 합의하였다.
「전사들의 행진곡」은 능력껏 살려고 노력했으나 사회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 일가의 소외된 삶을 해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데, 삶의 비극적인 요소를 익살스럽게 조감하는 입담으로 하여 읽히는 맛이 있다. 작중인물들의 성격이 뚜렷하여 누추한 삶이나마 생동감이 있으며, 따라서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대목들도 신인다운 풋내로 여겨져 흠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편의 완결된 작품으로서는 정리가 덜 된 혼란스러운 점이 역시 걸리고, 등단 이후를 고려하면 좀더 훈련기를 거치는 것이 작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는 한 어촌을 배경으로 평범한 어부 부부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묘사하는, 정통적인 사실주의 수법에 충실한 작품으로, 구수하고 걸쭉한 입담이 적절하게 구사되어 감칠맛이 있고 기본적으로 세부에 대한 관찰력이 두드러지며 특히 주인공 부부의 소시민적 내면묘사가 그러하듯 드문드문 뛰어난 대화법과 묘사력을 보여준다.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도 단단하여 신인답지 않은 숙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세태소설의 특성이 짙다거나 낡은 이야기를 낡은 방식으로 펼친 ‘구식소설’이라는 한계는 그것대로 남는다. 다만 어부의 삶과 연안어업을 여실하게 그려내는 작가가 드물어 우리 소설계의 빈 부분을 채워줄 낮지만은 않은 역량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할 것이다.
[李文求 尹志寬]
당선소감
이상섭
1961년 경남 거제 출생.
동아대 국문과 졸업.
‘루사’가 북상 중이라는 중이라는 예보를 듣긴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비의 발걸음이 빨라서 탈고가 끝난 원고를 들고 우체국으로 나섰을 때 이미 거리는 태풍의 아가리에 찢기고 있었다. 우산이 소용없었다. 비를 피하려 우산을 펴면 바람이 길을 막았고, 우산을 접으면 비가 몰려들었다. 정말 무서운 태풍이었다.
내 고향 거제도 사람들은 그물질로 계절이 오고 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철마다 나는 고기가 다르고 물빛이 다르고 고깃살 씹히는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절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어쩌면 이번 태풍으로 바다는 인간을 깨우쳐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모든 건 바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세상살이는 높이가 아니라 깊이라는 것을.
고마운 분들이 너무나 많다. 나를 키워준 고향 거제도의 바다며, 흥건한 입담으로 제게 능력의 씨를 뿌려주신 부모님, 늘 곁에서 바다같이 지켜준 아내와 내게 컴퓨터를 뺏겨도 잘 참아준 한움이, 한아도 고맙고, 기꺼이 품평을 해주던 직장 동료들과 소설연구회 회원들도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은 사회적 발언이다, 그러니 소설이 문제적이제” 하시며 내 소설의 방향을 이끌어주신 故 윤정규 선생님의 영전에 꼭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문학적 자양분을 뿌려주신 모교의 강은교·권우행·신진·박철석·최상윤·김성언 교수님과 꾸준하게 소설쓰기를 독려해주신 최해군·이규정·김성종·이복구·전용문·정형남·강인수·황국명·조갑상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누가 무어라 해도 따질 수 없이 고마운 분이 흠집투성이인 졸고를 뽑아주신 이문구, 윤지관 두 분이 아닌가 싶다. 내게 든든한 버팀돌이 된 ‘창작과비평사’에는 꼭 대들보 같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는 말로 감사의 뜻을 대신하고자 한다.
제9회 창비신인평론상 발표
우리 비평계를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젊은 문학비평가를 발굴하기 위해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창비신인평론상’의 제9회 당선작이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시인상·창비신인소설상과 함께 11월 27일(수)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9회 창비신인평론상 당선작
강계숙 「환(幻)의 순간, 초월의 문턱─최정례론」
심사위원 김영희 임규찬 임홍배
2002년 10월
(주)창작과비평사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평론상에는 다양한 작가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다룬 글들이 투고되었다. 이상에서부터 이문구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는 작가들이 고루 비평적 대상이 된 것은 그동안 은연중에 ‘창비의 정통성’을 의식하는 투고작이 많았던 것과 달리 응모자들의 관심폭이 그만큼 넓어졌고 새로운 문제제기의 의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만 1차 검토에서 제외된 상당수의 투고작은 예년에도 확인되는 여러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문제의식만 앞서서 작품의 실상이 파악되지 않는다거나, 거꾸로 작품에 너무 끌려가서 비평적 거리가 실종되는 경우, 그리고 학술논문이나 에쎄이와는 구분되는 비평의 고유성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세 사람이 투고작을 돌려가며 읽은 후 9월 13일 첫 모임에서 다섯 편을 추려서 다시 논의대상으로 삼았다. 성석제 소설을 다룬 두 편의 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유준)과 「깡패와 도둑, 바보들의 땅에서」(정학재)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상이한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흥미로운 시도이다. 그렇지만 전자는 다소 일반화된 ‘인문주의’의 덕목을 작품평가의 기준으로 삼은 결과 성석제 소설의 활달한 진면목이 제대로 포착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고, 후자는 성석제 소설의 삐까레스끄적 특성을 앎과 무지, 가치와 무가치 등의 이항대립을 흔드는 소설적 장치로 본 것까지는 좋으나 인물의 개성적 조형을 추적하지 않은 채 근대성에 관한 거대추상의 논의로 건너뛰고 말았다.
남기택의 「살아 있는 근대–김수영과 신동엽」은 나름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지만, 김수영과 신동엽의 변별점을 개체와 집단의 길항관계로 유형화함으로써 두 시인의 역사적 체험 속에 녹아 있는 모더니티의 ‘중층성’을 단조롭게 해소하는 결과에 이른다. 특히 김수영의 ‘내면화된’ 역사의식을 거론하려면 집단적 역사체험을 자기화한 개체적 자아의 층위가 복잡하게 굴절된 양상이 시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오홍진의 「근대의 외부로 나아가는 소설적 사유–공간적 상상력을 통해 본 황석영 소설」은 논제에 대한 집중력을 갖춘 글이다. 그러나 초기소설에 대한 분석은 다소 동어반복적인 양상을 보이고 『손님』의 ‘굿판’을 ‘모성성’의 공간이라 해석한 것은 작품의 실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비약이 아닐까 싶다. 주제의 일관성에 집착하다 정작 작품을 놓친 경우라 하겠다.
시간의식을 삶의 원체험으로 형상화한 시의 내적 논리를 차분하게 분석한 강계숙의 「환(幻)의 순간, 초월의 문턱–최정례론」은 시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유연한 논리전개, 군더더기 없는 서술이 돋보였다. 공교롭게도 작년에 황지우론을 투고하여 당선작과 경합을 벌였던 그의 이번 글 역시 작품에 대한 평가보다는 해석에 집중한 지나친 신중함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지만, 꾸준히 안정된 글을 써나갈 수 있겠다는 잠재력에 기대를 모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자에겐 자기절제의 미덕에 좀더 과감한 자기 목소리를 싣기 바라며, 다른 분들의 지속적인 정진 또한 기대한다.
[金英姬 林奎燦 林洪培]
당선소감
강계숙
1973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박사과정.
한동안 ‘문학이 대체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물었던 시절이 있었다. 문학의 본질이나 효용성을 묻는 질문에 비해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이었던 이 물음은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문학이 ‘업’이 된다는 사실을 두렵게 여기기 시작한 풋내기 문학도의 통과제의적 고민이었다.
그러나 획일적인 삶의 패턴으로부터, 소비의 욕망 외에는 그 어떤 미적 욕망도 쉽게 허락지 않는 단일한 문화적 코드로부터, 과거를 망각한 채 미래마저 낙관과 가상의 이미지로 구축하는 현재적 흐름으로부터, 나를 ‘나’로 존재케 하는 내적 질서와 리듬이 문학을 통해 키워지고 있었다는 점은 그 무렵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문학은 나와 관련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지금의 나와 연관되어 있는지를 차츰차츰 깨우쳐주고 있었다. 종교혁명에서 보스니아 내전까지, 척왜양요에서 4·19까지, 박제상태의 과거를 살아 있는 시간으로 현재화하고 ‘지금 여기’가 과거로부터 파생된 미래임을 충고하는 작품 하나하나의 목소리는 관계의 문제를 성찰토록 해주었다.
이 두 가지 답에 이어진 ‘그렇다면 문학을 위해 너는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 아마도 나를 비평이라는 글쓰기로 이끈 듯싶다. 이왕이면 시나 소설에 버금가는 ‘흥미진진한’ 비평으로 문학에 기여해보자는 꿈도 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창비의 심사위원들께서 문을 열어주셨으니 감사의 인사만으로는 부족할 듯하다. 그 꿈의 원천이신 모교의 선생님들께는 깊은 존경을 보낸다. 당선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준 친구들과 선후배들, 사랑하는 동생에게는 어떻게 고마움을 전할까?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어리석은 딸의 길을 지켜주시는 두 분의 이름에 결코 부끄럽지 않은 ‘글쟁이’가 되겠다는 약속으로 그 희생과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