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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지아 鄭智我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1990년 장편 『빨치산의 딸』을 내며 작품활동 시작. jiajeong@hanmail.net
미스터 존
바닷가 절벽 위에 서 있는, 한쪽 벽면만 남은 헤이스팅즈성(城)의 잔해는 오늘밤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11세기 중반, 노르만족의 침입 앞에 완강히 저항하던 앵글로쌕슨족이 마침내 무릎을 꿇은 바로 그 성이다. 밤이 깊어 주택가의 불이 꺼지면 시내는 온통 어둠에 잠기고, 비극의 전장(戰場)만 홀로 살아남는다. 성의 위치가 더 높은 탓에 불 켜진 성의 잔해가 마치 내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형상이다. 누운 채 눈을 치켜뜨면 허공 속에 눈부신 성의 잔해가 떠 있다. 나처럼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는 것인지 빈방 하나를 사이에 둔 존의 방에서 삐거덕거리는 침대 스프링 소리가 들려온다. 해가 지면 이 집에는 존과 내 방에서 번갈아 들려오는 침대의 잡음만 살아남는다. 주인을 닮아 거구의 체격을 가진, 그 체격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마가릿이라는 이름의 쎄인트 버나드도 이 집의 단둘뿐인 거주자처럼 하루종일 거의 움직이질 않는다. 녀석에겐 삐거덕거릴 침대도 없으므로 밤에는 녀석의 존재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밤 열시만 되면 이곳은 지하 무덤처럼 고요하다. 아니, 고요라는 말도 이 밤의 침묵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치 않다. 단 하나의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완전한 침묵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성의 잔해가 진공청소기처럼 사람살이의 자잘한 소리들을 흡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밤마다 무성(無聲)의 공간 속에 홀로 빛나는 성을 바라보며 의심해보곤 한다. 완전한 침묵의 공간에서는 시간을 알 수 없다. 침묵은 시간마저 흡수한다. 침묵의 밤에는 시간이 잠시 그 흐름을 멈추고 우주의 어디쯤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시간이 더이상 흐르지 않고, 겨울 내내 바람 찬 처마밑에서 삐들삐들 말라가는 옥수수처럼 변해버린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이삼일에 일이분쯤 빨라지는 손목시계를 매일 라디오 시보에 맞추며 살았던 적도 있다. 그때는 모든 일이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돌아갔고, 시계 속의 시간 안에서 내 삶이며 역사 따위가 굴러가고 있는 거라 굳게 믿었다. 언제부턴가 시계를 라디오 시보에 맞추지 않아서 방에 놓인 몇개의 시계가 저마다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지 않게 된 어느날부터 나는 바닷가의 모래알이 파도에 조금씩 떠밀려 뭍으로 밀려나듯 시간의 열외로 밀려났다. 아니, 내가 시간을 밀어낸 것인지 모른다. 밀어낸 것이든 밀려난 것이든 하기야 무슨 상관인가. 시간의 열외 지대에는 더이상 중요한 것이 없다.
허물어진 성의 불빛을 피해 돌아누운 내 시선이 벽에 머문다. 장미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진 색바랜 벽지 위에 일렬로 늘어선, 직사각형의 흰 부분들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올 4월, 나는 대형 여행가방을 끌며 이 방으로 들어섰다. 비자를 받지 않았으니 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최장기간이 6개월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그저 챙겨넣은 겨울용 외투며 스웨터 들로 인해 여행가방은 만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낯선 방에 짐을 내려놓고 보니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 겨우 가방 하나 분량이라는 게 신산스럽기도 했고, 이국까지 따라와야 할 긴요한 짐이라는 게 고작 몇벌의 옷이거나 신발, 속옷, 화장품 따위임이 어쩐지 서럽기도 했다. 낯선 방에 내질러진 그것들은 죽은 자의 소지품처럼 생기없고 누추할 뿐이어서 도무지 손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방 속의 소지품들을 마구잡이로 늘어놓은 채 나는 2인용 침대에 피곤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얼마 만엔가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낯선 시선이 엑스레이 촬영기처럼 나를 투시하고 있었다. 바라본다는 표현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뜨겁고 강렬한 시선, 아니 시선들이었다. 사방의 벽을 빙 둘러 오래된 인물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무수한 과거 속 사람들의 시선이 사방에서 나를 조여들었다. 숨이 막혔다. 낯선 아침의 한기를 막기 위해 꼭꼭 채워놓은 윗단추를 풀어젖혀도 숨이 트이질 않았다. 서울에서처럼 또다시 양 볼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몇년 전 봄 나는 자진해서 정보기관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기 직전에 발생한 국가보안법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나는 속해 있던 조직을 이탈했고, 몇년간 가족과도 연락을 끊은 채 대학가 앞의 자취촌을 옮겨다니며 혼자 지냈다. 그사이 함께 일했던 조직원들 대다수가 검거되어 감옥으로 갔다. 그리고 동구와 소련이 무너졌다. 만나는 사람도 없이 초라한 자취방에 웅크려 삼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피해 도망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른바 자수를 결심한 것은 혼자 동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다소 괴롭기도 했고,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명 높던 남산의 정보기관은 내가 자수를 한 탓인지, 아니면 동구의 몰락에 뒤이은 운동권의 쇠퇴 탓인지 말이나 글로 알았던 예전의 서슬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미 조직원 대부분이 검거된 후라 사건의 전모가 다 밝혀진 탓도 있었을 것이다. 혼자 지내는 동안 내 기억은 상당히 흐릿해져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진술해놓은 기록조차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의 진술서를 토대로 대충 진술서를 작성하고 나자, 그들은 반성문을 요구했다. 반성문이라니,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멍한 얼굴로 담당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연한 절차니까 써요. 망설이는 나에 대한 배려였는지 그들은 한묶음의 반성문을 갖다주었다. 어떤 조직의 책임자가 쓴, 그들 말에 의하면 가장 진실하고 완벽한 반성문이라고 했다. 그 반성문은 어쩌면 철저한 위장용일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고서야 한때 적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발가벗기는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반성문을 쓰지 않으면 자수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협박 앞에서 나는 만 이틀을 버텼다. 내가 그때까지도 이전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면 대충 끼적거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젊은 시절의 꿈을 대부분 상실하고 있었다. 한때는 장대한 뜻을 품었으나 그 뜻은 좌절되고 이제는 너무 늙어 다른 그 무엇도 새로이 시작할 수 없는 빈털터리 늙은 남편의 참담한 몰락을 지켜보는, 그러면서도 남편에게 바쳐온 평생의 순정을 쉽사리 거둘 수 없는 늙은 아내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나는 지쳐 있었고, 가슴은 텅 비어 있었다. 진리라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는 아름다울 수 있을지 몰라도 진리이기 때문에 곧 현실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서른이 되어가는 나는 차츰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전의 내 열정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의나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핑크빛 전망과, 진실이 승리해야만 한다는, 그래야 세상이라는 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관념의 소산이었던 탓에 냉엄한 현실을 깨닫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패배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정의와 진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아름답고 강한 인간이기를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건 다만 희망사항일 뿐 나라는 인간은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절망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더욱더 반성문을 쓸 수 없었다. 그들 앞에서 반성문을 쓴다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초라해진 나의 젊음을 짓밟은 행위였다. 이틀 뒤, 그들은 내 앞에 자신들이 쓴 반성문을 내밀었다. 거기 싸인이라도 하라는 것이었다. 다섯 시간쯤 망설인 끝에 나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싸인을 했다. 3박 4일을 함께 했던 다섯 명의 정보부 직원들이 일제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싸인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돌렸을 때 한 남자직원의 눈과 마주쳤다. 반성문을 건네받은 과장은 잘 생각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남자직원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실망감이 엿보였고, 이내 멸시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굉음을, 나는 들었다. 온몸의 피가 얼굴로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는데 모세혈관의 피까지 다 역류해 얼굴이 폭발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다음날부터 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길을 가다가도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시선이 제각각 다른 방향에서 내 머릿속을 엑스레이처럼 더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급기야는 하루종일 벌건 얼굴로 안절부절못한 채 서성거려야 했다. 몇날 며칠 홍조가 계속될 때도 있었다. 빈 공간에서도 나는 무수한 시선을 느꼈다. 전셋돈을 빼 아무 대책 없이 짐을 꾸린 것은 어쩌면 그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무수한 시선들을 피해 도망온 이역의 낯선 방에서 나는 또다시 시선의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옛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라는 집주인의 횡포에 짜증이 치밀었고, 석달치 방세를 선불한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을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마침내는 액자를 하나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맨 오른편에 걸린 액자는 삼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의 사진이었다. 서양사람치고는 둥그스름한 얼굴이었는데 원래 그런 의도로 찍은 것인지 빛처리가 잘못된 것인지 얼굴선과 여백의 경계가 흐릿해서 막 공간 속으로 사라지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기다운 무엇을 하나씩 대기중에 유출하며 살아온 듯 사진 속 여자의 얼굴에는 현실감이라는 게 없어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제자리에 남겨놓았다. 갈수록 퇴색의 정도가 심한 사진 속의 사람들은 좀더 고집스럽고 당당했다. 나를 가장 견딜 수 없게 한 건, 나와 맨 처음 시선이 부딪친 군복 입은 사십대 남자의 사진이었다. 그 군복을 입고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를 겪어냈을 것 같은 남자의 얼굴에는 굶주림이든 죽음이든 삶의 핵심을 자기 두 손으로 움켜쥐어본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단호함과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카메라의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나는 거북스러웠다. 군복 입은 남자의 사진을 떼어내고 여자가 맨 다리를 드러내서는 안되었던 옛날 사진인지 긴 드레스 차림의 간호사도 떼어냈다. 이제 막 청춘의 시기에 접어든 주근깨 투성이 소녀의 수줍고 빛나는 웃음도 거둬들였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떼어낸 액자들은 붙박이 벽장 위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그제야 얼굴의 홍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 발치에 걸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진 속의 여자를 바라본다. 카메라 렌즈를 피해 비스듬히 왼편을 향하고 있는 여자의 시선은 멍하다. 여자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 설령 그녀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다고 해도 여자는 자기가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느낌 탓인지 사진 속의 여자는 처음보다 더 희미해 보인다. 머잖아 여자는 무한한 허공 속으로 흩어지고 사진에는 여백만이 남아 있을 듯하다.
잠시 잠을 잤던 것인지 혹은 밤새도록 깨어 있었던 것인지 문 열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성의 불빛이 아직도 꺼지지 않은 채 수채화 물감처럼 흐린 대기 속으로 번지고 있다. 불빛은 그렇게 아침 속으로 스며들어 소멸될 것이다. 존과 마가릿의 발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대개 정오가 조금 지났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존의 기상시간이, 혹은 움직이는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어제는 아직 성의 불이 환한데도 일층으로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존은 일단 일층으로 내려가면 부엌과 텔레비전이 있는 거실을 들락거리다 해가 저물기 직전 근처 공원으로 마가릿을 산책시키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거실에서 마가릿과 함께 온갖 드라마를 보다 지치기 전에는 다시 이층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그게 존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엊저녁에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호두껍질 같던 존의 일상이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었다.
지난 봄, 내가 처음으로 존의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존은 십분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일요일 오전 여덟시, 남의 초인종을 마구잡이로 누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어학원으로부터 도착시간을 들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지 않는 주인에 대한 짜증과, 이국의 습기 머금은 추위에 뼈가 시릴 지경이었던지라, 나는 다소 무례하다 싶게 초인종을 연방 눌러댔다. 존은 부스스한 머리로 가운을 여미며 한참 후에야 문을 열었다. 길거리에서 눈길만 마주쳐도 굿모닝을 외쳐대는 자기네 동족들과 달리 존은 자기 집을 찾아온, 자기 집에서 최소한 석 달은 머무르게 될 손님을 맞고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내 트렁크를 번쩍 집어들고는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 왼편 방 앞에 내려놓았다. 아침은 아무때나 부엌에 가서 먹어라, 그리고 나 깨우지 마라,는 게 존의 첫마디였다. 부엌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화장실이 어딘지도 알려주지 않아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문마다 슬쩍 열어보아야 했다. 문을 열어본 모든 방에서 나는 오래 전 사람들의 시선과 부딪쳤다.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남자들은 체구가 크고 큰 체구만큼이나 얼굴도 컸으며 지나치다 싶게 뚱뚱했다. 존을 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사진 속 인물들이 그와 관계되어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존은 자신은 보지도 못했을 먼 조상들의 오래된 시간 속에 박제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 존의 부엌을 보았을 때 나는 잠시 서울의 내 집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사람살이의 번잡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스산한 풍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씽크대나 가스레인지에는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을 뿐 음식찌꺼기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존은 요리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하루 두 번 중의 한끼는 콘플레이크나 토스트였고, 나머지 한끼는 냉동 감자칩 혹은 다진 칠면조나 쇠고기가 든 냉동 파이였다. 인스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으로 요리는 끝이었다. 가스레인지를 쓰는 것은 찻물을 끓일 때뿐이었다. 존은 하숙생인 나에게도 그 이상의 배려를 하지 않았다. 식욕도 없었으므로 인스턴트 음식을 즐기는 존의 취향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서울에 있을 때라고 내가 요리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라면이나 식빵 따위로 최소한의 허기만 면했으며, 간혹 따끈한 음식이 생각나면 식당을 찾았다. 그러니 하숙생에 대한 존의 무심을 별로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실업자인 존은 뭐든지 싸구려만 먹었다. 숨을 참고 꾸역꾸역 밀가루 냄새 풀풀 나는 빵을 밀어넣다보면 하나의 기억이 공기 입자 사이에 섞여 폐부로 밀려들었다. 대학시절의 어느날이다. 몇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밤새워 쎄미나를 끝낸 아침이다. 반찬은 없다. 기름종이에 쌓인 마가린과 고추장, 간장이 전부다. 나는 마가린과 고추장에 버무린 밥을 한숟갈 가득 입에 넣고 있다. 그 기억만으로도 식욕이 당겼다. 기대감으로 빵을 다시 베어물어보지만 그때 같은 식욕은 솟지 않았다. 식욕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생활하는 자들만의 권리 같은 것이어서 세상 밖으로 흘려보낸 땀방울이나 열정의 양에 비례하는 것인지 모른다. 나처럼 존도 자동차에 기름을 넣듯 음식을 밀어넣는 타입이었다. 나는 존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국에서의 첫날 아침, 부엌에 처음 들어선 순간부터.
부엌은 존의 집에서 내 방을 제외하고 내가 마음놓고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어김없이 사방 벽면에 널려 있는 사진만 아니라면 좀더 좋았을 것이다. 내가 걷어낸 내 방의 사진이 여러 사람의 것이었던 반면, 부엌에는 한 여자의 사진만이 유리액자 속에 끼워져 있거나 혹은 낱장의 사진인 채로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젖살이 오른 시절부터 아이가 한 둘쯤 있어 보이는 나이까지 연대기처럼 걸려 있는 사진의 주인공이 존의 전처인지, 헤어진 연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별다른 증거도 없이 그녀가 바로 마가릿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때로 나는, 존이 습기찬 대기 속으로 스며들 듯 나지막한 소리로 마가릿을 부를 때, 마가릿을 깊이 응시할 때, 존이 바라보고 느끼는 대상이 개가 아니라 사진 속의 마가릿이 아닌가 착각하기도 한다. 개가 그만큼 영물인 탓만은 아니다. 개를 응시하는 존의 눈에서 나는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을 느낀다.
붙어 있는 사진들 중에는 반을 오려낸 것도 더러 있었다. 어떤 이들은 연인과 헤어지고 나면 함께 찍었던 사진을 태워버리거나 연인이었던 사람의 모습을 도려내곤 한다. 상대로부터 거절당해 원망이 깊은 상태에선 상대의 모습을 도려내기 쉽고, 스스로 이별을 결정한 경우에는 상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빨리 잊고 싶은 마음으로 사진을 송두리째 태우거나 찢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존의 사진에는 타인만이 남아 있다. 솜털 보송보송한 마가릿의 곁, 그 빈 공간에 존은 없다. 내 마음의 사진에도 도려진 채 허옇게 비워진 공간들이 있다. 잘 닦인 거울처럼 마음의 사소한 흔들림조차 드러내던, 일곱살 먹은 아이라도 마음을 읽어낼 만했던 젊은날의 단순하고 명쾌한 내 얼굴이, 내 기억 속에는 이미 도려지고 없다. 정보기관에서 반성문에 싸인을 한 순간, 나는 내 기억 속에서 유쾌하고 명쾌한 내 젊은날의 얼굴을 서슴없이 도려내버렸던 것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삶의 시계가 멈춰버린 것은. 내가 남자와 단둘뿐인 난처한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은 존의 시계 역시 내 것처럼 멈춰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인지 묻지 않았지만 짐작할 만했다. 어떤 이유로든 떠나간 마가릿이 존의 시계를 멈추게 한 것이다. 80년대 영국 경제의 침체도 한몫 거들었을지 모른다. 자기 안에 갇힌 그 이유의 단순성에 피식 웃음을 흘리다가 나는 웬일인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를 아는 누군가도 그런 웃음 한번으로 결코 쉽지 않았던 내 몇년의 세월을 흘려보냈을 수 있었다.
동질감이 나를 존의 집에 눌러앉힌 것은 아니었다. 멈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자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내 판단은 별로 어긋나지 않았다. 한달쯤 존과 나는 얼굴을 부딪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주로 밤에 활동하는 존을 위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다. 존과 나는 유령과 인간처럼 서로 마주치는 일 없는 기묘한 동거인이었다.
한달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거실에 있어야 할 존이 웬일인지 거실을 들락날락,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부엌 앞까지 오는 발소리가 들렸으나 이내 돌아서곤 했다. 그러기를 몇차례나 반복했을까. 부엌문 앞에서 발소리가 멈춘 지 한참 후에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존은 엄청난 거구다. 원체 체격이 크기도 하거니와 손가락 끝까지 살이 뭉실뭉실, 온몸이 갓 만든 솜이불 같다. 아마 여기에서 살이 더 붙는다면 그건 살이 찌는 게 아니라 더이상 늘어날 수 없는 체면적 사이로 그간의 살들이 터져나오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작은 동작만으로도 존의 몸에 붙은 살들은 저마다 출렁거리며 파도처럼 흔들린다. 흔들리는 살들은 분명 존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존이 아닌 듯하다. 존은 외부의 충격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성(城)과도 같은 그 출렁이는 살 속 깊은 어딘가에서 끌어안은 양다리에 얼굴을 묻은 채 숨어 있을 것 같다. 육체의 주인이 느껴지지 않는 육체란 어딘가 몽환적이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
“다른 데로 옮기지 마라. 앞으로는 잘 해주겠다.”
문을 열고 난 한참 후에야 존은 고개를 숙인 채 이마 바로 위의 머리카락을 연신 잡아당기며 말했다. 서울에서 석달치 방세를 송금했었고, 나가겠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존의 손동작이 점점 빨라졌다. 잠시 후 존은 빠른 어조로 한숨처럼 말을 토했다.
“그럴 줄 알았다. 우리집에 아무도 한달 이상을 있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늘 부연 안개 속을 부유하는 것 같던 존의 눈이 반짝거렸다. 부엌으로 성큼 들어온 존이 불쑥 내 손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거구의 힘을 실어 마구 흔들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존의 손은 뼈라고는 없는 살덩이뿐인 것 같았다. 존의 손에 휘감긴 내 손이 버터처럼 흐물흐물 녹아 존의 살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내가 황급히 손을 빼자 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고는 미안하다며 황급히 돌아섰다. 살덩이를 출렁거리며 거실로 돌아가는 존의 뒷모습을 나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뭐가 고맙다는 것일까? 하기야 실업수당만으로 살아가기는 빠듯할 것이었다. 적지 않은 하숙비가 꽤 소용이 될 것이고, 그래서 소심한 존은 혹시 내가 나간다고 할까봐 마음을 졸인 모양이었다. 나가지 않겠다는 말에 그토록 고마워하는 존이 우습기도 하고, 하숙생을 붙잡고 싶으면 집주인으로서의 써비스를 충실히 할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마음만 졸이는 게 한심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가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보름쯤 뒤였을 것이다. 계란 프라이를 하기 위해 프라이팬을 찾았다. 현재의 편안한 생활을 밥 잘해주는 대신 간섭도 많은 다른 하숙집과 바꿀 정도는 아니었으나, 빵과 인스턴트 감자칩, 쇠고기 파이에 물릴 대로 물린 것이었다. 씽크대 구석에서 겨우 찾아낸 프라이팬은 언제 쓰고 둔 것인지 기름때가 덕지덕지 앉은데다, 군데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눌어붙어 있었다. 굵은 소금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쇠수세미도 없었다. 나는 면이 거칠지 않은 일반 수세미로 프라이팬의 가장자리에 눌어 있는 기름때가 깨끗이 지워지고 은빛 속살을 드러낼 때까지 팔이 아프도록 닦아댔다. 다음날 점심 무렵 부엌에 들어섰을 때 존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물끄러미 그 프라이팬을 응시하고 있었다. 냉장고에 계란 한 꾸러미가 들어찬 것은 며칠 뒤였다. 계란만이 아니었다. 우유와 치즈, 오렌지 주스와 콜라, 마가린뿐이던 냉장고가 각종 야채와 과일 따위로 가득 찼다. 그후로 간혹 계란 프라이가 상 위에 올라왔고, 존이 부엌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허리 고무줄이 느슨해졌는지 넥타이로 트레이닝복을 졸라맨 존은 감자칩을 튀기기도 하고, 마침내는 비프 스테이크까지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었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씽크대 위에 하나둘 늘어나는 세간들도 마음에 거슬렸고, 가스레인지가 반짝반짝 윤을 내기 시작한 것도 거슬렸으며, 새로 구입한 빵 넣어두는 용기에 싸구려 식빵 대신 크루아쌍이며 이름도 모르는 몇 종류의 빵들이 구색을 갖추고 있는 것도 거슬렸다. 존이 부엌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나는 가장 편했던 그곳으로부터 멀어졌다. 몇달 전 오전 이맘때면 아래층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몇잔의 차로 아침을 때우면서 나는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온 옆집 고양이와 함께 부엌 깊숙이 스며든 햇살을 뒤집어쓴 채 나른한 하품을 토하곤 했다. 보글보글 찻물이 끓고, 주전자 입으로 솟구친 뜨거운 김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며 햇살 속으로 흩어질 때, 내 몸속의 무거운 기억도 그렇게 기화(氣化)하는 느낌이었다. 문득 따끈한 차 한잔이 그리웠지만, 아래층은 이미 존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2층까지 들려온다.
아래층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뭔가가 끓고 있는 듯 2층까지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잠시 후면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어쩌다 고향에 한번씩 내려가 불면의 밤을 뒤척이다 느지막이 깨어나면 어머니가 잘 차려진 밥상을 내밀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사리 나물이며 토란깨국이며 반짝게장이며, 허리가 불편해 잘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기 위해 어둠침침한 새벽부터 종종걸음쳤을 것이다. 밥상머리에 앉아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머니 때문에 나는 수저도 들기 전에 배가 부른 듯 속이 답답했다. 얼마 전부터 존이 차린 식탁 앞에서도 그랬다. 나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옷을 걸치고 안개가 걷혀가는 거리로 나선다. 뒤통수에 존의 시선이 느껴진다. 얼마 전부터 존의 시선이 늘 나를 주시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기억도 스며 있지 않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다. 여기에 온 이래 길을 걷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이곳의 인간들은 제법 품위들이 있어서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쯤은 너끈히 다스릴 줄 안다. 그래서 누구도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누구의 시선에도 걸리지 않는 나는 유령이나 다름이 없다. 압력솥 밖으로 터져나오는 수증기처럼 세상의 밖으로 튕겨져올라 나는 나라는 존재감을 상실해간다. 몇번씩 와본 장소를 다시 지날 때도 있다. 그러나 몇번씩 와봤다고 해서 그곳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장소가, 혹은 어떤 시간이 하나의 기억으로 저장되기 위해서는 행위나 감정이 필요하다. 어느 길모퉁이, 나를 배웅하고 돌아가는 남자의 늘어뜨린 어깨에서 난데없는 슬픔을 느끼고 달려가 그의 등을 껴안았다거나, 동백꽃 찬란하게 지고 있는 선운사에서 미(美)라는 것의 한 끄트머리를 붙잡았다거나 하는 따위의 행위나 감정, 혹은 생각의 강렬함이 무의미한 공간과 시간에 의미를 덧붙여, 무엇에도 속해 있지 않는 중립의 그것들을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게 하고, 기억이라는 이름하에 불멸성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행위하지도 욕망하지도 사고하지도 않고 다만 부유할 따름이므로, 이곳의 모든 것들은 언제나 낯설다. 그것들은 나의 기억이 되지 않는다.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다. 그다지 큰 동네가 아니고 여기 온 이래 거의 매일 몇시간씩이나 걸어다녔으므로 이 공원도 처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장소이다. 아름드리 나무 몇그루가 서 있는 공원은 제법 원시림의 음습함이 느껴진다. 나무를 온통 뒤덮고 있는 녹색의 이끼 탓일 것이다. 물기 젖은 두툼한 잔디 위로 호두보다 조금 큰 진녹빛의 열매가 툭툭 떨어져내린다. 청설모들이 떨어진 열매를 갉고 있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살랑거린다. 그 틈새로 파고든 햇빛 몇조각이 춤을 춘다. 햇살은 대기중에 스며 있는 습기에 부딪혀 찬란하게 산화(散華)한다. 먼 기억들이 찰랑거리며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젖은 땅 위로 아른거리며 증발하는 수분처럼 희미한 기억의 입자들이 수증기로 피어올라 흩어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유령처럼 낯선 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나는 매일매일 내 몸의 일부이던 무거운 기억들을 휘발시켰다. 그 때문일까. 여기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은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의 무구한 시선이 간혹 나를 사로잡을 때도 있지만 내 얼굴은 달아오르지 않았다. 서울을 떠난 것이 시선으로부터의 도피였다면,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셈이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은 해변도로를 따라 제법 먼 곳까지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작정이었으나 한 마을을 지나친 후로는 인가가 눈에 띄지 않았고,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별수 없이 갔던 길을 그대로 걸어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사는 마을 초입에서 작은 펍(pub)을 발견했다. 어둑어둑한 실내에선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고 몇사람이 발장단을 치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가벼운 소란스러움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집 문을 열고 있었다. 다섯 개의 테이블이 놓인 좁은 곳이었는데, 단골들만 출입하는 것인지, 동양인이 들어서자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기타 치던 사람까지 한동안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도 내 얼굴은 붉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자리를 잡고 위스키 한잔을 주문했다. 잔이 빌 때쯤 나의 등장으로 싸늘해졌던 분위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더블로 다섯 잔인가, 주량을 넘는 술을 마시고 나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보름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상하게 차갑고 몽환적인 은회색 풀 잎사귀에 달빛이 부서져내렸다. 나지막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집 주차장을 지나고 현관문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달빛 속에서 두 개의 거구가 벌떡 일어섰다. 존과 마가릿이었다. 마가릿은 깜짝 놀라 뒷걸음치는 내게로 내 키높이만큼 솟구치면서 달려들었다. 빠른 속도로 꼬리를 흔드는 걸 보니 반갑다는 표시였다. 존은 멈춰선 채 오른손으로 이마 위의 머리카락을 연신 잡아당기고 있었다. 기분 좋은 취기가 일순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여기 밤거리 위험하다. 마약하는 애들 많다.”
더 길어지기 전에 나는 존의 말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나는 네 마누라가 아니다.”
마가릿의 꼬리짓도, 존의 주제넘은 참견도 짜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 존과 말을 나누지 않았다. 존도 나를 피하는 눈치였다. 그가 없을 때 부엌에 내려가면 스튜나 칠면조 요리 따위가 냄비 안에 들어 있었다. 차라리 밀가루 냄새 풀풀 나는 싸구려 빵을 먹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를 좇는 존의 시선이 나날이 무겁게 느껴진다. 먼지를 털듯 날려버리고 싶다.
노부부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공원 안에는 길이 하나뿐이므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내게 시선을 주지 않듯 나도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어떤 대상이 내 감각에 수용되고 그것이 뇌세포에 각인되어 저장되는 일이 나는, 두렵다. 그것들은 어떤 빛깔로 나를 만들고 세상과 관계하게 한다. 나는 습기찬 땅 위로 부서지는 햇살을 본다. 빛은 잠시 내 눈을 멀게 한다. 노부부는 보이지 않고 향수냄새에 뒤섞인 살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굿 애프터눈. 부신 눈이 다시 대상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웃음이 담긴 진초록의 눈이었다. 굿 애프터눈. 혹시 알아듣지 못했을까봐 노신사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한다. 그의 눈은 똑바로 나를 향하고 있다. 노신사는 나의 말 없음을 동양인의 수줍음으로 생각했는지 햇살보다 밝은 미소를 남긴 채 고개를 돌린다. 그 미소가 뇌리에 박힌다. 그가 미소짓던 순간, 열매를 갉던 청설모가 반짝 고개를 들었고, 흔들리던 햇빛이 청설모에게로 쏟아져내렸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먼 기억들을 휘발시키듯 노신사의 미소를 휘발시키고 싶다. 그러나 이제 막 생성된 그것은 현재성의 생생함으로 내게 압착되어 좀처럼 휘발되지 않는다. 노부부는 이 공원에서 혹은 다른 어느 곳에서 나를 여러차례 보았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들에게 나는 이제 인사를 주고받아도 좋을 만한 친숙한 이방인이 된 것이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들 마을의 일부가 될 것이고, 나만의 어떤 코드로 기억될 것이다. 여느 때라면 뻐근한 다리를 몇번 주무른 뒤 산책을 계속했을 터이지만 더이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어느 골목에서 또다시 낯선 이의 다정한 인사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집 부근에서 나는 존과 마주친다. 아니, 그의 등과 마주친다. 존은 마가릿과 함께 좀처럼 가지 않던 시내 방향으로 걷고 있다. 보통때라면 존은 시내와 반대방향으로 동네를 한바퀴 돌며 마가릿을 산책시킨다. 그러고 보니 고무줄까지 느슨해져 넥타이로 허리를 동여맨 낡은 트레이닝 차림이 아니다. 말쑥한 양복차림이다. 여기 온 지 몇달이나 됐을까, 아무튼 처음 있는 일이다. 양복을 입은 존의 뒷모습이 주택가 골목이라고 해도 왕복 2차선쯤은 될 넓은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듯하다. 출렁이는 살들이 데워놓은 따스한 공기가 존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조금씩 뒤로 밀려나 내게로 흘러온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 느릿느릿 사라진 후에도 거리에는 미세한 공기의 흔들림이 남아 있다. 아무리 목욕을 시켜도 지워지지 않는 마가릿의 비릿한 개냄새도 섞여 있다. 그들의 존재가 남긴 파문이 내 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식탁 위에는 접시 두 개가 놓여 있다. 온기를 잃은 검붉은 칠리 쏘스 밑으로 하얀 밥이 내비친다. 어제 존은 갖가지 모양의 마까로니에 칠리 쏘스를 끼얹어 주었다. 매콤한 칠리 쏘스는 입맛에 맞았으나, 면 종류를 별로 즐기지 않아 마까로니의 대부분을 남겼다. 어제 오후 산책길에 비닐봉지를 들고 오더니 그 속에 쌀이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몇달 만에 보는 밥인데도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칠리를 하수구에 쏟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신경질적으로 접시를 들다가 식탁 위에 있는 또다른 접시에 눈길이 머문다. 그 접시에도 손대지 않은 칠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곳에 오기 직전 고향에 내려갔을 때, 떠남에 대한 설렘 때문이었는지 홀로 남을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밤잠을 설치다가 해가 중천에 걸려서야 눈을 떴다. 어머니는 이미 들일을 나간 뒤였고, 방 윗목에 밥상이 놓여 있었다. 좀처럼 식욕이 당기지 않아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다 상보를 걷어본 것은 점심때나 되었을 무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몇가지 봄나물과 함께 초등학교 시절부터 쓰던 사기 밥주발 두 개와 국그릇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존이 손대지 않은 칠리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당신 몫의 밥그릇과 국그릇을 치우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이 몇달의 시간과 수만 킬로미터의 공간을 뛰어넘어 그 시간과 공간만큼의 가속도로 내게 달려든다. 나는 차마 칠리를 하수구에 쏟지 못하고 다시 내려놓는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메모 용지가 팔랑거리며 떨어진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라. 나는 인터뷰하러 간다.”
인터뷰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바로 나였다. 존은 마가릿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었다. 바다 너머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홍차를 마시고 있다가 나는 사레가 들릴 뻔했다. 거실과 부엌에 각기 한대씩 놓여 있는 존의 전화는 거의 울리는 법이 없어서 타자와의 소통을 위한 장치라기보다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장식품이라고 해야 적격일 지경이었다. 서울에 있는 내 전화기도 그랬다. 기껏해야 이삼일에 한번쯤 울리는 전화조차 몇날 며칠 받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어쩌다 전화를 받으면 십중팔구 과거의 사람들에게서 걸려온 원치 않는 전화였다. 여전히 예전의 나처럼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옛친구들의 전화도 마뜩찮고, 평범한 소시민으로의 이전에 성공해 세간 늘리는 재미를 알아버린 친구들의 일상적인 잡담도 내키지 않았으며, 우리가 지난 시절 만만하게 흔들어대던 삶이라는 것의 비정한 한 끄트머리를 발견해버린 자들의 우울한 체념 혹은 냉소도 함께 나눌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자 굳이 전화를 안 받을 것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자체가 점점 줄어들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도 없이 일주일이 흘러가기도 했다. 혹 전화가 고장난 게 아닐까 싶어 수화기를 들어본 적도 있었다. 물론 고장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뚜– 하는 전화음을 듣고 있으면 아득히 멀고 굽이진 좁은 길이 눈앞에 떠올랐으며, 그 길의 끝이 가물가물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아침햇살 앞의 이슬처럼 무화해버리는 느낌이었다. 내 전화기의 외로움을 그대로 빼다박은 존의 전화를 받아들었을 때, 수화기에선 뚜– 하는 긴 신호음 대신 낯선 여자의 음성이 씩씩하게 내 귀로 날아들었다. 일주일 뒤 오후 두시에 인터뷰하러 나오라는 구직쎈터의 전화였다. 이번에는 꼭 양복을 입고 오라는 말을 여자는 두 번이나 덧붙였다. 아마 지난번에는 양복을 입지 않아서 취직이 안된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여자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혹시나 싶어 양복 입고 오란다는 말도 두 번이나 확인해주었다.
구직쎈터 여직원의 충고대로 존은 양복을 차려입고 인터뷰를 하러 간 것이다. 존은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시간 속으로 다시 복귀하고 싶은 것일까? 존의 인터뷰는 어쩌면 멈춘 시계의 태엽을 감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밥을 먹는다. 식은데다 칠리 쏘스에 불은 밥이지만 먹을 만했다. 신김치를 얹어 먹으면 더 좋을 텐데. 신김치를 생각하자 그동안 별로 생각나지 않던 음식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쓴 머위나물이며, 죽순이며, 고구마순 무침이며,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이 떠오르고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밥을 먹은 게 얼마 만일까. 그제야 나는 달력을 본다. 지금이 몇월인지조차도 분명치 않았다. 10월치 달력이 걸려 있는 걸로 보아 10월이려니 짐작할 뿐이다. 10월이면 이곳에 온 지 6개월째다. 다니지도 않을 어학원에 등록하고 비자를 신청하든가 아니면 떠나야 할 때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19일에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존에게도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잊지 말아야 할 어떤 날이 있는 모양이다. 마가릿이 떠났거나 죽은 날일지 모른다.
좀전까지 햇빛 찬란하던 바다에 느닷없이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몰려온다. 이곳의 날씨는 늘 이렇듯 종잡을 수 없다. 바람이 거세진다. 낡은 나무 창문이 덜컹거린다. 하얀 선으로 느껴지던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와 땅의 경계도 사라진다. 굵은 빗방울이 싸리비로 마당 쓸듯 스쳐간 자리에 다시 햇빛이 들기 시작한다. 필름을 빨리 돌리면 사람살이도 이곳의 날씨 같을지 모른다. 언제 비가 뿌렸냐는 듯 햇살이 천연덕스럽게 부엌 안쪽까지 몰려온다. 눈이 부시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 돌아왔는지 정원과 연결된 부엌문 밖에 존이 서 있다. 거실에서 바로 정원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존은 가끔 햇빛이 좋으면 정원에서 차를 마신다. 정원이라야 몇평 되지 않고 잔디 외에 별다른 꽃이 심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경사진 푸른 잔디밭 너머 곧장 바다로 이어지는 전망이 볼 만해서 나도 간혹 정원에서의 티 타임을 즐긴다. 비가 한줄금 퍼붓고 첫 햇살이 젖은 대지 위로 폭탄처럼 쏟아져내리는 지금이 차를 마시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문을 열어주려고 다가갔으나 존은 저만치 테이블 쪽에 서서 삼발이를 만지고 있다. 사진을 찍을 모양이었다. 내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존이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왜? 나는 말없이 묻는다. 존은 계속 손짓을 한다. 존은 다가가는 나에게 카메라 촛점을 맞춘다. 그제야 존이 찍을 사진의 대상이 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셔터 소리가 들려온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떠오른 것은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이었다. 19일. 내가 서울을 떠난 것이 4월 19일이었다. 존의 달력에 붉게 칠해진 19일은 비자 없는 내가 떠나야 할 마지막 날짜임이 분명했다. 눈부신 햇빛 속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은 액자 속에 갇혀 이 집의 어느 곳엔가 영원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고 싶지 않다. 나는 살진 고양이가 되고 싶다. 느릿느릿 햇살 떠도는 대기 속으로 스며들어 마침내 스며듦조차 멈추고 싶다. 사진기를 삼발이 위에 고정시키고 존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이번에는 자기도 같이 찍을 모양이다. 나는 돌아선다. 등이 따갑다. 아니, 따갑다기보다 축축하다. 물기 젖은 존의 시선이 내 등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서 있는, 한쪽 벽면만 남은 성의 잔해는 오늘밤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그 비극으로 인해 오늘이 있음을 나는 안다, 아니 알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비극이 그렇다. 비극은 결코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다. 비극은 남은 자들의 찢긴 가슴속에 스며들어 파문을 일으키고 현재로, 미래로 스며든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파문을 일으킨다. 비극의 파문은 그 쓰라림으로 인해 좀더 격렬할 뿐이다. 그 누구도 과거의 파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내 몸 위로 전우주가 내려앉는 것 같다. 너무 무거워 나는 돌아누울 수조차 없다. 버둥거리지도 못하고 침대 위에 똑바로 누워 성의 잔해나 바라보다가 나는 아까부터 존의 침대가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다. 날파리의 희미한 날갯짓, 혹은 냉장고의 기계음마저 들려오지 않는 절대 정적. 숨이 막힌다. 나는 존의 방에서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린다. 이런 정적 속에서는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정적 전체를 뒤흔들 만큼의 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전우주를 들어올리듯 안간힘을 써서 몸을 뒤척인다.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침대가 삐거덕거린다. 밤마다 내가 낡은 침대에서 자주 뒤척인 것은 존이 보내온 신호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미약한 응답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힘겹게 몸을 계속 뒤척인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모스 부호처럼 정적 속으로 침투한다. 아직 존의 방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두터운 살 밑에서 웅크리고 있던 존이 고개를 들어 내 방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음을 느낀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서 있는, 한쪽 벽면만 남은 성의 잔해는 오늘밤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