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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권채운 權彩運
1950년 충북 진천 출생. 200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작품 「겨울 선인장」 등이 있음. st_625@hanmail.net
단꿈
벌써 한달째다. 오늘만 해도 졸다가 두 번씩이나 고꾸라질 뻔했다. 특히 손님이 몰리는 서너시만 되면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가 없다. 맞은편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김씨가 딱해서 못 보겠는지 그만 좌판을 걷으라고 성화다.
정숙은 부스스 일어나 커피 자판기가 있는 건물 모퉁이로 간다. 그녀는 전대에서 동전을 꺼내들고는 잠시 망설인다. 그냥 버텨볼까.
“아줌마, 커피 안 뽑아요?”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 녀석이 그녀를 밀쳐버릴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녀는 슬그머니 비켜선다. 그 바람에 졸음이 달아난 것 같다. 그녀는 약방에서 피로회복제 두 병을 사서 한 병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들이켠다. 정신이 반짝 나는 듯도 하다. 밍밍한 맛이 영 입에 맞질 않아 여간해서는 마시지 않는 피로회복제였다. 그런데 어제 과일장수 김씨가 한 병 건네주는 것을 사양하다가 그깟 일로 승강이하기도 무엇해서 마지못해 마셨더니 잠시나마 개운했던 것이다. 말없이 피로회복제를 내미는 그녀를 바라보는 김씨의 시선은 종잡을 수가 없다.
정숙은 따끈따끈한 쇠의자 아래에 놓아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들어내어 불길을 낮춘다. 아침에 쇠의자에 물을 넣었던가. 요즘 들어 부쩍 깜박깜박한다. 그녀는 빈 물병을 들고 지하철역의 화장실로 간다. 물을 뜨러 간 김에 볼일도 본다. 휴지를 챙기지 못해서 닦지 않은 아래가 꿉꿉하다. 오줌줄기가 시원스레 내뻗지 못하는 것도 갱년기 증상인 것 같다.
그토록 기다려졌던 폐경이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예상치 못한 여러가지가 그녀를 괴롭혔다.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화끈거리고 통증이 가슴을 치받아오르는 것이야 잠시만 견디면 스르르 없어졌고, 괜스레 울적해지는 기분은 으레 그러려니 했지만, 불면증만은 사람을 어떻게나 볶아대는지 갱년기 클리닉인가 하는 데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기도 했다. 나이 들어 자연적으로 오는 현상을 굳이 병이라며 치료를 해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살다보면 예정에 없던 일들이 느닷없이 앞을 가로막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폐경이야 어떤 여자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고, 또한 남다르게 고대해왔던 일이 아니던가.
“물 뜨러 갔었구먼. 방금 진주가 내게 전화했는데, 엄마 휴대폰이 안된다구 무슨 일 있느냐기에 아무 일 없으니 걱정 말라구 했어.”
김씨가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생색이다. 죽은 남편과는 형님 아우 하며 각별하게 지내던 사람이라지만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말을 놓아버린 김씨의 친절은 불편하기만 하다. 그녀는 오리털파카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본다. 화면이 꺼져 있다. 배터리가 다된 모양이다. 그녀는 전대를 뒤져서 배터리를 찾아 갈아끼운다. 달랑 두 식구인데 그마저도 떨어져 있는 날이 많으니 식구랄 것도 못된다. 하기는 일찌감치 혼자 사는 연습을 해두는 것도 앞으로 남은 날들을 지내는 데 약이 될지 모를 일이다. 딸이 올 봄에 대학을 졸업하고 스튜어디스로 취직을 했을 때는 이제 모든 근심이 사라진 듯 가뿐했었다. 그러나 자식이야 다 크면 떠나는 것이 순리라고는 해도 요즘 진주가 하는 꼴을 보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그녀는 쇠의자의 등받이 한쪽에 내놓은 구멍에 물을 붓고 헝겊으로 살짝 막는다. 조금 있으면 뜨거운 김이 솔솔 올라 가습기 역할까지 할 것이다. 1.5리터 한병이면 온종일 끄떡없다. 소한 추위라지만 폭신한 털모자를 푹 눌러쓴 뒤 오리털파카에 달린 모자까지 덮어쓰고 따끈따끈한 쇠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면 남 보기엔 추워 보여도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 외갓집 부뚜막에 앉아 고구마 익는 냄새를 맡으며 자꾸 솥뚜껑을 열어보다가 외할머니에게 부지깽이로 얻어맞던 일이 생각난다. 이건 부뚜막이 아니라 숫제 솥뚜껑 위에 올라앉아 있는 셈이다. 길바닥에서 지내기는 여름보다 겨울이 한결 수월했다. 한여름의 찜통더위야말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페트병에 가득 얼려온 얼음물을 노상 입에 달고 살아도 그때뿐이었고,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아스팔트의 열기에는 데쳐놓은 시금치 꼴이 되기 마련이었다. 열대야라고들 하던 그 잠들 수 없는 밤들은 끔찍했다.
노점으로 나앉은 뒤로 단 한번 단잠을 잤다. 남편이 죽고 나서 매일 매일 어김없이 지속되는 불면의 밤들은 그 단 한번의 단잠에 대한 벌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다리를 멀거니 바라본다. 다리 중의 하나가 그녀의 좌판 앞에 멈춘다.
“이거 얼마예요?”
손가락이 양미리 무더기를 가리킨다.
“삼천오백원요.”
“그거 주세요.”
그녀는 검은 비닐봉지에 양미리를 쓸어담아 내밀고 돈을 받아 전대에 넣는다. 고개를 쳐들지 않는 한, 손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굳이 단골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손님들 역시 단골을 하려고 않는다. 공연히 얼굴을 익혀놓으면 불편하다는 거다. 외상거래를 하는 것도 아니니 서로 그게 편하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거의가 정해져 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손질이 잘된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제 장사는 자리가 잡혀서 그렇게 버둥거리지 않고도 살 만하다. 다 남편 덕이다. 남편이 이렇다 저렇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버릴 때 그녀 역시 아무 말도 못했다. 단지 너무 졸렸고, 달게 한숨 푹 잤던 것뿐이었지만 남편은 떠나버린 뒤였다.
6년 전에 남편은 근근이 지탱하던 비디오가게를 걷어치우고 남의 가게 앞의 한평 남짓한 장소에다 엄청난 자릿세를 내고 노점을 시작했다. 지하철 역세권인데다 바로 앞에는 과일노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먹자골목’으로 돌아들어가는 커브길이라 목이 좋다고는 해도 오천만원이나 들여서 노점을 한다는 게 가당치 않아서 그녀는 당신이나 혼자 실컷 해보라며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게 보기에는 우스워도 비디오가게를 할 때보다 되레 수입이 나아서 그녀의 마음이 풀어지려고 할 즈음에 남편은 굶어죽으면 죽었지 노점은 않겠다는 그녀를 억지로 끌어다가 길바닥에 앉혀놓고는 바람이 들어 나돌았다. 무엇에 씌었는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종당에는 병을 얻고 말았다. 돌아다니다가 병을 얻었는지, 병을 얻고 나서 돌아다녔던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미심쩍다. 그녀는 남편이 가정을 팽개치고 돌아다니다가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몰아붙인다. 말이 쉽지 노점은 어지간한 사람들도 배겨나지 못한다. 버젓이 자릿세를 내고 하는데 누가 뭐라느냐며 남편은 큰소리였지만, 자릿세야 남의 가게 앞을 가로막은 댓가로 치른 것이었고 인도는 엄연히 구청 관할이었다. 인도를 거지반 차지하고 벌여놓은 좌판은 걸핏하면 구청직원들의 발길질에 박살이 나곤 했다. 큰길로 높은 양반이 지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공치기 일쑤였고, 한 정거장 위쪽에 자리잡은 종합운동장에서 무슨 행사라도 하게 되면 그 전날부터 구청에서 나와 설쳐댔다.
프로야구 개막식이 있던 날이었다. 구청직원들과 한바탕 악다구니를 하고 난 뒤 집에 들어와 이제는 정말 때려치우고 말겠다고 자릿세나 챙겨오라고 하려는데, 두번째 집을 나가 한달 만에 얼굴을 들이민 남편이 선수를 쳤다. 남편은 살 날이 석달밖에 남지 않았노라고 했다. 누구를 놀리느냐고, 생각없이 아무 소리나 막 해도 되는 거냐고, 그녀는 분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남편은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 있었다. 그렇게 장난처럼 한마디 툭 뱉어놓고 남편은 또 집을 나갔다.
남편이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은 병원의 응급실에서였다. 남편이 입원해 있던 한달 동안에도 그녀는 매일 노점을 지켜야 했다. 남편이 막무가내로 그녀를 몰아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가는 마당에서까지 이렇게 박대할 수가 있나, 그녀는 이를 갈며 좌판을 지켰다. 도무지 수그러들 줄 모르는 더위까지 합세해서 그녀를 지치게 했다. 죽을 만치 피곤했지만 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마다 그녀는 남편이 입원해 있던 병원의 휴게실에서 밤을 새웠다. 집에 가서 잠을 자라고 한사코 등을 떠미는 남편은 벌써 그녀를 떠나고 있었다.
아침부터 땀이 줄줄 흐르는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땅바닥에 시선을 꽂고 있던 그녀 앞에 남자의 구두가 꼼짝 않고 있었다.
“무얼 드릴까요?”
그녀는 습관대로 좌판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무 대꾸가 없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이름까지도 잊었다고 생각한 그가 서 있었다. 그녀는 주섬주섬 좌판을 걷고 자석에 끌린 듯이 그를 따라갔다. 무슨 말을 했던가. 사는 곳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던가. 찾으려고만 들면 무엇인들 못 찾겠느냐고 했던가. 왜 그리 눈이 충혈돼 있느냐고 했던가. 자고 싶다고, 아주 달게 자고 싶다고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단잠을 잤다, 달이 떠오를 때까지. 강가에 있는 모텔이었을 것이다. 강 건너 동산 위에 달이 둥실 떠올라 달빛이 강물을 타고 방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한 영혼은 달빛을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녀는 양미리 한두름을 한마리 한마리 풀어낸 다음 왼손으로 몸통을 잡고 등 쪽으로 가위날을 디밀어 대가리를 지그시 자르면서 방향을 슬쩍 틀어 내장을 잡아뺀다. 힘을 조금만 더 줘도 대가리가 싹둑 잘려버려서 내장을 끄집어내는 데 실패하고 만다. 그녀는 양미리 한마리 한마리를 공들여 다듬어놓는다. 세 무더기를 지어놓고 나서 코다리 한묶음을 들어올린다. 먼저 칼로 대가리를 떼어낸 뒤에 가위로 지느러미를 다듬고 칼을 깊숙이 찔러 배를 가른다. 칼이 너무 깊이 들어가 두 동강이 나지 않도록 해야 모양이 난다. 벌려놓은 속살이 하얗다. 다섯 마리 한코를 손질해서 채반에 나란히 펼쳐담기가 무섭게 가죽장갑 낀 손이 채반을 가리킨다. 손질하지 않은 것은 사천오백원, 손질한 것은 오천원, 올해는 값이 센 편이다. 그래도 손질한 것을 가리키는 손뿐이다. 겨울에는 박대나 참가자미, 코다리 같은 반건조 어물이나 표고버섯, 동초, 연근 등 잘 나가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팔고, 여름에는 주로 다대기 오이나 조림용 꽈리고추, 가지, 마늘종 따위를 천원, 이천원 단위로 파는데 손님들은 무더기만 보고 척척 알아서 돈을 내곤 한다. 상질(上質)의 물건을 보기 좋고 깔끔하게 무더기 지어놓는 것이 장사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남편은 자기가 파는 물건에 유난히 까다로웠다. 물건이 좋지 않은 것은 덤으로도 주지 않고 꼭 집으로 들여왔다. 아무리 마누라가 못생겼지만 허구한 날 못생긴 호박이며 구부러진 오이만 먹으라는 거냐며 몇번 대거리를 하기도 했지만 남편은 그때마다 그럼 나더러 이걸 팔란 말이냐고 되레 화를 내곤 했다. 그러다보니 좀 비싸더라도 항상 상품(上品)으로만 물건을 들여왔다. 노점을 하면서 백화점으로나 들어갈 물건들을 사다가 파는 남편을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해 첫추위가 닥쳐온 날이었다. 이른 새벽에 남편이 그녀를 깨웠다. 이제부터 장사를 같이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장사라면 몰라도 노점만은 못하겠노라고 버텼다. 더군다나 이 추운 겨울에 하루종일 길바닥에서 덜덜 떨 생각을 하면 미리부터 몸이 움츠러들었다. 남편은 남들 다 견디는 걸 당신이라고 못 견뎌내겠느냐며 이동식 보일러도 마련해놨으니 추위 걱정은 붙들어매라는 것이었다. 밖에서 고생하는데 뜨뜻한 방에 혼자 들어앉아 있으면 맘이 편하냐, 자기가 적적해서 그러니 나와서 옆에 앉아 있기라도 하라며 남편이 어르고 달랬지만 그녀는 두 눈을 꾹 감고 머리만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중에는 그럼 딱 한달만 자기 옆에 있어달라고, 그 다음에는 마음대로 하라는 데 더이상 버틸 재주가 없었다. 그녀를 반강제로 끌어다 자기 옆에 앉혀놓기만 했지 남편은 장사를 혼자 다 했다. 철공소에서 특별히 제작한 쇠의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용해서 의자 속의 물을 데워 따뜻하게 하는, 이를테면 간이보일러였다. 그전에는 연탄을 연료로 썼었는데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쓰기로 한 것은 순전히 자기 아이디어라며 남편은 어색하게 웃었다. 한겨울에 모닥불을 쬐면 얼굴은 뜨거워서 죽고 엉덩이는 얼어서 죽는다더니 꼭 그 짝이었다. 하루종일 쇠의자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는 따끈따끈했지만 얼굴은 찬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쓰리다 못해 따끔따끔했다. 어쩔 수 없어 남편과 나란히 앉아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최대한 비틀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만 바라보았다. 가락시장으로 물건을 떼러 갈 때도 그녀는 남편 곁에 묵묵히 있기만 했다. 그녀는 길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 억울했다. 내일이면 한달을 채우니까, 이 짓도 마지막이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눈을 떴을 때는 남편이 이미 집을 나간 뒤였다. 한 며칠 바람을 쐬고 오겠다는 남편의 메모를 보면서도 그가 가출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살다보니 이젠 별걸 다하는군, 그녀는 메모를 팽개치고 아침밥을 지어 딸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혼자 노점을 열었다. 나 몰라라 하기에는 전날 떼온 물건이 워낙 많았다. 둘이 나란히 앉던 쇠의자에 혼자 앉자니 옆구리가 허전했지만 투덜투덜 욕을 하면서 서툴게나마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달 동안 구경한 게 헛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하던 대로 먼저 면장갑을 끼고 표고버섯부터 가지런히 썰어 바구니에 담아놓고 양미리 한두름을 드는데 울컥 눈물이 비어져나왔다. 여편네 노점 시키는 게 평생소원이셨던 게로구먼. 남편이라고 믿고 살아온 게 어리석지. 근 이십년을 한이불 쓰고 살았으면서도 속엣말을 했던 기억이 없다. 으레 그러려니 했다. 하기는 남편이 아무 의논 없이 덜컥 노점을 벌인 것말고는 이렇다 할 속 썩은 일 없이 비교적 평탄한 세월이었다. 딸 하나 낳은 뒤에 곧바로 남편이 정관수술을 해서 자식 하나쯤이야 서너 군데 학원을 보내면서 키울 수 있었고, 옹색하기는 해도 세 식구가 거처할 연립주택도 한채 있으니 그만하면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어떤 꿈을 갖고 있었는지 그 속을 어찌 알 수 있었으랴.
그녀라고 매일매일이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지 않은가. 쉰 줄에 들어선 남편이 꿈꾸는 새 삶은 어떤 것일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남편은 종무소식이었다. 집을 떠나 훨훨 나다니고 싶다고 모두 다 집을 나선다면 집은 누가 지키는가. 곧 고3인 딸을 두고 무턱대고 남편을 찾아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그렇게도 원하던 좌판을 지키는 것만이 남편을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녀의 몸은 좌판을 지키고 있었지만 마음은 천지사방을 헤매었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던데……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리는 옆자리 생선장수의 귀띔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대뜸 여자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있지 않고서야 그리 열심이던 장사를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훌훌 나설 수가 없을 것이었다. 일손을 놓고서는 지나가는 남자애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남편의 모습이 근래 들어 부쩍 그녀의 눈에 들어오곤 했다. 섣불리 수술해버린 걸 후회하는 눈치였다. 나이 탓인가, 요즘 들어 유별나게 외로움을 타나보다 하면서도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는 신문기사가 생각나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집을 나갈 정도로 심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남편을 무턱대고 믿었던 만큼 상상 속에서 부풀어가는 배신감은 한도 없이 커져서 그녀를 꽁꽁 얼려놓았다. 그녀의 일생 중에 가장 춥고 길던 겨울도 부드러워진 바람에 슬며시 밀리고 벚나무 가지가 불그레해지는가 싶더니 봄이 왔다.
쳐다보기만 해도 심란하던 벚꽃도 지고 새잎이 돋을 무렵, 남편은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세상 다 살아낸 듯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하도 초연해 보여서 한바탕 악다구니를 벌이려던 그녀의 분은 수그러들고 말았다. 남편은 돌아왔으나 이전의 남편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마음을 두고 온 것만 같았다. 그런 남편이 하도 야속해서 그녀는 하릴없이 장사에만 매달렸다. 남편이 다시 집을 나갔지만 그녀는 그전처럼 애를 태우지 않았다. 단지 잠을 잘 수가 없을 뿐이었다.
“아니, 밤에는 뭘 하구 허구한 날 졸아? 그러다 손 다치겠구먼.”
김씨가 또 참견이다. 손에 칼을 든 채 꾸벅 졸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 커피를 마시면 당장에는 잠을 쫓을 수 있겠지만 기나긴 밤은 또 어찌하나.
“또 커피 마시려구? 그러지 말고 들어가서 좀 쉬라는데두. 하여간 그놈의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꽤나 성가시게 군다. 그녀는 그예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신다. 냄새가 좋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잠을 잘 잔다는 보장은 없다. 장사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어디론가 훨훨 떠나고 싶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마음이 그녀를 좌판 앞에 붙들어 매어놓는 것이다. 어쩌면 남편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단단히 그녀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죽던 날 그 일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벌써 남편을 잊고, 아니 남편을 원망하며 새 삶을 시작했을 것이다. 한번 꼬인 인연은 계속 꼬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는 왜 하필이면 그날 나타났던 것일까. 한달 전이라든지, 한달 후였으면 그녀의 삶이 방향을 틀 수도 있었을 텐데……
젊어 한때 서로 사랑했던 그와는 그에게 사고가 나면서 어긋났다. 그의 오른손 손가락 세 개가 기계에 뭉텅 물려버렸을 때 헛된 사랑의 맹세도 함께 부서져버렸다. 그녀는 그의 암담한 미래에서 일찌감치 도망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약삭빠른 계산은 오산이었다. 그는 승승장구하여 보란 듯이 성공했다. 어떻게 번호를 알아내는지 몇년에 한번씩 불쑥 전화를 넣곤 하던 그는, 그때마다 그녀의 마음을 휘저어놓고 소식을 뚝 끊는 걸 무슨 재미로 아는 사람이었다. 그 급박했던 상황에서 어떻게 그를 따라갈 수가 있었는지 아무래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혼자서 숱한 변명을 끌어대보았지만 그녀에게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내일 하는 남편을 병원에 내버려둔 채 옛남자의 품에서 잠을 잤던 사실을 알아내서 그녀를 힐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쳇말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와 그녀가 알 뿐이었다. 그는 그날 이후로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남편과 살면서 포기했던 것 중의 한가지를 그는 새삼 일깨워줬다. 그녀가 한시라도 좌판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기다림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못 잔다는 핑계를 대고 널찍한 새 침대를 들여놓았다. 거기에 맞춰 양모 솜을 넣은 60수 순면의 화려한 꽃무늬 이부자리도 마련했다. 너무 비싸서 만져보지도 못했던 하늘하늘한 잠옷까지 걸쳤지만 그녀는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곁에 있을 때라고 살뜰히 그녀를 보듬어줬던 기억은 없다. 그렇다고 그걸 이유로 티격태격했던 적도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이없이 자신을 몰아치는 강한 욕구에 침이 바싹 마르곤 했다.
“야, 이 화냥년아.”
느닷없는 고함소리와 함께 옆자리의 좌판이 공중제비를 한다. 흰 배때기를 뽀얗게 드러내고 가지런히 놓여 있던 자반고등어가 길 한가운데에 질펀하다. 독이 잔뜩 오른 여자 둘이 물오징어며 생태 따위가 놓여 있던 좌판을 마구 뒤집어엎더니 급기야는 생선장수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김씨 마누라와 일수 찍는 여자다. 금세 구경꾼이 그네들을 둘러쌌다. 그녀는 엉거주춤 일어나 구경꾼들 틈새로 들여다본다. 생선장수가 무참히 당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뛰어들어 말리는 사람이 없다. 이 노릇을 어찌하나. 그녀는 생선장수가 휘둘릴 때마다 꼭 그녀의 머리채가 잡혀서 휘둘리는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다. 화장실에라도 갔었는지 자리를 비웠던 과일장수 김씨가 씨근덕거리며 뛰어와 세 여자를 떼어놓느라고 용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이거 못 놔? 이놈의 여편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행패야 행패가.”
그러자 일수 찍는 여자가 잡았던 머리채를 놓고 김씨에게로 홱 돌아서며 대뜸 김씨의 멱살을 낚아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놈이 이제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래, 네놈이 내 동생을 이렇게 괄시해도 되는 거야? 오갈 데 없는 놈 데려다가 배부르고 등따시게 해줬더니, 이제 배부르다 이거지? 쟤는 몰라도 나는 그 꼴 못 봐.”
“처형, 왜 이러세요. 뭘 잘못 아셨나본데요. 이거 놓구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모르긴 뭘 몰라. 누구를 동태눈깔로 아나? 너, 똑바로 처신해. 나는 이 바닥에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야. 누구 덕에 장사라도 해먹고 사는데 깝죽대는 거야, 깝죽대길. 저리들 비켜요. 무슨 구경났나? 아니, 이년이 어디로 내뺐어. 내 오늘 아주 끝장을 내버리고 말 테니까.”
여자는 실컷 쥐어뜯지 못해 분이 덜 풀렸는지 연신 눈을 부라리며 생선장수를 찾는다. 김씨가 처형이라는 여자와 실랑이하는 동안 생선장수는 김씨 마누라를 밀쳐버리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어떤 년이든지 남의 서방 넘보는 년들은 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잘들 새겨두라구.”
그 여자는 김씨에게 팔을 잡혀 끌려가면서 둘러선 구경꾼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 소리에 움찔한다. 새까만 긴 머리를 틀어 올려 큐빅이 박힌 큰 핀으로 고정시킨 여자의 풍성한 머리매무새가 위압적이다. 김씨가 두 여자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자 구경꾼들도 흩어졌다.
그녀는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생선들을 스티로폼 박스에 주워담는다. 한바탕 분탕질에 짓밟혀서 여기저기가 뭉그러지고 흙투성이다. 팔아먹긴 다 틀렸다. 오징어 몇마리 얻어다가 오징어젓이나 담글까? 참 한심하다. 당사자는 죽고 싶은 심정일 텐데 남의 손해로 이익 얻을 생각이나 하다니. 그녀는 보기 흉하지 않을 만큼 대충 정돈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잠깐 정지했다가 다시 움직이는 비디오 화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사람들은 지나간다. 늘 똑같은 그림에서 과일장수 김씨와 생선장수만 빠졌을 뿐이다. 어디 한군데 얻어맞은 것도 아닌데 전신의 힘이 쭉 빠지고 장사할 맛이 안 난다.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은근히 김씨에게 마음이 갔었던 것일까? 근래 들어 생선장수의 입술이 유난히 빨갛던 것 같다. 생전 않던 머리 손질을 하고 눈썹문신까지 해서 요즘 연애하나? 하고 놀려먹기도 했지만 오십이 넘은 나이에 연애는 무슨, 사는 게 하도 재미없어서 한번 그래본 거지 뭐, 하던 생선장수의 쓸쓸한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기는 사는 걸 재미로 사나. 그야 재미나게 사는 사람도 많겠지만…… 하지만 뜻밖이다. 몇년째 마주보고 장사를 했다고는 해도 언제 둘이 눈이 맞은 것일까. 바로 옆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으니 둔하기 짝이 없다. 둔하다기보다는 어리석은 쪽일 것이다.
남편의 일년상을 치르고 딸이 대학에 들어가자 그녀는 유난히 부저지를 못했다. 큰마음 먹고 옛남자를 찾아갔다. 네가 그렇게 떠났지만 내 마음속에는 영원히 네가 살고 있어, 그녀를 단잠에 빠지게 했던 그 말을 되뇌며 밤이 깊도록 그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창문마다 불이 환했다. 간간이 노랫소리도 흘러나왔다. 아내의 어깨를 감싸안은 그의 씰루엣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던가.
인도의 양편은 두어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공간을 두고 큰길 쪽은 과일장수들이, 상가 쪽은 냉이나 가래떡이나 불린 콩 따위 잡다한 물건을 치마폭에 싸안듯이 꾸리고 앉은 여자들이 차지하고 노점을 벌였다. 그나마 남 보기에 번듯한 과일장사는 대개 남자가 하거나 내외간이 했고, 상가 쪽에 붙어앉아 하루종일 시금치를 다듬거나 도라지 껍질을 벗기며 웅크리고 있는 여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과부였다. 그녀가 과부가 된 것도 어쩌면 줄을 잘못 서서 그리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몰라도 과부들은 어딘가 티가 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언제 봐도 꺼칠해서 겉늙어 보였고, 때 안 타는 꺼먼색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점심 한끼 사먹는 게 아까워서 꼭 도시락을 싸오고, 밤 열두시를 넘겨서라도 그날 해온 물건은 그날 다 팔아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까지, 누구 하나 나서서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네들은 한결같이 억척을 떨었다. 그중에서는 생선장수와 그녀가 그래도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장사다운 장사를 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런지 남다르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감쪽같이 속은 기분이다. 그나저나 이 여편네는 어디로 갔을까? 그만한 소동에 장사까지 접을 위인은 아닌데.
지난 가을에도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붕어빵과 가래떡이 배가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가래떡장수의 열여덟살 난 아들이 붕어빵 장사하는 남자를 녹신하게 두들겨패서 합의를 하네 못하네 하더니, 이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둘 다 여전히 장사에 여념이 없다. 겉으로 봐선 어디에도 색기라곤 보이지 않더니 남녀의 일이란 알 수가 없나보다. 생선장수만 하더라도 과일장수 김씨보다 대여섯살은 위로 보인다. 더운 점심밥을 싸들고 한들한들 나타나곤 하던 김씨 마누라는 그녀가 보기에도 밉상은 아니다. 일단 젊다는 건 점수를 깔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게다가 날씬한 뒤태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매력적이었다. 그에 비해 두루뭉술한 생선장수의 몸매는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봐줄 만한 데라고는 없다. 넙데데한 얼굴에 싸구려티가 나는 지나치게 선명한 눈썹문신은 그나마 선량해 보이던 인상마저 어정쩡하게 망쳐놓았다. 요즈음 유행하는 블리치를 해서 울긋불긋한 까치둥지 같은 머리 모양은 빌려온 가발을 뒤집어쓴 꼴이었고, 밑화장을 제대로 하지 않아 들뜬 파운데이션은 버짐이 핀 것 같았으며, 그 두꺼운 입술에 짙게 바른 빨간 립스틱은 촌스러움의 극치가 아니었던가. 여자가 보는 눈과 남자가 보는 눈은 다르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그녀는 공연히 생선장수를 깎아내린 자신이 한심하다 못해 처량했다.
“아줌마, 연근 한근 주세요. 아줌마, 아줌마.”
잠깐 넋이라도 나갔던 것일까. 멍하니 앉아 있던 그녀는 연근을 달아 팔고 나자 오소소 한기가 든다. 손님이 몰리는 이 시간이면 졸음이 쏟아져서 눈을 뜨고 장사를 하는 건지 눈을 감고 장사를 하는 건지 깜빡깜빡 했는데 다행히도 한바탕 소동에 졸음이 달아난 모양이다. 갑자기 손님이 몰아닥쳐서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손님은 꼭 몰려서 온다. 한떼의 손님이 지나가면 숨을 돌리라는 듯이 잠깐 한가해진다. 김씨네 과일좌판 앞에서 손님이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간다. 다른 날 같으면 그녀가 쫓아나가 대신 팔아주었을 테지만 오늘은 못 본 체한다. 사과 과수원 하나를 통째로 계약해서 겨우내 그 과수원의 사과만 갖다 파는 김씨는 오늘 하루 장사를 못한다고 해도 크게 손해날 건 없다. 아마도 김씨는 일수쟁이 처형한테 단단히 혼쭐이 나고 있을 것이다. 잘코사니다.
“아니, 이건 또 언제 해놓은 거야? 아줌마, 김행선씨 어디 갔는지 몰라?”
“예? 김행선씨가 누군데요?”
“사과장수 김씨 말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느닷없이 나타나 반말지거리를 해대는 구청직원 앞에서 그녀는 몸 둘 바를 모른다. 구청직원들이 떴다 하면 열 명이 넘게 패거리를 지어 와서는 닥치는 대로 물건을 주워 실어가는 통에 구청차가 언뜻 보이기만 해도 그녀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쳤다.
“자, 자, 여기부터 저기까지 찍으라구.”
오늘은 무슨 일인지 카메라에 비디오카메라까지 둘러메고 와서 설쳐댄다. 노점상들은 얼이 나가서 손을 놓고 멀거니 서 있다. 누가 연락을 했는지 김씨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유, 양과장님이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김씨는 두 손을 마주 비비며 굽실굽실한다.
“웬일이고 뭐고 이 사람아, 이런 걸 설치하려면 내게 귀띔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차양막 말씀입니까? 울긋불긋한 파라솔이 하도 지저분하다고 하셔서 이번에 큰맘 먹고 저희들이 깔끔하게 정리한 건데요. 그러잖아도 구청에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민원이 들어왔다구. 이젠 아주 구청에서 노점을 허가해줬느냐구. 지붕까지 설치해놓고 번듯하게 장사한다면서.”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요.”
김씨가 양과장인가 하는 사람의 팔을 잡고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물건을 살까 하던 사람들이 비디오카메라를 보고는 기겁을 하고 돌아선다. 이래저래 오늘 장사는 틀렸다. 며칠 전에 노점상연합회에서 의논하여 일률적으로 차양막을 설치했는데 그걸 누가 꼬아바친 모양이다. 비만 오면 대형 파라솔 위로 비닐막을 쳤는데 고여 있던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바람에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물벼락을 씌우기도 했던 터여서 큰길 쪽의 노점들이 똑같이 돈을 내서 방수천으로 특별히 맞추었던 것이다. 튼튼한 여덟 개의 살이 버텨주는 사각형의 차양막은 단속할 경우를 고려해서 접을 수도 있게 고안되었는데 짙은 남색으로 색깔까지 통일해서 아주 산뜻해 보였다. 거리가 깨끗해졌다고 손님들의 반응 또한 좋았다. 김씨가 노점상연합회장을 맡고 나서 처음 해놓은 일이기도 했다. 당연히 구청에서도 잘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비디오카메라를 멘 사람이 그녀에게로 돌아선다. 그녀는 기겁을 하고 고개를 푹 수그린다. 건물 쪽에는 말았다 폈다 하는 차양막이 있어서 그 신세를 지면 됐기 때문에 이번 일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무슨 심사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카메라가 지나갔겠지 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비디오카메라가 저만치 내려가는 걸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플래시가 번쩍하고 터진다. 에구머니나, 그녀는 벌떡 일어나 나온다. 그냥 자리에 있다가는 계속 사진 찍힐 판이다. 일진이 사나운 날이다. 진작 김씨 말을 듣고 집에 들어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노점 단속을 나온 것 같지는 않아서 사진만 찍고 돌아갈 것 같은데도 그 사람들의 일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녀는 ‘먹자골목’으로 들어선다. 권리금만 일이억원을 호가하는 번듯한 가게들을 보면 공연히 주눅이 든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인 줄이야 벌써부터 알고 있는 터수이지만 구청직원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때마다 자신의 남루한 처지가 새삼스럽다. 그녀는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며 혼자 셈을 놓는다. 한 삼억이면 아담한 까페를 차릴 수가 있다고 한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숫자다. 그녀는 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까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몰골에 흠칫 놀란다. 옆자리의 생선장수 여편네와 진배없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눈먼 돈이 손에 쥐어진다 한들 이 몰골로야 어디 까페의 마담노릇을 할 수가 있겠는가. 아무려면 생선장수 여편네보다야 낫지 않겠는가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던 자신이 우습다. 그녀는 눌러썼던 모자를 벗고 머리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래봤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나서 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구청직원들은 모두 돌아간 모양이다. 얘기가 잘되었는지 김씨 얼굴도 확 피었고 다른 노점들도 행인들의 시선을 잡으려고 분주하다. 공연히 그녀만 손해를 보았다. 생선장수까지 어느새 자리를 정돈하고 소금물에 생선을 점벙점벙 담갔다 꺼내며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녀는 김씨를 한번 쳐다보고 생선장수를 한번 쳐다본다. 아무리 번갈아 봐도 그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 양미리 한무더기가 없어지고 코다리 채반 아래 천원짜리가 몇장 눌려 있다. 그동안 누가 양미리를 팔아준 모양이다. 그녀는 돈을 간추려 전대에 넣고 양미리 한두름을 집어든다. 갑자기 돌풍이 일어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 그녀는 눈을 슴벅이며 괜히 눈물을 쏟아낸다.
“진주 엄마, 이거 갖다가 저녁에 찌개 해먹어. 소금물에 헹궜는데도 영 꼬라지가 그러네. 뭉크러진 데 잘라버리면 그래도 한끼 먹을 만할 거야.”
생선장수가 꺼먼 비닐봉지를 내민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잠자코 봉지를 받아놓는다. 참 대단한 여자다. 그 망신을 당했으면서도 눈 하나 끔쩍 않고 태연스레 장사를 계속하다니…… 하기는 그만한 배짱 없이는 이 시장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양미리를 다듬던 손을 멈추고 생선 손질에 여념이 없는 생선장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여자를 저리 꿋꿋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진주가 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녀는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오로지 그애 뒷바라지에만 힘썼다. 이제 딸은 어미 없이도 저 혼자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스르르 풀려버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대신에 만사가 시들해진 게 탈이었다.
“엄마, 이제부터는 내가 가장이야. 엄마는 장사 그만 해. 고생 끝. 내가 엄마 행복하게 해줄게. 화장도 예쁘게 하고, 멋진 옷도 사입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하고, 사람답게 살아보는 거야. 알았지?”
첫 월급을 몽땅 내놓고는 울며 웃으며 그녀의 목을 그러안는 딸애를 붙안고 얼마나 울었던가. 그때부터 그녀의 대상도 없는 어리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장사를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여태 연락도 않던 친구들을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찾을 만한 친구가 있기나 한가.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뚜렷이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아마도 갱년기 우울증인 듯싶었다. 덧없는 욕정에 휘둘려 뜬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폐경이 되면 이 대책없는 욕구에서도 풀려나겠지 했는데, 막상 폐경이 되고 보니 잠은 더 달아나고 무엇보다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밍근한 맹물 같은 나날이었다.
그녀는 휴대폰 벨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엄마, 생각해봤어?”
“뭘?”
“또 딴청이야.”
“뭐가 급하다고 비싼 전화를 하고 그래. 집에 와서 얘기하지.”
“엄마 그러지 말고, 응?”
“엄마 바뻐. 전화 끊는다.”
어미 생각도 할 줄 알고 이제는 철이 들었구나 하며 흐뭇해하던 날은 속절없는 과거사가 되어버렸다. 애인이 생기더니 그 좋은 직장을 팽개치고 느닷없이 그놈을 따라 유학을 가겠다고 저 발광이다. 이삼년 얌전히 직장생활하다가 시집이나 가면 될 것을 뜬금없이 유학이라니, 우리 형편에 가당키나 한가. 그 뒷바라지를 하려면 집을 팔든지 무슨 수를 내야 할 판인데, 유학 다녀와서 엄마를 책임지겠다는 딸의 말을 믿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요즘 애들은 모두 저밖에 모른다고들 하지만 내 딸만은 그렇게 키우지 않았노라고 내심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건 뒤통수를 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녀는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
지하철역의 화장실은 화장을 고치는 아이들로 혼잡하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까지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느라고 거울 앞에서 물러서지를 않는다. 맨얼굴이 더 예쁜데 왜 저리 분을 뽀얗게 바르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한참을 기다려 손을 씻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모자를 벗고 머리를 쓸어넘긴다. 내일은 하루 쉬고 미용실에나 가볼까? 그동안 너무 자신을 방기해왔는지도 모른다.
거리는 슬금슬금 어둠이 내리고 성급한 네온이 살아나고 있다. 그녀는 아직 밤은 아니고 그렇다고 낮도 아닌 저녁 어스름인 이맘때가 가장 어둡다고 생각한다. 성급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전등을 켜기도 하지만 그렇게 어둡지도 않은데 전등을 켜기에는 어쩐지 망설여진다. 그녀는 길 한가운데 서서 간판이 푸드득푸드득 깨어나는 것을 바라본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거리는 활기를 띤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온다. 모두들 바쁜 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간다. 그녀는 길을 잃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이제 그만 여기를 떠나고 싶다. 눈꺼풀이 무겁다. 그만 좌판을 걷고 들어가야겠다. 왠지 오늘은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혹 단꿈을 꿀 수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