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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 촛불시위

 

기쁜 약속이 되는 촛불시위를 위하여

 

 

이건 李鍵

콘텐츠 기획자. egun@egunworks.com

 

 

지난해 12월 31일. ‘100만 촛불평화대행진’ 공식행사가 종료되자 광화문 거리는 촛불 대신 싸구려 폭죽들이 어지러이 날렸고, 일부 대열은 보신각으로 이동했다. 오후 다섯시부터 함께한 친구들은 애초부터 신년 타종식엔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마디마디 얼어붙어 감각마저 잃어버린 몸을 녹이는 것이 급선무라 청진동의 한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길에서 일행들은 거의 말이 없었다. 단지 추위와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촛불시위에 참가한 것이 그날로 다섯번째였다. 다소 감상적이었을지라도 11월 30일엔 열정이 있었고, 일부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을지라도 12월 14일엔 긴 호흡의 결의가 있었다. 그리고 매일 오후 여섯시 교보문고 앞엔 살가운 사람냄새와 체온이 있었다. 그러나 12월 31일의 좋은 기억은 「상록수」를 부르며 눈물 흘리던 양희은씨의 모습뿐이었다.

 

12월 31일의 광화문 촛불시위

12월 31일의 광화문 촛불시위

 

행사 전, 전경 대열 앞에 한 줄로 늘어서 질서유지를 돕던 진행요원들은 이상하게도 행사 중반 이후론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녕 그 속뜻을 모르진 않을 터인데도 대통령 당선자의 시위 자제 요청을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여 아직 취임식도 치르지 않은 이를 대통령 자격도 없다 몰아붙이는 것은 그리 사려깊은 언행이 아니었다. 또한 현 정세에서 시위 참여 대다수가 공감하기 어려운 주한미군 즉시철수 구호 등은 크게 호응받지 못했다. 그렇게,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이유들이 쌓여, 시간이 흐를수록 달구어지고 공고해져야 할 시위의 열기는 도리어 식어가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가장 당혹스러운 문제는 미대사관 행진을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시위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게다가 어린 자녀들까지 동반한) 시민들에게, 일단 빈 골목만 있으면 밀고 들어가 알아서 돌파하라는 식의 방송뿐이었다. 루트당 두 명의 진행요원만이라도 배치되어 행진을 이끌어주면 좋았을 것을, 골목 사이를 우왕좌왕하다 문득 앞을 보니 전경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대열의 대표자도 없이 벌어진 거친 언쟁 끝에 선두 일부가 방패를 잡고 흔들기 시작하자 힘에 부친 전경들이 감정적 대응을 보인 것은 불가피해 보였다. 대열 전후의 안전 간격도 유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만약 강제해산 명령이라도 내려져 전경들이 대열로 진입한다면 시민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 건지. 몇몇 어르신의 만류로 일단 큰 충돌은 막았지만, 수많은 촛불 위로 스치는 깃발들도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옴짝달싹못하는 대열 위에서 깃발 하나에라도 불이 붙는다면 시민들은 피해보지도 못하고 불티를 뒤집어쓸 형국이었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일은 실제로 여러번 목격되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소모전을 반복하다 지쳐 대열별로 자체 정리하고 광화문으로 돌아와보니, 오늘 행사는 끝났으니 새해에도 이 자리에 다시 모이란다. 이러한 일방적인 행사진행이 추운 날씨를 뚫고 용기내어 광화문을 찾은 누군가의 등을 떠밀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주위의 평범한 그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납득이 가는 방법으로, 바로 이곳에 내가 있어야 하겠구나, 적어도 한달에 단 하루만이라도, 저 잘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이 충직하게 문지기를 서고 있는 미대사관 앞에 모여, 하나의 점이라도 되어야겠구나, 오랜 싸움이겠구나, 지치지 말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었을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막으려면 미국놈들을 몰아내야지” “반미란 말에 왜 눈치를 보나” “친미적 자주는 기만이지”–그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적 ‘과제’ 앞에, 혹시 ‘동력’에 대한 오만한 이해와 ‘대상’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동력’의 핵인 우리 국민들을 언제까지 교육과 계몽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인지. 반면 그 ‘대상’인 미국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너무 안일한 것은 아닌지.

 

나는 우리의 싸움이 좀더 ‘정치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중·동은 예의 그 세련되고 근엄한 어조로, 촛불시위의 최초 제안자인 앙마 김기보씨를 스타의식에 사로잡혀 기사 조작극을 벌인 파렴치한으로 매도했다. 그 결과 앙마는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중단한 상태로, 그의 홈페이지(www.angma.org)엔 “angma is dead. peace.” 단 두 줄만이 떠 있다. 그가 실수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때려죽여야 할 일을 한 사람인가? 우격다짐으로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리고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또다른 누군가가 일어섰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광화문은 없거나 조금 더 늦게 밝혀졌을 것이다. 그래서, 위험할 수 있는 발언이고, 비난받아도 할 수 없지만, 나는 역설적으로 그의 ‘정치적 태도’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정치모리배들에게 속아 살아와 그렇지, 정치란 원래 ‘이해관계의 대립을 조정하고,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이 아니던가? 순기능으로서의 ‘정치적 태도’란 올바른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사려깊고 유연한 태도가 아닌가? 일정부분 성숙하지 못한 판단이었고, 선한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시킬 순 없지만, 잘잘못은 가리되 더이상의 에너지 분산은 없어야 한다. 노무현은 자제를 요청하고 국민들은 거리로 나선다, 그것이 정치다.

‘동력’을 기만하거나 ‘대상’과 타협하자는 말이 아니다. ‘동력’과 같은 보폭으로, 같은 키높이에서 어깨걸고 나아가자는 말이다. 하나의 사슬을 끊으면 미리 준비해둔 또다른 사슬로 옭아매는 미국이라는 ‘대상’의 본질을 좀더 치밀하게 분석해보자는 말이다. ‘진상규명, 살인미군 처벌, 부시 공개사과, SOFA 전면개정’으로 요약되는 현 시위성격과 당면과제들을 전면 포기하고 무조건적인 반전시위로 전환하자는 말이 아니다. 미국의 급소가 바로 ‘반전’에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출발하자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당장은 조금 더디 느껴지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통제가 아니라 치료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촛불시위는 반전과 세계평화라는 더 큰 틀속에서, 전세계와 연대해나가야 한다. 지난 1월 18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세계에 걸쳐 동시 개최되었다. 미국 내 9·11 테러 희생자들조차 ‘Not In Our Name’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미국에 사는 사람들로서, 미국 정부가 우리의 이름으로 행하는 정의롭지 못한 일에 저항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믿는다”는 ‘저항의 서약’(Pledge of Resistance)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시위에 동참하고, 1991년 걸프전 참전 후 미국 국적을 버린 전직 미해병대원은 이라크 침공을 막을 인간방패운동 참여를 호소했다. 그 1월 18일, 우리도 한목소리로 전세계의 반전세력과 연대하여 싸웠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이 되었을까. 전세계 각국의 시위현장에서 우리의 정당한 요구와 입장을 밝힌 홍보물 배포협조를 요청했다면 또 어땠을까.

SOFA 개정은 그 큰 틀속으로의 소중한 ‘첫걸음’이다, 시작이다. SOFA 개정을 위한 지속적인 싸움 속에서 좀더 많은 국민들이 미국의 숨겨진 본질을 깨달을 수 있도록, 미선이와 효순이의 값진 목숨이 일깨워준 이 숭고한 ‘공간’을 우리는 결코 비워두어선 안된다. 그리고 그 공간은 계속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미국에 대한 심정적 분노를 논리적 당위로 성장시켜나가야 한다. 그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다. 그 방법은 어쩌면 너무나 간단하다. 열어두고, 배려하고, 토론하자.

그래서, 내 개인적인 바람은 이렇다.

우겨우겨 미대사관 앞까지 밀고 나가봐야 다를 게 뭔가? 방패 붙들고 흔들어대고 전경버스 위로 올라가면 또 뭐할 건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이다. 다만, 잊지 말자. 한달에 한번씩 기쁜 약속처럼 모여 미선이와 효순이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그새 낯익은 사람들과 마주치면 눈인사도 나누고, 막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전경들한테 김밥도 나눠주고, 두런두런 노무현 대통령 흉도 보자. 광화문의 상징성에도 너무 목매지 말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정부가 시내교통사정 핑계를 대면, 대신 한달에 한번 대학로를 보장받아 미국의 전쟁도발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적인 시위문화의 명소로 만들자. 이와 더불어 범대위는 우리를 대표하여 전세계 인권단체, 평화단체, 주요언론에 매주 투쟁상황을 알려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각인시키자.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더 오래 기억하면 이루어진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너무 감상적인가? 그러면 또 어떤가? 감상적 이상주의자들의 이성적이고 지속적인 분노가 더디지만 힘차게 이 세상을 바꾸어오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