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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의 문화지도, 어떻게 달라지나

 

국가원리의 굴레를 벗고서

2002년 월드컵의 교훈

 

 

이마후꾸 류우따 今福龍太

문화인류학자. 문화비평가. 삿뽀로(札幌)대학 문화학부 교수. 저서로 『크리올주의』 『야성의 테크놀로지』 『스포츠의 물가(汀)』 『풋볼의 신세기』 『여기에는 없는 장소: 이마주의 회랑으로』 등이 있음. 웹포럼 Cafe Creole(http://www.cafecreole.net) 주재. cafemaster@cafecreole.net

ⓒ 今福龍太 2002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2

 

 

1

 

브라질이 승리하자 그만 울컥하고 뜨거운 기운이 북받쳐올랐다. 선수들의 스릴 넘치는 몸놀림에 도취되어 승리의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어퍼컷 시늉까지 내면서 우승팀이 환희의 도가니 속에 춤추는 원 안으로 내 마음을 빠뜨리고는 깊은 포만감에 젖어들었다. 이렇게까지 브라질팀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도 새삼 놀라웠다.

왜 일본팀이 아닌 브라질팀에 대해서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브라질 축구를 사랑할 만한 경험적인 내실이 내 속에 이미 생겨나 있었기 때문이라고밖엔 달리 말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브라질의 정신문화에 매혹되어 십여년 전부터 왕래하다가 최근에는 해마다 수개월간 쌍빠울루에 머물게 됐고, 그곳 사람들의 일상적인 기쁨과 두려움을 접하면서 스스로를 브라질적인 일상 속으로 내던져, 브라질이 내게 주는 것을 자극과 함께 받아들여왔다. 그런 가운데 축구에 대한 애정이 브라질인의 혼이 깃들인 가장 내밀한 부분이며 그들의 일상적인 감정을 통합시키고 있다는 데 눈뜨게 되었다. 축구를 그저 오락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축구에 의지하고 자기가 축구를 지탱하면서 사는 호혜적인 축구문화의 심오한 모습을 발견하고서 감동을 받았다.

쌍빠울루에 사는 브라질인 친구는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감정적인 흥분이 아니라 사색적 앙양을 글로 옮긴 편지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호나우두와 호나우딩요가 시종일관 온몸으로 쾌감을 발산하며 플레이를 펼쳤고 그것이 팀 전체로 전염되어 결과나 실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말끔히 걷어내면서 유희적 쾌락으로 가득 찬 플레이와 승리에 대한 깊은 자신감으로 선수들을 하나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브라질인은 그 하나됨을 믿고 승패라는 결과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브라질의 승리를 확신했다”고.

승리가 절대시되는 월드컵의 현장에서 선수가 승패원리의 억압을 초월함으로써 얻은 쾌락, 플레이하는 진정한 쾌락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나의 벗은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편지에서 ‘결혼’이라는 말로 ‘하나됨’이라는 뜻을 표현하는 통에 나는 정말이지 가슴이 떨렸다. 축구 이야기에 이런 수식어를 구사하다니! 그 표현 속에는 복잡미묘한 정취, 즉 남녀의 사랑을 일상과 맺어주는 결혼이라는 현실 속에 담긴 정취가 상상되고 있다. 축구는 인간의 한결같고 진지한 일상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현실을 쌍빠울루에서 가슴 가득히 호흡해왔던 탓에, 브라질팀에 대한 나의 몰입은 깊숙한 내실을 부여받고 눈부시게 타올랐던 게 분명하다.

대다수 일본인이 자신의 국가적 귀속 때문에 형식적으로 일본팀(의 승리)을 응원하는 것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그 무언가가 여기에는 있다. 굳이 말하자면, 국민이기 때문에 자국을 응원한다고 하는 자각없는 자동적 관계를 돌파하기 위해서 브라질 사람들은 브라질 축구 속에 인간으로서의 일상적 미학과 윤리를 엄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점에 대한 불안이라는 억압을 떨쳐내고 유희적이고 미적인 강도(强度)를 가진 골을 추구해온 이번 대표팀이 브라질인의 싱싱한 사랑과 정열을 솟구치게 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승부에서 ‘이기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모습, 팀과 국민의 일체감이 자아내는 미세한 문화적 양상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게다가 그러한 통합감정은 이미 좁은 의미에서의 내셔널한 틀을 뛰어넘어 조금씩 확산되려 하고 있다. 승리의 의미를 단순히 국가적·국민적 달성으로 회수(回收)하지 않는 성숙된 의식과 감정의 구조가 바야흐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2

 

조금 역사적으로 고찰해보자. 국가적 귀속이라는 점에서 보면 분명히 일본인인 내가 일본팀에 대한 자명한 충성관계를 단절하고 브라질팀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축구 등의 근대 스포츠를 옥죄어온 국가원리(國家原理)의 굴레를 상대화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20세기는 19세기 유럽에서 태어난 ‘국민국가’라는 의제적(擬制的) 이데올로기가 전세계로 침투한 백년이었으며, 스포츠야말로 올림픽과 월드컵을 통해 이 국가원리를 강화하기 위한 20세기적 문화장치로서 지속되어왔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근대의 ‘스포츠’라는 이데올로기 자체는 19세기 유럽 근대국가의 탄생과 동시에 성립된 것이다. 특히 영국 지배계급의 생활형태 속에 여가가 생겨나고 이 여가의 이용이 스포츠라는 활동영역을 창출한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근대국가가 국민(특히 청소년)의 신체를 제도적으로 지배하고 통치에 이용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 이런 내력을 가진 스포츠는 룰이 정교화되고 각종 계급의식이나 미학이 새로이 부여되는 가운데, 축구·럭비·크리켓·야구라는 장르들로 세분화되면서 고정화되었다. 20세기는 바로 근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에서 탄생한 스포츠가 국민국가의 세계적 침투 속에서 각각의 경기 장르로서 독자적인 행보를 밟아온 백년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근대 스포츠’라는 제도는 국가원리를 배후에서 뒷받침하면서 20세기 내내 멋지게 살아남았던 것이다.

19세기는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자아의 귀속대상, 동일성의 기반이 될 공동체에 관한 하나의 틀이 탄생하고 그것이 제도화한 시대였다. 또 거기에는 식민주의라는 씨스템, 즉 근대국가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했던 씨스템이자 타자를 억압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유럽이 자기동일화를 도모하는 씨스템이 존재했다. 그리고 20세기가 되면 이제 제3세계의 식민지 자체가 19세기 유럽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하면서 국가로서 독립해나간다. 20세기란 이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역사적 고향인 유럽을 뛰어넘어 전세계로 확산된 시대인 것이다.

그리하여 현존 국가들의 집합체라는 세계의 틀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오늘날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진 거의 유일한 이미지가 되어간다. 그와 같은 세계의 이미지가 지금 가장 훌륭하게 반영되는 기회가 바로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라는 스포츠의 장이라는 사실은, 따라서 결코 우연이 아니라 20세기의 국가제도와 스포츠의 철저한 공범성을 정확히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근대 스포츠에는 군대라고 하는 강력한 유비(類比)가 존재한다. 영국 제국주의 시대에 두드러졌던 이 사상은 요컨대 스포츠에 의해 청소년의 신체를 훈련하고 규격화하며 규율과 도덕을 철저히 주입함으로써 마침내 군인으로서 국가에 공헌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메이지(明治) 시기의 교육이데올로기에도 이 영국적 사상은 직수입되어, 초대 문부성 장관 모리 아리노리(森有礼, 1847〜89)에 의해 학교에 군대식 체조와 운동회가 도입되고 획일적인 신체훈련을 부국강병정책과 연결시키는 정치사상이 선명하게 제창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까지 올림픽과 월드컵 현장에서 노골적인 국위선양의 이데올로기가 횡행하고 국가의 이해관계와 연관된 정치적 사건이나 보이콧 등이 빈발했던 까닭도 바로 스포츠와 군대의 유비가 여전히 잠재적으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20세기의 스포츠는 국가의 논리에 의해서 완벽하게 점유당해왔다.

월드컵 축구에 관한 담론은 바로 이 유착관계, 근대 스포츠라는 제도와 국가원리의 유착관계를 역사적으로 검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현재의 축구를 규정하는 몇가지 기본원리가 모두 국가의 논리에 대응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예컨대 ‘이기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는 게임철학(나는 이것을 ‘승리지상주의’라 부른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가대리전쟁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집단 스포츠의 필연적인 결과다. 또 페어플레이라는 신화 역시 국가지배층인 영국 상류계급의 이상적 자아인 ‘신사’(gentleman)의 미학을 투영한 데 불과해 그것 자체가 극히 이데올로기적이고 계급적인 이념이다. 더욱이 조직전술이라는 형태로 요청되는 집단성이나 신체적 균질성도 곧 국가가 균질화된 ‘국민’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압력과 동일한 메커니즘에 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앞으로의 축구가 지향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국가원리에 봉사해온 근대 스포츠로서의 게임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하면 승패원리에 편중된 구조에서 신체운동의 본질적 쾌락이라는 위상으로 되돌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려면 승리지상주의를 철저하게 상대화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너무 소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예컨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본래 축구의 본질에서 ‘이기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큼 매력적인 것일까?

근대 스포츠는, 본래 몸을 움직이는 쾌감과 그렇게 운동하는 신체를 바라보는 심미적 쾌감을 내포하는 신체운동이라는 활동영역에, 경쟁주의적으로 결말을 강요하는 ‘승패’라는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함으로써 성립되었다. 경기의 룰이라는 것이 신체운동 씨스템을 승패 씨스템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축구경기를 하거나 관전하는 까닭은 승패 때문이 아니다. 그라운드를 돌고 도는 둥근 공, 인간의 육체, 그리고 상상력이 빚어내는 도취할 만큼 아름다운 삼위일체 때문일 뿐이다.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자립된 미적 강도를 갖고 있게 마련인 ‘골’이라는 리얼리티를 모조리 균질적인 산술상의 점수로 환산해 득점의 우열을 다툰다고 하는 것 자체가 축구의 순수한 아름다움이나 쾌락과는 본질적으로 상충되는 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승패는 바로 그 산술적으로 추상화된 골 수만을 비교하여 냉철하게 결정된다. 그저 승패를 결정짓기 위해 벌이는 페널티킥에서 터지는 골을 보고 전혀 흥분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슛이라는 순수하게 구체적이고 미적인 행위가 추상적인 ‘승패원리’에 의해 남용되고 유린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골이라는 가장 미적인 과정을 착취하는 페널티킥은 나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가장 축구답지 못한 행위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3

 

주목해야 할 것은 21세기를 맞이한 오늘날의 스포츠가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근대의 국가이데올로기로부터 일탈해나가는 방향성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국가원리와 부정합성을 드러내는 경향으로는 국내 스포츠 선수의 다민족화, 또 종래 로컬한 지역의 에스닉(ethnic) 스포츠가 세계적으로 인지되어가는 동향을 특기할 수 있겠다. 나아가 본질적으로 남성 백인엘리뜨 계급의 이데올로기인 ‘젠틀맨십’이라는 이념에 지배당해온 스포츠계에 여성적 신체, 유색의 신체, 또 장애인의 신체라는 이질적 신체성이 다른 종류의 이념과 함께 본격적으로 침투해 들어가고 있는 현상도 흥미롭다.

특히 축구에서 근대 스포츠의 국가원리는 흥미있는 혼돈에 빠져 있다. 이딸리아의 1부 리그 ‘쎄리에 A’에서 아르헨띠나 선수가 득점왕이 되고 스페인 리그에서 브라질 선수가 대활약하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한국 선수, 북미 리그에서는 꼴롬비아 선수가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은, 그저 축구경기의 시장이 국적을 벗어나서 확대되고 선수의 국외 유동화가 촉진되고 있다는 현상만으로 이해해서는 부족하다. 이런 사실은 축구가 국민적(national) 공간에서 이탈한 문화의 디아스포라[民族離散]적 전선에 놓여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93년 J리그가 창설될 때부터 브라질의 명선수 지꼬가 현역 선수로서 일본축구를 육성하고 카시마(鹿島)라는 지방클럽의 발전에 계속적이고 근본적으로 공헌하다가 마침내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2006년 월드컵에 도전한다고 하는 현재의 구도는 한 브라질 축구선수가 직업상으로 해외를 편력한다는 문제일 수 없다. 90년대 초부터 옛 이민 자손인 다수의 일본계 브라질인이 출가(出稼) 노동력으로서 일본에 정주(定住)하여 ‘일본’이라는 사회공간을 내부에서부터 초국적(transnational) 공간으로 변용시켜온 것과 같은 메커니즘 속에서 지꼬의 감독 취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세계 축구에서의 디아스포라 문화는 또 구(舊)식민주의의 귀결로서 생겨난 국가대표팀의 다민족화라는 현상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미 지난 1998년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한 프랑스 대표팀이 아랍·아프리카·카리브계 이민과 그 자손들로 구성된 놀라울 만한 혼성체로서 현대 세계의 디아스포라 자체를 훌륭히 반영하고 있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축출하라고 소리높여 외치던 프랑스 국민전선의 르& 당수가 어떤 연설에서 당시의 프랑스 대표팀을 헐뜯으면서 “국가도 못 부르는 선수가 프랑스 대표일 수 있는가” 하고 물고늘어졌지만, 극단적 국가주의자가 아무리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해도 이제 축구는 민족의 세계적 이동을 받아들이며 스포츠를 단순한 국가원리의 점유상태에서 해방시키는 여러가지 징조들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 프랑스 대표도 다민족적인 선수 구성으로 출전했다가 컨디션의 난조 때문에 일찌감치 짐을 쌌다. 그러나 세네갈과의 개막전이 보여준 구도, 즉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에 귀화한 프랑스 선수(비에이라)와 프랑스에서 선수로 육성되어 2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세네갈 대표로 나온 선수(디우프, 까마라 등)가 같은 수준으로 대면하는 구도는 국가원리 파탄의 징후로서, 포스트식민주의적 문화상황의 귀결로 생겨난 이산적 문화의 굴절을 훌륭하게 드러내주었다.

이런 싯점에서 국기나 국가라는 국가원리의 투영물은 축구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종래처럼 국민국가 원리라는 틀 속에서 순치된 구심적 내셔널리즘도 아니며, 관념으로서의 국가나 국민을 꿈꾸는 자각없는 애국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국가 영토 내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문화적 산물의 공존을 확인하면서, 단편화된 일상생활공간에 대한 비판을 담아 새로운 인간적 연대(連帶)를 확인하고자 하는 행위, 어떤 전략적 일체감을 창조하는 행위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한 감정의 표출은 현싯점에서 아직 표면적으로는 ‘내셔널’에 갇힌 자국팀의 응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틀은 아마 멀지 않은 싯점에 돌파될 것이 분명하다. 현대의 우리들은, 자국팀이 그저 ‘승리’했다는 것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고 치유될 수도 없는 다원적 윤리와 세계관의 미세한 접촉과 교섭의 현장에서 살아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4

 

결승전 전날 나는 서울에 있었다. 일본에서 미디어를 통해 봤을 때는 한국의 예상 밖의 선전에 미친 듯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개인 감정이 결여된, 얼굴 없는 국민적 도취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에 와서 한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 사회공간 속에 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배어들어 있는 모습과 접하게 되면서 내 선입견이 틀렸음을 곧 깨달았다. 빨간 티셔츠로 물든 열광 속에 인간의 일체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고 일과성의 집단적 도취로 끝나지 않는 성숙된 기운이 흘러넘쳐 나를 놀라게 했다. 내셔널리즘이나 민족주의라는 말 한마디로 한국에서 스포츠가 가진 의미를 파악해왔던 종래의 시각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나는 강하게 느꼈다.

이제 월드컵의 열광을 내셔널리즘이라는 한마디 말로 다 설명해낼 수는 없다. 국기를 짊어진 팀에 무엇이 투영되고 있는지, 그 섬세한 현실의 모습을 추상적인 국가라는 틀 밖에서도 생각해보는 일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려 25만명에 달하는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머나먼 상상의 조국 ‘일본’에 살면서 자신을 낳고 길러준 모국 ‘브라질’에 대해 깊은 사랑을 담아 녹색과 황색이 어우러진 국기를 흔들었던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화려한 브라질 국기 속에 이미 통합되어 보이지 않게 펄럭이는 수수한 일본 국기를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일본-터키 경기에서 어디를 응원해야 할지 고민했던 한국인, 또 직접 맞붙게 된 터키와 한국의 3위 결정전에 임한 한국인은, 한국전쟁 당시 양국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기억을 불가사의한 우연에 의해 환기하면서도 이미 현대정치의 뒤얽힌 국가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지평에 자신들이 서 있음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한 국가대표가 다른 국가대표와 싸우면서도 이미 거기에는 단순한 승패원리에 의해 결말이 나버리는 내셔널한 대항원리는 존재할 수 없으며, 나라 대 나라의 구도는 환상적 이데올로기의 잔재에 불과함이 간파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 대회는 변칙적인 개최형식 속에서 우리에게 몇가지 교훈을 남겼다. ‘공동개최’는 사실상 ‘분산개최’와 마찬가지인데, 두 나라의 사회제도나 문화를 공통의 수준으로 녹아들게 해 아시아 축구문화의 지평을 창조하려는 의욕적인 공동개최 같은 것은 아직은 꿈일 뿐이다. 그러나 월드컵에 깃들인 국가의 환영(幻影)은 분명히 약해져가고 있다. 21세기의 공동체와 인간생존의 새로운 원리를 탐구하는 길목에서 문화이산(文化離散)의 최전선인 축구가 던지는 메씨지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스펙터클한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축구를 하나의 중요한 문화투쟁의 현장으로 계속 주목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이다.

[任城模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