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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촛점 │ (속) 팔레스타인 노트
실패에 이르는 길
토니 저트 Tony Judt
미국 뉴욕대학 역사학과 교수, 유럽사. 저서로는 『맑스주의와 프랑스 좌파』 『거대한 환상: 유럽에 관한 에쎄이』 『응보의 유럽 정치: 2차 세계대전과 그 후과』 등이 있으며, 『뉴욕 서평』(The New York Review of Books)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 등을 통해 우리 시대의 민감한 주제들에 관한 글을 활발히 발표하고 있음. 이 글은 2002년 5월 9일자 『뉴욕 서평』에 실렸으며 원제는 “The Road to Nowhere”(http://www.nybooks.com/articles/15340)임.
ⓒ T. Judt 2002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2
알제리 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1958년, 아랍인들이 알제(알제리의 수도––옮긴이)의 프랑스 까페에 폭탄을 터뜨리고 빠리 정부가 프랑스 점령군의 고문 사용을 묵인하는 한편 공수부대 대령들이 테러를 끝장낼 재량권을 요구할 때, 프랑스의 철학자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은 『알제리와 공화국』(L’Algérie et la République)1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출간했다. 양측의 감정적이고 역사적인 주장을 거두절미하고 아롱은 그 특유의 냉정한 문체로 왜 프랑스가 알제리를 떠나야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는 아랍인들에게 프랑스의 지배를 강제하거나 아니면 프랑스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부여할 의지와 수단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프랑스가 머문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따름이고 어차피 떠날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는 더 나쁜 조건에서 더 쓰라린 유산을 안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프랑스가 알제리인에게 입힌 손상보다는 공화국이 스스로에 가한 해가 오히려 더 크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선택은 사실 매우 단순하다. 프랑스는 물러나야만 한다.
여러해 후에 아롱은 고문, 테러리즘, 프랑스가 지원하는 정치적 암살정책, 아랍 민족주의의 주장들, 프랑스의 식민주의 유산 등 당시의 열띤 쟁점들에 왜 한번도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대답하기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논하고 있는데 자기까지 목소리를 보탤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문제는 더이상 비극의 기원을 분석하거나 누구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중동지역의 참화를 둘러싸고 논평과 비난의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안타깝게도 바로 아롱이 보여준 얼음장 같은 명료함은 빠져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책 역시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존재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다른 아랍인들도 결국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大)이스라엘’에서 지워질 수도 또 그 속에 통합될 수도 없다. 만일 그들을 실제로 요르단으로 추방한다면 요르단은 폭발할 것이고 이는 이스라엘에 파멸적인 결과를 안겨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진정한 그들 자신의 나라가 필요하고 또 이를 갖게 될 것이다. 두 나라의 경계는 2001년 1월의 타바 협상(이집트와 이스라엘 접경의 타바Taba에서 분쟁의 당사자들이 영토와 난민 귀환권 문제를 놓고 협상한 결과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합의에 이르렀음―옮긴이)에서 그려진 지도대로 그어지고 그에 따라 1967년의 경계가 조정될 것이지만 거의 모든 점령지역이 팔레스타인 통치권 아래 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점령지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은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에 있었던 셈이고 대부분 해체될 것인데 이는 다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적으로는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아랍인에게 귀환의 권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유태인도 시대착오적인 귀환의 권리를 버릴 때이다. 예루살렘은 이미 대체로 종족의 구분에 따라 나눠져 있으며 궁극적으로 두 나라 모두의 수도가 될 것이다. 이들 나라는 안정 및 안보문제의 공유에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머잖아 협력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테러조직망에서 정당으로 변모할 기회가 제공된다면 하마스(Hamas)같이 공동체에 근거한 조직들은 그 길을 택할 것이다. 수많은 전례가 있지 않은가.
만일 이것이 이 지역의 미래라면 거기까지 가기가 왜 이토록 비극적으로 힘겨워야 하는가? 아롱의 글이 씌어진 지 4년 후 드 골(De Gaulle)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알제리에서 자국민을 데려왔다. 50년 동안의 악독한 억압과 착취 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들은 절대다수인 흑인들에게 권력을 넘겼고 흑인들은 폭력이나 복수 없이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중동이라 해서 많이 다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식민지배와 유사한 면이 많고 따라서 외국의 선례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르다고 고집한다.
대다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들만은 특별하다는 서사 속에 갇혀 있다. 이런 특별함은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 고대 유태국가가 존재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특별함은 옛 유태와 사마리아 땅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신이 부여하였다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유태인 대학살과 그로 인해 유태인들이 국제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보상의 권리를 상기시킨다. 그런 특별한 주장을 안하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특수성을 옹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지리적 특징을 강조한다. 우리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고 언제라도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모험도 할 수 없고 단 한번의 실수도 저질러서는 안될 처지이다, 프랑스인들이야 지중해 너머로 철수할 수가 있었고 남아공은 땅덩이라도 넓다, 그러나 우리는 갈 곳이 없다,라고. 결정적인 사항은, 이스라엘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불가피한 처지에서 이를 거부하려 할 때마다 그 배후에는 언제나 암묵적인 보증을 서는 미국이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에 있어 문제는 1967년 이래 이스라엘이 그들의 전통적인 자기묘사가 터무니없이 여겨질 만큼 여러 면에서 변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 지역의 식민강국이 되었고 몇몇 보고에 따르면 세계 네번째의 군사 대국이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국가로서 온갖 부속기구와 기능을 갖추었다. 그에 비하면 팔레스타인 쪽은 실로 허약하다.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실패가 참담하기 이를 데 없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의 범죄가 극히 잔학하지만, 엄연한 사실은 이스라엘이 군사적·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책임도 주로(전적으로는 아님을 이후 살펴볼 것이지만) 이스라엘에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은 이 점을 보지 못한다. 자신들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들에 맞서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마지못해 자기방어를 하는 작은 희생자 집단이다. 이스라엘인들을 오만하게 만들었던 1967년 6월의 승리 이래 놀랍도록 무능한 그들의 정치적 지도부는 30년을 헛된 일에 낭비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점령지역에 불법 정착촌을 건설했고 냉소라는 껍질을 키워왔다. 자기들이 경멸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고 과거 우호적 교전중지를 중재했으나 이 중재를 뻔뻔스레 이용해온 미국을 향해서 말이다.
이스라엘이 시리아나 레바논의 헤즈볼라, 하마스의 군사조직, 혹은 다른 극단주의 조직에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조직들이 자기들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쪽의 예상되는 반응을 기반으로 오래도록 번성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현 정부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사실상 거의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의 사건들(2002년 3월 이스라엘 군대가 웨스트뱅크에 침공하여 팔레스타인 라말라 정부청사와 베들레헴 교회를 포위공격한 사건들―옮긴이) 이후 어리석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팔레스타인 정치인들은 매국노로 비난받았고 그에 따라 축출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대화상대를 스스로 제거해버린 셈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어두운 내면(id)이라 할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의 두드러진 업적이다. 군인들 사이에서 전략적 무능함으로 악명높은---과감하게 탱크를 진입시켜 거둔 그의 전술적 성공은 좀더 포괄적인 상황파악에 입각한 것은 아니다---샤론은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대로 최악임이 판명되었다. 그는 자신이 1982년 레바논을 점령했을 당시 저지른 모든 실수를 과장된 수식어구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반복했다(야쎄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축출 문제의 경우, 미수에 그쳤지만). 아라파트에 대한 샤론의 강박증은 모든 도리와 이치를 저버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의 그것마저 저버리면서 장 발장의 파멸에 삶과 경력을 광적으로 바친 빅또르 위고(Victor Hugo)의 형사 자베르를 떠올리게 한다(이 문학적 비교는 샤론과 아라파트 둘 다에게 과분한 것이다).
그사이 샤론은 혼자 힘으로 아라파트의 국제적 지위를 지난 수년 이래 최고조로 상승시켜놓았다. 설혹 아라파트를 제거한다면, 그래서 폭탄테러범들이 예상대로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면 그때 샤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스라엘 자국 내의 젊은 아랍인들이 예닌과 라말라 점령지역의 동족들을 무자비하게 다룬 방식에 분개하여 자살공격 작전에 자원한다면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갈릴리로 탱크를 보낼 것인가? 하이파(Haifa)의 아랍 지구에 전기 담장을 둘러칠 것인가?
샤론과 이스라엘의 기성정치 세력들―손을 씻는 빌라도처럼 책임을 방기한 이 나라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이 현재의 위기에 주된 책임이 있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워싱턴으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았다고 가정하는데, 정확히 그런 이유로 싫든 좋든 미국도 이 혼란의 한 당사자이다. 헨리 키씬저부터 빌 클린턴까지 과거 30년 동안 중동에서 평화를 구축하려는 모든 진지한 노력은 미국의 촉구와 개입으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옆으로 비켜서서 국제적 분노를 자초하고 자신의 미래의 영향력을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가?
팔레스타인 당국의 지도자가 방 세 개에 감금되어 단지 핸드폰 하나만 쓸 수 있는 상황인데도 왜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말과 4월 초 내내 자살 폭탄테러범을 억제하기 위해 “아라파트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뻔한 제안만 되풀이했는가? 콜린 파월처럼 정교한 사고력과 지성을 겸비한 사람이 왜 현재의 위기상태에 이르도록 샤론의 냉소적 요구―어떠한 정치적 논의의 개시 이전에 임의의 ‘절대적 평화’(산발적인 이스라엘측 암살행위만 빼고)의 시기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얌전히 받아들였을까? 4월 9일자 『뉴욕 타임즈』가 밝힌 대로 “이스라엘 탱크와 무장 헬리콥터가 3월 29일 웨스트뱅크에 진입한 이래 2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해당했고 150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동안 왜 미국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던가? 요컨대, 미국은 왜 ‘테러리즘’이라고 표시된 채찍에 자발적으로 묶여서 샤론이 그 채찍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했을까?
슬프게도 그 대답은 9·11에 있다. 그전까지는 부시마저도 ‘표적 암살’을 하지 말라고 이스라엘에 경고할 필요가 있음에 유념했고 실제로 작년 8월에 그렇게 경고했다. 하지만 9·11 이후로는 ‘테러리즘’이나 ‘테러리스트’라는 말만 갖고도 합리적인 대외정책 논의를 잠재울 수 있었다. 아라파트가 ‘테러조직’의 우두머리라고 샤론이 선언하기만 하면 워싱턴은 샤론이 어떤 군사행동을 취하더라도 얌전히 뒤를 받쳐주었다. 우리는 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수사(修辭)에 최면이 걸려 있다. 때문에 자신의 국내외 비판자들에게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성공한 정치가는 최소한 미국정부가 자기 말을 경청해준다는 것, 그리고 대개 그 이상의 것을 보장받는다.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공산주의자’ ‘자본가’ ‘부르주아’ 및 그전의 다른 낱말처럼 우리 시대의 주문(呪文)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말들처럼 테러리스트란 말도 모든 논의의 진전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 말에는 자체의 역사가 있으니, 히틀러와 스딸린이 반대자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실재의 부르주아나 진짜배기 공산주의자가 있는 것처럼 테러리스트 또한 실제로 존재하며, 민간인에 대한 테러는 약자가 선택한 무기이다. 그러나 문제는 ‘불량배국가’와 마찬가지로 ‘테러리스트’도 자업자득이 될 수 있는 변화무쌍한 수사적 장치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국가 창건자들 가운데는 유태인 테러리스트들이 끼여 있었으며 머잖아 유엔이 이스라엘을 불량배국가로 규정하는 결의문을 통과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중동에서 어떠한 해결책이 나오려면 그 첫단계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란 자멸적 수사에 대한 집착―이것이야말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아리엘 샤론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하는 것인데―을 포기하고 강대국답게 처신해야 한다. 이스라엘 총리에 협박당하여 침묵하는 대신 워싱턴은 샤론과 그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팔레스타인 대표자들에게 서로 대화를 재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2년 전, 아니 불과 1년 전만 해도 대화 재개를 위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모든 폭탄테러를 중단시키도록 요구하는 것이 이치에 닿는 일이었다. 하지만 협상에 응하고자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두 아리엘 샤론 덕분에 그런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 그러니 폭탄테러가 있건 없건 회담과 평화협정을 이뤄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국 민간인들을 겨냥한 자살 폭탄테러를 용인해온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 물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영구평화를 입으로는 주장하면서 지난해에만 30개의 새로운 식민 정착촌을 건설해온 사람들에게 아무런 할말이 없다고 응수할 것이다. 양측 모두 상대를 불신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대안은 없으며 양측이 대화하게끔 만들어야 한다.2 그리고 그다음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과거를 잊기 시작하는 것이다.
잊어야 할 것이 많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의 대규모 국외추방, 토지몰수, 경제적 착취, 웨스트뱅크의 식민화, 정치적 암살, 그리고 수많은 사소한 일상적 굴욕들을 기억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1948년의 전쟁, 1967년 이전과 그 이래 아랍이 자신의 국가를 인정하길 거부한 사실, 유태인을 바다로 내몰겠다는 반복적인 위협, 그리고 작년의 끔찍하고 무차별적인 민간인 대량학살을 기억한다.
그러나 중동지역의 기억들은 결코 특별한 것도 또 심지어 규모면에서 두드러진 것도 아니다. 20년 동안 아일랜드공화군(IRA)은 상습적으로 신교도 민간인들을 그들의 현관에서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쏘아죽였다. 신교도 총잡이들도 마찬가지로 응수했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금도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온건 신교도들이 자신들의 상대인 씬 페인(Sinn Fein)당 사람들과의 공개적인 대화를 그만두지는 않는다. 게리 애덤즈와 마틴 맥기니즈(씬 페인당의 총재 및 부총재―옮긴이)는 이제 합법적인 정치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다른 곳을 예로 들자면, 나찌 친위대(SS)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700명의 프랑스인을 산 채로 불태운 1944년 오라두르(Oradour) 마을의 대학살이 있은 지 6년도 채 지나지 않아 프랑스와 독일은 새로운 유럽 구상의 중심을 형성하기 위해 한데 모였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격동 속에서 중동에서 일어난 어떤 것에도 비견되지 않을 종족공동체간의 폭력적 광기로 수십만명의 폴란드인과 우끄라이나인이 이웃하는 폴란드인과 우끄크라이나인에게 살해되거나 각자의 지역에서 쫓겨났다. 현재의 비율로 따지면 유태인과 아랍인이 이에 필적하는 사망자수에 이르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폴란드와 우끄라이나 사람들은 그 비극적인 기억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지낼 뿐 아니라 평온한 국경을 넘나들며 공동작업과 협력을 증진시키고 있다.
이런 일은 실현될 수 있다. 오늘날 중동에서 양측은 각각 상대방의 고통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밀봉된 기억과 민족서사에 갇혀 살아간다. 그러나 알제리인과 프랑스인, 프랑스인과 독일인이 그랬고 우끄라이나인과 폴란드인, 그리고 특히 북아일랜드의 신교도와 구교도도 그랬다. 벽이 무너져내리는 마법의 순간은 없지만 사건들의 전후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먼저 정치적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종종 상대를 향한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외부의 강력한 세력에 의해 부과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런 다음에야 잊는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
미국 대통령도 뒤늦게 인정한 바와 같이, 샤론이 이 지역 곳곳에 죽음과 부패의 기나긴 악순환을 가동하려 하는 현재의 순간은 바로 최후의 기회일 수 있다. 이스라엘에는 확실히 그렇다. [이를 놓치면] 아랍인이 자신들의 땅과 나라를 갖기 훨씬 전에 이스라엘은 이미 내부에서 썩어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샤론과 연대하는 것으로 보일까 우려하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방문을 꺼리고 있으며 이런 우려는 국제사회에 급속히 확대되어 이스라엘을 왕따 국가로 만들고 있다. 샤론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제아무리 못되게 군다 한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샤론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망은 이보다 확실치 않다.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에 중동 위기는 국제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뜻하며, 어떤 식으로 설명하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실패하리라는 것을 보장해주는 지표이기 쉽다.3
당대의 중동에 대한 선의의 관찰자들은 분쟁의 당사자들이 진정한 자기이익을 깨닫게 되리라고 이따금 믿는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물질적 번영과 개인적 안전을 보장받는 댓가로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아들인다면 훨씬 잘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완전독립이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틀림없이 포기할 것이라고 말한다. 샤론의 탱크 배후에 어떤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면 바로 이 논리에 따른 것이다. 즉, 충분히 겁을 주면 아랍인들은 싸워서 잃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어 이스라엘이 제시한 조건으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 동의하리라는 것이다.
아마도 모든 식민주의적 환상 중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대다수의 알제리 아랍인이 프랑스를 대체한 억압적인 토착정권보다는 프랑스의 통치 아래서 훨씬 잘살았을 것이라는 데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거 영국정부의 지배를 받았던 많은 탈식민 국가들의 주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이란 소득이나 수명, 심지어 안보로 손쉽게 측량되는 것이 아니다. 아롱이 말한 대로 “인간이 이익을 위해 열정을 희생할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곧 우리 세기의 경험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랍 피지배민을 대우함에 있어 실패에 이르는 길에 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평화협상과 최종적인 타결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 하겠다는 것인가? (2002년 4월 11일)
[黃靜雅 옮김]
■ 편집자 주
토니 저트의 「실패에 이르는 길」은 2002년 5월 9일자 『뉴욕 서평』에 실려 화제를 모은 글이다. 이 글에 대한 몇몇 논평과 반론 및 저트 자신의 재반론이 같은 잡지의 7월 18일자 「‘실패에 이르는 글’에 대한 의견교환」(‘The Road to Nowhere’: An Exchange, http://www.nybooks.com/articles/15616)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지만 지면관계상 전문을 소개할 수 없어 그 주된 논점만 간추려 전한다.
「‘실패에 이르는 글’에 대한 의견교환」에 맨 먼저 등장하는 것은 예루살렘 헤브루대학 교수 실로모 아비네리(Shlomo Avineri)의 짤막한 반론이다. 아비네리는 저트의 글이 중요한 맥락을 빠뜨림으로써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단공격한 것으로 비치게 한다고 질책한다. 아비네리가 보기에 탈락된 맥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2000년 봄·가을에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 협상에서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의 국가·주권·독립을 성취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는데” 1948년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을 고집함으로써 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라파트의 이런 비타협적 거부와 투쟁일변도의 자세 덕분에 샤론이 현재 이스라엘에서 총리라는 지위와 70% 가량의 지지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비네리의 반론에 대해 저트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기회를 놓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책임은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협상 내내 [당시 이스라엘 수상] 에후드 바락(Ehud Barak)은 정착촌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고집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쪽의 진의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아라파트가 고집한 ‘귀환권’은 이스라엘 쪽에서 보면 협상을 파탄시키는 걸림돌로 비칠 수 있었지만, 1948년의 비극을 기억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중차대한 사안이기에 설령 비현실적이라 해도 아라파트로서는 일단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상세한 맥락을 따져보면 아비네리의 반론은 오히려 이스라엘 쪽으로 편향되어 있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아비네리 다음에 소개된 세종대학 교수 도인 도슨(Doyne Dawson)의 반응은 반론이나 비판보다는 매도에 가깝다. 도슨은 저트의 글을 이성을 상실한 작태로서 “유럽 좌파의 끝없는 반이스라엘적·반유태주의적 선전의 재탕”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도슨은 저트의 진술을 사사건건 트집잡는데, 가령 이스라엘이 ‘식민’강국이라는 저트의 주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대해 특히 지각없는 왜곡”이라고 비난했고, “아라파트에 대한 샤론의 강박증”이 문제라고 지적한 대목을 두고는 이는 “2차 세계대전에서 진정한 문제는 처칠의 히틀러에 대한 강박증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뒤틀어 해석한다. 도슨의 가장 주된 불만은 저트가 “문제의 진정한 화근인 고질적 이슬람 반유태주의를 숨긴다”는 데 있었다.
이에 저트는 샤론의 폭력적·반평화주의적 이력을 열거함으로써 샤론과 처칠, 아라파트와 히틀러를 동렬로 비교하는 것이 무리임을 보여주는 한편, 팔레스타인 못지않게 이스라엘 쪽도 수많은 테러를 자행했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이스라엘이 식민국가라는 근거로, “미국이 재정을 대는 이스라엘 정부의 보조금에 의해 주택, 도로, 상수도 및 그밖의 것들을 지원받는 유태인 정착민들 스스로가 자신을 분명히 식민주의자로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트는 “샤론을 문제삼으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이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반이스라엘적일 수밖에 없고 반이스라엘적인 것이 곧 반유태주의적인 것”이라는 도슨의 어리석은 추론은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지만 미국 신문의 사설란에 이런 논리가 널리 퍼져 있음에 주목한다. 게다가 이런 논리는 심층적으로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컨대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뉴욕 타임즈』(2002년 8월 15일)에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유럽 사람들은 “나찌의 유태인 대학살의 죄책감을 최종적으로 떨치기 위해” 웨스트뱅크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썼다는 것이다. 저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언급할 때마다 그 근저에 아우슈비츠의 망령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현상에 주목하면서, 유럽의 극우세력과 반유태주의의 창궐을 걱정하는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오늘날 유럽의 인종주의와 외국인공포증이 실제적이고 현재적인 위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주된 표적은 무슬림이지 유태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짚는다.
마지막 필자인 캘리포니아대 교수 어윈 월(Irwin Wall)은 저트 글에 전반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면서 다만 드 골이 알제리에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자국민을 철수한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이에 대해 저트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이스라엘 정착촌이 “땅과 조상에 대한” 심각한 우상숭배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극단적인 호전성으로 치닫고 있음을 우려한다. 샤론 정부가 정착촌의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는커녕 오히려 애국주의의 이름으로 그들의 호전성을 부추기는 상황을 개탄하면서도 저트는 평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1967년 전쟁에서 샤론 장군이 “이집트 군대를 싹 쓸어버리겠다”고 하자 당시의 이스라엘 총리 레비 에슈콜(Levi Eshkol)이 “군사적 승리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네. 아랍인들이 여전히 존재할 테니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재반론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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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is: Plon 1958. 그의 다른 책 La Tragédie algérienne (Paris: Plon 1957)도 참조할 것.↩
- 진짜 장애물 중 하나는,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외부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최종 평화정착안에도 반대한다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선의를 가지고 협상에 임할 리가 없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다.↩
- 미국의 논평가들이나 관리들은 반미주의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사이의 어떠한 관련성도 황급히 부인한다. 그러나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양자의 관련성은 섬뜩하리만큼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