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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창훈 韓昌勳
1963년 전남 여수 출생.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장편 『홍합』 등이 있음. kkunha@naver.com
해는 뜨고 해는 지고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명함판 사진을 내려놓으며 성근은 몸을 벽 쪽으로 돌리고 눈을 감았다. 납작하게 눌린 머리카락이 베개에서 떨어졌다. 끼잉끼잉. 이 소리는 순돌이 울음소리다. 목줄을 팽팽하게 만들어놓고 앞발을 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들어오는 사람이 은례라는 소리였다.
그는 개가 움직이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짐작이 됐다. 아주 대놓고 사납게 짖는다면 생면부지인 이들이고 그 정도는 아니되 짖기만 한다면 고지서 배달 온 우체부나 상환 독촉하러 온 농협직원이었다. 짖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기지도 않는, 전혀 반응이 없는 경우라면 성근 자신의 친구들이었다. 아니, 우리단란주점의 황사장이었다. 그들 외에는 근래에 이 집을 찾는 이가 없었다.
그러니 낑낑대며 애정을 호소하는 소리는 참으로 모처럼 들어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순돌이에게는 말 한마디 없이 짝짝, 쌘들 끄는 소리만 났다.
휘흠, 긴 숨이 절로 나와 벽에 부딪힌다. 아주 짧은 순간에 그게 아내가 들어오는 소리로 여겨졌는데 그렇다면 오락가락하던 사이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졌던 거다.
아내는 새벽에 일 보러 나갈 때가 자주 있다. 품앗이로 밭 매러 나갔다가 아침밥 차리려고 돌아오거나 첫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선착장 나갔다 오는 경우도 있다. 가지나 상추 뜯으러 텃밭에 갔다 오기도 했고 마땅한 반찬이 없으면 급한 대로 두부모나 사러 가게 다녀올 때도 있다.
지금 저 소리가 아내라면, 일어났수? 얼른 씻으시오, 밥 차릴 테니, 소리가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기분대로만 한다면, 갔다 왔는가? 밥은 그냥 두고 잠깐만 들어와보소, 해서 들어오는 것을 달려들어 꽉 보듬었으면 싶었다. 아이구 참, 정신사납게 왜 이런댜, 밥 먹을 생각은 않고, 앙탈을 한다면 젊었을 적 산 너머 연애바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힘으로라도 찍어눌렀으면 했다.
그런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크고부터 밤을 조심하게 되어 애들 학교 가고 난 다음 일을 치르는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그것은 성근의 일 때문이기도 했다. 어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은 늘 아침이었고 고단한 뱃일에 대한 보상으로 한바탕 몸을 실은 다음에야 밥을 먹든지 잠을 자든지 했다. 또한 이렇게 자신은 방에 누워 있고 아내가 잠시 바깥바람을 쏘이고 들어왔을 때도 뭔가 새로운 기분이 들어 싫다는 것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발소리는 현관에서 작은방 쪽으로 휘어졌고 머잖아 탁, 문이 닫혔다.
그래, 아내가 올 리는 없었다. 만약 오늘 이 시간, 예전처럼 아침 일찍 바깥엘 나갔다가 돌아오는 중이라면 (그런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쯤 다른 사내가 누워 있는 방문을 열고 있을 것이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는 사내 어깨를 두드리며 보시우, 역시 새벽 도깨비시장에 가야 좋은 것을 산다니까, 싱싱한 것으로 사왔으니 얼른 일어나 보시우, 할지도 몰랐다. 아니, 풍문으로 들어본 바로는 아내에게 이천만원짜리 통장하고 카드를 만들어준 이는 육십 넘은 사내라니 인삼이나 녹용 이런 것을 사와 갈고 있거나 약탕기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천지가 모두 허전한 바람으로 변해 그의 가슴속을 뚫고 들어왔다.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몸 어딘가에 구멍이 나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허전하고 쓸쓸했다.
순간의 잠결로 착각을 하긴 했지만 그는 이제 아내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돼버리고 말았으니 큰 미련도 없다. 문제는 발소리였다. 안방 한번 안 들여다보고 작은방으로 가버린 게 속상하기 그지없다.
집에 사람 사는 표시는 들고 나는 사람들의 흔적과 그들이 내는 소리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 그러나 요 몇달 동안 사람들의 방문을 좀처럼 받아보지 못했다. 특히, 이처럼 순돌이가 반기는 그런 방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아침은 적막의 시간이 되어 있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이른 시간에 눈을 떴건만 근 열시가 가까워오는 이 시간까지 들어본 소리라는 게 뒤란 시누대 숲에서 사는 참새들 재재대는 것밖에 없다. 그의 집만 그런 게 아니다. 이웃들, 나아가 마을 전체가 조용했고 그것은 새벽일이 없어졌다는 걸 뜻했다.
얼른 일 가세, 밥은 자셨수? 누구네 어매는 안 보이네, 오늘 새벽에 서방이 왔잖은가, 그러니 여러모로 늦겠지, 깔깔, 곧 올 것이니 먼저 가세나, 그 집 아배는 이번 어장에 재미 좀 봤답디까? 공쳤다고 하대, 어장보다 더 좋은 재미가 있는디 뭔 걱정이여, 아 늦었어, 뻘소리 그만 하고 얼른 가자니까, 아침밥 먹기 전에 두 이랑은 매야지, 하던 새벽의 왁자지껄한 소란이 없어진 것이 이미 몇년째였다. 아낙들이 빠져나가고 나니 밭농사도 없어지고 텃밭에는 잡초만 자랐다. 소란이 떠난 곳에는 이렇게 적막함만이 떠돌았다.
주변이 워낙 한적해서도 그랬지만 성근은 새벽부터 내내 문 여는 소리를 기다렸다. 은례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들어와서는 어디에서 자고 왔다, 밥은 드셨냐, 이런 말 한마디 없이 방으로 휭, 들어가버리는 것 아닌가. 그는 벽에서 퉁기듯 벌떡 일어나 작은방 쪽을 쏘아보았다. 저쪽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인기척도 없다.
은례는 기별도 없이 어제 오후 마지막 배로 들어왔다.
지난 두어 달 동안 그는 가족들이 몹시도 보고 싶었다. 딸애는 더욱 그랬다. 새벽잠 깨어 담배만 피우다가 햇살에 서서히 창이 밝아지면 나타나는 가족사진(결국 며칠 전에 떼어내어 광 속에 집어넣었지만) 속에서 딸애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은례가 항구에 있는 정보통신고에 가던 해 찍은 것이니 얼추 사오년은 된 것이다. 얼추라고 짐작하는 것에 그의 고민이 있다. 올해 은례가 스물인지 스물하나인지 얼른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해에 일어난 일들을 떠올려보다가 수업 때문에 사지 않을 수 없다는 말에 황에게 돈을 빌려 컴퓨터를 사준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돈을 해가 바뀐 다음에야 갚았고 갚은 해에 황의 늙은 어머니 초상이 있었다는 것을 두루 꿰맞춘 다음에야 올해 스물하나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정도이다보니 딸애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대답할 게 별로 없었다. 나이를 짐작해보다가 별 생각 없이, 저절로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된 건데, 딸애가 선착장에 있는 선박수리소에서 튄 용접 불똥에 동전만한 화상을 입었던 때가 초등학교 3학년인지, 4학년인지, 5학년인지 분간이 안되고 그게 왼쪽 팔뚝이었는지 오른쪽 팔뚝이었는지도, 그때 그가 분명히 약을 발라주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돌 때 걸었는지 못 걸었는지, 백일해를 몇살 때 앓았는지(뭔가 된통 앓은 적이 있는데 그게 백일해인지 급성신장염인지 또다른 병이었는지도 헷갈렸다), 공부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말을 잘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고등학교에서는 무슨 반이었는지, 친구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아직도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 오십줄 중반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늙은 게 아니다. 힘도 아직 쓸 만하고 무엇보다도 새벽에 발기도(지난 일년간 그런 적이 유난히 많기는 했다) 되고 있었다. 총기가 떨어져서 딸애에 대한 기억이 흐려진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는 그런 생각들을 날마다 되풀이하다가 끝내는 몹시 미안해졌다. 아들인 은석이에 대한 것은 거의 다 뚜렷이 기억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물론 그는 딸아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다만, 집에 돌아오면 늘 제자리에 있는 텔레비전이나 이불처럼 한번도 그 존재에 대해 의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멸치잡이 어장엘 가면 잘 있으려니 하고 잊어버렸고 돌아오면 역시 아내와 아들과 딸애는 무탈하게 집에 있었다. 아내는 밥을 차려주고 자식들은 다녀왔냐고 인사를 했다.
일 없는 기간에도 그는 아내 몸을 탐하거나 마실을 나가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거나 친구들과 대폿잔을 부딪치며 보냈다. 아이들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있으면 학교 갔다 왔냐,고 했고 늦은 시간에 없으면 아이들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다. 잠시 어디 갔다거나 요 앞에서 논다거나 하는 대답을 들으면 그만이었다. 밥 먹고 자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어장 날짜에 맞춰 여객선 타고 항구로 나가면 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세월을 살아왔다. 그게 잘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고민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았고 다들 그랬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좋은 것이었나, 뼈가 저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딸이 유난히 보고 싶었다. 연락 없기는 셋 다 매일반인데 자꾸 은례 생각만 났다. 은례만은 다를 것 같았다. 은례한테만은 자신이 다 잘못한 것 같았다. 하여 무슨 일자리든지 찾아내어 악착같이 벌거나 그것도 안되면 빚을 내서라도 좋은 곳에 시집을 보내야지, 이런 다짐도 종종 했다.
그런데 하필 어제 땅이 팔렸다. 유산으로 물려받아 심거나 놀리거나 하던 천오백평 밭을 우리단란주점 정마담(황의 새 부인이다)을 통해 평당 만원씩에(항구와 가깝기는 하지만 섬이라 땅값이 높지 못하다) 팔았던 것이다. 계약금으로 받은 돈 가지고 농협에 들른 다음 직원이 돈 세는 중간에 잔고를 찍어보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마이너스 숫자 때문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백만원 정도 남아 있던 통장은 그사이 마이너스 이백을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오후 내내 속을 끓이고 있는데 은례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기다리던 가족이 나타났고 그것도 가뜩이나 마음 가던 딸애라서 흐뭇해할 일이었으나 그는 그렇지가 못했다. 위아래 세련되어 보이는 정장으로 쫙 빼입은 품부터 눈에 확, 거슬렸다.
“아빠.”
“너 마침 잘 왔다.”
내 딸 왔구나, 또는 아이구 어서 와라, 이런 말이 나왔어야 했다. 그는 그러고 싶었다. 아마 빈방에서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나 오전에 놀러 갔던 황사장한테 오후에 또 놀러 가기 뭐해서 마당에 쏟아지는 햇살이나 바라보고 있다거나 꼬리 치는 순돌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들어왔으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달려가 손도 잡고, 그동안 단 한번도 그래본 적 없지만 꼭 껴안았을지도 몰랐다.
“………”
“이게 뭐냐?”
그는 뒷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냈다.
“뭐가요?”
이쪽이 좋은 얼굴이 아니니 딸애도 좋은 얼굴일 리 없었다. 성근의 얼굴은 부풀었고 은례 얼굴은 샐쭉해졌다.
“이게 왜 이러냐? 눈 있으면 좀 봐.”
물론 계약금을 입금시켜놓았기에 숫자는 바뀌어 있지만 다행히 은례는 확인하지 않았다.
“아, 그거. 필요한 게 있어서 사다보니 그랬어요.”
“도대체 뭐가 얼마나 필요해서 삼백만원도 넘게 쓴 거냐?”
“그냥……”
“입 있으면 말해봐. 뭔 돈을 이렇게 썼는지. 늬 애비는 혼자서 죽 쒀먹고 있는데 니는 돈 펑펑 쓰고 다녀? 얼른 말 못해?”
“회사 취직하려고.”
“뭐? 취직. 취직이라는 게 돈 벌러 들어가는 것 아니냐? 내가 듣던 중에 돈 쓸라고 회사 취직한단 소리는 너한테 첨 듣는다.”
“너무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그래, 한번 들어보자.”
성근은 은례를 꼬나보며 거친 숨을 내몰아쉬었다.
“면접은 그냥 봐? 옷이라도 하나 제대로 입지 못하면 면접장에 들어갈 수도 없어.”
“………”
“그리고 취직은 그냥 시켜줘? 대학 나오고도 노는 애들이 수두룩한데.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려면 학원엘 다녀야지. 학원비도 냈어.”
“너 학교 다닐 때 무슨 자격증 땄다고 했잖아.”
“워드 이급 가지고는 택도 없어. 정보처리 일급은 있어야지.”
“………”
“그래서 쓰다보니 그리 됐어요. 요즘 세상에 돈 삼백이 어디 돈이에요?”
“돈 삼백이 돈이냐고? 그러면 그건 하늘에서 떨어진 거냐?”
딸이 면접을 보러 다녔는지 어쨌는지 알 수는 없다. 성근 자신이 어디 면접 한번 보러 다녀보거나 항구의 회사 속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모를까. 그가 본 면접이란 배를 바꿀 때 선주하고 선장한테 인사 가서 소주 한잔 마시는 게 다였다. 하지만 모르는 눈으로 봐도 이런 평일에 들어온 걸 보니 취직을 못한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 취직했냐? 했냐구?”
“곧 할 거예요.”
“빌어먹을 년이 카드 만들어달라고 지랄하더니.”
패밀리카드는 일전에 은례가 만들어달라고 했다. 객지에서 돈 없으면 초라해지는 법이라서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되면 찾아 쓰라고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이혼 뒤에 생겨난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아내도 항구에서 살고 있지만), 제 어미 돈보다는 차라리 내 돈을 쓰라고 그때 마이너스 통장도 만들었다. 하지만, 아들 은석이가 주식투자로 손해를 보고 말았던 이래 집에 돈이라는 게 귀해졌으니 저도 알아서 꼭 필요한 것만 적당히 내 쓰려니 했다.
“애비는 굶어죽어도 괜찮다는 거냐?”
“아빠가 왜 굶어죽어?”
“마이너스가 다 뭐냐? 이것 빚 아녀? 뭔 돈으로 메꾼단 말이냐.”
“내가 채워놀게요.”
“니가 무슨 재주로? 취직도 못한 것이.”
“………”
“망조가 들어도 유분수지. 지랄한다고 에미나 새끼들이나 다들 카드 들고.”
“………”
“애비가 죽을 끓이는지 밥을 끓이는지 신경도 안 쓰는 것들이.”
“알았어, 그만 좀 해.”
은례는 신경질적으로 휙 돌아 나갔다.
“너 시집갈 때 한푼도 없는 줄 알어.”
“나 시집 안 가.”
“어디 가냐?”
“몰라.”
은례 대답은 이미 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디 가냐니까?”
대꾸는 더이상 없었다. 순돌이만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어제 저녁이었다.
아직 골이 나 있는가. 친구 집에서 잔 모양인데 그렇다면 화가 풀리지 않았을까. 좀 심했다 싶고 미안하기도 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와 밥은 잡수셨냐, 인사라도 해오면 좋겠는데 작은방에서는 여전히 인기척도 없다.
가슴 한쪽이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져 마치 물에 빠졌다가 죽지 못해 헤엄쳐나온 것 같은데, 가지고 있던 가방이며 뭐며 모두 잊어버리고 났을 때의 그런 기분인데, 이쪽은 다 잃고 젖고 지쳤는데도 바닷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수평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의 배신감이나 허무함 같은 게 밀려왔다.
“아이고 내 팔자야.”
세웠던 몸을 털썩 구부리며 급기야 팔자타령까지 나왔다. 그 서슬에 어젯밤 마시다 남은 소주병이 넘어졌다. 얼른 잡아챘으나 늦었다. 성근은 병 옆에 누워 있는 명함판 사진 두 장을 주워 소줏방울을 닦아냈다. 기분이 다시 묘해졌다. 팔자를 욕하자니 스스로 면구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뒤죽박죽이다. 땅을 판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제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자 정마담은 비로소 사진 둘을 내놓았다.
“김사장님, 이 두 사람이 말씀드렸던 후보예요.”
“사진 갖고 있었으면 진즉에 좀 보여주지.”
“일의 진행이 어디 그런가요. 김사장님이 이해하셔요.”
“거, 사장 소리는 좀 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잖수.”
“호호, 입에 붙어서. 어쨌든, 이쪽은 내 친구고요.”
“나이는?”
“나랑 동갑. 아이는 한번도 안 낳았구요.”
“다 늙어갖구 애 안 낳은 것이 뭔 내세울 거라구.”
“그렇다는 얘기죠. 어째 맘에 안 드세요? 그럼 이쪽은 어때요?”
“이짝은 친구 아닌가?”
“아무리 같은 팔자로 엮인 것들이라지만 다 같을라구요? 여기는 나도 소개받은 사람이구요. 나이가 우리보다 두살 위라고 하던가, 세살 위라고 하던가?”
사진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구석은 없었다. 고만고만한, 화장(化粧)과 미장(美粧)으로 방어해놓았다 해도 늙은 것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차이라면 정마담 친구 쪽은 붙임성이나 애교가 있어 뵈는 대신 부엌일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고 뒤쪽 여자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을 관상이되 고리삭은 표시가 완연하다는 거였다.
“흠.”
“이왕 맘 잡수셨으니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사람을 들이는 일인데 생각을 좀 해봐야 쓰겠는데.”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다 놓치면요. 아무리 한 시절 지나버린 여편네들이라도 나처럼 이렇게 섬에 들어와 산다는 게 어디 맘먹기 쉬운 줄 아세요? 땅도 나갔고 하니 쇠뿔 단김에 빼버리시죠.”
“흐음.”
“그래, 어느 쪽에 눈이 더 가세요?”
“나야 뭐 여자 보는 눈이 있어야지. 정마담 보기에는 어떻소?”
“솔직히 친구가 오는 게 좋죠. 하지만 김사장님 선택이 우선이죠 뭐.”
“천이백이면 아무래도 값이 좀.”
“값이라뇨, 듣는 사람 섭섭하게.”
“………”
“신뢰비라고 했잖아요, 신뢰비. 들어오는 입장에서 보면 당장 믿고 기댈 게 없잖아요? 도대체 뭘 보고 이곳까지 들어와 살림하겠어요? 그런데 그것을 자꾸 깎으시려 들면 가운데 낀 저도 이제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쩝, 성근은 입맛만 다셨다. 밭도 팔렸고(땅과 사람을 모두 위임받은 정마담은 사람 거래만 이루어진다면 부동산 거간비는 받지 않겠노라고 했다) 곧바로 후보자 사진이 등장하고 하니 일은 착착 진행되는 중인데 최후의 기댈 언덕인 땅을 팔아버렸다는 것이 꺼림칙하고 사람 하나 들이는데 생돈 들어가는 것도 아깝고, 그러면서도 여자들 사진에는 자꾸 눈이 가는, 자꾸 바뀌고 뒤섞이는 그런 상태였다.
그가 새살림 차리려는 것은 갑자기 이혼을 요구한 아내에 대한, 너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싶은 반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여자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을 상상도 안해봤던 탓이 크다. 구차하게 혼자 밥 끓여먹고 지낸다는 게, 최근 몇달 해보니 아주 못할 짓인데다가 생리적인 욕구 또한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이 돈을 틀어쥐고 있으면 은례한테 애비노릇은 할 수 있을 거였다. 먹고사는 것은 품 팔아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다. 그러니 적금 착실히 들어놓고 나중에 은례가 시집가거나 장사를 한다거나 할 때 돈을 내놓으면 좋을 일이다. 그러고 싶었다. 애비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에미랑은 이래서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도 싶었다.
그러나 눈은 자꾸 여자들에게 갔다. 이 여자는 살갑기는 하겠는데 성질이 좀 있어 뵈고, 이 여자는 눈 아래가 튀어나온 게 둔하게 보이기는 하는데 육덕은 좋아 보이고. 다 늙어 성질부리면 무슨 수로 감당을 하지? 아니 부대자루마냥 그냥 앉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지.
성근은 그러다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작은방을 열어보고 싶지만 그럴 기분은 못됐다. 그러면서도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 것은 또 어쩔 수 없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대로 나섰다.
제집에 박혀 반쯤 눈 감고 졸고 있던 순돌이가 엉덩이를 흔들며 쫓아나왔다. 그러다가 목줄이 다하여 쾍, 한바퀴 돈 다음 멈춘다. 그는 개를 쓰다듬었다. 개밥그릇은 비눗물로 씻은 듯 아주 깨끗하게 반짝거리고 있다. 아랫배가 눈에 띄게 홀쭉해졌다. 안주인 떠나고 보니 개까지도 말씀이 아닌 것이다. 풀어놓고 키웠으면 이집 저집으로 동냥이라도 다녔을 것을. 무엇 하나 줄까 싶어도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어젯밤에 식은밥 한덩이 남은 것을 누룽지로 눌러 소주 안주로 먹어버린 탓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개밥이라도 챙겨주려면 둔해 보이는 뒤쪽 여자가 나을라나.
몇년 전 새로 놓은 도로가 산 너머로 이어져 있는데 그곳으로 트럭 하나 넘어가는 것말고는 마을은 조용하다. 이것도 도로 깔리고서 달라진 풍경이다. 슈퍼나 미장원, 다방, 마을회관 모두 문을 열어놓았으나 오가는 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저 멀리 우체국과 농협에만 사람들이 서넛 들락거리고 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카드회사 영업사원이 섬에 들어온 다음부터 이 모든 변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새로운 유행에는 확실히 아낙네들이 빨랐다. 그들은 카드를 한두 개씩 쥐고부터 밭일을 하지 않게 된 거였다. 뭐 하나 필요하다 싶으면 우, 항구로 몰려갔다가 예닐곱 개씩 사가지고 왔다. 아내도 그중 하나였다. 새로운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구입한 게 그즈음이었다. 옷가지도 여러 벌 못 보던 게 생겼다.
때맞춰 사내들의 벌이는 줄어들었다. 섬에 사는 사내들이 다 그랬다. 일찌감치 빚으로 양식장을 했던 이들 중 절반 정도는 그럭저럭 자리를 잡았고 절반 정도는 망해서 멀리 떠났다. 물론 그 정도의 사업을 시도해본 이들은 그래도 집안에 든든한 빽이 있거나 좀 배웠거나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성근이 이렇다 저렇다 할 성질의 것은 못되었다. 아이엠에프라는 것이 터졌을 때도 그게 뭐 나하고 상관이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배 쪽으로 몰렸다. 그가 오랫동안 탔던 멸치잡이 배가 팔린 것도 그 어름이었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오십대 중반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배에서 내린 다음 해본 일이라고는 건축현장의 잡부가 전부였다. 사모래도 치고 질통도 졌으나 두달 넘지 않아 그 일은 끝났다. 그리고 벌이가 없는 날이 여러 달 계속되었다.
아내가 그를 대신해 항구로 나간 게 일년 전이었다. 식당일이었는데 사실 끝차에 가까웠다. 동네 아낙들이 하나 둘 항구로 나가 돈벌이를 시작할 때도 아내는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대도시에서 회사 다니던 아들 은석이가 주식 잘못 사서 손해를 잔뜩 봤다고 우는 소리를 해오고, 돈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아지자 드디어 행장을 꾸렸던 것이다. 그는 아무 소리도 못했다. 아니, 잡을 마음도 생각도 없었다. 그건 이른바 새로운 흐름이었다.
그는 섬에 남았다. 견딜 만했다. 아내는 보름에 한번씩 먹을거리를 싸가지고 섬에 들어와 냉장고에 채웠다. 용돈도 주었다. 고되어서 그렇지 일은 할 만하다고 했다. 화장이 좀 두꺼워지고 과감해진 게 그동안 못 보던 버릇이었다.
아내는 못난 편이 아니었다. 섬에서 태어나 결혼해 살아서 그렇지, 항구나 육지에 태어나서 가꿨다면 한 인물 했을 거라는 말들이 간혹 주변에 있었다. 그렇게 꾸며놓으니 자태가 났다. 남들은 평생 섬에서 밭일 갯일로 보낸 세월을 벗겨내는 데도 몇년 걸렸지만 아내에게서는 단숨에 사라졌다. 영업집이라 어쩔 수 없이 이런 화장을 한다고 말했다. 찝찝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만두라고 말릴 수도 없었다. 말린다고 말려질 것도 아닌 게 아내는 어느새 도시생활에 재미를 붙인 듯싶었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때만 해도 마누라가 돈 벌러 항구로 나갔다가 집안이 결딴나고 말았다는 이웃의 이야기는(멀리 갈 것도 없었다. 이 경우는 황이 그의 선배였다. 황은 이혼하고 나서 정마담과 만나 단란주점을 차렸다) 남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내가 섬에 들어오는 간격은 점점 길어졌다. 한달에 한번에서 두달에 한번으로, 그러다가 마지막 몇달은 숫제 들어오지를 않았다.
찾아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찾아가면 아내는 싫은 얼굴을 했다. 싸웠다. 아니 싸운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 아내는 대꾸가 없었다. 한바탕 그의 성화가 끝나면 이제 끝났냐는 얼굴을 하고는, 말없이 나와서 얼른 들어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다방을 나갔다. 그는 갈수록 아내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를 식당에 소개해주었던, 예전에는 같은 동네 주민이었으나 이제는 팔자 고쳐 치킨집을 하는 아낙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사내가 생겼냐고 물었다. 사장님이 된 아낙은, 자기는 소개만 해주었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오십 다 되어서 뭣 때문에 연애를 걸겠냐고 되물었다. 그럼 도대체 왜 그러냐고 따지자 그걸 왜 나한테 따지냐고, 소개비 한푼이라도 받았으면 모를까 동네 사람 괜찮은 곳에 소개해준 죄밖에 없는 내게 왜 이러냐고 반문해왔다. 그는 할말이 없어 술만 마셨다. 뭐 씹은 표정으로 계산을 하자 안쓰럽다는 얼굴로 주인은 한마디 이렇게 덧붙였다.
“다 돈이 좋고 도시가 좋고 해서 그러는 거예요. 나부터도 솔직히 말하면 종일 뙤약볕 아래 힘들게 밭일 갯일 하는 것보다도 여기서 장사하는 게 훨씬 좋은데요 뭐. 아등바등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는 거예요. 은석이 아빠도 알다시피 카드 아니라 카드 할애비를 들고 있어도 아무 소용 없는 데가 섬이잖아요. 거기서 고생하느니 아싸리 말해 편하게 사는 게 좋죠 뭐. 하여튼 잘 달래봐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이혼을 하자는 통보가 왔다. 이혼을 안 해주어도 어차피 살지 않을 거라고, 이혼만 해주면 모든 처분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펄펄 뛰고 싶었지만 사내 자존심으로, 네가 그러고 얼마나 잘사는지 두고 보마 하는 심정으로, 그러자고 했다.
성근은 마을회관 앞을 지나 낚시점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마늘밭과 경계를 짓느라 쌓아올린 블록벽 끝에 우리단란주점이 있다. 두드리자 황이 나왔다.
“누구요.”
“날세.”
홀 안은 아직 치우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다. 서 있는 술병과 쓰러져 있는 술병이 비슷한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갈가리 찢어진 오징어는 맥주에 젖어 살아나고 있었고 그 주위에 땅콩껍질이 두엄더미마냥 수북했다. 씹다 만 사과와 파인애플 조각 위에 꽁초가 육십도 각도를 이루며 각단지게 심어져 있고 발에 밟히는 것도 여러 개였다.
“자네도 마셨나?”
“아니, 난 좀 일찍 잤네.”
“밤새 퍼마신 몰골인데 뭐. 눈까지 벌게갖고.”
“잠을 제대로 못 자 이렇지.”
“엔간히 마셨구만.”
황은 몸을 비틀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뽑았다.
“누군가.”
“저 위뜸 곽사장.”
“애인 찾아왔구만.”
별 걱정 없이 대를 이어 굴 양식장을 하고 있는 곽사장은 성근네보다 이년 선배로 얼마 전 들어온 은양한테 눈을 주고 있었다.
“아예 날밤을 새다 간 풍경인데?”
“양주 하나. 워낙 늦게 오기는 했지.”
그럼? 하는 눈빛을 성근이 보내자 황은 별 대답 없이 고개를 한쪽으로 비틀었다. 고개 비튼 곳은 서쪽 벽이었지만 그 뒤로 서울장이라는, 얼마 전에 생긴 여관이 있다.
성근은 가슴을 드러낸 여자들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화면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맥주 남은 병을 기울여 따랐다. 거품까지 알뜰하게 쳐서 간신히 잔을 채웠다.
“한잔 할려구?”
“술집에 와서 뭐 하겠어.”
“기다려. 내 몇병 가져오지.”
성근은 말리지 않았다. 맥주는 텁텁한 느낌을 잔뜩 남기고 목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기계도 안 껐네?”
“저 사람도 같이 마시다가 그냥 잠든 모양이야. 전기세가 얼만데.”
“관둬. 한번 보게. 새 그림이 들어왔구먼.”
끄려는 친구를 말리며 그는 화면이 눈에 선 것을 짚었다.
“응. 신제품이라고 해서 사놨다가 어제 틀어봤네.”
“예전 것보다 더 찐하구만.”
“갈수록 그렇지. 저러다가 진짜 하는 것이 나올지도 모르겠어.”
성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래에서 어떤 기운이 은근히 솟아올랐다. 그는 번호를 눌렀다.
“낮부터 왜 이래?”
그는 못 들은 척, 맥주 가득한 재떨이에 꽁초를 던져 끄고 나서 근자에 들어 자주 부르는 노래를 시작했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길.
그는 군대에서의 행군 외에는 한번도 정처없이 걸은 적이 없다. 그동안 길을 걸을 때는 배에 오르거나 내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또는 어디 일 보러 가거나 지금은 없어진, 마을의 대폿집을 오가는 것뿐이었다. 그런 그도 정처없이 걸었던 적이 있다. 이혼하던 날이었다.
법정에서 만난 아내는 올린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낯설어서 한동안 힐끗거리기만 하다가 답답한 것을 못 참고 그는 물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볼 때 이해되지 않은 게 있다, 내가 당신을 때리기라도 했는가, 물론 남의 집처럼 숱하게 투닥거리기도 했고 언젠가는 화가 머리꼭지까지 돌아 믹서기를 차고 주먹으로 유리창을 깬 적은 있지만 단 한번도 당신한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내가 바람을 피웠던가? 일부러 일 안 나갔던 때가 있던가? 그는 수도꼭지가 열린 듯 주절주절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아내는 작정을 한 듯 대답이 없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다가 호명을 듣고 아내 뒤를 따라 판사 앞에 섰다. 이혼에 어떤 불만이 없는가, 판사가 물어볼 때 그는 자존심이 발동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법정을 나와 말 그대로 정처없이 걸었다. 시장도 가고 어느 학교인지도 모르는 곳에도 가고 그리고 가게들이 즐비한 길도 걸었다. 정처없이 걷는 다는 게 이렇게도 괴로운 것인지 그때 알았다. 종내는 걷기도 힘들어 예전에 함께 배를 탔던 친구를 찾았다. 이틀 내리 술로 지내다가 섬에 들어왔다. 들어와서 그사이 아내가 다녀갔다는 것, 면사무소에 신고하고 필요한 몇가지를 들고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맥주 세 병은 금방 없어졌다. 마실수록 목이 탔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혼자서 소주를 마시고는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도 제대로 먹지 않았던 것이다. 황은 다시 맥주를 가지고 왔다.
술이 들어가니 기분이 한결 낫다. 낫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신 무거운 마음이 어디 볼일이라도 급히 있는 것처럼 빠져나가면서 배포가 생겼다.
“그래 정하셨수?”
자꾸 하품하는 친구를 상대로 예닐곱 병의 술을 비웠을 때 정마담이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생각을 해봤는데, 그게 말이요, 이짝이 땡기면 저짝이 아쉽고, 그렇다고 저짝에 눈이 가면 괜시리 이짝이 섭섭하고.”
“호호, 욕심도 많으셔.”
역시 프로다. 방금 깬, 붉고 무거운 얼굴인데도 한 두시간은 옆에 앉아 있었다는 표정으로 쉽게도 바뀌었다.
“말씀 좀 해보셔요.”
이럴 때 깍듯한 존대는 마담 버릇이었고 슬슬 하대로 나가는 것은 손님의 자세였다.
“정마담이 찍어달라니까.”
“말씀드렸잖아요. 기왕이면 내 친구가 좋다구.”
“저기, 이백만원만 깎으면 안될까? 간단하게 천만원으로.”
“또, 또.”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그는 껄껄 호탕하게 웃었는데 부끄러운 속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알았어, 알았어.”
“자꾸 그러면 섭섭하다니까요.”
“근데, 이 친구라는 사람.”
“예, 말씀해보셔요.”
다시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고친 정마담은 비어 있는 잔에 술을 따르며 사근사근 답했다.
“살림은 잘할까, 솔직히 그게 걸리는데.”
“술친구 반평생이지만 그런 속이야 어찌 다 안답니까. 하지만 손이 매운 맛도 있고 하니 별 걱정 안하셔도 될 거예요.”
“살림은 이짝이 날 것 같어서……”
“여자야 품는 맛하고 살림하는 맛이라고 하는데, 무슨 맛을 먼저 생각하느냐 그것이 문제겠죠 뭐.”
“흐음.”
그는 거푸 잔을 비웠다.
“정하셔요, 그만.”
“이 친구라는 사람. 남자들이 많았겠지?”
“왜 이러실까. 여자 과거 들춰서 볶아먹을 겁니까, 지져먹을 겁니까? 아니면 말려 찢어 드실라우?”
“그렇단 얘기지 뭐.”
“알아서 하십시오. 하여간 그사이에 딴데서 연락 와서 그쪽으로 가버려도 난 책임 안 집니다.”
성근의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는데도 돈 때문에 자꾸 걸렸다. 하지만 확답을 내리려고 찾아온 길이었다.
“설사 깎아준다고 해요. 그 유세를 어떻게 받으실라고 그래요?”
“좋소. 이 사람으로 합시다.”
“잘하셨어요. 내가 솔직히 다른 것은 몰라도 사내 생각하고 위하는 것 하나는 책임질게요.”
“흠, 흠.”
“길게 뺄 것 없이, 오늘 당장 연락합니다요.”
“저기, 정마담. 오늘은 우리 딸래미가 들어와 있어서.”
“그래요? 그럼 가는 것 봐서 날 잡읍시다. 자, 어제는 땅이 해결됐고 오늘은 새 마나님도 해결봤고. 시원하게 한잔.”
“그럽시다. 어이, 맥주 좀 더 갖고 와. 맨날 소주만 마셨더니 속이 다 썩었어.”
비록 한푼도 못 깎았지만 이제 끝났다 싶다. 그러면서 쓴맛이 인다. 아내는 이천만원 받고 다른 사내에게 갔고 그는 땅 팔아 천이백짜리 퇴물을 얻은 것이다.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무리 삭았어도) 새 여자에 대한 기대에 몸의 어느 부분이 부풀기도 한다.
문이 열린 것은 새로 치운 탁자 위에 맥주병이 제법 쌓였을 때였다. 손님이 들어올 시간이 아니라서 문 쪽으로 여섯 개의 눈동자가 모였는데 그중 두 개에서 놀라는 빛이 나왔다. 들어온 이는 은례였다.
“아빠.”
“응, 응? 그래, 왔냐?”
찾아온 딸애가 순간 반갑기는 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마땅한 대답이 궁했다. 은례는 그러거나 말거나 단숨에 걸어들어왔다.
“땅 팔았다면서요?”
언제부턴가 돌기 시작하는 천장의 우주볼 조명이 은례 얼굴도 훑고 지나갔다. 황부부는 슬쩍 자리를 떴다.
“건 어디에서 들었냐?”
“그냥 들었어요. 제값 다 받았어요?”
“니가 신경 쓸 것 아니다.”
“왜 팔았어요?”
아예 따지러 온 얼굴이었다.
“왜 팔긴. 돈 필요해서 그렇지.”
“돈이 어디에 필요한데요?”
“………”
“글쎄, 돈이 어디에 필요해서 갑자기 땅을 팔았냐구요.”
“얘가 왜 이래?”
이 아버지 새장가 들 돈이다, 소리를 어떻게 하겠는가.
“좋아요. 하지만 어저께 내 시집 밑천 말씀하셨죠?”
“………”
“생각하고 있었다면 나 좀 줘요.”
“돈 없다.”
“있잖아요.”
“없다니까. 느이 어매한테 가서 달라고 해.”
성근은 피하고 싶어 자꾸 몸을 외로 틀었다.
“아빠도 알다시피 엄마는 몸만 빠져나갔잖아요.”
“이천만원 받았다는 것 다 알고 있다. 그러니 니 어매한테 가서 졸라라.”
“엄마는 카드빚 갚고 내 방 잡아줬어. 그러니 나 취직할 때까지 쓸 돈은 아빠가 줘.”
“무슨 방을 잡아?”
“옛날에 살던 방은 다 끝났어요. 방 없이 길거리에서 살아?”
“아, 취직한다며?”
성근은 남은 맥주를 벌컥대며 마셨다.
“취직할 거야. 그러니 자리잡을 때까지 오백만원만 쓸게요.”
“그건 안돼.”
“아빠, 새장가 가려고 그러지?”
“아녀어.”
“뻔하잖아. 동네 아저씨들 다 이혼당하고 새장가 들었잖아. 항구에서 늙은 여자 사와서. 아버지도 그럴려고 그러는 거 아냐?”
“하여튼 아니니까 얼른 집에 가 있어라.”
“나도 어떻게든 자리잡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땅 팔아서 자식은 못 대주고 아빠 새장가 가려고 해?”
“이 자식이 말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이건 다 느이 엄마가……”
그는 말을 멈추었다. 더 하려고 했으나 은례가 말꼬리를 잘랐던 것이다.
“엄마 탓 하지 마. 섬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아.”
“이런……”
“하여튼 그 통장에서 오백만원만 빼갈게.”
“안된다니까.”
“몰라, 난 무조건 뺄 거야.”
은례가 휙 돌아섰을 때 성근은 반사적으로 딸애의 손목을 잡았다.
“이 싸가지 없는 자식이.”
“이것 놔.”
“카드 내놔, 이 자식아.”
그는 은례 몸을 잡고 흔들었다. 은례가 버티자 그는 순간 철썩, 뺨을 때렸다.
“싸가지 없는 자식이, 애비 속을 다 뒤집어놓고도 부족해서…… 얼른 못 내놔?”
한대 맞은 은례는 아픔 때문인지 충격 때문인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였다. 성근은 강제로 지갑을 꺼냈다. 카드가 워낙 많아 한참을 뒤지고 나서야 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와 같은 색깔의 패밀리카드를 찾아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집에 들어가 있어.”
그러고는 노려보는 눈을 못 본 척 혼자 씩씩대며 자리로 돌아왔다. 은례는 한참이나 독기 세운 눈을 이쪽으로 보내다가 쾅, 문을 닫고 나갔다.
성근은 눈앞이 캄캄했다. 황과 정마담이 와서 술을 부어주며 자식이라는 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제일 무서운 존재가 바로 새끼다, 잊어버려라, 해가며 위로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한숨만 나왔다. 한숨이 나와 텅 비어버린 가슴속에 술만 들이부었다. 오늘 같은 날만 있으면 며칠 못 가 죽어버릴 것 같다. 그는 그러면서 슬슬 또 미안해지고 있었다.
“휘유.”
“맘 쓰지 마, 애들도 부모 속을 좀 알아야 돼.”
“모처럼 들어온 앤데……”
“오늘밤에 들어가면 앉혀두고 이야기를 찬찬히 해봐.”
“그러셔야죠. 애들하고는 대화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는 가뜩이나 마음이 가서 잘해주고 싶은데 딸애와 자꾸 꼬이는 이 상황이 야속했다. 참으려고 해도, 급기야 쿨쩍거리기에 이르렀다.
“……터놓고 이야기하면 이해할라나?”
“어허, 참. 취했구만.”
“망할 년이 애비 속도 몰라주고.”
“거 참, 그 녀석이 이야기할 것 있으면 집에서 하지, 하필 아버지 술 마시고 있을 때, 허 참.”
황이 그렇게 말했을 때 성근 마음속에 순간 걸리는 게 있었다. 맞아, 왜 술집으로 찾아왔지? 싶은 거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나 깨닫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만, 지금 몇시지?”
정마담이 시간을 읽어주었다. 아차, 싶어 성근은 뒤도 안 돌아보고 일어섰다.
“어이, 왜 그래?”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술좌석을 박차고 나와 그는 뛰었다. 역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순돌이만 반가워 펄쩍 뛸 뿐이었다. 다시 뛰었다. 묵정밭을 지나고 선박수리소를 지나자 선착장이 나타났다. 아니나다를까, 여객선은 슬슬 뒤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어느새 막배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은례는 이 배를 타고 항구로 다시 나가려고 찾아왔던 거였다.
그러나 바다와 만나고 있는 선착장 끝에서 그는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배가 긴 원을 그리자 이층 갑판에 딸애가 보였다.
“은례야.”
그러나 은례는, 충분히 들릴 만한 거리인데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은례야, 은례야. 뭣에 씐 사람처럼 애타게 불렀으나 제 어미처럼 대답 한마디 없었다. 바라보지도 않았다. 머잖아 배는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항구를 향해 멀어지고 하얗게 일어났던 바다의 포말도 사라졌다.
그는 오도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후 늦은 햇살 가득한 바다 위로는 갈매기도 날지 않았다. 털썩,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딸려나온 것은 담배가 아니라 사각진 패밀리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