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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 청년실업

 

젊은 피는 일하고 싶다

 

 

이호정 李鎬汀

부산대 영어교육과 4학년(2003년 2월 졸업 예정) nina610@dreamwiz.com

 

 

이 시대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로 나가는 첫 발걸음부터 힘겨움을 겪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2003년 예상 실업률은 3% 정도로 완전고용에 가깝다며 낙관하고 있지만 청년 구직자들은 이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체감 실업률은 그 어느 때보다 최악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 채용정보업체가 꼽은 2002년 취업시장 10대 뉴스의 1위를 장식한 사안은 사상최고 취업경쟁률이었다. 지난 2002년 말 취업시장 경쟁률은 74대 1을 기록했으며 이는 오롯이 실업자들이 겪었던 마음고생을 대변하고 있다. 전체 실업자의 60%가 청년층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제 막 사회로 발디디려 하는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벽에 부딪히고 좌절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청년층의 유휴 인력률을 보면 4명 중 1명이 노는 꼴이라고 한다. 필자도 곧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취업문제의 무거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취업 또는 고시 준비생들로 가득 찬 학교도서관을 감싸고 있던 비장한 공기에 심정적으로 공감하게 되면서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방국립대 4학년, 평범한 대학생인 필자의 주위를 살펴보면, 올해 2월 함께 졸업하는 주위의 많은 선후배, 동기들 중 정식으로 취업이 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공대, 상대 등 특정 학과 학생들 중 출중한 학점과 토익 점수까지 갖춘 일부 학생들이 취직됐다는 소식이 가끔 들려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아니 그전부터 고민에 빠져든다. 그동안 꿈꿔왔던 ‘사회에서의 내 자리’는 다가가기 턱없이 힘들고, 아주 눈높이를 낮추어 취직하거나 1~2년 더 취업재수를 해서 도전해보는 수밖에 없다. 여대생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서 임용고사라도 쳐볼 수 있는 사범대, 교대 학생이 아니라면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 준비에 들어선다. 첨단사회를 달리는 2003년에 들어섰지만 사회적 차별 없이 여성들에게 허용될 만한 직업은 여전히 교사, 공무원 등 각종 고시를 통한 길뿐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자. 졸업학점 4.3, 토익점수 950이 넘는 필자의 한 친구는 일찌감치 취업준비를 위해 정보를 모으고 원하는 자리가 생길 때마다 원서를 넣었지만 결과는 줄줄이 낙방이었다. 대기업들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성적이어도 지방대 여학생을 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어서일까, 1차 서류심사조차 통과되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그 친구는 공기업에 시험을 쳐서 합격했고 지금은 주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남았다. 또다른 한 친구는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리직으로 취직하여 몇년간 생활했지만 취업한 회사마다 대우가 너무 낮아 대학에 진학해보기로 결심했다. 전문대에 입학하고 다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사회에서 인정해줄 만한 학력을 따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취업을 위해 문을 두드려온 회사마다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몇십 대 일씩 몰리는 취업난 속에서 자신을 위한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고 예전에 다니던 회사들마저 취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또다른 사례 하나. 기자가 되고 싶어하던 한 선배는 대학시절부터 학보사 활동을 통해 기사작성과 사진촬영 등에서 탄탄한 실력을 쌓았지만 졸업 후 각 신문, 방송사마다 서류심사에서 떨어져 제대로 시험을 쳐볼 기회도 돌아오지 않았다. 군대를 면제받아 남들보다 벌게 된 셈이었던 3년의 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제대로 직업을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누군가의 아들딸, 이웃들인 이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처럼 취업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고 있을 것이다. 노숙자, 도시빈민, 이주노동자 문제, 야만적인 노조탄압에 항의하는 분신자살까지 벌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청년실업 문제 정도는 조금 배부른 소리로 느껴질는지도 모르겠다. 중소기업에서는 인력이 모자라서 문제라고 하는 판인데, 젊은이들이 눈높이만 낮추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실업은 많은 사람의 삶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청년층이 최종학교 졸업 후 취업을 위해 보내는 기간이 평균적으로 최소 1년 이상이라고 한다. 졸업 전에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을 하는 비율도 꽤 높은 것을 고려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다니느라 인생의 황금기 1~2년을 허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우선 일자리를 구하고 보자는 식으로 취업을 한 뒤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 급한 김에 구한 직장이 마음에 맞지 않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마찰실업 청년층의 비율도 높다고 분석되고 있다. 아예 구직을 포기해버리는 실망실업자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전체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해 비정규직 비율이 56%를 넘어서버린 국내 노동인력 문제와 함께 청년층에도 비정규직 종사자 등 반실업자와 마찬가지인 이들이 많다.

경제계에서도 이는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통계상으로는 취업자로 계산되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에서의 안정적인 자기 터전을 갖지 못한 수많은 청년 인력들로 인해 노동의 효율성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제 막 사회로 나와 힘껏 자기 기량을 펼치며 열심히 일하려 하는 젊은이들, 그 생생한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크나큰 손실이다. 또한 정부의 노동정책이 수치상 완전고용을 지향하는 양적인 취업대책에만 계속 머무른다면 실업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자아실현은커녕 늘 불안정한 상태로 자기 직업과 노동여건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가기 위해서는 전체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을 과감히 단축한다면 수십만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볼 수 있고 사회통합까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노동계에서 널리 주장되어왔다. 그렇게 하면 고용된 사람들은 힘겨운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또다른 사람들은 취직을 못해 힘들어하는 상황을 개선하여 일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된다. 노동시간 단축이 단행된다면 고용시장에 진입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청년 신규실업자들의 일자리도 많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양적 실업해결만이 아니라 질적 노동대책도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취업하기를 꺼리는 현상은 그만큼 노동여건이 열악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기업들 대부분은 점차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려고 하는 추세다. 정규채용 비율을 늘리고 노동현장의 근로여건을 향상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질적인 취업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청년들이 어떤 직장에 들어가도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청년층의 여성 유휴인력은 남성들보다 2배가 많다. 전문대졸, 대졸 여성은 20%, 중졸 이하는 40% 정도가 유휴인력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수치상 취업인력에 속해 있어도 여성취업자들은 임시 일용직이 대부분이며 상용직은 39% 정도에 불과하다. 산업별 분포도 35% 가량이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에 종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학력 여성들도 취업이 어렵거나 기대수준에 비해 대우가 낮을 경우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과 육아 등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을 고용하게 되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부분이 없으면 기업은 계속해서 여성고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보육써비스 지원과 여성인력 일자리 창출 등을 정부에서 보장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실속없는 학력인플레 현상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학간판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할 것처럼 온나라가 입시철마다 떠들썩해지지만 정작 대학은 학문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기관도 아니고, 사회에서 필요한 실력을 쌓는 곳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다. 대학을 다녔다는 소위 고학력 인력들도 졸업 뒤에 다시 취업을 위한 준비를 따로 해야만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런 미숙한 신규 구직자들을 고용하는 것을 기피하게 마련이다. 이름있는 대학의 졸업장을 따기 위해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재수생 또는 편입생들이 매년 수없이 양산되고 있지만, 이것은 사회에 필요한 실질적 기술을 익히기 위함이라기보다 경쟁적으로 학력만을 높이는 데 많은 시간과 자본이 낭비되는 것이다.

현재 대학교육과 사회적 수요는 제대로 일치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IT 산업 등 과학기술 쪽 인력은 계속 수요가 늘어가는데도 이공계열 기피현상은 커져가고 있다. 한편 실업고 졸업생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10여년 전 실업계 고교 졸업생의 경우 취업자가 76.6%로 대학 진학자 8.3%보다 훨씬 많았지만 지난해 대학 진학자가 49.8%, 취업자 45.1%로 완전히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실용주의 때문에 순수학문을 배척해서는 안되겠으나 실업고교와 대학에서는 허례허식을 떠나 좀더 사회에 발맞춘 신기술과 실력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실속없는 졸업장보다 사회에 필요한 분야를 미리 준비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인터넷, 정보통신 등 사회적 수요가 많이 창출되고 있는 지식 직종의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활성화하여 인력을 끌어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노당선자는 공약에서 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청년실업 해소 등을 위해 매년 50만개씩 5년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성 취업을 높이기 위한 보육정책 등도 공약한 것으로 기억한다. 앞으로 이것들을 얼마나 잘 지켜갈지 기대하면서, 즐겁게 노동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겠다. 우리 사회 젊은이들은 졸업식이 더이상 ‘실업자 집단 배출식’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땅의 청년들은 지금 이렇게 외치고 있다. “일하고 싶다. 인생의 봄날을 맞은 내 몸과 정신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라고. 이 한창때의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계속 좌절하도록 둔다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