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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시영 李時英
1949년 전남 구례 출생.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만월』 『바람 속으로』 『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 하늘』 등이 있음. roadwalker1@hanmail.net
뜨거운 새벽
백병원에 한남철 선생이 입원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바게뜨가 먹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을지로 입구에서 육가까지 심야의 빵가게를 찾아 헤매인 적이 있다. 빈손으로 돌아와보니 이번엔 깨끗한 대학노트 한권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해다 드렸더니 겉장에 ‘내 고향 강화바다’라고 적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형, 이제야말로 진짜 소설을 쓰고 싶어. 아니, 진짜 소설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아……” 뭉클한 그 무엇이 그의 볼을 타고 흘렀다. 뜨거운 새벽이었다.
송기원의 윗도리
음울한 봄날 아침이었다. 인사동에서 마신 밤샘 술을 이기지 못하여 허청이며 낙원동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근처 낙원탕에서 갓 나온 듯한 여인이 목욕 대야를 낀 채 흘낏 나를 돌아본 뒤 청바지에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나비처럼 경쾌하게 앞서가고 있었다. 처음 본 여인이었다. 무심코 따라가보았더니 낙원약국을 돌아 탑골 안으로 쏙 사라졌다. 한참을 망설이다 컴컴한 탑골 문을 열었더니 거기 어둑한 홀을 향해 열어젖힌 안방 벽에 한 낯익은 윗도리가 걸려 활짝 웃고 있었다. 송기원의 것이었다.
여름
은어가 익는 철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수박이 익는 철이었다. 통통하게 알을 밴 섬진강 은어들이 더운 몸을 더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찬물을 찾아 상류로 상류로 은빛 등을 파닥이며 거슬러오를 때였다. 그러면 거기 간전면 동방천 아이들이나 마산면 냉천리 아이들은 메기입을 한 채 바께쓰를 들고 여울에 걸터앉아 한나절이면 수백 마리의 알 밴 은어들을 생으로 훑어가곤 하였으니, 지금 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지만, 그런 밤이면 더운 우리 온몸에서도 마구 수박내가 나고 우리도 하늘의 어딘가를 향해 은하수처럼 끝없이 하얗게 거슬러오르는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