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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표명희 表明姬

1965년 대구 출생. 2001년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pyo7788@hanmail.net

 

 

 

3번 출구

 

 

“얘, 또 늦을라. 빨리 가거라.”

엄마는 나를 떠밀어내고는 재빨리 현관문을 닫아버린다. 숨겨놓은 거울을 꺼내놓고 엄마는 분명히 느긋하게 화장을 할 것이다. 며칠 전 내가 의료보험증을 깜빡해서 다시 집에 들렀을 때도 엄마는 무엇을 숨기느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코 주변에 밥풀처럼 묻은 크림자국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빈약한 식탁 앞에서, 아빠의 명퇴로 절반이나 줄어든 수입을 늘상 불평하면서도 엄마 얼굴이 섭취하는 피부 영양식은 그대로다. “내가 이 나이에 뭐, 사치하고 싶어 그러는 줄 알아요? 혼기 찬 딸년을 두고 있는데 멍청하게 우리집 사정을 얼굴에 써붙이고 다녀야겠냐구요.” 갑자기 기운 집안형편 탓에 괜찮은 사윗감을 놓친 여고동창의 예를 들어가며 엄마는 화장에 대해 나를 핑계삼았다. “낼 모레면 너도 서른이야, 서른.” 그러면서 엄마는 번번이 화살을 내게 돌리며 닦달한다.

골목을 나서자 늦가을 햇살이 언덕길 위로 쏟아진다. 모퉁이 전봇대에 기대어 있는 쓰레기더미 주위를 개 한마리가 어슬렁거린다. 며칠 전부터 동네 골목을 배회하던 놈이다. 내가 가까이 가자 놈은 나를 한번 쓰윽 훑고는 다시 쓰레기봉투에 코를 들이박으며 먹을 걸 뒤지기 시작한다. 나라는 존재를 싹 무시하는 품새가 꼭 의사 장을 연상시킨다. 장은 나랑 한참 승강이를 하다 말이 막힌다 싶으면 간호사를 불러서는 딴 얘기를 꺼내거나 다른 차트를 뒤적거렸다. 수술 이후 내가 양쪽 윤곽선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다른 부위와 달리 얼굴 뼈는 다시 손댈 경우 치명적이에요.” 그는 무심하게 재수술이 불가능한 이유만 되풀이했다. 십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접고 퇴직금을 몽땅 챙겨서 병원으로 달려온 사람의 심정이 얼마나 절박한지 그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성형수술에다 퇴직금을 고스란히 쏟아붓고 온 그날, 딸을 보고 엄마는 아연실색했다. “아아니, 너 정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애니? 지금 우리가 어떤 형편인지 아냐구! 네 아버지는 명퇴자야, 명예퇴직자. 배고픈 거 잘 참으라고 달아주는 그 명예 말야.” 엄마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불만을 나한테 왕창 뒤집어씌울 기세였다. 스물다섯번째 내 생일을 앞두고 나를 들볶던 일 따윈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그날 얇게 썬 오이를 얼굴에 잔뜩 붙이고 있던 엄마가 건넨 말은 뜻밖이었다. “이번 생일선물로……” 반투명의 오이는 얌전히 붙어 있었다. “쌍꺼풀 수술 어떠니?” 너무 크게 말한 탓인지 인중에 붙어 있던 반쪽짜리 오이가 떨어졌다. 그 제안은 유전자로 물려주지 못한 걸 의술로라도 보상하겠다는, 딸의 혼기까지 계산에 넣은 투자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춘기 때부터 외모는 나의 유일한 콤플렉스이긴 했지만 엄마의 그런 제안과 맞닥뜨리면 언제나 나는 완강해졌다. 엄마는 아직도 자신이 막내이모 정도의 외모만 타고났어도 명퇴당하는 남편 때문에 노후 걱정하는 삶에 처해지진 않았을 거라는, 허황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엄마의 제의에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나 ‘신데렐라’처럼 타고난 외모로 운명이 한순간에 바뀌어버리는, 소위 ‘한탕주의’ 환상에 젖게 만드는 동화를 무척이나 혐오했다. “네가 의대만 들어갔어도 내가 이러겠니?” 엄마의 흥분한 목소리에 얌전히 붙어 있던 오이 비늘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엄마에게는 좌절된 꿈의 앙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였다. 그랬던 엄마가 성형수술로 사라진 퇴직금 앞에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목에 파란 핏줄을 세우는 것이었다. “난데없이 직장을 때려치우더니, 그것도 부족해 그래, 피 같은 퇴직금을 그 잘난 의사들 아가리에다 고스란히 처넣고 와?” 내가 의대 진학을 포기했을 때처럼 엄마는 좀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 같은 의사에 대한 골 깊은 적대감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성형이란 미와 과학이 어우러진 절묘한 예술이지요.” 포토샵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의사 장의 자부심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물감이나 붓 한자루 없이 클릭 몇번으로 모나리자의 미소를 자유자재로 변화시켜 제2, 제3의 모나리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킨토시 앞에서 탄성을 연발했던 나처럼, 장 역시 사람들의 눈썹을 짙고 선명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자신의 창조력에 번번이 감탄했을 것이다. 상담을 마친 장은 내게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파인더로 옮겨가는 그의 눈에서 나는 얼핏 박실장을 떠올렸다. 그윽한 목소리에 침착한 말투, 뼛속 깊이 밴 예의와 안경 너머로 비치는 날카로운 눈빛이 박실장을 꼭 빼닮았다. 그는 우리 부서의 우두머리이자 사내(社內) 디자이너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광고 디자인이란 생선회 같은 거야.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구.” 내가 실직자를 소재로 한 광고시안을 제출했을 때였다. 명퇴 후 곧잘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계획을 들먹이며 독재시절의 향수에 젖어 나날이 퇴행하고 있는 아빠에게서 얻은 모티프였다. ‘고달픈 오늘로 혹 당신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는 내 카피의 진지함과 시의성은 인정하면서도 공익광고 특유의 경직된 어조를 문제삼았다. 그는 내게 좀더 유연하고 세련된 감각의 카피로 바꿔볼 것을 권한 다음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말했다. “진정한 디자이너란 물고기 중에서도 연어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지. 물의 흐름을 거슬러오를 줄 알아야 한다구.” 스쿠버 다이빙이 취미인 그는 무엇이든 물과 물고기에 비유하는 버릇이 있었다.

수업이 파하지 않은 시간이라 학교 정문 앞으로 길게 펼쳐진 골목길은 정물처럼 고요하다. 길 따라 죽 늘어선 가게의 주인들도 학생들이 교실에 붙박여 있는 시간에는 도무지 꼼짝을 않는다. 백여 미터를 걸어가도록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다. 무심코 교회 앞을 지나치다 사람 모습이 언뜻 잡혀 자세히 보니, 트럭의 싸이드미러에 비친 내 모습이다. 짙은 은색의 거울이 선명하게 내 얼굴을 되비추고 있다. “또 거울타령이냐? 젊은게, 하루종일 거울만 들여다보고 뭘 하겠다는 거야!” 엄마는 집안의 거울을 모두 치워버렸다. 아빠는 사뭇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관상이라는 건 말이다. 옛날 노예시장의 거간꾼들한테서 시작된 게야.” 지난 세기의 어느 한 시절에 온통 마음이 묶여 있는 아빠는, 세상이 이미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 차의 싸이드미러를 바깥쪽으로 움직여 각도를 조절한다. 역시 집안에서 보던 거울과는 확연히 다르다. 귀 뒤로 넘긴 머리를 다시 앞으로 내려본다. 왼쪽 얼굴선이 자연스레 가려진다. 수술 후 내 가르마는 오른쪽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29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던 머리카락이 하루아침에 반대방향으로 바뀌자 수만개의 모근이 반항이라도 하듯 머리 밑이 쑤시며 아팠다. 가느다란 머리카락과 모근, 미미해 보이던 그것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내게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다. 수술 후 안면 윤곽선은 분명 부드럽게 둥글어졌다. “아주 성공적인 수술입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달걀 모양의 곡선’ 운운하던 의사 장의 말투는 꼭 파마를 하고 났을 때의 동네 미용사 같았다. “자격증 따기가 힘들어 그렇지 의사나 미용사나 장사치인 건 매한가지 아니냐.” 엄마는 의사와 미용사의 차이와 공통점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물론 나도 그 일이 파마 정도였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을 것이다.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데요……”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던 내가 미심쩍게 말했다. 전신마취 대신 굳이 부분마취를 하겠다고 우겼던 만만치 않은 환자여서 의사 장도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다. “한달쯤 지나야 제대로 된 얼굴을 볼 수 있어요. 부기가 완전히 가라앉은 다음에요.”

양쪽 귀에서 뻗은 턱선을 따라가며 왼쪽과 오른쪽을 비교해본다. 역시 왼쪽 선이 문제다. 자동차 거울이라 약간 과장돼 보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왼쪽이 확실히 더 튀어나와 보인다. 한번만 더 손본다면 거의 완벽하게 균형이 맞을 것이다. 완벽한 대칭, 그것은 인체 비례의 기본 아닌가.

치르르, 소리와 함께 갑자기 거울이 심하게 떨린다.

“뭐요?”

불쑥 거친 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작업모를 삐딱하게 쓴 운전기사가 차창으로 나를 빼꼼히 내다보고 있다. 빈 차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가씨, 이 거울 세냈어요?”

트럭기사는 별 이상한 여자 다 보겠다는 듯 느물거리는 웃음을 띠고는 내가 돌려놓은 싸이드미러를 큼지막하고 거친 손으로 다시 조절한다. 그가 계속 차창으로 내 모습을 구경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꼭 오이꼭지를 씹은 기분이다.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작업모를 뒤로 젖혀쓴 탓에 광대뼈가 더 심하게 튀어나와 보인다. 턱선도 좌우 균형이 영 맞지 않는다.

“광대뼈야 동양인 얼굴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지. 오히려 얼굴에 입체감을 준다구.” 유학파답게 박실장은 얼굴의 인종별 특성에 관심이 많았다. “와아, 이건 정말 예술이다!” 스물여섯번째 내 생일날, 부서 사람들은 모니터 앞에 모여서 탄성을 연발했다. 생일선물로 박실장이 광대뼈를 과장한 내 얼굴 캐릭터를 만들어 매킨토시 화면에 띄워놓은 것이었다. 그는 내 얼굴의 약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단점을 극복하는 그럴듯한 방법 중 하나는 말야, 그 단점을 더 강하게 부각하는 거야. 정면 승부를 하는 거지.” 그의 미학적 방법론이 제법 설득력있게 들릴 정도로 나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었다. 엄마가 의술로 보상해주려 했을 만큼 취약한 외적 유전자를 타고난 나는 그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에 의해 단번에 콤플렉스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이 샘솟았다. 오래 전의 악몽은 그저 추억쯤으로 남게 되었다.

“엄마, 나 시험 다시 안 볼 거야.” 재수생활 3개월 만의 일이었다. 학원비를 받아 컴퓨터디자인 학원에 등록하고 온 날, 내가 한 선언은 엄마의 심장에다 북극의 얼음물을 한바가지 끼얹는 격이었다. 나는 엄마의 치밀한 계산에 따라 제법 경쟁력 있는 전문대에 합격한 다음 휴학을 하고 의대 진학을 목표로 재수중이었다. 한동안 얼떨떨해하던 엄마는 내가 가방에서 디자인 관련 컬러 책자들을 하나씩 꺼내놓자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엄마는 나의 미래가 담긴 그 책들을 상대로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책장으로 거실바닥은 금세 대형 꼴라주가 되었다. 엄마는 한달 내내 분열증 환자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당근과 채찍이 어지러울 정도로 번갈아가며 내 앞에 펼쳐졌다. “신념이라는 건 핍박과 함께 자라나는 법이지.” 대학을 중도하차한 운동권 출신 학원강사의 말은 꼭 들어맞았다. 엄마의 위협과 내 신념의 강도는 정확히 비례해갔다. 원치 않는 학과에 진학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똑같은 내용을 또다시 머릿속에 집어넣으면서 젊음을 낭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더욱이 나는 의대 진학을 확신할 정도의 실력도 아니었다. 그런 나의 통찰이 꿋꿋한 행동으로 나아가기까지는 학원강사의 선동가다운 조언이 꽤 큰 힘이 되었다.

‘전문대 출신 최연소 디자인 팀장.’ 사보에서는 나의 승진을 대문짝만하게 다루었다. 입사 6년차일 때였다. 나는 명문 미대 출신의 동료와 나란히 팀장의 위치에 올랐다. 사보에서는 능력 위주의 인사관리라는 회사의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경영방침을 신입사원 공채 때처럼 요란하게 선전해댔다. 나를 추천한 박실장을 인사과에서 여러번 불러 임시회의를 한 일 따위가 언제 있었냐는 식이었다. 철저하게 객관적 평가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결격사유에 가까운 나의 학력은 부서 내에서 적지 않은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승진대상에서 제외된 명문대 출신의 동료 둘은 한달 간격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함께 팀장에 오른 직원마저 사직서를 들이밀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만둔 친구들 생각하면 마음이 편칠 않아. 일도 손에 잘 안잡히고 말야.” 나와 똑같은 직위라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에 결정적으로 흠집을 낸 것이었음에도 그는 사직 이유를, 그만둔 동료에 대한 책임감이나 의리 때문인 것처럼 말했다. 사무실은 한동안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였다. 빙판의 미세한 균열이 내 눈엔 너무도 선명히 잡혔다. 그 빙판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이가 바로 나였다. 나의 승진으로 부서 내에서 구체화된 위계구도는 이전의 감정적인 갈등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연이은 사직의 여파로 온갖 마음고생에 시달리던 나도 결국 한달 만에 사직서를 내밀고 말았다. “그 친구들, 자신들 능력이 모자라니까 지레 겁먹고 그만둔 거야. 신경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끝내!” 박실장은 직원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버럭 화를 내며 내 사직서를 직직 소리나게 찢은 다음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사건의 파문은 그렇게 매듭지어졌다.

“잘 가슈.”

트럭기사는 묘하게 눈을 한번 찡긋해 보이고는 차를 출발시킨다. 트럭이 휭하니 사라진 자리에 교회의 붉은 담벼락이 떡 버티고 있다. 다이아몬드형 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린 벽돌담이 나를 향해 낄낄거리는 것 같다. 하필 차를 교회 담벼락 옆에 세워놓을 게 뭐람. 나는 담벼락에다 연거푸 눈을 흘기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도서대여점 진열대를 지나고 정육점과 분식점, 인터넷 통신 광고문이 잔뜩 붙어 있는 전봇대 모퉁이를 돈다. 좁은 골목을 지나 넓은 길로 나오자 미용실, 세탁소, 가전제품 대리점 유리창이 차례로 있다. 집을 나서니 길가의 자동차들까지 세상은 온통 거울투성이다.

‘JSA’ 글자 위로 내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비디오 가게 앞이다. 포스터 옆에는 한달 전부터 붙어 있던 광고문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 ‘강아지 분양합니다’라는 짙은 고딕 글씨를, 복슬거리는 강아지 사진이 떠받치고 있다. 입 주변의 털은 검은색, 머리 부분은 초콜릿색, 몸통은 황금갈색으로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룬 외양이 언뜻 봐도 타고난 애완견이다. 빨간 리본으로 묶은 짙은 블론드 머리가 작은 분수처럼 솟아 있고 눈동자는 까만 유리구슬처럼 반들거린다. 강아지 사진 밑에는 필기체 글씨로 잔뜩 씌어 있다. ‘생후 한달 된 요크셔 테리어 종. 사진 속의 엄마를 닮아 영리하며 늘씬한 몸매와 빼어난 미모까지 갖춘 강아지임.’ 맨 밑에는 분양가격이 또렷이 박혀 있다. ‘암컷 30만원, 수컷 20만원.’

집 잘 지키고, 주인 말에 순종하는 개의 시대는 이제 간 모양이다. 타고난 유전자나 주인의 재력에 의해 판가름나는 강아지 세계가 인간세상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속이 메슥거린다. 개들의 세계까지 잠식해들어간 영장류의 지배욕이 가증스럽다. ‘온 세상의 개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중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단결을 꺼리는 놈이 분명 있을 것이다. 주인의 사랑에 듬뿍 취해 안주하거나 주인을 저버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놈도 있을 테니……

병원 대기실은 너무도 한산하다. 뭉크의 「절규」에서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사내 하나만 덩그마니 앉아 있다. 오늘도 늦은 모양이다. 간호사가 또 한소리 할 게 분명하다. 이곳은 의사 장의 성형외과 대기실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예약 한달 만에야 겨우 순번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듯 장의 대기실에는 기대에 찬 젊은 여자들로 붐볐다. 반들거리는 대리석 바닥과 벽 장식에, 화려한 조명이 마치 백화점이나 호텔에 온 것 같았다. 짙은 썬글라스를 낀 여자, 콧등을 가로지르는 긴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여자, 수험생 역할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듯한 딸을 옆에 끼고 있는 엄마도 더러 있었다. 또 엄마의 끈질긴 요구에 마지못해 끌려온 듯 못마땅한 표정의 여자애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오랜 삶의 경험에서 나온 엄마의 현명한 판단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올 것이다. “가치란 것도 결국은 대물림되는 것이지. 나쁜 것일수록 더 그런 법이라구.” 학원강사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순서를 기다렸었다. “예쁘게 태어나지 못했으면 ‘빨간 머리 앤’ 같은 능력이라도 갖춰야 할 게 아니냐.” 딸을 의사로 만들겠다던 엄마의 집착이 이해되기도 했다. 또한 ‘앤’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것인지도.

“김문호님.”

간호사가 다음 환자를 호명한다. 상담을 끝낸 환자가 나오고 문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절규」의 남자가 들어간다.

“또 늦었네요?”

살짝 흘겨보는 간호사의 눈길을 무시한 채 나는 문 앞쪽으로 좌석을 옮긴다. 금방 일어선 남자의 온기가 엉덩이로 전해진다. 진료실 문에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임찬수’라는 아크릴 명판이 가로로 길게 걸려 있다. 명판 왼쪽이 약간 기울어져 있다. 나는 그것을 고쳐놓으려 일어선다. 환자에게 종이쪽지에 적힌 뭔가를 설명해주던 간호사가 내게로 다가온다.

“왜 그러세요?”

“명판이 약간 기운 것 같아서요. 바로잡으려구요.”

“그거 접착제로 고정된 거예요. 안 움직여요.”

정말 명판이 꿈쩍도 않는다. 간호사는 나를 원래 자리에 앉힌다. 그러고는 제자리로 되돌아가 처방에 대한 설명을 계속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약물 처방을 내린 모양이다. 효과에 상관없이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만큼 손쉽고 경제적인 것도 없다. 프로이트처럼 환자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저 깊은 곳에 억압되어 있는 무의식을 끌어내는 심리치료 같은 건 물 건너갔는지도 모른다. 의료수가 앞세우며 환자수로 먹고사는 의사나, 돈 없고 시간 없는 환자 모두에게 프로이트라는 사내는 이제 시대착오적 인물인지도 모른다. 진료실 문에 걸린 명판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좌우 균형이 맞지 않다. 또 일어나면 간호사가 짜증낼 것 같아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차라리 안 보는 게 속이 편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의사와 담판을 지어야겠다. 손쉬운 해결방식을 두고 그들은 엉뚱하게 우회로를 걸으려 한다. 상황을 자꾸 그렇게 몰고 가는 저의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또 그 캐릭터 손질이에요?” 직원들은 이따금 내 모니터 앞을 흘끔거리며 한마디씩 했다. 비아냥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언제나 박실장의 신뢰를 한몸에 받는, 일 중독자인 나와는 철저하게 금을 긋고 있었다. 회사란 오로지 나와 일과의 관계였다. 유일한 인간관계는 박실장이었던 셈이다. 입사 초기에는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면서 일의 마력에 흠뻑 젖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나를 일로 내몰았다. 일의 세계는 오히려 편하고 자유로웠다. 그런 속사정도 모른 채 엄마는 대기업 입사와 빠른 승진이라는 화려한 겉모습에서 나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을 조금씩 키워가기 시작했다. “네 뜻대로 전문직을 가졌으니, 이젠 괜찮은 남자만 만나면 나로서야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니. 회사에 어디 쓸 만한 사람 없냐?” 엄마의 궁극적 관심은 바로 그것이었다. 엄마의 집요하고도 세속적인 욕망에 코웃음치면서도 나는 그 순간 박실장을 떠올렸다. 사내 여직원들 사이에서 이상적인 배우자로 첫손꼽히는 이가 박실장이었다. 깊고 그윽한 목소리, 매혹적인 눈빛, 세련된 매너에 따뜻한 인간미까지 갖춘 그는 타부서 사람들에게도 단연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런 박실장이 그 나이가 되도록 독신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수긍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서구식 생활방식에 젖어서 그렇다느니, 그의 이상형이 꽤나 까다로운 모양이라느니, 실연의 상처가 깊어서 그런다느니 하는 온갖 추측을 해대기 좋아했다. 나 역시 박을 동경하는 회사 내 수많은 여직원 가운데 하나였다. “전산실 김인영씨? 그 친군 학벌이 좀 달리지 않아?” “맞아, 실력하고 학벌하곤 또 별개니까.” “홍보실 정선우? 그 여잔 세숫대야가 좀 처지잖아.” 직원들은 제법 경쟁력있는 여직원을 하나씩 저울질해가며 박실장과 가상의 짝짓기를 즐겼다. 물론 나 정도는 후보에 거론되는 일조차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박실장으로부터 실무능력을 인정받는 꽤나 신임 두터운 부하직원이었다. “이번 공모전 공고야. 한번 훑어보라구.” 그는 유명 공모전이 있을 때마다 귀띔해주며 나의 참가를 유도했다. 나에 대한 그의 신뢰는 가상의 짝짓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위안이자 희망이었다. “이번 수상은 순전히 이정하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덕분이었어.” 그는 신뢰와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나를 추켜세웠다. 그와의 공동작업으로 몇차례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그는 상사에서 조금씩 환상적인 파트너로 변해갔다. 늦은 밤 사무실에서 단둘이 남는 날이 점점 늘어났고, 나는 작업을 매개로 그와의 관계에 차츰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좀 쉬었다 하지.” 텅 빈 사무실을 울리는 그윽한 목소리와 함께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의 손에서 내밀어지기도 했다. 종이컵을 감싸쥔 그의 손은 어루만지고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따뜻해 보였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도 철옹성 같던 자신의 외벽을 조금씩 허물어갔다. “으흠, 멋진데.” 빨려들어갈 듯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그는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정신이 아뜩아뜩해지는 순간이었다. 늦은 밤 빈 사무실에서의 작업은 내겐 언제나 꿈 같은 시간이었다. 감미로운 환상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었다. 일과 사랑, 그 두 가지를 한손에 거머쥘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앤’이 차츰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십분이면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제발 시간에 좀 맞춰오세요.”

간호사는 사무용 코멘트를 툭 던지고는 다시 진료실로 들어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의 하얀 가운 사이로 빨간색 미니스커트 자락이 살짝살짝 비친다. 간호사란 하나같이 의사의 끄나풀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안면 윤곽선은 우리가 보기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 있는 것 같군요.” 의사 장은 ‘우리’라는 말로 자신의 판단이 객관적임을 내세우려 했다. 장은 내 주장이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몇번이나 자신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간호사에게 확인을 했다. “이분 안면 윤곽선이 균형이 안 맞는다고 생각해?” “아뇨, 전혀 흠잡을 데 없는데요.” 그들은 꼭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간호사는 가까이 다가오며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내 눈에 또렷이 잡혔다. 성형외과 간호사답게 아니, 성형외과 의사를 애인으로 둔 여자답게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수술실은 그들의 밀회장소로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연푸른빛 휘장, 하얗게 깔린 씨트, 여러 각도로 조절되는 침대, 눈부신 조명,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온갖 금속용 의료도구들, 콘돔을 닮은 수술용 고무장갑, 마취제나 소독약 등의 화학약품 냄새. “지금까지 한 안면 윤곽술 가운데 제일 잘된 것 같은데요.” 간호사는 아부라도 하듯 돌아서며 의사 장을 향해 말했다. 의사의 권위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듯 교태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장은 아무도 없다면 사랑스런 그녀를 무릎에다 앉히고 스스럼없이 애정 표현을 해댈 것이다. 늦은 밤 모니터 앞에서 이따금 박실장이 내게 하던 스킨십처럼. 세상의 모든 관계란 수직관계 아니면 수평에서의 부등식 같은 관계이다. 간호사와 의사, 상사와 부하직원처럼 환자와 의사의 관계라고 다를 것은 없다. 장은 나의 재수술 요구를 계속 무시하더니 급기야 나를 이곳으로 넘겼다. 그때의 상황을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는 대단히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술 결과에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 있는 것 같군요.” 장은 한참이나 ‘신체이형증후군’이니 ‘망상장애’니 하며 기괴하고 낯선 용어를 들먹이더니 차분하고 결단성있는 어조로 말했다. “괜찮은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드리죠.”

간호사가 나온다.

“이정하님, 들어오세요.”

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임찬수’의 진료실로 들어간다. 의사의 손짓에 나는 ‘전문의 임찬수’라는 명패가 정면으로 보이는 책상 앞 의자에 앉는다. 나의 처지를 일깨워주려는 의도가 담긴 자리다. 아니면 내 얼굴을 자세히 보려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나는 왼쪽 머리칼을 앞으로 더 쓸어내린다.

“진료실 문의 명판이 기울어져 보이던가요?”

촉새 같은 간호사가 그새 일러바친 모양이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그는 내 왼쪽 턱선에 눈길을 주며 말한다.

“그건 기술자가 수평을 정확하게 맞추어 붙인 명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도 그게 비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죠. 환자들 가운데서도 말이죠.”

그는 말을 돌려서 나의 오류를 지적하려 한다.

“제겐 이 치료가 별 의미가 없어요. 저희 집이 위기에 처했다구요.”

“왜요?”

“그야 수술이 잘못되었으니까 그렇죠.”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중 누가 수술이 잘못됐다고 말한 적 있나요?”

“아뇨. 그들이야 당연히 저를 배려해서 말 안하겠지요. 대놓고 그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건 상식 아닌가요.”

“실제로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죠. 제가 보기에도 얼굴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내 왼쪽 턱으로 눈길을 돌린다.

“근데, 꼭 이렇게 마주보면서 얘길 해야 하나요? 영화 같은 데서는 의사와 환자가 나란히 한쪽 방향을 보거나 환자가 누워서 상담하던데요.”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는 담당의사의 판단에 달린 거예요.”

자신의 권위에 손상이 갔다고 생각했는지 의사는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어쨌든 저한테 정신과 치료는 별 의미가 없어요.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구요. 저를 닥터 장에게 다시 보내주세요. 그러면 모든 게 해결돼요.”

그는 내 얘기를 듣는 중간중간 뭔가를 끼적거린다. 내 얼굴을 이상하게 그리거나 낙서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진료 도중 의사들이 하는 일이 다 의료행위라고 생각하는 건 환자들의 착각일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의사는 컴퓨터 앞에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의 뒤에 놓인 책장 유리창에 컴퓨터 모니터가 비쳤다. 그는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내가 수술대 위에 올라가 눈부신 조명 아래 누워서 다리를 벌리고 난 한참 후에야 그는 나타났다. 내 자궁 속에 막 자리잡기 시작한 우연의 산물을 긁어내면서도 그는 끝내지 못한 고스톱 생각을 계속했을지 모른다.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다. 내 몸속의 모든 것이 빠져나간 듯 허탈했다. 뭔가에 크게 속은 듯한 기분이었다.

“부분마취로 해주세요.” 성형수술 때 나는 장에게 말했다. “윤곽술의 경우는 대개 전신마취를 하죠.” 장은 내 요구를 일축했다. 하지만 나는 몸을 의사들에게 내맡길 수 없었다. 내 몸의 일부가 어떻게 깎여나가는지, 그 뼈에 이르기까지 얼굴의 살은 어떻게 절개를 당하고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는지 다 보아야 했다. “부분마취도 의식이 흐릿하긴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그건 죽은 듯 잠든 상태의 전신마취와는 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그건 제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명분 속에 가려진, 수술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사실은 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시체 수십구를 직접 해부할 정도로 인체에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지 않는가. 디자이너인 나는 그의 21세기형 후계자인 셈이다.

“으아아악” 엄마는 욕실타일이 다 퉁겨나올 정도로 비명을 질러댔다. 욕실에 둔 고양이 머리는 어스름 무렵 골목 어귀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신경통에 시달리는 어느 노파가 고양이를 고아먹은 모양이었다. 약으로 쓰였을 몸통은 당연히 없었다. 몸에서 떨어져나온 목 부위가 핏자국으로 꺼멓게 말라붙었지만 그래도 까만 털은 유난히 반들거렸다. 입 주변에 깜찍하게 솟아난 수염을 보는 순간 나는 박실장의 ‘바비 인형’을 떠올렸다. 기구하게 생을 마친 그 고양이의 머리 골격에 대한 호기심과 이미 기구해진 종말을 더 처참하게 만들고 싶다는 묘한 충동이 그것을 보는 순간 번개처럼 스쳤다. 평소 내가 존경하던 예술가의 해부 흉내를 잠깐 내었을 뿐인데, 엄마는 그때부터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졌다.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의사의 귓속에다 나직하게 말을 쏟아놓는다. 의사의 표정에 엷은 미소가 어린다.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걸 의식했는지 그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앞에 나간 환자를 흉보는 이야기거나 둘만의 비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전화 한 통화만 할게요.”

의사는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전화기를 끌어당긴다. 버튼을 꾹꾹 누르며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의사 장도 전화 한 통화로 간단히 나를 이 정신과 의사에게 넘겼다. 장은 나의 문제점과 상황을 설명하고 나를 특별히 부탁한다는 배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는 맨 마지막에 덧붙였다. “나중에 시간 나면 소주나 한잔 하지.” 둘은 친한 친구처럼 보였지만 그 말로 거래관계라는 게 드러났다. 술자리에서 거래관계는 명확해진다. 박실장과 협력업체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 언제나 협력업체 사람이 계산을 하는 거나,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와 마실 때 예외없이 박이 카드를 내미는 것은 같은 이치다.

“박실장님이 취하신 것 같아서요, 이건 제가 다음에 전해드릴게요.” 접대용으로 딸려온 것 같아 보이던 D광고사 디자이너가 박실장의 다이어리와 디자인 관련 책을 챙겨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재작년 겨울, 우리 협력업체인 D사가 마련한 접대성 회식의 마지막 코스에서였다. 외모가 바비 인형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여자 디자이너는 처음부터 박실장 옆에 붙어 온갖 애교를 떨어댔다. 회사 내에서 결혼하고 싶은 남자 일순위로 꼽히는 박실장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와 박실장의 내밀한 관계는 알지 못했다. 평소 박은 여직원들에 대한 태도가 깍듯했고 술자리에서조차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다. 그의 세련된 매너와 합리주의의 외벽이 허물어지는 걸 목격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늦은 밤 모니터 앞에서 내 머리칼을 쓸어내리고, 따뜻한 손길로 커피를 쥐여주고 하는 걸 누가 감히 상상하겠는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문대 출신의 광대뼈 디자이너와 해외유학파인 엘리뜨 상사의 관계란 코앞에 들이밀어도 납득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이정하 팀장님도 취하신 것 같은데요, 이건 그냥 제가 전해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바비 인형은 내가 챙겨가면 된다는 박실장의 물건을 부득불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우겼다. “아니, 나 안 취했어요. 뭐 하러 번거롭게 그렇게 해요. 더구나 다이어리는 당장 내일 아침 회의 때도 필요한 건데……” 바비 인형의 앙큼한 속내를 눈치챈 나는 그녀의 손에 쥐어진 그것을 기필코 건네받아야 했다. “토요일 격주휴무라고 들었는데, 내일 쉬는 날 아닌가요?” 바비는 그 짧은 시간에 치밀하게 정보를 그러모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바비와 나의 승강이 한가운데로 박실장이 불쑥 끼여들었다. 언제나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힘이 되어주던 그였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맺은 인간관계이자 버팀목이었던 그는, 취기가 뚝뚝 묻어나는 손을 바비 인형과 나 사이로 들이밀었다. 그는 내 손을 힘껏 밀어냈다. 내 손을 밀어내는 그의 손힘이 전류처럼 짜르르 신경을 타고 흘렀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바비 인형이 그 물건을 가져가도록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는 바비의 얼굴이 내 눈에 잡혔다.

나는 또 한번 좌절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나의 ‘앤’을 보아야 했다. 과거의 악몽이 또렷이 재현되었다. “그 강사 나랑 사귀는 줄 정말 몰랐어?” 첫사랑이라 생각했던 학원강사와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짝사랑에 불과했다. 내게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일깨워주었던 그 역시, 줄곧 선두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수제자보다는 원생 중 가장 예쁜 여자를 택했다. “매순간 현실을 냉정하게 포착해내는 것, 그것이 사회생활의 키포인트야.” 스무살 무렵 내 영혼을 온통 묶어놓았던 그의 가르침은 삶속에서 순간순간 나침반처럼 다가왔다.

그제서야 나는 내 처지를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박이 광대뼈를 강조한 나의 캐릭터를 만들어준 진짜 의도를. 그는 교묘하게 나를 속였던 것이다. 내 외모의 결함을 강조해 그는 감동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그에 대한 감미로운 착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니. 가벼운 스킨십 이상의 선을 절대 넘지 않으며 묘하게 유지되던 그와 나 사이의 거리 역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바비 인형은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잽싸게 박의 물건을 자기 가방에 집어넣었다. 박과의 재회를 위한 합법적인 연결고리였다. 뜻을 이룬 바비 인형은 막차 시간을 들먹이며 자기네 직원들과 유유히 빠져나갔다. 손에 맴도는 거부의 감각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남겨놓은 채.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겨서도 알코올과 함께 나를 채워가는 건 배신감과 질투였다. 그대로 물러나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나는 ‘잠자는’ 미녀는 아닌 것이다. 그날, 나는 그를 유인해 처음으로 그와 함께 잤다.

“아, 그 프로젝트? 외주 처리하기로 했어. 참, 그리고 웹디자인을 전담할 새 팀장을 한사람 더 뽑기로 했어.” 박은 일에서 교묘하게 나를 따돌리며 내 입지를 점점 좁히려 들었다. 그와 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변화가 서서히 느껴졌다. 차츰 D사가 협력업체 일순위로 올라섰다. “나, 거기서 박실장님 봤다.” 어느날, 괌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다른 부서 직원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박이 스쿠버 다이빙 동호회원들과 같이 괌으로 가기로 했다며 여름휴가를 떠난 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거 왜 있잖아, D회사 디자이너.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여자. 그 여자랑 단둘이 있더라니까.”

“또 그 캐릭터예요?” 뒤늦게 내 캐릭터에서 치명적 결함을 발견한 나는 틈만 나면 그걸 손질하기 시작했다. 좌우의 대칭을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왼쪽을 다듬고 나면 오른쪽이 더 튀어나와 보이고 반대로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지우고 또 지우고 새로 그리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나는 그것을 내 모니터에서 지워버렸다. 평소 지적 재산권을 누누이 강조하던 박의 창작물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는 곧잘 유학생 시절의 일을 예로 들며 저작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졸업작품 준비할 때였지.”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충분히 상품화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그 디자인 도면을 가지고 관련 회사를 찾아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디자인 도면을 꺼내려 하자, 그 회사 담당자가 손을 내젓더라구.” 그 담당자는 박에게 특허신청을 했느냐구 먼저 물었다고 했다. 특허신청을 안했다고 대답하자 담당자는 박의 설계도면을 보지 않겠다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더군.” 그는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거나 표절하는 것이 창작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큰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박이 만든 캐릭터가 날아가는 순간의 통쾌함도 잠깐, 빈 화면 속으로 불쑥 내 얼굴이 들어앉았다. 그것 역시 캐릭터만큼이나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얼굴은 모니터 맨 꼭대기에 버티고 앉아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모니터 앞을 벗어나면 사무실 유리창에서, 화장실 거울에서, 회전문을 돌 때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인사부장이 또 나를 보자고 하는구만.” 난처한 목소리와 함께 박은 내게 걱정 말라는 표정의 복잡한 제스처를 취했다. 우리의 기묘한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실장님!” 나는 인사관리부로 향하는 그의 발길을 돌려세웠다. 나는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지난번 공모전 작품요. 마지막에 제 이름 빼고 출품했어요.” 언제나 표정관리에 능한 그는 담담한 얼굴로 돌아섰지만 그의 발걸음은 분명 가볍고 빨라졌다. 수상의 영예는 그때부터 오롯이 박에게 돌아갔다. 웹 디자인상을 받은 회사 홈페이지 디자인이 전적으로 내 작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거짓말을 확실하게 하는 방법, 그것은 그 거짓을 진짜처럼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몇년간 환상의 파트너였던 나와 박의 방법이었다. “축하해 황주나씨, 그리고 이정하씨.” 타부서보다 일주일 늦게 우리 부서의 승진 발표가 있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는지 쪽지에 열심히 뭔가를 적는다. 간호사는 컴퓨터 본체 위에 놓인 통신용 외장 모뎀을 만지작거리며 서 있다. 그녀는 의사가 쪽지를 건네자 그걸 받아들고 진료실을 나간다.

“다음주 수요일 어때요?”

의사는 다음 예약을 잡으려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다시 이곳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이 자리에 앉게 되고 의사에게서 자꾸 무슨 혐의를 받는다면 그의 옆에 놓인 저 컴퓨터 외장 모뎀이 무슨 불행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

“으윽---” 박실장은 굵고 짧은 비명을 토하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외장 하드는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의자 손잡이를 거쳐 바닥에 떨어졌다. 6개월 간 나의 작업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외장 하드였다. 얼굴을 감싸쥔 그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물감처럼 흘러내렸다. 그 순간, 내겐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떠올랐다. 적어도 박이 만든 나의 광대뼈 캐릭터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면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 그가 아침에 컴퓨터를 켤 때마다 목격하도록 하고 싶었다.

“이번엔 거울인가 보지?” 산산조각 난 화장실 거울 속으로 사람들 얼굴이 번갈아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크고 작은 발걸음 소리와 다급하게 옆 사무실 총무부 직원을 부르는 소리…… 한 무리의 소음이 화장실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실장님, 괜찮으세요?” 웅성거림과 나직한 신음소리가 다급한 발소리에 뒤섞여 또다시 화장실을 훑고 지나갔다. 변기에 쭈그리고 앉은 나는 점점 숨이 막혀오는 걸 느꼈다. 여기저기서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말발굽처럼 다급한 발걸음 소리, 복도벽에 반사되는 웅성거림이 나를 압박해왔다. 똑똑, 똑똑, 우두두두, 모든 것이 나를 향해 쫓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좁은 벽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호흡이 가빠왔다. 누군가 점점 내 목을 세게 조여왔고, 나는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번번이 두 손은 미끄러져 내렸다. 그때였다, 탈출구가 눈에 띈 건. ‘당신의 삶을 바꾸어드립니다.’ 내 목을 조르던 손아귀의 힘이 조금씩 풀렸다. 막혔던 숨통이 틔고 호흡이 되살아났다. ‘당신의 삶을 바꾸어드립니다.’ 화장실문에 붙은 낯선 스티커 문구. ‘금주의 명언’이 붙어 있던 자리였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 문구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젠 삶도 디자인 시대. 당신의 삶을 디자인하세요. 최첨단 의료장비, 5명의 성형외과 전문의의 세분화된 분과별 진료…… 찾아오시는 길, 3호선 압구정역 3번 출구.’ 나는 변기의 물을 내리고 일어섰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온 나는 어느새 3번 출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드센 성격이 좀 수그러들어 보이는 게…… 훨씬 여성스러워졌다.” 차츰 본전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지 한동안 엄마는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성형수술의 성과를 인정했다. 아마도 혼기 찬 딸이 이제 현실감각을 깨쳐가는 중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철든 딸이 신데렐라 같은 신분상승을 통해 집안의 위기를 일시에 물리쳐줄 거라는 희망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고양이 사건 이후 엄마는 그것이 자신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무 생각 말고 병원치료나 열심히 받아라.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정신이 건강해야지.”

진료실을 나오자, 「절규」의 남자가 여전히 머리를 감싸쥔 채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다.

“아저씨.”

그가 머리를 풀고 나를 올려다본다.

“바로 앉으세요. 왼쪽 어깨가 처져 보인다구요.”

그는 고분고분 자세를 고쳐 앉고는 다시 「절규」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병원을 나서자 왕복 8차선의 도로가 한눈에 펼쳐진다. 잠시 현기증이 인다. 길게 뻗은 차선들이 전혀 간격이 맞질 않는다. 보도블록도 들쑥날쑥한 게 도무지 평탄하질 않다. 그런데도 차와 사람은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다.

나는 병원 입구에서 잠시 망설인다.

또다시 저 길을 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