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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의심스러운 탈식민주의
카와무라 미나또 『말하는 꽃, 기생』, 소담출판사 2002
문소정 文昭丁
부산대 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 sjmoon57@hanmail.net
『말하는 꽃, 기생』(유재순 옮김)은 한국의 기생에 관한 연구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누가, 누구의 자료를 갖고,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가’라는 정치학적 분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엄밀히 말해 이 책은 외형상 한국의 기생에 관한 연구 모습을 걸쳤지만 내용상 ‘한국의 기생에 관한 주로 일본남성의 생각과 실천에 관한 역사’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남성이 기생을 통해 한국여성, 나아가 한국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환상과 욕망을 지녀왔는지 보여주는 연구이다.
예컨대 카와무라 미나또(川村溱) 스스로도 “조선의 문화, 즉 기생문화는 일본의 문화를 비춰주는 거울로서 일본의, 또한 일본남성의 자화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며, “식민지주의와 섹슈얼리티, 성(gender)의 왜곡에 의해 형성된 특수한 문화를 깊게 파헤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알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된 연구”(30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특정 시각에서 문제시되어 재구성된 현실(reality)이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역사가 있다는 역사관에서 본다면, 한국의 기생은 카와무라가 쓴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카와무라는 이 책의 연구목표를 “일본 식민지문화와 식민지문화에 의해 변용된 현지의 조선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로 “‘근대성’, 바로 그것을 탐구”(29면)하는 것에 둔다고 천명하였는바, 여기서 그는 ‘현지처’를 연상시키는 ‘현지’라는 식민주의자의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카와무라가 한국어판 발간사에 “본서를 손에 든 한국인의 독자도 역시 (…) 수치심과 가벼운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15면)라고 한 우려는 불필요하지 않을까? 일본인에 의한 자국 여성의 성적 침략을 국가명예 침해나 남성 자존심에 대한 최대의 모욕으로 여기고 이에 분노하는 입장이 한국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히려 저자가 강하게 의식해야 할 집단은 여성일 것이다. 페미니즘 입장에서는 그것이 민족주의이건, 탈식민주의이건 여성의 감각, 언어, 세계관으로 씌어지지 않는 모든 담론은 어떤 면에서는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변종일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기식민주의 시대를 사는 여성으로서 더 심각하게 문제제기하고 싶은 것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저자는 “기생을 테마로 다룬 점으로 인해 적이 불성실하게 비춰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다만 읽고 즐거운 책이길 간절히 바랄 뿐”(16면)이라고 쓰고 있다.
도대체 기생이란 테마를 선택한 것이 왜 불성실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혹시 이러한 걱정이 성의 이중기준, 즉 신성한 아내·어머니와 남성을 위한 성의 해방구인 창부의 분할을 내면화하여 남성들의 놀이이자 소문날까 두려운 가부장제의 추문인 매음여성 내지 기생을 진지한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승격시킨 것을 비난하는 남근중심주의자들을 의식해서는 아닐까?
그리고 1876년 개항 이래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함께 더욱 본격화된 성적 강제와 착취체계, 가부장제적 신분구조 속에서 존재 그 자체로 오욕화되며, 매음여성으로 전락해간 기생의 삶을 다룬 이야기가 ‘간절히 바랄’ 만큼 다만 즐겁게 읽을거리인가?
이 책에서 특별하게 주목되는 부분은 4·5·6·7장이다. 이 장들은 대한제국기에서 해방 전까지 일본인 남성이 만든 소설·사진·그림엽서 등을 통해 식민주의에 의해 변형된 한국 기생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특별히 이들 장에는 카와무라가 이 책을 통해서 추구했던 것, 즉 일본인 혹은 조선인 남성들이 조선의 여성들을 바라본 “그 ‘시선’에 의한 지배구조를 해명하고 해부하는 것”(30면)에 대한 답변이 제시되어 있다. 즉 카와무라는 한국의 기생에 관한 일본남성의 표상에서 “어린 기생에게만 발정하는 종주국의 일본남자들. 그곳에는 미성숙한 제국주의의 왜곡된 욕망이 반영되어 있었다”(293면)라는 의미나 이미지를 읽어내고 있다. 또 카와무라는 일본인 중에는 조선의 백자에서 기생에까지 ‘비애의 미’를 느끼고 표현한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감상적이며, 종주국인으로서의 우위성을 가진 그야말로 ‘제국주의’적인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263면)고 간파하고 있다.
그러나 카와무라는 식민지주의와 ]슈얼리티·젠더 관계에 대해 충분히 분석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종주국과 식민지의 관계가 왜 남성과 여성으로 설정되고 표상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왜 종주국인 일본은 남성으로, 식민지 한국은 여성, 그것도 함부로 유린하고 강간해도 되는 매음부 기생으로(일제시대 일본인들은 조선의 기생을 전업 매음여성으로 직업화해나갔음) 표상되는지에 대한 정치적 의미와 효과에 대한 분석까지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생의 역사를 집필하기 위해 저자가 참조한 문헌이 이능화(李能和)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1927)이다. 카와무라는 이 책이 한문조 문장으로 되어 있어 자신이 확실히 이해하였는지 자신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저자 스스로도 조선시대의 기생, 조선후기 기생의 종류와 등급의 분화, 근대의 기생, 현대의 기생이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인식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근거사료 인용에서 철저하게 관철되지는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저자는 갈보의 종류를 소개하기 위해 『조선해어화사』의 한 구절을 인용해 “우리말로 유녀의 총칭은 갈보이고 (…) 창녀를 이 벌레에 빗댄 것인데 경성에는 원래 이 벌레가 없었다”(67면)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이능화의 원문에서는 “우리나라 말에 유녀(遊女)를 통틀어서 갈보(蝎甫)라고 일컫는다 (…) 창녀를 이것에 비유하게 된 것이다. 도성에는 본디 갈보가 없었는데, 고종 갑오년(1894) 이후로 비로소 번성하게 되었다”(『조선해어화사』, 이재곤 옮김, 동문선 1992, 442면)라고 적혀 있다. 또 저자는 “이능화에 의하면 ‘우리 풍속에는 갈보의 종류가 많은데, 말하자면 기녀(기생), 은근자(殷勤子), 탑앙모리(塔仰謀利), 유녀화랑, 여사당패, 색주가 등을 들 수 있다’”(67~68면)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조선해어화사』에는 “갈보의 종류는 매우 많다. 기녀, 은근자, 탑앙모리, 화랑유녀, 여사당패, 색주가 등이다”(442면)로 되어 있다.
결국 저자가 식민주의의 영향 아래 한국 기생의 역사적 변천에 관심을 갖는 입장에 철저하다면, 이능화의 원문에서 기생의 시대적 변화를 말해주는 “갑오년 이후로 번성하게 되었다”는 구절을 생략해서는 안될 것이며, 또한 이능화의 원문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우리 풍속에는”이라는 말을 삽입함으로써 매매음 문화가 한국 고유의 전래적인 풍속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기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기생외교’라는 개념화의 문제점이다. 카와무라는 기생이 청과 왜의 사신을 접대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기생이 조선시대 외교정책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존재한 것으로 보고 조선의 외교를 ‘기생외교’라고 규정하고 있다.
저자가 조선의 외교를 기생외교라고 개념화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의 의미를 읽었으면 좀더 신중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즉 『조선해어화사』 제8장에는 “인조 병자년(1636) (…) 용골대(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의 장군) 등이 (…) 방기(房妓)를 강제로 상납하게 해서 바쳤다. 원접사(遠接使) 이경증이 이것을 막기 위해 많은 힘을 썼으며, 또 용골대 등의 치욕을 품계했으나 조정에서는 어쩔 수 없어 허락하였다. 이때부터 각읍의 기생을 날마다 방에 들어오게 했으며 마음에 드는 기녀와 함께 다녔다. (…) 조금이라도 말을 듣지 않는 기녀의 눈치가 보이면 대신을 구타하기를 노예와 같이 하고”(115면)라고 씌어 있다.
셋째, 저자가 조선의 정치를 “기생의, 기생에 의한, 기생을 위한 정치”(59면)라고 규정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묻고 싶다. 저자는 그런 규정의 근거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과 기생, 궁궐의 연희, 축첩, 축기 등의 기록을 들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기생이 신분적으로 천인이었으며, 경제외적 강제인 신분관계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의 접근과 성적 강제와 착취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님은 분명할진대, 이들이 권력을 가진 남성 정치인들과 관계를 가졌던 기록을 근거로 조선의 정치를 ‘기생의, 기생에 의한, 기생을 위한 정치’라고 하는 것은 비약이 심하며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조선의 정치는 ‘양반남성의, 양반남성에 의한, 양반남성을 위한’ 정치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다음과 같은 평가는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저자는 기생이란 존재는, 국내 군인들의 불만을 해소한다든가, 혹은 외교정책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이어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단정한다. 또한 기생의 그와 같은 유용성은 조선시대 이래 현재까지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조선왕조 오백년은 ‘기생정치’ ‘기생외교’에 의해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며 “조선왕조는 기생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국가체제를 계속 유지해가면서, 하나의 커다란 ‘유곽국가’를 만들고자 했지만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대일본제국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총독부정치가 시작되고 말았”다고 쓰고 있다(65~66면). 이런 평가는 탈식민주의처럼 보이는 그의 입장과 광범한 사료수집과 읽기를 통한 연구의 성취 등 모든 것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