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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주희 金珠熙

1973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대학원 재학중. chaos-0@hanmail.net

 

 

 

제6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소꿉놀이

 

 

딸딸딸딸따따.

아빠가 온다. 이화약국을 지나 오뚜기분식점 앞에서 뒤를 돌아본 뒤, 메뚜기 같은 아빠는 양어깨를 쫙 펴고 온다. 헬멧을 쓴 모습이 꼭 메뚜기 같은 아빠는 언덕이 가파른 오뚜기분식점 앞에서 오토바이 뒤에 묶어놓은 한냉소시지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는 아빠보다 오토바이 뒤에 묶여 있는 한냉소시지를 떠올리며 침을 꿀떡 삼킨다. 팔뚝만한 한냉소시지는 색깔도 예쁜 분홍색이다. 그러나 소시지는 언니들의 도시락 반찬이기 때문에 나는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 언니들이 도시락을 쌀 때 겨우 하나나마 얻어먹을 수 있는 정도인데, 언니들이 학교에 간 후에야 잠에서 깨는 나 같은 늦잠꾸러기는 잘 얻어먹지도 못한다.

아빠는 한냉소시지를 자랑스러워한다. 아빠의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새 학기마다 언니들의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때 ‘(주)한국냉장’이라는 글자에 힘을 준다. 그러나 올해 5학년인 큰언니는 “치, 그냥 노량진 수산시장이라고 하면 될 걸” 하며 입을 삐죽거린다. 아빠는 볼펜으로 큰언니의 머리통을 툭 치며, 허허허 웃는다. 아빠가 직위란에 ‘조합원’이라고 쓰면 작은언니는 “애들이 아빠보고 그냥 생선장수라는데요?”라고 말해서 큰언니처럼 볼펜으로 머리통을 맞는다. 나는 아빠가 조합원이건 생선장수건 상관없이 좋다. 한냉소시지를 먹을 수 있다면야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오로지 나의 소망은 얼른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이 되는 것이다.

딸딸딸딸따따. 사람들은 아빠보고 딸딸이아빠라고 부른다. 딸이 셋씩이나 돼서 그렇기도 하지만 오토바이 소리를 흉내내서 그렇게 부른다. 오래되고 낡은 아빠의 오토바이는 다른 오토바이보다 소리가 크고 거칠다. 그러나 나는 소리만 듣고도 아빠 오토바이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군데군데 녹이 슬고 소금기와 생선비늘이 허옇게 들러붙은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장사를 마친 아빠가 낮잠을 자러 온다. 언덕 아래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아빠가 오고 있다.

딸딸딸딸따따.

나는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손등 위에 모래를 덮는다. 손이 보이지 않도록 무덤처럼 모래를 쌓는다. 그리고 코카콜라병에 담아온 물을 그 위에 뿌린다. 다른 손으로 모래를 토닥토닥 두들기고 다시 모래를 덮는다. 모래 속에 파묻힌 손을 꼼지락거린다. 모래무덤에 금이 간다. 다시 물을 뿌리고 모래를 덮고 토닥토닥 두들긴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손을 조금씩 빼낸다. 두꺼비집에 또 금이 간다.

“물……”

나는 손을 빼내려다 얼른 다시 집어넣고 두꺼비집을 두들긴다. 화진이가 두꺼비집 위에 코카콜라병을 거꾸로 세워 흔들어 보인다. 겨우 물 몇방울이 떨어진다. 마지막 한방울의 코카콜라가 떠오른다. 톡 쏘는, 달짝지근한 코카콜라. 아껴 먹느라 병 입구에 입을 대고 입 안에 든 코카콜라를 병 속으로 도로 밀어넣었다가는 조금씩 삼키는데도 까만 병은 어느새 투명하게 비어버린다. 마지막 한방울은 그래서 더 달콤하다. 코카콜라를 다 먹었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두꺼비집이 완성되기도 전에 코카콜라병에 담아온 물이 다 비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가위 바위 보!”

나는 주먹을 낸다.

화진이를 외면한 채, 나는 두꺼비집만 토닥거린다. 가슴이 툭 튀어나와 새가슴이란 별명을 가진 화진이는 느릿느릿 손에 묻은 모래를 턴다. 마치 새가 부리로 깃을 고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모래알이 낀 까만 손톱을 긁으며 화진이는 좀체 일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두꺼비집 위로 물줄기가 쏟아진다. 두꺼비집에는 동전만한 게구멍이 뚫린다. 화진이와 나는 물줄기가 쏟아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작은 체구에 하얀 얼굴을 가진 남자아이는 얼른 바지의 지퍼를 올린다. 화진이는 숨을 쌕쌕거리며 내 곁에 바짝 달라붙는다. 나는 남자아이보다 한뼘이나 컸지만 키가 더 커 보이도록 뒤꿈치를 살짝 들고 화진이의 손을 꼭 쥔다. 화진이의 거친 숨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야! 너 뭐야?”

나는 조금은 건방지고 위엄스러운 상급생의 말투를 흉내낸다.

“난 정환이.”

남자아이는 계집애처럼 헤헤거리며 웃더니 뒤에 감추고 있던 장난감을 툭 던지고 모래밭 옆에 있는 가장 낮은 철봉 위로 올라가 거꾸로 매달린다. 나는 화진이의 손을 놓고 장난감을 펼친다. 주황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소꿉놀이 장난감이다. 솥 접시 밥그릇 포크 칼 도마 등 여러가지 부엌살림들이 갖추어져 있다. 국자로 모래를 퍼서 밥그릇에 담아보기도 하고 접시들을 일렬로 쭉 늘어놓기도 한다. 화진이도 신기한 듯 바라보지만 손을 댈 듯 말 듯 망설이기만 하지 정작 만지지는 못한다. 남자아이는 철봉에서 내려오더니 장난감을 제 앞으로 끌어당긴다.

“나도 껴주는 거지?”

나는 두꺼비집을 발로 뭉개고 장난감을 다시 내 앞으로 끌어당긴다.

 

중앙대학교 후문으로 들어가면 체육대기숙사와 넓은 운동장만이 덩그러니 있다. 운동장 한쪽에는 안방 크기만한 모래밭이 있는데, 아이들이 종종 넓이뛰기나 씨름을 하는 그곳이 바로 우리의 놀이터다. 모래밭 옆에는 높이가 다른 철봉이 여섯 개 있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철봉은 어른의 키를 훨씬 넘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왼쪽의 가장 낮은 철봉에만 매달린다. 낮은 철봉 옆에는 키큰 귀목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육각형의 지붕을 얹은 수위실이 있다. 수위아저씨는 가끔 사탕을 나누어주기도 해서 아이들은 아저씨를 볼 때마다 달려가 인사를 하곤 한다.

중앙대학교 후문을 나서면 만나는 상도동. 하루종일 내달리면 흙냄새로 머리가 어찔한 흙언덕이 우리 동네다. 대학교 오른편엔 공동변소가 있는 공터가 있는데 아빠의 오토바이와 고물상 리어카, 트럭 등이 서 있는 곳이고, 그 주변으로 뻗은 골목마다 다세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저녁이면 싸움소리나 술주정 소리로 시끄럽지만, 어른들이 시장이나 공장으로 일 나가고 학생들이 학교로 가버리는 낮이면 동네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대학교 왼편엔 아까시나무로 뒤덮인 산이 있다. 산 사이에는 어른이 누울 정도 너비의 길이 나 있는데, 가파른 고갯길이다. 가도 가도 마냥 그곳이라고 해서 마냥고개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지만 간혹 대학생들이 그 길을 가로질러 학교 정문이 있는 흑석동으로 간다.

대학교 후문을 중심으로 내리막길이 끝나는 곳에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인 이화약국이 있다. 그 약국을 지나가면 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나오지만, 그곳 너머는 가지 않는다. 차도 많을뿐더러, 같은 모양의 건물도 많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할머니를 마중 나갔다가 길을 잃어 파출소에 가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더이상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동선은 대학교 후문부터 이화약국까지의 언덕길뿐이다.

정환이를 소꿉놀이에 끼워주는 대신 소꿉놀이 장난감은 내 차지가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살림살이를 맡는 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일이다. 언니들이 물려준 짝이 맞지 않는 장난감밖에 없는 나에겐 처음으로 생긴 내 소유의 새 장난감이다.

화진이는 소꿉놀이에서 아기를 하게 되었다. 화진이와 정환이는 서로 아기를 하겠다고 다투었다. 작년에 도망간 엄마가 보고 싶다고 툭하면 엄마,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다가도 이젠 괜찮아, 하며 금세 헤헤거리는 정환이가 안쓰러워 아기가 되었으면 하고, 나는 은근히 바랐다. 하지만 결국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화진이가 아기를 하게 되었다. 아기가 된 후, 화진이는 진짜 제 엄마라도 되는 양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래로 밥을 짓고 붉은 벽돌로 잎사귀를 갈아 김치를 만들기도 했다.

대학교 뒷산의 아까시나무들이 누렇게 바랜 잎들을 떨어내고, 가지 사이로 바람이 웅숭그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내던 날, 텔레비전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심지어 동사무소 스피커에서도 하루종일 슬픈 노래만 나왔다. 하루종일 슬픈 노래가 나오는 대신 언니 오빠 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고 오랜만에 동네 골목골목은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신이 나서 언니 오빠 들이 모여 있는 곳을 기웃거렸지만 어린애라며 우리를 놀이에 끼워주지 않았다. 정환이는 내게 몇번이나 ‘내년이면 우리도 학교에 다니는 거지?’ 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언니 오빠 들의 뒤통수를 노려보았고 다래끼가 나서 개구리처럼 눈이 퉁퉁 부은 화진이의 손을 잡고 언덕길을 뛰었다.

집이 지나가고 집이 지나가고 또 집이 지나가고, ‘담배’라고만 써 있는 구멍가게가 지나가고 동사무소가 지나갔다. 감자꽃이랑 깻잎이 있던 텃밭이 빈 채로 휑뎅그렁하니 지나가고 오뚜기분식이 지나가고, 도투락식품이 지나가고 또 집이 지나갔다. ‘같이 가!’ 하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정환이의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화진이의 쌕쌕 숨소리가 옆에 있고 이화약국이 버티고 서 있었다.

“우리끼리 노는 거야!”

정환이와 화진이는 숨이 차서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길에 돌멩이 두 개를 주웠다. 돌멩이 사이에 다래끼 난 화진이의 눈썹을 끼워놓았다. 그리고 누군가 발로 찰 때까지 기다렸다. 여러 발들이 지나갔지만 자꾸만 돌멩이를 비켜갔다. 어둑어둑 날이 저물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냥 언덕길을 올라갔다. 우리는 말없이 골목에서 헤어졌다. 어디선가 ‘우리나라 좋은 나라 박정희 대통령’ 하는 고무줄놀이 노래가 들려왔다.

다음날도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슬픈 노래만 흘러나왔다. 슬픈 노래 때문인지 왠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냄새가 나는 변소에 가기 싫어 수돗가에 오줌을 누고 소꿉놀이 장난감을 챙겨 대학교 후문으로 향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화진이가 쌕쌕거리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눈이 부어 있었다.

“무서워……”

“뭐가?”

다래끼가 옮을까봐 나는 화진이가 잡은 팔을 떼어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대학교 후문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한번도 닫힌 적 없이 언제나 열려 있던 문이었다. 게다가 그 앞에는 어깨에 긴 총을 멘 두 명의 군인이 마네킹처럼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둥근 철모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은 알 수 없었으나 분명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에서 뛰어나가던 정환이가 뒷걸음치다가 다시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때 대학교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수십명의 군인들이 줄을 맞추며 뛰어나왔다. 굵고 큰 목소리로 ‘으, 어, 으, 어’ 할 때마다 군홧발이 똑같이 움직였다. 척척척척 발소리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군인들이 지나간 자리엔 흙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학교 안 모래밭에 들어갈 수 없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텅 빈 텃밭으로 갔다. 늦가을의 나무들은 모두 헐벗어 소꿉놀이할 나뭇잎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정환이는 언덕길을 뛰어갔다 오더니 국화를 가지고 돌아왔다. 동사무소 분향소 앞에 놓여진 국화를 훔쳐온 것이다.

옛날엔 국화로 떡도 만들고 술도 만들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화진이에게 다래끼 낫는 약이라며 국화꽃을 먹였다. 그리고 정환이와 나는 맛있는 국수라며 꽃잎을 입 한가득 넣고 씹었다. 탄 누룽지처럼 썼다. 그러나 우리는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국화를 먹었다.

그날 밤, 나는 엉덩이에 둥그런 자국이 나도록 오랫동안 요강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보시며 ‘우리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서거하셨으니 우리나라는 이제 어찌 할꼬……’ 하셨다.

슬픈 노래는 그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가끔 군가를 부르는 군인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동네를 가로질러 지나갔고,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그 가파른 마냥고개를 하루에도 여러번 오르락내리락했다.

겨울 동안 우리의 소꿉놀이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환이가 몹시 아파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진이는 여전히 숨을 가쁘게 쌕쌕거렸지만 다래끼 외엔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 건강한 아이였다. 그러나 정환이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골골거렸다. 정환이는 화진이와 내가 자신이 없는 동안 둘이서만 소꿉놀이를 할까봐 장난감을 모두 가져가버렸다. 겨울은 길었지만 나는 몹시 설褸다. 봄이 되면 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강남국민학교 1학년 14반 37번.

눈이 녹아 질퍽한 흙이 새 신발에 엉겨붙어 더럽혔지만, 가슴에 자랑스럽게 붙어 있는 손바닥만한 이름표와 하얀 손수건을 보면서 더럽혀진 운동화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운동장에서 선생님들 소개와 교장선생님의 긴 훈화말씀이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짹짹거리며 떠들고 줄을 흩뜨려놓았지만 나는 꼼짝 않고 바른 자세로 서 있었다. 학생이 되었다면 이쯤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흙투성이 신발을 새하얀 실내화로 갈아신고 교실로 들어서는 순간, 눅눅하고 쾨쾨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내겐 설렘이었다. 삐뚤삐뚤 가운데에 금 그어진 책상도, 오른쪽으로 옮겨앉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의자도. 교과서를 받아 불룩해진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방을 몇번씩 고쳐메며 나는 1학년 14반 37번을 계속 외웠다. 1학년 14반 37번……

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중앙대학교에서 이화약국까지의 일직선 흙언덕길이 전부였던 우리에게 좌우로 넓어진 길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뚜기분식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달고나뽑기, 외국대통령 방문우표, 여러가지 동물 모양의 설탕엿, 인형옷 등을 파는 장사치들이 즐비했다.

그중에 가장 나의 눈길을 끈 건 바로 녹지대였다. 거북등처럼 생기기도 했고 거대한 무덤 같기도 한 녹지대. 시멘트로 만들어진 녹지대는 군인 옷처럼 다양한 녹색으로 알록달록 무늬를 만들었다. 녹지대 꼭대기에는 ㅡ자, ㄱ자, ㄴ자 모양의 기둥들이 세워져 있어 숨기에도 좋았다. 동, 서쪽으로는 미끄럼틀이 두 개씩 있었고 북, 남쪽으로는 계단이 있었다. 그 아래엔 철문이 하나 있었는데 어른들은 그것을 방공호라고 했다. 딱딱한 시멘트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넘어지거나 부딪히면 어김없이 피를 보거나 멍이 들었지만, 그곳은 우리의 새로운 놀이터로 안성맞춤이었다. 4학년 이상 언니 오빠 들은 일요일 아침이면 빗자루를 들고 그곳에 모였다. ‘애향단’이라고 하는데, 그 주변을 청소하고 ‘애향단’ 단장이 나누어주는 표를 받아 월요일 조회시간에 선생님께 내야 도덕생활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봄이 돼서야 다시 나온 정환이는 얼굴이 더욱 하얘졌다. 계집애라고 놀려도 그저 헤헤거리기만 했다. 화진이는 새가슴을 쌕쌕거리며 병아리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병든 병아리라서 금세 죽어버리니까 사지 말래도 화진이는 50원을 주고 산 병아리의 심장과 자기의 심장을 맞대고 쌕쌕 숨을 쉬었다. 정환이는 병아리가 징그럽다고 화진이 곁에는 다가가지도 못했다. 정환이가 다시 소꿉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나타났지만, 학생이 된 우리는 더이상 소꿉놀이를 하지 않았다. 대학교는 군인의 출입증 검사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소꿉놀이할 장소도 없어졌다.

며칠째 학교에 가지 못했다. 교과서는 아직 반도 채 배우지 못했는데, 아직 여름이 오려면 멀었는데 학교는 잠시 방학을 한다고 했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 학생답게 행동하기 위해서 오후 다섯시 애국가가 울리는 시간이 되면 학교 앞까지 달려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곤 했다.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다. 곧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기세다. 녹지대의 녹색이 더욱 짙어 보인다. 유난히 동네가 조용하다. 정환이와 나는 ㄱ자 기둥에 올라서서 화진이를 기다린다. 나는 멀리 오뚜기분식점 골목을 바라본다.

“너, 왜 군인아저씨들이 돌아다니는 줄 알아?”

정환이가 묻는다.

“왜 화진이는 안 오지?”

나는 귀찮아 딴청을 피운다.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어쩌면 곧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대. 북한 괴뢰군이 대학생들을 꼬셔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래.”

나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기둥에서 떨어질 뻔했다. 언니들이 방학숙제로 했던 반공 스크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말?”

“그래서 군인아저씨들이 학교랑 우리 동네를 지켜주려고 이렇게 고생하시는 거야. 녹지대 저쪽으로 올라가봤어?”

정환이는 녹지대 북쪽을 가리킨다. 그곳은 아주 부자들만 산다는 동네다. 담이 전신주만큼 높아서 집 안이 하나도 안 보인다.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푸른 나무들의 무성한 나뭇가지만 담 밖으로 겨우 고개를 내밀 뿐이다. 개들도 지나다니지 않고 흙먼지도 날리지 않는 고급동네이고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사진이 저절로 찍혀 누군지 알아내 잡아가기도 한다고 했다.

“그 동네에 김영삼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거든.”

정환이는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올린다.

“누군데?”

“그건 나도 잘 몰라.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대통령이 될 사람이래. 나라의 큰 일꾼이라고 하셨어. 그래서 군인들이 그 동네도 지켜준대. 참 이상하지? 대통령은 작년에 죽었다던데…… 그럼 지금은 누가 대통령일까?”

“이 바아보! 부대통령이겠지. 우리도 반장이 없으면 부반장이 대장이 되잖아.”

나는 정환이의 머리통을 친다.

따다다다닥. 나는 기둥 아래로 툭 떨어진다. 발목이 시큰거렸지만 피는 나지 않는다. 따다다다닥, 추석 때 아이들이 쏘는 폭죽소리와 비슷하지만 그 소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소리다. 정환이가 소리친다.

“총소리다! 북한이 쳐들어오나봐!”

아주 순식간에 날카로운 송곳이 눈을 찌르고 숨통을 막는 것처럼 매운 냄새가 퍼진다. 뿌연 연기 속에서 군인들의 군홧발 소리가 들려온다. 정환이는 쭈르륵 미끄럼을 타고 내려간다. 나도 따라 내려간다. 정환이는 방공호 앞에서 머뭇거린다. 나는 정환이의 손을 끌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방공호 안은 몹시 어둡다. 철문이 툭툭툭 소리를 낸다. 기어코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어둠속에서 빗소리는 두렵다. 나는 더듬거리며 정환이의 손을 찾는다. 정환이도 내 손을 쥔다. 우리는 벽 쪽으로 다가가 웅크려앉는다. 정환이와 나는 부둥켜앉고 화진이처럼 숨만 쌕쌕거린다. 빗소리가 점점 커진다.

허벅지가 가렵다.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 나는 허벅지를 긁는다. 가슴이 가렵다. 벌레가 스멀스멀 가슴 쪽으로 기어가나보다. 나는 가슴을 더듬거려보지만 벌레는 잡히지 않는다. 가슴을 긁는다. 박박박박 손톱을 세워 긁는다. 끈끈한 액체가 묻어나온다. 아무리 긁어대도 가려움은 가시지 않는다. 나는 더욱 세게 긁는다.

정환이가 내 가슴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나는 움찔거린다. 정환이는 내 윗옷을 열어젖히고 맨가슴에 볼을 댄다. 벌레들이 정환이의 온기에 놀라 도망갔는지 기분 나쁜 간지럼이 사라진다. 가슴이 촉촉하다. 정환이가 내 가슴을 핥는다. 젖꼭지를 입 안에 넣어보려고 하지만, 아직 모양조차 나지 않은 내 젖꼭지는 정환이의 입에서 자꾸 미끄러져 나온다. ‘엄마……’ 정환이는 진짜 아기처럼 옹알이를 하며 젖을 빤다. 나도 진짜 엄마가 된 것처럼 정환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혀가 젖꼭지에 닿을 때마다 꽈리 터지는 소리가 난다. 나는 내 젖꼭지를 앞으로 내민다.

그때 삐걱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린다.

“엄마, 나야!”

화진이다. 문이 열리자 어슴푸레한 빛이 방공호 안을 비춘다. 소주병이며 라면봉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바닥은 빗물이 흘러들어와 얼룩이 져 있다. 온몸을 가렵게 했던 벌레 따윈 없다. 그러나 손톱으로 긁어댄 내 가슴은 상처투성이다.

화진이는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나도 소꿉놀이 껴줘!”

화진이는 꽃무늬 원피스를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리며 가슴을 내민다. 엉덩이보다 큰 하얀 팬티엔 노란 오줌때가 선명하다.

화진이는 어떻게 그 매운 냄새를 뚫고 이곳까지 왔을까?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다.

 

다시 가을이 왔다. 대학교 뒷산의 나뭇잎들은 바스락거리며 서로의 마른 몸을 비벼댔다. 가을이 되면서 우리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화진이가 김포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화진이가 꼽추 할머니에게서 샀던 병든 병아리는 용케도 닭이 되었다. 화진이가 이사를 가던 날, 그것을 내게 주었다. 새까만 계집애는 절대 울지 않았다. 그런데 비틀어쥔 닭날개를 내밀 때 화진이의 새가슴이 쌕쌕거리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화진이도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애 목구멍으로 자갈돌이 움직이는 것이 선명했다. 그날 저녁, 나는 닭고기를 먹었다. 몹시 슬펐다.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상도동은 재개발지구로 묶였다. 재개발지구 때문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외치던 목소리들이 줄어갔고, 집들은 자꾸만 허물어져갔다. 그리고 한강대교까지 연결되는 상도터널을 만들기 위해 이화약국 앞은 언제나 사람들과 차와 소음으로 붐볐다.

아빠는 상도터널 준공식이 있던 날, 우리 가족을 데리고 치킨집에 갔다. 상도터널만 뚫리면 장승백이로 돌아서 가던 노량진 수산시장을 터널을 통해 빨리 갈 수 있어서 좋고, 장사도 더 잘될 것이라며 파티를 열자고 한 것이다. 아빠는 돈 많이 벌어 우리도 더 넓고 좋은 아파트로 이사가자며 엄마와 소주잔을 부딪쳤다. 엄마는 연신 터져나오는 웃음을 한손으로 가리며 아빠의 잔이 비기가 무섭게 술을 따랐다. 아빠는 기분이 몹시 좋아서 술에 취했다. 나도 오랜만에 치킨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빠는 다음날도 술에 취해 돌아왔다. 조합에서 상인들의 점포 보증금을 인상했다고 했다. 그러나 매출금액과 상관없이 절대인상을 했기 때문에 아빠에게는 매우 불리하고 부당한 일이라고 했다. 시설개선을 위해 불가피한 인상이라고는 하지만 형평성 없는 인상은 인정할 수 없다고, 아빠는 어려운 말로 술주정을 했다. 그후로 아빠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오토바이에 깃발을 달고 다녔다. 딸딸딸딸따따, 아빠가 언덕길을 올라올 때 흙먼지와 함께 깃발도 휘날렸다. 아빠도 대학생들처럼 데모를 한다고 했다. 군인들이 매운내 나는 총을 쏘며 집으로 쳐들어올까봐 겁이 났다. 나는 대학생들처럼 돌멩이를 주워 아빠의 오토바이 뒤에 묶어두었다.

찬바람이 불면서 정환이 역시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많이 아프다고 했다. 어른들은 어린것이 불쌍하다며 혀를 끌끌 찼지만, 나는 쿡쿡 웃음이 났다. 방공호에서 모양도 없는 내 젖꼭지를 죽자살자 빨아대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이 되어도, 다시 가을이 지나고 또 봄이 되어도 정환이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4학년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봄이다. 나른한 햇살 속에 뿌옇게 피어오르는 매운 연기. 대학교 운동장에 메아리처럼 울리던 군인들의 군홧발 소리와 구호가 사라진 대신, 청색제복을 입은 전경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러나 굳게 닫힌 대학교 철문은 다시 열렸고 예전처럼 운동장을 드나들 수 있었다. 우리가 소꿉놀이를 하던 모래밭은 텅 비어 있었지만, 한창 유행하는 ‘스카이 콩콩’으로 운동장엔 수많은 게구멍이 뚫렸다. 스프링이 달린 긴 쇠막대에 발을 올려놓고 콩콩 뛰면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스카이 콩콩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섞여 운동장을 어지럽혔다.

나는 키큰 귀목나무 아래 웅크리고 있는 장갑차를 바라본다. 그것이 장갑차라는 것은 최근에 안 사실이다. 중학교 2학년인 탄일이 오빠는 그것의 이름이 바로 장갑차라고 했다. 벙어리장갑처럼 둥글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빠는 적탄을 막기 위해 차체를 강철판으로 무장했다고 해서 장갑차라고 했다. 어쨌든 둘 다 맞는 얘기인 것 같았다.

장갑차는 연탄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통 검은색이다. 귀목나무의 넓은 그늘에 더 검게 찍혀지는 장갑차의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굴처럼 보인다. 지하로 깊은 굴을 파놓고 그 굴속에서 전경들이 겨울을 보내다가 봄만 되면 지상으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장갑차의 문이 어디에 달렸는지 알 수가 없다. 앞뒤가 똑같이 생겨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장갑차가 움직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흙바닥에 장갑차를 그린다. 방공호처럼 둥근 차체를 그리고, 오른쪽 앞에 운전대를 그린다. 바퀴와 창문을 그리고 나서 귀목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장갑차를 바라본다. 흙바닥에 그린 장갑차와 전혀 딴판이다. 나는 창문을 지운다. 어디서 왔는지 창문이 지워진 자리에 메뚜기 한마리가 폴짝 뛰어오른다. 아이들이 대학교 뒷산에서 메뚜기나 여치를 잡아 운동장에서 가지고 놀다가 버린 모양이다. 메뚜기는 한쪽 날개가 반쯤 뜯겨져 있다. 반쯤 뜯겨진 날개 때문인지 메뚜기는 뛸 때마다 자꾸 한쪽으로 기운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은 메뚜기는 다시 뛰어오른다. 나는 뛰어오르는 메뚜기를 발로 밟아버린다. 발밑에서 아그작 소리가 난다.

 

아빠의 오토바이는 박살이 났다. 오토바이뿐만이 아니라 메뚜기 같은 아빠도 함께 작살이 났다. 수산시장에서 함께 장사를 한다는 아저씨들이 고철이 된 오토바이와 피투성이가 된 아빠를 떠메고 왔다. 보증금 인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영세상인들이 조합사무실 앞에서 몇날며칠 진을 치고 있었는데, 조합원들이 상인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팔던 생선을 수거해갔다고 한다. 그 일로 상인들과 조합원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고 그중 한명의 상인이 생선칼로 조합원을 찔렀다고 했다. 깊은 상처는 내지 않았지만 칼을 휘두르던 상인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린 후 불을 질렀고, 불에 타는 그 상인을 보며 아빠는 오토바이를 몰고 그대로 조합사무실을 향해 돌진했다고 한다.

아빠의 오토바이는 여전히 공터 고물상 리어카 옆에 놓여 있다. 우리 다섯 식구를 모두 태우고 신나게 달리던 오토바이는 고철이 되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예전에 장사를 쉬는 날이면 아침부터 우리는 놀이공원에 가자고 엄마 아빠에게 보챘다. “어딜 가고 싶은데?” 아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룡열차 타러요” “귀신의 집이요” 하면서 우리들은 다투어 재재거렸다. 달짝지근한 단무지 넣어 만든 김밥을 싸가지고 우리 다섯 식구는 오토바이에 아슬아슬하게 올라탔다. 아빠가 제일 먼저 타고 그 뒤에 작은언니가 그리고 아빠 앞에 있는 주유통 위에 나를 앉힌 엄마는 작은언니 뒤에 앉았다. 아빠가, “바짝 당겨앉아” 하면 작은언니와 엄마가 아빠에게 착 달라붙었다. 마지막으로 큰언니가 엄마 뒤에 올라타면 아빠는 “출발!”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오토바이가 파르르 떨며 출발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식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설 때마다 “써커스가 따로 없네” 하며 웃었다.

오토바이는 딸딸딸딸따따, 하면서 상도터널을 지났다. “자, 불꽃놀이다!” 아빠가 소리치면 나는 뒤를 돌아봤다. 터널 불빛에 어룽거리는 아빠의 얼굴이 여러가지 색깔로 빛났다. 터널을 빠져나와 “이번엔 청룡열차야. 꽉 잡아!” 하면서 오른쪽으로 획 돌아 속도를 높였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악!” 소리를 질렀다. 신호에 걸려 오토바이가 멈추면 큰언니는 “그럴 줄 알았어. 또 국립묘지에 가는 거지?” 하며 내린다고 투정을 부렸다. 엔진 진동 때문에 오줌이 마려운 나는 “빨리빨리!”를 외쳐댔다. 아빠는 “출발!” 또 소리를 치며 달렸다. 큰언니 말대로, 놀이공원으로 갈 줄 알았던 오토바이는 동작동 국립묘지로 향했다.

국립묘지 어귀부터 아빠는 경건해졌다. “근데 귀신의 집은 없잖아?” 하면서 나는 아빠를 잡아당겼다. 아빠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대며 “쉿, 여기 무덤 속에서 밤마다 귀신들이 나와” 했다. 아빠는 국립묘지에 올 때마다 늘 같은 말을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전쟁이 나면 오토바이에 우리 식구를 모두 태우고 꽁꽁 묶어둘 거라고 했다. 피난갈 수 있을 만큼 가다가 못 가서 죽더라도 가족끼리 흩어져서는 안된다고.

놀이공원에 가지 못해 늘 아쉬움이 남던 나들이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꼭 치킨을 사주셨다. 큰언니의 불만은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계속되었지만 작은언니는 엄마와 아빠 사이 자리를 차지해서 좋았고 나는 치킨을 먹어서 좋았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 식구가 함께 나들이를 해서 좋았다고 했다.

더이상 우리 식구를 태우고 달릴 수 없는 오토바이는 그저 고철일 뿐이다. 달빛 아래 웅크리고 있는 오토바이는 귀신조차 살지 않는 무덤처럼 흉물스럽다. 고물상 아저씨는 호시탐탐 아빠의 오토바이에 눈독을 들이지만, 다리 한쪽을 절뚝이게 된 아빠는 술에 취하면 언제나 오토바이를 붙들고 운다. 아빠는 죽은 사람은 있는데 왜 죽인 사람은 없냐며, 죽은 아저씨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나는 아빠의 말뜻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방공호에서 내 가슴에 상처를 낸, 그러나 보이지 않던 그 벌레가 떠올랐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아빠가 불쌍하다며 이야기도 들어주고 같이 술도 마셔주었지만 계속되는 아빠의 울음소리에 지금은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른다. 나는 그런 아빠가 부끄럽고 창피해서 공동변소에 숨었다가 사람들이 안 보이면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아빠가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숨고 싶다.

 

나는 발밑에 짓눌린 메뚜기를 흙으로 덮어버린다. 흙 위로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나는 소매로 눈을 훔치려고 팔을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친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그만 숨이 턱 막힌다.

“뭘 그렇게 놀라니?”

전경은 내 뒤통수를 몇번 쓰다듬는다. 그리고 장갑차를 향해 걸어간다. 그는 줄인형처럼 팔을 우스꽝스럽게 흔든다. 나는 그의 뒤통수를 쳐다본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외쌍꺼풀의 귀여운 눈을 찡끗거린다. 그리고 장갑차 앞에 멈추어서더니 차체의 한 면을 들어올린다. 문이 활짝 열린다. 깊고 어두운 굴의 입구가 열린 것이다. 그는 장갑차 안으로 사라진다. 장갑차는 검은 독수리가 한쪽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안으로 사라진 전경은 한참이나 나오지 않는다. 나는 장갑차 쪽으로 몇걸음 떼어놓다가 멈춘다. 장갑차 안에서 전경의 머리가 나온다.

“꼬마야, 이거 타보고 싶어? 이리 와, 태워줄게.”

전경이 크게 손짓을 한다.

“난 꼬마가 아니에요.”

나는 뱃심을 주고 소리를 지른다. 그는 다시 안으로 사라진다. 우리 동네를 지켜주기 위해서 온 거래…… 정환이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천천히 장갑차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장갑차 내부는 시시하다. 장갑차 안에는 기차처럼 마주보는 철제의자가 놓여 있고 안쪽으로는 두어 개쯤 되는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의 끝에는 사람 몸이 빠져나갈 만큼의 구멍이 뚫려 있다. 끝도 없이 지하로 연결된 굴을 상상했지만 장갑차는 골방 같다. 순간 숨기에 딱 좋은 이런 골방 하나 있었으면 싶었다.

전경은 냄비에 라면을 끓이고 있다. 나는 안을 기웃거리며 몇번이나 마른기침을 한다. 그러나 그는 엉덩이만 보이며 라면 끓이기에 열중한다.

“에계? 총도 없네!”

전경에게 들리도록 부러 큰 목소리로 말한다. 그는 한번 돌아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만 한다. 나는 장갑차 안에 발을 들여놓으며 괜스레 떠들어댄다. 그동안의 호기심과 공포에 비해 장갑차 안이 형편없다는 실망감에서였기도 했지만, 멋쩍게 들어가는 내 모습을 감추고 싶었다. 라면 끓이는 작은 냄비에서부터 한쪽에 잘 개켜 있는 군용모포, 빨랫줄에 널어놓은 국방색 러닝셔츠가 마치 소꿉놀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아저씨는 이 안에서 소꿉놀일 하나봐요?”

“그래, 너도 시켜줄까?”

“내가 뭐 어린앤가…… 근데 총은 없어요?”

그는 내 뒤통수를 몇번 쓰다듬더니 내게 젓가락을 쥐여주고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내가 두 젓가락 정도 먹고 있는데 그는 벌써 후루룩 국물을 마신다.

라면을 다 먹고 난 그는 나를 운전석으로 데려가 숫자가 많이 적힌 기계들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장갑차가 앞으로 갈 때와 뒤로 갈 때 무엇을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그의 귀여운 외쌍꺼풀과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만 본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엔 둥근 보름달이 떴다. 그는 계단 위로 올라가 무동을 태워 내게 바깥을 보여준다. 둥근 보름달이 손끝에 닿는 듯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와 나를 내려놓고 총 대신 기타를 꺼낸다. 그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 기타줄을 퉁긴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설은 타향에 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서러워 그리워라 나 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형제…… 그의 목소리는 굵지만 맑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기타소리는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숨을 참느라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나는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침을 조금씩 나누어 삼킨다. 그는 노래를 부르다가 목이 막히는지 천장을 바라보며 큼큼 기침을 한다. 그는 주먹을 쥐어 입으로 가져가 몇번인가 기침을 하는 듯하더니 주먹을 슬그머니 눈가로 가져간다.

“무슨 노래가 그렇게 슬퍼요? 이번엔 내 차례예요?”

나는 벌떡 일어나 주먹을 쥐어 마이크 잡는 흉내를 내며 엉덩이를 흔든다. 가슴이 찡할까요 정말로 눈물이 핑 돌까요 정말로 나는 아직 사랑이란 모르지만 난난난 믿는 것은……

그가 갑자기 나를 세게 끌어당겨 안는다. 숨이 막힌다. 나는 춤을 출 때처럼 온몸을 비틀며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그럴수록 그의 팔은 더 세게 나를 조인다. 라면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나는 침을 삼키며 발버둥을 친다. 그에게서 오랫동안 옷장 안에 넣어둔 겨울옷 냄새가 난다. 그의 까칠한 턱이 내 얼굴을 비벼댄다. 그리고 입 안으로 혀가 들어온다. 딱딱하고 커다란 혀가 목젖을 건들자 자꾸 구역질이 난다. 입 안에 고였던 침이 줄줄 흐른다. 그의 손이 등속으로 쑥 들어와 할퀴듯 쓰다듬는다. 그러다 다시 앞가슴으로 와서 젖무덤을 꾹 누른다. 아프다.

나는 이제 어린애처럼 모양도 없는 젖꼭지가 아니다. 팥알만한 젖꼭지가 생겼고, 알밤만한 멍울이 진 연분홍 가슴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겨드랑이까지 욱신욱신 쑤신다. 깊고 뜨거운 입 속으로 내 가슴이 빨려들어간다. 모든 피가 젖꼭지로 몰려 용암처럼 콸콸 넘쳐흐를 것만 같다. 정환이가 떠오른다. 입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곧 미끄러져나오는 내 젖꼭지를 안타깝게 빨던 모습이. 나는 군용모포를 꼭 쥔다. 모래 밥과 잎사귀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들고 뒷산 도랑을 건너 소풍을 갔던, 그 어느 때인가를 떠올리며 지금은 소꿉놀이를 하는 거라고. 그뿐이라고.

나는 엄마처럼 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긴다. 그도 아기처럼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젖가슴이 찢어질 것같이 아파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니 화진이가 보고 싶고 정환이도 보고 싶다. 나는 소리를 내어 엉엉 울어버린다.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운다. 가슴에서 굵고 끈끈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다. 그 울음소리는 고철이 된 오토바이를 붙들고 울던 아빠의 울음소리와 닮았다. 공터에서 아빠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와 내가 운다. 그리고 아빠가 운다.

누군가 함부로 쥐었다가 놓은 듯한 열구름 속 보름달 아래, 오토바이와 장갑차가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