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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한민국의 오늘, 내일의 코리아
북핵협상 전망과 가스운송관
쎌리그 해리슨 Selig S. Harrison
현재 워싱턴 소재 국제정책연구소(The Center for International Policy)의 아시아프로그램 소장.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동북아 지국장 역임. 북한을 7차례 방문했고 고(故) 김일성 주석과의 2차례의 만남 가운데 두번째인 1994년 6월 7일자 만남에서 핵동결 구상을 제안함. 김일성 주석이 이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일주일 후 김일성과 지미 카터의 회담이 성사되었으며 김일성 주석은 이 회담에서 미국과의 협상기간 동안에 핵동결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고 이로써 북·미간의 대화가 성사되어 1994년 10월 ‘기본합의서’(The Agreed Framework)라는 결실을 맺음. 저서로 『한국의 최종담판: 통일과 미국 탈피를 위한 전략』(Korean Endgame: A Strategy for Reunification and U.S. Disengagement) 등이 있음. sharrison@ciponline.org
ⓒ Selig S. Harrison 2002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2
2003년 남북관계의 개선 전망은 북한이 핵무기용 농축우라늄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처음 밝혔을 때 여겨진 것만큼 어둡지는 않다. 2002년 10월 4일의 이런 폭로 이후, 핵농축 계획이 핵분열 원료를 생산하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며, 또한 미국이 북한측의 안보 우려를 제거해주고 경제적·정치적 관계 정상화 조치를 취하면 김정일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도 점점 더 분명해졌다.
남한은 북한이 현재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과,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협상하는 것이 미국과 남한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는 점을 미국에 납득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남한정부가 미국정부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견지한다면 남북관계가 좀더 개선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망은 불확실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2003년에 심각한 군사적 충돌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과 미국의 설명에 따르면,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2002년 10월 4일, 방북한 제임스 켈리(James Kelly) 미국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다음 사항을 제의했다.
•무기용 농축우라늄의 생산노력 중단.
•1994년 합의하에 폐쇄된 플루토늄 기반 핵시설에 관한 기존 안전조항의 지속적 준수.
•미국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사찰과 검증조치 수용.
강석주는 켈리에게 이에 대한 댓가로 미국이 다음 사항을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선제공격을 감행하지 않겠다는 공개적인 약속.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며 1953년의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의 체결. (휴전협정 이후 성명들은 ‘불가침’ 합의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외교관계 정상화 및 이로써 미국의 통제하에 있는 다자간 금융기구의 경제원조 통로의 개방.
켈리는 강석주에게 이런 제의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북한이 먼저 자신의 핵개발 계획을 폐기해야 하며, 그럴 때만이 미국은 북한의 관심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바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핵농축 계획이 1994년 북·미 기본합의서의 위반이며 따라서 이는 북한정부를 신뢰할 수 없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국의 협상 거절을 정당화하고 있다. 사실 북한은 기본합의서의 정신은 위반했지만, 그 조문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1994년 합의서에는 ‘핵 없는 한반도’라는 공동의 목표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당시에 존재하던 특정한 플루토늄 기반 핵시설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자신이 기본합의서의 두 가지 핵심조항을 이행하지 못했다. 관계정상화 조치(조항 2)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위협이나 사용”을 배제하는 “공식적 확인”(조항 3)이 그것들이다.
지난 9월 20일 발표된 부시행정부의 국가안보 독트린에서는 미국이 평화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어떤 나라에도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핵무기를 사용해서) 선제공격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조항 3을 거부한 것이다.
북한은 강력한 협상의 입지에 있다. 북한은 1994년 합의하에 봉인·저장된 폐(廢)연료봉에서 4개의 플루토늄 폭탄을 만들 수 있다. 강석주는 북한이 더이상 1994년 합의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켈리에게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폐연료의 재처리금지 조항을 아직 위반한 것은 아니다.
핵문제를 단호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1994년 합의의 핵심조항을 유효하게 유지하는 한편, 여타 조항을 재협상할 수 있도록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과 강석주 같은 그의 실용주의적인 참모들은 핵무기 개발을 원하는 군부 내의 유력한 강경파들과 맞서고 있다. 미국이 실용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1994년 합의서를 개정해야 한다.
1994년 합의서에 따르면 2기의 민간 전력생산 원자로가 2003년까지 건설되도록 되어 있으나, 공사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부시행정부 관리들은 이 프로젝트의 포기를 거론하고 있다. 남한과 일본은 포기에 반대하는데, 이는 이해할 만하다. 양국은 원자로 건설비용을 지불하기로 합의했고, 이 프로젝트에 각각 8억 달러와 4억 달러를 이미 지출한 바 있다.
미국은 2기의 원자로 건설을 포기하는 대신 1기로 축소하는 한편, 남북한 모두에 노다지가 될, 현재 논의중인 가스운송관 계획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해야 한다. 운송관은 원자로보다 더 빨리 완공될 수 있는데, 논의에서 추천된 운송관은 러시아 사할린 섬 인근의 가스 매장지대에서 시작하여 북한을 관통해 남한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현재 엑슨-모빌(Exxon-Mobil)과 일본측 파트너가 사할린의 가스채굴권을 관리하고 있는데, 백악관의 승인 없이 북한을 관통하는 운송관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한은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사할린산 가스를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은 운송관의 자국 영토 통과에 대한 댓가로 사용료를 받게 되는 한편, 그 운송관에서 가스를 끌어와 새 발전소나 비료공장의 연료로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운송관 가스와 핵발전소를 결합하여 유인책으로 사용한다면, 부시행정부는 북한이 핵 및 미사일 개발계획을 중지하고 적절한 사찰 및 검증조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경제적 지렛대를 갖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0년 동안 쓸 수 있는 가스 보유량을 지닌 시베리아의 거대한 잠재력에 비해 사할린 섬의 동부해안을 따라 지금까지 발견된 가스 매장지대는 규모는 작지만 러시아의 극동지역과 중국 동북부, 한반도, 일본과 같은 인근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에서는 상당히 중요할 듯하다.
확인된 사할린 가스 매장지대의 총규모는 9150억m³에 달한다. 이 지대는 동북부 해안 인근의 유전·가스 채굴지역 사이에서 거의 반분되는데, ‘사할린 I’이라고 알려진 북쪽은 엑슨-모빌이 주도하는 컨쏘시엄이 2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사할린 II’로 알려진 남쪽에는 셸(Shell), 미쯔이(三井), 미쯔비시(三菱)가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공산이 크다. 사할린 인근 해저의 탐사는 1978년 이래 진행되었지만, 러시아가 세금 및 규제 정책을 자유화하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지미르 뿌찐(Vladimir Putin)이 텍사스에서 부시 대통령과 만나 미·소관계의 전반적인 개선안에 서명한 2001년 후반까지만 해도 산발적인 개발에 그쳤다. 그런데 뿌찐이 부시의 텍사스 크로포드 농장을 떠난 직후 엑슨-모빌은 사할린 개발계획에 투여할 200억 달러 가운데 40억 달러를 향후 5년 내로 지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러시아의 단일 외국투자액 유치로서는 최대이다. 현재 2005년이나 2006년에 ‘사할린 I’에서 석유생산을 시작할 것을 요청하는 계획들이 있으나, 만약 남한이나 일본 중의 한쪽 혹은 양자가 사할린 가스운송관 건설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가스 가격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해준다면 엑슨-모빌은 가스 생산부터 시작할 것이다.
러시아가 ‘사할린 I’에서 북한을 관통하여 남한에 이르는 운송관 건설을 선호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운송관의 루트가 현재 가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사할린 맞은편 러시아 본토의 하바로프스끄·쁘리모르스끼-끄라이·블라지보스또끄 지역 주변을 지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들 도시는 안전상의 위험이 제기되는 체르노빌 식의 핵 원자로와 시베리아에서 원거리로 수송되는 값비싼 LNG에 의존해왔다. 초기에 이 도시들은 ‘사할린 I’에서 출발하는 운송관에서 그다지 많은 가스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스의 대부분이 엑슨-모빌 쪽의 운송관 사업을 수지맞게 할 정도의 가격 지불능력이 있는 남한의 소비자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 1조4천억m³에 달하는 또다른 미개발 가스지대가 사할린 III, IV, V로 알려진 새로운 채굴지역에서 탐사되고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인근 중국 동북부의 도시들, 특히 소비자뿐 아니라 석유화학 공장들이 거대한 규모의 가스 수요를 갖고 있는 하얼삔(哈爾濱)이나 따롄(大連)은 물론 운송관 루트의 주변에 있는 러시아 도시들에게도 필요한 만큼 나눠줄 가스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최대 운송관 건설업체 로즈네프뜨 가스회사(Rozneftegaztroy)의 부회장인 미하일 리삘린(Mikhail Lipilin)은 “엑슨이 사할린에서 남한에 이르는 운송관에 대해 진지하게 임한다면, 이 운송관이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전략적 이익의 관점에서나 우리 극동지역의 가스화라는 관점에서나 장기적으로는 모두 국가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러시아는 이를 지지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INEMO)의 태평양 연구 책임자인 알렉산드르 페도로프스끼(Alexandr Fedorovsky)는 러시아가 비록 현금이 부족하지만 여러가지 방식으로 이 프로젝트의 재정적 기반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제안에 따르면 러시아는 남한에 대한 17억 달러의 부채를 부족한 외국환으로 지불하는 대신 정부 통제의 기업들에게 송유관 공사의 일부를 떠맡기거나 일정한 몫의 가스를 제공함으로써 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부 시베리아의 꼬비끄따와 ‘사할린 I’에서 각각 시작되는 운송관들의 정확한 루트나 그 용량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사할린 가스가 꼬비끄따 가스나 LNG보다 값이 싸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얼마나 더 쌀 것인지는 두고볼 일이다. ‘사할린 I’에서 시작되는 운송관은 한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서울 근처에서 끝날 것이므로 1900마일을 넘지 않을 것이다. 서울 근처에서 이 운송관은 남한의 기존 가스관 연쇄망과 연결될 것이다. 이 운송관은 4년 내에 지을 수 있으며 27억 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르꾸쯔끄 인근의 꼬비끄따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된 또하나의 운송관 루트는 한반도의 서해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인천에서 끝날 것인데 그 길이는 3000마일을 상회할 것이며 건설비도 약 1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꼬비끄따 운송관이 북한을 가로질러 남한으로 오리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 부시행정부가 그런 가능성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곧 퇴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간 경제협력을 공고히하고 북한정부의 에너지 위기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한 한 방법으로 북한을 통과하는 루트를 선호했다. 그러나 남한 내의 김대통령 비판자 가운데는 그 운송관이 딴뚱(丹東) 남쪽에서 방향을 선회하여 따롄으로, 그리고 거기서 황해 해저를 거쳐 곧장 인천으로 연결됨으로써 북한을 우회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설령 그것이 이 루트에 250마일을 더 추가하는 꼴이고 특히 육상보다는 해저에서의 운송관 매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공사비가 훨씬 비싸지는데도 말이다. 남한은 2000년 12월 중국에 북한을 경유하는 루트를 지지해주기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고 중국국영석유공사의 총감독인 쟝신(Zhang Xin)이 뻬이징(北京)에서 내게 말한 바 있다.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비록 몇몇 남한사람들이 우리한테 찾아와서 자기네들은 해저 루트를 선호한다고 말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해저 루트가 정치적인 위험부담이 덜하다고 생각하지요. 미국인들처럼 그들은 운송관이 북한을 통해 들어오면 남한에 큰 위협이 될까봐 두려운 것이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 자신은 꼬비끄따 프로젝트에 냉담하다. 모스끄바 주재 북한 대사관 상무관인 구송복은 중국의 가스 수요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추세임를 감안하면 중국정부가 꼬비끄따 가스를 한반도에 보낼 용의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논평했다. 중국정부가 단기적으로 어떤 약속을 하든 “세월이 가면 북한과 남한에 보낼 것이 거의 남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남한의 한국가스공사는 북한정부에 두 명의 사절을 보내 북한의 석유담당 관리들에게 꼬비끄따의 최근 진척상황을 알려주고 가능한 운송관 루트에 대한 예비조사를 수행했다. 북한 관리들은 사업 실행가능성 연구가 내년 6월에 완성될 때까지는 꼬비끄따 프로젝트에 대해 마음을 열어두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북한은 사할린에서 연결되는 운송관을 강력히 선호하며 이런 뜻을 러시아에 거듭 전달했는데, 가장 최근의 경우는 지난 8월 김정일이 블라지보스또끄에서 뿌찐 대통령과 가진 4번째 회담 때였다.
지난 10월 4일 북한의 폭로가 있기 오래 전부터 많은 관측자들은 부시행정부가 결코 원자로를 지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왔고 경제적인 이유로 원자로 계획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어쨌든 북한이 원자로 계획을 포기하고 핵 및 미사일 능력에 관한 미국의 요구에 따르기로 한다면 미국은 운송관 지원을 제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거래의 가장 명료한 제안은 세계은행의 동아시아 수석고문인 브래들리 뱁슨(Bradley O. Babson)에게서 나왔다. 뱁슨은 2002년 3월 6일 서울의 한 회의에서 1994년 북·미 핵동결 합의가 “위기로 향할 공산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뱁슨의 말에 따르면 위기는 세 가지 우연한 요인들 가운데 어느 하나 혹은 그 모두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사찰문제를 놓고 막다른 길에 봉착하거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회원국들(남한, 일본, 유럽연합과 미국)이 원자로 완공비용을 지불하기를 꺼리거나 혹은 가장 확률이 높은 것으로는 원자로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송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배전반(配電盤) 비용을 KEDO 회원국들이 대주기를 거부하거나 하면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뱁슨은 북한측이 은밀한 핵무기 개발노력을 시인함으로써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고는 선견지명이 있었는데 그는 북한과의 협상안을 하나 제안했다. 미국은 지금 뱁슨의 협상안을 채택하되 그 주요 대목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뱁슨의 제안에 따르면 만약 북한이 자국의 핵 및 미사일 개발계획을 포기했음을 미국에 만족스러울 만큼 납득시킨다면, 미국정부와 다자간 개발은행은 운송관 자체의 건설뿐 아니라 가스를 원료로 하는 발전소, 가스에 기반한 비료공장의 건설과 북한의 기존 배전반 재건에 드는 자금까지 조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북한을 관통하고 남한의 시장에 기여할 가스운송관을 건설하자는 발상은 단지 지역의 에너지 협력을 통해 남한의 향후 가스 수요를 충족시키자는 관점에서뿐 아니라 그것이 남북관계를 변화시키고 지역안보라는 좀더 큰 목적을 진척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고 뱁슨은 결론지었다.
동북아 에너지 문제의 선도적인 전문가이자 『동북아의 가스와 석유』(Gas and Oil in Northeast Asia, 국제관계 왕립연구소 간행)의 저자인 백근욱은 원자로 건설비용(49억 달러)이 사할린 운송관 건설비 27억 달러를 크게 초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엑슨-모빌이 가스 공급가격과 연간 구입량에 관해 남한과 합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면서, 가스 공급은 아마 원자로가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을 시작할 시기보다 훨씬 전에 개시될 수 있으리라고 덧붙인다. 일단 다가오는 여름에 사업 실행가능성 연구가 완료되면 남한정부는 사할린 가스가 훨씬 쌀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엑슨-모빌과의 협상은 내년 연말 즈음에는 끝나고 2006년 말까지의 운송관 완공과 때맞추어 예정대로 가스 생산을 시작하는 길을 터주리라는 것이다.
많은 관측자들처럼 백근욱은 북한의 노후한 배전반이 2기의 원자로에 의해 생산되는 2000메가와트의 전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새로운 배전반을 전국적으로 건설하는 비용이 2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지역 단위의 소규모 송전체제와의 연계하에 가스운송관 루트를 따라 250메가와트짜리 가스연료 발전소들의 연쇄망을 건설하는 비용보다 훨씬 큰 것이다. 남한의 한국중공업에서 만든 가스연료 터빈의 2002년 가격에 근거하여 계산한 결과 그는 이런 발전소 하나와 그와 연계된 지역 배전반의 비용이 약 1억6500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인구밀집지역들을 8기의 발전소로 감당한다면 그 가격은 13억2000만 달러에 달하지만 그것들 모두를 한꺼번에 건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럽의 선도적인 엔지니어링 업체인 스위스의 ABB(Asea Brown Boveri)와 독일의 지멘스(Siemens)는 스스로 발의하고 비용을 들여서 북한의 기존 배전체계와 장래 에너지 수요에 관한 연구를 광범위하게 수행했다. 그들의 추론에 따르면, 지금은 비록 북한이 전력 결핍상태지만 미국·일본·남한의 안보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좀더 포괄적인 화해의 일환에서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완화시키는 다자간 원조가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2기의 KEDO 원자로와 연결된 새로운 전국적 배전반 건설을 통해서건 사할린에서 운송관으로 연료를 공급받는, 지역단위의 배전반을 갖춘 가스연료 발전소 건설을 통해서건 아니면 양자의 결합된 형태를 통해서건 말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운송관 가스와 핵발전 가운데 양자택일을 할 필요는 없다. 북한과 남한 그리고 통일한국의 점증하는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양자가 모두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관점에서 남한과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저지하느냐는 것이다. 내 소견으로는 이를 위한 최상의 방법은 1994년 기본합의서를, 핵무기 개발노력을 중단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사찰체제를 댓가로 운송관 가스와 축소된 핵발전 개발계획을 결합시키는 새로운 합의로 대체하는 것이다.
1994년 합의서의 수정안이 운송관 가스를 선호하여 핵 원자로 2기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라면 그런 수정에는 남북한 모두가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KEDO의 참여 약속을 원자로 2기가 아닌 1기로 축소하는 것이 핵발전에 관한 합의를 궤도에 계속 올려놓는 것이라면 이는 양국 모두의 이해관계에 부합될 것이다.
이런 타협안이 미국 쪽에 매력적일 수 있으려면 북한정부가 기본합의서의 기존 조항–원자로 프로젝트가 완공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플루토늄 생산을 위해 설계된, 현재 동결중인 핵시설을 해체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충분한 사찰 안전조치하에 농축우라늄 취득노력을 종식시키려는 새로운 조항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나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을 통해 1994년 이전에 얼마나 많은 핵분열 물질이 축적되었는지를 결정하도록 하는 기존 조항 이상의 것을 해야 할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기본합의서에서 요구한 것보다 훨씬 조기인 지금 즉시 이런 사찰들이 시작되기를 원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만약 사찰 일정표가 원자로 건설의 진척도와 연계되기만 한다면 북한이 그런 가속화된 사찰을 수용하리라는 것이다. 그 대신 미국은 북한을 관통하는 엑슨-모빌의 가스운송관 계획에 대한 반대를 철회하고, 운송관을 따라 건설되는 가스연료 발전소, 배전반 그리고 비료공장에 대한 다자간 지원을 격려하며, 원자로와 운송관의 완공 때까지 북한에 대한 KEDO의 임시 에너지 원조를 지지하는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북한에 강화된 핵사찰과 함께 원자로 2기 대신 1기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미국 내에서 정치적 승리로 제시될 수 있으며, 특히 클린턴이 1994년 합의서에서 그렇게 어렵지 않은 조건으로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내주었다는 공화당의 비판이 어느정도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정부로서는 기본합의서가 고(故) 김일성과 현재 북한 지도자인 그의 아들 김정일이 개인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사안이기 때문에 원자로 가운데 하나라도 세워서 가동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으로 최우선 과제이다. 똑같이 중요한 것은 일본과 한국 양국이 대규모의 민간 핵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원자력을 과학기술 지위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과 남한처럼 북한 역시 에너지원 가운데 원자력을 포함해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를 원한다. 또하나의 요인은 북한이 7500명의 핵기술자 군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가 러시아에서 훈련받은 이 핵기술자들은 1994년 합의 이후 줄곧 할 일 없이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오면서 금호의 KEDO 원자력 단지가 완공될 때 생길 새 일자리를 고대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 KEDO 계획에 대한 지지의 일부는 원자로 건설 계약에 투자하여 거기에 이해관계가 상당히 걸려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남한이 2002년 후반까지 원자로에 이미 사용한 8억 달러 외에도 남한 회사들이 앞으로 있을 공사에 총 23억 달러의 계약을 예약해놓은 상태이다. 미국 국무부의 한 관리가 논평했듯이 “이미 뇌물까지 다 먹인 상태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반쪽이 더 나을 것이며, 이제껏 남한이 지출한 돈은 현장의 기본시설 및 첫번째 원자로에만 들어갔다.
남한은 원자로들이 언젠가는 통일한국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기에 KEDO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KEDO에 마지못해 10억 달러의 투자 약속을 했으며 자기 의무를 수행하는 데 계속 늑장을 부렸다. 일본이 보기에는 북한이 핵 안전기준을 준수하리란 점을 확신할 수 없으며 일본정부는 자국의 뒷마당에서 또다른 체르노빌 사태가 터질까 두려워한다. 일본은 이 프로젝트에 이미 4억 달러를 썼기 때문에 이것이 완전히 폐기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겠지만, 남한과 마찬가지로 이 프로젝트를 하나의 원자로로 한정하는 타협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공기업인 일본석유자원개발주식회사(JAPEX)는 ‘사할린 I’에서 엑슨-모빌의 주된 파트너로서 이 프로젝트에 30%를 투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2002년 9월 16일 코이즈미(小泉) 수상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이 북·일 정상화로 나아간다면, 일본은 북한과의 화해의 일환으로 ‘사할린 I’에서 북한을 거쳐 남한에 이르는 운송관 계획을 지지할 공산이 크다.
기본합의서를 재협상하는 것이 2003년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관건이 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북·미간 쌍무적인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한국전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1953년의 휴전협정을 대체할 때까지 임시변통의 조치로서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협정을 맺어 북한측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주도록 남한은 미국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 이런 북·미간의 협정이야말로 별개의 남북간 협정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게 될 이 남북간 협정은 1953년 휴전협정과는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반세기 전에 이승만은 휴전협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했고, 미국이 미군의 한반도 주둔 약속–그후 언제 끝날지 모르게 되어버린–은 물론 현재 싯가로 20억 달러 이상의 대한(對韓) 경제적·군사적 원조로써 그를 구워삶은 연후에야 비로소 그것에 따르기로 동의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10월 4일 강석주의 대미 평화제의의 가장 의미심장한 측면은 그가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요청한 것은 북한에 대해 핵 선제공격을 포함한 어떤 선제공격도 감행하지 않겠다는 미국측의 약속이다. 만약 미국이 그런 약속을 거부한다면 북한 장성들의 핵 억제력 개발 주장도 이해할 만한 일이며, 한반도의 계속되는 긴장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부시행정부와 그의 남한 내 지지자들에게 있을 것이다.
[姜美淑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