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 | 대한민국의 오늘, 내일의 코리아

 

미국 ‘신경제’의 종언과 한국경제의 향방

 

 

전창환 全鋹煥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본지 114호(2001 겨울)에 「테러 전후의 미국경제」 발표. 편저로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공편) 『현대자본주의의 미래와 조절이론』 등이 있음. jch6577@hanshin.ac.kr

 

 

1. 문제제기

 

90년대 전세계가 심각한 디플레와 외환·금융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동안, 미국은 ‘신경제’의 화려한 실적을 앞세워 자유시장경제의 구현이라는 미명하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경제가 IT공급과잉, 주가하락, 회계부정 등에 휘말리면서 신경제의 위력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권위는 크게 약해졌다. 그 대신 부동산 거품 부풀리기와 노골적인 군사화가 한창이지만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더 우려해야 할 것은 외환·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의 변화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물론 외환·금융위기 이전에도 한국경제가 미국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위기 이후는 강도나 속도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1999〜2000년의 신속한 경제회복을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 성과로 돌리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최근 2년 동안 한국경제의 부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필자는 외환·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IT산업의 국제분업구조=IT공급연쇄, 한미 주식시장의 동조화, 그리고 엔/달러 환율의 변동에 취약한 동아시아 달러본위제를 매개로 미국경제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우선 엔론사와 월드컴사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크게 흔들리는 미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러 각도에서 짚어볼 것이다. 이어 위 세 가지 매개고리를 통해 급속한 회복 이후 부진을 보이고 있는 한국경제의 최근 실상 및 구조적 문제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미국 ‘신경제’의 종언

 

(1) 이중거품(IT·주가)의 붕괴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동요

70년대 미국은 대내외적 금융규제를 필수적 제도형태로 필요로 했던 포드주의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로 돌파하고자 하였다. 전후 미국의 황금기에는 금융에 대한 대내외적인 규제로 인해 주식·채권·예금 등의 금융자산 보유와 금융자본의 축적기반이 지금에 비해 현저히 제약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낮은 인플레와 높은 생산성으로 금융수익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에 금융규제에 대한 이들의 불만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걸쳐 급속한 인플레와 제조업분야에서의 수익성 저하가 금융적 수익성 저하를 초래하자, 이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포드주의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인플레 압력이 70년대 초반부터 강력하게 나타나면서 가계의 자산보유구조에서 예금 대신 주식 등 인플레 헤지(hedge)가 가능한 금융자산 보유가 크게 증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1 특히 포드주의 황금기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개인주주들이 기존의 소극적인 금리생활자 지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익옹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금융기관들도 금융자산 보유자들과 주주들의 이런 요구에 적극 부응하여 기존의 금융규제들을 철폐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금융자산 보유자와 금융자본의 이런 대응은 결국 뉴딜관료·경영자·조직노동자 간의 포드주의적 타협구조를 해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연·기금, 뮤추얼펀드 등 기관투자가들의 주식보유비율이 크게 증가한 결과, 이들은 주주의 이해를 대변하는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연·기금과 뮤추얼펀드의 펀드매니저들은 포트폴리오 투자의 운용실적을 높이기 위해 해당기업들에 주가 극대화를 철저하게 요구한다. 이로써 금융씨스템, 연금제도, 기업지배구조 등에서 주주가치극대화=주가지상주의가 확고한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경영자들은 주주가치극대화를 최우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경영자들에게 제공된 스톡옵션이 자신의 재산증식과 직결되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자연스럽게 주가중시 경영으로 기울어졌다. 심지어 종업원들도 기업연금·개인연금 등을 매개로 하여 모두 주식투자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이제 경제의 모든 주체들이 주가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경영자들의 주가지상주의가 대중들의 주식투자와 맞물리면서 여러 부작용과 폐해가 속출했다. 주가상승 그 자체가 지상목표가 되어버린 나머지 경영자들은 주가부양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았다. 90년대 후반 주가부양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이 전례없이 크게 성행했으며 다양한 형태의 합병·인수(M&A)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경영자들은 이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할 때에는 은행차입이나 채권발행에 의존하기도 했다. 분식회계나 회계조작의 유혹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주가지상주의 때문이다.

주가지상주의가 확산된 가운데 기관투자가들뿐만 아니라 개인투자가들은 IT관련투자가 생산성증대와 기업경영실적의 호전을 가져온다는 정체불명의 논리에 현혹되어 IT관련부문에 대규모로 자금을 투자하였다. 그 규모를 보면 1995〜2000년에 비금융부문이 은행융자와 채권발행을 통해 약 2조1천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그중 반 정도가 IT부문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는 90년대 특유의 주식수급 불균형(즉 마이너스의 주식 순발행=주식에 대한 항상적인 초과수요)에 따른 주가의 상승압력과 지속적인 저금리정책기조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2

주가가 최고정점에 달했을 때 주가수익비율은(PER)은 30 대 1을 웃돌았으며 역사적 평균수준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3 또한 그것은 20년대 말 대공황 직전의 주가상승 정도를 훨씬 앞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산가격의 속성상 주가가 무한정 상승할 수는 없다. IT관련 기술주에 대한 신화가 깨어지고 IT산업에서의 과잉설비투자로 해당기업들의 생산성 및 경영실적이 급속히 둔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봄 주가 대폭락을 계기로 한 미국경제의 급격한 쇠퇴에는 IT붐과 공급과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IT관련분야에서의 과잉설비와 수익성 저하로 2002년 상반기 벤처캐피털(VC)의 투자는 전기 대비로 50% 정도 줄어들었다. 2001년 벤처캐피털 전체의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 27.8%로 떨어졌는데 이는 1980년 투자수익의 기록개시 이후 최초의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엔론사와 월드컴사 등 IT관련기업의 회계부정사건은 연·기금, 뮤추얼펀드, 투자은행, 투자자문사=펀드매니저 등의 금융수익성 증대압력이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맞물리면서 야기된 것이다. 회계감사를 맡았던 감사법인이 분식회계를 은폐하고 회계조작에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또한 해당기업의 자문을 담당하는 투자자문회사가 감사업무를 겸해 회계분식을 엄격하게 감시하기 어려웠다.4 이로써 90년대 미국이 그토록 강조했던 글로벌 스탠더드의 권위는 일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80년대 창립 초기만 하더라도 보잘것없는 중소규모 기업이던 엔론사와 월드컴사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기업이 주식교환형 합병, 현금 인수 등을 통해 다른 기업들을 쉽게 합병·인수(M&A)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기업의 성장과정을 보면 이 기업들이 M&A의 마술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어떤 형태의 합병·인수이든 고주가가 그 필수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가능한 주가를 높게 유지하려고 한다. 신경제에서 많은 기업들은 회사의 운명을 걸고 주가를 부양하고 이 주식을 무기로 하여 합병을 추진한 것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속에서는 기업들이 실물경제의 힘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물경제의 금융화와 증권화를 통한 자본축적에도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 바로 여기서 회계부정이 발생할 소지가 생기게 된다.

엔론사는 M&A를 앞두고 특수목적회사(SPC) 또는 위장회사를 만들어 주가부양에 걸림돌이 되는 회계상의 여러 요소들(부채·부실자산 등)을 이전시켰다. 소위 부외(簿外, off-balance) 금융거래화가 이것이다. 특수목적회사는 외부자의 출자가 3% 이상일 경우 본사의 연결대차대조표 작성에서 빠질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본사는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부외 금융거래를 도모하는 것이다. 엔론사가 3000여개의 특수목적회사를 케이먼 군도 등 조세회피지역에 설립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월드컴사도 창립 이후 수차례에 걸친 기업합병을 통해 급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월드컴사는 엔론사처럼 본사와 특수목적회사 간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회계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수차례에 걸친 합병과 인수과정에서 자산의 과소 표시, 무형고정자산의 불계상(不計上) 등 독특한 방식으로 회계를 조작했다.

우리가 간과해서 안될 것은 최근 회계부정이 일부 몰지각한 경영자의 단독소행이 아니라 대형 금융기관과의 연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씨티그룹이나 JP모건-체이스 그룹 등 미국의 대형 복합금융집단은 엔론사 사건에서 현금흐름을 늘리고 부채를 은폐하는 댓가로 거액의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JP모건-체이스 그룹은 특수목적회사를 통해 파생상품거래를 활용한 엔론사의 증권거래나 금융거래를 은폐함으로써 엔론사 파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씨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 같은 금융지주회사 산하에 있는 투자은행은 M&A에 대한 자문을 통해 거액의 수익을 올렸고, 상업은행들은 고주가 주식담보로 발행된 회사채를 인수해 이것을 보험회사 등에 매각하는 업무를 통해 수익기반을 넓혔다. 경영악화 사실을 알면서도 일반투자가에게 엔론사 주식의 매수를 권유한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들도 넓게 보면 회계부정의 공범자이다.

1999년에 제정된 그램-리치-블라일리법(Gramm-Leach-Bliley Act)은 금융기관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법적·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했지만 그 결과로 대형화된 금융기관의 자정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회계부정사건은 90년대 급속히 대형화된 새로운 금융자본과 자본시장에 대한 과소규제의 산물이기도 하다.5 따라서 그것은 금융시장 실패의 중요한 단면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자유시장경제와 주주민주주의는 크로니-카지노(crony-casino, 연고-도박) 자본주의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6

 

(2) 국제 달러본위제와 흔들리는 ‘강한 달러’ 정책

국제 달러본위제에 기초한 달러의 패권은 90년대 냉전체제 붕괴 이후 군수산업의 구조조정으로 과점화된 군산복합체와 함께 21세기 미국 제국건설에 없어서는 안될 기둥이다.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체제 붕괴 이후 달러와 금과의 연계가 최종적으로 단절되고 환율이 불안정해지면서 국제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는 오히려 더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외환시장에서 통화간 교환의 매개수단 기능에서는 달러의 지위가 더 강화되었다. 유로화의 출현으로 국제 달러본위제에 균열이 생기긴 했지만 미국은 주요 선진국 특히 일본과의 긴밀한 환율·금리 협조를 통해 불안정한 달러본위제의 균열을 봉합해왔다.

달러본위제에서의 달러시세는 외환시장의 수급에도 큰 영향을 받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국 통화당국의 방침과 주요 선진국들의 정책협조이다. 이런 면에서 1985년 9월 약한 달러–엔고의 플라자합의(Plaza Accord)와 1995년 강한 달러–엔저의 역플라자합의(reverse Plaza Accord)는 큰 의미를 갖는다. 1995년 역플라자합의 이후 강한 달러-약한 엔의 기조가 굳어지면서 대미 주식투자·채권투자를 위한 자금유입이 크게 늘어났다. 동아시아의 위기 이후 미국으로의 주식자금 유입은 고주가와 함께 강한 달러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제 고주가=주가버블은 자연스럽게 강한 달러=달러버블로 이어졌다.

2000년 3월 주가 대폭락 이후에도 미국은 ‘강한 달러’ 정책을 견지했다. 하지만 회계부정사건 이후 특히 2002년 4월부터는 이 정책을 고수하기가 예전만큼 수월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최대수준인데다가 해외에서의 자본유입이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에 미국으로 유입된 해외민간자본의 규모가 9866억 달러로 동년 경상수지 적자(4447억 달러)의 2배 이상 되는 사상 최대수준이었지만, 2002년 상반기 동안 유입된 민간자본투자 규모는 이의 반 정도에 불과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대외투자도 급감하는 양상을 보인다. 2002년 1/4분기 미국의 대외투자는 139억 달러로 작년의 2158억 달러에 비해 대폭 감소하였다. 올해 중반 브라질·한국 등 신흥시장의 주가하락은 미국의 대외투자 감소에 크게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의 자본유입 감소를 반영하여 2002년 초 엔/달러 환율이 135엔에서 4월 이후 117엔으로 급속히 하락하면서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은 한풀 꺾인 것처럼 보였다. 이런 경향은 유로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이로써 7년 만에 ‘강한 달러’ 기조가 무너진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할는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의 국제적 자금순환구조상 강한 달러를 유지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미국으로의 자금유입을 늘리기 위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유럽과 일본이 금리를 인하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의 금리인상은 주가의 추가적 하락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경기를 부양하고 있는 주택버블마저 붕괴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설사 미국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유럽과 일본이 이에 보조를 맞춰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화 출범부터 강한 유로화를 선호해왔을 뿐만 아니라 재정규율과 화폐가치안정을 극단적으로 중시함으로써 금리인하에 매우 인색하다. 일본은 거의 제로금리 수준에 있기 때문에 더이상 금리를 내릴 여지가 없다. 따라서 올 4월 이후의 엔화·유로화 강세, 달러의 상대적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의 엔/달러 환율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만 남아 있다. 관건은 일본이 90년대 장기불황과 디플레에서 언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일본정부로서도 현재와 같이 부실채권의 처리 등 은행 및 기업구조조정이 지체되고 장기불황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엔화 강세경향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희미하게나마 살아나고 있는 경기회복세가 자칫 엔고에 따른 수출감소로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당국이 엔화 강세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디플레를 조장하는 내부 기업·금융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이 엔화 강세, 달러 약세를 수용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3. 미국 3중거품(IT·주가·달러)의 향방과 한국경제

 

(1) 미·일·한국·동아시아·중국의 IT공급연쇄

외환·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IT국제분업구조= IT공급연쇄 내에서 1998〜2000년 미국의 IT 투자붐과 고주가라는 세계경제의 여건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급속히 회복했다. 또한 대대적인 고용조정으로 인한 임금비용 삭감과 고금리 긴축정책의 조기수정, 그리고 외환·금융위기 이후 환율의 대폭적인 평가절하,7 1998년 러시아 위기와 LTCM 파산 이후 엔화 약세의 완화 등도 급속한 경기회복에 크게 기여했다.8

집권 초 김대중정부의 4대부문 구조조정정책은 여러 부작용과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이라는 특수한 여건으로 사회적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은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수반할 정도의 큰 저항 없이 추진될 수 있었다. 이 역시 조기회복에 일정하게 순기능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외환·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급속한 회복을 이룬 데에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IT붐과 IT관련제품 수입증대에 편승한 국내의 수출증대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8년 이후 경제성장률과 수출증가율 등의 주요 경제지표를 보면 외환·금융위기의 여파로 1998년에는 실질 GDP 증가율이 마이너스 6.8%였지만 1999〜2000년에는 10%에 가까운 성장을 달성했다. 수출도 1999년 2/4분기부터 그 이전 1년 동안의 마이너스 증가율에서 벗어나 20% 안팎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위기 이후 급속한 대미수출 증가와 경기회복이 한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등 위기를 겪었던 다른 아시아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위기를 겪지는 않았지만 벤처캐피털과 IT관련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대만·홍콩·싱가포르 등도 높은 수출증가율과 성장률을 기록했다9

둘째, 대만·싱가포르·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아시아국가들에서 IT관련제품의 수출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싱가포르와 대만의 경우 최근 이 비중이 각각 58.8%, 46.1%에 달하며, 한국의 경우 35.8%에 이르고 있다. 아세안(ASEAN) 국가 중에서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의 경우에도 그 비중이 55.6%, 70.9%에 이른다. 이는 1997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 IT공급연쇄 내지 IT산업에서의 국제분업구조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수출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차적 여건임을 보여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IT공급연쇄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 것일까? IT공급연쇄에서 중핵을 차지하는 미국은 IT산업의 중심을 하드웨어 쪽보다는 쏘프트웨어와 콘텐츠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10 그런데 미국은 IT산업에 필요한 제품을 거의 대부분 일본·동아시아닉스(NICs)·아세안·중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조달한다. 이는 미국의 IT관련제품 중 2/3가 일본·동아시아닉스·아세안·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데서 단적으로 확인된다.11 결국 미국은 IT관련제품의 생산거점을 동아시아닉스·아세안·중국 등에 두면서 동아시아와 글로벌 국제분업네트워크를 유지해나갈 것으로 보인다.12

미국의 IT제품 수입구조를 보면 우선 1990〜2000년 동안 중국과 아세안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10년 사이에 중국의 비중은 2.0%(금액으로는 15억 달러)에서 10.3%(금액으로는 262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아세안의 비중 증가세도 두드러진다. 둘째, 미국의 IT제품 수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국별로는 여전히 제일 높지만 그 비중은 1990년 37.1%에서 2000년 17.6%로 대폭 줄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의 지위가 쇠퇴한 결과라기보다는 90년대 일본이 국내생산-수출방식에서 중국이나 아세안에 대한 직접투자 내지 OEM생산을 통한 우회생산-수출방식을 채택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닉스 4개국의 경우 1990년에는 일본보다 비중이 낮았지만 2000년에는 일본을 앞지르게 되었다.

90년대 거품붕괴 이후 일본은 IT관련투자에 큰 힘을 쏟을 수 없었지만13 동아시아의 IT 생산네트워크에서 여전히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쏘프트웨어와 콘텐츠 쪽으로 주력업종을 옮기면서도 하드웨어에서는 동아시아 현지공장에 IT관련부품·자재 등 중간재의 생산과 수출을 맡기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일본도 간접적으로 미국의 IT관련 경기동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최근 일본의 주요 IT기업들은 중국 IT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중국시장을 겨냥함과 동시에 미국 및 동아시아로의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닉스는 일본보다 더 직접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IT공급연쇄에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IT관련 주력수출품은 이동전화 단말기, 무선통신기기, 노트북, 반도체 부품 등이다. 이들 품목은 상당부분 미국으로 수출되고, 나머지는 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으로 수출된다. IT관련 무역수지를 보면 대부분의 국가에 대해 흑자를 보이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대폭적인 적자를 보인다. 그리고 중간재 반제품 수입이 많은 말레이시아·대만·필리핀에 대해서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동아시아 전체를 보더라도 대미수출의 비중이 크지만 동아시아 역내 수출입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IT관련분야에서 동아시아 역내무역이 대부분 중간재 무역이라는 점이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동아시아 각국의 대미수출이 증가하면 이에 연동되어 동아시아 역내 수출입이 증가하게 된다. 최근 동아시아의 중국 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동아시아와 중국 간의 무역결합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도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변화이다.

또 IT관련 국제분업구조에서 중국의 지위가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9년 이후 중국의 IT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데에는 컴퓨터, 이동전화 등 일부 품목에서 탄탄한 내수시장기반이 큰 힘이 되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대만 등 동아시아국가들이 IT 생산거점을 대거 중국에 이전했기 때문이다. 대만과 싱가포르는 IT관련 대미수출의 감소에 따른 성장률의 대폭적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중국의 샹하이(上海) 등에 부품생산전문기업을 이전함과 동시에 여기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한국이 연구개발거점과 생산공장을 중국에 두려는 일련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국가별로 생산거점의 이전동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겠지만 중국시장과 양질의 저임금노동력, 외자계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등 광범위한 우대정책이 주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 IT공급네트워크는 몇가지 점에서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어 개선책이 시급히 요구된다. 첫째, 전체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IT관련투자와 소비가 미국의 나스닥주가와 직접 연동되어 있어 동아시아의 성장기반이 안정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대만과 싱가포르가 2001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나 2001년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 12.7%인 것도 대미 IT수출의 대폭적인 감소에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다. 2001년의 수출감소는 IMF위기로 인해 수출이 감소한 1998년을 제외하면 198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14

둘째, 동아시아닉스의 IT생산 및 수출구조가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에 과도하게 편중된 나머지 금융써비스와 지식기반 써비스가 취약하다.15 마진율이 낮은 전자부문이 돌출적으로 비대한 반면 상대적으로 마진율이 높은 써비스부문, 쏘프트웨어, 혁신적 설계, 정보기술써비스의 기반이 약한 것이다. 이는 지식기반 경제에서 경쟁우위를 갖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현재의 IT공급연쇄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최근 한국 등 동아시아국가들과 중국 간에 IT제품을 중심으로 상호수출입이 크게 늘어나 미약하나마 동아시아 역내순환구조가 정착될 가능성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지속가능한 동아시아 성장모델을 새롭게 창출하는 데 있어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2001년 10월 중국이 아세안과 10년 이내에 체결하기로 합의한 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AFTA)은 동아시아국가들이 과도한 대미의존에서 탈피하여 역내순환구조를 확립하는 데 커다란 의미를 가질 것으로 판단된다.

 

(2) 자본·외환자유화와 한미 주식시장의 동조화

대내적으로는 1998년 중반 이후 실시한 경기부양책과 저금리정책이 성장률의 급속한 회복에 큰 힘이 되었다. 국내의 저금리정책이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1998년 중반 러시아 위기, 브라질 위기 등 전세계 신흥시장에서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미국이 금리인하를 주도하고 다른 선진국들도 이에 보조를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저금리 기조는 외환·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의 자금조달구조의 변화, 가계 및 일반투자가들의 주식수요 등과 맞물려 주가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밖에도 미국의 주식투자 붐, 기술주의 영업실적과 경영성과에 대한 과도한 낙관 등이 국내에 파급되면서 주가상승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90년대 말 한국의 증시붐을 주도한 것은 해외기관투자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1998〜2000년 자본·외환자유화는 국내로의 대규모 자금유입에 큰 물꼬를 텄다. 그 결과 증권시장에서 외국인투자비율이 크게 늘어났으며 이들이 장세를 주도했다.

또한 코스닥시장에서는 소액투자가들이 갑작스러운 벤처주식열풍에 휩싸여 대거 시장에 뛰어들었다. 벤처캐피털은 이러한 ‘묻지 마 투자’에 편승하여 ‘무늬만 벤처’인 기업을 우후죽순 격으로 일으켰다. 그 결과 코스닥시장은 개설된 지 불과 6년도 채 안된 2001년 11월 기준으로 거래대금 기준 세계 18위의 규모를 갖게 되었다. 또한 코스닥 지수는 나스닥 주가가 폭락하기 직전 사상 최고치인 283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울러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 벤처투자의 추세와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미국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연간 벤처투자실적을 보면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여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2배 이상 증가한 뒤 2001년에 크게 둔화되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벤처투자가 대부분 IT분야에 집중되어 벤처투자의 IT분야 투자비율이 각각 65%, 58%를 기록했다.16

그러나 한국의 코스닥시장은 투자가 보호조치와 엄격한 퇴출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여러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우선 시장참여자들의 전반적인 도덕적 해이로 등록에 따른 매각차익만 추구하는 세력들이 적지 않았고 이에 주가조작과 벤처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착한 벤처기업들이 벤처자본으로부터 위험자본을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17 또한 경영투명성이 극도로 낮고 투자가 보호조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벤처기업가와 벤처캐피털 사이, 그리고 벤처캐피털과 일반투자가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한 폐해는 국내 자본시장의 미성숙으로 인해 일반투자가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요컨대 1998〜2000년에는 미국의 IT붐과 주가의 상승, IT관련제품 및 수출주력제품의 대미수출 증대, 국내기업의 경영실적 호전과 이에 대한 과대평가, 주가상승, 소비증대라는 선순환(善循環)적 연쇄구조가 작동한 것이다. 이 구조는 시차와 강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동아시아국가에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선순환적 연쇄구조는 미국의 IT붐과 고주가라는 전제조건에서만 작용하는 극히 위험하고 불안정한 것이었다. 2001년 대만과 싱가포르의 마이너스 성장은 이 연쇄구조의 취약한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도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001년 3월 미국의 90년대 경기확장국면이 마감되면서 국내의 수출증가세와 경제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었다. 미국의 수입이 감소하기 시작한 2001년 1/4분기부터 2002년 1/4분기 사이에 한국 및 동아시아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경제성장세와 주가도 동시에 하락했다. 2002년 1, 2/4분기에 약간의 회복세를 나타내긴 했지만 미국의 회계부정과 추가적인 주가하락으로 다시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극적인 것은 코스닥주가의 하락이었다. 2001년도 9·11 테러사태로 코스닥주가는 최고치의 1/6에도 못 미치는 46포인트로 급전직하했다. 이는 1998년 이후 추가적인 자본시장개방으로 외국인의 주식보유비율18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양국 주식시장간의 연동성이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준다.19 2002년 1, 2/4분기에는 미국 IT기업의 회계부정과 주가폭락으로 국내로의 자금유입이 대폭 감소하여20 당분간 국내 주식시장의 호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2년 하반기 정부는 국민연금 등 주요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율을 높이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기업연금의 조기입법화를 추진하기로 했는데 과연 이런 조치가 주식시장의 변덕과 폭력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02년 어려운 세계경제 속에서 한국경제를 4〜5% 성장할 수 있도록 견인한 것은 부동산시장의 붐과 대(對)중국 수출급증이다. 최근 국내 부동산가격의 폭등은 1998년 중후반 외환·금융위기를 부동산시장의 부양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정부정책의 산물이다. 또한 저금리 아래서 BIS자기자본비율의 경직적인 적용으로 은행들이 기업금융을 기피하는 대신 손쉬운 가계담보대출 내지 가계신용대출에 주력한 것도 부동산시장의 붐을 일으킨 커다란 금융적 요인이다. 한편 대중국 수출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최근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달하고 있으며 대일 수출규모를 넘어섰다. IT관련 수출시장으로서 2001년 여섯번째를 차지했던 중국이 올해 들어 미국 다음의 위치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내수증대와 이에 기초한 고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

이상에서 우리는 외환·금융위기 이후 4〜5년간 한국경제의 역동적 변화과정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IT산업의 국제분업구조=IT공급연쇄, 한미 주식시장의 동조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실물 차원에서의 IT관련 국제분업구조, 주식시장을 매개로 한 금융적 연관구조가 한국 등 동아시아의 성장체제를 규정하는 일차적 요소라는 것이다. 한편 일본·동아시아닉스·아세안의 성장과 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또다른 축으로서 미국의 달러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달러본위제를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동아시아 달러본위제에서는 엔/달러 환율의 변화에 따라 동아시아의 수출 및 성장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3) 동아시아 달러본위제의 함정과 동아시아 성장체제의 취약성

엔고와 약한 달러를 유도했던 1985년 9월 플라자합의가 동아시아의 기적과 일본의 버블형성에 크게 기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엔고-약한 달러 체제하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닉스의 대외수출경쟁력이 크게 높아지고 일본의 대(對)동아시아 직접투자가 대폭 늘어남에 따라 동아시아경제는 큰 활기를 띠게 된다.21

이런 엔고–약한 달러 정책은 1995년 역플라자합의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5년 여름 역플라자합의 이후 지속된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은 동아시아 달러본위제 틀 내에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거시적 성장체제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우선 동아시아국가들은 강한 달러–약한 엔 정책으로 자국화폐의 심각한 과대평가를 겪어야만 했다. 1995년 역플라자합의 이전 1994년 위안화의 평가절하와 멕시코 페쏘의 대폭적인 평가절하도 과대평가된 동아시아통화에 더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또한 엔화 약세로 일본의 해외직접투자 증가세가 크게 둔화됨에 따라 동아시아경제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가뜩이나 낮은 일본의 금리가 강한 달러-엔화 약세 때문에 더 낮아지자 동아시아 기업들과 은행들은 90년대 금융자유화에 따른 과소규제, 은행과 기업의 거버넌스(governance)구조의 해체 등을 틈타 앞다투어 해외차입에 나섰다.22 이들은 저리의 달러표시부채를 동원하여 자국화폐로 자산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위험에 노출되었다. 바트화 위기 이후 신규대출 중단과 만기연장 거부가 확산되면서 동아시아통화의 평가절하 압력이 크게 고조되었다. 이들 통화당국은 달러표시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통화가치 방어에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유동성 선호의 동시다발적인 분출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 동아시아국가는 통화의 대폭절하와 IMF 구제금융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다.

IMF위기 이후 한국 등 일부 국가들이 자유변동환율제로 옮겨갔지만 달러본위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위기 이후 대부분 통화들의 대(對)달러 환율이 대폭 절하되면서 과거 과대평가된 부분을 상당정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엔화가 극단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한 평가절하의 효과를 온전히 누리기는 어려웠다. 1998년 중반 한때 147엔까지 달했던 엔/달러 환율이 1998년 여름 외환시장에서의 협조개입의 결과 1998년 10월 116엔으로 하락한 이후에 비로소 동아시아국가들은 통화의 평가절하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었다. 이로써 IT공급연쇄를 매개로 하여 대미수출증대가 크게 호조를 띨 수 있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달러본위제에서 외톨이로 떨어져 있는 일본이 부실채권정리 지연에 따른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엔화 약세로 만회하고자 하고 미국이 이를 용인하면 동아시아국가들의 성장체제는 다시 동요할 수밖에 없게 된다. 2001년 초부터 2002년 4월까지 그전에 비해 엔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로 돌아선 것이, 미국의 주가하락과 경기침체의 여파로 대미수출이 둔화되고 성장세가 급속히 약화된 한국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할 리 만무하다. 이에 한국정부도 명목 원/달러 환율의 절하와 실질실효환율의 절하를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의 외환시장개입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미국의 회계부정사건 이후 또다시 반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엔/달러 환율이 2002년 초 135엔에서 6월 이후 117엔으로 떨어지면서 엔화는 이전의 1, 2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해졌다. 원/달러 환율도 그전의 1300원에서 1165원으로 하락하면서 14% 절상되어 엔화와 함께 동반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는 원화절상에 매우 민감한 모습이다. 향후 한국경제는 예전보다 더 수출주도 성장체제의 성격을 강하게 띨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엔/달러 환율변동에 따른 충격에 대한 취약성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할 것이다.

 

 

4. 결론에 대신하여

 

외환·금융위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김대중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기치하에 여러 개혁을 단행했다. 다행히 빠른 시기에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집권 말기의 정치·경제적 난맥상을 보면 과연 김대중정부가 개혁을 통해 어떤 정치·경제적 성과를 얻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영미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사회 전역에 뿌리내리려고 했지만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1998〜2000년 급속한 경제회복도 구조조정의 효과로 볼 만한 근거를 찾기 쉽지 않다. 영미식 기업지배구조와 기업씨스템제도를 이식하려고 했지만 경영투명성 제고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실적 미만 기업들이 시장에서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시장질서만 어지럽히고 있다.

BIS자기자본비율 규제, 금융지주회사 도입과 금융기관의 대형화 등 금융구조조정도 일부 금융기관에 높은 수익과 실적 호전을 가져왔지만 국민경제의 기초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커다란 문제점을 드러냈다. 1997년 이후 자본시장의 규모가 크게 확대되고 있지만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씨스템을 뿌리내리기에는 법적·제도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씨스템을 정착시키는 것 자체가 많은 시간을 요한다. 따라서 자금배분이나 기업감시를 자본시장에 맡기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적어도 당분간 상업은행들이 기업감시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은행의 거버넌스구조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과 산업의 분리원칙을 계속 견지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시적 구조조정정책의 부정적 효과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김대중정부가 금융세계화에 따른 금융개방에 국민적 거시경제 전체를 완전히 노출시킴으로써 국민 전체의 삶이 극도로 불안정해졌다는 점이다. 우선 우리 경제가 미국이 주도하는 IT공급연쇄에 강하게 묶여 있기 때문에 미국의 경기, 특히 IT관련부문에서의 수익성과 이에 민감하게 변하는 IT관련투자나 수입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예전보다 주력수출품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진 한국경제에 커다란 불안요인임에 틀림없다. 또한 외환자유화와 자본자유화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논리가 국내의 자본시장에 그대로 전달될 뿐만 아니라 그 폐해도 고스란히 다수의 일반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경제의 지배적 논리로 자리하게 되면 다수의 국민들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가 없게 된다. 1997년 외환·금융위기에서 우리는 자본자유화가 위기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필요조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금융적 유동성 원리는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과 도약을 달성하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자본자유화로 동아시아정부의 발전국가적 능력이 현저히 약화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에 대한 재규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구체화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싯점으로 보인다.

우선 극히 낮은 세율의 외환거래세만으로도 국제적 단기자본 거래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이득세 등 자산소득세제를 강화해 부동자금들이 생산적 투자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나 기업연금제도의 도입 등 향후 본격화될 연금제도 개혁에서는 노후생활의 안정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연금운용의 측면에서는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들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최근 중국·동아시아 간 상호투자 및 무역활성화를 적극 살려 동아시아 역내순환구조를 확립할 수 있도록 다면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현재 중국과 아세안이 합의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구상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또한 1997년 아시아통화기금(AMF) 구상의 좌절을 교훈삼아 동아시아의 풍부한 국제유동성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역내 금융협조체제를 더욱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엔/달러 환율의 불안정으로 역내 동아시아국가들의 거시경제적 안정성이 훼손되고 동아시아국가들간 과도한 환율경쟁으로 근린궁핍화가 조장되는 현 동아시아 달러본위제의 개혁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__

  1. 하지만 소득별 주식보유분포는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있다. 최상위 1%가 보유한 주식은 전체의 37%에 달하며 상위 5%는 전체 주식의 65%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R. Wolff, “The U.S. Economic Crisis: A Marxian Analysis,” Rethinking Marxism Vol.14, No.1(2002년 봄호), 119면 참조.
  2. 전창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금융주도 자본주의」, 『사회경제평론』 18집, 한국사회경제학회 2002 참조.
  3. D. Baker, “The Stock Market Bubble and Investing Social Security in the Stock Market,” www.cepr.net(2002. 7).
  4. J. Coffee, “Understanding Enron: It’s about Gatekeepers, Stupid,” Columbia Law School: The Center for Law and Economic Studies, Working Paper, No. 207(2002년 7월 30일자) 참조. 이 사건을 계기로 한 상하 양원의 타협으로 기업개혁법안인 싸베인즈-옥슬리법안(Sarbanes-Oxley Act)이 통과되었다.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감사법인에서 회계감사업무와 자문업무의 분리를 규정한 조항도 삽입되었다. 그러나 경영자와 새로운 금융자본과 융합·유착되어 있는 현재의 금융주도 자본주의에서 과연 이 법안이 어느정도 회계투명성을 제고하고 회계분식을 막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심지어 미국의 찰머즈 존슨(Chalmers Johnson)은 엔론사의 회계부정을 조직화된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은 없다고 주장한다(C. Johnson, “Economic Fanaticism Is Bad for Seoul,” LA Times 2002년 1월 27일자). 미국의 법인기업과 투자은행 등 금융자본간의 담합에 따른 여러 회계부정사례에 대해서는 김경호 「회계투명성과 기업회계기준」(한국회계연구원 2002년 4월 24일); 一ノ瀨秀文 「90年代美國型株式資本主義の大きなガり角」, 『經濟』 2002년 9월 참조.
  5. J. Schwarz, “The Enron Debacle,” Dissent 2002년 9월호 6면; J. Stiglitz, “Wither Reform? Towards a New Agenda for Latin America,” www.cepal.org(2002) 참조.
  6. M. Auerback, “Crony Capitalism Comes To America,” JPRI Critique, Vol.9, No.5(2002. 7).
  7. 1999년 이후 원/달러 환율은 위기 전보다 37〜62% 절하되었으며 실질실효환율도 22% 절하되었다. 박종규·조윤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위기 이전과 이후」, 한국금융연구원 2002, 35면 참조.
  8. 전창환 「자본·외환자유화정책 비판과 대안적 환율체제의 모색」, 『동향과 전망』 2002년 봄호(통권 52호) 참조.
  9. S. Yusuf & S. Evenett, Can East Asia Compete?, World Bank,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88면.
  10. H. Ohki, “International Division of Labour in East Asia’s IT Industry,” M. Kagami & M. Tsuji (ed.), The IT Revolution and Developing Countries: Late-Comer Advantage?, Institute of Developing Economies, Japan External Trade Organization 2001.
  11. Kwan C-H, “The Rise of China and Asia’s Flying-Geese Pattern of Economic Development: An Empirical Analysis Based on US Import Statistics,” Nomura Research Institute, NRI Papers, No.52(2002. 8) 7〜8면.
  12. 五味久壽 「中國のWTO加盟と人民元, 香港ドル, 円關係の變化」, 『情況』 4호(2002) 41면.
  13. 일본의 경우 IT버블의 폐해가 미국에 비해 현저히 미약하다. BIS에 따르면 1998〜2001년 IT부문의 자금조달규모는 미국이 6800억 달러였던 데 비해 일본의 규모는 790억 달러에 불과했다. 또한 90년대 10년 동안 미국의 IT투자는 3.7배 증가했지만 일본 IT투자는 2.4배 증가한 데 그쳤다.
  14. 최요철 「우리나라 수출과 성장 간의 관계분석」, 『경제분석』 제8권 3호(한국은행 2002) 44면.
  15. Wong Poh-Kam, “ICT Production and Diffusion in Asia: Digital Dividends or Digital Divide?” WIDER, Discussion Paper (2001. 8) 참조.
  16. 중소기업청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벤처캐피탈의 투자현황 및 국민경제적 성과 분석」, 2002년 4월 1일, 1〜3면.
  17. 오세경 「벤처캐피탈의 자금조달, 자금운용 및 수익률 분석」, 한국금융학회 2001.
  18. 특히 핵심 우량기업의 경우 외국인 주식보유비율은 보통 50%에서 최고 70.9%에 달했다.(한국은행,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유출입 동향 및 주요특징」, 한국은행 국제국 2002, 5면)
  19. 이한식·장병문 「한국과 미국의 주가동조화 현상 및 국내 주식시장의 효율성 분석」, 한국금융학회 2002.
  20. 한국은행, 앞의 글 참조.
  21. R. McKinnon & G. Schnabl, “Synchronized Business Cycles in East Asia: Fluctuations in the Yen/Dollar Exchange Rate and China’s Stabilizing Role,” Department of Economics of Stanford University, Working Paper 2002년 8월 2일자, 55〜56면.
  22. K.S. Jomo, “Growth After the Asian Crisis: What Remains of the East Asian Model?” UNCTAD, G-24 Discussion Paper Series, No.10(2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