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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정애 朴正愛
1970년 경북 청도 출생.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춤에 부치는 노래』 장편『에덴의 서쪽』 『물의 말』 등이 있음. pja832@dreamwiz.com
술 마시는 집
싸이렌
싸이렌 소리는 갓밝이 숲실의 고적(孤寂)을 일순에 버르집어놓았다.
“아이고 무시래이. 으이요, 자야 아부지, 이기 다 머슨 소린교?”
요강을 타고 앉았던 동당댁이 고쟁이도 미처 끌어올리지 못하고 방바닥으로 내려앉으며 동당영감을 흔들었다. 귀 밝은 동당영감은 마누라가 요강에 올라앉느라 부스럭거릴 때부터 선잠을 깬 상태여서 그 싸이렌 소리는 진작에 듣고 있었다. 다만 누운 채로 앞뒤를 짜맞추느라 머릿속이 바빠 몸을 꿈지럭거리지 않았을 뿐이다. 싸이렌 소리는 처음에는 동당댁 오줌발에 묻혀 모깃소리만하게 앵앵거렸다. 그러다 곧 한낮의 매미소리만치 시끄러워지더니 내처 숲실 십여호를 들었다 놓을 기세로 귀청을 때렸다.
동당영감에게 싸이렌 소리란 언제나 공습경보에 다름아니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민방위 훈련용 공습경보도 아니고 이토록 이른 새벽에 느닷없이 울리는 싸이렌 소리라면 난리가 나도 단단히 난 거라고 동당영감은 사뭇 긴장한 터수였다. 동당영감은 동당댁의 떨리는 손을 꽉 눌러 붙잡은 다음, 결연한 눈빛으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암만 캐도 부시라 캤나, 그 부시부시한 원싱이겉이 생f는 양코배기 대통령이 무단시리 이북을 건디린 모양이다마는. 보자, 요전분에 라면 한박스 사 들라났는 거는 및개 남았디노?”
“고대로 있지를. 제주도 간다꼬 뒤숭거리미 두 개 낋이묵고는 언제 낋이묵을 새나 있었나 어데.”
“요새 전쟁은 오래도 안 걸리더라. 질어봤자 보름이마 땡이라 카더라. 카마 보제이, 라면은 있고. 자네 지꿈 당장에 누룽지를 눌우거라. 주묵밥도 한보따리 맨들고. 보자, 난리가 나마 자야 식구덜하고 헌이 식구덜이 이 집으로 피난을 올랑가 우얄랑가. 헌이는 아매 즈그 처갓집으로 갈라 안 카겠나. 즈그 처가 패덜한테 충신인 머슴아인꺼네. 그나저나 자야가 즈그 시집 패덜까지 다 끄잡꼬 니리오마 우짜꼬. 머하고 있노. 자네는 얼릉 밥버텀 해라 카이. 나는 인자버텀 우리 식구덜 행동을 우얄 낀지 이 대가리를 짜야 된다 아이가. 대가리를 씨는 사람하고 안 씨는 사람하고는 암만 캐도 사는 질이 다리거덩.”
“뜨신 밥 묵고 머슨 지랄로 온 세상을 전시이 만시이 난리판으로 맨들라 카는공. 순 미친갱이 대통령 아이가.”
“이 마느래야, 부시가 머슨 뜨신 밥을 묵겠노. 빵 묵고 쑤프 묵고 괴기 처묵지를.”
“밥이나 빵이나.”
“그기 우예 똑같노. 삼시 세끼 뜨신 밥을 묵으믄 암만 겉모양은 양코배기라도 대가빠리는 조선사람이 된다 카이. 자야 오마이 자네도 이 대가리를 좀 씨거라. 호랑이한테 잽히가도 사람이라 카는 거는 이 대가리를 써야 사람인 기라.”
미닫이를 열자 싸이렌 소리는 더더욱 귀청을 찢었다. 원체 겁이 많은 동당댁은 거푸 몸서리를 치며 간신히 겉옷을 주워 걸치고 마루로 나섰다.
“참말로 난리는 난리인갑다.”
동당댁은 푸들푸들 떨며 고방에서 쌀 한바가지를 푸다 쌀알 대여섯 개를 떨어뜨렸다. 곱은 손으로 쌀알을 주우려니 잘 되지 않아 이 난리통에 그런 것쯤 나중에 줍기로 맘을 도스른 동당댁은, 안 그래도 두더지마냥 앙바틈한 걸때를 한층 더 옹송그린 채 고방 문턱을 넘었다.
문턱을 넘으며 오만가지 방정맞은 생각을 다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잠시잠깐 사이에 싸이렌 소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동당댁은 맥을 놓고 멀뚱거렸다.
“머하노. 아이꺼정 영감님 품이라? 찰떡궁합도 좋지마는 얼른 여게 함 나와보거라. 귀경 났다, 귀경.”
담을 넘어오는 목소리는 아랫집 내동댁 것이었다. 겁은 많아도 구경이라면 죽고 못사는 동당댁이다. 꽃구경, 단풍구경뿐만 아니고 도야지 멱따는 구경, 똥개 때려잡는 구경도 만사 제치고 하는 성질인 것이다.
“와, 머슨 귀경이고?”
“일일구 왔데이, 일일구. 테레비에 나왔던 그 일일구 말이다.”
내동댁의 음성에는 분명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동당댁이 수돗가에 쌀바가지를 내려놓자니, 찰떡궁합 소리깨나 듣는 부부답게 동당영감이 어느새 문밖의 수작을 가려듣고 발에다 슬리퍼를 꿰지르며 동당댁더러 나가보자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과연 잘 말린 태양초처럼 시뻘건 119 구급차가 마을 어귀 다릿목에 떡 버티고 있었다.
해뜨기 전에 눈부터 뜨이는 건 기본이요 신장 기능이 시원찮아 오밤중에도 두어 번은 요강에 걸터앉아야 하는 늙은데기들이지만 평생 처음 물 건너 구경이랍시고 싸대치고 돌아온 뒤끝이라 내남없이 꿀 같은 새벽잠을 냠냠거리던 판국이었다. 개 짖는 소리만 같았어도 하양떡에 도꾸가 짖나 내동떡에 복실이가 짖나 음냐음냐 입만 다셨을 게고, 닭 우는 소리만 같았어도 에라이 저놈으 달구새끼 확 잡어 묵어뿌리야지 어쩌고저쩌고 쭝얼거리며 역시나 닭털 뽑는 헛시늉 두어 번 하다 말고 베개꼭지나 이불말기를 꿀단지같이 폭 끌어안았을 거였다. 싸이렌 소리는 달랐다. 도대체 이 시간에 이 동네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동 못하는 상노인을 빼고 숲실 십여호에서 나올 만한 사람은 다 나와 있었다. 동당댁 내외가 그 구경꾼 대열을 비집고 들어섰을 때는 벌써 붉은 복장의 장정들이 녹색 담요에 덮인 들것을 들고 뛰는 중이었다. 아무리 발돋움을 해봐야 장승만한 남자들 겨드랑이 냄새도 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동당댁은 대고 까치발을 하고 눈알을 굴렸다.
“누고? 누가 저래 실리 가노?”
종내 동당댁은 만만한 내동댁을 붙잡고 늘어졌다.
“보고도 모리나.”
“안 뷔이인까네 묻지를, 뷔이마 묻겠나. 누고?”
구경에 바쁜 내동댁은 동당댁에게 대답할 겨를을 여투기 싫었다. 두고두고 원망 들을 일이 성가셔 불러주기야 했지만, 어차피 동네가 알아주는 동당댁의 호기심이 한번의 대답으로 해결될 게 아닌 바에야 못 들은 체하고 싶었다. 입장권 내는 것도 아닌 이런 구경은 지금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못하는 것이다.
“응? 응. 저, 저, 저거 보래이.”
내동댁은 큰 볼일이라도 있는 것마냥 119 대원들의 뒤를 따라 뛰었다. 내동댁뿐이 아니었다. 구경 나온 숲실 늙은이들 모두가 관절염이고 신경통이고 언제 앓았던고 싶은 씽씽한 걸음새로 젊은 대원들의 꽁무니를 뒤따랐다.
“아이구 시상에, 꿈쩍도 안하네. 살었는 기가 죽었는 기가.”
내동댁은 발을 구르며 장탄식했다.
들것을 구급차 안에 밀어넣은 후 대원들은 구경꾼들 틈바구니에 생판 남처럼 어리마리 서 있던 매오영감을 채근하여 태웠다.
“그라마 저기 실리 가는 사람이 매오형님이구마는. 맞나?”
동당댁은 다시금 내동댁한테로 붙었다. 아까 코대답만 하고 내뺀 짓거리가 미웠지마는 궁금증을 푸는 일이 우선이었다. 아랫집 윗집 살면서 몇십년 정붙이고 산 동갑내기 내동댁과 그만한 일로 틀어진다는 것도 우스웠다. 대원들까지 모두 태운 시뻘건 구급차가 팔방우네 우사(牛舍)를 지나 가물가물 사라지게 되어서야 내동댁은 동당댁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맞다.”
“와? 와 저래 실리 가노? 매오형님이 암만 술빙 들린 칠십노인이라도 어제꺼정 험한 산비알을 내 집마당겉이 삐대고 댕기던 양반인데.”
“내 말이 그 말이다. 난도 궁금해가 똑 죽겠는데, 매오 아주반님이 천지에 입을 띠는 양반이라야 말이제. 형님이 와 저카시는교 *분을 물어도, 뒤안 둥구리 밑에 뚜끼비맨치로 꿈쩍을 안하는데 우얄 끼라.”
“쯧쯧. 그러이 매오형님 술 퍼묵는 시정도 나무래기만 할 끼 아인 기라. 농안에 금송아지 아이라 금코끼리를 처여놓으마 머슨 소양이 있노? 속에다 정을 산대백이마이 쌓아놓고 말 한마디 안해뿌마 그기 다 머슨 소양이 있노 그 말이다. 매오 아주반님 참말로 속맘은 그기 아인데 겉치레가 너무 없어 탈이라. 없어도 우예 그래 없겠노.”
“맞다, 맞다. 그러기 말이제.”
두 중늙은이는 서로 맞장구를 쳐가며 혀를 차댔다.
구포장
“집에 일은 집에 일대로 씰고 닦고 히비파고……”
매오댁이 침을 튀기며 제 자랑을 하면,
“마당 한복판에 앉어봐라. 궁딩이 문지 한점 묻나.”
동당댁이 추어주는 판이다.
“농사는 농사대로 삐가 빠시라지두룩 젓고……”
“논에는 피 한나, 밭에는 지슴 한나 없고.”
“삼대독자 집에 들어와여 아들을 너이나 장성시키고.”
“아들 너이 딸 둘이 다 지 짝 맞차가 자석 놓고 살두룩 해주고.”
“장사는 장사대로 오늘날꺼정 청도장으로 구포장으로 장이라카는 장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봄에는 야시갱이(냉이) 참나물 묵나물, 여름에는 오가피 칡뿌리 가지가지 약초에, 가실에는 곡석, 겨울에는 늙은 호박, 정월에는 미주(메주) 보름나물 보따리보따리 이고 들고 안 가는 데 없이 싸댕기미 살었다.”
“그랬지를.”
“어이구, 내 팔자야.”
매오댁은 길바닥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는 연이어 밭은기침까지 했다. 그랬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오늘날 나이 칠십 먹도록 사는 꼴이 어째 요모양 요꼴이란 말이냐. 자랑거리야 더 없겠는가마는 구구절절 풀어낼 흥이 더는 안 생겼다.
동당댁이 강낭콩 무더기에 눈길을 주는 장꾼을 붙드는 사이 매오댁은 옹기 구루마 너머 어묵집 옆 구멍가게에 가서 그예 소주 한병을 사고 말았다. 온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119 구급차에 실려갔다 돌아온 후 다시는 술냄새도 맡지 말자고 결심한 게 그저껜데 그놈의 팔자타령에 그만 결심이 흔들려버렸다. 구멍가게에서 조그마한 종이컵을 받자마자 기갈들린 사람마냥 두 컵을 따라 마신 매오댁은, 뚜껑 대신 종이컵을 들씌운 소주병을 한손에 쥐고 어묵집에서 어묵 두 꼬치를 사들고는 동당댁 옆자리에 가 앉았다.
“동상은 술을 안하이 이 오뎅이라도 쪼매 묵어보거라.”
매오댁의 목소리는 기름에 살짝 적셨다 꺼낸 듯 금세 윤기가 돌았다. 동당댁이 잽싸게 꼬치를 받아들고 한입 우물거리다 꿀떡 삼키고는 이내 이맛살을 찌푸리며 잔사설을 시작했다.
“또 술이가? 형님도 참말로 고새를 몬 참고. 우야마 좋노. 참말로 우야마 좋겠노. 술 따문에 그 난리를 치고 저승 문턱에꺼정 갔다온 사람이 또 와 이카시는공. 살 생각을 하마 술을 끊어야지 우얄라꼬 또 술인교?”
동당댁이 사설을 잠시 끊고 꼬치를 또 한입 우물거리는 사이 매오댁은 술 한잔을 더 따라 마셨다. 깨벌레같이 오동통한 동당댁에 비해 매오댁은 군살이라곤 없는 날렵한 몸맨두리를 여태 지니고 있다. 까무레한 살빛 덕분에 잔주름도 별반 눈에 띄지 않아 겉보매는 십년 연하의 동당댁보다 젊어 보인다.
“고만 카거라. 나도 술이 짜드락 묵고 접어 마신 거는 아이데이. 가심이 답답어 하도 답답어여, 살라 카이, 그 맥힌 가심을 떨버조야 되겠으까 한잔썩 한잔썩 묵다보이 이래 됐다. 인자 나이 칠십에 이 술 안 묵고 얼매나 더 살겠다꼬. 마 이 술 묵고 죽을란다. 고만 카거라.”
술맛을 들이기야 삼십 몇년 전에 돌아간 친정부친 술심부름할 때부터였으리라. 누런 양은주전자를 딸랑거리며 술도가까지 꼬박 걸어갔다 돌아오는 참이면, 뱃속에선 연신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나고 막걸리 주전자에선 달착지근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표 안 나게 한모금 두모금 마시다보면 팍팍하던 장딴지가 녹녹하니 풀리곤 했다. 하지만 처녀꼴이 박히고 나서는 집에서 살림만 배우고 술심부름 같은 건 아우에게 곱다시 물려주었다. 술 마실 일도 없었을뿐더러 술생각도 하지 않았다.
정말 가슴이 답답하여 술을 마시게 된 건 열여덟 새색시로 숲실 박씨네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시아버지 너르실영감은, 밥은 안 먹어도 술은 세끼 꼬박 챙겨 마셔야 하는 애주가였다. 시아버지보다 다섯살 연상인 시어머니 너르실댁은 매오댁이 다홍치마 적에 열 일 제쳐놓고 술 담그는 법부터 가르쳤다. 담그는 법만 가르친 게 아니고 마시는 법까지 가르쳤다. 아버지고 아들이고간에 곰살가운 맛이나 잔정이라곤 없는 박씨네에서 한평생 살려면 술로라도 가슴을 뚫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맛이 없을 때는 술 한사발에 누룽지 안주가 최고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시아버지는 술 몇잔 마시고 불콰해지면 그나마 좀 누글누글 누그러지는 맛이라도 있었다. 엔간해선 술을 입에 안 대는 신랑은 시아버지보다 더 꽁하고 까탈스러웠다. 숨어서 술은 마셔도 근본이 정숙스러웠던 너르실댁에 비해 매오댁은 원체 씨억씨억하고 괄괄하게 생겨 있었다. 그런 매오댁에게 도무지 꿍꿍이속을 알 수 없는 좀팽이 신랑이 마뜩할 리 없었다. 시부모가 살아 있을 때부터도 매오댁은 명절 뒤끝이라든지 잔치 뒤끝이라든지 술을 과하게 마신 날에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신랑한테 포악을 떨어대곤 했다. 남의 눈이 없을 때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도 입을 안 떼던 신랑이 그런 날만큼은 계집 따위에게 쥐여사는 사내가 아니라는 걸 동네방네 확인시킬 양으로 지겟작대기를 꼬나들고 설쳤다. 얻어맞은 심사가 고와질 리 없어 매오댁은 점점 더 신랑이 싫어졌다.
내외간이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데도 자식은 해거리로 들어서고 태어났다. 어디 가서 식모살이를 한들 내 한입 건사 못하겠느냐는 배짱이야 있었지만, 자식들 키우는 재미에, 또 어미 된 책임감에, 남편 정 없이도 사십여년을 요냥조냥 살아냈다. 시부모 장례 치르고 아들 넷 딸 둘 모두 장성시켜 짝 맞춰 내보내고 나니 달랑 영감 하나 바라보고 살게 생겼지만, 집안 대소사에 내주장을 하고 먼데 있는 자식들한테 떠받들리고 하는 재미가 쏠쏠하여 바람벽 같은 남편하고라도 둘이서만 십년 너머를 무탈하게 살아왔다. 큰아들네가 서울 낙원동에서 참기름 장사로 기반을 잡자 우편배달부 하는 아들 하나와 군인신랑을 얻은 딸 하나를 빼고 아들 둘과 막내딸네가 줄줄이 큰아들 그늘에서 참기름 장사를 하고 있는 것도 자랑거리지 숨길 일은 아니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 들른 자식들이 당연한 듯이나 고방을 싹쓸이해 가도 그 짓거리가 과히 괘씸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내외 또한 쌀이며 김장거리며 기본 먹을거리는 부지런히 보내주었다. 삼년만 기다리면 번듯한 양옥집을 지어주겠다던 큰아들의 약속이 자꾸만 연기되었지만, 알토란 같은 두 아들 공부 가르치고 어수룩한 아우들 뒷배 봐주느라 그러려니, 좀더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해주려니 믿었다.
그런데 그 태산같이 믿었던 장남이 주식에 손을 댔다가는 쫄딱 망하고, 망하려면 저나 망하지 막내딸네 식당 낼 자금까지 모개로 말아먹고 만 것이었다. 막내딸네는 살던 집 전세금을 빼내 기어코 ‘불타는 삼겹살’이란 상호의 고깃집을 내고는 큰아들네 아파트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큰며느리는 급작스레 쪼들리는 형편도 참기 힘든데 시누이네 식구들까지 한지붕 밑에서 바글거리기 시작하자 짜증이 늘고 성정이 강팔라졌다. 매오댁이 그런저런 며느리 심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이해 못하고 그저 제 아들만 잘났다고 추어대는 구닥다리 시어머니냐 하면 그런 건 아니었다. 외려 세상에서 제일 스스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매오댁은 큰며느리를 꼽을 참이었다. 지난봄 큰아들 생일 때도 그랬다. 매오댁으로서도 딱히 떼고 싶지 않은 걸음인 것을, 부모 된 낯은 세워야겠기에 영감일랑 놓아두고 혼잣몸으로 바리바리 싸들고 상경했던 것이다. 막상 풀어놓으니 별것 아니었지만 그래도 늙은이가 죽을 똥을 싸면서 가져간 봄나물과 쑥떡과 잡곡 보따리들을 보고도 며느리는 그닥 탐탁한 기색이 아니었다. 생일상 주변에서 작은손자 녀석이 하도 본데없이 설쳐대기에 할미로서 따끔하게 야단 한번 친 걸 가지고 뱁새눈을 흘기며 말문을 닫아버리는 건 또 무슨 새퉁이 짓인가. 혹시나 하여 서너 번 말을 시켜보아도 역시나 며느리는 못 들은 체 먼눈 팔거나 꽁알꽁알 혼잣소리만 했다. 이날 이때껏 농사지어 갖다바친 죄밖에 없는 시어미한테 참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그런데 큰아들은 물론이고 막내딸년까지 어미 역성 들어줄 생각은 않고 며느리 눈치만 살피고들 있었다. 에라 언제는 너들 믿고 살았나 싶어 그 길로 보따리 싸들고 내려왔지만, 그즈음부터 매오댁은 눈에 띄게 야코가 죽고 주량이 늘었다. 자식 자랑은커녕 자식의 ‘자’자도 꺼내기가 싫어졌다.
동당댁이 눈치없이 대천댁네 외동딸 명희 이야기를 꺼냈다.
“맹희 즈그 집도 인자는 새 집 젓겠십디더. 맹희 그 아가 적금 타는 기 있는데 그거 가주고 어매 아배 새 집 져준다 캤다 카네예. 맹희 즈그 오마이가 넙덕윗음(웃음)을 윗꼬 용 둘러뺍디더.”
“망구 지 생각이지. 입으로 될 거 같으믄사 용궁도 젓고 천당도 젓겠다. 집을 다 져놓고 자랑을 하만 몰라도 가시나 입 한분 나불거린 거를 우예 믿노.”
동네에 둘밖에 없는 구옥(舊屋)인데 명희네마저 새 집을 짓고 나면 매오댁네만 더 초라해질 테다.
“와요. 맹희 그기 돈을 지북 잘 벌인답니더. 시집가라 캐도, 지는 시집을 늦까 가야 잘사는 사주라 카미드르 어매 아배 집 져주고 호강시키주고 시집갈 끼라 카더랍니더. 딸 하나뿐이라도 맹희 오마이는 좋겠십디더.”
“허허이 참말로, 그 오마이 말을 우예 다 믿노. 그 오마이 말만 들으마 서울병원이 즈그 낀 중 알겠더라마는. 간호부 하는 딸내미 하나가 우째 그러키 장하던공. 그캐봤자 남으 사나아 궁디이에 주사 찔러주고 피고름 빼주고 돈 선나튼(조금) 벌이는 거 아이가?”
말해놓고 보니 명희 오라비를 갓난쟁이 때 잃고 명희 밑으로는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오로지 명희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대천댁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왕지사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해서 매오댁은 옥수수며 애호박 나부랭이가 든 광주리를 우악스럽게 들었다 놓았다.
“문디이 이눔으 장사는 와 이래 안되노. 세상이 우예 되가 호박 한딩이도 마트 안 가마 안되는 중 알고 백하점 안 가마 안되는 중 아니이 구포장이 옛날 그 구포장이 아인 기라.”
매오댁은 홧김에 술 한잔을 더 마셨다. 농사지은 것 여섯 자식들 밑으로 처넣지 않고 알뜰히만 모아뒀어도 벌써 덩그런 새 집 한채는 짓고도 남았을 걸, 그놈의 삼년 약속만 믿다가 명희네도 진작에 뜯어고친 부엌 하날 개조 못하고 오늘날까지 흙바닥에서 밥 짓고 상 차리는 게 분하기 그지없었다. 영감이 흑염소 판 돈을 어리삥삥하게 잃어버린 일도 새록새록 분했다. 이십만원짜리 새끼를 사서 여름에는 들에서 꼴 먹이고 겨울에는 콩깍지와 짚을 먹여 일년 만에 사십만원짜리로 만들어놓은 거였다. 곱장사는 한 셈이라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까만 털을 볼 때마다 흐뭇해했다.
흑염소 계를 들었다는 도시 사내들이 매오댁네를 찾아든 때는, 마침 매오댁이 오가피를 팔러 대구 약전골목에 가느라 집을 비운 날이었다. 잡아주는 값까지 쳐서 사십오만원을 받아 챙긴 영감은, 염소를 개울가로 끌고 가서 노린내가 나지 않도록 염소에게 소금을 먹인 다음 식칼로 모가지를 폭 찔렀단다.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도시 사내들은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치며 영감님 기술 좋다고 생난리를 치더란다. 뜨끈뜨끈한 생피를 마시고 생 염통을 소금에 찍어 먹은 도시 사내들은 몫몫이 나눠 싼 고기뭉치는 제 배낭에 갈무리해두고 미리 준비해온 소주병과 양주인 듯한 갈색병을 꺼내 죽 늘어놓더란다. 그러고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남은 고기를 죄 모아서 지글지글 굽더란다. 매오영감이 딴전을 피우고 있으려니까 곁에 와서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라고 대고 권하더란다. 옛날부터 공짜를 밝히기는 했지만 나이 먹을수록 점점 더 공짜라면 비상(砒霜)도 삼킬 듯이 사족을 못 쓰는 매오영감이니만치 먹을 줄 알거나 모르거나간에 공술이니까 받아먹었단다. 말이나 많아서 입을 놀리나 그저 볼이 미어져라 입아귀가 터져라 다른 사람 눈 한번 홉뜰 동안 고길 두점 석점씩 꿀떡꿀떡 삼키면서 그 사이사이 소주며 정체 모를 갈색술이며를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보니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깜빡 취해서 잠이 들어버렸단다. 개울가에서 쓰러진 채로 한나절이나 자다 일어나보니 안주머니 깊숙이 챙겨두었던 사십오만원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고.
애초에 그 어여쁜 새끼염소를 사온 사람도 매오댁이었지만, 토실토실하게 기른 것도 팔할은 매오댁 공이었다. 그런 매오댁이 정신없는 영감탱이한테 지랄발광, 네굽질을 했다손 쳐도 그게 무어 크게 잘못된 일인가. 돌이켜 생각해봐도 매오댁은 켕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영감탱이가 누가 자기더러 꽁해빠진 꽁영감 아니랄까봐, 난생 처음 그 좋은 제주도 구경을 가서까지도 그날 당한 걸 안 잊어버리고는 매오댁을 아주 소박데기 취급하는 것이었다. 말을 걸지도 받지도 않고 남남처럼 데면데면 떨어져 다니는 건 그렇다 치고, 내외간에 껴안고 사진 좀 찍으라고 젊은 사진사가 그만치 애걸복걸 비는데도 기어이 돌아앉아 딴청 피우는 심통머리는 또 뭔가.
살기도 헛살았데이. 문디이 지랄삥 내보다 더 못 내미, 더 호랑말코 겉은 지집도 다 즈그 사나아가 끼고 물고 빨고 해쌓으미 사진 찍고 칸다마는 이 녀러 서방은 넘 카마도 몬한 기라. 참말 넘 겉애도 저카지는 안할 끼라. 사진사 아저씨요. 우리는 마 놔뚜고 딴집 영감 할마이나 많이 찍어주세이.
그 다음부터는 사진사 보기 면구스러워 단체사진 몇장말고는 변변한 사진을 박아오지 못한 매오댁이었다. 사단은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에 났다. 매오댁이 치받는 울화를 꾹꾹 잡아누르면서 영감의 이부자리를 펴주었는데, 이 바람벽 같은 영감이 제 손으로 딴 이불을 꺼내어 덮는 것이었다. 이젠 아예 염병쟁이 취급인가 싶어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진 매오댁은 다릿목 가겟집까지 한달음에 내달아 소주 세 병을 사왔다. 그리고 마루에 혼자 앉아 앙살을 부리다간 퍼마시고, 또 신세타령을 하다간 퍼마시고 하다가 결국 죽은 듯이 정신을 놓아버렸다. 숲실을 들었다 놓은 119 구조대 사건은 그렇게 일어난 것이었다.
매오댁은 소주 한병을 금세 비웠다. 마지막 남은 한방울까지 다 털어넣고 매오댁은 탄식했다.
“서그푸다. 내가 버여 칠십이란 말이가. 맘은 안죽 너르실댁으 새미느린데, 세상에 나이 칠십이 다 머꼬. 동상아, 아나 여게 돈 있다. 술 한빙만 더 받어오거라.”
밤마실
그 난리를 치고 사흘 만에 또 술에 감겨 해롱거리는 꼴을 보인 건, 낯 두꺼운 매오댁으로서도 여간만 남우세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 매오댁 깐에는 아랫집 동당댁이 어른거리지 않는 틈을 타느라고 타서 길을 나섰는데, 가겟집에서 빨랫비누 묶음을 사들고 오던 동당댁과 삼거리 다릿목에서 딱 마주치고 말았다.
“매오형님 아인교. 산에 가실라는갑네.”
매오댁이 둘러멘 망태기를 보며, 동당댁이 넘겨짚었다.
“몸은 괘안심니꺼?”
동당댁의 연싹싹한 인사에,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매오댁은 공연히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불퉁스런 목소리로 대꾸했다.
“괘안타.”
“영감님이 뭐라 안 카던교.”
“카기는, 그 영감이 머슨 말을 하는 사람이가. 뒤기 성질나마 뚜디리팼이마 팼제.”
“아이고, 옛날 고릿적 이바구하신다. 그 성질 죽은 지가 언젠데 자꾸 캐쌓는교. 영감 할마이 쌈을 하마 할마이 소리밲이 안 들리더라마는.”
“암만 소리 크다 캐쌓아도 입 안 띠는 사람한테는 몬 당하니라.”
“마 매오형님은 그런 영감이라도 졑에 있으이 살었지 없었이마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일 낍니더. 개똥밭에 구불러도 이승이 낫다 안캅니꺼. 자석들 있다 캐봐야 아무 소양 없습니데이. 지꿈이라도 니 내하고 같이 살래 함 물어보이소. 천리만리 내빼지 그중에 하나도 늙은이 데꼬 살겠단 말 안합니데이. 형님도 인자 그놈의 술 고마 묵고 영감님한테도 패악 고마 지기이소.”
매오댁은 신칙이나 한답시고 침을 튀기는 동당댁 꼴이 앙달머리스러워 입아귀를 실그러뜨린 채 대꾸도 않고 길을 재촉했다. 그야 영감한테 고마운 감정이 언뜻언뜻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평생토록 쌓인 원망 역시 곱게 가라앉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가라앉는 듯하다가도 무슨 계기만 생기면 뾰주리감마냥 뾰조록한 대가리를 들이밀며 어서어서 포악을 부리고 지랄을 떨라고 욱대겼다. 어젯밤에는 이불을 들고 찾아온 영감을 모질게 내쫓았다. 까짓 것 너만 사람 무안줄 줄 아나 나도 안다 싶었다.
내가 뭐 자네가 좋아여 왔는 줄 아나. 술 처묵고 이불 차던지고 자다가 또 일일구 부리는 일 생기까 그칸다.
남이사 죽기나 말기나.
그렇게 박대했는데도 영감은 숙취로 늦잠을 잔 매오댁을 위해 밥도 지어놓고 칡도 즙내놓았다. 의아해하는 매오댁의 시선을 피하며 영감은 쭝덜거렸다.
살어야지 술도 묵지, 죽으마 다 머슨 소양이고.
매오댁은 노상 하듯 다리 아래로 펄쩍 뛰어내려가 곧바로 논두렁을 밟고 개울을 건넜다. 지름길이었다. 단숨에 산중턱까지 밟아 올라갔다. 산냄새를 맡으며 땀을 쭉 흘리고 나니까 숙취가 싹 달아났다. 매오댁은 말라죽은 굴참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망태기를 끌렀다. 다람쥐 두 마리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매오댁 앞을 지나갔다.
다람쥐들아, 숲실에서 젤 재미상 없는 매오영감이 말이다, 홀아바시 되는 거는 어지가이 무섭은갑다.
그렇게 말해놓고 매오댁은 얼핏 웃음을 흘렸다.
주먹밥 두 개로 점심을 때우고 내처 꼭대기까지 톺아올라갔다. 망태기에 더덕이며 칡뿌리가 제법 찼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산중턱에서 그 굴참나무 등걸에 앉아 잠시 쉬었다. 저무는 숲실은 홍시 빛깔의 노을에 아늑하니 감싸여 있었다. 곱씹어보니 동당댁 말에 틀린 대목은 없었다. 언제라도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날이면 곱게 죽어주긴 할 터였다. 칠십 늙은이가 내일 죽은들 아깝단 말이나 들을 텐가. 그러나 바람벽 같은 영감하고라도 사는 쪽이 낫지 기를 쓰고 죽음을 잡죌 까닭이란 없는 것이었다. 영감 말도 맞았다. 살아 있어야 술맛도 느끼지 죽으면 썩기밖에 더 하겠는가. 오늘 캔 더덕일랑은 내다팔지도 말고 자식들 생각에 꿍쳐놓지도 말고 잘근잘근 두들겨 고추장 양념 맛나게 발라 영감이랑 구워먹어야겠다고 매오댁은 속다짐을 했다. 밭에서 호박잎과 부추도 한움큼씩 뜯어 아랫집 대문 옆을 지나는데, 동당댁이 불렀다.
“보이소, 매오형님. 여 들어와여 복숭이나 쪼매 자시고 가이소.”
“복숭 땄디나.”
고무함지에 뽈긋뽈긋한 복숭아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나무에서 딴 건 없고 맨 낙과(落果)일 테지만 금방 주운 것은 그런대로 단맛이 있다.
“잡사보이소. 복숭은 요새 끼 젤 달다 아입니꺼.”
“일기예보 잘 들으래이. 비 맞차 떨가뿌마 헛방 아이라.”
“안 그래도 비오기 전에 딸 만한 거는 다 따뿐다꼬 설칬디이 얼매나 피곤한지 똑 죽겠심더. 자석들 있다 캐봐야 휴가 받으믄 즈그 식구 데불고 바다로 산으로 놀러 댕기기 바뿌지 복숭 따로 와주는 넘이 하나 없심더. 때깔 존 복숭만 골라가 두어 상자썩 택배 부치주마 그때사 전화나 한통 할까. 둘이랬으이 망정이지 형님맨치로 여섯이나 되믄사 택배 부치는 값도 만만찮을 끼라. 형님은 정 없다 정 없다 캐쌓아도 맨 정이 있었건대 아들딸을 그마이 많이 맨들었지예. 정 없이 그기 됩니꺼 어데.”
“말도 말어라. 정도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도 있는 기라. 지 그카는데 내라꼬 머슨 정이 있겠노. 그래도 우예 삼신이 틀었는지 자는데 똑 도둑고내이 밤마실 댕기는 거매로 몰리 들어와갖고는 껍죽껍죽 씨루고 가마 고마 얼라가 들어서고, 그 얼라 낳아서 젖 믹이가 쪼매 키아놓으만 또 들어서고 그카대. 그카다보이 육남맨 동 팔남맨 동 태있는 기지. 그기 뭐 정이 있어가 그랬나.”
“에고, 나는 못 믿겄다.”
“믿기나 말기나 이카고 있을 새가 없다. 퍼뜩 저녁 안치야제.”
“하이고, 나는 저 넘으 입식부엌 몸서리증 나여 밥이 똑 하기 싫심더. 겨울에는 좋은지 몰라도 여름에는 찜통도 저런 찜통이 없는 기라.”
매오댁은 콧구멍만한 창문으로 동당댁의 입식부엌을 들여다보았다. 질 낮은 시멘트를 대충대충 바른 위에 나일론 장판을 깐 부엌이라 보기만 해도 후더운 열기가 끼치는 듯했다. 뒤꼍으로 난 문만 활짝 열어젖히면 여태도 더운 걸 모르겠는 시원한 재래식 부엌 생각에 매오댁은 기분이 좋아졌다. 집도 그렇다. 낡은 기와에 한쪽으로 기운 집이긴 해도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향집이며, 마당에 앉아서도 숲실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인 것이다. 매오댁은 인심 좋게 망태기에서 더덕을 한줌이나 꺼내어주었다.
“이 동네 더덕은 매오형님만 알어보는갑심더.”
동당댁이 웃으면서 매오댁의 망태기에 복숭아 여남은 개를 담아주었다.
“저녁 해묵고, 우리집에 마실 온너라. 내동띠기하고 대천띠기도 데불고. 우리집이 옛날집이라도 자네 집보담 서운키는 더 서운을 끼라.”
“서운은 거는 알지마는, 방이 하도 비잡어여 말이제요.”
“지랄한다. 비잡은 시리(시루)에 콩지름은 우예 크는공.”
좁아터진 방에서 네 딸들이 포갬포갬 누워 투정을 부릴라 치면 친정어머니가 하곤 하던 말이었다. 아직도 튼실한 걸음새로 동당댁네 양옥 너머 탱자울타리를 한 낡고 기우뚱한 집을 향해 성큼성큼 내달으며 매오댁은 혼잣말을 했다.
오기 싫으마 치아뿌라. 느덜 아이라도 밤마실 올 사람 따리 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