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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이상섭 李相燮

1961년 경남 거제 출생. 동아대 국문과 졸업. lsangsup@hanmail.net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

 

 

1

 

속이 들끓기만 했다. 그런 속을 추슬러보려고 고추 몇개 날것으로 먹었지만 비오듯 쏟아지는 건 땀뿐이었다. 선풍기 바람을 쐬어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되레 갤갤거리며 가래 끓는 소리가 짜증만 돋구는 격이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바깥바람 쐬는 게 낫지 싶어 그는 젓가락을 놓자마자 부리나케 마당으로 나섰다. 그러나 바깥은 더 심했다. 불가마 속이 따로 없었다. 평상 위에 그늘을 드리워주던 감나무조차 오늘따라 딴청이었다. 그림자를 언제 제 발밑으로 당겨놓았는지 평상에는 그늘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담배를 문 채 짜부라진 그늘 속으로 애써 몸을 디밀었다. 말복까지 지났다고 하지만 아직 복날이 또 하나 남아 있지 않은가. 수호의 말마따나 말복 뒤에 오는 ‘광복’이란 복날이 있어, 그날이 지나야 더위가 한풀 꺾인다고 했으니 애당초 날씨타령은 때이른 불평이었는지 모른다.

매립지 공사장에서 울려퍼지는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 겨울까지 매립을 마무리한다니 아마 공기를 맞추느라 부산을 떠는 모양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 소리가 오늘따라 더 속을 헐떡증나게 만들었다. 매립공사 탓에 눈앞에서 들썩대던 바다가 아득히 밀려났다. 이제 해안으로 밀려오던 파도의 흰 손끝은 이곳에 서서도 볼 수 없었다. 바다를 볼 수 없다면 이곳은 불모의 땅이나 진배없다. 사람들은 억울하면 할수록 하늘을 쳐다본다고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럴수록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억울함을 바다를 보며 삭이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누그러뜨렸지만 그런 일도 바다가 멀어지면서 점점 없어졌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4차선 길이 새로 뚫리면서 마을은 윗마을 아랫마을로 나뉘고 말았다. 자연 수호와 그의 집도 갈라졌다. 도로 아래로 지하도를 뚫어놓긴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널따란 도로는 마을의 경계선으로 자리를 굳혀갔다.

그는 길가에 바투 서 있는 은희네 집을 내려다보았다.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저 집을 안 보고 살 순 없다. 뿐인가, 은희네 집을 스치지 않으면 바다로 나가지도 못한다. 그러니 밉든 곱든 은희네와 부대껴야 한다. 그렇다면 뻔하다. 은희네를 스칠 때마다 자신의 삶을 보호하던 비늘은 하나하나 떨어져나가게 마련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그는 헐떡이는 생선처럼 연신 담배만 뻐끔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은희네 집은 종만이 형의 집이었다. 정든 땅 떠나기 싫다며 혼잣몸 건사하며 형의 어머니만 홀로 살았는데, 노친네가 시난고난 앓아대자 급기야 종만이 형이 도시로 모셔가면서 헐값에 내놓은 것이었다. 그 낡은 집은 내놓기 무섭게 임자를 만나더니 이내 공사에 들어갔다.

어느날, 아무래도 경쟁자가 생긴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알아보니 은희가 돌아와 가게를 차린다는 게 아닌가. 집 임자가 은희란 말을 듣곤 적이 놀랐다. 은희가 돌아온다는 말에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스물하고도 두해 만에 돌아와서 그의 의사도 묻지 않고 한다는 게 고작 가게라니, 이건 영 아니올시다였다. 길 아래 가게가 생긴다면 자연 두 개의 구판장이 서로 갈라먹기 마련이다. 그런 소식을 들은 후부터 은희네 가게를 볼 때마다 자꾸 속이 짜기만 했다. 따지고 보면, 일이 이렇게 척척 잘 맞아 돌아간 것은 다 수호 짓일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시에 있는 은희가 어찌 종만네 이사를 알았으며, 가게 낼 생각을 했을까 말이다.

“코딱지만한 동네에 뭔 이문 남는다꼬 그러는지 모리겄네, 참말로!”

아내가 수돗가에서 야채를 씻으며 쭝얼거렸다. 그 말은 마치 가시처럼 냉큼 그의 가슴에 박혔다.

“마을 두 쪼가리 낼 일이 있능교? 가게 임자가 누군지 알았으면 못하게 막든지 안하고.”

저간 사정을 안 후 마누라는 짬만 나면 대놓고 구시렁댔다. 더군다나 가게 주인이 소꿉동무란 걸 알자 아예 호통질이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워버렸다. 새벽같이 물일을 나섰다가 어판장까지 들렀던 터라 피곤하기도 했다. 망할 놈의 경매사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제법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이삿짐 오늘 온다쿤께 가보지 그라요?”

아내의 빈정거림이 구정물처럼 몸을 뒤덮었다. 안 그래도 속이 칼날처럼 선 판에 마누라까지 작정하고 들볶고 지랄을 떠니 화가 솟구쳤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켜세웠다.

“보자보자 하이, 이 여편네가! 제 아가리라고 함부로 놀리사몬 주둥아릴 째뿔기다 고마!”

눈을 치뜬 채 고함을 지르자 아내는 입을 빼쭉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표정으로 보아 여차하면 또 한마디 뱉을 모양이었다. 그가 눈을 부라리니 아내는 야채 바구니를 들고는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는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맨몸으로 갖은 고생시키다가 겨우 살 만하다 싶더니 일이 터졌다. 아내는 살아보려 식당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돈만 모이면 작은 식당 하나라도 꾸밀 작정으로 부지런히 식당일을 배웠다. 그 바람에 손끝이 맵기로도 동네방네 소문날 정도였다. 매립지 공사장 인부들 점심까지 대주게 된 건 그런 아내의 음식솜씨 덕분이었다.

여태 말하지 못한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을 겸 수호네 집에 갈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금세 접어야 했다. 은희네 가게 앞을 바삐 왔다갔다하는 수호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가게 앞에는 언제 도착했는지 트럭이 서 있었다. 실린 품으로 보아 이삿짐이 분명했다. 1.5톤 트럭에 죄다 실릴 정도니 도시에 살던 살림살이치곤 형편없었다. 트럭 주위로 은희 애처럼 보이는 조막만한 아이들이 자기 깜냥대로 이삿짐을 나르는 중이었다. 수호도 부지런히 움직여댔다. 소꿉친구가 이사를 왔으니 그도 수호처럼 들여다보고 짐도 날라주어야 했다. 그런데도 잘못 날아든 도둑갈매기 쫓듯 마음속으로 돌팔매만 날리고 있었다.

 

물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온 바다가 종양이라도 앓는 듯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전라도 쪽에서 시작된 적조띠가 조류를 타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이쯤 되면 수온이 내려가면 모를까 적조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지금보다 심해진다면 올 여름 바다농사는 헛일이었다. 그는 바다까지 속을 태운다는 듯 ‘테액!’ 하고 가래침을 물위에 보탰다. 그래도 벌겋게 달아오른 속은 식을 줄 몰랐다. 사실 그는 선창에서 적당히 어구 손질을 한 후 집으로 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집에 있으면서 은희네 이사온 것을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순 없었다. 해서 핑계삼아 배를 몰고 바다로 나왔는데 그만 일이 꼬이고 말았다. 더이상 가봤자 뻔했다. 그는 뱃머리를 돌렸다. 은희·수호랑 같이 다닌 초등학교 건물이 눈을 파고들었다.

은희와 그는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였다. 이곳의 짠 냄새가 싫어 대처로 나갔을 때, 유일한 말벗으로 처녀 총각이 될 때까지 서로 만난 사이이지 않았던가.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다. 번번이 일자리를 잃고 마취제처럼 술병을 내리꽂을 때 차라리 은희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만약 은희가 취중에 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그 길로 결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직후 은희네 식구들이 몽땅 도시로 이사해 은희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은희가 나타난 것이다. 지금 그의 감정은 뒤죽박죽이었다. 수호처럼 반갑게 맞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렇게 초라하게 변해버린 것을 감추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깟 아내의 투덜거림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지 모른다.

 

그는 가게문 앞에 우두커니 서고 말았다. 발밑에 달라붙는 불편한 심기 탓에 발 놀리기가 힘들었다. 맨손으로 찾아오기 뭣해 물칸의 숭어 몇마리를 가져온 게 후회스러웠다. 고개를 돌려 그의 집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서서 보고 있었다.

“아저씬, 누구세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않았어도 발길을 돌렸을 터였다. 얼떨결에 돌아보니 티없이 깨끗한 눈빛의 계집애가 그를 올려다보고 서 있지 않은가.

“어, 엄마, 안에 기시냐?”

아이는 엄마라는 말을 듣자마자 대뜸 안쪽을 향해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대답이 없자 쪼르르 방으로 달려갔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돌아서버릴까 싶었다. 그러나 가게를 빠져나가기 전에 들킨다면 안 온 것만 못하다는 생각에 그냥 서 있었다. 실내는 제법 그럴싸하게 꾸며진 상태였다. 이 정도의 공간이면 식탁까지 두어 개 놓아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층층으로 물건을 쟁여둘 선반까지 야무지게 마련해놓아 시내의 가게 못지않았다.

“어머, 덕수로구나. 왔으면 들어오지 않구!”

은희였다. 아이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셋이다. 모두 딸이었고, 어리디어렸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니네 애들은 꽤 크지?”

그는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애와 초등학교 5학년이 있다며 떠듬떠듬 말을 이은 후로 더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물칸에서 건져온 큼직한 숭어 두 마리를 내밀었다.

“이삿짐도 못 거들어줘 부러 들맀다.”

그는 냅다 양동이에서 파닥이고 있는 숭어를 낚아채 목을 꺾었다. 아이들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숭어 목 꺾는 걸 처음 본 모양이었다. 그는 나머지 한마리도 그렇게 숨을 죽인 뒤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섰다.

“숭어회 먹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나중에 짐 정리하는 대로 부를게.”

은희의 말을 뒤로 하고 그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왔다. 한참 후에야 겨우 발걸음을 늦춰 잡았지만 은희의 얼굴을 제대로 봤는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흘낏 본 은희에게는 분명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어쩌면 또래 여자들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늙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변해도 그냥 잔주름만 늘어 있을 정도려니 했다. 하긴 과거의 얼굴은 그대로 멈춰 있기에 아름답다고 했던가. 집으로 오르는 길바닥에 은희의 얼굴만 밟혔다. 정작 따질 건 따지고 서운한 건 서운하다고 속 시원히 말이라도 하고 말겠다며 간 걸음이 묘하게 꼬이고 말았다.

“아예, 그 집에 자고 오제 그라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냅다 언성을 높였다. 저녁을 먹던 아이들이 지 에미의 소리에 놀라 숟갈을 문 채 바깥을 내다보았다.

“여편네가 말짓거리하고는……”

그는 말끝을 흐리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은희네 가게와 달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선반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휘었고, 그나마 앵글로 된 선반도 녹이 듬성듬성 슬고 칠이 벗겨져 형편없었다.

그는 부엌바닥에 양동이를 팽개치듯 부려놓고 수돗가로 향했다. 아내가 고기를 들고 뒤따라 나왔다. 그가 씻을 동안 아내는 굵은 팔뚝 힘 자랑이라도 하듯 숭어 목을 꺾었다. 그가 은희네에서 꺾을 때와 달랐다. 얼마나 힘이 좋은지 여지없이 단번에 ‘뚝’ 하는 소리가 났다. 오늘따라 아내의 몸피가 더 팅팅 부어 보이기만 했다. 예전 같으면 몸매야 어찌됐건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싶었다. 게다가 여태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른 나무젓가락 같던 몸에 살이 오르니 이게 다 살 만해 그렇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은희의 가냘픈 몸매를 보고 오니 이건 영 여자도 아니지 싶다. 게다가 목소리는 또 어떤가. 은희 목소리가 사각거리는 풀잎이라면 아내의 목소리는 ‘금성호’ 뱃고동 소리 아닌가 말이다.

그는 거친 손길로 빨랫줄에 걸린 수건을 잡아떼어 물기를 훔쳤다. 아내는, 그가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숭어회 접시가 놓인 밥상을 디밀었다. 손이 잰 건 알아줄 만했다.

“아예 낼부터 점방문 열란가보지요?”

그는 무슨 말인가 싶어 회를 집다 말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수호씨는 도대체 뭔데 나서서 거래처 전화번호까지 적어가고 난리요 그래!”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밥만 먹었다. 곁눈으로 흘낏거려보아도 아내의 볼은 물먹은 멍게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2

 

요 며칠 동안 은희네 가게 앞엔 사람 그림자가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이삿짐 정리하랴, 가게 물건 들이랴 쉴새없이 복작거렸다. 선창으로 가면서 기웃거릴 때마다 가게는 점점 구색을 갖춰가고 있었다. 진열한 물건도 그의 낡은 구판장과는 달랐다. 과자 봉지들이 집어들고 싶을 만큼 이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거기에다가 안채의 초라한 살림방을 가리려 드리워놓은 연분홍 커튼까지 매혹적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왠지 한산했다. 문앞에 어지러이 찍힌 발자국만 바람이 건드리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따금 은희네 아이들이 집 앞에서 이리저리 몰려다닐 뿐이었다. 그는 멀뚱한 눈으로 은희네만 내려다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은희가 혼자 되었다는 소문을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응당 남편의 모습이 비쳐야 옳았다. 그런데 며칠 동안 남편이란 작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가게 앞에 트럭 한대가 달려와 섰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 힘이 실렸다. 트럭의 짐칸에 실린 것은 간판인 듯했다. 트럭 기사가 바깥동정을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클랙슨을 울렸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은희가 얼굴을 내밀었다. 차에서 내린 기사는 은희와 한동안 마주서서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눴다. 은희는 손가락으로 가리켜가며 뭔가를 지시했다. 간판 세울 위치를 일러주는 모양이었다.

우리들 휴게소. 간판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재차 확인해도 분명히 ‘너그들’이 아닌 ‘우리들’이었다. 그걸 확인하자 저절로 눈썹 끝이 일어섰다. 세상에, 우리들이라니! 은희가 우리를 생각했다면 상호를 그딴 식으로 지어 붙일 순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휴게소’란 글자까지 또박또박 새겨 넣다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런 간판이 어디 이런 촌구석에 어울리는가.

은희네가 깔끔을 떠니 우리도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냥 있어선 안된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담배를 사정없이 발로 눌러 밟고는 트럭으로 향했다. 그나마 트럭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사실 대처에 나가 여러가지 일을 해봤지만 그가 제일 잘했던 게 운전이었다. 이곳에 올 때도 트럭이 살림의 전부다시피 했다. 한동안 트럭에 과일이며 야채를 싣고 장사를 해보기도 했고, 활어 운송도 해봤다. 그러다가 가게를 얻은 다음부터 트럭은 동네사람들 부조 기계가 되었다. 급한 환자가 생기면 밤중에라도 트럭을 몰고 병원으로 내달았다. 쫌새영감도 그의 트럭이 아니었으면 이미 저승객이 되었을 터였다. 뿐인가, 잔칫집 음식 날라주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짐칸에 사람을 싣고 다니기도 다반사였다. 그런 작은 일들로 인심을 얻었다.

그는 곧장 목재상으로 향했다. 선반을 다시 만들려면 제법 많은 널빤지며 각목이 필요했다. 가게 내부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정작 손을 봐야 할 곳은 내부가 아닐지 몰랐다. 문제는 허름한 외관이었다. 은희네처럼 그럴싸한 가게를 만들려면 집을 아예 뜯어고쳐야 할 판이다. 그건 그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소한 집주인인 수호에게 의논해야 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소갈머리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몽니를 부렸다. 목재를 고르던 손에 힘이 탁 풀렸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었다.

 

아내와 한동안 승강이를 했다. 그냥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는 거 아니냐며 가게를 고치지 않을 것 같으면 무슨 대책이라도 내보라고 닦달이었다. 하다 못해 간판이라도 내걸든가 해야 한다고 그놈의 주둥아릴 놀려댔다. 그러고도 모자라 무슨 화풀이라도 하듯 연방 전화질이었다. 거래처마다 전화를 걸어 무엇무엇을 한 박스씩 주문하기도 하고, 안 갖다준다고 난리치기도 했다. 그는 아내의 악다구니를 피해 평상으로 나와버렸다. 평상에 앉아 있자니 자꾸 은희네 간판으로 눈길이 쏠렸다. 훤칠하게 쭉 뻗어 올라간 모습에 눈이 아릴 정도였다. 저 간판에 불을 밝힌다면 온 동네가 환할 것이고 자연 지나가는 차량이며 동네사람들이 부나비처럼 모여들 것이다.

“전화 좀 받아보소!”

아내가 대뜸 그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누구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 그에게 아내는 대답 대신 수화기를 바닥에 내던지곤 부엌으로 내빼버렸다.

“와 이리 얼굴 보기 힘드노? 어디 이사라도 간 줄 알겄다!”

수호였다. 예전 같으면 한번이라도 더 만나는 게 정이라며 전화보다는 그의 가게로 찾아왔을 터였다. 그는 대뜸 말을 쏘아붙였다.

“무슨 일로 전화질이고?”

“은희가 개업식 겸 집들이를 한다꼬 연락했더라. 혹시 물칸에 고기 있나? 빈손으로 갈 순 없는 거 아이가.”

수호는,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부조라곤 고기밖에 더 있냐며 나발거렸다. 그물농사 죄다 털어 남 보신시키자는 말처럼 들려 사정없이 말갈기라도 휘두르고 싶었다. 그러나 수호는 그의 뒤틀린 심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니, 고기 몇마리 덜 잡은 셈치고 이번 참에 동네잔치 한번 벌이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고기가 물속 우렁쉥이라도 되냐? 건지면 잔치할 정도로 연방 올라오게?”

마음이 있어야 길이 생기는 법이다. 마음이 없으니 딱딱하게 마른 소리만 났다. 하지만 수호는 막무가내였다. 꼭 돈을 받아야 할 것 같으면 자기가 고깃값을 내겠다고 했다. 못한다고 했다간 친구끼리 이건 너무 야박한 것이 아니냐, 네가 왔을 때 난 안 그랬다는 말까지 나올까 싶어 마지못해 알겠다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말았다. 수호의 속내가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적어도 그를 생각한다면 수호가 그렇게 설치지 말아야 했다. 떫은 감정이 가라앉질 않았다. 아내는 귀를 세우고 앉았다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벌겋게 달아오른 입을 열었다.

“친구끼리 살림 거덜내가며 이번 참에 아예 계모임 하나 기차게 벌이자 그 말이지요? 하이고 참말로! 아예 죄다 갖다주지 그라요?”

그는 아내를 향해 눈을 부라리다가 이 참에 수호에게 서운한 마음도 전할 겸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그가 멀어질 때까지 아내는 등뒤에서 오징어포 씹듯 연신 입을 꽁알거렸다.

트럭을 몰고 선창으로 향했다. 은희네를 스치는 일이 부담스러워서였다. 차를 타면 금세 지나가니 걷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선창은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테트라포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짓다 만 방축에 앉아 그를 기다리던 수호는 트럭이 멈추자마자 재빠르게 달려왔다.

“괴기 얼굴이나 구경하겄나?”

수호도 적조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 터에 비싼 회까지 장만해 잔치를 열 생각을 하다니.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다. 수호는 그런 그의 속내도 모르고 성큼성큼 배로 향했다. 오늘따라 녀석의 뒷모습이 지독스레 낯설어 보였다.

“은희집에 자주 들르지 않구선…… 은희가 닐 몹시 기다리는 눈치던데?”

수호가 돌아보며 말했다. 은희네 이삿짐이 도착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캐묻는 듯한 말투였다.

“코딱지만한 짐에 니 하나몬 됐제. 뭐 그만한 일로 나까지 나설 게 뭐 있냐?”

그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횟감이라도 갖다줬으몬 포라도 떠주고 가야제. 그냥 개밥 던져주듯 주고 가몬 은희가 어찌 묵노?”

녀석은 어느새 그가 은희네에 들른 일을 안 모양이었다. 둘이 짝짜꿍이 되어 미주알고주알 그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마음 상했다. 더군다나 횟감을 갖다준 판에, 상전 모시듯 회까지 제 앞에 갖다바쳐야 옳다니.

“은희가 어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갯가 출신이몬 잡아 묵어도 묵을 낀데 뭘 더하란 말이고!”

수호가 은희집에 살 듯하는 것이 아니꼬워 던진 말인데 녀석은 어이없다는 듯 한동안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갑하다는 듯 눈을 부라리며 그를 향해 목소리를 세운다.

“니, 은희 손이나 제대로 보고 하는 말이가?”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눈만 동그랗게 홉떴다. 수호는, 그런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게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한참 갸웃거리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은희, 걔 왼손이 없다!”

“정말이가?”

“그렇다 캐도.”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까지 이쁘고 복스럽게 생긴 손을 간직하고 있던 그녀였다. 맏며느릿감처럼 모든 게 둥글둥글했다. 손가락이 도시 것들과 달리 길지 못하고 뭉턱 하니 짧았으면 짧았지 손에 상처 하나 없었다. 그런데 손이 없다니.

“우야다가 그리 댔다 카더노?”

“궁금하몬 은희한테 직접 물어봐라!”

수호는 그의 가슴에 멍이라도 남길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보니 그가 숭어를 들고 찾아갔을 때 은희는 손을 내밀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시집가기 전까지 이상이 없었다면 그후란 셈인데, 그렇다면 결혼하고도 공장엘 계속 다녔단 말인가. 험한 기계를 만진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손이 잘려나갔단 말인가.

“은희 남편은 만나봤더나?”

“바빠서 같이 오지 못했다쿠대. 며칠 뒤에라사 내려온다 카더마는……”

“그기 무슨 말이고?”

“이야기 안하는 걸 우찌 알 끼고? 하여튼 옛날 은희가 아이다. 그러이 니가 좀 마이 도와줘라. 니는 내보다 그런 심정을 더 잘 알 거 아이가. 니하고 은희하고는 각별했으이……”

그는 갖다준 숭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두 손 멀쩡한 여자도 힘들다고 남정네에게 포 뜨는 일을 맡기는 터수에, 비늘도 날카롭고 등뼈도 모질게 굵은 그놈을 내던지듯 하고 돌아섰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가 갖다준 고기는 냉장고에 처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안 갖다주는 것만도 못했다. 숭어란 놈 자체가 횟감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고기였다. 갈치라면 살이 물러 장년 겨드랑이 속에 넣었다가도 먹을 수 있지만 이건 숫제 매운탕을 해도, 구워도, 쪄도 맛이라고는 소금물 맛보다 못한 고기 아니던가. 자꾸 그물을 당기는 손에만 눈이 머물렀다. 미루적거리는 그의 행동을 보자 수호가 답답하다는 듯 다그치고 들었다.

“아예 바닷속에 있는 괴기 손으로 잡아올리는 기 낫겄다 마!”

잔칫상에 어울리는 비싼 돔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올라오는 건 불가사리나 죽은 돌게, 아니면 죽어 흐물거리는 꼬시래기가 전부였다. 겨우 해봤자 도다리 손바닥만한 게 몇마리요, 남정바리 몇마리, 모찌를 면한 숭어가 그릇을 채울 정도였다. 어판장에 이대로 들고 간다면 고기 씨 말린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그나마 작은 것들 바다에 도로 던져놓고 나니 장골 두엇의 안줏거리밖에 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던진 그물까지 걷지 않을 수 없었다.

 

 

3

 

흥성한 잔칫집이 따로 없었다. 가게 입구에는 리본을 단 화분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큼직한 꽃지게까지 놓여 있었다. 무슨 무슨 거래처의 사장 누구니 하는 것들을 보자 갑자기 그의 마음이 무거웠다. 아내가 저걸 봤다면 걸음을 돌렸을 게 뻔했다. 그도 쉬 발을 디밀기 어려운 판에 아무리 동네사람들이, 세상은 정으로 사는 거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해도 오기 어려울 터였다. 그는 주위 동정을 살폈다. 다행히 아내는 등을 돌리고 멀찍이 나앉아 있었다. 그래도 온 게 어디냐 싶어 마음이 놓였다.

그의 아내와 달리 수호의 아내는 바삐 움직였다. 부엌에서 음식을 들고 나오기가 몇번이었다. 가게 귀퉁이에 마련한 자리에는 벌써 동네 영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공술에 회까지 얻어먹는 게 동네 생기고 얼마 만이냐며 저녁 하늘로 너털웃음을 피워올렸다. 만날 술통을 달고 사는 망태할배는 몇잔을 거푸 걸쳤는지 눈빛이 퀭했다. 아들 걱정에 뼈가 삭을 지경이라던 쫌새영감도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사람들이 죄다 모인 듯했다. 집들이 겸 개업식에, 동네 신고식까지 겸한 자리라 조그만 아이들까지 죄다 몰려와 잠방거려댔다. 그 와중에 아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분위기만 갉아대고 있었다.

“제수씨! 좀 도와주소. 장만할라몬 한참 걸린께.”

수호가 눈치를 챘는지 그의 아내를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말끝마다 제수씨, 제수씨 하다보니 어느새 녀석은 형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하필 왜 내게 도움을 청하느냐는 투로 대뜸 수호를 향해 턱을 올려 세웠다.

“우리 아 아부지 생년월일을 또 야그해줘야 됩니꺼?”

아내의 큰 소리에 어른들은 되레 재밌다는 듯이 껄껄 웃어넘겼다.

“그라몬 형수라고 부를 낀께 일단 아나구부터 손 좀 대보소.”

바닷속이 어수선하니 고기도 길을 잃었는지 온갖 게 다 걸렸다. 아침에 걷은 그물에 고기가 주렁주렁 올라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얼굴 보기 힘든 커다란 문어까지 올라왔다. 문어는 살아서도 돈이요 죽어서도 돈인 귀한 생물이었다. 귀한 것인만큼 내놓기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그걸 빼자니 좀생이짓을 한다는 핀잔을 들을 것 같아 단념하고 말았다. 아내가 본다면 눈이 뒤집힐 게 뻔했다. 그는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아닌게아니라 그릇 속의 문어 대가리를 보자 아내의 손길이 멈칫했다. 그는 부러 못 본 척했다. 멈칫하던 아내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장어머리에 대못을 박고 구잇거리를 장만했다. 그러나 원치 않은 남의 잔치에 돈 살 문어까지 거덜났다는 듯 손길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은희는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아예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이 사람들아! 먹자고 하는 일인데 먹어가며 하게. 자, 잔 받어.”

망태할배가 공술 먹기 미안했던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잔을 건넸다. 수호의 아내는 눈치 빠르게 초장을 들고 곁에 섰다. 수호가 비린내 묻은 손을 바지춤에 쓰윽 문질러 닦고는 잔을 받아 쥐었다.

“으어 참, 오늘따라 술맛 한번 조옿다!”

“데끼, 이 사람! 어른 앞에서 술타령까지 하다이! 기분이 어지가이도 좋은가배?”

멀찍이 앉아 있던 쫌새영감이 말을 던졌다.

“친구간에는 돈부주고 몸부주고 아까운 게 없는 법이제.”

차려낸 상에는 미역생선국과 고봉 쌀밥, 장어구이와 삶은 문어, 싱싱한 회까지 없는 것 없이 푸짐했다. 모처럼 동네사람들이 함께한 잔치였다. 그렇지만 아내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 부러 겉도는 기색이더니 아이들이 숟갈을 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집으로 휭하니 올라가버렸다.

시간이 흘러 하나둘 아이들을 이끌고 떠나니 주위는 금세 조용해졌다.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술 좋아하는 망태할배뿐이었다. 젊은 사람들끼리 놀게 그만 일어서자고 쫌새영감이 망태할배를 잡아끌었으나 일어날 기미가 없자 쫌새영감은 혼자 몸을 일으켰다. 남은 사람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은희가 나타난 건, 끝까지 술탐하던 망태할배를 수호가 건강을 핑계삼아 일으켜 세운 다음이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해 수호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오늘 너무 고마웠어. 너도, 네 아내도……”

그는 얼른 은희의 손부터 살폈다. 은희는 그의 눈치를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왼손을 상 아래로 감춰버렸다.

“덕수 니네 부부한테 미안해서 어떻게 해?”

그 자리에서 정색을 하고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었다.

“암튼 고향에 온 걸 환영해!”

그가 술잔을 내밀었다. 그러나 은희는 고개를 저었다.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술은 절대 입에 안 대. 대신 내가 한잔 줄게!”

은희가 술병을 그러쥐었다. 그 순간 그는 보고 말았다. 수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은희의 손을 보는 순간 떠오른 건 목 없는 생선이었다. 손등의 절반 이상이 완전히 잘려나간 상태였다. 마치 두부 모 자르듯 싹둑 잘려나간 손에서 손가락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자꾸 그렇게 쳐다보지 마.”

은희는 뭉턱 잘려나간 손을 다시 상 아래로 숨겼다. 그는 묻지도 못하고 거푸 술잔만 꺾어댔다.

“난 여기서 널 보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어.”

“나도 마찬가지다. 니가 이곳에 올 끼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종만이 오빠와 병원에서 맞닥뜨린 것이 계기가 되었어.”

은희는 병원에서 우연하게 종만이 형을 만났다고 했다. 그후 종만이 형이 어머니를 모셔가기 위해 이곳을 들락거리다가 종내는 수호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되었단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다며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수호가 조금만 늦게 나타났더라도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호가 오면서 분위기는 달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친구 셋이 잘살자며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게다가 수호는, 셋이 이렇게 다시 만난 게 얼마나 기쁘냐며, 시시콜콜 어릴적 코 흘리던 얘기까지 끄집어내 아득한 옛날을 더듬게 만들었다.

 

 

4

 

머리맡이 어수선했다. 벽을 울려대는 공사장의 기계소리, 부엌에서 나는 설거지 소리는 서로 경쟁이나 하듯 번갈아 들렸다. 그물을 걷으러 바다에 나갈 일이 없어 모처럼 늑장을 부리며 방구들을 지고 누웠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젯밤에 보았던, 손가락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은희의 뭉툭한 손이 자꾸 천장에 어른거리기만 했다. 빌어먹을. 자신도 모르게 혼잣소리를 했다.

“인부들 올라올 끼요. 인자 제발 인나소!”

아내의 목청에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방안 가득 펼쳐둔 생각들을 접고 몸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인부들이 몰려온다면 방방마다 밥상을 놓아야 하니 일단 몸을 피해줘야 했다. 그는 냉수를 들이켠 다음 감나무 밑에 가 앉았다. 술기 탓인지 몸이 께느른한 게 기운이 바지춤으로 죄다 줄줄 새는 기분이었다. 감나무도 그의 심기를 눈치챘는지 가지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신 조무래기 주먹만한 감만 푸른 윤기를 더하며 햇살 속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담배 하나를 물고 은희네로 눈길을 던졌다. 사람의 그림자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다들 선풍기 앞에 앉았거나 아니면 그늘에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그가 눈길을 길목으로 돌렸을 때 낯선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찬찬히 남자를 살폈지만 모르는 얼굴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매립지 공사장의 인부도 아닌 성싶었다. 그렇다면 가슴팍에 ‘해룡건설’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박혀 있어야 했다. 남자는 아침부터 술에 취한 듯 배트작거리는 걸음이었고 입성도 부랑자처럼 엉망이었다.

“쏘주 한병만 주쇼!”

터덜거리며 가게로 들어선 남자는 다짜고짜 술부터 찾았다. 대낮부터 술탐을 하는 낯선 주정뱅이를 보자 호기심이 일었다. 아내가 술병을 건네면서 웬 사람이냐는 듯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술병을 쥐자 곧 몸을 돌려세웠다. 남자가 그의 곁을 스치자 문뱃내가 끼쳤다. 남자는 큰길이 아닌 마을 뒷산으로 향했다.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거침없었다. 그는 남자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다음에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망태할배 친구하자꼬 쌍지팡이 짚고 달려오겄네, 참말로! 이상한 기 하나 나타나 동넷물 베리놓터이, 이젠 저런 사람까지 굴러오이 동네 꼬라지가 우습게 돼가는구만!”

아내는 들입다 나타난 손님이 마치 은희와 한통속이라도 되는 듯 침을 튀겼다.

“사람들 밥 묵으로 안 오는데 당신 먼저 퍼뜩 묵으소!”

그제야 그는 앉았던 자세를 풀었다. 그사이에도 포크레인 소리는 여전히 마을을 휘감고 있었다. 소리가 멈추지 않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늦을 모양이다. 그는 늦은 아침상을 끌어당겼지만 식욕이 없었다. 국에 밥을 말아 억지로 서너 숟갈 떠넣고 있을 때 기계소리가 톡 끊겼다. 그러곤 잠시 뒤 가풀막을 타고 오르는 차바퀴 소리가 요란하게 일었다. 바깥을 살피니 인부를 태운 차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는 얼른 숟갈을 놓고 방을 빠져나왔다.

“어따, 참말로 덥네. 아지매! 냉수 있으몬 그것부터 퍼뜩 좀 주이소!”

아이스박스에 대형 얼음을 넣고 생수병까지 띄워놓아도 몰려오는 더위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수돗가로 몰려가 자기 집처럼 웃통까지 훌러덩 벗어던지고 등목을 했다. 인부들이 하나둘 밥상으로 모여들었다. 먼저 앉은 이들은 입이 미어지게 밥을 퍼넣고 있었다. 그는 그런 인부들을 지켜보다가 다시 길을 훑었다. 낯선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무 그림자 하나 까딱 하지 않는 폭염만 길바닥에 내리쏟아지고 있었다.

“하여튼, 그동안 잘 먹게 해줘 고맙습니다.”

부엌 쪽에서 울리는 말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소장과 아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인부들은 이쑤시개를 문 채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마주선 아내의 얼굴에 잿빛이 잔뜩 눌앉아 있었다. 소장은 아내의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몸을 돌려세웠다. 그걸 신호로 인부들도 삼삼오오 차에 올랐고 꽁무니를 빼듯 사라졌다. 평소 같으면 아내는 그들이 떠날 때까지 그림자를 밟고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내는 잘 가라는 말은커녕 부엌 문지방도 넘질 않았다. 부엌 쪽을 바라보니 아내는 거친 손길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미친년 하나 땜에 집구석이 쫄딱 망하게 생기삤네, 마!”

아내가 말한 미친년이 누군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손만으로 돌아온 그녀를 본 이후 무턱대고 욕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동업이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배도 있었다. 몸만 부지런히 놀리면 바다가 곧 돈밭 아니던가. 이깟 구판장 벌이야 아껴 쓴다면 얼마든지 때려치워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아내였다. 아내가 꾸려온 가게는 재기의 발판이었다. 가게문을 닫는 것은 어쩌면 아내 인생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것이 될 것이다.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산으로 향했던 남자가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걸음발은 금방이라도 자빠질 듯 아까보다 더 휘청거렸고 손에 쥐고 있던 술병도 사라지고 없었다. 남자는 담에 몸을 부딪혀가며 내려오고 있었다. 남자는 용케 흔들리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가게까지 오더니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그러곤 말도 없이 가게 안에 들어가 술병 하나를 그러쥔 채 도로 나왔다. 술을 달라는 말도 없었다. 돈을 던지듯 건네고는 길 아래로 향해 걸어갔다.

 

“당신은 배알도 없소? 오라면 오고 가자 쿠몬 가고 그라게?”

전화를 내려놓기 무섭게 아내는 냅다 대갈성을 질렀다. 그러나 어구를 손질하기로 약속한 건 은희가 이사 오기 전이었다. 다만 은희의 이사와 적조 탓에 늦어졌을 뿐이다. 어구는 버스바닥에 실을 수도, 택시 짐칸에 싣기도 어중간한 물건이었다. 그의 트럭이 그런 물건 싣는 데 제격이긴 했다. 예전 같으면 잘 다녀오라고, 보신탕이라도 한그릇 잡숫고 오라고 했을 터였다. 그가 은희의 손만 보지 않았더라면 수호에게 핑계를 늘어놓으며 거절했을지 몰랐다. 그는 아내의 부어오른 얼굴을 긁기 싫어 키를 들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우리도 여태까지 해줄 만큼 했다는 거 제발 좀 아소!”

아내의 독 오른 말은 차에 오를 때까지 이어졌다. 참다 못한 그가 아내를 향해 인상을 구겼다. 미친년이니, 망할년이니 하며 자기 언니뻘 되는 은희에게 막말을 하는 것도, 당신은 배알도 없냐는 말도 듣기 싫었다.

“아예 가는 김에 친구 여편네 밑구영까지 닦아주고 오소, 마!”

“제 아가리라고 함부로 놀리싸몬 언젠가 일난다 캤제?”

그는 버럭 고함을 지르고 떠났다.

트럭 소리가 들리자 수호는 대문을 빠져나왔다. 둘은 곧장 시내 어구점으로 향했다. 차를 달리면서도 그의 입은 이상하게 열리지 않았다. 아내의 비아냥이 귀에 딱지처럼 남아 그저 묵묵히 차만 몰아댔다. 그의 차가운 기분을 알아챘는지 수호가 갑자기 날씨타령을 했다. 아닌게아니라 태풍이 북상중이라더니 그야말로 바람 한점 없었다. 맞은편 구름장의 발걸음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렇게 잔뜩 물쿠다가 어느 순간 바람이 몰려오면 때맞춰 바다는 제 몸을 부풀리며 영각 쓰는 황소처럼 선창을 들이받을 것이다.

“은희 서방이 온 모양이더라?”

그는 수호의 말에도 아무 표정을 만들지 않았다. 남편이 왔으면 왔지 온 모양이라니 말투치곤 어째 좀 이상했다.

“은희 서방이 온 기몬 온 기제 온 모양이라니 그기 무슨 말이고?”

“아직 못 봤으이까 그렇제.”

뇌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햇살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 주정뱅이였고, 부랑자나 다름없는 사람 아니었던가.

“와 이사 올 때 같이 안 오고 가리 느까 왔다더노?”

“뭐, 어데 병원에 있다가 늦었다 카디마는……”

“병원에?”

“자세한 내막이사 은희가 입을 다물고 있으이 그걸 우이 알겄노!”

수호도 답답하다는 투였다.

 

 

5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넉넉한 사랑을 베풀던 바다의 넓은 품은 이제 깨지고 뭉개지고 멍이 들었다. 적조는 해마다 반복되고 바다는 미친년 치맛자락처럼 날뛰기만 했다. 활어값이 금값이라고 해도 워낙 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소용없었다. 더군다나 인근의 조선소 탓에 물속은 탁해지기만 하니 이러다간 몇년 후면 바다일은 종치기 십상이다.

바닷속이 마르니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기만 했다. 자연 여객선 부두도 손님을 잃게 되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부두 앞은 택시로 만원이었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여객선이 끊어지고 식당이 하나둘 문을 닫자 점점 을씨년스런 거리로 변하고 말았다. 심지어 어판장 앞까지 오던 버스노선을 바꿔버려 어판장은 소금비 맞은 배추마냥 시들해졌다.

“저짜 끄터리로 갖다대소!”

이물에 앉았던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엔진소리 탓에 들리지 않을까 싶어 손가락질까지 했다. 그는 아내의 지시대로 키를 조정했다. 모처럼 아내와 여유를 갖고 물일을 할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내를 이곳까지 대동해 올 수도 없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인부들 점심일을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판장 앞의 선박들 틈새를 비집고 배를 묶었다. 그리고 곧장 물칸의 고기부터 살폈다. 은희네 개업식 탓에 한번 거른 그물질이라 돈을 살 만하기는 했다. 아직 적조가 짙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지금처럼 계속 들볶는다면 죽은 고기 걷기 십상이다. 그는 물밑을 내려다보았다. 물빛은 탁하기만 했다.

아내는 어판장으로 종종걸음을 쳐댔다. 아내가 대야를 가져오면 종류별로 담으면 그만이다. 경매 물건도 줄어 예전처럼 몇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대야에 숭어는 숭어대로, 도다리는 도다리대로, 잡어는 잡어대로 담기 시작했다. 감셍이는 비늘 하나 다치지 않게 신경을 더 썼다. 간혹 아나고가 뜰채에 걸려오면 크기부터 확인했다. 한일어업협정이 있은 후에 나타난 변화 중의 하나였다. 일본 근처 장어어장을 잃으면서 인근 장어공장은 문을 닫았고 아나고의 집단 산란지가 이곳인 때문에 치어에 해당하는 아나고는 어획 금지대상이었다. 그러나 감셍이는 예외였다. 비록 남정바리를 면했다 하더라도 이 녀석들은 조금 뒤면 빠져나가기 때문에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을뿐더러, 이곳으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런 터에 오늘따라 이빨이 큼직한 감셍이를 세 마리나 걸었으니 돈이 될 만한 고기는 요것들밖에 없다.

훌빈하던 공터에 물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훈훈했다. 경매가 끝나는 대로 고기를 싣고 내뺄 트럭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잡은 고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그는 끙끙거리면서 대야를 날랐다. 어판장 안에는 생선대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내는 대야에 물을 채워넣기 바빴다. 물이 많아야 고기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고 그래야 웃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낙찰된 물고기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차례가 왔다. 경매꾼들이 그의 고기 앞에 선다 싶자 경매사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매인들 손놀림이 바쁘더니 금세 낙찰이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새벽부터 뼈 빠지게 고생하며 얻은 수확이 순식간에 임자가 바뀌자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늘 그렇지만 좀더 고깃금을 두고 승강이를 했으면 싶었다. 게다가 조금 더 불러주었으면 하는 감셍이까지도 값을 더 부르는 사람이 없어 삼만사천원에 낙찰이 되자 남아 있던 힘마저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제법 주위가 희붐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는 바다를 향해 눈길을 주었다. 어판장을 빠져나가는 배의 엉덩이는 보였지만 들어오는 배는 없었다. 그는 선술집으로 향했다. 경매 끝나면 잠시 들러 목 축이고 깔딱요기 하는 장소였다. 여름이면 돼지고기 꼬치, 겨울이면 생선묵이 안줏거리로 나왔다. 벌써 망태할배는 선풍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마시기 시작하면 주머니에 돈이 마르지 않는 이상 자리를 뜨질 않는 양반이었다.

“돈 좀 만들었는가?”

그가 들어서자 망태할배가 물었다. 앞에는 맥주잔 가득 소주가 담겨 있었다.

“요즘 돈 되는 사람 있습디까, 어데?”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꼬치부터 덥석 물었다. 고기 몇토막을 씹어 넘기자 시장기가 가시는 듯했다. 솔찮은 요기였다.

“여게 한잔만 더 도!”

망태할배는 그 큰 잔을 들이켜고 또 술을 청했다. 주독 오른 망태할배의 코가 빨개지고 있었다.

“저노므 영감탱이, 또 시작이다! 있어도 몬 준다는 거 알면서도 저래쌓네, 그래!”

식당할매가 주방에서 내지르는 말이었다.

“마, 그만 드시고 일나이소. 집에 가야지예!”

그가 망태할배의 겨드랑이를 붙들었다. 할배는 비틀거리면서도 잔을 입에 갖다대는 건 잊지 않았다. 그 몸으로 배를 몰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현도 형이 죽지만 않았어도 주정뱅이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대견해 아들 이름을 입에 달고 다녔었다. 자랑거리이던 아들이 무슨 일에 연루되었는지 잡혀가 반병신이 되어 나타났고, 시난고난 앓다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자식을 잃은 후, 밥보단 술로 끼니를 삼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망태할배의 팔을 끌고 나왔을 때, 아내는 뱃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멀찍이 수호의 배가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늘 수호는 그보다 일찍 나섰기에 오늘은 어쩐 일로 늦었는지 궁금했다. 망태할배의 배가 빠져나가자 그 자리로 수호의 배가 들어왔다.

“고기 마이 들었던갑제? 이리 늦는 걸 보이.”

수호는 고개부터 잘래잘래 흔든다. 하긴 그물 하나 놓지 못하니 안 봐도 훤했다. 그는 수호의 뱃전에서 담배 하나를 물었다. 수호가 담은 고기는 달랑 네 대야에 불과했다. 큰 배의 수확치고는 형편없다. 수호 아내가 생선대야를 어판장으로 냉큼 가져다 나른다.

“와 이리 늦었더노?”

“은희 남편 땜에 마 이리 늦어삐맀다 아이가.”

은희 남편 때문이라니. 그럼 은희 남편한테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얼마나 처묵었는지…… 겨우 집에 업어놓고 오다보이 이리 됐다.”

“그기 무슨 말이고?”

“지 집도 못 찾아갖고 매립지에 자빠져 자고 있더라쿤께. 참, 기가 차서!”

“……?”

“은희가 말은 안해도 남편 땜에 어지가이 속 썩고 살았는가보더라.”

남편이란 작자가 오자마자 술주정을 부리다니. 그럼 환자란 얘기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미친놈이 따로 없제. 살로 왔으몬 은희를 도와주면 좀 좋나. 되레 못살게 군다니깐!”

“병원에 있다 나왔담서 술은 뭐 땜세 묵었단 말이고?”

“하여튼 나중에 숟갈 놓는 대로 우리집에 좀 온나. 이야기 좀 하거로!”

수호는 그 말을 끝으로 배에서 내렸다. 통을 들고 나서는 걸로 보아 기름집에라도 다녀올 모양이다. 그는 친구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배에 올랐다. 망태할배의 배는 어느새 치끝을 돌아서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은희네 가게 앞은 조용했다. 대형간판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허공에 걸려 있었다. 은희 남편이란 작자의 흔적을 확인할까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찾을 수 없었다.

수호 집에 다다랐을 때 수호는 아내에게 술상부터 내오라고 했다. 아침부터 웬 술상이냐 했더니 어구점 다녀온 트럭 기름값이라 우겼다.

“인부들 점심도 은희네에서 묵기로 했다매?”

수호가 잔을 채우며 물었으나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손님들을 은희네로 뺏기는 중이라 속이 쓰렸다. 동네 조막만한 손님까지 은희네 아이들과 어울려 그의 가게는 텅텅 비다시피 했다.

“이 참에 마 자네가 가게 정리하는 거는 어떻겄노?”

느닷없이 하는 말치고는 가관이었다. 친구의 근심이라도 풀어주는가 싶었더니 이건 되레 바지춤에 똥 묻히는 꼴 아닌가.

“그기 무씬 말이고?”

“내 말은 말이다, 친구끼리 아무래도 한동네서 경쟁하는 기 영 맘에 걸리는 기라.”

“그라몬 나더러 문 닫아라 이 말이가?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친구 의릴 생각하몬 은희 지가 먼저 문을 닫아야제, 와 내가 문을 닫노?”

“은희는 겨우 살아볼라꼬 온 긴데 니가 이해해주야제.”

“뭘 이해해줘? 그러몬 지가 먼저 나한테 와서 그런 언질이라도 줘야 할 거 아이가. 이태 내가 말은 안했지만서도 니도 그런 점에선 친구로서 서운타!”

“니가 알았어도 어쩔 수 없었을 끼구마는.”

“뭘 어쩔 수 없었단 말이고? 먼저 의논했으몬 내 가게 내놨을지 우찌 아나.”

“됐다 고마. 그래서 시방 야그할라꼬 안하나.”

“……?”

“니, 쫌새영감이 땅 내놓은 거 알제?”

수호는 대뜸 화제를 바꾸었다. 그 일은 그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긴 했다. 수협돈 빚내 아들 동찬이 살림집 마련해준다고 배며 전답까지 담보로 잡힌 것을. 그래서 영감의 가슴에 조개무지 같은 걱정만 쌓여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호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내뱉는지 속내가 의심스러웠다.

“농협과 수협이 합치면서 돈 갚으라고 독촉인 모양이더라. 연체도 제법 된 모양이던데……”

“그거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 있노?”

말투로 보아 그에게 인보증이라도 서달라는 것 같았다. 그는 구겨진 신문지 표정만 하고 있었다.

“은희네 가게 옆 텃밭도 결국 내놓은 모양이던데……?”

“……?”

“그 땅은 지금 당장 집이 들어설 수도 있는 땅 아이가. 해서 난 니가 이 참에 샀으몬 싶어서……”

하긴 앞으로 매립이 끝나면 아파트도 들어설 것이고, 길가에 바투 붙었으니 무슨 가게를 해도 돈일 될 만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횟집도 제법 괜찮을 끼다. 제수씨 솜씨라면 따로 주방 안 맡겨도 될 거고, 또 횟감이야 자네도 있고 나도 있으이……”

그는 앞뒤 없이 고개부터 설레설레 흔들었다. 흔한 횟집을 세운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수호의 말에 이상하게 거부감이 일었다.

“내사 마 그런 생각 해본 적도 없다!”

그 말을 끝으로 일어섰으나 수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은희네 가게가 길가에 버티고 서 있는 한 그의 가게는 앞날이 훤했다. 게다가 은희는 한손이 그렇다고 하지만 뽀야니 도시티가 나는 구석이 있어 남정네를 끌 수도 있지만 그의 아내는 어촌 아낙이 다 된 처지 아닌가. 얼굴에 주근깨며 부풀 대로 부푼 몸피는 그가 보아도 이쁜 구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쨌든 하루빨리 결정을 내려야 할 일임은 분명했다.

 

 

6

 

오후 들어 날씨가 심상찮았다. 파도의 손끝이 날카롭게 일어서는 것을 보니 태풍이 가까이에 붙은 모양이었다. 태풍 경로가 일본 쪽이라니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달음박질하듯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도 제법 매서웠다. 바람 한점 없던 어제 날씨와는 딴판이었다. 마치 가을바람처럼 시원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퍼뜩 안 갔다오고 뭐하요!”

아내는 하늘을 흘낏 쳐다보더니 그의 행동을 재촉했다. 파도가 그렇게 심하진 않으나 바다에 던져놓은 그물은 아무래도 오늘 내로 걷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선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은희네 간판은 불어오는 바람에 요동치고 있었다.

은희네 가게 앞에 누군가 파라솔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지나가던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승용차라도 있었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전혀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며칠 전 그의 가게에 들렀던 주정뱅이 남자였다. 테이블 위에는 술병도 놓여 있었다. 남자는 그가 지나가도 술만 마셔댔다. 은희의 남편이라기엔 아무리 봐도 너무 늙은 양반이었다.

선창 옆에는 사람들 몇이 모여 배를 뭍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모양으로 보아 쫌새영감의 배가 분명했다. 매립공사 때문에 이곳 사람들의 일만 더 늘어났다. 물 흐름이 바뀌다보니 선창도 예전 같은 구실을 하지 못했다. 조그만 바람에도 너울이 일었고, 파도가 선창을 넘기 일쑤였다. 그러니 안전하게 배를 뭍으로 끌어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쫌새영감이 그를 향해 손짓을 했다. 남의 손은 잘도 빌리면서 제 손은 아끼는 양반인지라 돕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나 이런 일에 한사람이라도 도와준다면 일이 한결 수월하다. 그가 다가가 배를 밀 때엔 이미 쫌새영감은 잔뜩 지쳐 있었다. 배를 위쪽까지 옮기자마자 영감은 갯바닥에 덜렁 엉덩이를 부렸다.

“하이고, 인자 이 짓도 못해먹겠구먼!”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영감이었다.

“영감님 힘이라면 안죽 이십년은 더 물일 할 수도 있겠는데요 뭐.”

쫌새영감은 화답하듯 벙긋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도 잠시였다.

“이제 살아봤자 뒤늦은 빚고생만 남은걸 뭐.”

영감은 미간을 좁힌 채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구부러져 물음표 모양이 된 영감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매물은 많은데 임자는 도통 나타날 생각을 않는다는구먼. 연체만 갚으면 일단 배는 안 넘겨도 되겠는데…… 허어, 그 참!”

영감의 말에는 아쉬움이 잔뜩 배어 있었다. 어부의 배에 대한 집착만큼은 헤아릴 수 있었다. 내놓은 밭금에 대해 물으려다 영감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몸을 돌렸다.

그물을 드리운 곳에 다다르니 바람이 점점 드세어지고 사위도 비를 흩뿌릴 듯 급작스레 어두워졌다. 그물을 표시한 부이를 집자마자 바삐 손을 놀렸다. 이럴 때 아내라도 곁에 있었으면 좀 좋을까. 하필이면 오늘따라 마실이라니. 아내는 웬만해선 마실을 나가지 않았고 여행이란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비록 보잘것없는 구판장이었지만 아내가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 처지가 아닌가. 한데 아내는 오늘 무슨 바람이 일었는지 아침을 먹자마자 옷을 차려입는 것이었다. 날씨가 급작스레 변할 양이면 가는 것을 막고 나섰을 터였다. 그러나 모처럼 식구들 죄다 이끌고 바람 좀 쏘이려고 한다니 막을 수가 없었다.

혼자 그물을 당기면서 정리까지 하려니 일은 더디기만 했다. 배는 연방 물살에 쏠려 몸을 틀어댔다. 평소보다 두 배나 힘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간간이 고기가 올라오긴 했다. 고기 한마리 따는 데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배는 흔들어대고 발로 누르는 그물은 자꾸 바다로 쏠려 제자리에 서기도 힘든 판국이었다.

때마침 배가 큰 파도를 맞아 기우뚱한다 싶더니 이내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순간 중심을 잃고 말았다. 뭔가 사정없이 어깨를 쳤다. 한동안 쓰린 어깨 때문에 꼼짝할 수 없었다. 넘어지며 부딪힌 어깨의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욱신거렸다. 애써 당긴 그물은 다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었다. 이놈의 뱃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허구한 날 소금기 밴 물 묻혀가며 일해도 굳어지는 건 삶이 아니라 굳은살뿐이었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곳도 아니지 않은가. 무슨 돈이 된다고 뱃일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한동안 멍청히 앉아 파도에 몸을 내맡겼다.

우릿한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렇게 난바다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다시 몸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물을 얼추 다 당겼지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놈이 딸려왔다. 넙치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놈이다. 웬 횡잰가 싶었다. 이놈 탓에 자빠졌지 싶어 아픈 것도 금세 잊었다. 그는 비늘 하나 다치지 않게 정성을 다했다. 그물을 조심스럽게 찢기 시작했다. 한마리의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찢어야 하는 어부의 심정을 누가 알기나 할까. 찢었다가 도로 기우기를 몇차례 하다보면 그물은 낡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갈 뿐인걸. 더군다나 오늘처럼 태풍 전에 잡은 것은 어판장 경매도 할 수 없지 않은가. 경매에 들어가려면 며칠간은 물칸에 두어야 하는데 배를 뭍에 올려야 하니 그럴 수도 없다. 이 참에 식구들 목구멍 때라도 벗기는 수밖에.

바다는 제 몸을 부풀리며 달려들었다. 그는 한껏 자세를 낮추었다. 간간이 빗방울까지 듣고 있었다. 머리 위의 먹장구름이 예사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을 재게 놀렸다. 뱃전은 어느새 젖기 시작했다.

 

배는 모두 뭍으로 끌어올려져 있었다. 덩치 큰 수호의 배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언제 돌아왔는지 선창에 서 있었다. 아이들도 보였다. 날씨도 변하고 하니 맘이 변한 모양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을 보자 얼굴이 풀렸다. 아내 곁에 서 있는 사람은 수호였다. 아내와 수호는 무슨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수호가 주로 말을 하는 쪽이었고 아내는 듣는 쪽이었다. 그가 뭍에 닿을 때까지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그릇 좀 가져와!”

그가 고함을 지르자 아내는 바께쓰를 들어 보였다. 물칸의 고기를 뜰채로 떠서 바께쓰에 담았다. 넙치를 보니 아까웠다. 몇만원은 얻을 비싼 놈이었다.

물칸을 비우자 그는 첨벙 바닷물로 뛰어내렸다. 파도에 쓸린 퍼런 파래들이 발목을 감았다. 벌건 물도 올라왔다. 매립공사 탓이다. 수호가 다가와 앞쪽에서 배를 끌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끌어올리기 쉽도록 뱃바닥에 통나무를 갖다댔다. 뱃머리가 해안에 닿자 잘 미끄러지던 배는 꼼짝하지 않았다. 장골 몇사람의 힘이 더 필요했다. 다친 어깨가 또 욱신거렸다.

“어데 다칬능교?”

아내가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물었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도 덩달아 달라붙었다. 겨우 힘을 모으자 조금씩 뭍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밀고 끌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배는 어느새 안전한 곳까지 올라와 아랫도리를 드러내 보였다. 그제야 그는 허리를 펴고 가쁜 숨을 골랐다. 아내고 아이고 온통 땀으로 흥건했다. 건너편 새로 축조하는 선창이 눈에 띄자 속이 뒤집혔다. 약조대로 먼저 선창부터 마무리했더라도 이런 일은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아저씨!”

느닷없이 다급한 목소리가 공기를 꿰뚫었다. 앉았던 사람들 모두 소리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닷가를 향해 계집애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뛰는 꼴이 심상찮았다. 은희의 둘째애였다.

“살려달라이? 어데 옴마라도 아픈 기가?”

수호가 물었다. 아이는 숨만 헐떡이며 대답을 못했다. 그러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일의 다급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호가 먼저 은희네로 향했다. 그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었다.

은희네 가게는 이미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가게의 유리창은 죄다 박살이 났고, 파라솔이며 가게 앞의 화분들도 깨져 나뒹굴고 있었다. 가게 안은 더했다. 과자봉지며 캔류, 라면 등속까지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분홍빛 커튼도 찢겨 너덜거렸다. 은희는 그들이 왔는데도 고개를 꺾은 채 방바닥에 앉아 있기만 했다.

“무슨 일이고, 이기?”

수호가 물어도 은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한쪽 손이 은희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기웃거려봐도 남편이란 작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만 방안에 겁먹은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주정뱅이 쌔끼를 잡아다가 그냥, 콱!”

수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화를 내자 은희는 손만 가로 저었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두둔하는 것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수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선 가게부터 정리해놓고 보자고.”

남의 가정일을 내 일처럼 막무가내로 덤벼드니 수호의 급한 성격도 어지간했다. 수호는 계속 씩씩거렸다. 뒤늦게 아내와 아이들이 올라왔다. 아내 또한 가게 앞에 서서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냐는 듯 얼굴을 잔뜩 구겼다. 그는 아내와 아이를 향해 먼저 집으로 올라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아내는 주저주저하더니 돌아섰다. 그가 빗자루를 찾아쥐자 은희는 그럴 필요까진 없다며 빗자루를 빼앗았다. 애가 겁을 먹고 달려간 모양인데 아무 일 아니라며 등을 떠밀었다.

“태풍이 온다는데 유리창을 박살내면 어쩌잔 말이고. 정신나간 놈의 쌔끼가 따로 없다카이!”

그의 발 앞에 보라색 꽃을 피운 양란이 우동가락 같은 하얀 뿌리를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우선 이것들부터 살려놓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빨리 끼아준다쿤께 쪼매만 기다리몬 될 끼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오며 수호가 말했다. 그는 공터에 구덩이를 파고 화초를 심었다. 은희는 괜찮다며 두 사람을 내몰았다.

은희의 생떼에 막상 나오긴 했지만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수호도 그런 모양이었다. 뱃일을 도와주었으니 덤으로 잡은 넙치라도 먹고 가라며 수호를 잡아끌었다. 수호도 그냥 집으로 가기가 뭣했던지 순순히 그의 뒤를 밟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수호의 아내를 불렀다. 아내는 전같이 볼멘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그런 놈의 쌔끼가 어딨냐 그래!”

술잔을 받기 전부터 수호는 목청을 돋우었다. 술상이 들어왔을 땐 말리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술잔을 꺾기 바빴다.

“제집 박살내고 마누라까지 두들겨패는 놈이 사람새끼냐, 개새끼지!”

수호의 아내가 진정하라고 해도 들을 생각은커녕 씩씩거리기만 했다.

“그 쌔끼 버릇을 단단히 고쳐줘야 돼! 어데 망나니 같은 놈의 쌔끼가 남의 동네 살러 와선 개지랄을 떨어. 고랑에 처박아 정신차릴 때까지 자금자금 밟아삐야 된다니깐!”

한번 터진 말은 걷잡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은희 남편을 찾아서 요절을 낼까 걱정될 정도였다.

“햐, 이거, 난데없는 태풍이 따로 없다카이!”

곁에서 그만 마시래도 수호는 되레 자기 아내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수호의 아내는 빨리 자리가 끝나기만 기다리는 눈치였고 아내도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수호는 몇잔을 더 마신 다음,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겠다며 호통을 친 후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들이켠 술이라 몸이 휘청거렸다. 주정뱅이 욕하면서 지가 더 처묵고 지랄이라며 수호의 아내는 낮게 투덜거렸다. 수호는 마치 무엇을 향해 달려들 듯 걸음을 서둘렀다. 수호의 아내가 부축을 하자 사정없이 뿌리쳤다.

 

 

7

 

바람소리가 거칠었다.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요란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를 조금 지나 있었다. 그 시각에 깨어난 건, 바깥에서 나는 소리 때문이었기보다는 어쩌면 어깨의 통증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한번 다친 어깨는 그를 밤새 뒤척이게 만들었다. 몇번 어깨를 매만지고 난 다음 다시 누웠지만 잠은 쉬 오질 않았다. 은희네 일이며, 술에 취해 씩씩거리던 수호의 표정이 되살아났다. 그때 전화통이 울렸다. 코를 골며 잠들었던 아내가 눈을 화락 떴다. 그러곤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수화기를 움켜쥐었다.

전화통을 붙들고 아내가 몇번이고 ‘여보세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무 말이 없자 별 이상한 전화도 다 보겠다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하품을 물고 곧장 몸을 쓰러뜨렸다. 바깥에선 여전히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전화기가 또 울렸다. 잠든 척하던 그가 아내를 가로막고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미안해. 너무 늦었지?”

수화기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귀가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생전 전화 한번 없던 은희가, 그것도 이 밤중에 전화를 한 것이다. 늦은 걸 알면서도 전화를 했다면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차 좀 갖고 내려와줄 순 없겠니? 급해서 그래.”

은희는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잠을 자지 않은 것 같았다. 은희의 전화를 받기 위해 잠에서 깬 것 같아 기분이 야릇했다. 급하다는 말에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 마’ 하고 전화를 끊긴 했다. 한밤중에 급히 내려와 달라니 대체 무슨 일인가. 바깥에는 빗소리와 바람소리만 요란할 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지를 껴입으면서도 뭔가 일이 묘하게 돌아간다 싶었다.

“뭔 일로 오밤중에 남의 집 사람을 개 부르듯 부른다요 그래?”

아내는 매섭게 쏘아붙였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일어서서 잠바까지 부리나케 떼어 입고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아내는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마당으로 나오니 은희네는 대낮처럼 훤했다. 간판의 불도 훤하게 켜져 있었다. 그는 우산을 챙길 겨를도 없이 트럭으로 달려가 시동을 걸었다.

차가 가게 앞에 멈춰서자마자 은희가 나왔다. 은희는 온몸이 피로 범벅이 돼 괴기스럽기 짝이 없었다. 뒤를 이어 아이들도 몰려나왔다.

“병원에 좀 데려가줘, 제발!”

은희는 자꾸 방안으로 눈길을 주었고 빗소리 사이로 간간이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방안으로 들어서니 은희의 남편은 얼굴이고 몸이고 온통 피범벅이었다.

“이 지경이 됐는데 병원에 안 가고 뭐했노?”

“죽게 내버려두라는 걸 어쩌니? 죽은 듯하다가도 손만 대면 눈을 부라리며 덤벼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가 둘러업는데 남편은 버팅기며 야단이었다. 다친 사람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흐물거리는 주정뱅이가 이렇게 힘이 센 줄은 몰랐다. 얼마나 당차게 뻗대는지 은희의 도움 없인 차에 태우기도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냥 있으면 죽는다며 호통을 치며 겨우 차에 태웠지만 이번엔 운전이 문제였다. 차문을 두들기며 법석을 떨어대 몇번이고 갓길에 차를 세워야 했다. 안 그래도 궂은 날씨 탓에 운전이 신경 쓰이는 판에, 환자라는 사람이 당장이라도 차에서 뛰어내리려고 덤비니 눈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몇대 패주고 죽게 내버려두고 싶었다.

은희 남편은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발악을 멈추지 않았다.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처럼 죽여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이었다. 의사도 이런 상태론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신경질을 냈다. 양팔과 다리를 부여잡고 진정제를 쑤셔박듯 한 뒤에야 겨우 소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고함을 지르는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싶더니 입술을 투르르거리며 이내 잠이 들었다.

잠든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두 사람은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짙던 어둠도 한층 엷어져 있었다. 응급실 복도 벤치에 앉은 은희는 그가 자판기에 커피를 뽑아 건네도 넋잃은 사람처럼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딱히 할말을 찾지 못해 쓴 커피만 홀짝거렸다.

“지금 무슨 생각한 줄 아니?”

좀체 입이 열릴 것 같지 않던 은희가 입을 열었다.

“그때 너랑 결혼했더라면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어.”

은희는 뜬금없는 말을 하면서도 진지한 낯빛이었다.

“새삼스레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고 그라노?”

“쓸데없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지금처럼 삶이 무너지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스치는 걸 어떻게 해.”

그는 은희의 이야기를 듣기가 무안해 빈 컵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비록 술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의 청혼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청혼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은희가 깔깔 웃어버리는 바람에 해프닝이 되고 말았다. 그랬는데, 그렇게 깔깔거리며 웃던 은희가 새삼 그 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은희는 승낙의 뜻으로 웃었단 말인가.

“손은 우야다가 그리 다칬노?”

그는 화제를 바꿀 겸 참았던 물음을 던졌다. 은희는 그의 질문에 당혹스러워하며 반만 남은 왼손을 나머지 한손으로 덮어버렸다.

“처음부터 남편이 저렇진 않았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고 늦게 잠들던 양반이야.”

은희가 엉뚱한 말을 하고 있었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병원 밖은 바람소리로 요란했다. 창문들이 부르르 떠는 소리를 덩달아 냈다.

“공장이 제법 잘 돌아갈 땐 둘이 공장에서 밤을 샐 정도였지.”

“……?”

“규모가 크진 않았어. 돈이 많질 않았으니깐. 그래도 둘이 힘을 합쳐 우산을 하나하나 만들 때면 너무도 재밌었는데……”

그녀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차마 그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었던지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집중력을 잃은 게 화근이었어.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어. 남편과 심하게 다퉜거든.”

“봉합도 가능하다면서?”

“그것도 손가락이지. 손바닥까지 날아간 걸 의사라고 어쩌겠어?”

괜한 것을 물었구나 싶어 그는 부러 헛기침을 했다.

“그나마 조금 모았던 돈은 치료비로 날아가고 일감은 사라졌어. 우산도 돈이 된다고 대기업에서 앗아가버렸어. 메이커 단 것을 보면 우리가 만든 건 거들떠보지도 않아. 파리만 날릴 뿐이었어.”

그 다음은 그녀가 얘기하지 않아도 알 듯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게 아래로 곤두박질쳤을 터였다.

“어찌 보면 그 사람도 불쌍해. 그 사람이 술취해 집에서 난동부리는 걸 보고 수호가 뭐라 하지 않았어도……”

“수호가 도대체 우쨌는대?”

“술 취한 사람보고 아무 보탬이 안되니 차라리 죽지 뭐하냐고 했어. 수호가 가고 난 뒤 진짜 죽겠다고 난리를 피운 거야. 칼로 제 몸을 그어대고……”

수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일찍 혼자가 된 수호로서는 자식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부모는 부모가 아니었다. 수호야말로 누구보다 사랑에 굶주린 놈이었고 외로움을 타고난 놈이었다.

“내가 병원에 가자고 하니까 죽게 내버려두라고, 건드리면 너부터 죽이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연락이 늦어졌어. 수호를 보면 더 난리를 피울까봐 연락조차 못하겠고.”

어쨌든 다행이었다. 일단 사람은 살려놨으니 그 작자도 술 깨면 미안해할 거라며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도 그러면 좋겠다며 고맙다는 말을 되뇌었다. 너라도 있어 여기로 이사온 게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희미하게 웃기까지 했다.

 

 

8

 

오늘따라 기상나팔 노릇을 하던 아내의 목청이 날이 훤하도록 터질 줄을 몰랐다. 그 바람에 아이들은 어미의 눈치를 살피며 일어나 세수를 했고 숟갈을 놓기 무섭게 내뺐다. 아이들의 뒤통수에 대고 늘 쏟아놓던 잔소리까지도 없자 그는 마누라가 어디 고장이라도 났나 싶은 게 여간 마음이 찜찜한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돌아와 그냥 눕기가 뭐했다. 해서 저간 사정도 밝힐 겸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게 그만 의외로 길어지고 말았다. 아내는 퉁명스레, ‘아파본 년이 그래, 남의 속 아픈 걸 그렇게 모린단 말인고’ 하며 말방구를 쏘긴 했지만 그에게 그만 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신경이 쓰였다. 부엌 쪽에서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설거지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너무 얌전했다. 모처럼 무거운 입을 하자 그의 가슴에 자꾸 밀물지듯 불안감만 몰려들었다. 차라리 전처럼 텁텁한 막걸리 같은 목소리가 터졌으면 싶기도 했다.

구들장만 지고 있을 순 없었다. 아내 눈치도 눈치지만 하늘 눈치도 봐야 할 것 같았다. 바다가 가라앉는 대로 물일을 서둘러야 했다. 그는 밖으로 나섰다. 바람은 한결 순해져 있었지만 마당은 온통 감잎으로 도배질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간밤에 감나무가 얼마나 몸살을 앓았는지 달고 있는 잎 중 성한 게 하나도 없었다. 찢어지고 상처나고 너덜너덜한 게 자꾸 눈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아내의 부지런함은 평상 위에 남아 있었다. 마당은 비에 젖어 비질하기 아직 일렀지만 평상이야 언제 동네손님이 들이닥쳐 엉덩이를 부릴 줄 모르니 물기라도 훔쳐놔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가 어디 고장난 건 아니라는 얘기였다.

평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아직 구름장이 다 물러가지 않아 햇살을 보려면 한나절은 지나야 할 것 같았다. 덕분에 바다에서 막 빠져나온 물바람을 맞으니 꼭 초가을 같았다. 동네 또한 단체목욕이라도 한 듯 말갛게 씻긴 게 마치 낯선 동네가 새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은희네의 간판도 더 훤해진 듯했다.

 

“개똥이 따로 없지, 온 동네에다 꾸린내 피아가매 오만 지랄을 다 떠는 저런 기 개똥이제, 뭣이 개똥이겠노!”

수굿하던 아내의 입에서 거친 말이 터졌다. 용케 잘도 참는다 싶더니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순 없는 모양이었다. 그의 숟갈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당신도 한본 맡아보소. 저것들이 뭔 냄새를 피아는지! 은인을 알몬 어디 저랄 수가 있능교?”

아내의 입에서 매운내가 풀풀 풍겼다. 어지간히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 그도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바다에서 배 손질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똑똑히 보았다. 마을회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은희네 가게에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바다로 나가지 못하니 하나둘 모여들었을 테고, 사람들이 둘러앉은 것을 보고 너도나도 곁술이라도 먹으려고 달려든 모양이었다. 이전 같으면 죄다 그의 가게에 모였을 사람들이다. 게다가 점심시간이라 공사장 인부들까지 합세를 하니 이건 회관 동회 때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곁을 지나는 그는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고 딛는 걸음이 허둥대었다. 그러니 아내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어쩌면 진짜 태풍은 이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구름을 이고 앉은 아내를 앞에 두고 숟갈질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달려들었다. 평상 위에 드리워진 감나무 그늘도 태풍 탓에 숭숭 구멍이 뚫렸다. 그는 그늘 속에 몸을 디밀며 은희네를 흘낏거렸다. 오늘이 인부들 간죠날이라도 되는지 가게 앞에선 삼겹살을 굽는 연기까지 피어나고 있었다. 몰려온 연기에선 지독한 고깃내가 났다. 이따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는 죄없는 담배만 축내다가 도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선풍기를 틀어놓고 넉장거리로 드러누워버렸다. 간밤에 잠을 설쳐 눈도 씀벅거렸고 비지땀을 흘린 뒤 배까지 부르자 하품이 절로 터졌다.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 아내는 나올 기미가 없었다. 이번 참에 아예 부엌 곳곳에 눌앉은 때며 안 쓰던 그릇까지 들어내 씻고 또 씻으며 솟구치는 부아를 다독거릴 모양이다.

그가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차소리가 들렸다. 차는 그의 가게에 멈춰서더니 이내 인기척이 났다. ‘점장님’ 하는 걸 보니 거래처에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잠시 뒤 아내의 신발 끄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이야기가 제법 길게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아내는 혀 꼬인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중간중간에 양념삼아 웃음까지 보태는 것이었다. 돌변하는 아내의 태도로 보아 필시 반가운 소식을 물고 온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제법 길어지고 있었다. 아내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가 끊어졌다가 했다. 잠시 뒤 차소리가 났고 아내는 광주리만한 입을 한 채 방문을 열었다. 그는 졸음을 이겨낼 수 없었다. 아내의 씩씩거리는 소리도 그때만큼은 자장가 같기만 했다.

 

잠이 들었나보았다.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어댔다.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내의 흔적은 어디서도 보이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뭐하노? 빨리 와서 마누라 좀 안 말기고!”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짜고짜 터진 수호의 목소리는 불 같았다. 그는 잠시 우두망찰했다.

“그기 무씬 말이고?”

수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던지더니 재차 말을 이었다.

“은희네서 머리끄뎅이 붙잡고 한바탕 쌈박질이 터짔다카이?”

그는 예감하고 있었다. 아내의 몸에서 화약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었고 터뜨릴 빌미만 찾고 있었다는 것을. 그랬기에 싸움이 터졌다는 얘기를 듣고도 태연했다. 그는 정신도 차릴 겸 느릿하게 담배부터 찾아 꼬나물었다. 벌써 폭죽 같은 아내의 목소리가 동네 하늘을 펑펑 울려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자 잠결에 소나기처럼 퍼붓던 아내의 거친 말들이 되살아났다.

방문한 사람들은 빙과류 회사의 실사단이었다. 빙과류 회사에서는 실사단을 현장에 보내 조사하게 한 다음 투자가치가 있는 가게에는 대대적인 지원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내를 폭발하게 만든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냉동고며 물량까지 지원해주고 써비스 차원에서 파라솔이며 각종 사은품까지 준다니 아내에겐 돈 안 들이고 가게 확장할 좋은 기회였다. 해서 아내는 음료수까지 건네며 안달복달 매달렸지만 실사단은 고개만 내젓고 돌아섰다. 그때 그는 알고 있었다. 실사단이 다음엔 은희네에 들를 것이고 그러면 결과는 뻔한 것이란 걸. 아내 또한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실사단이 어떻게 나오나 싶어 보다가 이때다 싶어 치달았을 터였다.

“제수씨가 실성한 거맨치로 달려드이 이거야 원, 끝이 안 보인다야!”

정신없이 달려드는 아내의 심정을 알 만했다.

“퍼뜩 와가 우찌 좀 해봐라, 으잉?”

그는 알겠다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가 나서서 말릴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해서 느긋하게 신발까지 꿰차는 여유를 부려가며 밖으로 나섰다. 은희네 가게 앞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웃음소리가 흥건하던 곳이 이젠 악다구니로 가득했다. 주위엔 동네에서 몰려나온 아낙들이 싸움을 말리느라 부산스러웠다. 한편 멀찍이 떨어진 남정네들은 모처럼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담배를 꼬나문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으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어쩌면 이번 싸움은 한번은 터져야 할 고름인지도 모른다고. 횟집을 내는 일은 그 다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