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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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가야금 거장의 폭넓은 사유

나효신 『황병기와의 대화』, 풀빛 2001

 

 

송혜진 宋惠眞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hjsong@sookmyung.ac.kr

 

 

“좋은 음악을 들으면 시각적인 것이 연상되고 좋은 그림을 보면 음악이 들리는 것 같아요.(…)그래서 조선조의 어떤 사람은 좋은 그림을 보고 저것이 시인지 그림인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 아닌 것을 연상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86면) 가야금 연주가이자, 작곡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황병기(黃秉冀) 선생이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처음 들어봤다.

황병기 작품이 지닌 다채로운 영상미와 색채미의 근간이 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귀에 익숙한 작품 선율들이 또렷한 음악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느낀다. 현대 가야금 창작곡의 효시가 된 「숲」(1962)이나 가장 획기적인 20세기 한국작품의 한가지로 꼽고 싶은 「침향무」(1974), 고대 아시아문명의 신비를 가야금 소리로 풀어낸 「비단길」(1977), 화가 안중식의 그림에서 악상을 얻었다는 「밤의 소리」(1985) 같은 작품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황병기가 가진 이 ‘흥미’는 곧 국내외의 청중들이 황병기의 작품에 공감하고 ‘영혼을 목욕시키는 듯한 음악’이라며 절찬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병기와의 대화』에는 또 현대를 사는 작곡가가 전통과 서양, 창작이라는 문제를 이렇게 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것을 틀을 부수고 나가기도 해야겠고…… 그런데 전통을 놓치면 허망하게 되고…… 그래서 허망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전통을 벗어난다고 할까……”(112면)

“서양적인 것을 쓰면서도 서양적인 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지요. 불가능한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뚫고 나가는 것이 작품을 쓴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곤 해요. 바위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바위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는 표현을 많이 쓰지 않아요? 그런 불가능한 것 같은 작업과정을 거쳐야 작품이 작품다워진다는 생각을 해요.”(150면)

113-364이 말에서 황병기 작품의 전통성과 현대성의 접점지대가 보이고, 1970년대에 「침향무」가 그랬던 것처럼 가야금 음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그의 후속작을 기대하는 청중들에게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기다림’의 해답을 주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재미 작곡가 나효신이 황병기를 만나 나눈 얘기를 영어로 번역하여 한글과 나란히 수록해놓은 이 책(영문명 Conversations with Kayageum Master Byung-ki Hwang)에는 나효신이 황병기에게 물은 295개의 질문과 그에 답한 여러 얘기가 있다. 그중에서 나는 그가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쓰는지, 즉 ‘연주가 황병기’보다 ‘작곡가 황병기’에 관심이 쏠렸고, 황병기의 작품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황병기의 어린 시절, 피난지에서 처음 가야금을 배우게 된 청소년 시절, 서울대 법대 다닐 적에 ‘괴짜’였던 면모, 소설가인 아내 한말숙과 자식들 얘기, 정년퇴임을 앞둔 최근의 근황에 이르는 개인사에서부터 남북한 음악문화나 악기개량, 국악정책, 국악교육, 그리고 국악의 여러 장르와 특징에 대한 황병기의 ‘생각’ 등이 거론되고 있다.

둘의 대화 중에는 ‘뭐 이런 것까지 이야기하나’ 싶은 ‘보통 얘기’들도 더러 있지만, 국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충분치 못한 나효신이 ‘산조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정악과 풍류는 같은 것인가요?’라는 식의 초보적 단계의 질문으로 황병기의 독창적인 ‘국악 특강’을 유도해낸 것은 이 책이 지닌 중요한 장점이다. 황병기는 오랜 국악 활동과 해외 예술가들과의 교류, 음악에 대한 폭넓은 사유를 통해 축적되었을 개성있는 관점으로 국악이 음악 일반으로서 지니는 보편적 성격과 함께 국악 고유의 특수성을 명쾌하게 들려주었다.

“대체적으로 동양이나 서양이나 한 옥타브에 12음을 쓰지요.(…)동양에서는 그 12음 중에서 대개 5음을 골라서 쓰고, 유럽에서는 7음을 쓰지요. 언뜻 음 2개를 유럽보다 덜 쓰니까 음의 소재가 적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우리 음악을 보면 음을 덜 쓰는 이유가 음과 음 사이의 공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래요.(…)음을 적게 쓸 적에는 음 하나의 미분음적인 변화가 많아져요. 선으로 따지자면 붓글씨 쓰는 것처럼 선이 계속 변화하는 것이에요. 반대로 얘기하자면, 선의 미묘한 변화를 주기 위해 공간을 많이 주게 되는 것이지요. 여백이 많지요.”(164면)라는 오음 음계체계에 대한 설명이라든가 “정악의 진수를 맛보려면 청중이 없어야 하지요”(54면) “선비들이 거문고를 탈 때, 그 마음상태는 음악가의 상태가 아니에요. 학자가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상태예요. 이것이 바로 정악이며 풍류지요”(126면)라는 황병기의 말처럼 마음에 와닿는 정악의 개념을 황병기가 아닌 또 누구로부터 기대할 수 있을까. 정악 외에 남도음악의 조성을 가족관계에 빗대어 설명한 내용(136〜38면), 인도의 불교음악과 우리나라의 범패(梵唄)를 비교해 한국과 인도음악의 차이점을 도출한 부분(70〜72면), 가야금·해금·장구 등의 국악기를 외국의 유사 악기와 비교하여 그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한 것(118〜26면) 등을 읽으면서 황병기 선생이 ‘말’도 잘하는 분이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뭐 더 없을까’ 하는 허전함이 남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 서로에 대한 호감, 게다가 사제지간 같은 관계의 문답에서 연유한 한계도 보였다. 장르가 다르더라도 비슷한 연륜의 예술가끼리 나눈 얘기였다면, 혹은 인터뷰 전문 저널리스트와의 대담이었다면 응당 빠지지 않았을 ‘이견(異見)’이라든가, ‘짓궂고 불편한’ 문답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컸다. 연주와 작곡을 겸한 작곡가로서, 전통을 껴안고 서양적인 것에 굴복당하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자신의 음악영역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곡가나 음악 전문가들끼리는 작품마다 새롭게 시도된 음악적 표현들이 인식되는지 몰라도, 보통 청중들에게는 작품의 개별성보다 그냥 ‘황병기 음악’으로 들리는 현상을 작곡가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것들을 묻고 싶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얘기가 담긴 대담 후속편을 기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