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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4·15총선, 민주노동당, 그리고 시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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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여성민우회 공동대표 shk17@lycos.co.kr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노동정책연구소 소장 a0011@chollian.net

정관용 정치평론가, KBS 1TV ‘생방송심야토론’ 진행자 kyc2121@pressian.com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chang@mail.ww.or.kr

 

 

때: 2004년 4월 21일

곳: 한국프레스쎈터 20층 모란실

 

 

정관용(사회) 안녕하십니까. 이번 4·15총선으로 우리 정치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되어 그것이 갖는 의미를 심도깊게 살펴보고자 『창작과비평』에서 긴급좌담을 마련했습니다. 좌담에서는 이번 총선의 의미와 전망 등을 얘기하겠지만, 주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과 시민운동의 역할에 시간을 할애하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전국민중연대’ 박석운 집행위원장, ‘여성민우회’ 김상희 공동대표, ‘함께하는시민행동’ 하승창 사무처장을 모셨습니다. 열린우리당이 152석, 한나라당이 121석, 민주노동당이 10석, 새천년민주당이 9석, 자민련이 4석을 얻은 이번 총선에 대해 어떻게들 보시는지요? 어떤 분은 50년 만의 의미있는 선거라고 하고,1987년 이후로 보면 17년 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분도 있고, 또 대통령선거의 연장선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분도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상당히 크죠.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선거를 바라보는 세 분의 기본시각을 드러내줄 것 같은데요?

 

 

17대 총선, 세력교체인가 인물교체인가

 

박석운 50년 만이라는 것은 사실 맞지 않습니다.4·19혁명이후 많지는 않았지만 진보정당의 의석이 있었기 때문에 43년 만이라고 해야죠. 결과적으로는 87년의 연장선과 43년 만의 진보정당의 의회진입, 양측면의 의미가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이번 총선이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완성단계로 진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진보정당의 의회진입으로 한국정치가 재편되는 길목에 있다는 점에서 87년의 완성이라는 의미도 있죠. 정치에 새로운 씨앗이 뿌려지고 가시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양상이 표면화될 겁니다.

鄭寬容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 질서와 미국중심의 외교적 질서 속에서 이를 돌파할 정교한 계획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나타나야만 진정한 세력교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鄭寬容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 질서와 미국중심의 외교적 질서 속에서 이를 돌파할 정교한 계획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나타나야만 진정한 세력교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김상희 저는 이번 총선이 굉장히 중요한 국면이 될 거라는 얘기를 시민사회단체에서 많이 했어요.보수독점정치·지역정치구도·부패정치·보스정치의 균열, 정당민주화, 여성과 특정계층을 배제한 소외의 정치나 엘리뜨들의 독점정치 탈피 등 여러 면에서 조금씩 진일보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엘리뜨·보수독점 정치판에 진보정당의 진출로 새로운 정치구도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50년 만이든 43년 만이든 엄청난 의미가 있어요. 충분하지는 않지만 지역정치구도가 약화되고,60년대부터 오랫동안 정치를 대별(大別)했던 3김정치·보스정치가 완전히 퇴장했지요. 정당민주화도 일정정도의 진전을 이루었고, 여성·장애인·농민 등의 정치권 진출로―이 부분은 진보정당뿐 아니라 다른 정당의 경우에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역할이 컸어요―소외의 정치를 어느정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부패정치도 웬만큼 청산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보면, 여러 영역에서 정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승창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총선의 의미가 좀 달라질 텐데, 비로소 정상(正常)정치로 들어설 조건이 마련됐다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1987년에 대통령직선제를 통해서 절차적 민주주의, 즉 근대적인 권력선출 절차를 일정하게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과정과 내용은 상당히 전근대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지역과 보스 중심이어서 한 개인의 카리스마나 지역성이 정당의 정체성을 대변했고 개인의 색깔이 당의 색깔이었지요.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당명이나 본래적 의미의 정당정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시민운동단체가 정책평가를 중심으로 운동해봐도 별 효과가 없다가,2000년 낙선운동부터 우리 사회의 더욱 근대적인 질서를 추동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진적이고 저질적인 정치판을 청산해야겠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낙선운동이 위력을 발휘했던 거죠. 반면에 정책평가운동이나 정책지원 등은 별 성과를 못 냈어요. 이번 총선에서 탄핵반대운동 때문에 힘에 부친 점도 있었지만 역시 그러한 문제가 드러났죠. 하여튼 근대적인 정치의 정상화가 비로소 가능해지면서 각 정당의 자기정체성이 중요한 문제로 드러날 겁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현실에서도 이 방향성을 가속화할 것입니다.

朴錫運 민주노동당이 타협하는 순간 설 자리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동당의 입장이나 당선자들의 개인적 정체성, 전체적인 정치문화로 볼 때 명시적 타협은 결코 없을 거예요.

朴錫運 민주노동당이 타협하는 순간 설 자리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동당의 입장이나 당선자들의 개인적 정체성, 전체적인 정치문화로 볼 때 명시적 타협은 결코 없을 거예요.

정관용 43년 만이라는 규정 속에는 진보정당의 원내진입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고,17년 만이라는 것은 소위 정치적 기득권세력의 퇴장, 세력교체라는 의미의 규정일 텐데, 세 분 다 그런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고 말씀하시네요. 그런데 저는 세력교체에 대해서는 유보하고 싶어요. 인물교체는 분명히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진정한 세력교체인지는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여기엔 민주노동당이 10석밖에 안되는 등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변화는 새로 등장한 정치신인이 열린우리당 내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한나라당에서도 상당히 큰 폭의 물갈이가 이루어졌다는 점이죠. 게다가 지역에 기반을 둔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은 구정치 기득권구조에 기생하던 정치세력의 퇴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초선의원들이 구세력과 정말 어떤 차이를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배경이나 정치적 성향이 매우 다양하고 뒤죽박죽이죠. 전반적으로 열린우리당에 진보적인 세력이 더 많지만, 한나라당 초선의원 중엔 열린우리당 초선의원의 평균치보다 더 진보적인 이들도 상당히 있어요. 즉 구정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퇴장으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를 세력교체라고까지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고 싶다는 겁니다.

김상희 그렇지만 판갈이·물갈이가 이번에 국민들에게 회자되지 않았습니까? 일단 내용을 지켜봐야겠지만 구도와 사람이 바뀐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것이 세력교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해도 앞으로 한국정치의 역사가 새롭게 전개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

 

金相姬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 후에 노동운동과 민중진영이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민중진영이 민주노동당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따라서 시민운동의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겁니다.

金相姬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 후에 노동운동과 민중진영이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민중진영이 민주노동당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따라서 시민운동의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겁니다.

박석운 정선생님 이야기의 취지에는 대개 동감하지만, 변화가 이루어질 때 곧바로 획기적인 질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사회변화가 이루어질 때 전환점을 전후해서는 점차 새로운 질이 지배적인 형태가 되어간다고 할 때,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죠.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완성단계로의 진입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이 곧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겠죠. 다만 완성단계로 진입하는 전환점은 되지 않을까요? 이 단계에서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급속하게 체질을 개선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하승창 개인의 역할이 아니라 정당의 자기정체성 확립이 체질개선에서 중요하게 될 텐데, 한나라당이 이전처럼 수구로 갈 것 같지는 않아요. 예컨대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남북관계에 대한 한나라당의 제안은 사실상 햇볕정책을 차용한 것이잖습니까? 그래서 열린우리당에서는 자기정체성의 차별적 정립을 위한 고민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열린우리당의 당선자 면면을 볼 때 내부갈등도 만만찮겠다는 느낌도 들지만, 한편으로 그런 가운데 의미있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관용 기존에 상당히 오른쪽에 위치해 있던 한나라당이 중도보수적 형태로 전환할 것이 예상된다고 하겠습니다. 열린우리당도 민주당에서 분당해 나오면서 민주당보다 더 개혁적인 주장을 했지만, 다수당이 되면서 민주당이 주장해온 중도개혁노선으로의 전환이 예상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중도로 수렴한 두 당의 정책대결이 세력교체의 의미를 가지려면 정치적 대결 접점이 계급적 의미에서도 이동해야 하거든요. 이 문제가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 때문에 계속해서 쟁점이 되기는 할 텐데, 과연 중심쟁점이 되겠는가 하는 점이 아직 의문일 수밖에 없고, 결국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중도로 수렴되는 정책 접점을 찾게 되면, 기존의 한나라당과 민주당 구도에서 보이던 것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따져봐야 합니다.

河勝彰 대중운동화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 중의 하나는‘개인’이라고 생각합니다.‘개인’들의 자유로운 네트워크라는 상상이 시민운동의 대중운동화 전망을 더욱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河勝彰 대중운동화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 중의 하나는‘개인’이라고 생각합니다.‘개인’들의 자유로운 네트워크라는 상상이 시민운동의 대중운동화 전망을 더욱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박석운 길게 보면 결국 중도보수로의 수렴을 예측하는 것이 정상적인 판단이겠죠.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이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중도보수로 수렴되기보다는 부르주아민주주의적 개혁, 일반민주주의적 개혁에 어느정도 매진하는 양상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이른바 개혁경쟁에서 바로 중도보수로 후퇴하기보다는 초기에는 부르주아민주주의적인 합리성을 추구하고, 즉 보수와 진보 사이의 중도에서 일반민주주의적 개혁노선을 추구하고,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일부 수용, 일부 저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다가, 어떤 계기―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 때문에 다시 여러 분란이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를 통해 부르주아민주주의적 개혁이 좌절되거나 지리멸렬해지면서, 정치권의 재편과 새로운 수렴이 진행될 것으로 봅니다. 이 과정에서 현재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노동당이란 판도에서 세력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내부의 정치지형도 변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른바 수구 기득권세력이 퇴조하고는 있지만 제도권 내의 표면적인 권력과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구조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요. 이에 대한 정리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구세력의 기득권 유지와 관련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결국 개혁은 후퇴하고 양당의 정책은 중도보수로 수렴되어 별 차이가 없는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럴 경우 양당 내, 특히 열린우리당 내의 이른바 ‘개혁세력’은 진퇴양난에 빠지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겠지만 여러 차원의 지형 변화가 모색될 가능성도 있는 거죠.

김상희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지지층과 열린우리당 지지층의 차이는 이번 선거에서 더 뚜렷하고 명백해졌습니다. 하지만 정교한 절차적 민주주의 부문에서는 양당이 개혁경쟁을 할 가능성이 높고, 특히 정치관계법 등의 문제는 이미 많이 해소된데다 양당 모두 국민소환제를 주장하고 있어서 정치개혁에서는 별 차별성이 없으리라고 생각해요. 결국 경제부문에서 차이가 뚜렷이 드러나겠죠. 한나라당은 지지기반인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중도 쪽으로도 기울지 못한 채 차별성을 드러내면서 자기정체성을 찾아가겠죠. 민주노동당의 존재는 일반 국민들의 레드콤플렉스를 여지없이 깨줄 겁니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이제는 레드콤플렉스가 없어질 듯싶어요. 그래서 중도개혁파들이 상당히 자유롭게 개혁노선을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중도개혁과 보수세력―보수세력엔 아직 수구세력이 많아서 중도보수라고 얘기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양자는 분명히 자기정체성을 찾아갈 거고, 특히 신자유주의적인 세계경제 흐름에서 그 차별성은 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봅니다.

 

 

열린우리당의 이후 정책은

 

정관용 노무현정권 2기의 전망은 맨 마지막에 논의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지금 김상희 대표께서 잘 정리해주셨는데, 정치부문에서 일반민주주의적인 개혁과제는 별로 남아 있지도 않지만 앞으로 잘 진행될 거예요. 경제부문에서 차이점이 드러날 것이라 하셨는데, 저는 약간 생각이 달라요. 세력교체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무현정부 2기의 경제정책 기조는 실용주의적 노선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노선은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에 출발하는 것이고, 특히 한국경제의 최근 위기국면을 타개하는 데 최우선의 비중을 둘 것이기 때문에, 분배나 복지 등을 당장 전면에 내세우기는 어려울 겁니다. 결국 경제정책에서는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죠. 두번째로 남북관계와 외교분야입니다. 햇볕정책 기조는 이어질 것이고, 한미관계의 재조정이나 이라크 파병문제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주변국가와의 관계에서 뭔가 획기적인 전환이 시도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즉 경제적 위기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외교에서 자주성 강화를 내세우는 정책기조는 제한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겁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 질서와 미국중심의 외교질서 속에서 집권세력인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부가 이를 돌파할 정교한 계획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나타나야만 진정한 세력교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걸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죠.

박석운 경제정책에서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견해에 동의해요. 노무현정부나 열린우리당의 정책기조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완급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나라당의 정책기조와 거의 같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이라는 측면에서는 민주노동당과 갈등구조가 생기게 될 거라고 봐요. 그리고 언론문제 등 사회정치적 측면에 있어서는 각자 개혁이라는 용어를 쓰겠지만 내용에서 서로 많이 다를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주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갈등구조가 형성되겠죠. 결국 경제정책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비슷한 입장을 취하면서, 소수정당이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과의 사이에 일정한 갈등구조가 형성되고, 사회적 측면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공조하면서, 한나라당과 갈등·경쟁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이중적인 양상을 당분간 띠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하승창 저는 17대 국회에서 언론개혁에 관한 정책제안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아직까지 수구적 시각들이 남아 있더라도, 한나라당이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측면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앞으로 수구보수 경향과의 대립이 중심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경제적 과제의 경우 재벌개혁 문제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 같고요. 세제문제, 특히 토지세 문제 등에서도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과거에는 정치적 선언으로 ‘우리는 서민을 대변한다, 우리는 차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면, 점차 구체적인 경제적 과제를 의제화해서 어느 쪽이 선점하느냐의 문제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중요해질 것입니다. 앞으로는 정책들의 적합성 여부나 실현과정의 치밀성과 정교성 측면에서 드러나는 차별성이 부각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각 정당마다 정책연구소 강화 등을 통해서 정책을 더욱 정밀하게 연구하고 그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테고, 그런 측면의 차이 정도가 두 당의 차별성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 차이를 등한시하고 부차적 요소로 여길 경우에는 당마다 이념적 지향이 강한 그룹이 있기 때문에 당내 갈등이 생겨날 텐데, 이런 것들이 향후에 정치세력이 어떻게 재편되어갈지를 보여주는 단초가 될 겁니다.

김상희 큰 흐름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실용주의 외교노선에서 차별성이 없는 것 같지만, 시장중심주의나 국가개입에 얼마나 많은 무게를 두느냐에서는 구체적인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많이 부딪칠 겁니다. 그 차이는 지금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그것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재벌개혁 등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들 하셨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예요. 정치적 민주화에서는 차이가 없겠지만 경제적 민주화에서는 굉장히 많은 충돌이 생겨날 겁니다. 경제적인 투명성, 시민의 개입 등을 기업측에서 계속 거부하고 있잖아요. 결국 한나라당은 기업 편에 서서 기업의 부담을 최대로 줄여주면서 경제성장을 지향할 것이고, 열린우리당은 시장중심이라는 기본맥락은 같지만 경제적 민주화, 시민통제 등에 무게를 둘 터이므로 서로 충돌할 거라고 봐요. 시장중심이냐 아니냐에 따라 교육정책과 노동정책에서 명백하게 차이가 날 겁니다. 그래서 임기 4년 동안 민주노동당과 함께 각 당이 나름대로 분명한 색깔을 가질 겁니다. 다만 경제성장의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상당부분 발목을 잡을 테니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지역주의 정치구도의 균열

 

정관용 지금 세 분간에 약간씩 의견차이가 나는데, 그 부분은 앞으로 지켜봐야 할 중요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선거과정에 대해 두 가지 정도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역주의 문제와 감성정치 내지는 미디어정치의 문제점인데, 먼저 지역주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승창 어쨌든 이제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겼다고 보는데요. 열린우리당의 영남 의석 확보보다는 민주노동당의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가 제일 중요한 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당비례대표제를 통해서 확인된 것으로 10% 이상의 민주노동당 표는 지역구도를 초월한 표라는 점과, 또 호남에서 한나라당 표는 적었지만 열린우리당의 경우 충청권을 포함해서 전국적으로 일정한 표를 얻었다는 점은 지역주의가 이전만큼 강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한나라당에도 일정부분 해당하지만, 민주당과 자민련이 지역주의에 기초한 선거전략을 세웠다가 완전히 몰락했다는 점도 상징적입니다. 충청도의 경우에는 ‘지역의 이익’이 강했고 ‘우리 지역’ 의식은 약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을 선택한 것인데,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징후들이죠.

정관용 좌담의 재미를 위해서 제가 대립되는 관점에서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주의의 변화된 모습을 봤습니다. 기존 지역주의는 3김을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지역적 동질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형태였는데 이제 3김은 완전히 퇴장했어요. 대신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계급계층적 이해관계의 표출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약간은 잘못된 집단적 이해관계, 저는 이걸 의사적(擬似的) 이해관계라고 부르는데요, 이를 통한 정치선택이 지역주의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방금 하승창 사무처장이 민주당과 자민련이 지역주의적이었고 한나라당도 어느정도는 그렇다고 하셨는데, 저는 4당 모두가 지역주의에 기초한 선거전략을 공히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핵심멤버들은 지역민들의 집단적 정치선택을 예측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이죠. 이미 호남과 충청지역은 DJ의 대선승리로 ‘우리가 권력을 쥘 수 있다’라는 집단적 선택의 경험을 한 것이고, 노무현정부의 출범에서 또 한번 겪었습니다. 또 탄핵국면에서 총선을 치르면서 ‘우리가 권력을 유지해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이해관계가 역시 있었던 것이죠. 바로 그것이 광주, 전북, 대전, 충청권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몰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입니다. 반대로 영남지역에서는 권력을 놓친 것에 대한 강한 안티테제로서 한나라당 지지라는 집단적 선택을 한 것이고, 민주당이나 자민련의 경우는 권력은 물론이고 강력한 안티테제 요인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배제되어버린 것이죠.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동서분할이라는 지역적 집단선택이 드러났고, 다만 전체적 득표율이나 민주노동당의 진출로 보아 과거보다는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변형된 형태의 지역주의는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완전히 깨지려면 지역민들의 의사적(擬似的) 이해관계가 계급계층적 이해관계로, 정책경쟁 형태로 빨리 재편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봅니다.

김상희 우리가 지역주의 정치구도에 대해 논의할 때는 반드시 그 배경을 짚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지방자치가 없었잖아요. 모든 지역의 발전이나 이해관계를 중앙에서 좌우하는 중앙중심의 정치였단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어느 지역 출신이 집권하느냐는 문제를 허위의식에 기인한 것이라고만 볼 수 없는 측면도 있어요. 지역민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거죠. 또 각 정당들이 정책정당으로서 서지 못한 정치상황이 이런 의식의 극복을 어렵게 만들고 변형된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보이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정치세력들이 적극 활용했고 열린우리당도 그걸 고려해서 전략을 세운 거죠. 한나라당의 경우에는 이를 아주 적극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지금의 지역주의 구도가 다시 자리잡았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지방분권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각 정당이 계층적 성격을 가지고 정책정당으로 서게 되면 이 구도는 바뀔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어쨌든 이번 총선이 그런 희망을 많이 보여줬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박석운 한편으로 변형된 지역주의의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지역주의에는 지역적 특성이나 집단적 정서 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보수·진보 양당체제로 재편되어도 그 요소는 계속 남을 거라고 봅니다. 다른 요소가 모두 부차적으로만 작용할 뿐이고 오로지 지역적인 요소만 배타적이고 지배적인 독립변수가 되어버리는 정치구도를 지역주의 정치라고 부르고 이를 적극 문제삼아 우리 정치의 가장 큰 폐단이라고 얘기해왔는데, 이번 선거에서 지역주의는 배타적이고 지배적인 독립변수라기보다 여러 요소 중의 하나로 작용했기 때문에 종전의 지역주의는 극복·완화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지역주의 문제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여전히 작용하겠지만,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하승창 4당 모두 그런 전략을 선택했다는 정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해요. 그렇다 해도 지역주의가 일정한 균열과 완화의 징조를 보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이것을 강조하고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특히 여러 요소가 섞여 있다는 점도 중요한데, 이를테면 정치적 선택에서 지역적 요소도 있었지만 이것이 탄핵보다 중요하고 앞선 변수는 아니었던 것이죠. 물론 지난 대선과 같은 지역주의적 선택도 분명히 있었지만, 실제 여론의 추이나 향배를 볼 때 그걸 넘어서는 측면도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정책지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감성정치·미디어정치는 필연?

 

정관용 이제 미디어정치·감성정치에 대해 짚어보면 좋겠어요. 여성정치인들이 등장하면서 감성정치와 눈물정치라는 말도 나왔는데……

김상희 탄핵국면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각 정당들은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었어요. 더구나 정당 지도부들이 다 바뀌면서 정책을 중심에 둔 전략은 전혀 없는 채 선거를 치렀던 상황이 작용한 거죠. 더군다나 여성대표를 앞세워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전의 과오를 해소하려 했기 때문에 감성정치, 이성에 반(反)하는 정치가 됐죠. 그런데 탄핵정국이 정책대결을 무력화시킨 측면이 있었고, 선거법이 의사표현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정당이나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접촉을 너무나 제한했기 때문에 감성정치가 훨씬 강화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선거법은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미디어 선거운동의 경우 지역에서 후보토론회가 잘 안됐지 않습니까? 완전히 대선 양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각 당의 전략은 정치적인 상황에 따른 것이기에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고 보고요. 이런 문제의 배경이 되는 제도적 측면을 더 많이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석운 기본적으로 감성정치·미디어정치는 언론의 문제인데요. 방송과 신문매체 모두 중앙언론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중앙당 대표를 중심으로 보도되면서 지역정치는 숨쉴 공간이 줄어들었고, 필연적으로 이미지정치로 귀착된 겁니다. 박근혜·추미애·정동영, 세 대표들도 이미지정치의 요소를 갖추고 있단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들 때문이라기보다 기본적으로 언론이 이미지정치를 조장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언론의 독과점 구조가 민주적으로 재편되고, 정치관련 보도가 지역화·민주화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미지정치화·감성정치화되는 것이 필연적 추세임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진보정당이 대안정치세력으로 등록되면서 이미지정치가 정책선거·정책경쟁으로 변화·발전해나갈 것으로 보지만, 이번 총선에서 감성정치·이미지정치가 강화된 것은 언론 탓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하승창 감성정치의 시작은 노무현 대통령 아니었나요? ‘노무현의 눈물’ 이라는 것이 80년대 세대의 일정한 세대적 경험을 자극한 면이 있습니다. 그 감성의 진정성 여부가 중요한데, 유권자들이 진정성을 느끼지 않으면 오히려 코믹하게 되어버리죠. 즉 감성도 이성적 자각이라는 바탕 위에서 느껴져야 실제 표로 연결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자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요. 예컨대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삼보일배는 사실 탄핵과정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호남 지역민들에게 호소한 것이잖아요? 어떤 점에서는 정치과정에서의 이성적 판단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죠. 거기서 느껴지는 간극, 즉 진정성 여부가 그것이 정치적 쇼냐 아니면 진실한 것이냐를 결정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감성정치는 무조건 나쁘다거나 뭔가 잘못됐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것 같아요.

김상희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감성정치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물론 분명 감성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그게 문제로 지적되지는 않았죠. 감성적 호소와 정책대결이 균형을 이루었고,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론도 달랐기 때문에 유권자의 판단에 도움이 됐단 말이죠.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계속 절하고 울면서 호소하는, 그야말로 진정성이 없는 쇼로만 일관했어요. 호소에 상응하는 정치적인 조치는 하나도 취하지 않으면서 그냥 용서해달라고 했잖아요? 그러나 선거결과를 보면서, 우리가 감성정치·미디어정치에 대해서 우려하지만 국민들은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관용 박석운 위원장도 감성정치가 필연적 추세라고 하셨는데, 저는 좀더 근본적으로, 문자세대에 비해 영상세대가 압도적 다수가 되어가는 상황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에 정치적 엄숙주의라는 것이 워낙 강했단 말예요. 그것이 아주 급속하게 해체되어가면서 감성적으로 흐르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우리가 보통 미국형 정치와 유럽형 정치를 구분할 때, 유럽형은 지방자치 내지 지역정치, 풀뿌리 민주주의, 각종 조직과 정당의 관계 등이 토착화되고 착근되어 스타십(starship) 위주의 감성정치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반면, 미국형은 두 개의 정당이 바닥과 떨어져서 공중전을 전개하는 스타십 위주의 감성정치가 되거든요. 우리의 경우는 풀뿌리 민주주의 내지 지역정치의 기반이 약하고, 또 각종 조직과 정당의 연계가 별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여서 더더욱 감성정치가 용이한 구조란 말이죠. 이렇게 따져보면 감성정치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누가 더 적절하게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감성정치를 많이 혹은 적게 했다고 해서 나쁜 정치세력이나 좋은 정치세력으로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철저히 정책으로 경쟁했다지만 역시 감성정치적 요소, 즉 ‘노회찬 어록’ 등이 상당히 가미된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치집단이 이런 흐름에 빨리 적응하고 잘해내는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론 탓을 하셨는데, 언론은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런 면을 보도하지 않을 수가 없죠. 보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 채널 돌리고 그 신문 안 보는데 어떡하겠습니까?

박석운 하여튼 감성정치나 미디어정치가 필연적인 추세지만 과도한 점에 대해서는 지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적극적인 정책경쟁을 통해서 극복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상희 이번 선거는 특수상황이란 거죠. 탄핵국면이 결정적인 변수였고, 정치권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이미지정치가 상당히 부상한 것에는 정보의 발달이라든가 감성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시대의 변화추세 등이 함께 작용했다고 봅니다.

 

 

원칙과 유연성 사이

 

정관용 선거 평가에서도 나왔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겠습니다.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의미를 그 전망까지 연결시키면서 말씀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석운 1987년 이후 다양한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시도가 있었는데,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하고 그것도 상당히 성공적인 분위기 속에서 제3당으로 등장한 것은 앞으로 보수·진보 양당체제로 정치권이 재편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고, 사회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이 좌담에 참석하기 전 민주노동당의 여러 공약을 살펴봤어요. 그런데 언론 등에서 걱정하는 것과 달리 비교적 견실한 논리로 정책들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했어요. 이런 부분들을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접하게 될 때 정치적·문화적 상상력이 상당히 자극을 받으면서 새로운 정치문화 형성과 발상전환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민주노동당은 우리 사회와 정치 발전을 위해서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김상희 저도 동감입니다.

정관용 민주노동당은 우리 사회의 기본토대라 할 경제나 외교 분야의 구조변환에 대한 문제제기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봐요. 그리고 이런 역할을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히려 다른 정당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정치적 과제들, 즉 국회의원 특권 포기, 정치문화 개선, 정쟁을 지양하는 정치패턴의 정형화 등에서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기대 이상일 겁니다. 민주노동당 스스로는 이를 부차적으로 생각하고 진짜 진력하고 싶은 과제가 따로 있겠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사실상 얻어낼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않은가 합니다. 이 점을 민주노동당이 현실적으로 계산하고 17대 원내활동에서 힘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승창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에는 사실 그런 점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민주노동당은 상대적으로 근대적 정당의 꼴을 가장 잘 갖추고 있는 정당 아니에요? 정치과정의 민주성이나 투명성 등에서 다른 정당들에 비해 우월했기 때문에 유권자가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문제제기자 역할을 말씀하셨지만,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정체성과 관련해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섰다고 봐요. 그동안 국회에서 다루어지지 못했던 사회적 대립이나 갈등을 원내에서 조정·통합하는 데 어떤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는가, 실현가능하고 적합성이 있는 정책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하는 시험대에 오른 거죠.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능력을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는 의문으로 남아요.10석이라는 제약 때문에 일정한 타협이 필요할 것인데, 변수가 많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방침들을 정할지 궁금합니다.

정관용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하승창 어쩔 수 없는 일정한 타협이 민주노동당의 당내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봅니다. 선거 전 민주노동당은 향후 의정활동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중앙당의 방침에 위배될 경우 의원들을 어떻게 징계할 것인지가 토론의 주된 내용 중의 하나더군요. 그게 민주노동당을 위해서 좋은 일인지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인데요. 오히려 갈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당의 정체성을 더욱 잘 실현할 수 있는 계기와 조건으로 삼아 정책수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다수는 원외를 중심으로 있을 테니까, 원내에서의 일정한 타협을 중앙당 소속 당원들이 거부하거나 반대할 경우 정책을 구체화하거나 실현시킬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것이죠.

정관용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하셨는데, 정치적 결과로서의 타협을 말씀하시는 건지, 아니면 정책적 내용에서 타협하라는 것인지요? 경제정책에서 민주노동당이 전보다 현실적으로 타협적인 수정안을 내놓아서 관철가능성을 좀더 높이라는 요구일 수도 있고, 반대로 원칙적인 정책기조는 유지하되 어차피 관철될 수 없다면 표결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비슷한 쪽과 동조하라는 요구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중 어느 입장이십니까?

하승창 둘 다의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타협이 의미없는 경우는 표결 자체도 의미가 없다고 보고 반대할 수도 있을 테지요. 원내에서의 정치적 선택은 다양할 텐데, 많은 정책들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다른 두 당과 다르다고 전부 거부하지는 못할 것 아니겠어요? 일정한 자기주장과 원칙이 있으나 현실적 타협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할 텐데, 중앙당과 의원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일상적으로 중앙당의 지침과 방침에 따라서만 표결에 임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거든요.

박석운 민주노동당에 타협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의원들이 타협할 리 없다고 저는 단정합니다.일단 민주노동당의 공약이 혁신적인 게 아니에요. 이른바 유럽의 사회민주당 정도에서 이미 다 정책으로 시행하고 있는 수준이거든요. 조선일보 같은 데서는 기절초풍할지 모르지만 국제적인 수준에서는 거의 상식화되어 있는 극히 현실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타협하는 순간 설 자리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동당의 입장이나 당선자들의 개인적 정체성, 전체적인 정치문화로 볼 때 명시적 타협은 결코 없을 거예요. 다만 의회 내에서는 다양하게 나타날 겁니다. 이를테면 찬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반대와 소극적 반대, 언급 안하고 방관하는 것, 약간 추진하는 것과 필사적으로 추진하는 것 등 여러 태도가 있을 수 있고, 같은 찬반에도 등급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현재 다수 정당이나 제1야당이 아니고 총의석수에서 3%밖에 안되는 군소정당에 불과해요. 이 상황에서 타협은 정치적 자멸이에요. 때문에 타협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민주노동당 길들이기이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민주노동당에서 그 길을 택할 리 없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현실에서 제출된 정책이나 법안에 대해 적극적 대안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고, 당의 힘 자체가 너무 약해서 손을 못 대는 일도 생길 수 있어요. 작은 힘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려면 결국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가지 일에 힘을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나머지는 기존의 방법으로 흘러가는 데 대해서 소극적으로 반대하거나 방관할 텐데, 이것을 타협이라고 볼 수는 없거든요. 이런 사태진행을 또다른 의미에서 타협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민주노동당은 결코 명시적 타협을 안할 것이라고 봅니다.

김상희 민주노동당은 워낙 의석이 적기 때문에 당연히 몇몇 사안에 집중하게 되어 있고 자칫하면 타협할 기회도 없으리라고 봐요.그런데 노동운동 방식으로 계속 문제를 제기하게 될 때 신선한 충격과 정치적 상상력을 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적은 의석수 때문에 행동이 극단적인 형태를 띨 것이고, 외부 운동권과의 연계투쟁도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도 판단해야 합니다. 아무리 현장에서 17년 동안 준비를 해왔다고 해도 현실파악이나 전문성 등 모든 분야에서 취약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좀 겸손해지고 정말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너무 튀어 있어요. 그러잖아도 변화일로에 있는데, 일반 국민들이 갖고 있는 변화에 대한 피로감도 감안해야 합니다. 또 세계적인 흐름과 국내의 흐름을 보면 보수·진보 양당구도 형성에는 사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다른 세계적인 변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너무 낙관하고 들떠 있는 것은 경계하고, 겸손하고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관용 정치적 외형에서의 유연성 측면은 다 말씀하신 셈이죠. 동시에 민주노동당이 원외에 있다가 원내 제도권으로 들어가면서 유연화된다면 계급성을 잃어버리고 탈계급화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단 말이죠. 박위원장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니까 정치적 외형의 유연성과 정책적 계급성의 유지는 따로 봐야 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박석운 겸손과 공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요. 기본적으로는 연착륙 과정을 거치는 양상일 테지만, 극적인 노·사·정 합의 같은 방식이나 타협으로는 안 갈 거예요. 왜냐하면 노사정위원회에서 뭔가를 합의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노동당의 원내지분이 많지 않고 파워도 없는데다가, 기존의 보수정치권에서 의미있는 양보를 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이나 중앙당은 아마도 명시적인 타협을 못할 거예요. 유연성은 내용보다는 행동양식에서 요구되는 변화인데, 그런 측면에서는 연착륙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기반인 노동조합이에요. 언론에 의해 잘못 그려진 측면이 있는데, 노동조합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가장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끊임없이 협상을 하거든요. 노동조합세력은 협상기술이 아주 발전되어 있고 몸에 배어 있다는 점을 봐야 하는데요. 민주노조의 경험은 투쟁과 교섭의 양대 축에서 이미 오랫동안 단련되어왔다는 것이죠. 이미 십여년 동안의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원칙을 버리지 않으면서 현실에 맞게 수위조절을 하는 훈련을 해온 셈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개인적 정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이제 국회의원이 된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경우 언론에 노출되기로는 매우 과격하고 강경한 이미지지만, 정확하게 현실을 보면서 유리한 위치와 적정 수준에서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사람이죠. 권영길 대표의 경우 언론에 비교적 부드러운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원칙을 포기할 사람은 결코 아니고요. 다만 의회라는 공간 때문에 행동양식에서 조금 변화가 있겠지만 노동조합에서 충분히 훈련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승창 제도권 정치활동은 노조활동과는 좀 다를 것 같은데요. 타협하지 않고 계속 원칙을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치개혁 외의 분야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제일 경우 좀 다르게 봐야 합니다. 물론 민주노동당 의석은 산술적 의미의 10석과는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고 봐요. 그렇지만 의미있는 제도적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나머지 280여명의 의원 다수로부터 동의를 받아내야 하잖아요? ‘우리는 10석밖에 없어서 어차피 안될 거니까 문제제기만 하고 말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옳지 않다면 의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할 때 일정하게 동의를 받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타협이라는 요소는 필연적이겠죠.

김상희 이편에서 보면 원칙을 포기했다고 할 수도 있고, 저편에서 보면 타협했다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 후에 노동운동과 민중진영이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민중진영이 민주노동당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에 따라서 시민운동의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겁니다. 일단 민주노동당에만 유연성을 요구하기보다는 민중세력이 민주노동당이 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주노동당이 쌘드위치 신세가 되면 굉장히 극단적인 형태가 나타날 수 있거든요.16대 국회를 보면 열린우리당이 49석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싸움이나 극한투쟁을 안할 수가 없었어요.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는 훨씬 더 심할 것입니다. 원칙과도 관련된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아주 강도높게 대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FTA(자유무역협정)도 있지만 농업정책과 경제개방정책과 관련해서 상당히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원칙의 포기인지, 아니면 일정정도의 유연성인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국면이 곧 다가올 겁니다.

정관용 제가 총선 전 방송토론에서 천영세 부대표에게, 만약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있었다면 탄핵안 표결과정에서 어떻게 했겠느냐? 이것은 네티즌이 보기까지 들어 질문한 내용이다, ① 몸으로 막는다 ② 아예 표결에 불참한다 ③ 참여해서 반대표를 던진다, 이렇게 물었어요. 물론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의 일치된 의견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계속 반대입장을 밝히다가 표결에서는 반대표를 던진다는 답변형태를 취했단 말이죠. 물론 이 문제와 FTA나 비정규직 문제 등은 분명 다릅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접점에서 안이 타결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개악이라고 판단한다면, 정말 표결에 참여해서 반대표를 던지는 형태가 될지, 극단적으로 몸으로 막는 형태가 될지…… 외형에서는 다양한 전술과 유연성을 의회 내에서 발휘할 필요는 있다는 거죠. 다만 정책기조에서만큼은 기존의 계급적 요구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버리는, 예컨대 부유세 주장을 매일같이 해봐야 현실성이 없으니까 철회하고 재산세 중과 방안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옳을지, 아니면 부유세 안을 계속 견지하는 것이 옳을지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겠죠.

 

 

부유세 공약의 현실성

 

박석운 부유세가 비현실적이니까 포기하라는 것은 민주노동당 문 닫으라는 얘기입니다.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움직이는 당이 아니거든요. 비정규직 관련법을 개악하는 것, 예를 들어 파견법 업종을 확대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결사저지할 거예요. 이를 막지 않으면 민주노동당은 깨집니다. 다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에는 완벽한 보장, 조금 개선하는 방법, 조금 덜 개선하는 방법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흡족하지는 않지만 조금 개선하는 안에 대해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지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유연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할 수도 있겠죠. 즉 너무 일률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안별로 비판적 지지, 그리고 결사저지하는 방식보다는 미흡한 점을 분명히 부각시키는 반대 등 적절한 태도를 취할 터이므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명백히 결사저지해야 할 파병문제나 비정규직 관련법 개악 등에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겠죠. 저는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정관용 거의 민주노동당 지도부처럼 말씀하시네요.(웃음) 경제·외교가 아닌 정치분야에서 민주노동당의 등장으로 인한 예상외의 변화와 성과물이 많을 겁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외형의 유연화라는 과제와 함께 정책적 계급성을 꾸준히 견지해나갈 부분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고, 구체적인 민중생활과 관련된 주요정책들이 국회에서 다루어질 때는 실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협상과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방침이 조화롭게 구현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우리가 민주노동당에 기대하고 주문하는 점일 테죠. 하지만 이것은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이번에 초선의원이 188명이잖아요. 한가지 장담한다면 민주노동당 의원 개개인은 원내 정치경력이 없다뿐이지 다른 당 초선의원 50명 정도를 감당할 정도의 정치경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에요. 현장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체득한 분들이기 때문이죠. 바로 그런 정치력을 의원 한분 한분이 최대한 발휘한다면 민주노동당은 민중의 실익을 대변하거나 정치를 개혁하는 데서 다른 당을 압도하는 힘을 보여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기대하지만 박위원장 말씀처럼 민주노동당이 현실 의회정치에 안착하리라는 확신은 아직은 못하겠습니다. 좀전에 부유세 얘기를 꺼냈는데 그 논의를 좀더 해봤으면 좋겠어요.

김상희 부유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닌데, 사실 부유세라는 건 여유있는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복지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에서 제시하는 부유세의 틀을 다 가지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유연성을 발휘해 현 제도 속에서 보완하거나 조금 더 나아가는 것들을 통해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봐요. 상속·토지·주택·부동산에서 세금을 현실화하는 방향으로 가면 되지, 부유세를 통한 분배를 무리하게 관철시킬 까닭은 없다고 보거든요.물론 민주노동당이 포기 못하는 것, 노동관련 정책이라든가 파병문제라든가 북한관련 문제 등 몇몇 부분에서는 확실한 자기 원칙을 갖는 것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민주노동당 의원 1명이 다른 당 의원 50명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에요. 물론 정치의식이나 정책 추진의지, 헌신성에서는 다른 당 의원 50명,100명 역할을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현재 민주노동당은 운동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현실파악 능력은 있지만, 전체 국가를 바라보면서 계급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시각에서는 취약한 부분이 있다고 해야죠. 이제 민주노동당은 책임정치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다듬어져야 합니다. 실질적인 실력을 갖추고자 노력해야 하는 측면도 많다고 생각해요.

박석운 부유세의 내용이 시장이나 자본주의를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개량적 요구에 속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부동산이나 자산소득에 대한 중과세와 보유세 중과세이고, 거기에 덧붙인 것이 유가증권에 대한 자산세를 내게 하자는 것이에요. 이것은 기존 시장경제 내지 경제정의 차원에서 조금 더 나아간, 좀더 선명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법인세·소득세 최고세율의 획기적 인상이나 주식양도세의 신설을 통해서 사회보장의 확대를 이루고 공공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거든요. 현재 우리의 세금체제는 비정상적으로 간접세 위주인데, 국제적 수준에 비추어보더라도 직접세 비중이 현저하게 낮아요. 그래서 그걸 높이자는 수준의 얘기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시장경제 내에서 합리적으로 경제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의 경제정책이 실제로는 혁명적인 내용이 아니란 말이죠.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몇십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내용을 한국 사정에 맞게 포장한 것이에요. 따라서 이 부분은 민주노동당이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정관용 박위원장이 보시기에는 별로 나아가지 않은 안이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접점에서 보면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는 거죠.

박석운 민주노동당은 끊임없이 이런 의제들을 쟁점화해서 열린우리당과 차별성을 갖는 게 아마 중요한 정치적 전략이 될 겁니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해 다수정당으로 나아가는 지렛대로 삼을 거라는 거죠.

정관용 전체적인 관점이 부족하다는 김상희 대표의 말씀처럼, 민주노동당이 그동안 바깥에서 계속 특정계급의 요구만을 대변하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을 어떻게 전체적인 관점에서 현실화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는데요.

김상희 저희가 여성정책 등을 평가해보니까 민주노동당은 노동부문 등에서는 현실에 밀착한 정책들을 생산해내는 데 반해 전반적인 정책에서는 취약하지 않은가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보육정책이나 여성의 정치참여확대 정책 등에서 현실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거나, 개혁적인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예산면에서 실현가능성이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 계층에만 근거해 제도정치권을 지향하는 운동단체적인 정당이 이제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체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거죠.

정관용 바로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17대 국회 4년 동안은 학습과정일 거예요.4년 안에 학습을 통한 결과물이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 18대에 얼마나 의석을 늘릴 수 있게 되느냐가 4년 동안 민주노동당의 최대 과제라고 봐요. 그래서 지금 말씀하셨듯이 전체적·세계적 관점으로 스스로 변화하라는 것은, 현단계에서는 민주노동당에 무리한 요구일 거라고 생각해요. 의석수가 1/4이라도 되면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만 현재와 같은 정도의 의석을 가지고 벌써부터 자기정체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현실적 적응을 해버리면 목표를 상실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민주노동당이 그것을 선택할 리가 없다고 봐요.

김상희 계속 군소정당으로 남으려면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야말로 제1야당 내지 상당히 영향력있는 야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넓은 안목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만 합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가혹한 요구일지 모르지만,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4년 동안 계속 문제제기만 하고 마는 차원이 아니라 적어도 합리적인 안을 제기해 일정정도 성과를 얻어내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래야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할 것이라고 봅니다.

박석운 문제는 사실 그 ‘국민’이 누구냐는 거예요.

정관용 그런 판단에서 좀 다를 수 있겠어요.(웃음)

하승창 주로 노동자·농민계급을 중심으로 생각했을 때의 문제인데, 그 점은 민주노동당 토론회에서도 확실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계급적 입장만을 유지할 경우 민주노동당의 집권은 요원하다는 판단인데요. 민주노동당이 비타협으로 인한 실패에서 배우는 등 여러가지 학습의 결과로 변화가 드러나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인정해주기 어렵다고 봐요. 예컨대 부유세 같은 경우를 저는 선언적 주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세제로서 부유세를 실제로 도입하기는 어려울 거라 봅니다. 지난 대선 때 권영길 대표도 부유세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예컨대 종합토지세를 강화한다든지 하는 여러가지 대안을 얘기했는데, 사실 그런 내용들은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들이 끊임없이 주장했던 것이지요. 주식차익에 대한 과세 등도 경실련이 다 말했던 내용이에요. 그러나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과 부유세 주장만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이 부유세라는 말을 버리고, 구체적으로 얼마의 세금을 부과했을 때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소득수준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 어떤 세제들을 취해왔는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신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원내활동에서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문제제기나 선언적 주장만 하는 당이라는 인상이 남을 것이기 때문에 집권정당으로 가기는 어려울 겁니다.

박석운 저는 생각이 달라요. 기본적으로 민주노동당이 부유세를 계속 들고 나아가야 해요. 그것이 더 빨리 집권으로 가는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국민도 여러 층이 있는데, 민주노동당이 앞으로도 계속 기반을 두게 될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은 우리 국민 중 압도적인 다수란 말이죠. 그래서 그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인 상황에서 부유세처럼 매우 정확하고 선명한 것이 필요하죠. 저는 부유세가 아주 좋은 개념이고 성공적인 공약이라고 생각하고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때까지 그것을 가지고 가리라 예상합니다.

정관용 지금의 견해 차이 속에는 진보정당의 성장을 위한 전략·전술적 판단과 고려가 깔려 있습니다. 유럽 같은 경우 좌파가 소수당으로서 이미 고착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서 소수당으로 그냥 가는 양상을 보이지만, 지금 민주노동당이 배우고자 하는,70년대 말에 만들어진 브라질 노동자당(PT)은 초기에 미미한 형태로 지방자치단체장에 진출했고, 굳건하게 자기주장을 유지하면서 세력을 신장시켰어요. 그런 다음 집권 바로 직전단계에서 변화했는데 민주노동당도 그런 과정을 상정하는 것이죠. 민주노동당의 전술이 과연 들어맞을 것인지는 그때 가서 판단하기 나름일 텐데, 지금 민주노동당의 전술에 대해 두 분께서는 우려를 표명하신 반면 박위원장은 맞게 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민주노동당의 대미·대북정책과 관련해서 논의하겠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 경제적·정치적 이해문제가 걸려 있는 한미관계에서 우리나라가 브라질처럼 운신의 폭이 넓은 것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노동당 대미·대북정책의 장점과 약점

 

하승창 우선 민주노동당이 대미정책에서 취하는 방향과 지향은 공감합니다. 혈맹적 관계라 얘기되는 한미동맹은 그간 우리 사회 기득권세력의 사회발전전략이기도 했고 외교전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미정책에 대해서는 외부적 조건보다 국내 기득권세력의 반발이 더 큰 문제예요. 그러나 분명히 이제 변화해야 하는 싯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표현이 자주외교라는 말로 나타나는데, 외교노선에서도 다른 발전전략이 필요해요. 이런 발전전략의 변화에는 중국의 부상이나 북한의 변화, 일본의 군사대국화라는 동북아 정세의 변화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대미정책이 이념적 지향으로서의 ‘자주’라는 원칙에 근거하지만, 이같은 변화에 대한 면밀한 고려나 분석이 전제된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집권을 전제할 때 ‘현실적 선택’으로서의 외교정책은 운동적 지향이 강한 원칙적 주장이나 철학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정부의 대미정책이 오락가락했던 것이 이를 잘 보여주었죠. 현재 민주노동당의 대미정책은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문제해결의 과정까지 제안해놓고 있긴 하지만,국내 기득권세력의 반발과 동북아 정세의 변화 등에 대한 현실적 고려와 분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김상희 민주노동당의 대북정책은 지원과 협력, 대미정책은 종속적 관계의 철저한 청산에 핵심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정당과의 차별성은 아무래도 대북정책보다는 대미정책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요.2012년까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를 개정·폐지하겠다, 이라크 파병장병을 귀환시키고 파병을 결정한 전범을 처벌하겠다는 등의 파격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주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으나, 미국과의 관계는 안보와 경제의 측면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고 북한체제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예측 불가능성까지 고려할 때 단순하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도정치권 안에서 그동안 터부시되어오던 의제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문제가 투명하게 드러나게 되면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정책에 근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원칙적인 주장은 큰 역할을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박석운 저는 민주노동당의 국방정책이나 통일정책 등은 나름대로 정교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만 외교정책에서는 다소 소략하게 “WTO협상에서 농업분야 제외 및 가칭 ‘식량·생태·식품 안전을 위한 서울라운드’ 추진과 자주적 평화외교를 추진한다”라고만 되어 있어서, 향후 이를 구체화하여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방정책에서는 우선 군축방안을 소상하게 제시하면서, 남한의 선(先)군축을 통한 남북한 상호군축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남는 재원을 사회복지예산 확충에 사용하겠다는 정책은 명료하기 때문에, 만일 일반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된다면 차별성있는 정책으로 나름대로 지지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전시작전권 환수나 불평등한 SOFA의 전면적 재개정정책은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기본적 조건을 갖추기 위한 요구로 국민들의 광범한 인정을 받으리라 봅니다.2012년까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추진하겠다는 정책과 미군기지 반환문제 등을 소상하게 밝힌 부분은 적극 공개되어 국민적 선택을 받아볼 수 있는 시안이라고 봅니다. 또한 통일분야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국회결의 형식으로 비준하자는 것이나,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단계적 이행절차의 추진, 경제영역에서의 남북 상호의존성 증대, 그리고 사회적 이질성 극복을 위한 문화협정 체결이나 통상·외교 현안에 대한 남북간 협력 강화 등의 정책은 차별성있는 것으로서, 우리 사회 내에서 적극적 공론화과정을 거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불평등성이 극심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평등하게 개정하겠다는 공약이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요구 등의 공약도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져서 국민적 판단을 받아볼 문제입니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국방·통일 관련 정책내용은 지난 55년간 일종의 ‘사회적 금기’였다는 점에서 일반 국민들에게는 다소 낯설고 좀 급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향후 구체적 내용과 그 근거가 알려지면 급속도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옛말에 “서울에 높은 양반들 많으니 과천서부터 긴다”는 속담과도 같이, 냉전적 질서에 가위눌려 지레 겁을 먹고 예방적 자기검열을 일삼아온 우리 사회를 ‘해금’시키는 데 민주노동당의 국방·통일 관련 정책들이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정관용 저는 아까 민주노동당이 우리 사회의 기본토대라 할 경제·외교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자의 역할을 담당할 뿐 그 기본구조를 바꾸어낼 수 있을 만큼의 실천을 이루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미동맹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은 이라크파병 같은 이슈가 발생할 때 지속적으로 파병 반대를 주장함으로써 강력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러한 현안이 없을 경우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상대적이라는 말은 경제문제에 비해 외교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관심이 다소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정책공약들을 보아도 드러나는 문제인데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민주노동당이 외교·국방 등의 영역에 좀더 힘써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대북정책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외교·국방의 틀 외에 경제와 연관해서도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를 넘어서는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전문적인 연구역량의 확충이 필요합니다. 국내에 들어온 국제자본 가운데 투기자본이 어느 정도인지, 실제 어느 산업과 업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대안적인 법과 제도, 정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예컨대 씨티뱅크가 한미은행의 최대주주 칼라일(Carlyle Fund)의 지분을 사들여 국내 금융시장에 본격 진출했는데, 여기서 칼라일과 씨티뱅크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래서 칼라일이 한미은행 구조조정을 이끌 때와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 이제 씨티뱅크가 국내 금융시장의 일원이 된 상태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등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부실 정리과정에 유입되는 사모(私募)펀드에 대한 규제책은 어때야 하는지, 그후 지분 매각과정에서는 어떤 장치들을 마련해야 하는지, 국내 자본과의 형평성 문제는 없는지, 더 나아가자면 M&A(인수·합병) 시장 전반에 대해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지 등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북정책 분야에서는 필요할 경우 열린우리당, 심지어 한나라당까지를 포괄하는 초당적 협력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민주노동당의 대북정책을 보면 사실 다른 정당들과 결정적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북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 보수강경세력의 입지는 여전히 막강합니다. 따라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닌 한 여타 정당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소수 보수강경세력의 입지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어요. 마침 한나라당 역시 자기변신의 첫과제로 ‘따뜻한 대북정책’을 들고 나온 점은 매우 환영할 만한 조건이 되는 것이지요. 어쨌든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해주신 기대감과 주문사항을 민주노동당이 잘 헤아려 외교·국방 분야에서도 큰 몫을 담당해가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하승창 처장이나 김상희 대표는 시민운동을 하시는 분으로서 민주노동당에 특별히 하실 말씀 없습니까? 시민운동의 지향점과 민주노동당의 지향점이 반드시 일치한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적 가치

 

하승창 민주노동당·노동운동 진영과 시민운동 진영은 지향하는 가치에서 부딪치는 지점이 있지요. 전력산업의 민영화 문제 같은 경우 환경운동 진영은 환경적이고 더욱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에 민영화가 좋은 수단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반면에, 노동운동 진영은 고용불안정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부딪치고 있어요. 물론 민주노동당만의 숙제는 아니지만, 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에 따라 참 많은 문제와 반응 등이 있을 겁니다.

박석운 적절한 사례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문제는 이미 극복되고 있어요. 초창기의 전력노조가 어용이고 제 역할을 못할 때는 그 얘기가 맞았어요. 노동조합은 자기 밥그릇 지키는 수준에서 다가갔고, 환경운동 쪽에서는 공룡 한전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니까 분할 민영화라도 해서 해체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노조가 민주화되고 나서는 단순히 밥그릇 지키는 차원을 넘어 공익적 역할에 대해서도 인식을 했어요. 환경운동 쪽에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에 의한 한전의 분할 민영화가 환경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이미 인정했고요. 원자력발전소는 증설을 안하고 기존의 것은 수명이 다하면 단계적으로 폐쇄해가고, 새로운 대안에너지 생산을 위해 협력해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양쪽에서 형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환경단체와 발전노조 등 공공노조연맹, 그리고 관련전문가 들이 모여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이미 접합점이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문제점들이 극복되어가는 양상이라는 거예요.

정관용 좌담의 진도를 위해서 전력산업 예는 건너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웃음) 문제제기 중에서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관계는……

박석운 조금만 더 얘기할게요.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 진영이 일반민주주의, 사회공익에 관계된 과제들을 주요의제로 삼고 책임감있게 대처할 필요성은 이미 제기되었고, 실제로 실천을 위해서 나서고 있어요. 전국민중연대의 4대과제를 보더라도 그 첫번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이고, 두번째는 일반민주주의적 과제 수행, 세번째는 민중생존권 쟁취, 네번째는 자주·평화거든요. 그리고 노동조합도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면 등한시하던 것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있어요. 일반민주주의적 과제에 대해서 노동조합이나 민중운동 진영에서 책임있는 기여를 해야 하고 또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상희 지금 논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새롭게 부각되는 시민사회의 이슈와 가치 들을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수용을 못한다는 거예요. 특히 생태환경·여성·인권 분야의 주요 이슈를 말로는 다 수용한다고 하지만, 실제 정책이나 내용상으로는 거의 수용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녹색정치준비모임을 만들어 녹색당과 같은 시도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녹색정치’나 시민사회적 가치를 담아내면서 민주노동당이 볼륨도 커지고 깊어지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정관용 새롭게 등장하는 시민운동적 요구와 민주노동당의 토대를 구성하는 노동자·농민 등의 계급적 가치 사이에 배치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표는 민주노동당이 시민운동적 요구까지를 포용해야 성장할 거라는 말씀이시고 박위원장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인데요.

박석운 이미 그런 가치를 수용하고 있고 그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김상희 그런 가치가 수용된 것이 아니라 분리된 채로 진행되고 있지 않나요?

박석운 시민운동단체들은 일정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재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진보라는 개념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서 다른 것인데, 기본적으로 이 시대 한국적 공간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찬성하는 것이 보수이고 반대하는 것이 진보라고 봅니다. 시민운동도 이것에 찬성하는 부분과 비판하는 부분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금까지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사회운동 영역 내에서 분별, 정립되는 과정을 거쳐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의 새로운 모순점들이 현실적으로 확인되는 현 싯점에서는 다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일정한 상호 수렴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운동 내의 분화와 변화들이 생기리라 예상합니다.

정관용 지금 박위원장의 말씀은 바로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거예요.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지금 이 차이를 아우를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아우르기 힘들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이 한쪽으로 계속 가느냐 아니면 시민운동적 가치로 옮겨가는 것이냐를 정하는 문제죠. 참고로 브라질의 경우도 노동자당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 정당들 대여섯 개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형태로 또다른 정당들이 진입하고 생겨나는 과정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민주노동당이 다 아우르면서 갈 것인지가 하나의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승창 말씀하신 대로 민주노동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죠. 시민운동을 배제한다면 다른 정치세력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일정한 수용가능성을 보일 경우에는 다른 양상이 되겠죠.

 

 

시민운동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정관용 이번 총선에서 시민운동이 사실상 큰 역할을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원인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시민운동은 어떻게 되겠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도록 하죠.

김상희 선거국면에 시민사회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일정한 선이 있지만 이번에 정책평가를 통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고 각 당들이 정책선거를 하게끔 유도해내는 데서 분명히 한계를 보였어요. 그러나 사실 시민운동은 선거를 앞두고 당선운동·지지운동·정보제공운동·낙선운동, 그리고 이것들이 혼합된 형태의 운동 등 스펙트럼이 넓었습니다. 한데 탄핵이라는 핵폭풍을 만나 탄핵무효·민주수호 운동에 전념하면서 그동안 준비해온 많은 것이 거의 무력화되어버렸어요. 저희도 준비한 것을 펼치기는 했는데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을 끌기가 어려웠어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방식을 찾았어야 했다는 반성도 하게 되지만, 탄핵바람이 너무나 거세어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체 평가입니다.

하승창 시민운동의 선거대응이 이전과 달리 매우 다기화되었어요. 경실련은 공명선거운동과 관련해 정보제공운동을 했고, 많은 단체들은 또 낙선운동을 했죠. 여성운동의 경우에는 여성의 정치진출이라는 주요한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당선운동과 낙선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일부 환경운동단체의 ‘초록국회만들기 네트워크’ 같은 경우에는 이전과 달리 환경적 가치를 실현할 후보들을 확인하고 그들이 앞으로 그 정책들을 견지하도록 협약을 맺는 운동이었습니다.YMCA도 이전과는 좀 달랐던 것 같고요. 이런 다기화된 영역들이 얼마나 의미있게 실험되었는지는 평가하기가 어려워요. 김대표 말씀대로 탄핵 때문에 실제로 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선거 마지막 단계에서 겨우 시늉만 한 것인데요.그런데 탄핵무효운동을 보면 오히려 시민운동이 일정한 역할을 한 셈이에요.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할 때는 두 가지 측면 때문입니다. 그러한 운동이 특별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의 정치과정이나 사회변화와 관련해 사회적인 공감대나 설득을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실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낙선운동도 탄핵이라는 국면에 묻혀 부차적인 요소로 떨어졌고, 특별히 당락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고 보거든요.

정관용 16대 총선과 비교해볼 때 17대 총선에선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죠. 이는 16대 총선 때와 달리 이번 총선에서는 정치적 상황에 좌우된 폭이 너무나 넓었기 때문이에요.16대 때는 낙선운동이 정치적 접점으로 되면서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측면이 있고, 이번에는 탄핵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시민운동의 주장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상희 시민운동이 간과하지 말고 고민해야 할 점이 있어요. 현재의 주류 시민운동이 아닌, 지난번 대선 때부터 나타난 참여형 시민운동, 즉 ‘노사모’나 ‘국민참여 0415’에 관한 겁니다. 사실 이번 탄핵 때도 시민운동의 외피를 썼지만 이러한 새로운 흐름이 상당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일반적인 시민운동도 많았지만 조직화된 참여형 시민운동 흐름이 실제 선거운동 기간에 각 지역에서 스며들어 활동했어요. 그런데 우리 같은 시민운동의 경우에는 공중전도 못하고 밑바닥의 실전도 못한 거예요. 이 시민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정말 새롭게 평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관용 용어상 중요한 대목인데 그걸 새로운 시민운동이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예컨대 노사모를 새로운 시민운동이라고 해야 할지……

김상희 새로운 정치적 시민운동이죠.

박석운 시민운동의 영향력 축소는 사실과 다른데, 왜냐하면 시민운동은 이번 총선과정에서 16대 총선 때보다 훨씬 더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에요.

김상희 그것은 탄핵무효운동을 통해서 그런 거죠.

박석운 그럼요. 탄핵무효운동도 넓은 의미의 시민운동이 한 겁니다. 몇달 전부터 준비해온 프로그램보다 더 거대한 시민운동이 진행된 거예요. 시민운동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시민운동의 약화가 아니라 획기적 강화로 보아야 맞고, 시민운동의 개념을 너무 축소해 고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요. 정치적 색깔이 명확한 ‘노사모’만 생각하는데, 네티즌 주도의 ‘국민참여 0415’나 ‘국민을 협박하지 말라’ 등은 노사모적 성향이 있으면서도 진보성향을 가지는 다양한 자발적 정치참여형 시민운동, 넓은 의미의 시민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캠페인성 운동에서 대중참여형·집회형·광장형 문화로 운동양상이 좀 바뀐 것이죠. 기성 정치권과 정당에서 소외되었던 일반대중들에 의해 참여형 시민운동으로 변화·발전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넓은 의미의 시민운동은 영향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관용 시민운동의 영향력 약화란 문제제기를 할 때는 깔려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시민운동과 당파성의 문젠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시민운동이 탄핵처리안에 반대하면서 총선에 획기적인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지만, 탄핵철회라는 이슈 자체가 열린우리당이 제기한 당파적 이슈와 혼합되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6대 총선 때는 특정 당파로부터 초월해 정치적 중립성을 기본으로 하는 시민운동이 영향력을 가진 것이라면, 이번 17대 총선에서는 탄핵과 묘하게 얽혀들어가서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한 시민운동의 독자적 영향력이 수그러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다만 박위원장께서는 새로운 정치적 시민운동으로 확대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죠. 다른 견해는 없나요?

김상희 작년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많은 논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 기계적인 중립성에서 벗어나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단계에 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선지지운동이나 여성계의 여성후보당선지지운동을 기획했던 것이지요. 탄핵국면 때문에 그것이 약화되긴 했지만요. 그런데 시민사회단체의 탄핵반대운동이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당파적 이익에 도움을 준 측면이 있지만 그런 식으로 오버랩시켜 바라보면 문제가 상당히 왜곡된다고 생각해요. 탄핵국면에서 국민들의 탄핵무효운동 참여는 총선결과에 반영되었더라도 사실 정파적 이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습니다.국민들은 시민단체의 주장이 정당하면 어떤 정파가 이익을 보든지간에 그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시민운동이 어떤 비난과 공격을 받는 국면에 처했을 때 국민들은 제대로 평가해줬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사회운동이 무력화되고 퇴조했다는 데는 의견을 달리해요.

 

 

시민운동의 분화와 변화를 전망한다

 

하승창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탄핵이라는 이슈가 시민운동의 현상황과 앞으로의 발전방향성 및 가능성을 가려버린 측면은 있다고 생각합니다.‘초록국회운동’이나 여성단체의 여성후보지지운동은 탄핵무효운동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거든요. 탄핵안을 가결한 날 저는 국회가 시민운동의 과제를 15년 전으로 되돌려버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고, 그만큼 공감대도 큰 사안이었기 때문에 대중적 운동도 탄핵반대로 모여들어 총선에 영향력을 미쳤고 시민운동이 그런 성과를 낸 점은 분명히 있지요. 그러나 시민운동이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다기화된 흐름을 총선을 통해 제대로 실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운동이 스스로를 측정할 기회를 놓친 점도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노사모 같은 흐름이 가졌던 역동성이나 유권자의 시각에서 보면 시민운동이 사회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나 그로 인해 바뀐 정치지형은 시민운동에 변화의 압력을 분명히 가할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탄핵으로 시민운동이 업그레이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운동의 변화와 발전이라는 과제가 감추어진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변화된 정치지형에 조응하려면 시민운동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의회에 대한 견제방식이 달라질 것이고, 시민운동이 지향하는 가치를 의회를 통해 실현하고자 할 때는 지금까지와는 대단히 다른 양상의 운동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의회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참여형 흐름도 운동의 양태·과제·방식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기존의 시민운동이 이 점을 어떻게 포괄할 것인지, 혹은 다른 양식으로 진전시킬 것인지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 점은 특별히 논의도 안됐고, 또 이것이 기존 시민운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에 대한 답도 딱히 없는 상태예요. 운동이라는 것이 늘 사회에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거나 고정적인 입지를 갖는 것은 아니잖아요? 90년대에 정치적 변화를 겪은 시민운동도 다음 단계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지점에 와 있는데, 그러지 못하면 지금 발전하는 다른 양식의 운동들이 더 중요한 흐름이 될 수도 있어요. 이러한 고민이 중요해진 싯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석운 탄핵소추사태와 촛불집회 이후, 그리고 총선 결과 온건개혁세력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원내에 진입하면서 시민운동에도 여러가지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유럽식 ‘녹색당’으로의 발전전망을 암중모색하면서 추진한 초록국회운동이나 여성후보지지운동 등이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대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의 정치 참여나 개입 방법에서 진보정당 방식이 유력한 모델로 입증된 이상, 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 등 대안적 가치를 지향하는 흐름들이 자연스럽게 진보정당으로 모아질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안적 가치나 대안적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적극적인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을 계기로 의회내 각 정당이나 각 정치인 사이의 정책경쟁이 가속화될 것인바, 이를 시민운동의 영향력 확대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시민운동의 분화가 촉진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합니다. 또한 촛불시위 과정에서 자발적 대중참여문화, 즉 새로운 광장문화의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이를 꽃피우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기존의 인쇄매체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그 빈자리를 쌍방향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인터넷언론이 메우게 되면서 시민운동도 종전의 제도언론을 통한 가치전파 방식과는 다른 대중참여형, 쌍방향형 활동방식을 구체화하는 과제를 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정관용 탄핵상황처럼 시민운동이 정치전선의 한편에 설 경우, 그것이 시민운동의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시민운동이 손해를 입기도 한단 말이죠. 단적인 예로 김대중정부 시절에 ‘시민운동은 정권의 2중대다’라는 말이 잠깐 나오다가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이 말이 일상적 용어가 되어버린 듯해요. 이번에 탄핵사태를 거치면서는 ‘노무현정부, 열린우리당, 시민운동, 방송권력은 한통속이다’라고 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하승창 사무처장 말씀처럼 시민운동은 앞으로 가고 싶은데 탄핵이 시간을 되돌려놓은 점이 안타깝기는 하지만,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민운동의 기계적 중립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진전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이것을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로 떠안을 것인지……

하승창 시민사회가 새로운 정치주체로서 정치개혁의 전면에 나설 것을 선언한 ‘1000인 선언’(2003.9.8)을 할 때부터 기계적 중립성은 허구다라는 논의들이 있었어요. 시민운동은 사실 지금까지 자신의 정치적 경향과 지향을 제대로 드러내본 적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아왔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운동의 양태나 방식에서뿐만 아니라 지향해야 할 가치의 측면에서도 시민운동의 숙제가 있다고 봅니다.전에는 정치집단의 색깔들이 비슷비슷해서 기계적인 중립이라는 것이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민주노동당처럼 정당들이 자기정체성을 분명하게 찾아갈 때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시민운동이 스스로의 가치지향과 정책지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게 필요한 싯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어떠한 정책지향을 지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저는 현재의 조건에서 기존 정당들은 시민운동의 지향과는 맞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점을 시민운동이 분명히 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큰 숙제일 거예요.

김상희 지금까지는 절차적 민주주의도 완성되지 않았고, 정책정당도 없는 상황에서 시민단체가 준(準)정당의 역할을 해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국면에서의 행동이나 정책이 시민단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앞으로 제도정치권에서 많이 해소하면 시민사회 영역은 분명 자신의 가치에 맞는 정책지향을 드러낼 것이고, 그것과 관련해서 각 부문운동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는 백화점식 운동과 단체가 있어왔잖아요? 하지만 부문운동에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이 전개되고 진정한 분화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시민단체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겠지요.

박석운 시민단체의 탄핵무효운동을 열린우리당 지지라고 하는 것은 실제 사실과 안 맞거든요. 탄핵무효운동에는 크게 세 그룹 정도가 참여했어요. 한편으로는 좁은 의미의 시민운동·시민단체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운동 진영이 참여했어요. 민중운동 진영은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정책을 명백히 반대하는데 탄핵무효화 운동에는 동참했지요. 또하나는 노사모 내지 친(親)노무현 진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2중대라거나 열린우리당 2중대라고 얘기하는 것은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겁니다.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정부에 반대하는 그룹들이 투쟁에 참여한 것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시민운동 진영이나 단체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정당성의 한 표상으로서 기능해왔습니다. 얼마 안되는 인력으로 나름대로 대중과 언론의 신뢰를 받았던 이유는 다른 영역들이 워낙 지리멸렬한 상태에 있었고, 시민단체의 이야기가 실제로 정당했기 때문이죠. 보수정당 내의 일정한 변화와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은 결국 사회적 정당성의 분화현상을 낳고 시민운동 쪽의 변화를 촉진하는 요소가 될 거라고 봅니다.

정관용 ‘탄핵무효범국민행동’의 활동을 들여다보면 박위원장 말씀이 맞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특정 정당에 쏠린 측면이 있고, 또 이것이 반대세력 쪽에서 시민운동을 비판하도록 빌미를 준 것 또한 사실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봤을 때 아까 김대표가 말씀하신 시민운동의 부문운동화, 부문별 대중운동화가 시민운동의 과제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될 때 상층운동 중심의 시민운동은 점차 축소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김상희 탄핵국면에서 우리는 1보 후퇴한 것을 2보 전진시키기 위해 다들 힘을 내서 싸웠어요. 시민운동이 오해를 받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민주주의가 다시 진전을 이룰 경우 시민운동의 심화와 진전도 분명히 가능할 것이거든요. 한가지 추가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정상화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기존 시민운동도 일정부분 분화가 이루어져 제대로 된 정당참여운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적극적으로 정당원이 돼서 정당을 바로 서게끔 하고, 정당·시민사회·민중운동이 각각 제 영역을 찾아가면서 발전하는 구도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정치권의 재편과 더불어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재편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승창 어쨌든 ‘결과적으로’ 시민운동이 ‘열린우리당의 2중대’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것과 또 반대편이 그렇게 규정한 것에 대해서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또 애써 부정한다고 해서 반대입장의 사람들이 설득될 것 같지도 않아요.앞으로 시민운동은 ‘우리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현 상황을 극복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하지만 ‘다른 길’에 대한 실험들을 이번에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고, 기회를 놓쳤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부문운동을 더욱 심화·강화하는 과정에서도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겠고, 지역으로의 확장도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지역에서는 여전히 토호세력과의 정치적 기싸움이 강하죠. 시민운동으로서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입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도 역시 숙제로 남아 있어요. 거기에 지금같이 기존 시민운동에 포괄되지 않는 참여형 정치운동과 어떻게 접합하고 같이 움직일 것이냐는 과제들도 있어요. 이런 점에서 시민운동도 아주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연대 가능성

 

박석운 시민운동의 중립성이라는 용어는 언론이나 제도권 쪽에서 시민운동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측면이 있는데, 시민운동의 본래적 가치는 사회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데 있어요. 여기서 정치적 중립성은 부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의 과제로서 부문운동화가 잘 추진되어야 하지만, 대중운동화 문제에 대해서는 또다른 논의가 필요합니다. 대중운동 영역은 지역운동화하는 측면도 있지만, 기층 대중조직과의 제휴·연대·수렴의 과정과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어요. 민중운동 진영의 우선적 한계는 일반민주주의적인 과제에 대해 책임있게 복무하지 못한다는 점이지요. 또 시민운동의 우선적인 한계 내지 문제점은 이른바 기층대중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제대로 활성화해내지 못하는 것이죠.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키워드로 삼는다면 시민운동이 대중운동화의 과제를 이루어내는 것과 더불어 민중운동도 책임있는 사회운동으로 승화·발전할 접점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이 대중운동화하기 위해서는 정당 참여도 중요하지만 민중적 과제에 대해 열린 자세로 민중운동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행히 양자의 협력관계가 촉진되고 있는데, 두 진영의 신뢰가 파병반대운동과 탄핵무효운동을 통해서 축적되어가고 있으며, 공동투쟁을 통해 더욱 업그레이드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을 계기로 좀더 촉진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정관용 그럴까요?

박석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제로 얘기하는 겁니다.(웃음)

하승창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키워드로 삼아서 기층 대중조직과의 제휴, 연대해야 한다는 말씀은 1990년대 사회운동의 숙제로 늘 얘기되어온 것인데요. 저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연대라는 표현은 공통의 정치적 목표라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연대는 목표의 동질성에 근거했다기보다, 개별사안에 대한 일시적 제휴와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보는데, 민중운동은 그간 민주노동당과 같은 정당을 매개로 권력에 대한 정치적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시민운동은 그런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직된 부대로서의 노조나 농민조직 들과 일상적으로 제휴하고 연대해야 할 정치적 목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연대는 민중운동에 의해 주도된 측면이 강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경우에는 두 가지 점을 짚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시민운동이 현재의 정치세력들과는 다른 자신의 독자적 공간을 확보하느냐, 그러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경향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내느냐, 그에 따른 정치적 프로그램을 갖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연 이 정치적 경향이 민중운동이 지향하는 가치와 어떤 차이를 보일 것이냐에 따라 연대의 방식과 내용이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박석운 선생이 말씀하신 과제는 현재로서는 민중운동의 과제이고 시민운동은 과제로까지 올려놓고 있지는 못한 셈인데 시민운동이 어떤 발전경로를 걷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민중운동의 일반민주주주의적 과제에 대한 복무 문제나, 민주노동당이 시민운동의 가치나 과제에 대해 어떤 자기변화를 가져오느냐의 문제도 변수임엔 틀림없습니다. 어쨌든 당분간은 여전히 탄핵이나 파병문제처럼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동일한 과제로 여기는 사안별로 연대가 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대중운동화라는 측면에서도 시민운동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것이며, 기층조직인 노조와의 연대나 제휴에 대해서도 과거보다는 적극적인 모색을 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과제를 매개로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생태·인권·젠더 등의 이슈로 접근하려 할 것입니다. 시민운동이 대중운동화하는 데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 중의 하나는, 의외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개인’들의 자유로운 네트워크라는 상상이 시민운동의 대중운동화 전망을 더욱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뭐 이리로 가면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박석운 공통의 정치적 목표 추구라는 전제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연대가 가능하다는 견해에 저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사실 민중운동의 여러 부문간에도 정치적 목표나 입장이 상당히 다르고, 또 민주노동당에 대한 입장도 서로 다른 것이 현실입니다. 정치적 목표가 같으면 당연히 정당을 같이하게 되는 반면, 우리가 시민운동이나 민중운동 같은 사회운동을 한다는 것은 정치적 목표를 같이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운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가치판단을 같이한다면, 정당활동은 함께하기 어렵겠지만 사회운동 영역에서는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간 사회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언론 등에 의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사이에 과잉 경계선이 그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민주노총이나 전농 등의 대중조직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권력의 가혹한 탄압으로, 또 자신들의 당면한 과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 사회의 공익과 일반민주주의적 과제들에 대해 미처 힘을 쏟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반면에 시민운동단체들도 성립과정에서 노동자나 농민, 도시빈민 등 기층대중들의 참여나 네트워크 형성에서 성공적이지 못했거나 대중성 확보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양쪽 모두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대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NGO(비정부조직)의 개념에 노조나 농민조직이 당연히 포함되고, 각종 시민단체들이 이들과 함께 연대하여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진보정당이 원내로 진입하면서 정치영역이 정상화되는 길목에 서 있는 이 싯점에서, 사회운동 영역에서의 정상화는 앞으로 자연스런 현상이 될 것이고,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연대는 더욱 강화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안별 연대로부터 시작하여 연대의 양과 질이 더욱 고도화되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정치권, 사회운동을 위하여

 

정관용 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이 시민운동에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짤막하게 얘기했으면 좋겠는데요. 아까 김상희 대표께서 기존의 시민운동이 준정당 역할을 했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준정당이 아닌 정당으로 들어갔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시민운동의 정치적 위상이나 역할에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김상희 민주노동당의 진출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다수의석 차지라는 정치환경 변화로 인해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시키느라 노력하던 부분들은 제도정치권에서 일부 해소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남는 부분으로는 의정활동을 감시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주창하는 것이 있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시민사회가 굉장히 취약했던, 한발 앞서 대안사회를 제시하고 활동하는 운동이 활성화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환경운동이나 여러 운동의 내용이 지금과 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승창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은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한나라당 같은 경우 이미 정책기능 강화를 공언했고, 열린우리당도 그런 방향이라고 봅니다. 민주노동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정책의 구체성이나 적합성, 그리고 의제 선점을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민운동의 기능이나 역할은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 해도 시민운동의 정책에 대한 견해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다만 접근방식이나 조건이 달라질 겁니다. 지금까지 시민운동이 정책이나 방향 제시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실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정책을 심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거죠. 그래서 전처럼 여러 정책대안을 다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요하고 선택된 의제를 중심으로 더 구체적이고 심화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상희 정책 제안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이 직접 실천하는 운동, 대중들을 변화시켜나가는 운동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정치의 영역이 현실에 근거해서 다양한 갈등을 제도적으로 풀어나가는 기능을 한다면 사회운동은 제도를 실질화하고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사회구성원이 스스로 해결하게끔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이 더 근본적이고 더 긴 호흡으로 미래사회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우리 삶을 성찰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집단과 집단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대안적 모습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함께 찾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대안적 삶을 실현하는 다양한 실천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된 의식, 변화된 행동양식이 생겨나야 우리 사회에 진보적 의제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고 이를 통해 사회가 성숙해갈 것입니다.이는 이미 환경운동·여성운동·인권운동·지역운동·공동체운동·평화운동 등에서 시작되고 있고 앞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석운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정권이 개혁코드로 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민주노동당과 협력하게 될 것이어서 민주주의 진전에 중요한 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개혁에 불철저하면 아마 머잖아 지리멸렬해질 거라는 우려도 있어요. 총선 이후 열리는 새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정부가 총체적 개혁을 수행할 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과도기적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해주면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고, 바로 그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이 바로 이번 총선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집시법 개정, 국민소환제 채택, 파병철회, 그 다음에 언론개혁, 비정규직 권리 보호, 국가보안법 폐지, 공무원·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노동기본권 보장 등등 당장 모두가 공감하는 일반민주주의적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관료들의 힘이 워낙 팽창해 있어서 시간이 경과하면 노무현정부나 열린우리당이 관료들의 포로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초기에 몰아쳐서 일반민주주의적 개혁을 수행하는 데 촛점을 맞춰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정관용 지금 말씀하신 것에 대해 다들 동의하신다고 봅니다. 오늘 좌담에서 매우 중요한 논점으로 떠올랐는데도 워낙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다보니까 중심의제로 삼지 못하고 견해차만 보이며 넘어간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관계, 그리고 정치운동과 시민운동 및 민중운동의 관계입니다. 그 각각에 대한 정확한 개념규정부터 시작해서 변화의 방법론과 방향성 그리고 전망에서 세 분의 생각이 조금씩 다른데요. 오늘 그 부분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창비에서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관계, 정치운동·시민운동·민중운동의 위상과 역할을 이론적 논의부터 시작해서 계속 천착해가기 바란다는 말씀을 덧붙이면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장시간 토론해주신 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