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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청계천 복원과 개발독재의 망령
박명도 朴明道
문화유산연구소장. 현재 영남대‘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의 상임고문으로 청계천 지역의 민중생활사에 대한 공동조사연구를 하고 있음.
지금 서울 도심에서는 청계천을 되살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고가도로와 복개도로를 제거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친환경적 시냇물로 바꾸겠다고 한다. 이 복원공사가 끝나면 필연적으로 주변지역 개발과 서울 도심의 재정비사업도 대규모로 진행될 것이다. 이는 규모가 매우 클 뿐 아니라 수많은 민생이 달린 일이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충분한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기본구상만 내놓고 착수부터 하고 보자는 성급함을 보였다. 추진과정 또한 생존권 등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며 진행되었던 서슬 퍼런 개발독재시대의 밀어붙이기식 공사와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많은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은 단순히 개천의 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청계천 주변지역에 대한 재개발지침이며, 나아가 서울시 전체의 구조재편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업의 단초이다. 시 당국은 마땅히 여러 의견을 신중하게 살펴 가장 합리적인 방향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청계천 복원을 둘러싼 논란
그동안 청계천 복원과 관련한 논의에는 몇번의 기복이 있었다. 그 시작은 환경과 삶의 질에 관한 것이었다. 이명박 시장이 역사복원, 환경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때만 해도,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날 세운 감시를 해오던 사람들까지도 대체로 큰 이의가 없어 보였다. 모처럼 위정자와 시민이 뜻을 같이하여 좋은 성과를 이룰 것이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 있었다. 교통 흐름에 대한 세밀한 진단도 없이 밀어붙인다는 우려는 가벼운 것이었다. 인왕산 백운동천과 북악산 삼청동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하수관로로 흘려버리고, 중랑천에서 정수한 물을 끌어들여 흐르게 한다는 다소 반자연적인 구상이나, 여기에 들 막대한 예산문제까지도 가벼운 것이었다. 또 이제 그런 것쯤은 경제적·기술적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자만심까지 은근히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발독재의 잔재로 도시 한가운데에 멍울로 자리잡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제거하고 대신 맑은 시냇물이 흐르게 한다는 계획은 분명 그러한 우려를 넘어설 만큼 매력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도 졸속추진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공사가 시작되자 개발독재시대의 밀어붙이기식 사업추진이 문제를 일으켰다. 서울시는 작년 2월 ‘청계천 복원 기본구상’을 내놓은 뒤 현 시장 임기가 만료되는 2005년 9월 전까지 2년 6개월 만에 복원을 끝낼 것을 목표로 일면 설계, 일면 공사를 강행했다. 이러다보니 다방면에 걸친 연구·검토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각계각층의 여론과 여러 시민단체의 주장은 물론, 서울시가 만든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등 관련단체의 건의와 요구마저 무시한 채 공사를 밀어붙였고, 그 결과 서울시장과 시민 간에는 밀월이 끝나고 틈이 벌어지고 말았다. 청계천과 그 주변을 현대식 경관과 다리들의 경연장처럼 보이게 만든 투시도는 그래도 논의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나, 막무가내로 문화재를 헐어내고 덮어버리려 한 행태는 여론의 따가운 질책과 저항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편, 청계천 복원과 개발이 이명박 시장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마련되었으며, 그래서 문제가 될 많은 사안들을 가리고 임기 내 완공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청계천 주변의 개발에 대해 아직 종합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시 당국의 해명조차, 예견되는 거센 저항을 막바지에 시간이 없다며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이 이 사업을 발판으로 다음번 대선에 나서려 한다고도 생각한다. 강력한 추진력을 보임으로써 박정희식 개발에 향수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런 의혹에 도사리고 있는 또다른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문제해결을 위한 합의에 이르려는 노력 대신 정치적인 대결국면으로 치우치다보면, 정치단체이건 시민단체이건 정치적 입장과 소득을 저울질하기 바쁜 처지가 되고 결국 현안의 합리적 처리는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청계천 복원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순간, 시민이 향유해야 할 청계천, 청계천 사람들의 삶, 그리고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청계천의 독자적 기능 등이 위협받고 사라지게 된다. 문화재 처리를 둘러싼 최근의 공방에서 알 수 있듯이 청계천의 하안(河岸)퇴적을 관찰할 수 있는 지금이 서울 중심부의 선사유적을 조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그런데도 드러난 문제에 급급해 차분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건 아쉬울 뿐이다. 교통·치수 문제 등도 서울시 전체와 연계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복원을 급히 서두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장마철의 수해 때문에 서두른다는 핑계라면 졸렬하다. 일단 일을 저질러놓고 이제 어쩔 것이냐 하고 버티면 통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지 않은가.
거대개발의 수혜자와 피해자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던 문화재 보호문제는 수표교(水標橋)의 제자리 복원이라는 서울시의 결정으로 일단 가닥을 잡은 것 같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 및 재개발문제는 규모가 크고 걸려 있는 이해관계도 많으므로 결국 다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청계천에 뿌리를 둔 수많은 ‘청계천 사람들’의 생존문제는 논쟁의 중심주제가 되지 않고 있고, 청계천 주변지역이 담당하고 있는 여러 중요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본말이 뒤바뀐 느낌이다. 청계천 사람들이 당사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군사작전처럼 청계천을 덮어버린 후 허가도 날 수 없는 흉물스러운 거대 건축물을 세우고 그곳 사람들을 쓰레기차로 성남 등지로 실어내던 과거 개발독재시대를 기억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정치적 공방에 가까운 허망한 논리의 대결이 벌어지고 한편에서는 공사가 강행되는 동안, 현장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는 개발의 망령이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개발은 항상 그들의 희생 위에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경부고속도로를 보자. 이 고속도로 건설에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정치적 부담이나 절대권력의 자의성이 개입되지 않고, 최소 몇년이라도 여유를 가졌더라면 오늘날 우리 앞에는 아주 다른 결과가 놓여 있을 것이다. 더 합리적인 노선과 더 적합한 국토의 공간구도를 설정할 수 있었을 것이며, 지역분단의 정치적 병폐, 졸속추진으로 인한 막대한 유지보수와 선형 변경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단순한 물류통로의 확보에 그치지 않고 온 국토의 기능을 단숨에 재단한 또하나의 쿠데타였다. 아직까지도 온 국민이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이를 계획하고 주도한 위정자는 지금도 위대한 경제개발자로 남아 있다.
그 시기의 서울시장들도 그러했다. 바리깡으로 밀듯 길을 내고, 청계천을 덮어버리고, 세운상가와 와우아파트를 짓고,역사와 문화를 잘라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짓밟고…… 그들은 절대자였다. 서울의 자동차 통행량이 늘어나자 1969년에 전차 철로를 아스팔트로 덮어버렸다. 당시로서는 큰 예산을 들인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그러나 바로 1년 뒤 지하철 1호선 공사를 위해 도로를 다시 파헤쳤다.1974년에 지하철이 개통되어서야 종로 거리도 깨끗이 단장되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부터 지하상가와 전력공동구 건설을 위해 같은 자리를 파헤쳤다 덮었다 하는 일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예산이 허무하게 날아갔다. 종로거리는 거의 10년 가까이 교통지옥이었고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마구 파헤쳐진 거리를 다녀야 했다. 지금 같으면 관련자들이 형사처벌까지도 각오해야 할 일이지만, 당시엔 그런 비슷한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러한 거대개발이 군사정권 시절에 집중되었던 것은, 그들이 정치적 명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총력건설은 군사정권 개발독재의 상징화이며 정치적 우군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명분만도 아니었다. 한강다리 건설사업 역시 대부분 이 시기에 집중되었는데, 이는 서울시장들이 경쟁적으로 초석(礎石)에 자기 이름을 새긴 다리 하나씩은 놓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급하지 않은데도 미리 다리를 놓는 사례도 많았다.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지나친 방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던 것 역시 개발독재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최근의 개발정책도 개발독재시대의 맹목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석탄산업이 퇴조하자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탄광지대에 관광단지와 내국인 도박장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 사업계획에 정작 광부와 주민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들어 있지 않았다. 관광단지, 특히 도박장이 수치상으로는 지역경제의 성장을 이루었겠지만, 그 열매는 광부를 비롯한 지역주민이 아니라 외지 자본에게 돌아갔을 뿐이다. 지역개발에서 그 지역주민들이 소외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의 지역개발은 많은 부분 위정자의 정치적 명분과 외지 자본을 위해 이루어져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청계천 사람, 청계천 지역
청계천 복원사업이 이루어지고 나면 청계천 주변지역 역시 정책적이건 자연발생적이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즉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신시가지로 바뀌기 십상이다. 현재 서울시 관계자는 주변지역 개발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청계천 홍보관에 있는 복원계획도의 화려함과 주변지역의 초라함이 얼마나 걸맞지 않은지는 누구라도 금방 알아챌 것이다. 필자는 솔직히 난데없는 청계천 복원사업이 실은 청계천 지역의 전면적 개편, 나아가 서울의 지역재편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겨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해관계가 얽힌 큰일에서 합리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적과 아군을 가르며 대결구도에서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는 것이 과거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청계천 지역은 표면상의 남루함으로 그 속을 가늠할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며, 현재 한국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경시할 수도 없는 곳이다. 청계천 사람들은 빈곤탈출과 신분상승의 꿈을 위해 그 늪에 투신한 사람들이며, 그 꿈의 성취를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다. 또 그들은 꿈을 위해 새로 투신하는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키워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청계천 지역의 산업은 섬유·전자 등 한국 기간산업의 모태이며, 지금도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실험실이며, 거대기업이 할 수 없는 기능을 대신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 특히 길도 찾을 수 없는 골목 속에 한평 남짓에서 커봐야 20여평 되는 많은 점포와 공장으로 이루어진 청계천 지역의 복잡한 체계가 유지하고 있는 고객관계에서의 효율성은 거의 불가사의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이는 50년 가까이 쌓아온 경험·기술·기질에 고객의 신뢰가 더하여 이루어진 독특한 관계틀의 성과라 하겠다. 이 지역은 하천바닥의 군복 염색소, 천변의 판잣집 상점과 주거지가 복개공사로 사라진 후에 몇차례의 변신을 거쳐 오늘날 의류·섬유 제품의 생산·판매 중심지로, 전자·금속 공업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낮은 수준의 자동차 공업지대, 지식의 교역소인 헌책방거리 등 업종별 단지들이 부침을 계속해왔고 지금도 변화의 와중에 있다. 이 변화는 외부의 조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유기체적 변신의 결과였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꿈을 일구던 1세대가 대부분 은퇴하고 지금은 2세대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상점과 공장을 막론하고 가족간의 세습은 몇 되지 않고, 점원·공장장에게로 이어지는 도제(徒弟)세습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1세대 업주들은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자식들도 최고학부까지 교육시켜 사회에 진출시킨만큼, 사업은 믿을 만하고 함께 고생한 직원에게 물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행은 주인과 종업원의 관계를 원활히 하고 일의 능률을 높이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해왔다.1960년대 이후에 새로운 업종을 가지고 이곳에 진출한 1.5세대 업주들도 마찬가지이다.60세를 넘겨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한 업주들은 머잖아 직원에게 업소를 인계하고 은퇴할 생각을 한다. 공장장이나 점포 책임자들도 이를 알고 미리 준비를 한다.
청계천은 새로운 기술을 체득하고 발전시키는 온상이다. 청계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교육기관 등 공공씨스템의 손이 닿지 않는, 그러나 현실적으로 필요한 소소한 기술들을 스스로 궁리하고 습득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해외의 첨단기술까지도 스스로 자료를 찾아 소화해내고, 대학교수나 전문가에게 물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왔다. 이렇게 습득한 기술은 도제식 노하우 전승으로 이어졌다. 대기업으로서는 경제성이 없고, 조직의 경직성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소한 기술들의 상호연계와 집약은, 마치 작은 컴퓨터 수백개를 병렬해 슈퍼컴퓨터를 만들 때처럼 놀랄 만한 결과를 이룩하기도 한다. 그래서 청계천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그중 전자산업 같은 것은 대기업에 의해 세계적 산업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청계천 공업지역의 기능은 현재의 조건과 체제에서 발휘될 수 있는 것으로, 한번 깨져버리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형화·전문화는 청계천 지역산업의 큰 특징이다. 이를 바탕으로 상점이나 공장의 전문화·분업화가 유지되고 있다. 청계천 사람들은 대개 처음 취업하거나 개업한 업종을 끝까지 유지한다. 이를테면 지금 어린이 신발을 만들어 공급하는 사람, 플라스틱 지퍼를 만들거나 파는 사람, 베어링을 재생하는 사람은 거의 수십년 동안 그 일만 해온 사람이다. 청계천변을 따라 무수히 들어서 있는 공구상은 겉으로는 모두 비슷해 보여도 각각 세밀한 전문분야로 갈라진다. 청계천 2〜4가에는 건설·설비·전기 공구상이 각각 무리를 짓고 있으며, 목공구 종류는 8가에 몰려 있다. 이들은 분야별로 또 세부 전문종목으로 나뉘어서 그들만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세분화되면 고객이 필요한 것을 찾기 불편할 것 같지만, 공구상끼리는 손님이 필요한 공구를 취급하는 상점을 알려주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고 한다.
청계천 지역산업이 독점이 불가능한 체제이고, 소규모 상점이나 공장이 많은 것은 그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업체의 규모가 작으면 경기 기복이 심해도 비용이 절약되어 살아남기 쉽다. 또 전문분야의 기술만 익히고 개발하면 되므로 전문성이 높아진다. 전문분야가 아닌 일이나 생산능력을 넘어서는 일은 그때그때 손이 비어 있는 다른 공장에 맡기면 된다. 청계천 지역에서 자생하는 지역협력체계에는 거대자본이 진출하여 지배력을 행사할 여지가 없으며, 단지 정부 주도의 개발을 통해 이 체계가 깨어질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이명박 시장의 선택
청계천 복원과 주변지역의 개발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 문제들은 서울시 당국과 여러 분야의 전문가·단체가 협력해 풀어야 할 것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청계천 사람들과 지역산업에 대한 대책이 될 것이다.업종별로 좋은 환경을 갖춘 새 단지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대부분의 영세업체는 비싼 입주금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입주를 포기할 것이다. 이런 영세업체들이 없으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룩한 이 지역의 유기체적 기능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 기술 벤처와 디자인의 온상 역할과 함께 그들의 꿈도 날아가버릴 것이다. 청계천 사람들과 지역산업에 대한 철저한 대책이 없는 무리한 개발은 결국 회복할 수 없는 사회적 손실을 불러올 것이다.
청계천 복원과 이어지는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사실 처음부터 명확했다. 서울시장은 지금이라도 무리한 사업추진방식을 거두고, 시민과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정치적 입지 확보의 바른 길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복원된 청계천이 개인의 기념비적 업적이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기대가 클수록 청계천은 정상적인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역사가 숨쉬는 자연스러운 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또 어렵더라도, 현재 이 지역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과 지역 구성원의 삶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먼저 하고 난 뒤에 지역개발을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시장이 과거 지향의 쉬운 길을 버리고 미래 지향의 힘든 길을 택함으로써 발전하는 역사, 열려 있는 시민정신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