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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준태 金準泰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1969년 『시인』지로 등단. 시집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 『칼과 흙』 『꽃이, 이제 地上과 하늘을』 『지평선에 서서』 등이 있음. kjt487@hanmail.net
형제
초등학교 1,2학년 애들이려나
광주시 연제동 연꽃마을 목욕탕─
키가 큰 여덟살쯤의 형이란 녀석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여섯살쯤 아우를
때밀이용 베드 위에 벌러덩 눕혀놓고서
엉덩이, 어깨, 발바닥, 배, 사타구니 구석까지
손을 넣어 마치 그의 어미처럼 닦아주고 있었다
불알 두 쪽도 예쁘게 반짝반짝 닦아주는 것이었다
그게 보기에도 영 좋아 오래도록 바라보던 나는
“형제여! 늙어 죽는 날까지 서로 그렇게 살아라!”
중얼거려주다가 갑자기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호박
타령조로
굴러라 호박 굴러라 호박!
흙투성이면 어떠랴 못생긴 얼굴이면 또 어떠랴
어이 어이 상사디여 청산을 넘고 넘어 상사디여
굴러라 호박 굴러라 호박!
데굴데굴 굴러라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데굴데굴 데구르르 데굴데굴 데구르르르……
굴러라 호박 굴러라 호박!
놀부놈 말뚝을 박은들 노오란 씨앗 퍼뜨려
둥글둥글 예쁜 새끼들을 주렁주렁 퍼질러놓는 호박!
굴러라 호박 굴러라 호박!
암 그래야지 암 그러면 그래야지
철조망에 부딪힌들 노오란 씨앗들 더욱 퍼뜨려
참말로 잘난 새끼들을 삼천리 이 강산에 줄레줄레 퍼질러놓는 호박!
굴러라 호박 굴러라 호박!
꼭지가 핑 돌도록 굴러라 호박!
님이 울면 님과 함께 울고 님이 뿌리치면
님의 하이얀 두루마기 끝자락 잡고서 울고
굴러라 호박 굴러라 호박!
흙투성이면 어떠랴 못생긴 얼굴이면 또 어떠랴
어이 어이 상사디여 청산을 넘고 넘어 상사디여
아흐 아흐 굴러라 호박 굴러라 호박!
꼭지가 핑 돌도록 배꼽이 빙그르르 돌도록
굴러라 호박 굴러라 우리들 서러운 님아!
白頭여, 통일의 빛나는 눈동자여1
白頭여 우리들 한 민족의
첫사랑이여 빛나는 눈동자여
그래, 결코 잠들 수 없는 세월이었다
옹달샘 물도 맑게맑게 넘치던 이땅 삼천리 반도─
지난 연대는 분열과 분단, 증오와 배반의 세월이었다
모질고 모진 목숨들 쑥구렁에 처박힌 망각의 세월이었다
아아 피 흐름의 세월, 밤마다 몰래 숨어서 울지 않고는
가슴 저려 살 수 없었던 소리없는 통곡의 세월이었다
白頭여 우리들 한 민족의
첫사랑이여 빛나는 눈동자여
한반도 땅끝 동백꽃 피는 마을에서도 너를 보았다
할머니의 베적삼 등에 업혀 울던 시절에도 나는 너를 보았다
전쟁과 배고픔, 무정한 세월의 저편 할머니 쭈그러진 젖꼭지를 빨면서도
나는 너의 눈동자가 어느날 갑자기 피에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펄럭이는 깃발─너를 보았다
白頭여 우리들 한 민족의
첫사랑이여 빛나는 눈동자여
가슴에 匕首를 품은 듯이
가슴속에 깊숙이 銀粧刀를 품은 듯이
우리들 너의 큰 울음 품고 살아왔나니
그래,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세월이었다
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도 한결같았던 삼천리 반도─
할머니의 쭈그러진 젖꼭지를 빨면서도 나는 싸우러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백두산으로 지리산으로 두만강으로 북만주 고구려 벌판으로 멀리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의 흰 옷자락과 뒷모습, 그림자를 차마 잊을 수 없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아아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청춘의 노래!
白頭여 우리들 한 민족의
첫사랑이여 빛나는 눈동자여
그래, 그러나 우리는 예까지 달려왔다
한 민족 한 핏줄 한 겨레로 예까지 하나되어 솟구쳐왔다
분열과 분단 그 시뻘건 어둠의 살코기 속에서 기생하는 주먹들이
절뚝이며 찢겨지며 방황하는 나와 형제들의 목을 졸라맸을 때
우리는 남의 나라 남의 밥상 위에다만 운명을 맡기는 바보였던가
우리는 우리들 속의 또다른 무서운 바보들에게 운명을 맡기는
그런 바보였던가 모리배였던가 반역사, 반민족의 아들딸인가
白頭여 우리들 한 민족의
첫사랑이여 빛나는 눈동자여
그래, 예까지 달려온 우리
지금은 예쁜 아이들 떡덩어리처럼 낳는 어머니의 나라로 가자
우리 지금은 논밭에 쟁기질을 잘도 하는 아버지의 나라로 가자
우리 지금은 할아버지가 오백년 천년 나무들을 키우는 나라로 가자
우리 지금은 할머니가 손자들을 앞세워 어깨춤 추는 나라로 가자
우리 지금은 누이들이 강강수월래 춤추는 해와 달의 나라로 가자
白頭여 우리들 한 민족의
첫사랑이여 빛나는 눈동자여
천만년을 넘어서서 오늘에도 빛나는 눈동자여
우리의 어머니는 하나다 우리의 아버지는 하나다
우리의 운명과 희망, 우리의 가는 길도 하나뿐이다
호미와 괭이, 삽과 쟁기로 일굴 흙과 땅은 오직 통일의 논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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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8·15통일대축전’ 행사기간 중 평양 고려호텔에서 가진 남북 문인들 시낭송에서 필자가 직접 낭송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