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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중국동포, 한국에서 겨울나기

 

박천응 朴天應

목사.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회장. 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 대표. shimter@chollian.net

 

 

 

1. 북방의 새들은 겨울이 되면 국경을 넘어 먹을 것을 찾아 한국으로 날아온다. 이렇게 철새처럼 국경을 넘어 이주하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주노동자라 한다. 중국으로 떠나간 동포들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다시 한국 땅을 찾고 있으나 강제추방과 인권문제 등으로 시달리며 한국에서 비참한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중국동포(조선족)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중국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근로자들의 한달 임금은 작은 도시의 경우 600위안(한화 약 9만원), 대도시의 경우 1000위안(한화 약 15만원) 정도이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은 한국에서 잘만 하면 한달 일해서 일년치를 벌 수 있다. 이러한 소문이 중국동포들에게는 코리안 드림이 되어 한국행을 서두르게 한다. 중국동포가 한국으로 다시 몰리기 시작한 것은 중국으로의 이주 이후 130년 만의 일이다. 한국인이 중국에 들어가 정착한 것은 1870년대이다. 한반도가 지독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동북 지방의 한국인들이 중국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해서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만주로 대거 이주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사회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중국에 정착하여 살던 이들이 한국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미 1993〜96년 사이 4년간 국제결혼 형식으로 한국에 시집온 조선족이 2만 1천여명에 달했다. 현재 연변 조선족자치주 재정의 1/3은 한국의 조선족들이 보내온 송금액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중국동포들 사이에서 한국 이주에 대한 바람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02년 6월 현재 중국동포의 국내 체류자 수는 대략 12만여명으로 추정되며 그 대부분은 건설 및 써비스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전체 외국인노동자의 77% 정도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동포 역시 수도권에 8〜9만명이 체류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2002년 11월 이후 40세 이상 국내 연고 중국동포의 자유왕래 및 제한적 취업 허용조치로 한국을 찾는 중국동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2. 그러나 아직 중국동포들의 한국행 문이 좁기 때문에 입국 초기부터 돈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중국동포들은 ‘이주우선권’을 획득하기 위해 브로커를 통해서 평균 8만위안(한화 약 1200만원)의 급행료를 지불한다. 중국에서는 개인의 은행대출이 어렵기 때문에 급행료를 마련하기 위해 사채를 빌리게 되는데 이자만 연 30〜50%까지 된다. 이러한 한국행 열기는 중국동포를 겨냥한 사기행각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996〜97년 사이에 걸쳐 고발된 ‘조선족 사기사건’에서 조선족 피해건수 1247건, 피해자수 1700명, 피해총액 500억원, 한가구당 피해액이 400만원에 이르렀다. 400만원의 금액은 중국의 노동자 1인이 4년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할 거금이다. 일이 이쯤 되자 중국동포 사회에서는 반한감정이 극도에 이르게 되었고, 급기야 중국 내 ‘한국인 유괴사건’ 등이 빈번히 일어나게 되었다. 중국에서 보일러업을 하는 한 한국인 기업가는 “지금 중국에서 기업을 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는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중국동포들에게 역으로 당하고 있는 실정”이며 “한국에서 중국동포들에게 인간적인 대접만 해주었어도 지금과 같이 동포사회가 험악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현지 사정을 전해준다.

 

정부의 불법체류자 대책에 맞서 시위하는 중국동포들(2002. 4. 10)

정부의 불법체류자 대책에 맞서 시위하는 중국동포들(2002. 4. 10)

 

중국동포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식당과 공사현장 등에서 일하지만 임금체불, 산재 등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식당에서 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중국동포 이금옥씨는 지난 1999년 11월에 입국하였다. ‘돈벌어 중국에 돌아가면 식당을 차리겠다’는 생각에 중국음식점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는 식당을 차리려면 적금을 들어야 한다며 필요한 생활비 이외의 월급을 대신 적립시켜준다는 사장의 말을 믿었다. 1년 동안의 적립금이 1천만원이 넘어섰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장은 식당문을 닫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배신감에 치를 떨던 이금옥씨는 식당 사장을 찾아다니느라 일도 못하고 3개월을 길거리에 쏟아부어야 했다. 그는 “그동안의 일을 생각하면 배신감과 화병이 생겨 소화가 제대로 안된다”며 힘든 노동으로 굳어진 두꺼운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저는 몸이 성하니 다행이지요. 어떤 사람은 일하다가 손 잘리고도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앞으로 일도 못할 지경이니 어쩌면 좋아요” 하며 애써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중국동포 이춘호씨는 지난 4월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하였으나 2천만원 이하의 작은 공사라 법적으로 산재보상도 받을 길이 없어 지금도 영안실에 시신으로 누워 있다. 이와 같이 돈벌러 왔다가 시체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동포에겐 불법체류자로 강제추방당하는 경우가 ‘가장 재수없는 일’이다. 그날로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만다.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것이 빚이다. 국내에서 1년 6개월 이상은 죽어라 일해야 겨우 빚을 갚게 되는데, 일하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나면 빚을 갚는 기간도 그만큼 늘어난다.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불법체류자로 강제추방된 중국동포들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빚쟁이에게 집을 빼앗기고 길거리나 셋방으로 내몰리게 된다. 강제추방된 사람들은 술로 허송세월하다가 폐인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더이상 빚을 갚을 길이 없자 다시 돈을 빌려 한국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빚 갚는 데만 대략 3〜4년이 소요된다. 빚 갚는 데 세월을 다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의 체류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의 체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예상하지 못하던 가족문제, 한국에서의 일탈생활 등으로 가정해체의 쓰라린 경험을 하기도 한다. 돈벌어 행복하게 가족과 살자던 꿈이 산산이 부서지고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중국동포들이 한국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부분은 인권문제이다. 한 중국동포 부부는 “한국사람들은 우리를 마치 하인 부리듯 한다”며 “돈 때문에 일한다고 해도 인간적인 대우는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먹였다. 남편은 “밀린 임금 150만원을 받으러 회사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다음에 와’ 하며 월급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먹을 쌀값도 없어서 ‘일을 시켰으면 월급을 줘야 하는 것 아니요’ 하며 월급을 달라고 하니까, 갑자기 사장이 화를 내며 제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제 아내가 ‘사람을 왜 때리느냐’고 하자 이번에는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는 밖으로 끌고 나갔어요. 제가 달려들어 사장을 말렸죠. 그러자 이번에는 사장 동생 되는 사람이 달려와 ‘이게 여기가 어디라고 대들어!’ 하며 가구 만드는 쇠파이프로 저를 두들겨 패더군요. 세상에 이렇게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말 좀 해 보세요!”라고 증언을 하였다. 결국 이들 부부는 월급은 고사하고 맞아죽지 않으려고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던 이수정씨는 한국인 동료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였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자 한국인 남자는 정색을 하며 발뺌을 하였고, 그녀는 오히려 불법체류자로 신고를 당하고 말았다. 경찰이 강제 출국시키려는 낌새를 알고 그녀는 경찰서에서 도망나오고 말았다. 이렇듯 중국동포들은 억울함을 당하고도 보호도 제대로 못 받고, 신고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중국동포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강제출국조치’이다. 그래서 많은 중국동포들은 속으로 분을 삭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억울한 일을 알게 된 중국의 가족들은 중국에서 반한감정을 표시하며 행동으로 보복을 하기도 한다.

 

3. 한국에 와서 성실하게 일을 하여 돈벌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중국동포가 있다. 강성만씨의 경우 한국에 올 때 빌린 돈을 갚고 2천만원 정도 벌어 가기까지 4년이 걸렸는데 이 경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두말없이 “아파트 하나 장만해야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을 소요한다. 중국동포의 코리안 드림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집 장만하기, 자식 공부시키기, 남는 돈으로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기 등이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이 한국에서 돈벌어 중국으로 돌아가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요원하기만 하다. “저같이 돈을 번 사람이 전체의 10% 정도나 될까요?”라는 강성만씨의 말은 그만큼 한국에서 돈벌기가 정말 어렵다는 뜻이다.

이미 한국에서 돈을 벌어 중국에 돌아간 사람이나 동포사회를 지키며 중국에 남아 있던 사람이나 중국동포의 이주는 지금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돌아간 중국동포들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번 돈으로 도심에다 아파트를 마련하여 생활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일자리를 갖기가 쉽지 않다. 한달에 한화 10〜20만원을 번다고 하여도 한국에서 벌던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되돌아간 중국동포들의 일부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허송세월을 하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쉽게 다시 한국을 찾는다. 중국의 개방화 정책과 코리안 드림을 옆에서 지켜본 ‘남아 있던 중국동포들’ 역시 그 지역에 살기보다는 도심지로 이주하여 생활을 한다. 그래서 중국동포 사회에는 처녀가 점차 줄어들어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이 늘어나고 있고,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소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중국동포의 겨울이다.

한국의 겨울날씨가 차가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중국동포들이 한국을 따스한 조국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 동포는 재외동포법에서 동포범주에서 제외되어 외국인 취급을 받으며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난 1998년 제정된 차별적인 재외동포법이 2003년 말까지만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헌법불일치 판정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외동포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중국동포를 ‘단순노무인력’의 하나로만 보려는 차별적 시각이 아직까지도 지배적이다. 중국동포들은 “우리는 동포도 아니다. 조국이라고 찾아왔는데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나. 일만 시키고 노예처럼 대한다”며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중국동포들이 일하는 지금의 한국 겨울은 너무도 춥다. 오늘도 중국동포는 빚 독촉에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며 코리안 드림을 연장해가고 있다. 한국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중국동포에게 좀더 따스함으로 웃음꽃이 피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