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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나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박정희 문제

최상천 『알몸 박정희』, 사람나라 2001

 

 

전인권 全寅權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상근연구원 ikchun@chollian.net

 

 

박정희 논쟁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박정희에 대한 견해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기준이 된 지 오래다. 일반 대중들은 자신들의 삶이 어려울 때마다 박정희 같은 인물을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쉽사리 한다. 이같은 현상은 상당기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집권한 18년이란 기간이, 성장과 폭력이 동시에 공존한,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와도 같은 기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중요성과 달리 박정희는 학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박정희는 주로 호기심에 가득한 저널리스트들의 관심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최상천(崔相天) 교수의 『알몸 박정희』는 그 의미가 크다. 또 저자가 “나는 알몸 박정희를 보았다”거나 “천기를 누설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3면)고 하니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다분히 정신분석학적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다. 박정희의 개인사에 촛점을 맞추면서 끊임없이 그의 정신을 해석하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박정희는 어머니의 집요한 낙태 시도로 태내에서 끊임없는 폭력을 당했다. 그리하여 박정희와 어머니 사이에는 ‘혈연적 유대’는 있었으나 ‘심리적 적대감’이 그것을 압도했다. 결국, 그는 어머니를 떠나고 싶어한다.

첫번째 탈출은 모태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이른바 ‘출생전쟁’이었다. 박정희는 어머니의 낙태 시도에 반하여 출생에 성공한다. 첫번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두번째 탈출은 어머니의 낙방 기원에도 불구하고 대구사범에 합격한 것이며, 이는 가난에 찌든 집과 고향으로부터의 떠남과 모성에 대한 배반으로 이해된다. 세번째 탈출은 교사라는 ‘명예’로운 직업을 버리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일본군이 된 ‘조국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이런 떠남과 탈출을 강조하는 저자의 입장은 필자가 박정희를 ‘심리적 고아’라고 불렀던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박정희는 청년기에 이르는 사회화 과정에서 어머니로부터 심리적 안정을 획득하지 못해 자신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유기불안(遺棄不安)을 겪었으며, 권위적인 가정환경으로 인해 아버지 또는 셋째형 상희와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심리적으로 볼 때 고아였고, 그같은 고아상태를 결단의 형태로 전환해, 군대·국가·민족과 같은 공적 세계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경향을 보였다. 바로 이것이 박정희가 추구했던 국가주의의 심리적 측면이다.

114-454모든 국가주의는 그 안에 무한폭력의 논리를 내장한다. 그것은 타국의 실제적·가상적 침략에 대한 공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공포의 기반 위에서 빈틈없는 질서를 창조하려고 한다. 박정희의 사상과 행동은 이같은 경향을 일관성있게 보여준다. 박정희의 생애에서 놀라운 것은 매우 어린 나이에 그와 같은 폭력적 세계에 눈을 떴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최교수가 초등학교 3학년 급장으로서 보여준 그의 폭력에 주목했던 것은 탁월하다.
  그러나 모든 국가주의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몇몇 박정희 연구자들은 박정희와 히틀러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알몸 박정희』도 비슷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군국지배자의 정신상태」(『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한길사 1997)란 글에서 일본 군국주의와 나찌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서술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나찌는 자신들의 행위와 그것의 결과 및 악마성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었다. 그러나 군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언제나 고도의 윤리적 담론으로 채색하려 한다.

이같은 경향은 박정희에게서도 나타난다. 유신체제는 박의 관점에서는 단순한 권력욕의 추구가 아니라, 모종의 책임의식과 윤리적 정당성에 의해 추진된 체제였다. 이 점은 거의 모든 박정희 연구에서 간과되는 사항인데, 최교수 역시 이 점을 놓치고 있다. 최교수의 문제점은, 박정희가 보여준 급장의 권력이 공적 권력에 기생한 폭력이란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의 권력욕을 분석할 때는 개인적 권력욕의 형태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박정희와 깡패와 자본가의 권력욕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정희와 깡패 사이에 놓인 차이는 단순한 권력욕의 양적 차이가 아니라, 질적 차이를 수반한다. 그것은 박정희의 정치적 견해를 주목해야만 밝혀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최교수는 박정희의 견해(=말)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오직 몇가지 사실에 기초하여 과도한 도덕주의의 잣대를 들고 그의 ‘천황주의’를 측정하려고 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알몸 박정희』는 크게 균형을 상실한다.

심지어 우리는 깡패를 대할 때도 그의 견해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폭력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과는 별도로, 그가 가진 사회적 좌절감과 복수심의 근원을 이해하고 경청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알몸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안보자궁’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 책이 박정희의 견해를 도외시한 채 단지 개인에 대한 비난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최교수의 비난에는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박정희의 문제는 그의 출생 또는 가정환경, 아무리 늦게 잡더라도 초등학교 3학년에 결정된 것이다. 이같은 요인들이 그처럼 결정적인 것이었느냐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나, 그 문제는 잠시 유보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저자는 태아, 유아, 11세의 소년인 박정희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 된다. 이처럼 부당한 소년 학대가 또 어디에 있을까?

결국 최교수는 박정희가 처했던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그를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다시 개인적으로 다루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박정희가 처한 환경은 그의 시대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상당한 대표성을 갖는 현상이다. 따라서 박정희 문제는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사망한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저자는 박정희를 박정희만의 문제로 다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마음이 불안해졌던 이유도 ‘나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박정희 문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