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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잘못 놓여진 자’의 탁월한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살림 2001
성은애 成銀愛
단국대 인문학부 교수, 영문학 easung@dankook.ac.kr
세계무역쎈터와 펜타곤에 가해진 테러,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온갖 분쟁과, 시시각각 생존을 위협받는 난민의 일상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듯이 보이던 미국의 심장부에 가해진 9월 11일의 테러사건 이후, 내로라 하는 지식인들이 저마다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피력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에드워드 싸이드(Edward Said)의 반응을 기다렸던 것은 나만의 호기심이 아니었을 듯싶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5일 뒤인 9월 16일자 『가디언』(Guardian)지의 칼럼에서 이 사건을 서구의 기독교문명과 중동의 이슬람문명의 충돌로 몰고 가는 사고방식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불분명한 ‘적’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 미국정부를 ‘모비 딕’(Moby-Dick)을 맹목적으로 추적하는 에이허브(Ahab) 선장에 비유하며 맹렬하게 반전의 메씨지를 펼쳤다.
물론 싸이드의 이러한 발언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는 미국의 대(對) 중동정책을 비판하는 그의 열변을 늘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그가 어떻게 해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제도권의 학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이런 발언과 이런 입지가 가능해진 것인지, 이런 궁금증을 푸는 데는 1994년에 백혈병 치료를 1차 끝내고 나서 집필하기 시작하여 5년 만에 완성한 이 자서전이 안성맞춤이다. 이 책은 주로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의 성장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그의 개인사·가족사에 격동기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항상 ‘별종’이었고 주변과 화합하지 못하고 늘 삐그덕거려야 했던 한 소년의 성장기를 어떤 성장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김석희 옮김)의 원제인 ‘out of place’가 함축하고 있듯이, 싸이드는 스스로의 삶을 늘 ‘엉뚱한 자리에 잘못 놓여진’ 것으로 느꼈다. 팔레스타인 혈통이면서도 아랍인에게서는 보기드문 기독교도, 식민지 경제체제를 이용해서 한몫 챙긴 유복한 사업가의 아들, 이집트인에게서는 ‘외국인’ 취급을 받고 지배층인 유럽인이나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아랍인’ 취급을 받으며 성장했던 카이로에서의 생활, 미국 시민권자였던 아버지와 샤미어의 억양을 지닌 아랍어를 구사하는 어머니, ‘에드워드’라는 영국식 이름과 ‘싸이드’라는 아랍식 이름의 결합, 뿌리없는 레반트인으로서 교육을 통해 자손의 장래를 보장받으려는 부모의 극성으로 인한 엘리뜨 교육, 지적인 배경과 현실 사이의 괴리 등이 이 자서전을 관통하는 ‘잘못 놓여짐’이라는 주제의 변주들이다. 이러한 그의 성장과정은 여러가지 이질적인 문명들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 그 경계선에 선 불편함을 도리어 자신의 존재기반으로 삼아야 했던 싸이드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싸이드가 자신의 ‘잘못 놓여짐’이 지니는 현실적인 의미를 결정적으로 자각하게 된 계기는 이 자서전의 마지막 장에 언급된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이다. 이 전쟁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카이로를 떠나온 것, 그리고 카이로를 ‘잃어버린’ 것이 결국은 팔레스타인의 ‘상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전쟁으로 인해 싸이드는 사라진 어린시절과, 미국으로의 ‘추방’, 정치와는 무관하게 보낸 학창시절, 그리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로 한, 그 모든 것들이 커다란 ‘상실’과 ‘잘못 놓여짐’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떠나온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침묵을 강요당한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떠맡아 대변함으로써 자신의 ‘잘못 놓여진’ 위치를 도리어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로 전환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제자리에 ‘알맞게’ 있는 것 자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도, 심지어는 바람직하다고 여기지도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디에 있건 지나치게 편안한 기분을 느끼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고, 자신을 단단하고 안정된 하나의 실체라기보다 항상 움직이고 있는 하나의 ‘흐름’으로 보는 싸이드의 인생관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혹은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싸이드로 하여금 미국 시민권을 가진 대학교수로서 제도권 학계에서 복잡한 이론과 개념들을 만지작거리며 나름대로 안온하게 사는 데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것, 굳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때만 되면 나서서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내도록 만든 것, 굳이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편견과 지배전략을 분석하고 드러내는 데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집중하며 일생을 보낸 것은 바로 그가 ‘잘못 놓여진’ 성장기에 느꼈던 불편함,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 그리고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으려는 충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항상 냉정한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는 회의주의 덕분이었다고 해야겠다.
엉뚱한 연상일지는 모르나, 불안정한 현재를 자식에 대한 최고 수준의 교육으로 보장받으려고 안간힘 썼던 싸이드의 부모는, 어떻게든 영미권의 엘리뜨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자식의 성공적인 삶을 보장해준다고 여기는 우리나라의 학부모들과도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지금도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황폐하게 일그러진 대한민국 공교육의 실상에 염증을 느낀 중산층 이상 부모들의 분노와 열기에 힘입어 영미권의 ‘명문’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싸이드처럼 자신이 어딜 가나 ‘잘못 놓여진’ 존재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서 떠나온(혹은 추방당한) ‘고향’의 정치적인 상황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에게 허용된 발언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싸이드 같은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 것인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착잡하고, 또한 이토록 교육열이 높은 나라에서, 싸이드 같은 지식인이 한두 사람쯤 배출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이 무색하게도, 대개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백인(더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백인)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우리로서는 싸이드의 ‘잘못 놓여진’ 성장기를 다시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