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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네트워크과학에서 본 인터넷 대란

A.L. 바라바시 『링크』, 동아시아 2002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 prlee@mail.knou.ac.kr

 

 

지난 1월 25일 일어났던 ‘인터넷 대란’의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의 늑장대응, 써버 운영자들의 보안 소홀, 마이크로쏘프트의 무신경, 인터넷 써비스기술의 문제점 등 다양한 진단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원인으로 여겨지는 것이 늑장대응과 보안감각 부족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큰 사고가 나면 으레 정부의 대책부족과 전사회적인 안전불감증을 한바탕 탓하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정부와 써버 운영자들이 도마에 오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과는 다르다. 세 가지 모두 기술적인 산물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은 다리나 건물과 달리 처음부터 설계도에 따라 축조된 고립상태의 변화없는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뚜렷한 설계도도 없이 시작되었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형체를 분명하게 파악하기가 불가능한 기술인 것이다. 그러니 인터넷 사고에 대비해서 정부와 안전불감증을 탓하고 그 보완책을 찾는 것은 화풀이나 자기만족의 차원에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사태해결이나 ‘적응’에는 특별한 도움이 안된다.

인터넷이란 기술의 핵심특징은 분산성과 네트워크이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의 말단 행위자들이 생겨나거나 없어지고, 이들이 세계의 어느 구석에 있더라도 순식간에 연결되는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전체를 완벽하게 조망하는 것이 불가능한 탓에 어느 한 구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렵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한쪽에서 친 장난이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기술이 인터넷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터넷 대란’을 성수대교 붕괴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새 술을 헌 부대에 담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수십, 수백만 명을 싸이버 세계에서 동원하고, 수만명을 광장으로 직접 나오게 만드는 인터넷의 시대에 걸맞은 대응책이 나와야 할 터인데, 우리는 새 술은 넘쳐나게 빚어내면서도 그걸 담는 부대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링크바라바시(A.L. Barabási)의 『링크』(Linked: The New Science of Networks, 강병남·김기훈 옮김)는 인터넷이란 새 술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담을 새 부대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의 눈을 환하게 밝혀줄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인터넷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 핵심내용은 대부분의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을 그 구성원들이 서로서로 링크되어 있는 네트워크로 볼 수 있고, 따라서 네트워크의 특성을 밝혀내면 현상도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미국 내의 모든 사람이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서로 알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고, 전세계 인터넷의 웹페이지는 평균 19개의 링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에이즈의 확산, 신진대사, 생태계의 먹이사슬, 세포 내의 화학반응, 금융위기의 발생 등 수많은 현상들이 네트워크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내용이 ‘매혹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바라바시가 밝혀낸 이들 네트워크의 특징은 그것이 각각의 노드(node, 네트워크의 연결점)가 아무렇게나 연결된 것이 아니라 위계구조가 담긴 것이란 사실이다. 무작위 네트워크(random network)는 수학자들 사이에서는 전설이 된 파울 에르되스(Paul Erdös)와 알프레드 레니(Alfréd Réni)가 이론을 정립한 이래 수학자나 통계학자들 사이에서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네트워크다. 여기서는 네트워크의 구성원(노드)들이 서로 무작위적으로 연결된다. 그 결과 각 노드는 소수의 링크를 갖게 되고, 네트워크는 자연스레 완전히 수평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런 까닭에 하나의 노드에서 다른 노드로 가려면 많은 링크를 거쳐야만 한다.

반면에 바라바시는 실제 네트워크에서는 각각의 노드가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노드들이 위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대부분의 노드는 링크가 몇개 안되지만, 몇몇 노드는 평균보다 훨씬 많은 링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개의 노드가 나머지 노드를 모두 링크하면 이때는 방사형의 중앙집중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완전한 위계가 형성된다. 그는 윈도우즈라는 운영체제를 노드로 보면, 대부분(86%)의 컴퓨터 사용자가 윈도우즈를 사용하기 때문에 마이크로쏘프트와 컴퓨터 사용자 사이에 방사형 네트워크가 형성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현실세계의 네트워크는 대부분 많은 수의 링크를 가진 노드(허브)가 여러개 존재하며 이들 허브끼리도 서로 연결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무작위 네트워크와 달리 이들 네트워크 속의 노드들이 몇단계 링크만 거치면 모두 연결되는 것은 바로 허브들이 지름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작위 네트워크의 경우 노드들의 링크수 분포는 종 모양을 그리며, 따라서 종의 정점에 몰려 있는 대부분의 노드들과 이들 노드의 링크수로 네트워크가 구체화되어 고유한 척도(scale)를 갖게 된다. 반면에 실제 네트워크는 그것을 대표할 만한 평균적 노드와 링크수가 존재하지 않고, 당연히 고유한 척도도 없다. 바라바시는 이러한 네트워크를 척도를 지닌 무작위 네트워크와 구분하기 위해 ‘척도없는’(scale-free) 네트워크라고 명명한다. 그가 연구한 네트워크는 어느 하나도 이러한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척도없는’ 네트워크 이론이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내보인다.

바라바시는 네트워크의 견고성과 안정성에 관한 자신의 연구도 소개하는데, ‘인터넷 대란’의 배후를 근원적으로 파헤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연구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다른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도 ‘척도없는’ 네트워크이다. 거기에는 수십억개의 노드가 있지만 대부분(인터넷 사용자) 몇개의 링크밖에 가지고 있지 않고, 적은 수의 허브(인터넷 써비스 제공자 ISP 등)만 많은 수의 링크를 가지고 있다. 바라바시의 연구에 따르면 ‘척도없는’ 네트워크는 무작위 네트워크에 비해서 훨씬 견고하다. 무작위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일정한 수의 노드가 제거되어도 네트워크가 유지되지만, 그 수가 임계점을 넘으면 순간적으로 붕괴하고 만다. 반면에 ‘척도없는’ 네트워크의 경우 “전체 노드의 80% 가량을 제거한 뒤에도 나머지 20%의 노드들이 연결을 유지하면서 탄탄하게 결합된 일종의 군집을 형성”한다(184~85면). 그러므로 인터넷은 무작위한 기술적 고장에 대해서는 매우 안정적이다. 이는 인터넷에서 노드가 무작위로 파괴될 경우 거기에 소수의 허브가 포함될 확률은 아주 낮고, 허브 몇개가 파괴되더라도 다른 정상 허브들이 그 기능을 넘겨받기 때문이다. 허브가 어느정도 제거되지 않는 한 링크는 유지되고, 네트워크는 마비되지 않는다. 그런데 거꾸로 허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인터넷의 중대한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작위로 고장이 발생할 경우 인터넷은 견고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허브만을 차례차례 파괴하는 경우라면? 네트워크는 얼마 안 가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단지 일부의 허브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인터넷은 작고 보잘것없는 고립된 조각으로”(190면)파편화하는 것이다.

이제 1월 25일의 ‘인터넷 대란’을 바라바시 식으로 진단해보자.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마이크로쏘프트와 허브들 사이에 방사형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허브들이 의도적인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허브 역할을 하는 써버들은 대부분 마이크로쏘프트 운영체제를 사용했는데, 이것만 공격하도록 제작된 웜 바이러스가 써버들을 망가뜨림에 따라 대란이 발생한 것이다. 보통의 노드들은 파괴되지 않고 건재했다. 그러나 ‘척도없는’ 네트워크에서 지름길 역할을 하는 허브가 상당수 파괴되어 네트워크가 파편화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란은 채 하루도 지속되지 않았지만 사방이 불평과 비난으로 들끓었다. 그런데 그 화살은 인터넷 마비의 주범이 아니라 엉뚱한 목표로 향했다. 바라바시는 대란은 그러한 공격에 취약한 모든 ‘척도없는’ 네트워크의 내재적인 속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1월 25일 인터넷 대란의 주범은 바로 허브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에 취약한 인터넷 자체였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요즈음 유행어가 된 이공계 위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이 말이 이공계 종사자들의 인정투쟁을 대표하는 용어로 들리는데, 『링크』 수준에서라면 이공계 위기 논의가 어떤 차원에서 전개될까? 이공계생 5000억원 지원이나 청와대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신설 차원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공계 위기가 인문학 위기와 한데 섞여 질적인 도약을 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만한 비전을 모색하는 그런 논의로 발전하지 않을까? 『링크』가 이공계와 인문계에 모두 신선한 자극을 주게 될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