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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동북아경제중심’의 가능성과 문제점(21세기의 한반도 구상 1)

 

동북아시대 남북경협의 성격과 발전방향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본지 112호(2001년 여름)에 「북한 개혁의 ‘이륙’은 가능한가」 발표. lee87@mail.skhu.ac.kr

 

 

1. 남북경협의 새로운 의미

 

남북경협은 1988년 남한정부의 ‘대북경제개방조치’ 발표와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역규모는 2002년에야 6억 달러를 넘었을 정도로 초기의 기대만큼 빠르게 진전되지는 않았다. 특히 1993〜94년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인한 북미관계의 악화, 1996년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등으로 교역규모가 감소했다. 이는 남북경협이 정치적 변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냉전적 대립이 청산되지 않았던 것에 비해 동북아 정치·경제구조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소련의 붕괴 등으로 동북아에서 한국전쟁 이후 유지되어오던 지역내 국가들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립은 크게 약화되었다. 정치관계의 개선은 동북아에서 무역·투자 등의 경제교류도 빠르게 증가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동북아에서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발전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중국과 대만 사이에도 냉전적 대립은 존재하나 이는 더이상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교류를 가로막는 인위적 장벽이 되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인위적 장벽의 붕괴는 동북아에서 냉전적 대립을 완전히 극복하고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동북아시대’라는 화두의 등장도 이러한 상황변화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즉 ‘동북아시대’란 다른 지역블록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적 구도 속에서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던 동북아에서 협력과 공존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모든 동북아 국가들이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갖게 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동북아시대’에 한반도의 중심적인 역할은 다른 주변국들에 대한 우월적인 지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대를 여는 데 한반도가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다는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시대’의 도래는 남북경협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이제 남북경협은 남한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사양산업의 이전이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역경제통합의 가속화는 동북아 평화체제 건설에도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줄 수 있다. 즉 남북경협은 정치·군사적 환경변화의 종속변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 설계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의 전개

 

남북의 정상이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고 합의한 이후 남과 북은 모두 경제협력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도 교역규모는 1991년 1억 달러, 1995년 2억 달러, 1997년 3억 달러, 2000년 4억 달러로 꾸준히 증가하면서 남북경협이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전까지 남북경협의 한계도 뚜렷하다.

첫째, 남북교역에서 제네바합의에 따른 대북 중유지원, 경수로사업 및 금강산관광사업 관련물자 등 비거래성 교역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이 비중은 1995년 3.8%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46%까지 증가했다. 비거래성 교역 비중이 커진 것은 정부 사이의 협력사업이 증가한 결과지만 동시에 같은 기간 거래성 교역(상업적 매매거래 및 위탁가공교역)이 크게 감소한 결과이다. 거래성 교역은 1995년에 2억7630만 달러까지 증가했으나 1998년에는 1억4269만 달러로 감소했다.

둘째,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업체당 교역규모도 1994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등 대부분의 경협사업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9년 업체당 평균 교역규모는 32만5000 달러로 1993년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거래성 교역의 감소와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협력사업의 경우도 경수로사업과 금강산관광개발사업만이 규모가 1억 달러를 상회하며, 민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 중에는 평화자동차사업이 최근의 재투자로 사업규모가 5000만 달러를 넘은 것을 제외하고는 1000만 달러를 넘는 사업이 없다.

마지막으로 남북경협의 씨너지 효과가 미흡했다. 비거래성 교역의 대부분은 경제적 씨너지 효과 창출보다는 경수로 건설, 식량난 해소 등 정치적 필요에 따른 사업에 집중되었다. 정치성이 덜한 민간교역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업적 매매거래에서 북한으로부터의 반입은 농림수산물 등과 같이 성장성이 낮은 품목이 주류를 차지했으며, 위탁가공교역의 경우도 반입품 중 섬유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는 상황이다. 그리고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협력사업의 경우는 사업승인자 수가 1997년 16건, 1998년 13건으로 정점에 달한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여 1999년 2건, 2000년 1건에 불과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경협은 양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지는 않다. 거래성 교역이 2000년에는 1억7833만 달러, 2001년에는 2억3632만 달러, 2002년에는 3억4296만 달러이며, 협력사업승인자 수도 2001년 6건, 2002년 3건으로 약간의 회복세를 보이는 정도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정상회담 이후 주요 협력사업으로 떠오른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사업 등은 그 경제적 효과가 지금까지의 경협사업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1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각각 분리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촉진시키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에서 남북경협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남북 정부 사이의 협의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남북은 2000년 7월부터 12월까지 네 차례의 장관급회담을 거치면서 철도 및 도로 연결, 전력협력, 개성공업단지 건설, 임진강 유역 수해방지사업 등을 남북경협의 핵심사업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남북경협사업에서 제기되는 실무적인 문제들을 협의, 해결하기 위한 ‘남북경제협력추진위’ 1차회의가 열리는 등 남북경협은 구체적 추진단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에 들어서면서 북한정권에 비판적인 부시행정부의 등장, 9·11 테러사건의 발생 등으로 남북장관회담이 두 차례밖에 열리지 못하고 합의도 도출하지 못하는 등 남북경협은 난항에 빠졌다. 그러나 2002년 4월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 대통령특사와 김정일의 회담에서 합의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확인하면서 남북경협은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김정일은 임동원 특사에게 경의선 및 개성-문산 도로 연결 외에 동해의 철도·도로 연결까지 주장하는 등 남북경협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2

그리고 2002년 8월 7차 장관급회담이 열려 기존 경협사업의 재추진에 합의했으며, 8월 남북경제협력추진위 2차회의와 10월 8차 장관급회담이 잇따라 열려 경의선 및 동해선의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9월 18일 갖고, 철도는 연내에 도로는 2003년까지 연결하며, 개성공단 건설의 연내 착공을 추진하고, 투자보장 및 이중과세방지 등 경제협력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4개의 합의서를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발효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북정상이 합의한 후 2년여 만인 2002년 9월 18일 남과 북은 각각 경의선·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을 가졌다. 그리고 2003년 3월까지 네 차례의 철도·도로 연결 실무접촉을 통해 연결시기와 방법, 연결공사와 관련된 남측의 자재·장비 제공 등의 사안을 논의하여 마지막 4차 접촉에서 남북은 경의선·동해선 철도의 궤도연결공사를 3월 말 군사분계선에서부터 자기쪽 방향으로 동시에 재개하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2003년 2월 14〜16일에 동해선 임시도로가 개통되고 금강산 시범육로관광이 실시되었다.

개성공단사업은 2002년 11월 20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개성공업지구법’을 채택하여 개성공단사업 추진을 위한 법적인 기초를 마련한 이후 남북 사이에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2002년 12월 6〜8일에 열린 개성공단건설 2차 실무접촉에서는 착공식 개최, 임시도로(개성-문산) 개통, 통신·통관·검역 등 3개항에 대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그리고 2003년 2월 21일에는 경의선 임시도로를 이용하여 개성공업지구 육로사전답사가 실시되었다.

이런 사업 외에도 남북해운협력 실무접촉, 경제협력제도 실무협의회 등이 열려 남북경협의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다. 2003년 12월 11〜13일에 열린 제1차 남북경협제도 실무협의회는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같은 달 25〜28일 열린 제2차 남북해운협력 실무접촉에서 양쪽 해상항로를 민족 내부항로로 인정하고, 상대방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자유로운 통신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남북해운합의서’를 채택하고 서명했다. 이로써 운송을 외국 선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개선해 물류비용을 크게 줄이며 남북교역을 더욱 활성화하는 길을 열었다.

이처럼 주요 경협사업은 실행 직전단계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사업의 진척은 합의한 일정에 비해서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경의선·동해선 궤도연결 착공식이 연기되고 있으며, 개성공단 착공식 일정을 아직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이는 남과 북의 사업추진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다. 철도 연결은 경의선 우선 연결을 주장하는 남측과 동해선과 동시 연결을 주장하는 북한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개성공단건설의 경우도 임금, 공단사용료, 설계 및 착공식 진행일정 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 핵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며 경협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3. 남북경협 추진동력의 강화와 제약요인

 

현재 남북경협의 진행은 내외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남북은 경협사업의 추진에서 비교적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이라크전쟁과 관련한 남한의 군사적 조치에 반대하며 10차 장관급회담을 연기했지만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는 다시 대화를 제안했고, 남한도 핵문제의 돌출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다. 또한 2003년 1〜3월까지의 거래성 교역규모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8.3% 증가하는 등 민간교역도 일정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 비해 남북경협의 동력이 크게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남북경협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태도는 9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적 상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을 고려하면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동안 북한의 경제개혁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으나 북한은 나름대로 개혁과 개방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다. 물론 이 노력은 대외환경과 내부정치구조의 제약으로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3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북한은 점차 제한적인 개혁개방의 한계를 인식하고 더욱 대담한 접근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9월의 ‘신의주특구법’, 11월의 ‘개성공업지구법’과 ‘금강산관광지구법’의 채택 등 일련의 변화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현재 정치체제나 경제체제 아래에서 이같은 새로운 개혁조치가 성공을 거둘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적어도 이 조치들이 새로운 경제적 시도를 제한된 공간에 가두려는 과거의 자세에서 탈피한 점은 부정할 수 없다.4 그리고 북한의 개혁의지가 적극적일수록 북한에 남북경협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북한의 경제적 후원자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쉽지 않다. 중국은 경제의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GNP의 30〜50%(3000억 달러〜5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국유기업 및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1000만명을 훨씬 넘는 도시실업 및 1억5000만명에 달하는 농촌의 잉여노동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다른 국가를 지원할 여력은 많지 않다. 반면 북한에 자금·기술·시장을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미국·일본의 경우는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에 북한경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북한 경제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남한인데, 만약 남북경협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북한 경제개혁의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정상회담 이후 남한에서도 남북경협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다. 과거 남북경협은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한 형태이거나 남한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노동집약적 산업의 이전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등장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의 사업은 한국경제의 미래에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제공했다. 이는 기존 성장모델이 한계에 도달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필요성과 결합되면서 남북경협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경제는 현재 여러 측면에서 개혁과 전환을 요구받고 있지만 외부로부터 제기되는 도전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중국의 부상이다. 최근 중국 대외개방의 가속화와 저임금노동력을 이용한 제조업의 빠른 성장은 한국경제에 생산기지 중국 이전에 따른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5 반면 하이테크산업의 경우 반도체·휴대전화 등에서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미국·일본 등의 선진기술을 따라잡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오히려 곧 중국과의 힘겨운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는 호두까기에 끼인 호두 신세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남북경협은 남한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남북경협은 제조업 공동화 추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 북한에 대한 투자도 남한에는 제조업 공동화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빨려드는 것에 비해서는 남한경제와 더욱 긴밀한 내적 연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북경협이 과거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성장요인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을 통한 물류산업의 발전은 한계에 도달한 굴뚝형 제조업을 대체하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은 남과 북에서 각각 한계에 부딪힌 기존 발전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드는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 적극성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남북경협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제약요인이 존재한다. 그 제약요인으로 경협과 관련한 법적·제도적 장치의 미비,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 그리고 정치 혹은 군사적 긴장 등이 지적되어왔다. 앞의 두 가지는 남북경협의 발전과 북한의 개방의지 강화로 인하여 점차 해결의 길이 보이고 있으나, 마지막 요인은 좀처럼 해결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종종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 남북경협은 물론이고 우리 민족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북미관계는 2002년 10월 부시대통령의 특사 켈리의 평양방문 때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인정한 이후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남북경협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은 북한 핵개발에 대한 제재로 11월 14일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통해 북한에 대한 중유제공 중단을 선언했으며, 북한은 12월 12일 핵동결 해제와 핵시설 재가동 선언, 2003년 1월 10일 NPT 탈퇴선언 등으로 대응하여 북미 사이의 전면적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

현재 북한의 핵개발이 폐기되지 않는 이상 북한과 대화를 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과, 핵개발 폐기는 체제 보장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 사이에는 절충점이 쉽게 찾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미국 내에서 협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온건파와 군사적 수단의 동원도 불사하여야 한다는 강경파 사이의 대립도 북미협상에 어려움을 조성하고 있다. 따라서 4월 하순 북경에서 북·미·중의 3자회담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 과정이 완전한 타결에 이르기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4. 동북아시대 남북경협의 전략적 방향

 

그렇다면 북한의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 남북경협사업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1993〜94년 핵위기에 따라 경협사업이 침체에 빠졌던 역사가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현재 남북경협이 갖는 경제적·정치적 의미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따라서 남북경협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된 후에나 발전될 수 있다는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남북경협을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삼는 전략이 필요하다. 핵위기가 극단적으로 악화되기 전에는 핵문제 해결 선행론보다는 남북경협과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경협은 외부적으로는 동북아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역량과 구조를 발전시키고 내부적으로는 경제공동체의 형성을 가속하여 외부상황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민족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여야 한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 진행된 동북아 질서재편은 북미관계의 악화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남북경협에 불리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북미관계를 제외하면 과거 적대적 관계였던 남한과 중국·러시아의 관계, 남북관계 등이 우호적으로 변화했으며 북일관계도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진전을 보인 바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북아가 세계에서 가장 경제성장이 빠른 지역에 속하며, 동시에 지역내 경제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의 「2000/2001 세계발전보고」의 통계에 따르면 1990〜99년 사이 고소득국가를 제외한 중·저소득국들의 평균성장률은 3.3%인데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성장률은 7.4%에 달했다. 그리고 각국의 무역총액에서 지역내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증가하여 2000년 기준으로 한국 24.9%, 북한 38.9%, 중국 23.2%, 몽고 69.9% 일본 14.9%, 러시아 9.4%를 차지했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동북아의 평화체제 발전의 동력도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라크 전쟁에 대해 중동사회가 분열된 것에 비해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력 사용에 대해 한반도 주변국들은 경제적 이유이건, 정치적 이유이건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힘이 북한과 미국으로 하여금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대화 테이블에 나오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경협은 이러한 변화추세를 더욱 공고히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용어는 조심스럽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이 외부세력에 대한 경쟁적 의미로만 제시될 때는 동북아 내의 협력을 저해할 수도 있다.6 특히 물류중심론, 금융중심론, IT산업중심론 모두 이러한 성격이 강하다. 물론 이들이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협력을 전제로 하지 않는 중심론은 내부적 전략으로는 의미가 있으나 동북아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외부를 향해서 선포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동북아시대에 부합하는 발전방향을 모색한다는 점을 중시하면 ‘동북아중심론’이나 ‘동북아허브론’과 같이 경쟁적 측면을 부각하기보다는 ‘동북아협력’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남북경협도 다른 국가들에 대한 경쟁적 우위만 추구해서는 안되며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 촛점을 맞추어 다른 국가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효과가 가장 큰 사업으로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가스관 연결사업이 있다. 이는 러시아가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에 기울인 관심에 잘 나타난다. 쎌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은 러시아의 사할린 부근에 있는 천연가스를 북한을 관통해 남한에 공급하는 운송관 건설로 북한의 핵문제도 해결하고 주변국들의 경제적 이익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7 중국의 경우는 철도연결사업에 경쟁적 관계가 있으나 이 사업이 장기적 경기침체에 빠져 있는 중국 동북부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반대로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다.8 미국·일본은 당분간 정치적 상황의 제약을 받겠지만 이 협력사업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면 새로운 물류망에서의 주도권과 시베리아 지역의 자원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내부적인 측면에서 남북경협은 민족 내부의 새로운 갈등요인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결과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과거 남북경협을 비교우위에 기초한 남북한 경제구조의 상호보완에 주로 촛점을 맞추던 논의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분단체제 아래서 형성된 남한의 과도한 무역의존도는 경제위기를 재생산하고 있으며, 북한의 폐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자원분배 체제는 현재의 비효율적인 경제구조를 초래했다. 따라서 각각의 비교우위 즉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자원과 노동력을 결합하는 경제협력사업은 내부시장을 확대하고, 자립적인 민족경제의 형성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현재 남북경협을 비교우위의 활용이라는 각도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몇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남한과 북한 사이에 수직적 분업체제를 형성하여 새로운 불평등구조를 형성할 우려가 있고 이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도 크다. 예를 들면 ‘개성공업지구법’이 4조에 “사회의 안전과 민족경제의 건전한 발전,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보호에 저해를 주거나 경제기술적으로 뒤떨어진 부문의 투자와 영업활동은 할 수 없다”고 명시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접근은 경제적 효과에도 한계가 있다. 즉 중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의 빠른 성장을 고려하면 북한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북한의 노동집약적 산업은 내수시장의 기반이 있거나 남한과의 근접성으로 인해 잇점을 확보할 수 있는 일정기간 동안만 경쟁력을 가질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협력은 남한경제에도 새로운 발전동력을 제공하기 어렵다.

따라서 남북경협, 특히 정부 차원의 협력사업은 한반도 경제공동체의 질적 수준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사업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외에 개성공단개발사업과 IT기술산업에서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들 사업은 상대적으로 주변국들과는 경쟁적 측면이 강하나 남북경제의 발전적 통합을 추진하는 핵심사업이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개성공단사업은 사양사업의 북한 이전이 아니라 동북아에서 특화된 산업단지로 발전시키는 방향을 견지하여야 하며, IT산업에서의 협력도 노동비용 절감 차원이 아니라 선도기술의 개발과 상품화를 주요 내용으로 해야 한다.9 이들 사업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경협의 지속적인 추진에 기여할 것이다. 지금까지 수익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해 경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가되어왔다. 따라서 남한 기업은 정치적인 접근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북한도 남한을 일방적인 지원자로 바라보는 타성에서 벗어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협력을 진행해야 한다.

 

 

5. 남북경협과 민족공조

 

동북아시대 남북경협은 주변국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사업, 남북협력의 씨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 한반도 경제의 질적 발전계기를 만들고 동북아 평화체제 건설의 기반조성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은 남북이 민족공조라는 원칙을 확고하게 견지하지 못하면 현 상황이 보여주는 것처럼 언제든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선언적으로 민족공조가 합의되었을지 몰라도 실질적인 실현이 쉽지 않은 것과 관계가 있다.

북한은 체제안전에 대한 문제는 미국과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고 경협문제는 남한과 논의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가 충돌될 경우 전자를 더욱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는 체제안전에 대한 특별한 고려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북한의 경제개혁에 대한 일관성과 남북협력 의지에 대한 불신감을 증가시켜 남북경협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경제적 고립의 심화를 초래했다.

남한은 1998년 경협에 대한 정경분리 원칙을 제시하고 이 원칙을 비교적 일관되게 견지해왔으나 여기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즉 민족공조와 한미동맹의 충돌이 그것이다. 냉전시기에 북한에 대한 봉쇄와 전쟁억제를 목표로 형성된 한미동맹관계가 동북아 질서의 재편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참여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한미동맹관계 재조정을 거론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심각한 안보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의 불신감을 증가시키기 쉽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문제 해결이 상당부분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현 상황에서 남북협의가 한반도의 정치·군사적인 문제 해결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힘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역으로 남북이 경제협력에 더욱 일관된 자세로 임하는 것을 한층 중요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남북의 연대를 촉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 남북경협이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남한은 미국의 군사적 수단을 통한 문제해결 유혹에 대해 확고하게 반대하고 북한도 핵카드의 지나친 사용과 같이 남북 민중의 대립을 격화하는 행위는 자제하여 남북협력의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남북은 이미 제기된 경제협력의 안정적인 추진에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반세기 동안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위협에서 살아온 남북 민중의 최소한의 요구일 것이며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어떤 정치세력도 그 정당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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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2년 11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경련은 개성공단의 가동을 통해 북한은 2010년경까지 41억8000만 달러의 직접적 외화 수입을 포함해 총 154억1000만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토연구원도 개성공단의 경제가치를 분석한 자료에서 공단이 완성될 경우 북쪽 17만명의 고용창출 효과와 함께 남북을 합쳐 모두 722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한겨레신문』 2002년 12월 4일자).
  2. 동해선 연결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태도는 2001년 7월과 2002년 8월 북러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사업에 합의한 결과이다.
  3. 이에 대해서는 이남주 「북한 개혁의 ‘이륙’은 가능한가」, 『창작과비평』 2001년 여름호 참조.
  4. 특히 가격현실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7·1경제관리개선조치는 북한경제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조치의 부정적인 결과로는 인플레이션이 지적되고 있는데 가격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의 발생은 피하기 힘들며,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그리고 이 조치가 자원분배의 효율을 높이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5. 홍콩을 통한 투자와 현지 재투자가 포함된 중국측 통계로는 한국기업의 대중투자는 금융위기로 1999년 13억 달러까지 줄어들었으나 2001년에는 21억 달러로 증가했다. 한국의 통계로는 2002년 1~8월의 대중국투자액은 9억7054만 달러로 2001년의 총투자액 6억9714만 달러를 초과하는 등 대중국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한국의 대중국투자에서 1차산업 0.9%, 3차산업 12.6%인 데 비해 2차산업은 86.5%를 차지했다.
  6. 이는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이 주로 국가주도형 발전에 의해 촉진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우려되는 문제이다. 윤영관 「동북아시아 자유무역지대의 국제정치와 한국」, 『창작과비평』 2002년 봄호 66면 참조.
  7. 쎌리그 해리슨 「북핵협상 전망과 가스운송관」, 『창작과비평』 2002년 겨울호.
  8.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결도 동북아 물류중심을 지향하기보다는 중국횡단철도와 보완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연결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될 경우에도 한반도종단철도를 통해 운송되는 물동량은 지역내 물동량의 일부이며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통개발원의 연구도 철도연결 이후 한반도종단철도를 이용하는 물동량에 대해 동유럽의 경우는 전체 물동량의 10〜20%, 서유럽은 5〜10%, 중국 동북부는 12.5〜25%로 예상했고, 일본의 경우는 한국의 1/2〜1/3로 예상했다. 김훈 『남북간 철도연결에 따른 수도권 및 지역간 철도망의 정비방향(1단계)』, 교통개발연구원 2002 참조.
  9. 2002년 통일원의 한 연구보고서는 대북투자의 단계별 전략으로 수출경쟁상품의 생산확대를 위한 투자, 북한 내수시장을 겨냥한 경공업분야 투자, 사회간접시설 및 기술집약부문 투자라는 3단계 전략을 제시했다(김영윤 외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대북투자방안』, 통일연구원 2003년).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 타당성을 가진 전략이나 남북경협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하면 무조건적인 단계별 접근보다는 전체 남북경협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핵심사업의 경우에는 병행적 접근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