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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金在瑩

1966년 여주 출생.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 작품으로 「치어들의 꿈」 「물 밑에 숨은 새」 「자정의 불빛」 등이 있음. kjy0773@hanmail.net

 

 

 

코끼리

 

 

시월이 되자 아버지는 한길로 향한 창문에 뻐체우라(네팔 남자들이 몸에 걸치는 직사각형의 천)를 쳤다. 틀이 일그러진 바라지창 틈새로 스며드는 밤안개에 아버지가 심하게 기침을 한 다음날이었다. 지난여름, 장판 밑에서 시작된 곰팡이는 방바닥에 놓인 세간과 벽에 걸린 옷가지로 번져가더니 기어코 아버지의 폐와 내 종아리까지 점령했다. 아버지는 기침을 해댔고 나는 종일 종아리를 긁어댔다. 우리는 슬레이트 지붕 위로 무섭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창문 반대편에 걸린 달력사진을 바라보는 걸로 지루한 여름을 견뎠다. 투명하고 생생한 햇빛, 푸른 티크나무숲, 눈 덮인 안나푸르나, 잔잔하게 물결치는 페와호, 그리고 사탕수수를 빨아먹으며 웃고 있는 아이들……

나와 아버지는 십여년 전까지 돼지축사로 쓰였다는, 낡은 베니어판 문 다섯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건물에서 살고 있다. 쪽마루도 없는데다 처마마저 참새꼬리처럼 짧아 아침이면 이슬에 젖은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야 한다. 며칠 전 주인아주머니는 3호실 문짝에 ‘빈방 있음’이라고 쓴 누런 갱지를 붙여놓았다. 그 방 앞을 지나던 나는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벽에는 얼룩과 곰팡이와 낙서가 가득했고, 들뜬 황갈색 비닐장판 위로는 뽀얀 먼지가 살얼음처럼 깔려 있었다. 비스듬하게 세워진 낡은 캐비닛 뒤쪽 벽에는 쥐가 들락거릴 정도의 작고 새까만 구멍이 뚫려 있는데, 구멍 주위로 자잘한 시멘트 가루와 흙덩이가 흩어져 있어 마치 상처 부위에 엉겨붙은 피딱지처럼 보였다. 총알에 맞아 쿨럭쿨럭 피를 쏟아내는 심장을 본 것 같은 섬뜩함이 가슴을 오그라뜨렸다.

그 방에 살던 파키스탄 청년 알리는 도둑질을 하고 마을을 떠났다. 강풍이 불던 날 밤의 어둠과 소란을 틈타 한방을 쓰던 비재아저씨의 돈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비재아저씨는 송금비용을 아끼려고 벽에 구멍을 파서 돈을 숨겨놓았다고 한다. 그날 밤 알리가 돈을 꺼낼 때 나던 조심스런 부스럭거림을 아저씨는 왜 듣지 못했을까. 하긴 이틀 연속 철야근무에 특근까지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게다가 그날따라 2호실 방글라데시 아주머니의 갓난아기는 밤새 잠을 자지 않으며 보챘고, 저녁 내내 텔레비전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1호실 미얀마 아저씨들은 나중엔 취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대기까지 했다. 밤에 일하는 5호실의 러시아 아가씨 마리나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4호실에서 사는 아버지와 나만이 일찌감치 불을 끄고 어둠속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역시 머릿속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생각, 집 나간 어머니 생각에 빠져 있어서 누군가 돈을 훔치느라 바스락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사실 알리는 비재아저씨 아들의 생명을 훔쳐 도망간 거나 다름없었다. 아저씨는 막내아들의 심장수술 비용을 마련하려고 여기 왔으니까. 이 마을에선 불행이 너무나 흔해 발에 차일 지경이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비재아저씨가 그날 새벽에 내지른, 절망과 분노에 찬 비명소리는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요즈음 아저씨는 마당에 있는 늙은 감나무 밑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곤 한다. 어쩌다 산 정상에 구름이 걸리면 저기 물소가 지나간다,라는 엉뚱한 혼잣말을 하면서. 아무래도 아저씨는 꽤 오래 눈물과 한숨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까치밥이 붉은 속을 뚝뚝 떨어뜨려야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처럼.

너무 다양한 삶을 보아버린 열세살 내 머릿속은 히말라야처럼 굴곡이 패어 있다. 세계지도 속 히말라야는 사실 손가락 한마디 크기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지도로 그릴 수 없는 땅이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깊게 주름진 계곡과 높은 설산을 다니는 것은 세상 전체를 한바퀴 도는 것보다 더 길 거라면서. 학교 과학실에서 본 뇌 모형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사람은 어려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 뇌가 심하게 주름진다니까 내 나이도 실제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을 거다.

3호실이 빠지는 대로 비재아저씨는 우리방으로 오기로 했다. 방세를 아낄 수 있어서다. 아버지는 더이상 집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한 걸까. 하긴 어머니는 조선족이니까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 적어도 자신에게 수치를 주거나 학대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한국말로 대꾸할 수 있을 테지. 그만 때리세요, 왜 욕해요, 돈 주세요 따위 말고도 여러가지 어려운 말들, 선처·멸시·응급실·피해보상, 심지어 밑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느니, 개발에 땀난다는 말까지.

잠에서 깨어나니 로띠(밀가루 빵) 굽는 냄새가 방안 가득하다. 방문 쪽으로 돌아앉아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밀어대는 아버지의 등과 어깨는 물결처럼 출렁인다. 내 발치께의 버너 위에 올려진 주전자에선 버터차 찌아가 쉐쉐 가쁜 숨소리를 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버지의 마흔번째 생일이다. 좀전까지 몰랐는데 달력에 동그라미가 쳐진 걸 보니 분명히 그렇다. 해마다 가을이면 아버지는 띠알 축제(추석 같은 다사잉 명절 15일 뒤에 오는 네팔의 축제)를 마치고 생일날 아침에 고향을 떠나온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되풀이했다. “네팔의 여름 햇빛은 정수리로 내려오고, 가을 햇빛은 가슴에 와닿지. 내가 그곳을 떠난 건 성글성글한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와 심장에 꽂히는 가을이었단다. 심장이 사납게 뛰는 스물여섯……” 어쩌자고 동그라미를 그토록 크게 그려넣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난 선물도 못할 텐데. 아버지는 어린 나한테까지 용돈을 줄 여유가 없다.

검은 색연필로 여러번 덧그린 커다란 원은 마치 ‘외’처럼 보인다. ‘외’는 미얀마 말로 소용돌이란 뜻이다. 1호실 미얀마 아저씨들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외’에 빠진 거라고 말한다. 나는 아버지의 소용돌이 삶 속에서 태어났으니 새끼외다. 하지만 한국에서, 조선족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났으니 반쪽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학교나 마을에서 외 취급을 받지 않을 거란 착각을 할 정도의 머저리는 아니다. 자리에 누운 채 왼뺨의 광대뼈 부위를 만져본다. 조금 부었는지 손바닥에 그득하게 잡힌다. “너 소영이 짝이지? 이 더러운 자식!” 어제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육학년 소영이 오빠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똥 닦는 냄새나는 손으로 왜 소영이를 만지느냐고 다그쳤다. 난 그런 적 없다고 했다. 굴러가는 연필을 잡으려다가 실수로 손등을 건드린 거라고 구차한 기분이 들 정도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소영이 오빠는 거짓말 마 새꺄,라며 주먹을 날렸다. 나도 녀석의 옆구리를 한대 갈겨주었다. 쓰러진 녀석의 코에서 피가 나와 옷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손으로 먹어라. 그래야 서둘러 먹지 않고 과식하지 않는단다.”

아버지 말을 못 들은 체하고 나는 젓가락으로 로띠를 찢는다. 과식할 음식이나 있냐고 하려다 참는다. 늬들은 손으로 밥먹고 손으로 밑 닦는다면서? 우엑, 더러워. 놀려대는 반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밥은 밑 닦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먹는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언제나 오른손을 깨끗하게, 귀하게 다룬다. 다만 아버지 손가락에는 등고선처럼 생긴 지문이 없다. 닳아버린 지 오래어서 지장을 찍으면 짓이겨진 꽃물자국 같은 게 묻어난다. 사람들은 지문이 없으니 영혼도 없다고 생각하나보다. 그렇지 않다면 노끈에 꿰인 가자미처럼 취급당할 리가 없다. 야임마, 혹은 씨발놈아,라는 이름의 외국인노동자 한 꿰미. 말링고꽃을 좋아하고 민요 「러썸삐리리」를 구성지게 부르는, 안나푸르나의 추억을 가진 어루준이란 이름의 사람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다.

“멍이 들었구나. 어쩌다 그런 거냐?”

오른손으로 로띠를 찢어 입에 넣으면서 묻는 아버지한테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이란 중요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까.”

부정확한 발음으로 한국말을 떠듬거리는 아버지는 어릿광대를 연상시킨다. 말이 어눌하면 누구나 멍청하게 보이는 법이다.

“차라리 맞았다면 나았을 텐데…… 조심해라. 그애가 가만있진 않을 거야.”

“저도 자신 있어요.”

“바보 같은 소리 마. 다음에라도 녀석이 때리거든 피하지 말고 맞아줘.”

아버지는 갑자기 네팔어로 말한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이번엔 턱에 힘을 주며 말도 안되는 네팔 속담을 들이댄다.

“누군가 돌을 던지거든 꽃을 던져주라고 했다.”

“싫어요, 난. 차라리 사람들을 갈겨버리고 말지. 이담에 팔뚝에 힘이 붙으면 절대 아버지처럼 공장일이나 하진 않을 거야. 우리를 업신여기고 괴롭히는 나쁜 놈들을 때려눕히고 발로 차고……”

“야크처럼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겠다는 거냐?”

“야크가 어떻게 뛰는지 알게 뭐예요. 히말라야 얘기라면 이제 지긋지긋해요.”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하지만 참았던 말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져나온다.

“난 여기, 식사동 가구공단밖에 몰라요. 흐릿한 하늘이랑 깨진 벽돌더미, 그리고 냄새나는 바람, 나한텐 이게 전부죠. 게다가 집 나간 바람둥이 엄마까지……”

“입 닥치지 못해!”

뺨이 얼얼하다. 아버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떤다. 볼을 싸쥐고 방에서 뛰쳐나오니 마당에 있던 누군가 너머스테(‘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네팔말)하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이슬 젖은 신발을 꿰어 마당을 가로지른다. 수돗가에 떨어져 있던 감 하나가 발밑에서 터져 으깨진다.

 

뱃속에서 울리는 끄르륵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공장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선다. 메마르고 갈라진 시멘트길, 칙칙한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 공장 지붕 위로 떨어지는 희뿌연 햇빛, 그리고 간간이 사나운 짐승처럼 달려가는 짐 실은 트럭들 속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 않는 토요일엔 늘 이렇다. 아침에 먹은 찌아 한잔으로는 오후까지 견디기가 쉽지 않다. 공장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음, 페인트 냄새, 가구공장의 옻냄새가 빈속을 메스껍게 한다. 코를 움켜쥔 채 인력 구함, 사채 쓸 분, 빅토리아 관광나이트 따위의 광고지가 덕지덕지 붙은 더러운 공장 벽과 전봇대를 지난다. 염색공장에서 나오는 새빨간 물이 도랑을 붉게 물들이며 흘러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갓 잡은 돼지 피처럼 보인다. 헛구역질이 난다. 입 안에서 씁쓰름한 위액이 느껴진다. 내가 죽게 된다면 아마 코부터 썩을 거다. 태어나서 지금껏 냄새 속에 살았으니까. 독한 화학약품 냄새들은 실핏줄을 타고 머리 속까지 들어와 나를 멍청하게 만들 테지. 어차피 상관없다.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세상 살기 힘들다니까. 언젠가 아버지는 말했다. “머리를 굴려 이 지옥에 떨어졌어. 다른 청년들처럼 산에서 염소를 기르거나 들에서 농사일을 했더라면, 강물에 몸을 씻고 집으로 돌아와 구수한 달(콩 수프), 바트(밥) 냄새를 맡으며 신께 감사할 줄 알았다면……” 미래슈퍼 앞에 다다르자 출입문에 붙어 있는 오렌지빛 음료수 ‘쿠우’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입 안에 침이 돌면서 울렁거림이 가라앉는다. 바지 주머니를 흔들자 짤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손을 넣어 꺼내보니 종잇조각 몇개와 구슬, 병뚜껑, 녹슨 못, 그리고 먼지가 나온다.

멀리 알루미늄 공장 쪽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쿤형이다. 4년 전에 한국에 들어온 그는 나보다 열두살이 위인 스물다섯이다. 그가 처음 마을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까만 배낭을 메고 방을 얻으러 다니던 쿤은 아버지를 만나자, 아니 아버지 입에서 계곡물에 자갈 굴러가는 듯한 네팔 말이 흘러나오자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버지는 그가 몹시 힘들게 지냈다는 걸 금방 알아챘다. 그의 얼굴 표정에는 산업연수생 시절에 겪었던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반지하방에서 휴일도 없이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하다가 한밤중에 창문으로 도망쳤다는 그는 시퍼런 멍과 상처로 얼룩져 있었고 화덕처럼 뜨거웠다. 아버지는 네팔의 민간요법인 쌀소주를 만들어주었다. 달구어진 팬에 기름을 치고 생쌀을 튀긴 다음 소주를 붓고 한동안 뚜껑을 닫아놓아서 만든 따끈한 액체를 소주잔에 따랐다. 연거푸 세 잔을 마시게 했더니 열에 들떠 있던 쿤은 금방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쿤의 몸은 많이 회복되었다. 크게 쌍꺼풀진 눈에는 전날의 공포와 우울 대신, 숨어 있던 촌스러움이 드러났다. 돈을 벌어 귀국하겠다는, 한달에 오십만원을 벌어 반쯤 저축하겠다는, 딱 삼년만 참으면 된다는 순진한 믿음 같은.

쿤은 지금 리바이스 청바지에 나이키 점퍼를 입고 있다. 동대문시장에서 산 짝퉁이지만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가 흰 아르레족(네팔의 여러 민족 중 하나로 아리안계에 속함)이라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니 얼핏 미국사람처럼 보인다. 하긴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고 염색을 했을 테지만 말이다. 언젠가 명동에 다녀온 그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한국사람들은 단일민족이라 외국인한테 거부감을 갖는다고? 그래서 이주노동자들한테 불친절한 거라고? 웃기는 소리 마. 미국사람 앞에서는 안 그래. 친절하다 못해 비굴할 정도지. 너도 얼굴만 좀 하얗다면 미국사람처럼 보일 텐데……”

그 뒤로 나는 저녁마다 물에 탈색제 한알을 풀어 세수했고, 새벽이면 얼마나 하얘졌나를 확인하려고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푸른 새벽공기 속에서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 내 얼굴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미국사람처럼 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한국사람만큼 하얗게, 아니 노랗게 되기를 바랐다. 여름 숲의 뱀처럼, 가을 낙엽 밑의 나방처럼 나에게도 보호색이 필요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살아갈 수 있도록. 비비총을 새로 산 남자애들의 첫번째 표적이 되지 않고, 적이 필요한 아이들의 왕따가 되지 않고, 달리기를 할 때 뒤에서 밀치고 싶은 까만 방해물로 비춰지지 않도록.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탈색제를 썼다. 그러던 어느날, 세수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세숫대야의 물을 거칠게 쏟아버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탈색제가 든 비닐봉지를 수돗가에 내동댕이쳤다. 나는 뒷덜미를 잡힌 채 방으로 질질 끌려들어가 멍이 시퍼렇도록 종아리를 맞았다. 그날 밤, 오랜만에 술냄새를 풍기며 자정이 다 되어 들어온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누크’ 베이비로션을 꺼냈다. 그러고는 붉은 실핏줄이 보일 만큼 껍질 벗겨진 내 얼굴에 로션을 잔뜩 발라주었다. 투박하고 거친 손바닥으로 뺨을 아프도록 쓰다듬으면서.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더니 잠들기 직전까지 흐느꼈다. 가끔 뜻을 알 수 없는 네팔말을, 몹시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쿤이 작업복 점퍼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온다. 가슴께가 불룩 튀어나온 걸 보니 뭔가 맛있는 것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에게 달려가 숨긴 걸 달라고 졸라댄다. 쿤은 얼굴을 찡그린다. 쿤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고 꼬물거린다. 간지럼을 잘 타는 쿤은 흐으, 흐으, 김빠진 웃음을 내뱉더니 할수없이 그 비밀을 펼쳐 보인다. 흰 붕대에 감긴 손이 허공으로 불쑥 솟아오른다.

“왜 이래?”

“어제 일하다가 그만…… 다행히 손가락 세 개는 남았어.”

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결국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박치니가(씨팔)! 그는 발끝으로 돌멩이를 세게 걷어찬다. 찰랑, 흩날리는 노란 머리카락 사이로 새로 돋는 까만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는 이제 더이상 염색을 하지 않을 거다. 여기 와서 프레스에 손가락을 잘리는 미국사람은 없을 테니.

“형, 그 손가락 나 주라.”

쿤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왜?”

“그냥…… 응? 나 주라.”

쿤은 휴지로 돌돌 만 것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길 양편에 늘어선 전깃줄이 바람에 징징 울어댄다. 바랜 햇빛과 회색 먼지 속을 걷는 쿤의 뒷모습이 늙고 지쳐 보인다.

 

2호실 아기가 칭얼대는 소리만 들릴 뿐 축사건물 전체가 조용하다. 나는 마당 한쪽에 있는 감나무 밑으로 다가간다. 커다란 돌멩이를 들추니 까맣고 축축한 흙이 드러난다. 나무 삭정이를 주워와 땅을 파헤친다. 굵다란 지렁이 한마리가 햇빛에 놀라 꿈틀대더니 이내 흙속으로 파고든다. 좀더 깊이 파헤쳐보지만 개미새끼 몇마리뿐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벌써 다 썩어버렸나? 돈을 훔쳐 달아난 알리의 손가락을 초여름에 다섯 개나 묻었는데 하나도 없다. 작년에 묻은 베트남 아저씨 손가락은 말할 것도 없고. 좀더 깊이 땅을 파려고 팔에 힘을 준다. 흙덩이가 부서지면서 얼굴에 튄다. 그러고 보면 알리도 대단하다. 돈을 훔칠 때 어떻게 한쪽 손만으로 캐비닛을 밀치고 벽을 파헤칠 수 있었을까. 나무 삭정이가 툭, 부러진다. 순간 하얀 뼈다귀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온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주머니에서 손가락을 꺼낸다. 휴지에 싸여 있던, 검붉은 손가락을 뼈다귀들 틈에 놓는다. 물든 감잎 하나가 손가락 위로 살며시 내려앉는다. 나는 구덩이에 흙을 푹, 밀어넣는다. 수돗가 쪽으로 침을 퉤 뱉고 나서 두 손을 모은다. “파괴의 신 시바님, 이 정도면 충분해요. 더이상 제물을 바라지 마세요. 특히 아버지하고 제 손가락만큼은 절대.”

맹꽁이 자물통에 열쇠를 끼워 비틀고 문을 여니 방안이 엉망이다. 냄비에는 어제 먹다 남긴 라면 면발이 퉁퉁 불어 애벌레처럼 떠 있고 발길에 차여 넘어진 찻잔에선 찌아가 흘러나와 콧물처럼 말라간다. 둘둘 말아 창문 아래 밀어놓은 이불 위에는 벗어놓은 옷가지가 흩어져 있다. 가방을 구석에 내동댕이치고 옷더미 위로 풀썩 드러눕는다.

“안녕?” 창문에 매달린 코끼리는 여전히 말이 없다. 무심한 눈길로 먼곳을 쳐다볼 뿐. 일곱 개의 코를 가진, 뻐체우라에 은사로 화려하게 수놓인 그 코끼리는 원래 신들의 왕 인드라를 태우는 구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요?” 창문에 뻐체우라를 달다가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흥분해서 아버지를 재촉했다. “어느날 창조주 브라마가 ‘세계의 알’을 깨뜨리면서 코끼리의 격이 낮아져 그만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단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는 슬쩍 내 안색을 살폈다. “어차피 그건 힌두교 신화일 뿐이야. 신이 깨뜨린 알이란 없어.” 순간 못대가리에서 미끄러져 엇나간 망치가 아버지 손톱을 찧었다. 손톱 끝에 침을 바르고 통증을 참던 아버지는 떨어진 못을 찾으려고 두 팔을 뻗어 바닥을 더듬었다. 문득 아버지가 코끼리처럼 여겨졌다. 구름보다 높은 히말라야에서 태어나 이곳 후미진 공장지대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가늘게 떨리는 그 목소리 주인은 2호실 토야 엄마다. “모레니에 젤로 세이데세, 모레니에 젤로 세이데세, 날 그곳으로 데려다주세요, 날 그곳으로 데려다주세요……” 지난봄에 단속반을 피해 뒷산으로 도망치다가 발목을 삐어 결국 잡히고 만 토야 아빠는 스리랑카로 추방된 뒤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혼자 남은 토야 엄마는 집에서 기계부품에 나사를 끼워 버는 푼돈으로 연명하는 눈치다. “훌둘리아 뿌자 또레 게노 펠레라코 헬라거리, 딸 모르넷 아게 슈두 바레크 피레아쇽, 기도꽃을 꺾어 왜 그냥 버렸을까, 사랑하는 사람 죽기 전에 다시 돌아오세요……”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난다. 신 김치와 미역국 냄새, 연한 레몬로션 냄새, 그리고 뭐라고 이름붙일 수 없지만 스르르 잠이 오게 하는 신비한 살냄새까지. 지난봄에 어머니가 남기고 간 냄새는 한동안 방안 어딘가에 남아 미풍이 불 때마다 언뜻언뜻 맡아졌다. 하지만 이제 방 안에선 그 냄새가 나지 않는다. 퀴퀴한 홀아비 냄새와 지독한 곰팡내가 진동할 뿐이다.

환기를 시키려고 뻐체우라를 젖힌다. 노란 햇빛이 반대편 벽에 있는 히말라야 달력사진에 내려앉아 너울댄다. 투명하고 생생한 햇빛, 푸른 티크나무숲, 눈 덮인 안나푸르나, 잔잔하게 물결치는 페와호, 그리고 사탕수수를 빨아먹으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 아버지는 해마다 똑같은 달력을 사온다. 아버지가 그 사진을 보면서 기쁨을 얻듯이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걸까? 하지만 내 눈엔 오후의 햇빛을 받은 히말라야가 금으로 씌운 어금니처럼 보일 뿐이다. 녹아내리기 직전의 노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거나. 달력에는 여전히 검고 굵은 동그라미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요즘엔 이상하게도 입에서 아무 말이나 튀어나온다. 학교에서 내내 긴장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모든 게 귀찮고, 무엇보다 화가 난다. 오늘은 희경이 오빠가 친구들을 데리고 쉬는 시간마다 우리 교실로 내려왔다. 나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수업이 시작된 뒤에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겁이 나서가 아니었다. 일대일이라면 자신있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덤벼들어 쥐 잡듯 나를 짓밟는다면, 앞으로 나를 볼 때마다 누구든 그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그것만은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아기 손바닥만큼 작아진 빛은 뻐체우라가 흔들릴 때마다 놀란 듯 부르르 떤다. 갑자기 잠이 몰려온다. 아버지처럼 고향 가는 꿈이라도 꿀 수 있다면 좋겠다. 밤마다 아버지는 낡은 춤바를 입고 고향마을로 찾아가는 꿈을 꾼다. 노란 유채꽃 언덕 너머 보이는 눈부신 설산과 낯익은 황토집, 정다운 마을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꿈에서 아버지는 가녀린 퉁게꽃과 붉은 비저꽃이 흐드러진 고향집 마당으로 들어서서는 가족과 친지에 둘러싸여 달과 바트, 더르까리(야채반찬), 물소고기에 토마토 양념을 발라 구운 첼라를 실컷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려고 하면, 누군가 아버지 앞을 가로막으며 거칠게 끌어낸다고 했다. “난 한국으로 돌아가야 돼. 거기 내 가족이 있어. 제발, 보내줘. 일자리도, 이웃도, 내 청춘도 다 거기 두고 왔단 말이야. 제발!……” 잠꼬대 끝에 몸을 벌떡 일으키는 아버지는 매번 황급히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고는 땀으로 흥건해진 속옷을 벗으며 어둠속에서 긴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렇지만 나보다는 낫겠지. 난…… 태어난 곳은 있지만 고향이 없다. 한국에 네팔 대사관이 없어 아버지는 혼인신고를 못했다. 그래서 내겐 호적도 없고 국적도 없다. 학교에서조차 청강생일 뿐이다. 살아 있지만 태어난 적이 없다고 되어 있는 아이……

깜빡 잠들었던 걸까. 눈을 뜨니 방안이 어둑어둑하다. 눈을 비비고 밖으로 나간다. 오늘도 비재아저씨는 감나무 밑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고 있다. 술이라면 한잔도 못 마시는 아저씨 얼굴이 이상스레 붉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수돗가는 사람들로 번잡하다. 쪼그리고 앉아 감자를 깎는 미얀마 아저씨 뚜라의 발등 위로 누군가 쌀뜨물을 하얗게 흘려보내고, 요란하게 뚝딱거리는 도마 위에선 양파와 피망과 호박이 다져진다. 꼬챙이로 꿴 양고기가 팬 위에서 지지직 소리를 내며 노린내를 풍긴다. 발목에서 찰랑대던 어둠이 머리끝까지 차오르자, 감나무 가지에 걸린 백열등도 노랗게 빛을 발한다. 러시아 아가씨 마리나는 데운 양동이의 물을 세숫대야에 부어 금발의 긴 머리를 헹구고, 어린 토야는 저녁 짓는 엄마 등에 업혀 방긋방긋 웃는다. 온갖 나라 말과 온갖 음식냄새가 뒤섞인 마당은 벌, 나비가 윙윙대는 야생화 꽃밭처럼 향기롭고 소란하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생일날까지도 야근을 하나보다. 음식을 준비해야겠다. 고향을 느낄 만한 걸로. 그러면 아버지 맘도 누그러지겠지. 선반을 뒤져 양파와 감자, 쩌나콩 한줌을 찾아낸다. 우선 쩌나콩을 물에 담가 불리고 감자와 양파 껍질을 벗겨 잘게 자른다. 네팔 버터 기우에 잘게 자른 재료를 넣고 살짝 볶은 다음 잠시 생각하다가 거럼메살라(여러가지 양념을 말려 가루로 만든 것) 가루가 든 봉지를 꺼낸다. 봉지가 홀쭉하게 구겨져 있다. 거꾸로 들어 흔들어보니 바닥에만 남아 있던 가루가 조금 날린다. 지라와 랑, 쑥멜, 고추, 더니아 따위가 들어간 그 양념이 없으면 더르까리 맛을 제대로 낼 수 없다. 숟가락을 냄비에 푹 꽂고 가스불을 꺼버린다.

 

미래슈퍼에는 평소처럼 텔레비전이 크게 틀어져 있다. 며칠째 텔레비전은 외국인노동자에 관한 뉴스를 되풀이해 들려줬다. 내 고향 특산물 따위를 소개한 뒤 불법체류 외국인을 강제추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내보냈고, 시트콤을 통해 폭소를 퍼붓고 나서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가 열차에 몸을 던진 소식을 전했으며, 드라마와 토크쇼까지 끝난 자정 무렵에는 출국하는 외국인노동자들로 붐비는 공항을 보여주었다. 너무 많이 듣다보니 남의 일처럼 따분하게 느껴진다.

슈퍼마켓 한켠에 놓인 간이탁자 주위에는 남자 어른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바람이 이마를 건드리고 지나갈 때마다 소란스런 말소리가 들려온다. 한국어에다 러시아어와 영어, 네팔어까지 뒤섞인 그 기묘한 말은 내 고막을 건드리는 순간 한국어로 바뀌어 머릿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그중에는 쿤도 앉아 있다. 쿤이 나를 알아보고 손짓한다. 가까이 다가가자 오징어 다리를 잘라 내 손에 쥐여준다.

“러시안 룰렛이야. 이번엔 팟의 손이 다음엔 쑤언의 팔이 날아가는 거지.” 몸집이 크고 얼굴이 시체처럼 하얀 우즈베끼스딴 사람 세르게니는 손가락으로 권총모양을 하고 맞은편에 앉은 이란 청년 샨을 겨누면서 짓궂게 말한다. “맞아. 하지만 누구든 당일날 점심까진 웃고 떠들지. 심지어 졸기까지 하고. 쿤 너도 일하다가 졸았지?” 윗단추 두세 개를 풀어 가슴털을 드러낸 샨은 소주를 입 속에 털어 넣으며 맞장구친다. “나 졸지 않았어. 그냥 좀…… 딴생각은 했지만.” 쿤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흔든다. “마찬가지야. 기껏해야 마리나 생각이겠지. 아무튼 그러다 갑자기 자기 차례를 맞는 거야. 덜컹.” 세르게니는 손으로 권총 쏘는 시늉을 한다. 샨이 가슴을 감싸며 옆으로 푹 쓰러진다. 쿤은 남의 얘기 듣듯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소주병을 들어 필용이 아저씨 잔에 따른다. 머리카락이 빠져 정수리가 훤한 필용이 아저씨는 손사래 치며 취한 목소리로 말한다. “염병, 그만들 해라. 니들 쏼라대는 소리 땜에 내가 꼭 넘에 나라에 와 있는 거 같잖여. 니들, 이 나라가 워떻게 오늘날 여기꺼정 왔는 줄 아냐? 옛날에 내가 공장에서 일할 땐 손가락은 유도 아녔어. 팔뚝이 날아가고 모가지가 뎅겅뎅겅했으니까.” 아저씨는 곧게 편 손을 목에 갖다대고는 세게 내려치는 시늉을 한다. “첨엔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들이라 뭣 모르고 일했지. 허긴 먹고살기 힘들 때였으니까. 인제 한국놈들은 이런 데서 일 안혀. 막말로 씨발, 험한 일이니까 니들 시키지 존일 시킬려고 데려왔간?” 옛날이 떠올라서인지 아니면 술기운이 돌아서인지 아저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안전장치는 해줘야죠.” 세르게니가 오징어를 물어뜯으며 말한다. “늬들도 자르면 피 나오고 누르면 똥 나오는 사람이다, 이거냐? 웃기는 소리들 마. 한국놈들한테도 안해준 걸 늬들한테라고 해주겠냐? 아니꼬우면 돌아가. 젠장, 어차피 늬들도 고국으로 돌아가서 공장 차리고 사장되려고 여기 왔잖냐. 노동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되는지 눈 똑바로 뜨고 배워 가. 다 산 교육이여.” 비아냥대는 필용이 아저씨 말에 쿤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세르게니가 볼멘소리로 대꾸한다. “아무튼 돈도 좋지만 우린, 사람대우, 그거 받고 싶어요. 돈 벌어 고향 간다고 해도 삼년 겪은 일, 삼십년 동안 악몽으로 남아 우릴 괴롭힐 거예요.” “맞아. 난 지금도 가끔 어릴 때 앞니 갈던 때 꿈을 꿔.” 손가락으로 앞니를 가리키며 샨은 멋쩍게 웃는다.

오징어를 입에 물고 나는 유리창에 붙어 있는 글자들을 유심히 본다. Alladin 10달라. FirstClass 10달라. 그 옆에는 전화카드 사용시간도 적혀 있다. 타일랜드 80, 스리랑카 47, 파키스탄 46, 사우디아라비아 50, 이란 70, 필리핀 80, 러시아 125. 물건을 고르는 것처럼 진열대를 죽 돌아본다. 온갖 종류의 과자와 빵, 강렬한 색채의 음료수가 눈속으로 빨려들어온다. 뱃속이 쓰리고 아프다.

“바윗고개 언덕을 홀로 너엄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십여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납니다……” 필용이 아저씨가 무릎장단에 맞춰 노래 부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쿤이 갑자기 입을 연다. “여기 올 때 진 빚도 다 못 갚았는데 이 꼴이 됐어. 고국에 돌아가봤자, 손가락질밖에 기다리는 거 없으니……” 쿤의 눈길이 닿는 창밖으로 마을버스 한대가 지나간다. 버스가 일으키는 바람에 전신주 옆에서 웃자란 고들빼기가 조용히 흔들린다. “마을을 빠져나오기 전에 만난 친척아저씨 말이 생각나.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길을 절름대며 걸어온 아저씨는 땀을 닦으며 말했지. 가지 마라. 내 절름대는 다리를 보고도 고향을 떠나겠다는 거냐? 아녜요, 아저씨. 전 구르카 용병으로 전쟁터에 가는 게 아녜요. 전 한국으로 일하러 가요. 거긴 안전한 곳이냐? 아무렴요. 몇년 일하고 돌아오면 시내에다 큰 가게를 차릴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 대나무다리를 건너 마을을 빠져나왔지. 가시나무 뜯는 사양무리 옆을 지나, 마르샹디 강변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었어. 매 한마리가 골짜기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천천히 머리 위를 날더니 고향마을 쪽으로 날아가더군. 갑자기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어. 마침 내가 타야 할 타타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더군. 거역할 수 없는 운명, 까르마처럼……” 쿤의 물기어린 눈을 보더니 샨도 덩달아 어린애처럼 울먹인다. “난 여기서 못된 짓을 너무 많이 했어. 그래서 집으로 못 돌아가. 나, 공장에서 주는 돼지고기 아주 많이 먹었어. 게다가 돼지피로 만든 순대까지. 여기서는 문제없지만 고향에선 달라. 신 앞에 절을 하면서 죗값을 치러야 하는데…… 솔직히 무서워. 아무도 보지 않는 이곳에서라면 상관없지만……”

나는 칫솔, 치약, 고무줄, 면장갑 따위의 잡화 진열대 앞을 지나 카운터 쪽으로 다가간다. 진열된 담배들 중에 하나 남은 네팔산 ‘수리예’를 면장갑 더미 뒤로 슬쩍 밀어넣는다. 그러고 나서 큰 소리로 묻는다.

“수리예는 없나요?”

언제나 뚱뚱한 배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주인아주머니가 쪽방에서 하품을 하며 나온다. 가짜 결혼을 해주고 외국인한테 매달 삼십만원씩 받는 아주머니는 배가 전보다 더 나왔다.

“네팔 담배 말이냐?”

아주머니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졸음기 섞인 목소리로 되묻는다. 나는 자신있게 네,라고 대답하고 나서 아주머니가 담배를 찾는 동안 거럼메쌀라 양념봉지를 허리띠 안쪽에 쑤셔넣는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쿠우 한병을 잠바 안쪽 겨드랑이 사이에 끼운다. 숨이 멎는 것 같았지만 조금 지나니까 견딜 만했다.

“다른 담배는 안돼?”

“요즘 아버지의 향수병이 심해서요. 꼭 네팔 담배를 피우고 싶대요. 그 냄새를 맡으면 고향의 가족들 곁에 있는 것 같다면서.”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으며 거짓말을 보탠다. 그때 마침 가게문이 열리더니 진성도장에 다니는 나딤 몰라가 안으로 들어온다. 키가 작고 눈썹 뼈가 심하게 튀어나온 그 인도아저씨는 노랭이라고 불린다. 작년에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꾸빌이 심한 화상을 입고 죽었을 때, 조의금은커녕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이 장례비를 모아 벽제 화장터로 간 일요일까지 그는 특근을 했다고 한다. 그날, 아버지와 몇몇 주위 사람들은 뼛가루가 담긴 상자를 안고 어두워지는 공장 골목을 이리저리 다녔다. 고개를 숙이고 걷던 사람들은 사고가 난 공장 앞에 멈춰섰다. 입구를 막아놓았던 서너 개의 합판은 누군가 벌써 발로 차 안쪽으로 넘어져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웅얼거리듯이, 그러다가 짐승들이 울부짖듯이. 하지만 쏟아지는 비 때문에 노랫소리는 멀리 퍼져나가지 못했다.

노랭이는 양손 가득 선물보따리를 들고 있다. 그는 내일이면 고국으로 돌아간다며 입가에 흰 거품을 물고 신나게 떠들어댄다. 이 마을에 살면서 돈을 모아 귀국하는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다. 노랭이는 콜라 한 병과 소주 두 병을 들고 사람들이 둘러앉은 탁자로 다가가 선심쓰듯 소리나게 내려놓는다. “사람 안 같은 놈 꺼, 안 먹어.” 누군가 소리치자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술이라면 환장하는 필용이 아저씨조차 휘청대며 나간다. 그들 뒤에 대고 노랭이가 소리친다. “사람 안 같은 건 니들이야, 새끼야. 언제까지고 돼지우리에서 살 거잖아. 난 고향 돌아가면 새 집 짓고 새 이불에서 잠잘 수 있어. 큰 가게도 차릴 거고. 알겠냐, 이 돼지새끼들아. 꾸달바짜(개새끼)! 슈와레나짜(돼지새끼)!”

세르게니가 몸을 휙 돌리더니 주먹을 날린다. 노랭이는 탁자 위로 쓰러지고 병들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깨진 병조각과 술, 콜라거품이 뒤섞여 가게 바닥이 어수선하다. 주인아주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나와 술꾼들 장딴지를 때리며 내쫓는다. “에구 지겨워. 이 노린내 나는 동네를 어서 떠야지.” 아주머니는 바닥을 쓸면서 투덜거린다. 노랭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가의 피를 닦고 머리 모양을 매만진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보이더니 쇼핑가방을 챙겨 쥔다. 가게를 나서려다 말고 그는 초콜릿을 집어 나에게 건넨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내 턱밑으로 가까이 들이밀며 한번 더 권한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나는 입술을 꼭 다물고 더 세게 머리를 흔든다. 순간 노랭이 눈가가 붉어지더니 눈물이 맺힌다. 고름처럼 진한 눈물이다. 어쩔 수 없이 한쪽 손을 내미는 순간, 겨드랑이에 있던 쿠우병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등짝이 서늘하고 식은땀이 난다. 재빨리 가게 밖으로 튀어나가 도망치는데 등뒤에서 암고양이처럼 앙칼진 목소리가 쏟아진다. “야, 이 쥐새꺄, 어딜 도망가. 당장 네 애비를 이미그레이션에 고발할 테니 그런 줄 알아!”

진성도장, 화진스펀지, 원일공업, 신광유리, 동북컨베이어공업을 단숨에 지나친다. 가구단지 입구에서야 겨우 걸음을 멈춘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허리를 구부린 채 헉헉댄다. 목이 마르고 가슴이 활활 불타오른다. 흰 거품을 일으키며 쏟아지던 쿠우가 눈에 선하다. 핥아서라도 먹고 싶다.

 

공장지붕 위로 뜬 희미한 달을 뒤로하고 나는 정처없이 걷는다. 가랑잎 하나가 사선을 그으며 팔랑팔랑 떨어져내린다. 날씨가 흐려지려나보다. 아버지는 나한테 나뭇잎 떨어지는 것으로 날씨를 미리 아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네팔에서 천문학을 공부한 아버지는 별이나 달을 보고 현재의 위치를 가늠할 줄 안다. 구름의 모양이나 색깔, 두께를 보고 날씨를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곳에서 별을 연구하는 대신 전구를 하루에 수백개씩 만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대롱을 입에 대고 후 후, 숨을 불어넣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전구들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아버지 입술에서 태어났다. 그럴 때 아버지는 마치 마술사처럼 보였다. 신기할 정도로 똑같은 크기, 찌그러지지 않고 완전한 동그라미…… 그중에는 크리스마스 나무를 장식하는 꼬마전구도, 간판 테두리에 촘촘하게 박는 풋살구만한 전구도 있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어쩌다 동전이 생기면 풍선껌을 사서 아버지처럼 후후 풍선을 불어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버지의 폐에서 나와 입술 끝에서 내뱉는 바람으로 만들어낸 전구들은 금세 아버지 곁을 떠나 휘황한 백화점 건물에서, 거리의 간판에서, 혹은 야시장에서 환호성을 질러대듯 반짝였다. 그런 밤에도 아버지는 나달나달해진 폐를 쓰다듬으며 흐린 형광등 아래로 기어들어왔다. 아버지한테서는 짐승냄새가 났다. 땀과 화학약품과 욕설에 전, 종일 쉬지 않고 일한 몸뚱이가 풍기는 고약한 단내.

어머니는 언제나 한국말로 아버지에게 따졌다. 마치 송곳에라도 찔린 사람처럼 가늘고 날이 선 목소리로. 아버지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버지는 더듬거렸고 숨이 차 헐떡였다. 그러면 다시 어머니가 가래가 튀어나올 정도로 목청을 높였다. 어머니는 돈도 제대로 못 버는 아버지와 의료보험조차 없는 이주노동자 처지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언제나 한국남자와 혼인해서 잘살고 있다는 친구 얘기를 끄집어내어 신세한탄을 했다. 내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머니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그러게 잘 때 이불을 걷어차지 말랬잖아. 병원 한번 갔다오려면 몇만원이 깨진다구. 벌써 석달째 월급이 밀렸어.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 하면서 차가운 물수건을 내 이마에 철퍼덕 얹어주었다. 그런 어머니가 십년 전엔 열이 펄펄 나는 아버지 이마를 부드러운 손길로 짚어줬다니, 한때 연보랏빛 말링고꽃처럼 예뻤었다니. 아버지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기침이 멈추지 않아 아버지는 할수없이 직장을 옮겼다. 아버지의 새 직장은 상자를 만드는 곳이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거운 종이를 어깨에 지고 나른다. 기계에서 칼선대로 찍혀나온 종이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주스 상자가 되고 종합선물세트 상자가 되고 고급 와이셔츠 상자가 되었다. 그것들을 백화점에 보내면 속에 내용물이 담겨 진열된다고 한다. 나는 한번도 백화점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작년 겨울에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생일 전날 찾아간 적이 있는데 입구에 서 있는 양복쟁이 아저씨가 앞을 가로막았다. 아버지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보여주며 나 돈 있어요, 여기 봐요,나도 물건 살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양복쟁이는 막무가내였다. 그날 우리는 결국 어머니가 바라던 고급 블라우스를 사지 못했다. 어머니가 기어코 아버지 곁을 떠난 건 그 때문일까.

긴 생머리를 고무줄로 대충 묶은 채 옆방 토야 엄마랑 종일 나사를 끼우던 어머니는 그즈음부터 원당에 있는 식당으로 일을 나갔다. 얼마쯤 지나자 어머니는 구슬 박힌 핀이며 씰크스카프 따위가 담긴 예쁜 상자를 집으로 가져왔다.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며 어머니는 내게 눈을 찡긋, 했다. 누구한테서든 그런 선물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어머니가 더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좋겠거니 생각한 나는 그 일을 아버지한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물상자가 쌓일수록 어머니는 점점 더 신경질을 부려댔고 분첩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두드려댔다.

집을 나가던 날 아침에 어머니는 모시조개를 넣은 미역국을 끓였다. 국 한그릇을 다 비우고 좀더 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저녁에 실컷 먹으라며 어서 학교에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오늘 어디 가?” 왜 그렇게 물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집에 와보니 어머니가 없었다. 대신 미역국이 한솥 끓여져 있었다. 나는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기다려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아버지가 야근하는 공장에서 나오는 덜컥대는 기계소리가 바람벽을 뚫고 밤새 들려와 내내 벼랑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어야 했다.

가구단지로 접어드니 사방이 휘황하다. 온갖 종류의 전구와 네온싸인이 켜져 있다. 보루네오, 리바트, 대진침대, 이태리가구 앞을 지난다. 전시장마다 내걸린 수입명품 특별전, 고급 엔티크 가구 할인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습기 품은 바람에 들썩댄다. 통유리 안쪽에는 크고 화려한 침대며, 콘솔, 소파 따위가 멋지게 진열되어 있다. 고급스런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그 사이로 걸어다니고,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들은 가구를 보여주거나 종이에 뭔가 쓴다. 문득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비재아저씨와 3호실의 낡아빠진 캐비닛, 총탄에 맞은 것처럼 구멍 뚫린 벽, 그리고 땅에 매여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코끼리의 짓눌린 등이 떠오른다. 가당치도 않다. 저 사람들하고 신세를 비교하다니.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눈을 돌린다. 허리춤에 손을 대보니 거럼메살라 봉지가 만져진다. 마음이 뿌듯하다. 양말이라도 하나 예쁘게 포장해 아버지께 드린다면 더 좋겠지만 그러려면 문방구에 들어가 또 훔쳐야 한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큰길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선다. 미래슈퍼 앞을 지나지 않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 길은 전에 친구와 가본 적이 있어 낯익다. 어둠이 짙다. 더듬듯이 한발 한발 내딛는데도 웅덩이에 발이 빠져 넘어질 뻔한다. 그래도 어지러운 네온불빛보다는 고른 어둠이 낫다. 가망없는 인정을 기대하는 것보다 도둑질을 할 수 있는 강한 심장이 더 나은 것처럼. 아버지는 미친 듯이 빛을 뿜는 네온싸인은 단 하나의 그림자도 만들지 못한다고 늘 못마땅해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푸른 달빛을 그리워했다. 밤이면 만병초 그림자를 땅 위에 가지런히 뉘어놓고 세상을 휴식하게 한다는 히말라야의 달빛…… 오늘밤엔 왠지 나도 그런 달빛이 보고 싶다.

골목 모퉁이 은밀한 곳에 다다르자 빅토리아 관광나이트클럽 포스터가 붙어 있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 아래 벗은 마리나 모습이 도드라진다. 젖가슴을 반 이상 드러낸 까만 브래지어와 반짝이 팬티를 입은 마리나는 엉덩이 뒤쪽으로 공작꼬리처럼 생긴 화려한 인조깃털을 매달고 있다. 대리석처럼 하얗고 긴 팔다리는 압사라 춤을 추듯 기묘하게 꼬여 있다. 금발머리를 틀어올리고 입술을 빨갛게 칠해 쉽게 알아볼 수 없게 분장했지만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만은 숨길 수가 없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그녀는 축사건물로 이사온 며칠 뒤에 수돗가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까스예요. 네팔말로 하늘이란 뜻이래요.” “그래? 내 이름은 마리나. 러시아어로 바다란 뜻이야. 파란 하늘, 파란 바다……” 입술을 달싹이며 그 말을 되풀이하던 마리나는 하바로프스끼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 까따리나, 그리고 죽은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릴 적에 온가족이 집 둘레에 사과나무와 체리나무, 슬리바나무를 심던 이야기, 주말이면 근처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숲에서 송이버섯을 따던 이야기,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꿈꾸듯 빛나던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그러나 아버지가 체첸 전쟁에서 죽은 뒤 혼자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마저 병들어 한국행 배를 타게 됐다는 말을 하면서부터 깊은 바닷물처럼 일렁였다.

나는 마리나 배꼽 주변에 누군가 묻혀놓은 검은 얼룩을 손으로 닦아준다. 얼룩은 잘 지워지지 않고 대신 종이가 찢어진다. 마리나는 상처가 난 채 억지로 웃는 것 같은 이상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분다. 담장을 넘은 정원수들이 딸꾹질을 하며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조금 더 걸어가니 빨간 벽돌로 지은 이층집이 보인다. 찌아처럼 부드러운 빛이 커튼을 뚫고 흘러나온다. 난생처음 반 친구한테 초대받아 갔던, 바로 그 집이다. 어느날 그애는 자기 집에 같이 가겠느냐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그애는 누가 볼까봐 겁내는 듯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못 알아들은 것 같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바짝 다가와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아니, 작지만 몹시 퉁명스런 말을 내동댕이쳤다. 우리 엄마가 너더러 한번 들르래. 그애는 열 발자국쯤 앞서서 걸으며 가끔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헬로, 나이스 투 미튜.” 친구 어머니는 빨갛게 칠해진 얇은 입술을 실지렁이처럼 꿈틀댔다. 잇몸을 드러내며 크게 웃는 입과 차고 날카로운 눈이 묘하게 합해진 얼굴이었다. 우물쭈물 하다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아줌마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 영어를 잘 못하니? 네팔 애라고 해서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는 이제부터 영어로만 말하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떡볶이와 스파게티를 주지 않겠다면서. 떡볶이와 스파게티…… 고통스러울 정도로 속이 쓰리고 아프다. 그애나 아줌마나 다 맘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초인종을 누르고 싶다. 지난번처럼 영어 몇마디를 가르쳐주면 뭐든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키큰 풀들이 흔들리고 있는 공터를 지난다. 말라가는 풀냄새와 분뇨냄새가 풍겨온다. 공터 여기저기에 함부로 버려져 있는 냉장고와 부서진 의자, 자질구레한 플라스틱 잡동사니들 위로 호박덩굴이 무성하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며 골목으로 걸어오고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키에다 양손에 쇼핑백을 든 걸 보니 노랭이가 분명하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공터 옆으로 난 산길로 더 많이 돌아서 가야겠다. 산길로 접어드는데 발밑에 뭔가 걸린다. 무성하게 자란 호박덩굴이다. 늦가을까지 남아 노끈처럼 질겨진 덩굴은 내 발목을 휘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주저앉아 덩굴을 푼다. 노랫소리는 점차 가까이 다가오더니 다시 멀어진다. 그때, 버려진 냉장고 뒤에서 검은 물체가 솟아오른다. 검은 물체는 빵처럼 점점 부풀어오른다. 노랭이는 더 빠른 박자로 노래한다. 검은 물체가 소리없이 노랭이 뒤를 따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뚝 끊긴다. 검은 물체는 쓰러진 노랭이 앞가슴에서 심장을 뜯어내듯 지갑을 뺏는다. 희미한 달빛 아래 입을 벌리고 웃는 얼굴이 얼핏 보인다. 비재아저씨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눈꺼풀 안쪽으로 은색 코끼리 한마리가 나타난다. 구덩이에 발이 빠진 코끼리는 큰 귀를 펄럭이며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발버둥칠수록 뒷다리는 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간다. 구덩이는 삽시간에 시커먼 늪으로 변하더니 뭐든 집어삼킬 태세로 거세게 휘돌아간다. 아, ‘외’다. 현기증이 일도록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외’…… 코끼리는 맥없이 빨려들어간다. 미처 비명을 지르지 못하고 눈을 부릅뜬 채. 눈앞이 온통 까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