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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이라크의 폐허 위에서 반전과 평화의 꿈을
허혜경 許慧瓊
반전평화활동가, 사회당원. 연세대 사회학과 대학원 재학중. neoveritas@hanmail.net
전쟁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며 특히나 20세기는 전쟁과 대학살의 시대였다. 민족·종교·이념·종교적 갈등은 곧 서로를 죽이는 전쟁으로 치달았으며, 전쟁을 수행하는 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비참한 고통을 당해왔다. 나 또한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전쟁과 크고 작은 분쟁을 접하면서 처절한 파괴와 유린 앞에서 깊은 슬픔을 느끼곤 했지만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인류의 일상이라는 절망에 잠시 잠겨 있던 것이 고작이었을 뿐, 전쟁을 평화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1월초쯤인가, 미국이 벌이려는 이라크전쟁을 ‘실제로’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라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 중에는 ‘우리의 이름을 내세워서 전쟁하지 말라’는 슬로건을 내건, 9·11 테러로 가족을 잃은 유족회 성원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가슴속에 격동이 일었다. ‘아, 나도 가야겠다. 내가 저런 일을 해야 되겠다.’ 죠지 오웰이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반파시즘 투쟁의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이유가 다름아닌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 이것은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이 아닌, 바로 나에 대한 모독이자 전쟁이구나.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치열한 고민보다는 담백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 때가 많다. 이것저것 재거나 따지기 시작하면 두려워질 것 같아서 두눈 질끈 감고 이라크행을 결정했지만 막상 마음먹고 나니 끔찍한 전쟁에 대한 영상이 머릿속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펼쳐지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나 폭격으로 느끼게 될 공포가 엄습하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출국일자가 잡히고 함께 이라크에서 평화활동을 하기로 한 사람들을 만나 오랜 시간 토론하고 격려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떠한 상황도 두려울 것 같지 않다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나를 비롯한 팀원들을 이라크로 이끈 동력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는지도 모른다. 2월 16일, 나를 포함한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이하 평화팀) 2진 출국자 네 명은 요르단 암만 행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타고 떠났다. 오해와 무지로 인해 또 한번 파괴될 땅 중동으로.
평화팀 결성은 사뭇 신속하고 우연적이었다. 올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 사이에서 전쟁이 임박한 이라크 현지에서의 전쟁 억제활동에 대해 조심스레 논의하다가 주변의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등에 알음알음으로 제안하면서 자원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분쟁지역으로 직접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민감했던 만큼 정부의 출국금지조처 등의 가능성에 대비해 활동을 알리고 공개적으로 자원자를 모집하지 못했다. 2월 7일 출국한 1진과 2월 16일에 출국한 2진을 중심으로 활동계획을 세우면서 IPT(Iraq Peace Team, 미국의 오랜 평화단체 ‘황야의 목소리’가 이라크전쟁을 막기 위해 새로 결성한 현지 평화팀)와 접촉했고, 그후 평화팀의 활동상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자원자가 생겨났다.
평화팀의 구성원들은 평화운동가를 비롯해, 사회주의자, 여성운동가, 학생, 신부, 동화작가, 노동자, 시민단체 활동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기자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다. 단 한치의 명분도 없는 이라크전쟁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사람들, 우리는 전쟁보다는 사랑과 평화가 더 낫다는 당연한 이상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랑과 평화를 염원하는 전세계의 반전평화운동가들과 함께, 이라크 민중들의 연대로 이 오만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막아낼 수 있다는 구체적인 믿음을 갖고 이라크로 향했다.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전쟁 기도를 통해 근대이성의 처참한 파괴를 목도했다. 우리는 삶의 터전이, 사랑과 평화의 마음이 전쟁의 문법으로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을 절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 “이제 전쟁은 근친상간과 같이 인류의 터부가 되어야 한다”고 에코는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대규모로 살상하는 전쟁, 삶의 터전과 모든 생명을 유린하는 전쟁,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닌 세상과 적에 대한 증오를 대물림하는 전쟁, 그리하여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까지도 파괴하는 전쟁은 절실하게 막아야만 했다.
2월 19일, 요르단 암만에서 육로로 14시간을 달려 도착한 바그다드의 아침은 눈부셨다. 지난밤 요르단-이라크 국경에서 초조하고 지리한 시간을 보낸 나는, 무표정한 이라크 관리들을 보면서 전쟁을 코앞에 둔 사람들은 침울하고 도시는 스산할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하지만 이른 아침 도착한 바그다드의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섰을 때, 나는 이라크 사람들의 활기차고 평화로운 일상에 압도당했다. 바그다드에서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내며, 당장 내일이라도 전쟁의 포화 속에 잠길 것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무너진 집 담장을 수리하고, 이슬람 사원(모스크)에 모여 기도를 드리고, 하루에도 수많은 남녀가 결혼식을 올렸다. 사재기와 눈에 띄는 동요, 부산스러운 전쟁준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곳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거짓말 같았다. 전쟁은 언제나 비현실적인가.
수십년간 전쟁을 겪으며 전쟁의 절망과 아픔을 내면화한 사람들, 12년간의 경제제재로 기초 의약품도 없이 신음하고 가난에 찌들어 어린 자식들을 구두닦이로, 담배장수로 내보내야 했던 그들은 어찌되었건 현재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섣불리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부터 들기 시작했다. 걸프전 이후 미군의 계속되는 폭격과 지속된 경제제재로 인해 고통받고 어느덧 전쟁이 일상이 된 그들의 삶은 나에게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잠깐의 감상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위험한 이땅을 떠날 수 있는 나는 아무래도 이방인일 뿐이니까.
그러나 우리 평화팀은 이라크 민중으로부터 너무나 큰 환대를 받았다. 거리에서 반전행진을 할 때 많은 이라크 사람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며 걸어갔고, 바그다드 시내 중심부의 해방광장(타흐리르 광장)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메씨지를 담은 대형 걸개그림을 그릴 때에도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저마다 여백에 무언가를 적어넣었다. 길이가 15미터나 되는 대형 걸개그림은 해방광장의 정중앙(서울시청 앞 광장쯤 되는 곳)에 걸렸다. 그 걸개그림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만날 때마다 “살람”(평화)이라는 인사를 건네는 그들은 위험한 조국땅에 외국인들이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던 것 같다.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이 먼 땅까지 날아왔다는 사실에 그들은 희한한 생김새의 외국인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올드 바그다드라는 마을에 들어갔을 때다. 일정이 끝났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입소문을 타고 몰려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급속도로 불어난 아이들과 우리는 어느덧 시위행렬을 이루었다. 신이 난 아이들과 한 줄로 손을 잡고, 손뼉을 치며 거리로 나왔다. 그러다 어떤 아이들이 “Peace, Peace”를 외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만들어온 뱃지들을 건네받은 아이들과의 뜨거운 행진. 그러나 그 순간의 뜨거운 감동만큼 마음 한구석이 어두워졌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손을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몇십년 전 지프차를 따라 달려가며 미군이 던져주는 초콜릿을 주워먹던 우리들의 모습과 닮지 않았을까. 혹시 우리에게 그런 우월감은 없었을까.
친해진 이라크 친구가 있다.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는 카심이다.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머가 필수적인 때문일까. 그는 시답잖은 농담으로 언제나 우리를 웃겼고, “아마 네가 한국에 돌아가면 TV를 통해 내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볼지도 몰라”라는 섬뜩한 말도 우스운 제스처를 취해 보이며 희화화시키곤 했다. 어느날 카심의 집에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네살 난 아들 하이달의 정수리에 눈을 감고 키스하는 것을 보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잘살지는 않지만 단란한 이 가정에 포탄이 떨어진다는 것은 죄악이다. 아빠가 하는 일이라면 다 따라하는 수줍은 하이달이 ‘충격과 공포’ 속에 떨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항상 재밌기만 하던 카심과 함께 눈물을 흘린 적이 한번 있다. 바그다드에 남을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결정해야 했던 날 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라크 당국의 상상을 초월하는 감시와 통제 때문에 정부에 대한 비판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카심도 그날만은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라크에는 2천2백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교육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구걸하고,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정부에서 배급받는 물품조차도 되파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우리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는가. 이란과 8년간 전쟁을 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과연 후쎄인 정권이 국민에 대해 생각하고 있기는 한 건가. 그들은 모든 것을 얻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다…… 걱정하지 마라. 난 괜찮을 거고 내 가족도 그럴 것이다. 신(알라)은 죄없는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만약 실수로 잘못된 일이 일어나더라도 죄없는 사람들은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에 남기를 원하는 나에게 카심은 울먹이며 말했다. 위험하니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달라고, 자신은 전쟁과 함께 살아서 폭격소리조차도 음악처럼 들을 수 있는 강한 심장을 가졌지만 너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우리가 다시 만나길 원하고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면 한국으로 돌아가 이라크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나는 “그럼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고 말하고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전세계에서 온 평화운동가들을 만났다. 국적의 다양성만큼 사상적 지향과 나이도 천차만별이었다. 마리화나를 하며 ‘사랑’을 외치는 히피의 적자부터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빠띠스따 비폭력주의자 들을 보았다. 그중 특히 관심을 끌었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비폭력 직접행동’을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채택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이제껏 전통적 운동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운동이 힘들고 사상적 좌표가 흐릿할 때 사람들이 정신세계니 영성이니 하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던 터였다. 그러나 나도 마음 한구석에는 싸우면서 닮아가는 것에 대한 환멸,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의 고갈이 괴로웠다. 그러나 비폭력주의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사람들, 조용히 싸우면서 강한 힘을 발휘하는, 그러면서도 싸우는 대상과 닮지 않고 오히려 성자와 같이 변해가는 그들을 보며 잠시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전쟁기간에도 끝까지 이라크에 남아 이라크 민중과 함께하며 온몸으로 이번 침략전쟁의 부당함을 알렸다.
미·영 침략동맹군은 이번 전쟁에서 물리적으로 승리했다. 이번 이라크전쟁에 맞선 반전평화운동은 그 규모와 광범위함에서 유례가 없었고 국경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미국의 학살전쟁을 막기 위해 수많은 평화운동가들이 직접 이라크 현지로 들어갔으며 전세계 각국에서는 수십, 수백만명의 군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평화와 사랑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국의 학살과 횡포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국제평화세력의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다. 전쟁을 막기 위한 어떤 노력도 전쟁 자체를 상쇄할 수 없기 때문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자신의 책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Peace by Peaceful Means)에서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것을 ‘소극적 평화’로 분류하고 이것을 넘어선 ‘적극적 평화’ 개념을 제기한다. 갈퉁이 생각하는 적극적 평화는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 요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평화적인 방법을 채택하는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반평화’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평화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바로 평화를 위한 길이라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하지만 전쟁의 뿌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미군 점령으로 이라크의 불행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이 곳곳에 뿌려놓은 열화우라늄탄은 대를 이어 이라크 민중을 괴롭힐 것이며, 부모와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이라크의 아이들은 꿈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복수와 증오심을 키우며 자랄 것이다. 전쟁이 종결되는 것으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진실로 평화를 이룩하는 길은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닥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열릴 것이다. 평화는 그저 “난 평화를 사랑해요”라고 순진하게 주문을 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값싼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지겹도록, 고통을 겪어가며 쌓아올리는 만리장성이 되어야 한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이 읊조리지 않았던가.
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