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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평화체제와 평화운동(21세기의 한반도 구상 2)

 

지구화 기획의 위기와 부시의 새로운 경제학

 

 

월든 벨로 Walden Bello

필리핀대학 사회학 교수, 방콕에 본부를 둔 ‘남반구에 촛점’(Focus on the Global South)운동 공동대표. 저서로 People and Power in the Pacific: The Struggle for the Post-Cold War Order(1992), Deglobalization: New Ideas for Running the World's Economy(2002) 등이 있음. 이 글의 원제는 “Crisis of the Globalist Project and the New Economics of George W. Bush”이며 ZNet(www.zmag.org)에 2003년 7월 15일에 올려진 것임. W.Bello@focusweb.org

ⓒ Walden Bello 2003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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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이 글은 2002년 6월 베를린에서 열린 맥플래닛 총회(McPlanet Conference, 금융과세 시민연합의 주관하에 ‘지구화의 덫에 빠진 환경’이라는 주제로 열린 각국 환경단체들의 연합총회)의 발제문으로, 영문 원본은 『신노동 포럼』(New Labor Forum)의 가을호에 실릴 예정이다. 환경문제가 주 의제인 회의의 발제문인만큼 이번호 특집 주제인 평화의 문제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전체 논지는 반지구화운동으로서의 환경운동이 감안해야 할 오늘날 정치, 경제의 전지구적 맥락을 개괄하는 것인데, 필자 월든 벨로는 그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그 어떤 사회운동도 전지구의 생태적 과제에 대한 환경운동의 관심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과정은 환경문제를 감당치 못하는 모순을 안고 있고 이것은 지구적 자본주의 자체의 작동방식이기 때문에, 환경운동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의 의미를 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현단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모하는 종합국면에 대한 개괄을 통해 지금 절실하게 요구되는 반지구화 운동이 또한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임을 시사한다.

벨로에 따르면, 1990년대초 이래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지구화 기획은 1995년의 WTO 성립에서 절정에 달하지만 그후 1990년대말과 금세기초 위기에 봉착했다. 그 위기는 지구화가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경제 불안정, 1999년 씨애틀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 바 있는 대대적 저항과 균열, 더 나아가 치명적인 경기침체 국면으로 인한 것이다. 그런데 이 위기는 국가주의를 통해 대세를 되돌리려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의해 한층 심화되고 있다. 결국 이것은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만회하고자 하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는 불안정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합리성과 정당성의 위기, 경제위기를 가속화시킨다. 벨로는 미국이 제국주의적으로 세계 어느 곳에나 개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덫에 걸려 있는 상황임을 과잉팽창의 딜레마로 설명한다.

미 제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어는 싯점에서 지구화된 시민사회에 의한 반전평화운동은 이제 그 자체가 현단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저항이자 여타의 반지구화 사회운동이 내적으로 연대해야 할 운동이 된다. 벨로의 이 글은 그 어떤 사회운동도 평화운동을 겸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수사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현 국면의 반전평화운동이 갖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과 의의를 짚어내는 데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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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중요한 이 모임에 초대해주신 하인리히 뵐 재단(Heinrich Böll Foundation), 금융거래과세 시민연합(ATTAC, Association for the Taxation of financial Transactions for the Aid of Citizens) 독일본부 및 기타 이 총회를 조직한 다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 모두발제에서 전지구적 종합국면의 핵심사안들을 토론하려고 한다. 환경운동이 그 중요한 활동영역으로 삼아야 할 전지구적 정치·경제의 정황을 개략적으로 그려보려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가 탄생한 1995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8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태어난 세계무역기구는 기성언론에 의해 지구화시대에 걸맞은 전지구적 경제 통어(統御, governance)의 보배로 환영받았다. 세계무역기구를 밑받침하는 족히 20여개에 달하는 무역협정들은, 무역 강국과 약소국 모두 실질적인 강제시행조치들이 부착된 공동의 협정들에 종속시킴으로써 무역관계에서 힘과 강압을 없앨 일련의 다자간 규약들(multilateral rules)로 제출되었다. 죠지 쏘로스(George Soros)는 세계무역기구가 획기적 사건이라고 선언했는데, 이 기구야말로 세계경제의 우두머리 격인 미합중국도 복종하게 만들 유일한 초국가적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세계무역기구에서는 강대국인 미합중국과 약소국 르완다가 똑같이 한 표밖에 행사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1996년 11월(실제로는 12월–옮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제1차 외교통상분야 각료회의’(First Ministerial of the WTO, 이하 ‘WTO 각료회의’) 동안에는 의기양양한 승전 분위기가 지배했고, 세계무역기구와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그리고 세계은행(World Bank)은 향후 과제가 전지구적 번영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전세계적 무역·금융·개발 정책들을 ‘상호일치’하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밝힌 거창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지구화주의 기획의 위기

 

2003년이 시작될 즈음 승리론은 자취를 감췄다. 제5차 WTO 각료회의는 다가오는데 세계무역기구는 교착상태에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신들의 정부보조금을 완강하게 고집하는 통에 농업에 관한 새로운 협정은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브뤼쎌은, 세계무역기구의 규약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난 수출업자들에게 세금감면의 혜택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워싱턴에 제재를 가하려 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워싱턴은 유전자변형 식품업체들에 실질적인 활동중지 선고를 내린 유럽연합을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왔다. 한때는 세계무역기구가 정말로 지구상의 무역을 좀더 공정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했던 개발도상국들은 자신들이 세계무역기구 회원이 되어 얻은 것은 수익이 아니라 비용이었다는 데 한목소리로 동의했다. 개발도상국들은 강압과 협박을 한다면 몰라도 더이상의 시장개방은 없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올 9월 멕시코 깐꾼(Cancun)에서 예정된 5차 WTO 각료회의는 전지구적 무역자유화의 새로운 전기를 조성하기는커녕 교착상태를 선언할 듯싶다.

세계무역기구의 이러한 교착상태를 설명해주는 정황은 전지구화 기획–이 기획의 가장 큰 성과가 바로 세계무역기구의 설립이었다–의 위기와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특징으로 떠오른 일방주의(unilateralism)의 출현이다.

이에 앞서 먼저 전지구화와 지구화주의 기획에 대한 몇가지 정리가 필요하다.

전지구화(globalization)는 자본과 생산과 시장의 전지구적 통합이 가속화되는 과정으로, 이는 기업의 이윤논리에 의해 추동된다.

지금까지 전지구화는 두 차례 있었다. 첫번째는 19세기 초엽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기이고, 두번째는 1980년대 초반에서 최근까지의 시기다. 이 두 시기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국가개입과 무역 및 자본의 흐름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국제경제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 국민경제들의 지배가 두드러졌다. 시장에 대한 이러한 국내외적 규제들은 대내적으로는 계급투쟁의 역학관계와 대외적으로는 자본간의 경쟁이 만들어낸 것인데, 신자유주의자들은 이 규제들로부터 생겨난 왜곡된 추세들이 합쳐지면서 1970년대말과 1980년대초의 자본주의 경제권 및 전지구적 경제의 침체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첫번째 전지구화 시기와 마찬가지로 두번째 시기도, 급격한 민영화를 통한 ‘시장개방’과 규제철폐 그리고 무역자유화에 역점을 두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획득한 점이 두드러졌다. 넓게 보아 두 가지 형태의 신자유주의, 곧 새처-레이건(Thatcher-Reagan)의 ‘강경노선’과, 안전망(safety-net)이 있는 전지구화를 추구하는 블레어-쏘로스(Blair-Soros) 식의 ‘온건노선’이 존재했다. 하지만 두 접근법 모두의 근저에는 시장세력들의 족쇄를 풀고 노동·국가·사회가 다국적기업들에 부과하는 제약을 철폐하거나 잠식하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전지구화 위기의 세 계기

 

지구화 기획의 위기가 심화되어온 과정에는 세 가지 계기가 존재했다. 첫번째는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였다. 동아시아의 콧대 높은 ‘호랑이들’(남한을 비롯해 싱가포르·타이완·홍콩 등 1970~80년대 급속히 성장한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을 말함–옮긴이)을 무너뜨린 이 사태로 인해 자본, 특히 금융 및 투기 자본의 좀더 자유로운 흐름을 신장하기 위한, 자본거래의 자유화라는 전지구화의 핵심논지 중 하나가 근본적으로 경제불안의 요인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실제로 70년대말에 전지구적 금융유통의 자유화가 시작된 이래 발생했던 적어도 여덟 번의 금융위기 가운데 가장 최근의 사태에 불과함이 입증되었다. 자본시장의 자유화가 얼마만큼 경제불안의 요인일 수 있는지는 불과 몇주 사이 백만 태국인들과 이천백만 인도네시아인들이 빈곤선 밑으로 내몰렸을 때 확연해졌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자유화된 자본유통의 주된 전지구적 집행자인 국제통화기금의 ‘스딸린그라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를 침공한 독일군이 스딸린그라드를 점령하는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힘만 소진한 나머지 결국 패전국이 된 사실을 지칭함–옮긴이)와도 같았다. 약 100여개에 달하는 개발도상 및 과도기 경제들을 ‘구조조정’으로 몰아넣은 야심찬 기획에서 국제통화기금이 거둔 실적이 재검토되었고, 유엔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같은 기구들이 일찍이 80년대말부터 지적해왔던 사항들이 그제서야 현실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규제철폐와 무역자유화 그리고 민영화를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구조조정 계획들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경기침체와 악화된 빈곤 그리고 증가된 불평등을 제도화시켰던 것이다.

토머스 쿤(Thomas Kuhn)이 이제는 고전이 된 그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지적했듯이 하나의 패러다임이 정말로 위기에 처하는 것은 그 가장 뛰어난 수행자들이 그 패러다임을 버리고 떠날 때인데, 물리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패러다임이 위기에 처한 시기에 벌어진 것과 유사한 일이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에 발생했다. 즉 신고전주의의 핵심 지식인들이 그 울타리를 떠난 것인데, 그중에는 일찍이 1990년대초 동유럽에서 ‘자유시장’ 충격요법을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 제프리 싹스(Jeffrey Sachs), 전직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인 죠지프 스티글리쯔(Joseph Stiglitz), 자본 유통에 대한 전지구적 차원의 통제를 역설한 컬럼비아대학 재그디시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교수, 그리고 자신을 부호로 만들어준 전지구 금융씨스템의 통제력 부재를 개탄하는 금융자본가 죠지 쏘로스가 있다.

지구화 기획 위기의 두번째 계기는 1999년 씨애틀에서 열린 제3차 WTO 각료회의의 무산이었다. 씨애틀 사태는 상당기간 조성되어온 세 갈래의 불만과 갈등이 겹쳐지면서 벌어진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개발도상국들은 1995년에 마지못해 서명한 우루과이 라운드(Uruguay Round, 남미의 우루과이에서 열려 WTO의 출범을 확정지은 다자간 무역협상–옮긴이)의 불공정함을 못마땅해했다. 불공정성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세계무역기구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대중운동이 농민·어업종사자·노동조합원·환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지구 시민사회의 다종다기한 부문에서 전지구적으로 출현했다. 세계무역기구는 수많은 협정들에서 각 부문의 복리를 위협함으로써 자신에 반대하는 지구 시민사회의 연대에 일조했다.

▷유럽연합과 미국 간에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에서는 단지 문서상으로만 봉합되었던 해결되지 않은 무역마찰들이 특히 농업분야에서 존재했다.

이 세 가지 휘발요소들이 결합되어 씨애틀에서 폭발한 셈인데, 개도국들은 씨애틀 컨벤션쎈터의 총회장에서 북반구의 독주에 반기를 들었고, 5만명의 군중은 길거리에서 격렬하게 한덩어리로 뭉쳤으며, 유럽연합과 미국은 동상이몽으로 인해 각료회의를 침몰에서 구해내는 데 힘을 합치지 못했다. 씨애틀 회의의 파국 직후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스티븐 바이어즈(Stephen Byers) 영국 외상은 위기의 본질을 간파하여 “세계무역기구가 현 체제로 지속되는 것은 가능치 않다. 134개 회원국 모두의 요구와 열망에 부응하려면 근본적이고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의 세번째 계기는 주식시장의 붕괴와 클린턴 시기에 누렸던 호황의 종말이었다. 이 계기는 단순히 거품이 꺼진 것에서가 아니라, 광범위한 설비과잉(overcapacity)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과잉생산의 위기가 불쑥 재천명된 것이었다. 1997년부터 붕괴 이전까지 미국내 기업이윤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이는 산업부문의 설비과잉으로 이어졌는데, 가장 눈에 띄는 사례로는 전세계 설비생산용량의 겨우 2.5%만을 가동하는 골칫거리 장거리통신사업 분야를 들 수 있다. 실물경제의 침체로 인해 자본이 금융부문으로 이동했고 그 결과 주가는 아찔하리만큼 상승했다. 그러나 금융부문의 수익성이 실물경제의 수익성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는만큼 주가의 하락은 불가피했는데, 이 현상은 결국 2001년 3월에 벌어지고야 말았고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침체나 디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고 늘 경기불황의 언저리에서 왔다갔다하는 데에는 아마도 좀더 광범위한 구조적 원인이 있을 법하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말했듯이 이는 우리가 저 유명한 ‘꼰드라띠예프 주기’(Kondratieff Cycle)의 하강국면 끝자락에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러시아 경제학자인 니꼴라이 꼰드라띠예프(Nikolai Kondratieff)가 주창한 이 이론은 세계자본주의가 단기간의 경기주기뿐만 아니라 장기간의 ‘거대주기들’(supercycles)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꼰드라띠예프 주기는 대략 오륙십년에 걸치는 긴 파동이다. 이 주기의 상승곡선은 집중적인 새로운 기술개발로 특징지어지고 이어서 기술개발이 완성에 이르는 꼭지점에 다다랐다가, 기존의 기술에서 얻어지는 이윤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새로운 기술은 수익성 면에서 아직 실험단계에 있는 하강곡선으로 돌아서고, 마침내 바닥점 혹은 장기화된 경기침체기가 도래한다.

지난번 파동의 바닥점은 1930년대와 40년대였는데, 이 시기는 대공황에서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끝났다. 현재 파동의 상승국면은 1950년대에 시작되었고 1980년대와 90년대에 그 꼭지점에 다다랐다. 에너지·자동차·석유화학·제조업 등 핵심분야에서 이루어진 전후 기술개발의 이윤창출은 끝난 반면, 정보기술 분야는 아직 상대적으로 걸음마 단계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990년대말의 ‘신경제’(New Economy)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믿었듯이 경제주기에서의 탈피가 아니라 현재의 거대주기가 장기 침체로 하강하기 직전의 마지막 번창국면이었다. 바꿔 말해 현 종합국면의 독특함은 지금 진행중인 단기 순환주기의 하강곡선과 꼰드라띠예프 거대주기의 하강국면이 맞아떨어진다는 점에 있다. 또 한명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죠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 경제는 장기화된 ‘창조적 파괴’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위기와 자본주의의 정당성

 

나는 지금까지 지구화 기획이 처한 위기의 계기들, 혹은 그것들이 종합국면에서 응집되어 나타난 현상에 대해 얘기했다. 이 계기들은 그동안 불균등하게 발전해온 근본적인 갈등과 모순의 표현이다. 그 중심에서 분출하고 있는 모순은 전지구화와 환경 간의 모순이다. 나는 이제 환경위기가 어떻게 지구화 기획, 아니 경제조직화 방식 그 자체로서의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중심요인으로 밝혀졌는지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발전을 위한 지구정상회의(World Summit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이하 ‘리우정상회의’)를 전후한 여론은, 세계의 환경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반면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이 문제를 다룰 전지구적 차원의 제도적·법적 장치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리우정상회의에서 환경문제의 개선을 위한 전지구적 계획인 ‘의제 21’(Agenda 21,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한 환경에 관한 21세기 국제행동강령. 국가별 세부강령인 ‘지역의제 21’(Local Agenda 21)을 권고하였음–옮긴이)에 합의하고, 이에 상응하는 국가별 계획들도 수립하기로 한 결정은 전지구적 협력으로 나아가는 데 중대한 진전을 이룬 듯했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말과 1990년대초는, 오존층을 보호하기 위해 프레온가스(CFCs, 염화불화탄소)의 제조를 규제한 몬트리올 의정서(Montreal Protocol)와 멸종위기의 생물 거래에 엄격한 제한을 둔 싸이츠 협약(CITES Treaty, 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처럼 다자간 환경협정이 여럿 조인되어서 지구 환경위기를 되돌리려는 쪽으로 나아가는 성싶었다. 더구나 1992년에 빌 클린턴(Bill Clinton)과 앨 고어(Al Gore)가 집권하면서 환경친화적인 미행정부가 들어선 듯했다.

몇가지 움직임은 이 과정을 궁지에 빠뜨렸다.

첫째, 세계무역기구의 설립. 랠프 네이더(Ralph Nader, 변호사이자 미국 환경소비자운동가.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녹색당 후보–옮긴이)가 말했듯, 세계무역기구는 기업무역을 ‘그 어떤 것보다’(über alles), 그야말로 실질적으로 국가안보를 제외한 경제 및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보다 우선시했다. 말을 바꾸면, 천연자원과 환경을 보호하는 법률이 해외 무역관계에 부당해 보이는 기준들을 부과한다면 그 법률은 개정되어야만 했다. 미국과 멕시코 간의 참치-돌고래 사태,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맞붙은 바다거북-새우 분쟁 등 일련의 획기적인 사건들에서 국내의 환경관련 법률들은 자유무역에 굴복한 듯했다. 이런 압박으로 인해 각 나라들은 환경보호를 최고의 기준치까지 밀어올리기보다 최저 공통분모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둘째, 첨단 식품기술과 생명공학을 사용하려는 기업측의 공격적인 시도가 전세계 환경보호론자들과 시민대중에 경종을 울렸다. 호르몬 가공처리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시행된–유럽연합의 금수조치는 세계무역기구가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다. 마찬가지로 농산물의 유전자 변형은 환경친화표시제(ecolabelling, 유전자조작 여부와 환경친화 상태를 고시하고 상품에 표시하는 제도–옮긴이)에 대한 몬싼토(Monsanto)와 같은 미국기업들의 거부와 맞물려 유럽과 세계 다른 나라에서 소비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확고한 과학적 근거’(solid science)를 요구하는 미국기업들의 기준에 대항할 강력한 무기로 예방조치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 안전성이 판명될 때까지는 유전자변형식품의 수입 및 시판을 금지한다는 원칙–옮긴이)에 대한 요구가 피력되었다. 게다가 특허권을 생명체와 종자에까지 확대하려는 미국 생명공학 회사들의 저돌적인 노력은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자연과 공동체 간의 상호작용을 ‘사유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비난받으며 농민단체와 소비자단체 그리고 환경론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셋째, 남북극 만년설(萬年雪)의 용해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싯점에서 미국의 산업계가 지구온난화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모습은 공익보다 이윤을 먼저 챙기려는 뻔뻔스러운 작태로 여겨졌다. 이러한 인식은, 지구온난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는 전지구 차원의 집단적 노력이 클린턴행정부 시기에 기업들의 성공적인 공작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뒤, 기후변화에 관한 안 그래도 취약한 쿄오또오 의정서(Kyoto Protocol)조차 부시행정부가 서명·비준하길 거부해서 마침내 수포로 돌리려 함으로써 더욱 강화되었을 뿐이다.

미국기업들의 저돌적인 반환경적 태도는 미합중국 내부에서조차 기업경영에 대해 커다란 불신을 초래한 요인 중 하나였다.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지의 2000년도 설문에 따르면 72%에 달하는 미국인들은 기업이 “자신들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했고, 마침내 미국의 이 권위있는 경제주간지는 “미국의 기업들이여, 망하고 싶으면 이 추세를 무시하라”고 경고했다.

동시에 개도국들은 미국이 환경문제를 들어 자신들의 개발을 저지하려 한다고 느꼈는데, 워싱턴은 자신이 쿄오또오 의정서에 서명하는 조건으로 개도국들도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가스배출에 대한 규제를 선진국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한 의구심은 근거가 없지 않았다. 부시행정부의 인사들이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은 분명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이 자신들에게 전략적인 위협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미국은 자신의 지경학적(geo-economic)·지정학적(geopolitical) 우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환경론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리우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전지구적 합의는 느슨해졌고, 2002년 9월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구정상회의’(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 즉 ‘리우+10’에서 노골화된 거대기업들의 대규모 친환경도색(greenwashing, 환경파괴를 은폐하기 위해 겉으로는 환경보호를 내세우는 기업전략–옮긴이) 캠페인으로 거의 붕괴되다시피 했다. 경제성장과 생태계의 안정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전망은 관심사에서 밀려났다. 오염친화적인 정부들과 밀접하게 손잡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의 자본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자 쓰레기통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면서, 허먼 데일리(Herman Daly, 자연도 자본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위 생태경제학(ecological economics)을 주창한 미국의 경제학자, 환경운동가–옮긴이)가 영겁에 걸쳐 창조된 생태계를 최단시간 동안에 앞지르는 과대성장(hyper-growth)이 특징이라고 말한 바 있는 이 경제체제의 묵시록적인 형상은 바짝 더 실현에 다가선 듯했다.

자연이 수십억년에 걸쳐 탄생시킨 한정된 공간을 기하학적인 속도로 채워나가려는 인공생산체계의 가차없는 움직임 때문에 생태계의 악화가 초래된다는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몇년 전만 해도 꽤 많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성장속도의 완화와 소비율의 둔화가 환경의 안정화에는 꼭 필요한 해법이었고, 이는 대중들이 지지하는 정책결정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분석은, 환경문제의 주범이 자연의 혜택을 끊임없이 상품으로 변형시키고 쉴새없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는 무소불위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고 보는 좀더 급진적인 관점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자본주의는 뭇 남성과 여성의 생물체로서의 자연내 존재(being-in-nature)와 시민으로서의 사회내 존재(being-in-society)를 끊임없이 손상시키고, 노동자로서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와중에 그들의 의식을 소비자라는 단일한 역할에 고정시킨다. 자본주의에는 여러 ‘운동법칙들’이 있지만, 환경과 관련해서 가장 파괴적인 것 중 하나는 바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쎄이의 법칙(Say’s law)이다. 자본주의는 살아 있는 자연을 죽은 상품으로, 천연재화를 죽은 자본으로 바꾸는 수요창출의 기제다.

요컨대 환경론은 지난 십년 동안 전지구화에 대한 비판에서 자본주의 자체의 역학에 대한 비판으로 옮겨감으로써 본래의 급진적인 비판력을 다시 얻게 되었다.

 

 

죠지 부시의 새로운 경제학

 

전지구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정당성, 그리고 과잉생산 등 서로 맞물린 위기들이 부시행정부의 경제정책들, 특히 일방주의적 압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황을 제공한다. 기업측에서 추진한 지구화 기획은 세계경제의 확장에서 전지구 자본주의 엘리뜨들의 공통된 이해관계와 그들의 본질적인 상호의존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전지구화가 국가엘리뜨들 사이의 경쟁까지 없애버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미국과 유럽의 지배엘리뜨들 내부에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처럼 국가주의적 성격이 아주 농후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이 국가와 더욱 밀착된 분파가 존재했다. 정말로 1980년대 이래, 성장하는 세계경제에서 전지구 자본가계급이 갖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좀더 전지구화 지향의 분파와 미국기업의 이해를 최우선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훨씬 국가주의적이고 패권주의적인 분파 사이의 첨예한 싸움이 지배엘리뜨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가 지적했듯이, 빌 클린턴과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의 정책은 세계경제를 확장해 전지구 자본가계급의 번영을 위한 기반으로 삼는 데 최고의 역점을 두었다. 예컨대 그들은 1990년대 중반 일본과 독일의 경제회복을 촉진하여 이들 나라가 미국의 상품과 써비스를 위한 시장으로 기능할 수 있게끔 달러화 강세정책을 밀어붙였다. 그전의 좀더 국가주의적인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거꾸로 일본과 독일 경제를 희생하여 미국경제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달러화 약세정책을 채택한 바 있다. 죠지 W.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서는 달러화 약세정책에 더해, 다른 중심부 경제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미국경제를 회생시키고 전지구적 경기하향의 형국에서 전지구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보다 소수 미국기업의 이득을 먼저 챙기는 경제정책들로 복귀한다.

이러한 해결책의 몇몇 특징들은 강조해둘 만하다.

▷부시의 정치경제학은 미국의 국가기구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지구화 과정에 대해서 큰 경계심을 드러낸다. 시장이 전지구화로만 향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주요 미국기업들이 전지구화의 희생양이 되어 결국 미국의 경제적 이해를 양보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유시장 운운하는 수사법에도 불구하고 무역과 투자 그리고 정부발주사업의 운용에 닥치면 극히 보호주의적인 집단이 되는 것이다. 부시파들의 모토는 미국에는 보호주의, 나머지 우리한테는 자유무역인 듯하다.

▷부시식 해결책에는 전지구경제 통어의 수단으로서 다자주의(多者主義, multilateralism)에 대한 강한 회의가 들어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다자주의는 전지구 자본가계급 일반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는 있겠지만 허다한 경우에 특정 미국기업의 이해관계와 배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패거리는 세계무역기구에 대한 애증이 갈수록 교차했는데, 이는 미국이 거기서 벌어진 수차례의 판정들, 곧 미국자본에는 상처가 되겠지만 전체 지구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판정들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에 연원한다.

▷부시측 인사들에게는 전략상의 패권이 권력의 궁극적인 발현태다. 경제력은 전략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 점은 부시 휘하 지배엘리뜨 중의 유력한 분파가,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군산유착 진영이라는 사실과 연관된다. 이 패권의 축을 두고 벌어지는 지구화론자들과 일방주의자 내지는 국가주의자들 사이의 갈등은 중국에 대한 태도에서 뚜렷하다. 전지구화론자들의 생각은 중국과의 협력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중국의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미국자본의 투자처이자 시장이라는 데 있다고 본다. 반면에 국가주의자들은 중국을 주로 전략상의 적성국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중국의 성장을 돕기보다 봉쇄하고자 한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부시의 패러다임에는 환경관리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이것은 미합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의 걱정거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전자변형식품(GMOs,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을 둘러싼 우려와 같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전지구적 경쟁에서 미국 첨단기술의 우위를 빼앗으려는 유럽의 음모라고 믿는 기업들의 강력한 로비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발상들이 행동의 전제가 됨을 감안한다면 다음과 같은 최근 미국 경제정책의 주요한 사항들도 납득이 될 것이다.

▷중동산 원유에 대한 지배권 확보. 물론 이것이 이라크를 침공한 미행정부의 목표 전부는 아니었지만 우선과제의 하나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유럽과의 경쟁이 범대서양 관계에서 주요한 양상이 된만큼 이 정책은 한편으로 유럽을 겨냥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마 훨씬 더 전략적인 목표는, 이 지역의 자원들을 선점하여 에너지 부족국가이자 미국의 전략적 적성국인 중국이 이들 자원에 대해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는 일이었다.

▷무역과 투자 사안들에서의 적극적인 보호주의. 미국은 보호주의적인 조례를 연거푸 통과시켰는데, 가장 파렴치했던 것 중 하나는 제약회사들의 엄청난 청탁에 부응해 의약특허권의 완화를 겨우 세 가지 질환에 국한함으로써, 공중보건문제를 지적재산권보다 우선시한 ‘도하 선언’(Doha Declaration, 2001년 까타르의 도하에서 열린 제4차 WTO 각료회의의 선언문–옮긴이)을 무화시키며 세계무역기구의 협상에서 어떤 새로운 시도도 이루어질 수 없게 만들어버린 일이다. 워싱턴은 세계무역기구의 협상이 무산되는 일은 기꺼이 반기면서도, 여러 나라들을 유럽연합이 유사한 협정에 끌어들이기 전에 ‘미주자유무역협정’(FTAA, Free Trade of the Americas) 같은 양자간 혹은 다자간 무역협약에 서명하도록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말은 정말로 잘못된 명칭인 것이, 실제로는 특혜무역협정이기 때문이다.

▷무역협정에 전략적 고려를 포함시킨 것. 최근 연설에서 미국 무역대표부의 로버트 젤릭(Robert Zoellick)은 명시적으로 “미합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꾀하는 국가들이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역 및 경제의 기준에서 검열을 통과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최소한 이들 국가는 미국이 잠재적인 자유무역협정 파트너를 선정하는 데 기준이 될 13개 항목들 중 외교정책과 국가안보의 방향에서 미합중국과 협력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가장 자유무역의 원칙에 충실한 정부 중의 하나일 뉴질랜드는 자유무역협정 제의를 받지 못했는데, 이유인즉 미국이 핵함정의 입항을 금지하는 뉴질랜드의 정책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의 비용을 중심경제국들에 떠넘겨서 미국경제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달러화 가치의 조작.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의 점진적인 평가절하는 시장논리에 따른 조정으로 풀이할 수도 있으나, 25%씩이나 가치를 절하하는 것은 잘 봐줘도 은근한 방기에 불과하다. 부시행정부는 이것이 소위 근린궁핍화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임을 부정했지만, 미국의 경제지들은 이것이 유럽연합과 다른 중심부 경제국들을 제물로 삼아 미국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시도라고 보았다.

▷미국자본의 이해를 제고하기 위해 다자간 기구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일. 유럽연합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세계무역기구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수월치 않겠지만, 미국의 지배력이 좀더 효과적으로 제도화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에서는 아주 쉽사리 이룰 수 있다. 예컨대 개도국들을 채권자들로부터 일정하게 보호하면서 그들이 채무를 재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제통화기금 운영진의 ‘국가채무재조정기구’(SDRM, Sovereign Debt Restructuring Mechanism) 설치안을 많은 유럽 정부들이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재무부는 이 안을 격침시켜버렸다. 기왕에도 매우 허약한 장치였던 채무재조정기구에 대해 미재무부는 미국은행들의 이해를 좇아 거부권을 행사했다.

▷끝으로 특히 이어지는 오늘의 토론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여타 중심부 경제국들과 개도국들에 환경위기를 조절하는 부담을 떠넘긴 일. 부시 측근 중 몇몇은 환경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지만, 다른 인사들은 현재 전지구의 온실가스 배출이 위험수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다른 국가들이 조절의 부담을 져주길 바라는데, 그렇게 되면 환경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미국의 산업은 환경조정 비용을 면제받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들로 하여금 미국이 응당한 조절과정에 참여했을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 때문에 시달리게 만들어 전지구적 경쟁에서 미국경제의 우위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근본주의자의 맹목이 아니라 무자비한 경제 현실정치(realpolitik)가 기후변화에 관한 쿄오또오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기로 한 워싱턴의 결정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과잉팽창의 경제학과 정치학

 

부시행정부의 경제정책은 전략적인 목표와 아주 밀착해서 추동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초래할 결과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미국경제 및 세계경제의 상태와 좀더 폭넓은 전략적 정황을 감안해야만 한다. 성공적인 제국경영의 핵심기반은 국가경제 및 지구경제의 확장인데,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다가오는 불황으로 이런 확장의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이 때문에 아마도 자본간의 경쟁은 가속화될 듯싶다.

게다가 이 확장에는 경제적·정치적 자원들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자원들도 포함된다. 지배체제가 공정하다는, 그람시(Antonio Gramsci)가 피지배자들의 ‘합의’(consensus)라고 지칭한 정당성(legitimacy) 없이는 제국의 경영이 순탄할 리 없다.

미국과 비슷하게 지배체제의 장기적인 안정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던 고대 로마제국은 당시로서는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집단적 충성을 이끌어내는 해결책을 마련했고 제국의 수명을 700년 동안 연장했다. 로마제국의 해법은 단순히 군사적인 해결책이 아니었고, 심지어 군사 중심의 해결책도 아니었다. 로마인들은 성공적인 제국지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로마질서의 ‘정당함’에 대한 피지배자들의 동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학자 마이클 맨(Michael Mann)이 그의 고전적인 저서 『사회권력의 근원』(Sources of Social Power)에서 일러주듯이, ‘결정적인 우위’는 군사적이기보다 정치적인 것이었다. 그는 “로마인들은 우여곡절 끝에 확대된 영토적 시민권(territorial citizenship)의 발명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즉 제국 전역에 걸쳐 지배집단과 비노예 시민들에게 로마시민권을 확대한 일은 “아마도 이제껏 동원되었던 가장 광범위한 형태의 집단적 헌신”을 만들어냈다. 정치적 시민권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제공한다는 제국의 전망과 결합하여 정당성이라는, 저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본질적인 도덕적 요소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지적할 필요도 없이 미제국의 질서에서는 시민권의 확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사실 미국시민권은 세계인구 중 극소수한테만 한정적으로 부여되며, 그 시민권 영역으로의 진입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하위 민중들은 동화되기보다, 무력 내지는 무력사용의 위협에 의해, 아니면 제국 심장부의 이해에 복무하도록 점점 더 노골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1944년 미국의 브레튼 우즈에서 열린 연합국 금융통화회의로 국제통화기금과 국제부흥개발은행의 창설을 결의했다–옮긴이) 체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전지구적 또는 국지적 규제와 기구들에 의해 억제되어 있다.

만민에 대한 시민권 확대가 미제국 무기고의 한 장비였던 적은 없지만, 2차대전 이후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동안 워싱턴이 자신의 전지구적 세력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치적인 처방전을 내놓은 일이 있기는 했다. 그중 두 가지는 전지구 통어체계로서의 다자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였다.

실제로 냉전 직후에는 현대판 ‘로마제국의 평화’(Pax Romana)가 도래하리라는 광범위한 기대가 있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의 독보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헤게모니를 정착시킴과 동시에, 지구상에 아우구스투스의 시대에 맞먹는 평화도 보장해줄 다자주의적 질서를 지지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경제의 전지구화와 다자주의적 통어로 가는 길이었다. 죠지 W. 부시의 일방주의는 이 길을 제거해버렸다.

프랜씨스 피츠제럴드(Frances Fitzgerald,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저술가–옮긴이)가 『호수의 불』(Fire in the Lake)에서 밝힌 대로, 자유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약속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의 군사력에 늘 따라다니던 매우 강력한 이상(理想)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워싱턴식의 혹은 웨스트민스터류의 자유민주주의는 개발도상국 전역에서 곤경에 처했고, 필리핀, 무샤라프(Musharraf)정권 이전의 파키스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도처에서 과두지배체제를 위한 얼굴마담으로 전락했다. 사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덜 민주주주의적이고 덜 자유주의적으로 변했다. 확신컨대 개도국들 중 어느 나라도 기업의 자금으로 굴러가는 부패한 체제를 모범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패권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 필요한 도덕적 전망의 회복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정말로 요즈음 워싱턴은 가장 효과적인 합의기제가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으름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더구나 아랍권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느니 어쩌니 하고 떠들어대지만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 미국과 유럽의 갈등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수석연구원–옮긴이)과 찰스 크로트해머(Charles Krauthammer, 『워싱턴 포스트』지의 칼럼니스트–옮긴이) 같은 유력한 신보수주의 논객들의 주요목표는 명약관화하다. 즉 아랍세계의 단합을 해체하는 다원주의적 경쟁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적 장치들을 조작하는 일이다. 아랍국가들에 민주주의를 들여오는 일은 뒤늦게나마 만들어낸 명분이 아니라 다른 흑심을 감춰두고 떠들어대는 구호인 것이다.

부시측 인사들은 새로운 로마제국의 평화를 창조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아랍인과 같은 대부분의 하위 민중들을 파괴적인 미국의 힘에 대한 건전한 존경심으로 눌러버리고, 필리핀 정부 같은 다른 집단의 충성심은 현금지원 약속으로 사들이는 미제국의 평화, 곧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다. 지구상의 대다수를 제국의 중심부로 동여맬 도덕적 전망이 없는 이런 방식의 제국경영이 불러올 것은 오로지 하나, 저항뿐이다.

일방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과잉팽창, 혹은 미합중국의 목표와 그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방편 간의 불일치다. 과잉팽창은 상대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상당한 정도까지 저항과 함수관계에 있다. 과잉팽창된 힘이 이에 맞선 훨씬 더 큰 규모의 저항을 부추긴다면, 군사력의 괄목할 만한 증대가 있더라도 실제로 더 악화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미국의 과잉팽창을 나타내는 주요지표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식민지배의 튼튼한 기초가 될 이라크의 새로운 정치체제를 고안하는 데 워싱턴이 계속 무능한 것.

▷수도 카불을 제외하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친미정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일.

▷워싱턴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핵심 우방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의 봉기를 진압하지 못한 일.

▷중동과 동아시아 그리고 동남아에서 아랍과 이슬람 정서를 부채질하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광범위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득세한 일. 이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바랐던 것이다.

▷냉전시대의 대서양연합이 붕괴하고 독일과 프랑스가 중심이 된 새로운 대응연합이 출현한 일.

▷최근의 전지구적 반전운동에서 의미심장하게 표현되었듯, 미국의 일방주의와 군국주의 그리고 경제헤게모니에 맞선 강력한 시민사회운동이 형성된 일.

▷부시행정부가 중동지역에 골몰하는 동안 워싱턴의 텃밭인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그리고 에꽈도르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반미운동이 집권한 일.

▷미국경제에 끼치는 군국주의의 부정적인 영향이 점차 증가하여, 군사비 지출이 적자재정에 기대고 적자재정은 해외로부터의 금융 지원에 더더욱 의존함으로써 이미 불황의 진통을 겪고 있는 경제에 스트레스와 피로를 만들어낸 일.

결론을 내리면, 지구화 기획은 위기에 처했다. 물론 민주당 혹은 자유주의적인 공화당 대통령의 집권을 통해 이 기획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될 것인데,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영자집단 내부에 죠지 쏘로스처럼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압박에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영향력있는 지구화론자의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리 될 것 같진 않고 향후 얼마 동안은 일방주의가 지배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장기화된 경제위기, 전지구적 저항의 확산, 중심부 국가들간 세력균형의 재등장, 그리고 제국주의 내부의 첨예한 모순들의 재출현으로 특징지어지는 역사적인 소용돌이에 진입했다. 미국의 힘에 대해서는 건전한 존중도 있어야겠지만 너무 과대평가해서도 안될 것이다. 미합중국은 극심하게 과잉팽창했으며, 위력의 표현인 듯 나타나는 것이 실은 전략상의 중대한 약점일지도 모른다는 증좌들이 엄연하기 때문이다.

[姜于聲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