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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 네이스

 

누가 갈등을 부추기는가

 

 

이철호 李哲虎

서울 배문중학교 국어교사,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기획실장. ieunnuri@chol.com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기가 쉽지 않다. 특히 권좌에 앉아 고였던 이들이 떠날 때의 모습은 도무지 아름답지 않다. 하여 시인들은 떠나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그토록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전임 교육부장관의 마지막 행보는 떠나는 자의 태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다시 보여주었다. 그는 교육계는 지금 교장단과 전교조의 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는데, 자신은 교장단을 지지하였으며, 퇴임 후에는 전교조에 대항하여 싸우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밝혔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안티 전교조를 표방하는 ‘교육공동체시민연합’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대표직을 맡았다. 이런 행보를 통해 그는 올 상반기 내내 신임 장관보다도 비중있게 언론매체에 그 이름을 내걸었다.

변화를 원하지 않는 보수언론에 그의 행보는 마치 돌격대의 장수처럼 입맛에 맞았는지도 모른다. 유령 학부모단체가 선봉에 나서고, 언론매체가 거들어 싸움을 부추기고, 보수단체들이 떼지어 물어뜯는 형국. 그들은 개혁을 바라는 진영의 의견은 싸잡아서 친(親)전교조 집단의 견해라는 식으로 매도하며 들으려 하지 않았고, 교육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마다 교장단과 전교조의 갈등으로 빚어진 결과인 양 호도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들이 발목을 잡은 것은 단지 전교조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교조로 표상되는 학교의 민주화와 교육개혁을 바라는 열망을 한꺼번에 싸잡아서 거꾸러뜨리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2003년 봄은 희망의 시대일 수도 있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참여정부는 여러 분야에서 개혁의 그림을 제시했으며, 특히 교육계는 현장교사의 경험과 민주화운동의 전력을 가진 이가 교육부의 장관이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첫단추부터가 문제였다. 전임 정부에서 추진해오던 사업, 전임 장관과 관료들에 의해 막무가내로 추진되어, 저항이 터질 시기만 기다리던 문제, 바로 NEIS라는 교육행정정보씨스템이 출발부터 가로막고 있었다. 지식정보화시대라는 논리로 이전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전자정부 정책의 하나인 교육행정정보씨스템 문제는 처음부터 어떠한 교육적인 필요에 의해서 논의되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참여정부라는 표제어에 걸맞은 행정은 이 상황에 어떤 해결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너무나 분명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장관은 학교현장의 목소리도, 이 씨스템이 교육적으로 어떤 결과를 빚을지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다만 행정상의 효율성과 이미 들인 비용만을 따졌을 뿐이다.

올 상반기 내내 학교는 네이스 인증, 네이스 시행, 네이스 거부 등의 낱말로만 그 교육적 의미를 다하고 말았다. 그리고 명령기관인 교육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관료들의 생존전략에만 골몰하더니 급기야는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결론을 내려서 학교의 구성원들 사이의 입장차이로 인한 갈등만 더 키워놓고 말았다. 교육과정과 같은 것을 학교에서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면 교사들은 정말 행복할 것이다. 교권이라는 것이 교사의 사회적 체면이나 위신 문제가 아니라 교육활동을 할 권리라고 한다면 이런 결정은 교권을 제대로 세울 기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의 학습권도 제대로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학교현장을 외면했고,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들이 처한 현실을 끝내 부정해버리고 말았다. 보수언론은 오히려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정부기관 사이의 세력싸움으로 보도했으며, 장관의 자존심을 자극하여 그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였다.

학교 교사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판단하기 어려운 것은 평교사들뿐 아니라 정보화 담당교사나 의사결정권자인 교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인권의 문제를 제기한 전교조 소속 교사들마저 네이스를 막아야 한다는 당위와 불확실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였다.

논란 끝에 그래도 네이스 씨스템을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알기 위해 교사들이 교내 자체 연수를 받았는데 교육청의 써버에 접속하는 순간 써버가 다운되어버리고 말았다. 학교의 모든 행정정보와 학교 구성원의 모든 정보를 기록하겠다는 계획이 망상이었음이 드러나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언론과 보수집단은 이 씨스템에 이미 들인 비용만을 따지며, 전교조 때리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 사태는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던가보다. 5월이 되자 시혜처럼 갑자기 24학급인 우리 학교에 24대의 최신형 컴퓨터가 도착했다. 네이스 씨스템을 운용하기 위해 갑작스레 새 컴퓨터가 들어온 것이다. 멀쩡하게 잘 쓰고 있던 컴퓨터가 네이스 씨스템의 운용을 위하여 갑자기 고물로 둔갑하여 창고로 들어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청은 교사들의 컴퓨터가 어느 정도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교체되었는지 조사는 했으나, 교체된 컴퓨터들이 어떤 용도로 재활용되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교사들은 이 씨스템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반인권적 성격 때문에 농성중인데, 행정당국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네이스와 관련된 올 상반기는 특히 힘들었다. 교사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외치기보다는 가벼운 자리에서 작은 목소리로만 이야기했다. 도대체 왜 이런 갈등의 상황에 있어야 하는지 시원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내린 힘든 결정 중의 하나가 연가투쟁이었다. 연가투쟁에 반대하는 동료교사는 어떠한 이유로도 교사가 수업을 포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으며, 또 어떤 교사는 우리가 연가를 내서 싸운다고 학부모가 우리를 이해해주겠느냐고 했다. 솔직하게 학부모들이 바라는 선생이란 아이들에게 많은 지식을 넣어주어 서열이 높은 대학에 입학시켜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한 교사는 이제 그만 싸움을 접자고 했다. 우리가 할 만큼 했기 때문이라는 뜻이 아니고 이제 그 싸움을 정보인권 문제의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돌려주자는 주장이었다.

연가투쟁이 끝나자 학교는 새로운 회오리에 휘둘렸다. 징계문제였다. 교육부는 연가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 결정을 내렸고, 참여정부 이전 시기까지 소급해 연가에 참여한 교사를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침을 각 학교에 하달했다. 조사 보고가 가져올 사태가 짐작되었기 때문에 각 학교마다 보고를 해야 하는 처지인 교감·교장과 연가에 참여한 교사들 사이에는 대화가 사라져버렸다. 후배 교사를 징계하기 위한 보고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오히려 안타깝게 다가왔다. 도대체 누가 이런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으며,혹시 그들은 이를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고 있는지 화가 치밀어오른다.

 

지식정보화사회라는 용어가 우리 시대를 규정하고 있다. 이 시대를 앞당겨 이끌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교단 선진화이며, 전자정부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식정보화사회란 지식이 정보가 되는 사회를 말한다. 즉 지식이 돈이 되는 사회, 돈이 되는 정보만이 가치가 있는 사회, 돈이 안되는 지식은 더이상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요구인지도 모른다.

SA로부터 CS를 거쳐 NEIS로의 변화가 교육활동에 정녕 필요한 것이었는지에 관해서 아무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만 효율적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시간의 절약이 교육적으로 의미있는 것이라면 전산화는 정말 효율적인 씨스템이다. 내가 처음 담임을 했을 때 연말에 수기(手記)로 50여명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면서 며칠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세심하게 고민했고, 쓰기 전에 몇번씩 망설여야 했다. 그러나 전산화된 이후에는 너무 편하다. 씨스템은 친절하게도 다양한 예시 답안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 얼굴 한번 떠올리고 예시 답안 중에서 적당한 표현을 클릭하면 된다. 혹시 적당하지 않다면 다른 문장을 선택하면 된다.

굉장히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더 교육적이라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정말 믿고 있는 걸까?